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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nday Worship Message
주일예배메시지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9-01-20 (일) 12:35
분 류 열왕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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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열왕기상 제9강] 하나님의 세미한 소리
   
2019년 열왕기상 제9강                                                           오정훈

하나님의 세미한 소리

말씀/ 열왕기상 19:1-21
요절/ 열왕기상 19:12 “또 지진 후에 불이 있으나 불 가운데에도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더니 불 후에 세미한 소리가 있는지라.”

 오늘 말씀에는 절망과 침체에 빠진 엘리야와 승리의 계시를 주시는 하나님이 나옵니다. 하나님은 절망에 빠진 엘리야를 어떻게 도와주시고 회복시켜 주십니까? 이 시간 세미한 소리를 통해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만나므로 새 힘을 덧입고 사람을 세우는 역사를 힘 있게 섬겨나갈 수 있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1. 일어나서 먹으라(1-8)
  갈멜산 전투는 여호와 신앙의 빛나는 승리였고 아합을 비롯한 우상 숭배자들에게 엄청난 충격과 놀라움을 안겨다 주었습니다. 엘리야는 갈멜산 승리의 여세를 몰아 이스라엘에서 우상 숭배를 완전히 제거하고 다시 여호와 신앙을 세울 수 있을 것이라는 벅찬 기대감에 차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현실은 어떠하였습니까? 1절을 보십시오. 하늘에서 불이 내려온 것을 본 아합이 회개한 줄 알았는데 역시나 사람은 역시 쉽게 변하지 않는다고 엘리야가 어떻게 바알 선지자 450인을 죽였는지를 이세벨에게 전부다 일러 바쳤습니다. 이세벨은 아합 왕조의 실권자로 바알 신앙을 이스라엘에 퍼뜨린 장본인이요 바알 선지자 450명과 아세라 선지자 400명을 자기상에서 먹이고 제자양성한 사람이었습니다. 이 신앙에 방해가 되는 여호와의 선지자들은 거침없이 죽여 버렸습니다. 이 이세벨은 갈멜산에서 불이 하늘에서 내려왔다는 기적의 역사를 듣고도 조금도 두려워하거나 움츠려들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바알 신앙으로 더욱 불타올라 엘리야를 죽이겠다고 협박하고 나섰습니다. 2절입니다. "내가 내일 이맘 때에는 반드시 네 생명을 저 사람들 중 한 사람의 생명과 같게 하리라. 그렇게 하지 아니하면 신들이 내게 벌 위에 벌을 내림이 마땅하니라." 엘리야를 향한 이세벨의 증오심이 하늘을 찌를 듯 하였습니다. 그는 악의 화신이요 도저히 넘어설 수 없는 태산처럼 보입니다.
  이 엄청난 살기와 협박에 대한 엘리야의 반응이 어떠합니까? 3절입니다. “그가 이 형편을 보고 일어나 자기의 생명을 위하여 도망하여 유다에 속한 브엘세바에 이르러 자기의 사환을 그곳에 머물게 하고” 놀랍게도 갈멜산에서 바알 선지자들을 조롱하고 하늘에서 불이 내려오게 하던 담대하던 엘리야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한 순간에 두려움에 빠져 자기 생명을 위하여 도망치고 말았습니다. 이스르엘에서 브엘세바까지는 142km나 되는데 순식간에 간 것을 보면 그가 상당히 두려움을 느낀 것이 분명합니다. 엘리야의 현재 형편을 볼 때 너무나 절망적이고 두렵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갈멜산에서의 큰 승리에도 불구하고 아합과 이스라엘은 변화되기는커녕 독기를 품고 달려드는 이세벨을 보며 자신이 정말 뭘 했는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절망은 두려움으로, 두려움은 현실도피로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우리도 온 힘을 쏟아 큰 역사를 섬겨서 사람들이 변화되어 역사에 동참하고 동역자로 선 줄 알았는데 쓴 뿌리를 품고 힘든 소리, 불신의 말을 하는 것을 보면 힘이 쭉 빠지고 절망하여 두려움에 빠지게 됩니다. 창세기의 아브라함도 그랬습니다. 목숨 걸고 싸워 조카 롯을 구하는 큰 승리를 거두었는데 롯은 다시 소돔으로 돌아가고 자신의 자식문제는 전혀 해결되지 않는 것을 보며 큰 두려움과 손해의식에 빠져 하나님께 데모하였습니다. “내게 무엇을 주시려하시나이까? 내 상속자는 이 다메섹 엘리에셀이니이다.” 우리는 이런 절망과 침체에 빠진 사람들의 마음을 잘 이해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도 하루에 몇 번이고 절망에 빠지길 잘하기 때문입니다. 사실 엘리야도 우리처럼 쉽게 절망하고 두려움에 빠지는 우리와 같은 성정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약5:17)
  4절입니다. “자기 자신은 광야로 들어가 하룻길쯤 가서 한 로뎀나무 아래에 앉아서 자기가 죽기를 원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넉넉하오니 지금 내 생명을 거두시옵소서. 나는 내 조상들보다 낫지 못하니이다 하고” 그는 로뎀나무 아래 앉아서 죽기를 구했습니다. ‘넉넉하오니’ 이는 공동번역을 보면 ‘이제 다 끝났습니다.’는 뜻으로 살만큼 살았으니 이 꼴 저 꼴 안보고 죽는 게 낫겠다는 것입니다. 이제까지 여호와를 위해 목숨 걸고 싸우고 이스라엘을 책망하여 하나님께 돌이키려고 했는데 하나도 변화되지 않고 자신은 이전 선지자들보다 하나도 나을 것이 없어 보였습니다. 그래서 살아서 무엇하겠나 죽기를 간구하고 있습니다. 만약 여기서 그의 이야기가 끝난다면 너무나 슬프고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바로 이때가 하나님을 만날 때요 하나님의 역사가 새롭게 시작되는 때입니다. 하나님은 항상 절망과 두려움에 빠진 우리 인생들을 찾아오셔서 새롭게 시작하십니다. 5-7절을 다 같이 읽어보시겠습니다. “로뎀 나무 아래에 누워 자더니 천사가 그를 어루만지며 그에게 이르되 일어나서 먹으라 하는지라. 본즉 머리맡에 숯불에 구운 떡과 한 병 물이 있더라. 이에 먹고 마시고 다시 누웠더니 여호와의 천사가 또 다시 와서 어루만지며 이르되 일어나 먹으라. 네가 갈 길을 다 가지 못할까 하노라 하는지라.” 전에 노르웨이 진요셉 선교사님이 보낸 찬송시에 이런 구절이 있었던 것이 기억납니다. “로뎀 나무 아래 누워 있는 엘리야를 책망해서는 안됩니다.” 아마 본인도 힘들어서 누워 있을 때 쓴 시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그러나 보통은 이렇게 누워 있는 사람을 보면 한마디 하고 싶어집니다. “선지가가 이렇게 약해서 무슨 선지자야? 얼른 일어나!” 학생 때 장막을 했는데 그때 어떤 신입생 양이 수양회에서 은혜 받고 장막에 들어왔습니다. 아침 6시 일어나서 양식 먹고 기도하는 것이 중요한 일과였는데 이 형제는 연단이 안됐는지 항상 깨우러 가면 보란 듯이 이불을 뒤집어쓰고 일어나려 하지 않았습니다. 처음에는 피곤해서 그러려니 하고 봐줬는데 계속 그러는 것을 보고 화가 난 저는 분을 참지 못하고 그 형제의 목을 밟으며 말했습니다. “좋게 말할 때 빨리 일어나라!” 5분이 지나서 놀란 토끼눈을 하고 이 형제가 센터로 뛰어왔습니다. 하나님 역사는 연약한 자를 어루만져주고 위로하는 역사인데 저는 형제의 목을 밟고 말았습니다. 그래도 제가 목을 밟은 덕에 이 형제는 꾸준히 기도모임에 나와 말씀을 받고 변화되고 성장하였으니 이 분이 바로 서삼문 목자님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연약함을 체휼하지 아니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히4:15,16) 이는 우리 주님께서도 육체로 계실 때 눈물로 간구하며 하나님께 호소해야 할 만큼 괴로움을 당하셨기 때문입니다. 낙심한 사람, 절망에 빠진 사람은 말없이 어루만져주며 먹이는 수밖에 없습니다. ‘어루만져준다’는 것은 굉장히 상한 마음을 가지고 마음을 도닥거려주고 위로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도 실의와 절망에 빠진 제자들을 디베랴바다로 찾아오셔서 와서 조반을 먹으라 하시므로 그들을 위로하시고 구운 떡과 생선으로 먹이셨습니다. 먹이면 입이 열려서 말이 나오게 되고 관계성이 회복되게 됩니다.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고 불쌍히 여기는 마음으로 어루만져주고 먹이는 것, 그것이 하나님의 마음이요 목자가 해야 할 일입니다. 천사는 한번 먹고 마시고 다시 드러누운 엘리야를 어루만져주고 일어나 먹도록 하였습니다. 이는 그가 갈 길을 다 가지 못할까 염려하였기 때문입니다. 이에 엘리야가 일어나서 그 음식물의 힘에 의지하여 사십 주 사십 야를 가서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은 하나님께 이르는 먼 여정입니다. 그런 과정에서 때로는 절망과 침체로 로뎀 나무 아래 드러누울 때도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우리를 어루만져 주시고 생명의 말씀으로 먹이시므로 새 힘을 주십니다. 우리가 이 하나님을 힘입어 절망에 빠져 드러누운 사람들을 어루만져주고 영의 양식, 육의 양식으로 먹이므로 일으켜 세워 하나님께 이르게 하는 역사에 귀하게 쓰임받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2. 세미한 소리로 말씀하시는 하나님(9-21)
엘리야는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러 낙심과 절망 가운데 그 곳 굴에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그에게 “엘리아야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하셨습니다. 이는 책망의 음성으로 무엇을 찾으려고, 무슨 목적으로 여기에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가 낙심과 절망으로 침륜에 빠져 있기 원치 않으시고 다시 도전하길 원하셨습니다. 이는 우리는 뒤로 물러가 침륜에 빠질 자가 아니요 오직 영혼을 구원함에 이르는 믿음을 가진 자들이기 때문입니다.(히10:39) 엘리야의 대답이 무엇입니까? 10절을 다 같이 읽어보시겠습니다. “그가 대답하되 내가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 열심이 유별하오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주의 언약을 버리고 주의 제단을 헐며 칼로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음이오며 오직 나만 남았거늘 그들이 내 생명을 찾아 빼앗으려 하나이다.” 엘리야의 이 대답에는 이세벨에게 넘어가 자기편을 들어주지 않는 이스라엘 사람들에 대한 원망과 분노로 가득합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따르며 선지자들을 죽인 이스라엘의 죄를 낱낱이 고발하고 있습니다. 자기만 고생하고 자기만 특별한 열심으로 희생하다가 이제 죽게 되었으니 어떻게 여기 굴속에 숨어 있지 않겠습니까 하는 것입니다. 정말 특별한 열심을 가지고 하나님 역사를 섬기고 헌신했는데도 남는 것이 없을 때 이런 항변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하나님은 이런 그를 어떻게 도와주십니까? 11,12절 말씀을 다 같이 읽어보시겠습니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너는 나가서 여호와 앞에서 산에 서라 하시더니 여호와께서 지나가시는데 여호와 앞에 크고 강한 바람이 산을 가르고 바위를 부수나 바람 가운데에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며 바람 후에 지진이 있으나 지진 가운데에도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며 또 지진 후에 불이 있으나 불 가운데에도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더니 불 후에 세미한 소리가 있는지라.” 여호와께서 지나가실 때 크고 강한 바람이 불어 산을 가르고 바위를 부수었습니다. 또 바람 후에 지진이 있고 지진 후에 불이 일어났습니다. 강한 바람이 산을 가르고 바위를 부수며 하늘로부터 불이 내려오는 것 이 모든 것은 엘리야가 기대하는 권능의 역사였습니다. 엘리야는 하나님이 이런 하나님이 되어주시기를 기대했습니다. 사실 우상숭배의 죄가 만연한 엘리야 시대 사람들을 돌이키기 위해서는 하늘에서 불이 내려오고 강한 성령의 바람으로 딱딱한 사람들의 마음을 일거에 부숴버리는 그런 권능의 역사가 필요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강한 바람 뒤에도 지진과 불 뒤에도 거기 계시지 않으셨습니다. 거기 계시지 않으셨다는 것은 하나님 역사가 그런 역사만이 전부가 아님을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12b절입니다. “불 후에 세미한 소리가 있는지라.” 불 후에 세미한 소리가 있었습니다. 세미한 소리는 강한 바람, 불, 지진과 대조되는 아주 작은 소리, 부드러운 속삭임(gentle whisper)을 말합니다. 이는 말씀역사 곧 말씀을 통해 사람을 변화시키고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가리킵니다. 엘리야는 하늘로부터 불이 내려오게 하여 번제물을 사르고 비를 내리게 하는 이적을 행하므로 많은 사람을 놀라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권능의 역사가 사람들의 악한 심령을 변화시키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이로 인해 그 자신이 실의와 좌절감을 맛보아야 했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엘리야에게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임을 알려주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말씀만이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외적인 기적의 역사에 비하면 세미한 소리를 통한 역사는 드러나지 않고 굉장히 미미해 보입니다. 사람들은 그래서 병든 자가 고침 받고 오병이어로 오천 명을 먹이는 그런 역사가 있는 곳에 모이고 열광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가운데 이루고자 하시는 역사는 세미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을 만나고 변화되는 역사입니다. 이를 위해 먼저 절망과 침체에 빠진 엘리야에게 세미한 소리로 찾아오셨습니다. 역설적이지만 세상에 깊이 절망하고 세상으로부터 기대하는 것이 끊어질 때 오히려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이 들리게 됩니다. 바로 이 때 말씀이 심겨져 변화의 역사가 일어나게 됩니다. 당장 눈에 보이는 역사가 없더라도 세미한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되면 나에게 두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깨닫고 힘이 나게 됩니다. 인생의 모든 문제는 하나님과의 깊은 만남, 즉 교제를 통해서만 해결되기 때문입니다. 엘리야도 하나님의 산 호렙에서 하나님을 만남으로서 그의 모든 의문을 해소하며 실의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세미한 소리는 세상 소리보다 아주 작기 때문에 잘 들리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인터넷 스마트폰의 내 호기심을 끄는 소리, 트럼프 시진핑 같이 목소리 큰 사람의 소리만 들립니다. 그러므로 세미한 소리를 듣기 위해 세상의 소리를 차단하고 하나님께 주파수를 맞추고 겸손하고 간절한 마음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자 간절하게 귀 기울이면 세미한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합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간절히 찾고 부르짖는 자를 만나주시고 말씀하여 주시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보면 신앙생활의 성패는 하나님의 세미한 소리를 듣는가 듣지 못하는가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소리를 듣지 못하면 눈에 보이는 결과에만 집착해 무엇을 해주셨는가? 해주실 건가 하다가 절망합니다. 새해에는 우리가 눈에 보이는 결과보다 하나님의 세미한 소리 듣기에 힘쓰므로 그 가운데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새롭게 만남으로 힘 있게 하나님을 섬기는 종들이 되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13절을 보십시오. 엘리야는 그 세미한 소리를 듣고 겉옷으로 얼굴을 가리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하고 그 앞에 두려움을 갖게 된 것을 나타냅니다. 큰 역사 속에서 찾아보지 못한 하나님께서 세미한 소리 가운데 계신 것을 보고 두려움을 갖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그에게 소명의식을 일깨워주시기 위해 다시 질문하셨습니다. “엘리아야,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14절은 10절에서 반복된 그의 대답입니다. “내가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 열심이 유별하오니” 엘리야는 열심이 특심하였고 바알 숭배를 척결하기 위해 목숨을 걸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그의 특심한 열심으로도 이스라엘에 넘쳐나는 우상숭배죄악을 없앨 수 없었습니다. 이는 인간의 그 어떤 열심과 노력으로도 죄 문제를 결코 해결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에 관영한 죄악을 소멸시키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에 의해서만 가능합니다. 15,16절을 보십시오. “너는 네 길을 돌이켜” 이는 단순히 오던 길로 다시 돌아가라는 의미가 아니라 지금까지 가졌던 좌절과 절망에서 벗어나 소명 의식을 새롭게 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구체적으로 다메섹에 이르러 하사엘에게 기름을 부어 아람왕이 되게 하고 님시의 아들 예후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 왕이 되게 하며 사밧의 아들 엘리사에게 기름을 부어 엘리야를 계승하도록 명하십니다. 이 말씀은 갈멜산에서 850명을 상대하던 엘리야에게 너무나 작은 일로 보입니다. 겨우 왕2명에다가 선지자 1명 세우다니 보잘 것 없어 보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결코 작은 일이 아닙니다. 17절을 다 같이 읽어보시겠습니다. “하사엘의 칼을 피하는 자를 예후가 죽일 것이요, 예후의 칼을 피하는 자를 엘리사가 죽이리라.” 이들을 왕과 선지자로 세우는 일은 엘리야가 그토록 고대하던 아합과 이세벨 시대의 악을 심판함으로 공의를 세우는 엄청난 일입니다. 결국 한 사람 한 사람 세우는 것이 세상을 변화시키고 구원하는 길임을 알려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를 위해 아합에게 무릎 꿇지도 않고 입 맞추지도 않은 자 칠 천을 그 시대 남겨 두셨습니다. 칠천은 문자 그대로 칠천 명일수도 있고 이스라엘 믿음의 공동체를 계속해서 유지하기에 충분한 수 혹은 완전한 수를 가리킵니다. 하나님은 이 시대에도 바알에게 무릎 꿇지도 아니하고 입 맞추지 아니한 사람 칠천을 남겨 놓으셨습니다. 우리가 할 일은 이 사람들을 도와 말씀을 심고 하나님의 사람으로 세우는 것입니다. 사람을 말씀으로 도와서 세우는 것보다 더 강력하고 힘 있는 것은 없습니다. 그것이 세상을 변화시키는 힘입니다. 우리가 이를 믿고 영적 침체와 위기의 시대에 한 사람 심령에 말씀심고 믿음의 사람으로 세우는 소망의 역사를 줄기차게 섬겨나가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영접한 엘리야는 거기를 떠나 사밧의 아들 엘리사를 만나러 갔습니다. 엘리사는 열두 겨릿소, 24마리를 앞세우고 밭을 갈 만큼 여유 있는 집안의 아들이었습니다. 엘리야가 자기 겉옷을 엘리사 위에 던졌는데 이는 엘리사를 자신의 후계자로 지명한다는 상징적인 행위였습니다. 엘리사는 부모와 작별인사한 후 한 겨릿소를 잡고 소의 기구를 불살라 백성에게 주어 먹게 하고 엘리야를 따르며 수종들었습니다. 그가 농부였는데 소를 잡고 기구를 불태운 것은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해 전적으로 헌신하겠다는 결단의 표시였습니다. 우리도 역사 계승의 시대에 엘리사와 같이 하나님의 역사를 계승하여 하나님께 헌신하는 종들이 될 수 있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예전에 저는 일대일을 좀 많이 한 적이 있었습니다. 어떤 날은 하루에 일대일을 5팀씩 하던 날도 있었습니다. 그때는 역사가 있었고 여호와께서 강한 바람과 불과 지진으로 저를 통해 역사하심을 느꼈습니다. 그때 얼마나 저의 열심이 유별하였든지 말씀공부 하다가 졸기가 일쑤여서 횡설수설하길 잘하였습니다. 그래도 역사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과거의 역사에 비하면 요즘 몇 사람 돕는 것은 실로 너무나 작고 보잘 것 없는 일로 보여 열심을 내지 못했습니다. 거기다가 요즘 사람들은 아합과 이세벨 같이 완악하여 소망이 없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저는 이런 사람들을 피해 틈만 나면 탁구장이나 집을 굴 삼아 숨어 지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저에게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책망하셨습니다. 그리고 과거의 화려한 역사만 생각하여 침체에 빠져 있지 말고 현재 하나님께서 맡기신 사람을 한 사람 한 사람 세우라고 말씀하십니다. 저는 이 말씀에 기초해 사람을 세우는 것이 제가 해야 할 큰 사명임을 다시 영접하게 되었습니다. 특별히 지금까지 잘 지내온 김바울 이마태오 두 사람을 기도의 종 성경선생으로 올해는 꼭 세워야 하겠다는 방향을 잡게 되었습니다. 이 두 분이 저의 날개 그늘 아래서 아주 오랫동안 참 편하게 지냈는데 올해는 하나님 역사의 계승자로 엘리사처럼 부르심을 영접하고 특별히 일대일 성경선생으로 세워져서 쓰임 받게 하시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결론적으로, 하나님은 강한 바람과 불과 지진만으로 역사하지 않으시고 세미한 소리를 통해서도 역사하십니다. 이 세미한 음성을 들을 때 우리의 모든 의문이 해소되고 실의와 절망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영적 위기와 침체의 시기에 이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을 듣고 한 사람 한 사람을 세우고 변화시키는 소망의 역사를 힘써 섬겨나갈 수 있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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