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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nday Worship Message
주일예배메시지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8-12-30 (일) 12:20
분 류 요한복음
첨부#1 2019년_신년1강-1(이인구).hwp (64KB) (Down: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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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신년말씀 제1강]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

  2019년 신년 제1강                                                               이인구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

말씀/요한복음 17:1-26
요절/요한복음 17:21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시기 전날 밤 최후의 만찬을 하시며 십자가의 죽음 앞에서 자신을 위해 또 제자들을 위해 그리고 제자들이 전도한 모든 신자들을 위해 대제사장적 기도를 하십니다. 우리는 이 기도에서 예수님의 간절한 소원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에 대한 예수님의 소원을 깨닫고 믿음으로 영접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1. 예수님 자신을 위한 기도(1-5)
  1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이르시되 아버지여 때가 이르렀사오니 아들을 영화롭게 하사 아들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은 이제 때가 이르렀으니 자신을 영화롭게 하셔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해달라 기도하십니다. 예수님께서 구하시는 영화(영광)는 어떤 것입니까? 사람들은 누구나 인생을 살면서 영광을 구합니다. 요사이 청소년들은 누구에게나 인기 있고 누구나 간절히 되고 싶어 하는 워너비인 아이돌(우상)을 꿈꾸는 이가 많습니다. 또 많은 학생들은 원하는 대학에 들어가는 것을 인생의 영광이요 가문의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또 어른들은 한강 옆의 높고 넓은 강남아파트에서 흘러가는 한강과 뛰어가는 사람들을 내려다보며 사는 것을 큰 영광으로 생각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어떤 청년들은 허황된 영광보다 안정된 직장에(공무원) 취직해 평생 잘리지 않고 정년에 퇴직하는, 작지만 더 얻기 힘든 영광을 꿈꾸는 이도 많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구하는 영광은 상대적인 영광이요, 내가 얻으면 다른 이는 잃고 다른 이가 얻으면 내가 잃게 되는, 제로섬 게임 같은 영광입니다. 세상의 영광은 수많은 경쟁자들과 치열한 경쟁을 통해 패배자(루저)들 위에 올라서는, 피라미드의 영광이요 승자독식의 영광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구하시는 영광은 그런 영광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영광을 받고자 하는 이유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감당함으로 세상에서 하나님영광을 드러내기 위해서입니다. 또 하나님께 받은 모든 사람에게 영광을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님께서 모든 사람들에게 주시고자 하는 영광은 구원과 영생입니다. 영생이 무엇입니까?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3).” 영생은 그저 영원히 사는 것이 아닙니다. 지옥에 들어가는 자들도 그곳에서 영원히 삽니다. 영생은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님을 아는 것입니다. 여기서 안다는 것은 머리로만 아는 것이 아니라 인격적으로 체험적으로 깊이 아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은 남녀가 결혼해서 한 몸을 이뤄 살아가면서 서로에 대해서 알아가는 것과 같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오랫동안 함께 살아도 서로에 대해 모르고 무관심한 부부가 있는 것처럼 오래 신앙생활해도 예수님에 대해 잘 모르고 지식적으로만 아는 분들이 많습니다. 지식적으로 알고 믿는 신앙생활은 아무런 힘이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과 깊은 사귐이 있고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을 아는 이들은 이미 영생을 얻은 것입니다. 신자는 이 땅에서 육신을 입고 시간의 한계 속에서 살지만 또한 예수님을 영접하므로 이미 시간을 초월한 영생의 소유자들입니다. 영생은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아는 순간 이미 얻은 것이요 그 분을 더 알아감으로 더욱 풍성히 얻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주시려는 영광인 영생은 세상영광처럼 그것을 얻기 위해 다른 이들보다 앞서야 되거나 다른 이들을 희생함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닌, 예수님을 믿음으로 누구나 얻을 수 있는 영광입니다. 하지만 모든 이들에게 영광을 주기위해서 오직 예수님의 희생과 죽음이 필요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신자들에게 영생을 주시기 위해서는 죽음까지도 이길 수 있는 권세가 있어야 했습니다. 부활의 능력을 얻기 위해 먼저 죽어야 했습니다. 모든 사람들을 죽게 하는 죽음의 권세를 이기기 위해 먼저 자신이 가장 잔인하고 고통스러운 십자가의 죽음의 문을 통과해야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오신 것은 바로 이것을 위해 이때를 위해 오신 것입니다. 이제 때가 이르렀습니다. 예수님은 마치 초가 자신을 태워 세상의 어둠을 밝히는 것처럼 하나님영광을 위해 또 하나님께 속한 모든 이들에게 진정한 영광을 주시기 위해 자신의 육신을 희생하고자 하신 것입니다.

2. 제자들을 위한 기도(6-9)
  6절부터 예수님은 예수님이 세상을 떠나는 때에 세상에 남아 예수님이 이루신 복음역사를 계승할 제자들을 위해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무엇보다 하나님께서 제자들을 보전하사 하나 되게 해달라고 기도하셨습니다. “나는 세상에 더 있지 아니하오나 그들은 세상에 있사옵고 나는 아버지께로 가옵나니 거룩하신 아버지여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들을 보전하사 우리와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11).” 예수님은 12제자들과 함께 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시며 악에서 지켜주시고 섬겨주셨지만 예수님이 떠난 후 분열될 위험이 있었습니다. 제자들 모두 각자 개성이 있고 각자의 계획과 생각과 욕심이 있었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할 때도 서로 크고자 경쟁했는데 예수님이 떠난 후 사단은 복음역사를 계승하려는 제자들의 마음에 불신과 회의와 두려움을 심어 분열하고 분쟁하게 할 것입니다. 예수님의 많은 섬김에도 가룟유다가 돈에 대한 탐심으로 예수님을 배반하고 세상으로 갔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그가 세상에 속한 자였고 끝까지 돌이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이 하나가 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그들을 분열시키는 악에 빠지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남은 제자들이 하나가 되도록 악에 빠지지 않게 보전해주시길 기도하였습니다. “내가 비옵는 것은 그들을 세상에서 데려가시기를 위함이 아니요 다만 악에 빠지지 않게 보전하시기를 위함이니이다(15).” 제자들은 예수님이 떠난 후 세상에 남아있지만 더 이상 세상에 속한 자들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 속한, 하나님나라 시민권자입니다. 여기서 갈등이 시작됩니다. 세상은 세상에 속하지 않은 예수님을 미워한 것처럼 세상에 속하지 않는 제자들을 미워할 것입니다. 세상의 핍박 속에서 신자는 때로 예전에 살아온 습관과 본성으로 세상에 동화되고 싶어할 때도 있지만, 예수님의 피로 거듭남으로 물과 기름처럼 더 이상 섞일 수 없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신자가 세상과 섞여서는 안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그런데 세상의 가치관과 맞지 않는 신자는 자칫하면 세상의 아웃사이더요(왕따) 이방인이 될 수 있습니다. 많은 신자들이 세상의 미움을 두려워해서 주일에 교회에서는 거룩한 제자로 살지만 평일 세상에서는 자신의 신분을 숨기고 세상 사람들처럼 살아갑니다. 하지만 신자가 세상과 구별되지 않고 악에 빠질 때 또한 예수님께서 주신 영광인 영생도 잃을 수 있습니다. 신자는 세상의 악에 빠지지 않고 세상의 거룩한 순례자로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어떻게 그런 믿음과 정체성을 찾을 수 있습니까? 거룩한 삶은 세상과 격리되어서 살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중세에 많은 수도사들이 세상과 구별된 삶을 살기 위해 속세를 떠났습니다. 광야 산속에 들어가서 홀로 수행을 하거나 3m가 넘는 담이 있는 수도원을 짓고 그 안에서 살았습니다. 하지만 격리되어 그 안에서 내면의 죄에 빠져 살아간다면 구별된 삶을 사는 이유가 없어집니다.
  예수님은 진리의 말씀을 통해 제자들을 거룩하게 해 달라고 기도하셨습니다. “그들을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17).” 진리의 말씀을 통해 제자들은 세상과 구별되어 악에 빠지지 않을 뿐 아니라 세상을 변화시킬 지혜와 능력을 덧입게 됩니다. 예수님은 “아버지께서 나를 세상에 보내신 것 같이 나도 그들을 세상에 보내었다(18)”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거듭나 양처럼 순결한 신자들을 늑대 같은 세상에 보내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어린양으로 세상에 보내실 때 말씀의 권능을 주신 것처럼 예수님은 제자들을 세상으로 보내실 때 진리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진리의 말씀은 빛처럼 어두운 세상을 밝힐 뿐만 아니라 소금처럼 세상의 부패를 방지할 수 있는 능력을 줍니다. 또 선과 악을 분별할 수 있는 지혜를 줍니다. 우리가 사는 이 시대는 다원주의 사회입니다. 절대적인 선의 기준이 없고 각자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살아갑니다. 인권이란 이름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면 어떤 것이라도 허용됩니다. 우리가 깨어 진리의 말씀을 붙들지 않을 때 자신도 모르게 세상의 풍조에 동화되고 세상 가치관을 좇아 살게 됩니다. 하지만 우리가 예수님의 기도를 기억하고 진리의 말씀을 붙들고 거룩하게 살아갈 때 세상에서 선한 영향력을 끼치고 세상을 변화시킬 빛과 소금이요 왕 같은 제사장으로 살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것을 위해 제자들을 세상으로 보내신 것입니다.

3. 신자들을 위한 기도(20-26)
  20절부터 예수님은 제자들을 통해 자신을 믿게 될 신자들 곧 우리들을 위해 기도하십니다. 예수님은 무엇보다 모든 신자들이 하나가 되도록 기도하셨습니다. 21절을 보십시오.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 하나가 된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탈무드에 있는 예화를 하나 소개합니다. 어느 날 몸은 하나인데 머리가 둘인 아기가 태어났습니다. 사람들 사이에서 이 애를 하나로 볼 것인가 둘로 볼 것인가 하는 것에 논란이 생겼습니다. 아버지와 엄마도 의견일치가 안 되자 결국 랍비에게로 데려갔습니다. 랍비도 처음에는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한참 생각하더니 심오한 표정으로 막대기를 하나 가져오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 막대기로 애의 한쪽 머리를 세게 때렸습니다. 그랬더니 맞은 머리가 아야! 하며 울었습니다. 그러나 다른 한쪽 머리는 재미있다고 히죽히죽 웃었습니다. 랍비는 판정을 내렸습니다. “이 애는 둘입니다!” 만약 같이 아파했다면 하나인 것입니다.
  겉모습도 다르고 성격도 다르고 자라온 환경도 다르고 사는 방법도 다른 신자들이 어떻게 하나가 될 수 있습니까? 과거 군사독재시대나 지금 공산주의 북한은 국민들을 하나로 만들기 위해 강력한 중앙집권적 카리스마로 사람들을 획일적으로 지배하고 통제했습니다. 하지만 강한 카리스마로는 외적으로 하나 되게 할 수는 있지만 그 하나됨은 영원할 수 없습니다. 사회와 문화가 발전될수록 사람들은 생각이 복잡해지고 사는 방법이 다양해지면서 더욱 하나 되기 어려워집니다. 과거 TV 채널이 몇 개 없을 때는 인기 있는 드라마는 많은 이들이 한마음으로 좋아해서 시청률 50%가 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요사이는 케이블채널 뿐 아니라 수많은 인터넷방송도 생겨나 한마음으로 시청하기는 불가능해졌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모두 독립적인 인격체로 지으셨습니다. 인격체의 특징은 서로 다르다는 것입니다. 같은 피를 받고 태어난 형제들뿐 아니라 심지어 일란성 쌍둥이도 겉모습은 비슷하지만 그 성격이나 생각은 다릅니다. 우리가 어떻게 예수님의 기도처럼 하나가 될 수 있습니까?
  하나 됨의 비밀은 하나님(예수님)안에 있습니다. 10절에서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내 것은 다 아버지의 것이요 아버지의 것은 내 것-” 이 말씀은 예수님과 하나님의 것이 공동소유라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자신이 하나님과 하나라는 것을 천명하시는 것입니다. 또 21절에서 말씀하셨습니다.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수학에서 A가 B에 속하고 B가 A에 속하면 A=B입니다. 즉 하나님과 예수님은 두 인격이지만 완전히 하나이십니다. 하나님은 유일신으로 존재하지 않으시고 성부, 성자, 성령의 삼위가 일체로 조화를 이루며 존재하시는데 이것은 우주의 큰 비밀입니다. 이처럼 신자들은 예수님 안에 있을 때 하나 될 수 있습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요15:5) 예수님 안에서 예수님을 닮아갈 때 신자는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럼 구체적으로 예수님 안에서 어떻게 하나가 될 수 있습니까?
첫째, 우리의 인생의 목적이 같을 때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인생목적이 무엇입니까? 예수님께서 하나님 영광을 위해 이 세상에 오셨고 하나님 영광을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을 통해 구원받은 우리는 하나님영광을 위해 살 때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 인생들은 하나님에게서 나오고 하나님께로 돌아갑니다. 창조주 하나님을 찬양하고 경배하는 것이 인생들의 목적입니다. 신자들이 하나 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기보다 자기 야심, 자기 영광을 위해 살기 때문입니다. 축구경기에서도 팀의 승리를 위한 하나의 목표를 향해 뛸 때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팀의 승리보다 자기가 화려한 개인기를 부려 몸값을 올리겠다는 목표로 뛴다면 절대로 하나가 될 수 없습니다. 22절을 보십시오. “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그들에게 주었사오니 이는 우리가 하나가 된 것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니이다.” 신자는 예수님을 통해 구원받아 인간이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영광을 얻게 됐습니다. 그 영광은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과 영생입니다. 우리가 하나 되는 것은 하나님의 가족이요 하나님의 자녀로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신자는 예수님 안에서 값없이 받은 영광인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 하나님영광을 위해 하나가 될 수 있길 기도합니다.
둘째, 사랑으로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23절을 보십시오. “곧 내가 그들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어 그들로 온전함을 이루어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은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과 또 나를 사랑하심 같이 그들도 사랑하신 것을 세상으로 알게 하려 함이로소이다.” 신자는 사랑으로 겸손히 낮아져 상대방을 섬길 때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하나됨은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입니다. 원래 사람은 아담 하나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아담의 갈빗대로 하와를 만드심으로 둘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이 둘에게 하나가 되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왜 이렇게 하나를 두 개체로 갈라놓고 다시 하나가 되라고 하셨습니까? 어떻게 하나가 될 수 있습니까? 둘은 서로 사랑으로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하나가 되는 과정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가르쳐주시고자 하셨습니다. 하지만 인간적 사랑 육체적 사랑으로는 한계가 있습니다. 아담은 하와를 주신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을 때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고 사랑하며 하나가 되었지만, 선악과를 먹고 하나님을 떠날 때 그 사랑은 증오로 바뀌어 둘이 되었습니다. 그것은 부모자식도 마찬가지입니다. 얼마 전 박이삭 목자님이 10년 만에 얻은 자신의 분신인 자녀를 위한 감사시를 들었을 때 많은 이들이 감동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하지만 15년이 흘러 자녀가 반항하는 사춘기가 되어서도 그 마음이 변하지 않을 수 있을까 생각하게 됐습니다. 많은 아버지가 어린 아들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주고 싶어 하고 아들은 아버지를 그대로 따라하며 하나가 되려고 합니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아버지의 일방적 요구와 아들의 반항심이 부딪치면 같이 식사하는 것도 어색해져 아들은 핸드폰을 보며 아버지는 신문을 보며 식사를 합니다.
  하나가 되지 못하는 이유는 인간의 이기적인 죄성 때문입니다. 하나가 되자고 하면 반대하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남한과 북한도 역사를 위해 하나가 되자고 하고 여당과 야당도 국민을 위해 하나가 되자고 외칩니다. 하지만 막상 하나가 되기 위한 방법에서 분열하고 맙니다. 서로 윈윈하는 방법을 찾지만 자신에게 유익이 되는 방법을 고집하다가 결국 하나 되지 못합니다. 하지만 죄인을 사랑해서 함께 하기 위해 하늘의 영광을 버리고 이 땅에 낮아져 오신 하나님의 임마누엘의 사랑을 깨달을 때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나를 위해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의 사랑을 영접할 때 그 사랑의 힘으로 다른 이들을 섬김으로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사랑을 받지 못한 사람은 사랑할 수 없습니다. 신자는 자신을 향한 예수님의 절대적이고 변하지 않는 희생적 사랑을 깨달으면 깨달을수록 또한 다른 이들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사랑은 그 사랑을 받은 사람에게서 주변사람에게로 흘러가게 되고 주면 줄수록 더욱 넘침으로 하나가 되게 합니다. 우리가 예수님께 받은 사랑으로 다른 이들을 겸손하게 낮아져 섬김으로 하나가 될 수 있길 기도합니다.
셋째, 서로 다름을 인정할 때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오케스트라를 보십시오. 그들은 다른 악기를 연주합니다. 모두 다 바이올린만 연주한다면 아름다운 화음을 낼 수 없습니다. 모두 다 트럼펫만 분다면 얼마나 시끄럽겠습니까? 할렐루야 합창을 하는데 모두 베이스만 부른다면 청중들은 졸게 될 것입니다. 각자의 음색은 다르지만 한 지휘자의 지시에 따라 소리를 낼 때 심령을 감동시키는 아름다운 음악을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이처럼 우리도 모두 개성이 다르고 은사도 다릅니다. 하지만 지휘자 되시는 예수님을 중심으로 하나가 될 때 세상을 감동시키고 세상을 변화시킬 능력이 나오게 됩니다. 본질적인 것이 같으면 비본질적인 것이 조금 달라도 우리는 서로를 용납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적은 모임 내부에 있지 않고 외부에 있습니다. 하지만 내부의 동역자들과 사소한 문제로 갈등한다면 정작 우리의 적과 싸울 때 아무런 힘을 내지 못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영광을 위해 한 마음으로 동역하는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겉모습만 동역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겸손히 낮아져 섬기는 사랑의 공동체가 되어야겠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무엇을 위해, 왜 우리가 하나 되도록 기도하십니까? 23b를 보십시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과 또 나를 사랑하심 같이 그들도 사랑하신 것을 세상으로 알게 하려 함이로소이다.” 먼저 우리는 하나가 됨으로 신앙생활의 기쁨과 행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신앙생활은 천성을 향한 고독하고 좁은 길이지만 우리는 하나됨으로 자신과 같이 하나님을 향해 예수님을 따르는 많은 신자들이 있다는 것을 깨닫고 기쁨으로 끝까지 힘을 내어 천성 길을 완주할 수 있습니다.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히12:1) 또 우리가 하나가 됨으로 세상가운데 하나님의 사랑이 전파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 되는 것은 세상 사람들을 분리시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들을 하나님께로 인도하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님 안에서 사랑으로 하나된 교회를 보며 사랑 없이 분열하는 세상 사람들이 예수님께 나올 수 있게 됩니다. 예수님은 신자들이 어둡고 죄악된 시대 속에서도 하나가 됨으로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축복을 받고 또 세상 사람들을 하나님께도 인도하도록 하셨습니다.

  제가 신입생 때 처음 센터에 와서 느낀 것은 하나로 결속력이 강하고 또 밝다는 것이었습니다. 신입생 때 학교에서는 독재정권에 대한 분노와 노동자들에 대한 정의의 갈망으로 대학생들이 심각한 표정으로 핏대를 세우며 구호를 외치던 때에 센터에서 목자님들은 항상 기쁨으로 밝게 사람들을 맞아주었습니다. 그때 센터는 한 건물의 한층만 사용할 수 있어 좁은 한쪽에서 말씀공부하면 그 옆에서 찬송하고 다른 쪽에서는 댄싱연습하며 그 옆에서 수다를 떨며 시장처럼 시끄럽고 복잡했지만 모두 넘치는 에너지와 기쁨으로 하나가 되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예수님을 만나고 하나님 영광을 위한 간절한 심정과 예수님의 사랑이 충만해 하나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또 제가 본과에 다닐 때 학교근처에 처음으로 바이블하우스를 시작했습니다. 평소에는 말씀공부를 위한 바이블하우스로 운영하다 밤에는 형제목자님들의 숙소로 이용했습니다. 밤에 목자님들이 모임이 끝나고 항상 같이 라면을 끓여먹었는데 저는 말씀공부나 기도모임에는 거의 참석하지 않다가 그때는 자주 참석했습니다. 하지만 그런 이중적 저의 모습에도 목자님들은 항상 기쁘게 맞아주며 춥고 배고프던 시절 일용할 양식 같은 라면을 나눠주었습니다. 특히 백천룡 목자님(잔백 선교사님)과 최용규 목자님(최바벨 선교사님)은 항상 기쁨이 가득한 얼굴로 사랑으로 함께 해주었습니다. 그때의 라면 맛은 영원히 잊지 못할 맛입니다. 그것은 라면의 품질이 좋아서가 아니라 죄인과 함께 하는 예수님의 사랑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제가 오랫동안 모임에도 세상에도 적응하지 못하는, 방황하는 아웃사이더였지만 그 예수님의 사랑으로 졸업 후 남아 하나가 되었습니다. 제가 예수님과 목자님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은 자로서 그 사랑을 일생 실천함으로 하나 되는 역사에 쓰임 받을 수 있길 기도합니다.

하나님 영광을 위해 사는 것은 예수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삶이고 예수님 안에서 서로를 인정하며 존중하며 하나가 되는 삶입니다. 우리가 세상일에 빠져서 동역자들에게 무관심하며 사랑으로 하나 되는데 실패하지 않길 기도합니다. 전도는 말로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으로 하는 것입니다. ‘아! 내가 이 모임에 와보니 여기에는 세상에서 볼 수 없는 사랑이 넘치는구나. 나도 여기에 속하고 싶다!’ 이것이 효과적인 전도입니다. 사람들은 모임에 와보면 다 압니다. 서로에 대한 무관심한 모임, 끼리끼리만 모이는 모임이라고 생각하면 누가 이곳에 남겠습니까? 우리 모임이 말로만이 아니라 실제 삶에서 서로 용서하고 사랑하며 겸손으로 섬기는 모임이 되길 기도합니다. “보라 저 사람들은 얼마나 서로 뜨겁게 사랑하는가! 이들은 서로를 위해 기꺼이 죽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는가! 나도 이 모임에 담기고 싶다. 나도 예수님의 사랑을 받고 싶다!” 이런 말을 듣기까지 우리가 서로 사랑으로 하나 되기를 기도합니다.

결론적으로, 예수님은 십자가를 앞두고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영광을 위해 십자가의 죽음을 감당하도록, 또 남은 제자들이 진리로 거룩하게 되도록, 또 모든 신자들이 하나가 되도록 하나님께 간절한 유언적 기도를 드렸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기도의 심정을 덧입고 하나님영광을 위해 진리와 사랑으로 하나 되는 공동체를 이룰 수 있길 기도합니다. 새해에는 개인이 맺는 열매보다 서로 하나가 되어 동역하는 가운데 동역의 열매를 맺는 한 해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내 양보다 우리의 양들로 가득 차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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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8 요한일서 [2019년 요한일서 제4강]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관리자 2019-02-24 761
577 요한일서 [2019년 요한일서 제3강] 행함과 진실함으로 사랑하자 관리자 2019-02-17 1436
576 요한일서 [2019년 요한일서 제2강] 그의 형제를 사랑하는 자 관리자 2019-02-10 715
575 요한일서 [2019년 요한일서 제1강] 우리의 사귐 서삼문 2019-02-03 844
574 열왕기상 [2019년 열왕기상 제10강] 내가 여호와인줄 알리라 관리자 2019-01-27 906
573 열왕기상 [2019년 열왕기상 제9강] 하나님의 세미한 소리 관리자 2019-01-20 9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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