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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nday Worship Message
주일예배메시지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9-01-13 (일) 12:46
분 류 예레미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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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신년말씀 제3강]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2019년 신년 제 3 강                                                           최동진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말씀/ 예레미야 29:1-23
 요절/ 예레미야 29:12,13 “너희가 내게 부르짖으며 내게 와서 기도하면 내가 너희들의 기도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


 오늘 말씀은 예레미야가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간 동족들에게 쓴 편지의 내용입니다. 그 내용은 남 유다가 죄로 말미암아 북이스라엘과 같이 망할 것이지만, 바벨론 포로 기간은 70년이 될 것이고 반드시 돌아올 것이라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유다 백성들에게 고난을 주시는 하나님의 선한 뜻을 알고, 우리도 고난을 통해 믿음의 훈련을 잘 받아 나의 하나님을 깊이 만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I. 온 마음으로 구하면 나를 만나리라(1-14)
  선지자 예레미야는 요시야 왕 13년에 부르심을 받아 40년간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했습니다. 오늘 말씀의 편지가 쓰여 질 무렵에는 예루살렘이 이미 두 차례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의 침공을 받아 많은 사람들이 포로로 끌려갔을 때로서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암울했던 시기였습니다. 1,2절을 보십시오. “선지자 예레미야가 예루살렘에서 이같은 편지를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에서 바벨론으로 끌고 간 포로 중 남아 있는 장로들과 제사장들과 선지자들과 모든 백성에게 보냈는데 그 때는 여고니야 왕과 왕후와 궁중 내시들과 유다와 예루살렘의 고관들과 기능공과 토공들이 예루살렘에서 떠난 후라.” 바벨론의 1차 침공 때(B.C. 605년)에 다니엘과 세 친구들을 포함한 많은 귀족들이 끌려갔고, 2차 침공 때에 여고니야 왕(여호야긴)과 왕후와 내시들과 함께 수많은 고관들과 기능공들과 토공들이 끌려갔습니다.(B.C. 597년) 선지자 에스겔도 그 중에 포함 되었고, 이때 끌려간 지식인들이 1만 명이나 되었습니다. 바벨론은 여고니야의 숙부인 시드기야를 유다의 왕으로 세웠습니다. 예루살렘의 엘리트 계층으로서 부족함 없는 행복한 삶을 살다가 하루아침에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온 백성들의 심정이 어떠했겠습니까? 그들은 자신들이 그곳에 끌려온 현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을 것입니다. 조상들의 죄 때문에 자신들이 징계를 받는다고 생각하면 억울하고 하나님이 얼마나 원망스러웠겠습니까? 예루살렘에 남아있는 백성들과 비교하면서 왜 자신들만 그곳에 끌려와서 고생을 하는지 힘든 현실을 받아들일 수 없어서 바벨론 강가에 앉아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며 하루 속히 지옥 같은 바벨론을 떠나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기만을 소망했을 것입니다. 예레미야는 이런 힘든 현실 가운데 그들에게 두신 하나님의 뜻을 알게 하기 위해 시드기야가 사절단으로 보낸 사반의 아들 엘라사와 힐기야의 아들 그마랴 편으로 편지를 보냈습니다. 사반과 힐기야는 선대 왕이었던 요시야 때의 서기관과 대제사장으로서 성전에서 율법 책을 발견하여 왕께 드리므로 종교개혁의 불을 댕긴 자들이었습니다. 그 자제들 역시 예레미야가 중요한 편지를 맡길 만큼 신뢰할 만한 믿음의 사람들이었습니다. 예레미야는 바벨론으로 끌려간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전하고자 하였습니다.
  4절을 보십시오.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에서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가게 한 모든 포로에게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먼저 예레미야는 그들이 포로로 사로잡혀 가게 된 원인이 군사력이 약하거나 외교를 잘 못해서가 아니라 전적으로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의 주권적인 뜻에 의한 것임을 밝히고 있습니다. 원인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그것에 대처하는 방법도 달라지게 됩니다. 하나님은 요시야 왕 때부터 유다백성들에게 우상숭배의 죄를 지적하며 회개를 촉구하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심판의 경고를 무시하고 회개하지 않았을 때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바벨론의 침공을 받아 포로로 끌려가게 된 것입니다. 고난을 하나님의 주권 편에서 바라보고 하나님의 뜻을 깨달을 때 하나님의 훈련을 달게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 예레미야를 통해 주시는 하나님의 뜻이 무엇입니까? 5,6절을 보십시오. “너희는 집을 짓고 거기에 살며 텃밭을 만들고 그 열매를 먹으라.  아내를 맞이하여 자녀를 낳으며 너희 아들이 아내를 맞이하며 너희 딸이 남편을 맞아 그들로 자녀를 낳게 하여 너희가 거기에서 번성하고 줄어들지 아니하게 하라.” 이 말씀은 그곳에서 뿌리를 내리고 정착하여 살라는 말씀입니다. 하루라도 빨리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는 것 외에 바랄 것이 없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곳에서 결혼도 하고 자녀를 낳고 키워서 사위와 며느리도 보고 손주까지 보고 살라니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고 이해하기 힘든 방향이었습니다. 당시 거짓 선지자 하나냐는 하나님께서 바벨론왕의 멍에를 꺾으시고 모든 포로들과 예루살렘 성전의 기명들이 2년 안에 남유다로 돌아오게 할 것이라고 근거없는 거짓 예언을 했습니다(렘28:1-4). 사람들은 애써 자기가 듣고 싶은 말, 자기에게 유리한 말만 들으려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나냐의 말에 더 희망을 두고 돌아갈 날만 손꼽아 기다리고 있던 그들은 예레미야의 말을 가짜 뉴스라고 여기며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신자들에게 있어서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알 때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며 하나님의 은혜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롬5:2-4).  
  아직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예레미야는 더 영접하기 힘든 말을 하였습니다. 7절을 보십시오. “너희는 내가 사로잡혀 가게 한 그 성읍의 평안을 구하고 그를 위하여 여호와께 기도하라. 이는 그 성읍이 평안함으로 너희도 평안할 것임이라.” 어떻게 조국을 망하게 하고 포로로 끌고 온 원수 나라를 위해 평안을 구하고 기도할 수 있습니까? 인간적으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그러나 피조물인 인간이 창조주 하나님의 생각을 다 이해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생각은 우리 인간들의 생각과는 다릅니다.(사55:8,9) 그러나 분명한 것은 하나님은 우리에게 좋은 것을 주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이 바벨론을 위해 기도하라는 것도 따지고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번성하게 하신 것처럼 바벨론에서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축복을 감당할만한 백성으로 키우고자 하시는 선한 뜻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바벨론이 만일 정치 경제적으로 불안하다면 이스라엘 백성들도 결코 편안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평안을 위해서도 바벨론의 평안이 중요합니다. 8,9절을 보십시오. 거짓 선지자들과 점쟁이들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거짓 예언을 하고 있지만 하나님은 그들을 보내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므로 곧 바벨론이 망해서 2년 안에 고국으로 돌아갈 것이라는 그들의 말을 믿어서는 안되고 들어서도 안됩니다.
  그러면 그들에게 두신 하나님의 뜻이 무엇입니까? 10절을 보십시오.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바벨론에서 칠십 년이 차면 내가 너희를 돌보고 나의 선한 말을 너희에게 성취하여 너희를 이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 하나님의 계획은 그들이 거기서 70년 동안 거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기간 동안 하나님을 떠나 우상숭배한 죄를 철저히 회개함으로 정결한 하나님의 백성으로 연단되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리고 때가 차면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게 될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조급한 마음을 내려놓고 70년 후를 바라보고 믿음으로 후손들을 키워야 합니다. 70년 후면 현재 이 편지를 읽는 사람들은 다 죽고 2세들이 예루살렘으로 돌아와서 큰 역사를 이룰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절망하고 한탄하기보다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장차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성전을 회복하고 이스라엘을 재건할 소망 가운데 2세들 교육에 힘써야 합니다. 실제로 페르시아 시대의 총독 스룹바벨이나, 학사 에스라, 왕비 에스더, 총독 느헤미야 등과 같은 사람들은 바벨론에서 태어난 2세들로서 후에 이스라엘을 회복시키는 하나님의 역사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습니다. 이때 바벨론은 남유다에서 끌어온 사람들을 다른 지역 사람들과 구별하여 ‘유대인’이라 불렀습니다. 북이스라엘의 열 지파는 일찌감치 앗수르의 침공으로 멸망당해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정체성을 잃고 사마리아인으로 멸시받는 처지가 되었고, 예루살렘에 남아있던 자들도 하나님의 징계를 받아 흩어졌고, 바벨론 포로로 끌려갔던 자들이 후에 돌아가서 하나님의 구속역사를 계승하는 유대인들이 되었습니다.
  11절을 보십시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 이스라엘은 바벨론의 침략을 받아 포로로 끌려가게 되었을 때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을 받아 이제 완전히 망했다고 생각했습니다. 평안이 사라지고 무서운 재앙만 남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을 향한 하나님의 생각은 재앙이 아니라 평안입니다. 히브리서 12:11절은 말합니다. “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단 받은 자들은 의와 평강의 열매를 맺느니라.” 겉으로 볼 때 바벨론 포로생활은 망국의 설움과 타향살이라는 고통의 기간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실상은 그들의 신앙이 하나님 중심, 말씀중심으로 새로워지는 연단의 기간이요, 하나님 백성으로 재탄생하는 기간이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편에서 볼 때 이는 재앙이 아니라 평안이요, 그들에게 참된 미래와 희망을 주고자 하시는 것입니다. 사람은 희망을 먹고 사는 존재입니다. 유태인 정신분석학자로서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빅토르 프랭클(Victor Frankle)박사는 ‘의미를 찾는 인간의 탐색’이란 책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치 수용소에서 말할 수 없이 잔인한 고문과 무서운 형벌과 비인간적인 학대 속에서 나를 생존하게 만든 것은 희망이었다.” 그의 관찰에 의하면 마음으로 포기한 사람은 몸도 곧 쇠약해졌고, 희망을 끝까지 가진 사람이 끝까지 살아남았다고 합니다. 그곳에서는 하루 평균 30명의 병사자가 발생했는데 1944년이 저물 무렵 수용소에는 크리스마스 이전에 전쟁이 끝나고 유태인들은 모두 석방된다는 희망적인 소문이 나돌면서 병사자가 하루 5명 안팎으로 줄었습니다. 그런데 크리스마스가 지나고 정월이 되었는데도 전쟁이 계속되자 하루 평균 80명 이상이 죽어나갔다고 합니다. 이는 희망이 어떤 고난과 역경도 헤쳐 나갈 수 있는 원동력이 됨을 말해줍니다.
  그러면 이들이 붙들어야 할 희망이 무엇입니까? 12,13절을 보십시오. “너희가 내게 부르짖으며 내게 와서 기도하면 내가 너희들의 기도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 하나님이 그들에게 주시고자 하시는 참된 희망은 하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그들이 이렇게 수치스런 고난을 당하는 것도 하나님을 떠나 우상을 숭배하는 죄를 지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백성들을 훈련장소인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오게 하셔서 그들의 하나님으로 만나주시기를 원하신 것입니다. 예루살렘에서도 만나지 못한 하나님을 그들은 이곳 바벨론에서 만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출애굽시키사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신 것도 그곳에서 그들을 만나 그들의 하나님이 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 잘 살게 되었을지라도 그곳에서 하나님을 만나지 못했을 때 그곳은 더 이상 젖과 꿀이 흐르는 축복의 땅이 아니라 우상숭배하게 하는 저주의 땅이 되었습니다. 번영하는 것처럼 보여도 하나님이 없는 땅은 재앙의 땅이요, 재앙 같은 일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만난다면 재앙이 변하여 평안이요 희망이 넘치는 땅이 됩니다. 바벨론 유배지가 재앙의 땅이 아니라 평안의 땅이요 희망의 땅이 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하나님을 간절히 찾고 하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창세기의 야곱은 사람들과 싸워 이기는 삶을 통해 세상 사람들이 원하는 모든 축복을 얻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죄로 인한 고통과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없었습니다. 마음에 평안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그를 얍복강가에서 밤새도록 씨름해주시면서 만나주시고 이스라엘로 변화시켜주셨습니다. 사람과 싸워 이기고 빼앗는 자기중심적인 삶에서 하나님나라를 소망하며 하나님의 축복을 나눠주는 하나님의 백성으로 변화된 삶을 살게 하셨습니다. 그가 하나님을 만났을 때 그의 인생에 고통과 절망의 밤이 지나고 기쁨과 평강으로 가득 찬 희망의 새 아침이 밝아오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만날 때 하나님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로 변화되는 진정한 축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고난 중에 있는 그들이 어떻게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까?
첫째로, 부르짖으며 기도해야 합니다. 부르짖는다는 말은 간절히 기도하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는 간절해야 합니다. 들어주시면 좋고 안들어 주셔도 어쩔 수 없다는 자세로 드리는 기도를 하나님은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절실하게 생각하는 만큼 기도도 간절해지게 됩니다. 하지만 기도한다고 하나님의 생각이 바뀌어서 더 빨리 돌아가게 해주신다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다면 어차피 70년이 차야 돌아갈 것인데 기도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기도는 하나님의 마음을 바꿔서 자기가 원하는 것을 얻어내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기도할 때 고난과 시련의 의미를 깨닫게 하시고, 하나님의 뜻을 영접하고 고난을 감당할 힘을 주십니다. 시련 앞에 자기 죄를 발견하게 하시고, 회개할 때 하나님이 주시는 평강을 누리게 하십니다. 예수님도 본체가 하나님이시지만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리셨습니다.(히5:7) 예수님도 십자가의 고난을 피하고 싶으셨지만 피땀 흘려 기도하심으로 하나님의 뜻을 영접하시고 십자가를 질 힘과 믿음을 덧입으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에 끝까지 순종하심으로 하나님의 인류 구속 역사를 이루어 드리실 수 있었습니다.
둘째로, 온 마음으로 구하며 찾아야 합니다. 13절을 보십시오.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 이스라엘 백성들은 포로로 끌려와 고난 가운데 있었지만 하나님을 찾지도 않고 만나고자 하는 소원도 없었습니다. 그저 어떻게 하든 포로 생활에서 벗어나 하루라도 빨리 고향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생각뿐이었습니다. 그러나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는 것이 그들의 근본 목적이 될 수 없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을 바벨론 포로로 보내신 하나님의 뜻을 먼저 생각해야 했습니다. 그들은 우상숭배의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징계를 받아 바벨론 포로로 끌려온 것입니다. 징계에는 분명히 목적이 있습니다. 이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죄에서 돌이켜 하나님의 성결한 백성으로 빚으시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거룩한 사랑의 표현입니다. 고난은 당시에는 힘들지만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좋은 기회입니다. 만일 이를 깨닫지 못한 채 하나님께 원망과 불평만 하다가 돌아간다면 고향으로 돌아가도 여전히 과거의 죄악된 습관을 좇아 행하다가 더 큰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고국으로 돌아가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만나기까지 온 마음으로 구하고 찾아야 합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신앙생활을 통해 힘든 일상의 스트레스로 지친 몸과 마음에 힘과 위로를 얻고, 세상에서 받은 상처를 치유함 받고, 간절한 인생문제를 해결함 받기 위해서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 해결 자체를 목적으로 삼으면 안 됩니다. 한 가지 문제가 해결되면 또 다른 문제를 만나게 되고 사는 날 동안 문제가 끊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하나님을 만나는 통로가 됩니다. 문제를 통해 자신의 한계를 발견하게 되고 겸손히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습니다. 신앙생활을 하는 근본 목표도 하나님을 만나는 데에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만나고자 하는 분명한 목표와 방향이 있을 때 하나님께 나아가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하게 됩니다. 온 마음으로 구하며 하나님을 찾을 때 하나님께서 그런 사람의 기도를 들으시고 만나주십니다. 나의 근본문제인 죄문제를 해결해 주심으로 마음에 참된 평안과 지혜와 총명을 주셔서 하나님께 귀하게 쓰임 받는 믿음의 종으로 키워주십니다.
  희망찬 새해를 출발한지 벌써 2주가 지났습니다. 그런데 연초부터 들려오는 소식들은 별로 희망적이지 못한 소식들뿐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경제문제를 가장 시급한 문제로 보고 있고, 정부는 날마다 경제 대책들을 쏟아내고 있지만 미래는 여전히 어두워 보이기만 합니다. 캠퍼스 영적 환경도 날로 피폐하져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오래 전부터 매주 300팀 1대1을 위해 기도해왔지만 몇 년 째 1대1 팀 수가 늘지 않고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현실을 생각하면 소망이 생기지 않고 특별히 뾰족한 수가 없다는 것이 더 답답하게 만듭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신자들조차 소망을 잃고 현실 문제에 얽매이다 보면 점점 깊은 절망으로 빠져들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내게 부르짖으며 내게 와서 기도하면 내가 너희들의 기도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 시대가 힘들수록 내 안에 자리 잡고 있는 세상의 거짓된 소망에서 돌이켜 하나님 나라에 대한 소망을 굳게 붙들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을 만나고자 하는 소원 가운데 부르짖으며 기도할 때 나의 하나님을 깊이 만나고 하나님이 주시는 진정한 평안을 누릴 수 있습니다. 저희가 하나님께 나아가 간절히 기도하는 가운데 나의 하나님을 만남으로 희망찬 미래에 대한 비전을 보고 하나님의 뜻 안에서 귀하게 쓰임 받는 삶을 살기를 기도합니다.

II. 거짓 선지자들의 최후(15-23)
  15-23절은 유다에 남은 자들과 거짓 선지자들의 운명에 대한 예언입니다. 바벨론으로 끌려간 자들은 하나님께서 바벨론에서 선지자를 일으키셨다고 거짓말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골라야의 아들 아합과 마아세야의 아들 시드기야로서 하나님의 이름을 팔아 거짓을 예언하는 자들이었습니다(21). 하나님은 이들을 느부갓네살의 손에 넘겨서 그들의 눈앞에서 불살라 죽게 하십니다. 이는 그들이 어리석게 행하여 이웃의 아내와 간음하는 무서운 죄를 짓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백성들에게 거짓 희망을 말했지만 정작 자신들은 허무한 삶을 살아야 했기에 타락한 삶을 살 수밖에 없었습니다. 거짓 선지자들은 아무리 말을 그럴 듯하게 하여도 그들의 행동에서 본모습이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들은 결국 자신들의 죄로 인해 화형을 당하게 됩니다. 이 두 거짓 선지자의 죽음은 저주를 나타내는 하나의 속담이 되어, 어떤 사람을 저주할 때에 “여호와께서 너로 바벨론 왕이 불살라 죽인 시드기야와 아합 같게 하시기를 원하노라!”고 말하게 됩니다.
  바벨론으로 포로로 끌려가지 않고 유다에 남아있던 자들은 어떻게 됩니까? 16절에 보면 이들을 ‘다윗의 왕좌에 앉은 왕과 이 성에 사는 모든 백성’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이들은 대부분 유다 지파에 속한 자들로서 다윗의 왕좌가 존재하는 한 절대 망하지 않으며 잠시 환란이 있지만 곧 회복될 것이라고 믿고 하루 속히 그날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거짓 희망을 붙들고 믿음으로 살지 않는 이들에게 하나님은 칼과 기근과 전염병을 보내셔서 그들을 먹을 수 없는 썩은 무화과나무 같이 되게 하십니다. 그들을 세계 여러 나라 가운데에 흩어 학대를 당하게 하시고 저주와 경악과 조소와 수모의 대상이 되게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끊임없이 하나님의 종들을 보내셔서 그들을 돌이키려 하셨지만 끝까지 말씀을 듣지 않을 때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을 피할 수 없습니다. 이는 장소나 환경의 문제가 아니라 말씀을 듣는가 듣지 않는가의 문제입니다. 예루살렘에 남아 있더라도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않을 때 심판받게 되지만 바벨론에서 포로로 지내더라도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고 순종하는 자는 구원 받고 하나님의 놀라운 희망과 뜻 가운데 평안을 누리며 귀하게 쓰임 받는 삶을 살게 됩니다.

결론적으로, 하나님은 우리에게 평안을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시대가 힘들수록 내가 듣고 싶은 말, 위로의 말만 들으려하기보다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고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기를 기도합니다. 저희가 하나님 주신 소망을 붙들고 1대1 말씀 전파를 통한 제자 양성을 힘써 감당함으로 하나님이 주시는 희망찬 미래를 준비하는 삶을 살기를 기도합니다. 날마다 죄에서 돌이켜 회개하고 온 마음을 다해 간절히 부르짖어 기도함으로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이 주시는 진정한 평안과 참된 희망을 누리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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