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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nday Worship Message
주일예배메시지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8-12-16 (일) 12:35
분 류 누가복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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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성탄말씀 제2강] 구원의 뿔 돋는 해되신 예수님

  2018년 성탄말씀 제2강                                                                오정훈

구원의 뿔 돋는 해되신 예수님

 말씀/누가복음 1:57-80
 요절/누가복음 1:69 “우리를 위하여 구원의 뿔을 그 종 다윗의 집에 일으키셨으니”

 오늘 말씀은 사가랴에게 임한 성탄의 기쁜 소식입니다. 여기에는 구원의 뿔 돋는 해 되신 예수님에 대한 감사와 찬송이 넘쳐나고 있습니다. 이 시간 말씀을 통해 구원의 뿔 돋는 해 되신 예수님으로 말미암는 은혜와 기쁨이 충만케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1. 요한이라 할 것이라(57-66)
  57절을 보십시오. 엘리사벳이 해산할 기한이 차서 아들을 낳았습니다. 이웃과 친족들이 주께서 그를 크게 긍휼히 여기신 것으로 인해 다 함께 즐거워하였습니다. 우리도 이번 추수감사예배 때 박이삭 목자님의 감사시를 들으며 다 기뻐하고 즐거워하였습니다. 기저귀 갈고 분유 먹이느라 잠을 못자서 괴롭다고 하였지만 주께서 이 가정을 긍휼히 여기사 귀한 아들을 주셨기에 다 같이 기뻐하고 즐거워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믿음의 사람들의 변함없는 믿음과 간절한 기도를 결코 외면치 않으십니다. 순간순간 손해보고 패하는 것 같지만 끝까지 포기치 않고 믿음을 지키면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반드시 상을 주시므로 승리하게 하십니다. 59절입니다. 팔 일이 되어 할례를 행하게 되었습니다. 유대인에게 있어서 할례식은 축제 그 자체입니다. 왜냐하면 또 한 사람의 유대인이 생겨났기 때문입니다. 할례를 행하는 자가 표피를 베면 아이는 그 고통으로 자지러지지만 포도주를 먹이면 그 맛으로 인해 금새 울음을 그친다고 합니다. 그리고 바로 그 자리에서 아버지가 하나님이 주시는 영감을 따라 이름을 짓는다고 합니다. 이런 관례를 따라 사가랴가 이름을 지어주어야 했지만 벙어리 훈련을 받고 있는 터라 그럴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친지들은 부친의 이름을 따라 사가랴로 하자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어머니가 아니라, 'No' 했습니다. 영어에 보면 목소리를 높였다고 되어 있습니다. “안돼요. 걔는 요한이라고 불러야 한단 말이예요.” 요한은 ‘하나님은 은혜로우시다’는 뜻입니다. 엘리자베스 사모님이 산후조리한지 팔일 밖에 안되서 별로 기운이 없을 텐데 왜 이렇게 목소리를 높이며 친척들과 싸우는 것일까요? 여기에는 가문의 전통을 따를 것인가 아니면 하나님의 뜻을 따를 것인가 하는 씨름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보통 사람들은 가문을 빛내고 영광스러운 삶을 살도록 소망 가운데 이름을 지어줍니다. <그래서 사육신 중의 한명인 성삼문처럼 죽기까지 지조를 지키는 위대한 인물이 되라고 서삼문이라 이름지어줍니다.> 아마 친척들은 늘그막에 얻은 아들 사가랴 가문을 빛내는 아들이 되도록 사가랴2세라 짓고자 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엘리사벳은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로 얻은 아들임을 알았기에 천사가 일러준 대로 요한이라 짓고자 목소리를 높인 것이었습니다. 친척들은 가문에 그런 이름으로 이름 한 이가 없다며 최종결정을 가진 사가랴에게 무엇이라 이름 할 것인가 물어보았습니다. 63절을 보십시오. 사가랴는 서판을 달라하여 그 이름을 요한이라 썼습니다. 사가랴쥬니어요한이라 두루뭉술하게 쓰지 않고 그 이름은 요한이라 분명하게 썼습니다. 사실 사가랴 엘리사벳 부부도 뒤늦게 얻은 아들을 자신들 노후를 돌봐줄 아들로 키우고 싶은 마음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집에서는 요한이라고 부르지만 호적에는 사가랴라고 올릴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들 부부는 화장실 들어갈 때하고 나올 때 마음이 다른 그런 사람들과는 달랐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주신 은혜를 알고 절대적으로 감당하고자 하는 하나님 앞에 의인들이었습니다. 사가랴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요한이라 하자 막혔던 그의 입이 열리고 혀가 풀려 하나님을 찬송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입이 열리자마자 찬송을 한 것을 보면 사가랴가 10개월 동안 벙어리 훈련을 진실되게 받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훈련을 어떻게 받느냐에 따라 믿음의 세계로 나갈 수도 있고 쓴 뿌리가 생겨 원망과 불평의 종이 될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은 때로 불신과 교만을 깨뜨리고 믿음의 사람 겸손의 사람이 되게 하시려고 입을 다물고 때를 기다리도록 철저히 낮추십니다. 그러므로 이 하나님 앞에 겸비한 마음으로 훈련을 받아야 합니다. 사람들은 이 모든 것을 보고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이요 이 아이에게 하나님의 크신 뜻이 있는 있음을 깨닫고 두려워하게 되었습니다. 사가랴 부부의 절대적인 믿음이 주위 사람들에게 큰 영향력을 끼친 것입니다. 우리도 사가랴 부부와 같이 은혜를 주신 하나님의 선한 뜻을 깨닫고, 받은 은혜를 잘 감당하는 성숙한 종들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2. 사가랴의 찬송시(67-80)
사가랴가 성령 충만함을 받아 예언하여 말했습니다. “찬송하리로다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여” 이 말씀은 ‘우리 모두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찬송합시다’라는 뜻입니다. 여기에는 인생들을 구원하기 위해 그 아들을 보내신 하나님에 대한 감사와 찬양이 넘쳐나고 있습니다. 우리도 성탄을 연례행사처럼 무덤덤하게 맞이할 것이 아니라 나를 구원하기 위해 오신 예수님을 기뻐하고 찬양하는 감동이 있는 성탄으로 맞이해야 하겠습니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어떤 은혜를 주셨기에 사가랴가 이렇게 감동하고 찬양하는 것입니까?
첫째, 그 백성을 돌보사: 돌보셨다는 것은 출애굽기에 나오는 것처럼 고통받고 있던 그 백성을 돌아보시기 위해 찾아오신 것을 말씀합니다(has come). 당시 이스라엘은 말라기 선지자 이후 영적 암흑기 가운데 있었습니다. 바벨론 포로 기간 중에도 선지자를 통해서 말씀을 주시므로 희망을 심으셨는데 이 시기에는 선지자도 말씀도 없었습니다. 오히려 페르시아 헬라 로마의 압제를 받으며 역사상 가장 어둡고 절망적인 상황에 처해 있었습니다. 당대 의인이었던 사가랴조차도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는가 우리를 돌아보고 계신가 의문을 가질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아들의 태어남을 통해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버리지 아니하시고 돌아보셨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것도 영광의 하나님께서 그들을 돌아보시기 위해 직접 심방 오시니 감사와 찬송을 드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가끔 우리도 하나님께서 현재 나의 삶에 관심 가지고 돌아보고 계신지 의문이 들 때가 있습니다. 내가 이렇게 힘들고 괴로운데 하나님은 나의 이 고통을 알고나 계신가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졸지도 아니하시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십니다. 나의 괴로움과 고통을 아시고 돌아보고 계십니다. 우리의 어려움과 괴로움을 돌아보시고 위로하시는 하나님은 은혜의 하나님이십니다.
둘째로, 속량하시며: 이 영광의 하나님이 우리를 찾아오시는 것만으로도 감사한데 우리 죄를 속량하시기 위해 이 땅에 와주셨으니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속량한다(redeem)는 것은 빚을 대신 갚아준다는 뜻입니다. 빚을 져본 사람은 빚을 갚는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잘 알고 있습니다. 빚을 갚지 못하면 빚쟁이들에게 말할 수 없는 괴로움을 당하게 됩니다. 그래서 그 빚을 다 갚았을 때의 해방감과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 죄의 값은 사망으로 우리의 노력으로는 도저히 갚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어린양을 해마다 잡아서 피를 흘려도 다 갚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인생들을 위해 자기 몸을 내어 주심으로 우리 죄를 완전하고도 영원히 속량하여 주셨습니다. 죄로 인해 영 죽을 인생들을 위해 자신을 대속제물로 내어주신 예수님을 생각할 때 감사와 찬송을 돌려드리게 됩니다. 그러면 주께서 우리 인생들을 속량하시기 위해서 하신 일이 무엇입니까?
세째로, 구원의 뿔을 그 종 다윗의 집에 일으키셨으니: 69절을 다 같이 읽어보시겠습니다. “우리를 위하여 구원의 뿔을 그 종 다윗의 집에 일으키셨으니” 구원의 뿔은 구약에 예언된  메시야를 가리킵니다. 예수님이 연약한 아기의 모습으로 오셨음에도 구원의 뿔로 표현한 것은  원수의 손에서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는 강력한 힘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71절입니다. “우리 원수에게서와 우리를 미워하는 모든 자의 손에서 구원하시는 일이라.” 우리를 미워하는 우리의 최고의 원수는 사단입니다. 사단은 우리가 믿음으로 사는 꼴을 보지 못합니다. 그래서 어떡하든지 신자를 넘어뜨리고자 우는 사자처럼 두루 다닙니다. 이 사단은 뿔이 열 개요 머리가 일곱입니다.(계12:3) 사람은 머리가 한 개밖에 없어 아무리 머리를 굴려 봐도 사단을 이길 수 없습니다. 교묘한 유혹을 이길 수 없고 그 강력한 세력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습니다. 사단은 일곱 개의 머리에서 나오는 사악함과 간교함으로 우리의 약점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간파하고 열 개의 뿔로 사정없이 찔러버립니다. 사단의 뿔에 찔리면 그 어떤 용사라도 치명상을 입고 비틀거리게 되고 맙니다. 사탄은 오늘날 남녀노소 불문하고 정욕의 뿔로 사람들을 마구 찌르고 있습니다. 인터넷 스마트폰을 열기만 하면 음란물이 마구 쏟아져 나와서 누구든지 마음만 먹으면 쉽게 정욕을 즐길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데 문제는 이 정욕의 뿔에 한번 찔리고 나면 다윗과 같은 용사라도 무기력해져 쓸모없게 된다는 것입니다. 벗어나려고 아무리 발버둥쳐도 스스로의 힘으로는 도저히 벗어날 수 없게 됩니다. 사단은 정욕의 뿔만이 아니라 의심의 뿔로 찔러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하고 불신하게 만듭니다. 교만과 반발심의 뿔로 찔러 하나님을 대적하고 불순종하게 만듭니다. 사탄은 또 욕심의 뿔로 찔러 하나님보다 물질을 더 사랑하게 만듭니다. 사단은 특히 요즘 힘든 현실을 기초로 사람들에게 절망과 불안의 뿔로 마구 찌르고 있습니다. 취직도 어렵고 자녀양육, 내 집 마련이 너무 어렵기 때문에 결혼도 포기하고 아이 낳는 것도 포기하고 살아갑니다. 알 수 없는 미래로 염려와 불안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요즘 ‘자낙스’라는 항불안제가 전 세대에 걸쳐서 감기약처럼 날개 돋친 듯이 팔리고 있다고 합니다. 각종 불안 장애에 시달리고 이를 견디지 못해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사단은 자비란 것이 아예 없기 때문에 우리의 사정을 조금도 봐주지 않습니다. 힘들겠구나, 오늘은 좀 봐줄게 그런게 없습니다. 시쳇말로 한 놈만 팬다고 우리의 약점만 집요하게 파고들어 찌른 데를 또 찌르고 찔러서 완전히 넘어뜨리고자 합니다. 열 번 찔려 안넘어지는 사람이 없습니다.    
  도대체 누가 이 사탄의 뿔로부터, 이 사단의 집요한 공격으로부터 우리를 구원해낼 수 있을까요? 대통령이 할 수 있을까요? 아니면 대기업 CEO가 할 수 있을까요? 아닙니다. 오직 구원의 뿔 되신 예수님만이 우리를 구원하실 수 있습니다. 성육신 하신 예수님은 사단의 어떤 뿔도 무력화시키는 가장 강력하고도 힘 있는 구원의 뿔이 되십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사탄의 머리를 박살내시고 완전하고도 영원한 승리를 거두셨습니다. 이 구원의 뿔 예수님을 영접하면 나를 괴롭히는 죄의 세력으로부터 능히 벗어날 수 있습니다. 정욕의 유혹으로부터 벗어나 거룩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우리를 못 쓰게 하는 술과 게임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구원의 뿔 예수님은 죄의 종된 우리를 구원해 주시는 우리 인생들의 유일한 구원자시오 희망이 되십니다. 사단의 뿔로부터 우리를 구원하여 주시는 구원의 뿔 예수님을 찬양합니다. 말세가 될수록 사탄은 더 교묘한 방법으로 사람을 찌르고, 파멸에 이르게 할 것입니다. 그럴수록 우리는 구원의 뿔되신 예수님을 굳게 붙들어야 하겠습니다. 그러면 주께서 우리를 위해 친히 싸워주시고, 승리하게 하실 것을 믿습니다.
  72,73절은 하나님께서 인생들을 구원하시는 동기가 무엇인지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 조상을 긍휼히 여기시며 그 거룩한 언약을 기억하셨으니” 하나님께서 구원의 뿔 예수님을 보내신 것은 우리 조상을 긍휼히 여기셨기 때문입니다. 곧 우리 조상 아브라함에게 하신 맹세를 지키시기 위함이십니다. 하나님의 구원역사는 우리가 잘 나서 또는 우리의 간절함 때문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요 오직 인간을 불쌍히 여기시는 하나님의 긍휼로 인함입니다. 74,75절은 우리를 구원하시는 목적이 무엇인지 말씀해 줍니다. 75절을 다 같이 읽어보시겠습니다. “종신토록 주의 앞에서 성결과 의로 두려움이 없이 섬기게 하리라 하셨도다.” 우리를 구원하시는 목적은 잘 먹고 잘 살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종신토록 주님을 섬기게 하기 위함입니다. 학교 다니는 동안만, 아니면 환갑 때까지만 주님을 섬기는 것이 아닙니다. 평생토록 하나님을 섬기는 것입니다. 과거에는 우리 마음이 거짓과 음란으로 더러워 하나님을 감히 섬길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예수 그리스도로 죄사함을 받고 성결과 의로 주님을 섬길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주님을 섬기는 것을 얽매이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는 율법적인 신앙생활입니다. 주님을 섬기는 것은 물고기가 물을 만난 것처럼 자유로운 것입니다. 우리가 평생 주님을 섬기고 사랑하고 경외할 수 있다는 것은 큰 축복입니다. 왜냐하면 주님을 섬기는 삶에 참 행복과 자유와 기쁨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만약 우리가 구원 받고 나서 주님을 섬기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요? 얽매이는 것이 하나도 없어 자유로울 것 같지만 우리의 비어 있는 마음에 귀신이 들어옵니다. 나갔던 귀신이 더 악한 친구 일곱을 데리고 들어오므로 전보다 우리 형편이 더 비참하게 될 것입니다.(마12:43-45) 주님을 섬기지 않으면 그곳이 바로 지옥입니다. 그러므로 감사와 기쁨으로 주님을 성결과 의로 종신토록 섬기는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사가랴는 예수님에 대해 깊이 묵상하다가 이제 자기 아이에 대해 예언하기 시작하였습니다. 76절입니다. “이 아이여, 네가 지극히 높이신 이의 선지자라 일컬음을 받고 주 앞에 앞서 가서 그 길을 준비하여” 요한은 지극히 높으신 이의 선지자라 일컬음 받고 주 앞에 앞서 가서 주의 길을 예비하게 됩니다. 높아진 마음은 낮추고 패이고 뒤틀린 마음은 돋우고 펴서 사람들 마음에 예수님이 임하실 수 있도록 예비합니다. 이 사명은 매우 힘든 일이기에 엘리야의 심정과 믿음을 그에게 주사 이를 감당하게 하십니다. 이를 통해 그 백성에게 죄 사함으로 말미암는 구원을 알게 하십니다. 하나님이 인생들에게 주시는 구원은 로마로부터의 해방, 가난으로부터의 구원이 아니라 죄로부터의 구원입니다. 이는 본질적인 구원이요 영원한 생명과 참 자유를 주는 완전한 구원입니다. 78b,79절을 다 같이 읽어보시겠습니다. “이로써 돋는 해가 위로부터 우리에게 임하여 어둠과 죽음의 그늘에 앉은 자에게 비치고 우리 발을 평강의 길로 인도하시리로다 하니라.” 예수님이 오시기 전 온 세상이 캄캄하여 참 빛이 없었습니다. 사방을 둘러봐도 흑암과 사망의 그늘뿐이었습니다. 이런 어둡고 절망적인 세상에 예수님이 돋는 해로 임하시므로 세상에 빛이 비추이게 되었습니다. 해가 뜨기 전 세상은 가장 어둡습니다. 그러나 해가 떠오르면 칠흑 같은 어둠은 사라지고 찬란한 빛으로 가득 차게 됩니다.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을 만나기 전 우리 내면은 칠흑같이 어둡고 사망권세로 가득 합니다. 그러나 돋는 해 되신 예수님이 임하시면 모든 어두움과 죽음의 세력이 물러나고 생명의 빛으로 충만하게 됩니다. 성령께서 함께 하시고 때마다 말씀을 주시므로 새로운 삶을 살 에너지가 넘쳐나게 됩니다. 그래서 시커멓던 얼굴이 해처럼 밝아지고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처럼 힘차게 뛰어다니게 됩니다. 한마디로 B.C에서 A.D로 바뀌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가운데 천수원 목자님 제가 집으로 찾아가면 늘 불 꺼진 어두운 방에 죽은 자처럼 누워 있었습니다. 좋아하는 노래도 솔리떼흐(soiltere) '고독‘이었습니다. 이렇게 어둠과 죽음의 그늘에 앉아 있던 천수원 목자님에게 돋는 해 되신 예수님이 임하시자 모든 어두움이 물러가고 생명의 빛으로 충만하게 되었습니다. 더 이상 어두운 방에 죽은 자처럼 누워 있지 않고 이제는 고독이 뭔지 잊어버릴 정도로 많은 양들을 섬기는 위대한 하나님의 종이 되었습니다. 돋는 해 예수님은 이처럼 우리에게 생명과 빛과 희망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사람들은 갈수록 불확실한 미래로 절망과 어두움 속에 거하고 있습니다. 이런 세상을 바라보면 희망이 없습니다. 그러나 돋는 해 되신 예수님 안에 참된 희망과 구원의 길이 있습니다. 새해를 맞아서 해돋이 구경하러 동해안으로 갈 것이 아니라 돋는 해 되신 예수님을 새롭게 영접하므로 희망찬 새해를 맞이하게 되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80절입니다. 요한은 이스라엘에게 나타나는 날까지 빈들에 있었습니다. 그는 기도와 말씀으로 하나님과 교제하며 점점 강하여졌습니다. 우리도 얼마 동안이라도 티비와 인터넷 스마트폰에서 떠나 빈들에서 기도와 말씀으로 주님과 교제함으로 힘을 덧입고 하나님을 섬기는 종들이 될 수 있길 기도합니다.  
 
저는 입시철이 되어 사가랴처럼 ‘찬송하리로다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여’ 찬송하고자 기도하고 좋은 결과를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별로 찬송할 일이 없게 되자 벙어리처럼 입을 꾹 다물게 되었습니다. 큰애도 그렇고 막내도 특성화고에 들어가지 못하게 되어 몹시 아쉽고 안타까웠습니다. 제가 깨어 있지 못해서 그렇게 된 것이 아닌가 자책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이 아이들이 어찌 될꼬’ 염려하게 되었습니다. 사단은 이런 저에게 ‘네가 평소 깨어있지 못해서 다 이렇게 된 것이야’하며 절망과 염려의 뿔로 찔러 댔습니다. 사단의 뿔에 찔리자 머리만 대면 코를 골고 자던 제가 밤에 잠이 며칠 잘 안 오게 되었습니다. 자기 자식하나 챙기지도 못하는 주제에 앞으로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불의한 마음이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심령이 어두워지자 힘이 나지 않고 믿음으로 살면 반드시 상을 주신다는 한 가지 확신도 흔들리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사단의 의심의 뿔에 찔려 무기력해버린 저에게 시편121편 말씀을 주셨습니다.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꼬. 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 이 말씀을 암송하며 이 하나님을 바라보았을 때 새 힘이 나고 어둡던 내면에 햇살이 비치고 희망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아이들의 장래도 이 하나님이 지키시고 인도하실 것이라는 믿음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이런 믿음과 확신이 생기자 다시 하나님을 찬양하며 섬길 힘이 났습니다. 성탄예배를 깨어서 섬기고 30년째 불러도 아직도 정확히 알지 못하는 할렐루야 합창을 힘 있게 감당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부족하지만 여전히 몇 몇 사람들을 돕고 세우는 역사에 사용하시는 하나님을 생각하니 감사드리게 되었습니다. 평생 절망과 어두움에 사로잡혀 무기력한 삶을 살다가 끝날 죄인을 찾아오사 생명의 빛을 주신 구원의 뿔, 돋는 해 되신 예수님께 감사와 찬송을 돌려드립니다. 이번 성탄이 이 예수님을 새롭게 만나고 힘써 경배하고 찬양하는 기쁘고 즐거운 성탄이 되게 하시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결론적으로 성탄이 기쁘고 즐거운 것은 캐롤이 흘러나오고 산타할아버지가 선물을 주기 때문이 아닙니다. 구원의 뿔 돋는 해 되신 예수님이 우리를 모든 죄와 어둠에서  건지시고 참 자유와 생명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이번 성탄이 이 예수님으로 인해 기쁨과 은혜가 충만한 성탄이 되길 기도합니다. 또 이 예수님을 힘입어 성결과 의로 두려움 없이 종신토록 주님을 섬기는 복된 인생 살 수 있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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