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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nday Worship Message
주일예배메시지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8-12-09 (일) 12:27
분 류 누가복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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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성탄말씀 제1강] 영원한 왕 예수님

 2018년 성탄말씀 제1강                                                    최동진

영원한 왕 예수님

말씀 / 누가복음 1:26-56
요절 / 누가복음 1:33 “영원히 야곱의 집을 왕으로 다스릴 것이며 그 나라가 무궁하리라.”

  성탄절이 되면 남녀노소 모든 사람이 즐거워합니다. 그런데 그 의미를 알고 즐거워하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오늘 말씀은 성모 마리아에게 임한 성탄 메시지입니다. 천사 가브리엘은 마리아에게 이 엄청난 소식을 전해주면서 그가 하나님께 은혜를 받은 자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마리아가 받은 은혜가 어떤 은혜인지, 또 마리아의 몸을 빌려 탄생하실 예수님은 어떤 분이신가 생각해 보는 가운데 영원한 왕 되신 예수님으로 인한 감사와 기쁨과 찬양이 충만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I. 은혜를 받은 마리아 (26-33)
  26절을 보십시오. “여섯째 달에 천사 가브리엘이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아 갈릴리 나사렛이란 동네에 가서” 엘리사벳이 하나님의 능력으로 잉태한지 여섯 째 달에 천사 가브리엘이 갈릴리 나사렛이란 동네에 찾아갔습니다. 나사렛이란 동네는 구약에 한 번도 언급되지 않은 듣도 보도 못한 보잘 것 없은 작은 시골 동네였습니다. 요한복음 1장에서 빌립이 나다나엘에게 자기가 만난 예수님에 대해 증거하자 나다나엘이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 반응할 정도로 무시 받는 시골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시골 마을에 천사 가브리엘이 찾아온 것이었습니다. 이곳에 다윗의 자손 요셉과 약혼한 마리아가 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결혼 날짜를 손꼽아 기다리는 마리아의 심정이 어땠을까요? 마리아는 사랑하는 요셉과 함께 할 미래를 꿈꾸며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뒤에 나오는 마리아의 찬송시를 보면 단순히 세속적이고 개인적인 행복만을 꿈꾸는 여인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과 자신과 세상에 대해 문제의식을 가지고 공평하고 정의로운 사회를 꿈꾸며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는 믿음의 여인이었습니다. 이런 마리아에게 천사가 찾아왔습니다. 28절을 보십시오. “그에게 들어가 이르되 은혜를 받은 자여 평안할지어다 주께서 너와 함께 하시도다 하니” 은혜란 아무 자격 없는 자에게 값없이 주어지는 선물을 의미합니다. 장차 요셉과 함께 할 것만 생각해도 행복한 마리아에게는 현재 다른 어떤 은혜도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갑작스러운 천사의 인사에 깜짝 놀라 이런 인사가 어찌함인가 생각하고 있는 마리아에게 천사가 다시 한 번 은혜를 입었음을 강조해서 말했습니다. 30절을 보십시오. “천사가 이르되 마리아여 무서워하지 말라 네가 하나님께 은혜를 입었느니라.”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뜻밖의 선물을 받거나 바랄 수 없는 중에 기도하던 일이 이루어졌을 때 은혜를 받았다고 기뻐합니다. 수험생들은 원하는 대학에 합격했을 때, 학생들은 장학금을 받았을 때 은혜를 받았다고 합니다. 목자님들은 소원 있는 좋은 양을 만났을 때 하나님이 은혜를 주셨다고 기뻐합니다. 대부분 좋은 결과물을 얻었을 때 은혜를 받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마리아가 받은 은혜는 아주 특별했습니다. 천사가 기드온을 큰 용사로 부를 때와 같이(삿6:12) “주께서 너와 함께 하시도다”하는 말을 하는 것을 볼 때 하나님이 마리아와 함께 하심으로 이루고자 하시는 계획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마리아가 이 은혜를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용기와 결단이 필요했습니다.
  그러면 마리아가 받은 은혜가 구체적으로 무엇입니까? 31절을 보십시오. “보라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그 은혜는 마리아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는다는 것입니다. 오랫동안 자식을 위해 기도하던 박이삭, 그레이스 목자님 가정에 아들을 주신 것은 큰 은혜겠지만 결혼을 앞둔 처녀 마리아에게는 은혜가 아니라 날벼락이었습니다. 당시 유대 율법사회에서 미혼모가 되면 돌에 맞아 죽어야 했습니다. 무엇보다도 사랑하는 요셉으로부터 오해를 받고 결혼의 꿈이 깨질 수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천사는 왜 마리아가 은혜를 받았다고 말하는 것입니까? 마리아에게 임한 은혜는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아 인류 구속역사에 쓰임 받게 되는 것입니다. 평범한 시골 처녀에 불과한 마리아가 인류를 구원할 메시야를 잉태함으로 성모마리아가 된다는 것은 마리아에게 있어서 꿈에도 생각해보지 못한 놀라운 은혜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마리아가 예수님의 어머니로써  특별한 혜택을 받거나 영광을 누린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이 은혜를 감당하는 데에는 실제적인 아픔이 따릅니다. 우리의 삶은 어떠합니까? 신앙생활이란 구원 받은 후 예수님을 내 안에 모셔들이고 예수님을 낳고 키우는 삶이라 할 수 있습니다. 날마다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모시고 예수님을 배울 때 예수님 안에서 성장하게 되고, 또 내 안에 계신 예수님을 통해 다른 사람을 돕고 살리는 삶입니다. 이것이 신자의 삶이고 목자의 삶입니다. 이를 잘 감당하기 위해서는 은혜를 은혜로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대게 처음 예수님을 만난 은혜에 감격하여 기쁨 가운데 목자 생활을 출발합니다. 그러나 목자 생활이 늘 기쁨이 충만한 것만은 아닙니다. 말씀을 전하다 어린 학생들에게 무시당하고 수위들에게 쫓겨나는 일도 비일비재 합니다. 그래도 양들이 잘 자라주면 위안이 될텐데 아무리 수고해도 열매가 없는 현실을 생각하면 목자생활이 고난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은혜를 은혜로 여기지 않을 때 불평과 원망이 내면에 쌓이게 되고 결국 받은 은혜를 모두 잃어버리게 됩니다. 그러나 목자생활 하면서 우리가 당하는 아픔들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은혜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닙니다. 이 은혜를 알 때 오히려 고난을 통해 더욱 깊은 은혜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우리는 많은 문제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요즈음 뉴스 사회면을 보면 사건 사고가 끊이지 않고 이 세상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어지러울 지경입니다. 엽기적인 폭력사건이 하루가 멀다 하고 일어나고 있습니다. 요즘 우리나라는 AIDS환자의 증가가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습니다. 유엔의 보고에 따르면 미국, 일본, 호주 등 해외 선진국에서는 AIDS 환자의 신규 감염자가 현저하게 감소하고 있는데, 우리나라는 매년 급격히 늘어나고 있으며, 특히 동성애에 대한 관대한 분위기가 확산 되면서 젊은 연령층의 남성 환자의 비율이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 사회에 많은 문제가 있는 것 같지만 가장 심각하고도 근본적인 문제는 죄와 죽음문제입니다. 오늘날 하나님을 떠난 인간의 모습을 보면 자기를 사랑하고 돈을 사랑하며 부모를 거역하고 무정하고 사나우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 한 것이 주님의 재림이 가까웠음을 느끼게 합니다. 누가 이런 죄로부터 구원해 줄 수 있습니까? 오직 우리 죄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만이 구원할 수 있습니다. 이 예수님을 잉태하고 낳고 키우는 것이 얼마나 큰 은혜입니까?
  천사는 계속해서 마리아의 몸을 빌려 탄생하실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말해주었습니다. 32,33절을 함께 읽어보시겠습니다. “그가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 일컬어질 것이요 주 하나님께서 그 조상 다윗의 왕위를 그에게 주시리니 영원히 야곱의 집을 왕으로 다스리실 것이며 그 나라가 무궁하리라.”

첫째로, 예수님은 큰 자가 되십니다. ‘큰 자’란 ‘Great, 위대한 자'를 뜻합니다. 대게 사람들은 그들의 인격이나 업적, 영향력을 보고 그 사람의 위대성을 평가합니다. 마이크로소프트사의 창업자로서 자선사업에 매진하고 있는 빌게이츠 같은 사람이나 초강대국 미국의 대통령 트럼프 같은 사람을 큰 자로 여깁니다. 요즈음에는 우리나라의 방탄소년단이 미국 Times지에서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25인에 선정될 정도로 그 영향력이 대단합니다. 베트남에서는 박항서 축구감독의 인기가 방탄소년단을 능가할 정도로 사람들의 뜨거운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것들은 예수님의 인격과 능력과 영향력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닙니다. 세상 사람들의 인기와 영향력은 잠시뿐이고 세월이 흐르면 잊혀지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갈릴리 나사렛에서 시작된 구원 역사는 온 유대와 사마리아를 넘어 전 세계 땅 끝까지 퍼져 기독교 인구가 전 세계 인구의 30%를 차지할 정도로 2000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그 영향력을 끼치고 있습니다. 세례요한은 그의 위대성을 말할 때 주 앞에 위대한 자라고 하였지만, 예수님은 그 본질 자체가 위대한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죄인들의 완악한 마음을 감동시키는 위대한 말씀의 종이요, 귀신의 세력도 물리치시는 영적인 세계의 지배자가 되십니다. 예수님은 어느 누구도 해결할 수 없었던 인간의 근본문제인 죄와 죽음 문제를 해결하신 분이십니다. 이 예수님은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 일컬어질 것입니다. 예수님은 본체가 하나님으로서 바로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진정한 위대성은 엄청난 창조의 권세를 가지신 분이심에도 불구하고 죄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하늘나라의 모든 영광과 권세와 특권을 다 버리시고 종의 형체를 입고 이 땅에 오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태어나실 때부터 말구유에 누이심으로 인간의 모든 슬픈 운명을 담당하셨습니다. 또한 공생애 동안에 선한 목자로서 냄새나는 각종 죄인들을 품고 섬기셨습니다. 마침내는 십자가에서 고귀한 몸을 희생하심으로 우리의 모든 죄와 허물을 담당해주셨습니다. 이 예수님이야말로 가장 위대한 분이십니다. 신앙생활이란 이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구원 받고 예수님을 따르고 배우는 삶이라 할 수 있습니다. 특히 목자 생활은 죄로 죽어가는 한 사람을 하나님께 헌신하는 사람으로 키우는 삶입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고난이 따릅니다. 그렇다고 누가 알아주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영적인 아들 딸들을 낳고 키우는 목자 생활이야 말로 가장 위대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둘째로, 예수님은 우리를 다스리는 왕이 되십니다. 만일 예수님께서 우리를 죄 가운데서 구원하시기만 하고 다스려 주시지 않는다면 우리는 구원의 은혜를 감당치 못하고 다시 죄 가운데 빠질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32b절을 보십시오. “그 조상 다윗의 왕위를 그에게 주시리니” 이 말씀은 예수님이 다윗의 뿌리에서 나신 왕이심을 말해 줍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왕으로서 하나님의 뜻을 좇아 공평과 정의로 세상을 다스리고 사랑과 평화로 백성들을 다스리는 선한 목자였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그를 심히 기뻐하시고 그의 씨에서 메시야가 나게 하실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이 약속대로 예수님을 다윗의 위를 물려받은 왕에 되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정치적인 왕이 아니라 영적인 왕이십니다. 예수님은 진리의 왕이시오, 사랑과 평강의 왕이십니다. 한 나라의 행불행은 누가 다스리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율법적이고 감정적인 사울왕이 이스라엘을 다스릴 때에는 백성들은 공포에 떨며 많은 괴로움을 겪었습니다. 그러나 다윗 왕이 나타나 공의와 사랑과 평화로 나라를 다스리자 백성들은 기뻐하며 행복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가정의 행불행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버지가 술을 먹고 처자식을 때리게 되면 그 집안은 지옥이 되어 버립니다. 그러나 부모가 자녀를 이해해 주고 사랑과 진리로 다스릴 때 자녀들은 행복을 누리며 자라게 됩니다. 우리의 마음도 사탄이 다스리느냐 예수님이 다스리느냐에 따라 행불행이 좌우됩니다. 우리의 마음에 정욕과 시기심과 미움과 불평과 인간적인 생각이 가득하다면 사탄이 우리의 마음을 지배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이때 우리의 마음은 지옥이 됩니다. 그러나 우리의 마음에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모시고 예수님이 내 마음과 생각을 다스리도록 한다면 우리의 내면은 참 기쁨과 자유와 놀라운 평강으로 가득하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겸손과 온유로 섬기시고 나의 허물과 실수, 연약함과 죄 짐을 다 담당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셋째로, 그 나라는 무궁합니다. 33절을 보십시오. “영원히 야곱의 집을 왕으로 다스리실 것이며 그 나라가 무궁하리라.” 세상 나라는 흥망성쇠를 거듭합니다. 이런 세상 나라에 소망을 두고 살면 반드시 허탈과 절망에 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나라는 망하거나 쇠하지 않습니다. 영원히 야곱의 집을 다스리십니다. 야곱의 집은 혈통으로는 이스라엘 족속을 가리키지만 영적으로는 하나님을 믿고 섬기는 모든 교회를 말합니다. 초대교회 때부터 여러 박해를 통해 교회가 끝날 것 같은 위기가 여러 번 있었지만 지금까지 계속해서 확장되어 왔습니다. 기독교에 대한 탄압이 극심한 중국에서조차 기독교 인구는 꾸준히 늘어 약 1억명 가량 된다고 합니다. 우리는 대한민국의 국민이지만 더 근본적으로는 하나님 나라의 백성입니다.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습니다.(빌3:20) 하나님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하는 아들의 세계로 옮기셨습니다.(골1:13) 그러므로 우리는 눈에 보이는 세상 나라에 연연하지 말고 하나님 나라에 소망을 두고, 1대1 말씀공부를 통해 하나님 나라를 확장해 나가는 데에 전심을 다해야 하겠습니다. 특별히 오늘날 캠퍼스 지성인들은 야곱 족속과 같아서 자기가 생명의 주인이 되어 자기만을 위해 살고자 합니다. 치열한 입시 경쟁을 뚫고 대학에 들어왔지만 암울해 보이는 장래를 생각할 때 깊은 절망으로 내몰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더 근본적인 문제인 죄와 죽음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아무리 조건이 개선된다 해도 절망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자들의 왕이 되기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하나님은 오늘 날 야곱과 같은 캠퍼스 지성인들을 이스라엘로 변화시켜서 영원히 다스리기를 원하십니다.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영접할 때 예수님이 내 안에 임하셔서 공평과 정의로 다스려주심으로 사랑과 평화로 가득한 천국이 임하게 됩니다. 예수님만이 우리의 참된 소망이 되십니다. 사탄의 종 된 삶을 살다가 멸망에 이를 수밖에 없는 우리를 구원하시고 영원한 왕으로 다스려주시는 예수님께 감사와 찬송과 영광을 돌려드립니다.

II.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34-56)
  천사로부터 성탄의 메시지를 들은 마리아의 반응이 어떠했습니까? “마리아가 천사에게 말하되 나는 남자를 알지 못하니 어찌 이 일이 있으리이까?”(34) 처녀가 어떻게 아들을 낳을 수 있단 말입니까? 35절을 보십시오. “천사가 대답하여 이르되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러므로 나실 바 거룩한 이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어지리라.” 이 말씀은 동정녀 마리아를 통한 예수님의 탄생은 성령의 역사요, 하나님의 능력의 역사임을 가르쳐줍니다. 이는 인간의 이성을 초월한 기적으로서 신비에 속합니다. 예수님은 성령으로 잉태되었기 때문에 그 본체가 하나님이 되십니다. 또한 마리아의 몸을 통해 육신의 몸을 입고 오셨기 때문에 완전한 인간이 되십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유일한 중보자가 되십니다. 천사는 본래 임신하지 못한다던 엘리사벳도 하나님의 능력으로 늙어서 아들을 배었음을 증거하였습니다. 그리고 결론적으로 말했습니다. “대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하지 못하심이 없느니라(37).” 마리아가 하나님께서 이루시는 역사에 쓰임 받기 위해서는 세상 지식이나 인간적인 생각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을 때 불가능을 가능케 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이때 마리아는 어떻게 했습니까? 요셉과 상의한 후에 결정하겠으니 하루만 여유를 달라고 했습니까? 아닙니다. 그는 즉시 하나님의 말씀에 의지하여 결단했습니다. 38절을 보십시오. “마리아가 이르되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하매 천사가 떠나가니라.” 마리아는 자신의 전 인생을 하나님께 맡겼습니다. 그에게는 개인 신앙이 있었습니다. 그가 이렇게 순종하는 데에는 꿈을 깨는 아픔이 있었습니다. 마리아의 꿈은 왕비가 되는 것이 아니라 요셉의 아내가 되어 아들 딸 낳고 아기자기하게 사는 것이었습니다. 큰 꿈보다도 이런 소박한 꿈을 깨기가 훨씬 더 어렵다고 합니다. 대부분 사람들이 세상에서 엄청난 부귀영화를 바라면서 살지는 않습니다. 요즈음에는 ‘소확행(小確幸)’이라 하여 각종 스트레스와 바쁘고 각박한 일상 생활 속에서 ‘작지만 확실하게 느낄 수 있는 행복’을 추구하는 삶이 트랜드로 조명 받고 있습니다. 짬 시간을 내어 아메리카노 커피 한 잔의 여유를 즐기면서 보통 사람의 삶을 살아가고자 합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다만 주님만을 의지하고 믿음으로 결단했습니다. 마리아는 요셉의 오해와 사람들의 비난, 돌에 맞아 죽을지도 모르는 위험도 기꺼이 감수하고자 했습니다. 이때 그는 인류 역사에 길이 빛나는 성모 마리아로 귀히 쓰임 받을 수 있었습니다. 마리아가 이렇게 순종할 수 있었던 비결이 무엇입니까? 마리아에게는 요셉의 아내요, 부모의 딸이기 이전에 주의 여종이라는 분명한 자세가 있었습니다. 종이 주인의 방향에 절대 순종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녀는 주님의 여종으로서 주님께서 원하시면 언제든지 기꺼이 자신을 드릴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준비된 자를 귀하게 사용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순종하는 믿음의 종 한 사람을 통해 구속역사를 이루어 나가십니다. 우리 모두 주님의 여종이요, 남종으로서의 정체성을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함으로 하나님께서 이루시는 놀라운 구원역사에 귀하게 쓰임 받기를 기도합니다.
  39절을 보십시오. “이 때에 마리아가 일어나 빨리 산골로 가서 유대 한 동네에 이르러” 마리아는 믿음으로 순종했지만 마음에 위로와 카운슬링이 필요했습니다. 이때 마리아는 엘리사벳이 살고 있는 산골의 한 동네로 달려갔습니다. 이는 약 150km나 되는 험난하고 먼 거리로서 자매님 혼자 가기 위험했습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믿음의 확신을 얻기 위해 신앙 선배인 엘리사벳을 찾아갔습니다. 천사가 일러준 대로 하나님의 역사를 확인하고자 하는 마음도 있었을 것입니다. 도움이 필요할 때 누구를 찾아가는가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문제입니다. 요즘 사람들은 내면에 고민이 있으면 다음이나 네이버 지식인을 주로 검색합니다. 거기서 자기가 듣고 싶은 말을 찾습니다. 그러나 대부분 인간적인 말만 있을 뿐 영적으로 해로운 경우가 많습니다. 영적인 사람들은 신앙선배를 찾아가 겸손하게 도움을 청합니다. 이때 영적으로 힘을 얻고 마음의 의심과 불신을 극복하고 믿음의 사람으로 성장하게 됩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목자님께 찾아가면 결론이 뻔하다는 생각 때문에 찾아가기를 주저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결론이 뻔할지라도 도움이 필요할 때 목자님을 찾아가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는 영적 생명에 관계되는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41-45절까지는 엘리사벳의 카운슬링입니다. 엘리사벳이 마리아의 문안함을 들을 때 아이가 복중에서 뛰놀았습니다. 이때 엘리사벳은 성령이 충만하여 소리쳤습니다. “여자 중에 네가 복이 있으며 네 태중의 아이도 복이 있도다. 내 주의 어머니가 내게 나아오니 이 어찌 된 일인가(42,43).” 엘리사벳은  마리아를 조카로 대하지 않고 ‘내 주의 어머니’라고 칭함으로 그녀의 영적인 정체성에 대한 확신을 심어주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신앙적 카운슬링의 중요성에 대해 배울 수 있습니다. 엘리사벳이 만약 “네가 은혜를 받기는 했지만 처녀로서 참 안타까운 일이구나. 요셉과 의논하고 결정하지 않고 너무 섣불리 결단한 것 아니니?” 이런 인간적인 소리를 했다면 마리아는 힘들어졌을 것입니다. 그러나 엘리사벳은 온전히 하나님 편에서 바라보고 마리아가 얼마나 복 받은 자인가를 확신시켜 주었습니다. 엘리사벳은 하나님이 마리아를 위해 준비해 놓으신 좋은 멘토였습니다. 멘토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잘 가르쳐 주고 성령의 충만함을 받도록 축복하고 격려하는 것입니다. 1대1 성경선생의 중요한 역할이 양들의 영적인 멘토가 되는 것입니다. 신앙적인 카운슬링을 하기 위해서는 내가 먼저 성령 충만함을 받아야 합니다.
  엘리사벳의 카운슬링을 들은 마리아는 성령 충만하여져서 하나님을 찬양하며 기뻐하였습니다. “마리아가 이르되 내 영혼이 주를 찬양하며 내 마음이 하나님 내 구주를 기뻐하였음은 그의 여종의 비천함을 돌보셨음이라. 보라 이제 후로는 만세에 나를 복이 있다 일컬으리로다.(46-48)” 마리아는 주님께서 비천한 자신을 돌아보시고 예수님을 잉태할 수 있는 특권을 주신 것을 하나님의 은혜요 축복으로 깊이 영접하고 감사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은 마음의 생각이 교만한 자를 흩으시고, 비천한 자는 높이시지만 권세 있는 자는 내리 치시고, 주리는 자는 배불리시지만 부자는 빈손으로 보내시는 공의로운 분이심을 발견하였습니다. 더 나아가 하나님은 조상들에게 한 약속을 지키시는 신실하신 분이심을 깨닫고 찬양했습니다. 마리아는 석 달쯤 엘리사벳과 함께 있다가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오늘 말씀을 준비하면서 제가 하나님으로부터 얼마나 큰 은혜를 받은 자인가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세상 잔재미를 즐기며 자기만을 위해 살던 자를 학창시절 찾아오셔서 구원하시고 지금까지 나와 함께 하시며 하나님의 역사에 쓰임 받는 삶을 살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나이가 들수록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은혜는 희미해지고 힘든 것만 생각났습니다. 캠퍼스에 나아가 피싱하는 것이 힘들어지면서 목자의 삶이 얼마나 귀한지 잊어버리고 지낼 때가 많았습니다. 캠퍼스에 올라갔다가 아무런 소득도 얻지 못한 채 행복기숙사 카페에서 커피 한 잔을 마시고 내려올 때는 나의 삶이 무력해 보였습니다. 하지만 죄로 고통하며 죽어가는 한 영혼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함으로 그 안에 예수님의 생명력이 자라나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변화되고 예수님의 제자로 자라나도록 키우는 삶이야말로 진정으로 위대한 삶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삶은 끊임없이 자기 부인하고 낮아져 섬기는 삶으로서 자기의 힘과 의지로는 감당할 수 없습니다. 날마다 예수님의 종으로서의 자신을 발견하고 예수님을 왕으로 모시고 예수님의 다스림을 받을 때 예수님이 주시는 행복과 기쁨을 누리며, 은혜에 기초하여 한 영혼을 낳고 키우는 목자의 삶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제가 시니어 목자요, 한 가정의 가장이요, 봄소아청소년과 의원의 원장이기 이전에 주님의 남종으로서의 정체성을 분명히 하고 날마다 “주의 남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고백함으로 주님의 뜻에 온전히 순종하는 삶 살기를 기도합니다. 영원한 왕으로 오신 예수님을 심령에 모시고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소망함으로 확신 있게 예수님을 증거하며 생명구원역사에 충성하는 삶을 살기를 기도합니다.

결론적으로, 마리아의 몸을 통해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은 우리를 죄와 죽음의 권세에서 구원할 구원자이십니다. 사랑과 평화, 공평과 정의로 우리를 다스리시는 영원한 왕이 되십니다. 이번 성탄에 이 예수님이 우리의 심령에 새롭게 임하시기를 기도합니다. 또한 비천한 삶을 살던 우리를 돌보사 구원하시고 하나님의 자녀들을 낳고 키우는 구원 역사에 쓰임 받게 하신 은혜를 깊이 깨닫고 우리 심령에서부터 감사와 찬송이 차고 넘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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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7 창세기 [2019년 창세기 제8강] 바벨탑 관리자 2019-04-28 1182
586 창세기 [2019년 창세기 제7강] 노아와 맺은 언약 관리자 2019-04-21 771
585 창세기 [2019년 창세기 제6강] 홍수 심판과 구원의 방주 관리자 2019-04-14 844
584 창세기 [2019년 창세기 제5강] 가인에게 표를 주신 하나님 관리자 2019-04-07 923
583 창세기 [2019년 창세기 제4강] 여자의 후손을 약속하신 하나님 관리자 2019-03-31 783
582 창세기 [2019년 창세기 제3강] 에덴동산을 창설하신 하나님 관리자 2019-03-24 1195
581 창세기 [2019년 창세기 제2강]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사람 관리자 2019-03-17 882
580 창세기 [2019년 창세기 제1강]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 관리자 2019-03-10 948
579 요한일서 [2019년 요한일서 제5강] 세상을 이기는 믿음 관리자 2019-03-03 1131
578 요한일서 [2019년 요한일서 제4강]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관리자 2019-02-24 761
577 요한일서 [2019년 요한일서 제3강] 행함과 진실함으로 사랑하자 관리자 2019-02-17 1436
576 요한일서 [2019년 요한일서 제2강] 그의 형제를 사랑하는 자 관리자 2019-02-10 715
575 요한일서 [2019년 요한일서 제1강] 우리의 사귐 서삼문 2019-02-03 844
574 열왕기상 [2019년 열왕기상 제10강] 내가 여호와인줄 알리라 관리자 2019-01-27 906
573 열왕기상 [2019년 열왕기상 제9강] 하나님의 세미한 소리 관리자 2019-01-20 9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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