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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nday Worship Message
주일예배메시지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8-12-23 (일) 13:15
분 류 누가복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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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성탄말씀 제3강]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느니라

   2018년 성탄말씀 제3강                                                박 엘리야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느니라

말씀/ 누가복음 2:1–20
요절/ 누가복음 2:10,11 “천사가 이르되 무서워하지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Merry Christmas! “기쁜 마음으로 예수님을 경배합니다!” Feliz Natal! "그리스도의 탄생을 기쁨으로 기념합니다!” 우리는 매년 그리스도의 탄생을 기념하고 있고 올해도 어김없이 큰 기쁨의 좋은 소식으로 찾아왔습니다. 2000 여 년 전 아기 예수님이 태어나셨던 밤에 천사가 목자들에게 말했습니다. “오늘 다윗의 동네에 구주가 태어났어요! 이는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기쁜 소식이에요!” 여러분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어떤 소식이 가장 기뻤습니까? 대학에 입학했을 때? 첫 직장을 구했을 때? 결혼했을 때? 첫 아들을 얻었을 때? 집을 샀을 때? 자녀가 결혼했을 때? 첫 손자가 태어났을 때? 물론 이런 소식도 기쁜 소식입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말하는 세상에서 가장 큰 기쁜 소식은 구주가 이 세상에 탄생하신 소식입니다. 세상을 구원하고 다스릴 구세주가 이 땅에 오셨습니다! 이 사건이야 말로 세상에서 가장 기쁜 일이지 않겠습니까? 오늘 저희에게 들려주시는 성탄 메시지를 통해 성탄의 이 기쁜 소식에 귀 기울여 봅시다.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저 높고 높은 영광의 하늘 보좌를 떠나 베들레헴 한 여관 말구유에서 태어나신 아기 예수님을 묵상하며 우리의 삶들을 돌아봅시다. 말씀을 통해 성령님께서 우리의 마음을 감동케 하시고, 일생 첫 크리스마스의 감격을 간직하고 살아가게 도우시길 기도합니다.

1. 가이사 아구스도와 아기 예수님 (1-7)
1절을 봅시다. “그 때에 가이사 아구스도가 영을 내려 천하로 다 호적하라 하였으니.” ‘가이사 아구스도’는 로마 황제이고, 그의 본명은 ‘가이우스 옥타비아누스’ (Gaius Octavius)입니다. 그는 이집트의 여왕 클레오파트라 (Cleopatra VII, 재위 BC 51-30) 와 사랑에 빠진 마르쿠스 안토니우스 (Marcus Antonius, BC 83?-30)와 싸운 내전에서 승리하여 길고 긴 내전을 종식함으로써 원로원은 그에게 ‘장엄하고 숭고하며 최고로 존경받는 황제’라는 뜻을 가진 ‘아구스도’(Augustus) 라는 칭호를 수여했습니다. 그의 존엄한 칭호는 우리가 사용하는 달력에 남아있는 데, 8월(August)이 그것입니다. 그는 실제로 가장 위대한 왕, 아니 신과 같았습니다. 그의 정치적 슬로건은 ‘로마의 평화’(Pax Romana)였습니다. 그가 제국 전역에 호적 명령을 내렸습니다. 인구를 정확하게 파악하여 세금을 징수하고자 하였습니다. 로마의 평화 정책의 재원을 충당하려는 것이었습니다. 그의 명령 앞에서 그 누구도 예외일 수는 없습니다.(2,3) 그들 중에 누가 있습니까? 다윗의 후손 요셉이 있었습니다. 그는 나사렛에서 목수로 살았습니다. 그는 호적하기 위해서 하던 일을 잠간 멈추고 베들레헴으로 가야 했습니다. 그때 약혼녀 마리아와 함께 가는데, 그녀는 이미 아이를 가져 만삭이 되었습니다.(4,5) 여인은 호적이 의무사항이 아니었기 때문에 굳이 가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그런데도 함께 간 것은 해산이 가까운 마리아를 홀로 둘 수 없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들이 다윗의 고향 베들레헴에 도착했을 때에 무슨 일이 일어났습니까? 6,7절을 읽겠습니다. “거기 있을 그 때에 해산할 날이 차서, 첫아들을 낳아 강보로 싸서 구유에 뉘었으니 이는 여관에 있을 곳이 없음이러라.” 마리아는 베들레헴에 도착하여 첫아들을 낳았습니다. 그런데 그 첫아들을 가축의 밥통인 구유에 뉘었습니다. 왜냐하면 여관에는 빈방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 첫아들은 인류의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이셨습니다. 그리스도는 유대 베들레헴에서 이렇게 태어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신 데는 무슨 뜻이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세상의 역사를 주관하고 계심을 보여줍니다. 요셉이 지금 겪는 일들, 즉 나사렛으로부터 베들레헴까지 오는 길과 빈방이 없어서 첫아들을 구유에 뉘어야 하는 일들은 겉으로만 보면 몹시 슬프고 운명적입니다. 무엇보다도 그가 다윗 왕의 후손이라는 점에서 하나님께 질문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 당신은 어디에 계십니까? 왜 요셉을 위해서 아무 일도 하지 않으시는지요?” 하나님은 백성의 고난 앞에서 침묵하시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세상역사와 우리의 삶의 현장에서 일하십니다. 어떻게 일하십니까? 하나님은 당신이 하셨던 약속을 친히 이루십니다. 하나님은 미가 선지자를 통해서 “구원자는 베들레헴에서 태어난다.”고 약속하셨습니다.(미5:2) 그런데 하나님은 그 약속을 로마 황제의 인구조사를 통해서 이루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황제를 쓰셔서 그 약속을 이루십니다. 요셉과 마리아가 나사렛에서 베들레헴으로 오는 과정을 겉으로만 보면 역사의 주관자가 강대국의 아구스도 황제인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역사의 진정한 주관자는 하나님이십니다. 가이사 아구스도는 하나님이 쓰시는 도구이며, 잠시 있다 사라지는 들러리에 불과합니다. 하나님은 세상 왕들, 정책들, 그리고 환경들을 쓰셔서 구속사역을 이루어 나가십니다. 이 사실을 통해서 우리가 깨닫는 메시지는 무엇입니까? 세상의 주관자이신 살아 계신 하나님을 믿고 삶 속에서 소망을 가지라는 겁니다. 세상을 바라보지 말고, 하나님을 바라보고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항상 문제 많은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정치, 경제, 사회적으로 산적한 많은 문제들이 있습니다. 특히 경제가 몹시 어렵습니다. 우리 가정에도 문제가 있습니다. 건강문제가 있고, 자녀문제, 물질문제들이 있습니다. 우리의 삶과 세상은 문제의 연속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세상에서는 참 안식과 만족을 누리기가 어렵습니다. 제가 살고 있는 브라질에도 많은 문제가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정치 지도자들의 부정 부패문제는 심각합니다. 크고 작은 문제들로 인해 사람들은 희망보다는 절망을 말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믿는 자들은 절망보다는 희망을 말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희망은 현실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그 말씀에서 오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을 주셨고, 그 말씀을 친히 이루십니다. 물론 당장 이런 하나님의 손길을 체감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예수님의 탄생 때에 그곳에서 이루어진 하나님의 손길을 깨달으면 오늘 우리 가운데서 이루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말씀을 이루시는 하나님, 역사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을 믿고 희망을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나라와 우리 믿는 이들을 새롭게 하셔서 제사장 나라로 쓰실 줄을 믿습니다. 현재 내 삶을 세상적인 가치관과 시각으로 보면, 나는 아무 것도 아닌 존재로 보입니다. 세상에 휩쓸려 살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급변하는 국제정세, 불안한 나라의 형편, 직장과 사업의 어려움, 시험 성적, 돈, 그리고 집안 형편이 나를 향방 없이 끌고 가는 것 같아 보입니다. 내 삶이 내 뜻대로 풀리지 않습니다. 그래서 속상하고 절망하고 방황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시각으로 보면 내 삶의 마디마디에는 하나님의 뜻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내 삶을 인도하고 당신의 뜻을 이루어 가심을 믿을 수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가 처한 환경 앞에서 슬퍼하거나 낙심해서는 안되겠습니다. 눈에 보이는 현실을 넘어, 그 배후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보아야 합니다. 역사의 주관자 되신 하나님께서 말씀을 통해서 나와 함께 하시고 나를 통해 일하시고자 하심을 깨닫고 큰 소망과 비전을 가지고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7절을 보면 태어나신 아기 예수님에 대한 세상의 관심이 어떠했는지 볼 수 있습니다. “첫아들을 낳아 강보로 싸서 구유에 뉘었으니 이는 여관에 있을 곳이 없음이러라.” ‘구유’는 ‘짐승의 밥그릇’, 즉 ‘여물통’입니다. 이스라엘은 말을 키우지 않기 때문에 ‘말구유’는 아니고, ‘나귀 구유’일 것입니다. ‘여관’은 ‘모텔’은 아니고, ‘민박’ 정도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당시에 고향으로 돌아오는 사람들에게 빈방을 제공해야 했고 돈을 받으면 고발을 당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어떤 이유에서든지 요셉과 마리아는 빈방을 구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아기를 말구유에 뉘었습니다. 대부분의 아기들은 태어나기 전부터 관심을 많이 받습니다. 하지만 아기 예수님은 그 누구에게도 관심을 받지 못한 채 태어났습니다. 그러나 역사가요 신학자인 누가는 이 예수님께 관심을 집중합니다. 이 예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2. 목자들과 아기 예수님 (8-20)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의 탄생 소식을 누구에게 먼저 전하십니까? 8절을 보십시오. “그 지역에 목자들이 밤에 밖에서 자기 양 떼를 지키더니” 천사가 목자에게 먼저 나타난 것은 탄생한 아기는 이들과 관련이 있음을 보여줍니다. 태어난 아기는 세상에서 잘 먹고 잘 사는 자들, 나름 뭔가 있다며 마음이 높은 자들을 위해서 오신 것이 아닙니다. 사람대접을 받지 못한 가난하고 겸손한 자들을 위해서 오셨습니다. 당시 목자는 사회적으로 비천한 신분의 사람으로 대우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밤에도 양떼들을 지키며 깨어있었습니다. 자기 직업에 소명감을 갖고 충성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들이었고, 메시야를 기다리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런 목자들에게 가장 먼저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이 임했습니다. 주님의 천사가 그들 곁에 서고, 주님의 영광이 두루 비추는 가운데 천사는 그들에게 성탄의 소식을 전합니다.(9) 다 같이 오늘 요절 말씀인 10절부터 11절까지를 한 목소리로 읽겠습니다. “천사가 이르되 ‘무서워하지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하더니” 당시 로마 시민들에게 가장 좋은 소식은 ‘전쟁에서 이겼다’는 것이었습니다. 전쟁에 이기면 그들의 생활은 더 부유해지고 편리해졌습니다. 반면에 전쟁에서 지면 포로가 되고 노예가 되기도 했습니다. 다음으로 좋은 소식은 가난과 질병으로부터 벗어나는 소식이었습니다. 황제는 백성들에게 좋은 소식을 더러 전해주었습니다. 하지만 오늘 천사가 전한 소식은 이런 소식과는 비교할 수 없는 큰 기쁨의 좋은 소식입니다. 11절을 다시 읽습니다. “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구주’는 ‘구원자’(saviour), ‘그리스도’는 ‘기름부음 받는 자’, 곧 ‘메시아’를 말합니다. ‘지금 태어난 아기는 평범한 아기가 아니라, 구원자, 즉 메시아요, 온 세상 만물의 주인인 구세주이십니다. 그런데 갓 태어나 눈도 제대로 못 뜨고 자기 머리조차 가눌 힘이 없는 아기가 어떻게 구세주가 되며 이 세상을 구원한다는 말입니까? 여관방 하나 잡지 못해 겨우 마구간에서 태어난 아기가 어떻게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을 준다는 것입니까? 위엄과 능력이 있는 로마 황제 ‘가이사 아구스도’라면 혹시 모를까 어떻게 가난한 목수의 아들, 연약한 어린 아기가 온 세상의 구주가 될 수 있습니까? 답은 의외로 간단명료합니다. 이 아기가 바로 전능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모든 생명의 근원이시며, 창조주이신 하나님께서 한 연약한 아기의 모습으로 세상에 태어나셨습니다. 영광스런 하늘 보좌를 버리시고 이 땅에 임하셨습니다, 세상에 기적이라고 부를 만한 것이 있다면 바로 이 성육신의 은혜가 기적 중에 기적인 것입니다. 예수님이 태어나시기 700여 년 전에 살았던 이사야 선지자는 이 전능하신 하나님이신 예수님의 탄생을 정확하게 예언했습니다.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사9:6) 구주 예수님을 만나 그의 제자가 되었던 사도 요한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1:14) 이렇게 육신의 몸을 입으신 하나님께서 무슨 일을 행하시려 이 땅에 오신 것입니까? 그는 이 세상의 근본문제, 인간의 본질적인 문제, 죄와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러 오셨습니다. 죄와 죽음은 오직 구원자이신 예수님만이 해결하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무 죄 없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대신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써 해결하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탄생은 모든 사람에게 미치는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왜 사람들은 이 소식을 놓치는 겁니까? 인간의 본질문제가 죄와 죽음이라는 사실을 잘 모르기 때문입니다. 또 죄와 죽음의 문제를 인간 스스로 해결할 수 없음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인간 본질문제에 대해 무관심하게 살아갑니다. 공부하고 자녀들을 양육하고, 먹고 사는 문제에 대해 많은 에너지를 쏟으며 살아갑니다. 오늘 날 우리는 인간의 본질문제가 취업인 것처럼 여겨지는 사대에 살고 있습니다. 죄와 죽음을 말하면 사치처럼 생각합니다. 그러나 인간의 본질 문제는 여전히 죄와 죽음에 관한 문제입니다. 이 죄와 죽음의 문제를 예수님을 통해 해결한 사람은 구원과 영생의 기쁨을 누리며 행복한 삶을 살 것이요, 해결하지 못한 사람은 죄와 죽음의 문제에 일생 시달리며 저주스러운 불행한 삶을 살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많은 죄인들을 만나시고 그들의 죄 문제를 해결해 주셨습니다. 삭개오, 마태, 간음 중에 잡힌 여인 등 성경에 기록된 많은 죄인들이 예수님을 통해 죄와 죽음의 문제를 해결 받았습니다. 그들은 구원 받고 변화되었습니다. 죄는 사람을 병들게 만듭니다. 사람을 못 쓰게 만듭니다. 죄는 사람들에게 죄의 열매를 맺게 하고 죽음의 고통을 당하게 합니다. 죄를 범한 인간은 거룩하신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을 받고 결코 꺼지지 않는 지옥 불에 던져져 영원한 고통을 받게 됩니다. 그러나 내 죄가 아무리 크고 진홍같이 붉을지라도 구원자 예수님을 만난 사람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나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나의 '죄 값'을 완벽하게 지불하셨기 때문입니다. 성탄의 초점은 내 죄와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오신 예수 그리스도께 있기 때문에, 예수님 탄생의 의미는 2천 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습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놓치지 않아야 합니다. 이 사실을 적극적으로 전파해야 합니다.
목자들이 아기 예수님을 찾을 수 있게 하는 구주의 표적은 무엇입니까? 12절을 봅시다. “너희가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뉘어 있는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 하더니” 예수님은 모든 영광과 권세를 가지신 창조주 하나님이십니다. 그 분은 가장 높으신 분이요, 가장 부유하신 분입니다. 그런데 그 모든 것을 스스로 버리셨습니다. 기득권을 포기하셨습니다.(빌2:6-8) 그분은 가장 낮은 자리에서 그 생을 시작하셨습니다. 그가 가난하게 되신 것은 우리를 부유하게하기 위함입니다. 그가 영광의 자리를 포기하신 것은 비천한 우리에게 그 자리를 내어주기 위함입니다. 예수님께서 오늘 우리에게 탄생하신다면 어떤 곳으로 오실까요? 화려한 불빛이 넘실거리는 호텔에 오실까요? 초현대식 웅장한 예배당에 오실까요? 여전히 구유에 오시지 않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낮은 곳으로 가야 합니다. 높은 곳, 화려한 곳으로 가서는 예수님을 만나지 못합니다. 우리가 낮아지고 겸손해 지지 않으면 예수님을 만나지 못합니다. 예수님께서 하셨던 그 사역을 따라가지 못합니다. 나를 낮추고 내 속에 있는 자기를 비울 때 구유에 누우신 예수님이 보입니다. 한 영혼의 소중함이 보입니다. 목자는 자신의 기득권을 내려놓고 양들과 눈높이를 맞추며 사는 사람입니다. 목자는 양들의 죄와 죽음 문제를 해결해 주기 위해 기도하며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섬기는 사람입니다. 목자는 세상의 화려함에 물들지 않기 위해서 몸부림치는 사람입니다. 그때에 수많은 천사들이 나타나서 무슨 찬송을 합니까? 14절을 읽읍시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 참 평화는 어떻게 옵니까? 예수님을 구주로 믿는 자가 누립니다. 그리스도만이 우리의 평화입니다. 죄 때문에 깨져버린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관계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다시 살아나심으로써 회복하신 예수님을 믿으면 누구든지 참 평화를 누립니다. 더 나아가 이 시대의 평화의 사도로 쓰임 받습니다.

저는 브라질에서 온 박 엘리야 선교사입니다. 구주 예수님을 만나기 전 저는 죄와 사망의 세력의 종된 삶을 살았습니다. 1979년 원하던 경희 한의대에 입학했으나 저에게는 인생의 방향과 목적이 없었습니다. 술 마시고 노래하고 춤을 쳐봐도 가슴에는 하나 가득 슬픔뿐이었습니다. 본과 1학년 때 아버지께서 소천하시자 인생이 실로 허무하게 느껴졌습니다. 허무, 무의미, 무기력, 무정, 무자비 등 ‘무’자 돌림의 단어들과 친숙해져 갔고, 죽음의 세력에 눌리는 두려움 많은 삶을 살았습니다. 한의학 공부, 특히 본과 1학년의 학과목은 저의 능력으로는 넘을 수 없는 태산이었습니다. 저는 본과 1학년만 3년을 다닌 뒤 학업을 포기하였습니다. 그 때야 말로 저의 인생의 가장 어둡고 긴 터널을 통과하는 시간들이었습니다. 그 누구도 저의 슬픔과 운명과 좌절과 실패를 이해할 수도, 해결해 줄 수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한 분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저의 영혼의 절규를 듣고 계셨습니다. 저를 불쌍히 여겨주시고 만나 주셨습니다. 1984년 인천 문학산 여름 수양회에서 ‘소자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시는 사죄의 음성을 들려주셨습니다. 영적 눈을 뜨게 하시고 예수님께서 나의 죄 때문에 십자가에 달리사 피와 물을 다 쏟으시며 죽으신 사실이 믿어졌습니다. 부활이요 생명 되신 예수님을 영접함으로 죽음의 권세를 파하는 부활의 능력을 덧입게 하셨습니다. 제가 구원의 주 예수님을 만나게 되자 저의 인생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신기하게도 ‘무’자 돌림의 단어들이 저의 생각과 삶에서 사라졌습니다. 텅 비고 공허해서 허무를 노래하던 저의 내면에서 나의 구원의 주 예수님을 향한 사랑과 열정으로 충만하게 되었습니다. 인생의 의미를 몰라 청년의 나이임에도 늘 무기력하게 살았었는데, 예수님을 만나자 주님과 그의 나라를 위해 사는 분명한 인생의 목적과 방향과 의미를 갖게 되었습니다. 사랑이 없던 마음에 예수님의 긍휼과 자비의 마음이 생겨나 다른 영혼을 섬기는 목자의 인생을 살게 되었습니다. 서경희 사모님과 히브리서 11장 말씀 공부를 통하여 제가 믿음의 세계로 들어가도록 역사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제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그리고 세계선교를 위해 포기하였던 한의학 공부를 새롭게 감당하게 도우시고 또한 한의대 개척역사에 목자로 쓰임 받는 은혜를 주셨습니다. 1990년 한의대를 입학한 지 11년 만에 졸업하게 도와주셨습니다. 11년 만의 한의대 졸업은 저의 인생에 일어난 믿음의 역사요, 선교사의 인생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섭리요 선물이었습니다. 1991년 초, 졸업 후 1년 뒤 하나님께서는 브라질 개척 선교사로 파송해 주셨습니다. 지난 28년 동안 주님께서는 저의 청춘을 브라질 선교 역사에 드릴 수 있게 하셨습니다. 금번 본국 방문을 통해, 저의 제2기 선교사역을 위한 쉼과 충전의 시간을 가지게 하셨습니다. 성탄 메시지를 준비하면서 제가 예수님을 만났던 첫 크리스마스의 감격과 감동이 밀려왔습니다. 주님께서는 제가 가장 가난했을 때, 저의 죄와 허물 앞에서 아무 할 말도 없었던 시절, 저를 만나주시고 하늘나라의 소망을 주셨습니다. 그 때 제가 즐겨 부르던 490장 찬송입니다 (2,3절)
“마음 괴롭고 아파서 낙심될 때 내게 소망을 주셨으며 내가 영광의 주님을 바라보니 앞길 환하게 보이도다 나의 놀라운 꿈 정녕 나 믿기는 장차 큰 은혜 받을 표니 나의 놀라운 꿈 정녕 이루어져 주님 얼굴을 뵈오리라./ 세상풍조는 나날이 변하여도 나는 내 믿음 지키리니 인생 살다가 죽음이 꿈같으나 오직 내 꿈은 참되리라 나의 놀라운 꿈 정녕 나 믿기는 장차 큰 은혜 받을 표니 나의 놀라운 꿈 정녕 이루어져 주님 얼굴을 뵈오리라.“
첫 크리스마스의 감사와 구원의 은혜가 저의 심령에 늘 살아 있게 하시고 날마다 예수님이 주시는 큰 구원의 기쁨을 누리기를 소원합니다. 제가 일생 예수님을 알지 못해 죄와 죽음에 종노릇하며 영원한 멸망으로 치닫는 브라질 캠퍼스 지성인들을 구원하고 제자 삼는 역사에 목자요 성경선생으로 귀하게 쓰임받기를 소원하고 기도합니다.

결론적으로, 오늘 우리에게 성탄절은 어떤 날입니까? 우리의 기쁨은 어디에 있습니까? 우리는 어디에서 기쁨을 찾고 있습니까? 구주 예수님이 이 땅에 태어나셨습니다! 그는 지금도 살아 계셔서 세상역사와 우리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십니다. 우리를 죄와 사망의 세력으로부터 우리를 구원하십니다. 우리의 기쁨은 세상의 것에 있지 않습니다. 온 백성에게 미치는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인 예수님에게 있습니다. 우리가 이 시대 베들레헴 목자들처럼 주님의 양무리를 지키며 예수님을 전파하는 이 시대의 목자들이 될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이 시간 잠시 눈을 감고 이 예수님을 심령에 맞아드리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제가 잠시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구주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하고 기념하는 이 복된 날, 이 시간에 예수님을 내 마음에 영접하기를 원합니다. 예수님 우리 마음에 들어오셔서 저희를 구원하시고 영원토록 다스려 주십시오. 죄와 죽음의 세력이 다 물러가게 하시고 종신토록 성결과 의로 주님 섬기는 삶을 살게 도와주십시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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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0 창세기 [2019년 창세기 제1강]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 관리자 2019-03-10 948
579 요한일서 [2019년 요한일서 제5강] 세상을 이기는 믿음 관리자 2019-03-03 1131
578 요한일서 [2019년 요한일서 제4강]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관리자 2019-02-24 761
577 요한일서 [2019년 요한일서 제3강] 행함과 진실함으로 사랑하자 관리자 2019-02-17 1436
576 요한일서 [2019년 요한일서 제2강] 그의 형제를 사랑하는 자 관리자 2019-02-10 715
575 요한일서 [2019년 요한일서 제1강] 우리의 사귐 서삼문 2019-02-03 844
574 열왕기상 [2019년 열왕기상 제10강] 내가 여호와인줄 알리라 관리자 2019-01-27 906
573 열왕기상 [2019년 열왕기상 제9강] 하나님의 세미한 소리 관리자 2019-01-20 9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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