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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nday Worship Message
주일예배메시지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9-01-27 (일) 12:52
분 류 열왕기상
첨부#1 2019년_열왕기상10강-1.hwp (64KB) (Down: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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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열왕기상 제10강] 내가 여호와인줄 알리라
   
 2019년 열왕기상 제10강

내가 여호와인줄 알리라

말씀/ 열왕기상 20:1-22:53
요절/ 열왕기상 20:28 “그 때에 하나님의 사람이 이스라엘 왕에게 나아가 말하여 이르되 여호와의 말씀에 아람 사람이 말하기를 여호와는 산의 신이요 골짜기의 신은 아니라 하는도다 그러므로 내가 이 큰 군대를 다 네 손에 넘기리니 너희는 내가 여호와인 줄을 알리라 하셨나이다 하니라”  

 오늘 말씀의 대부분은 아합 왕과 여호와 하나님과의 관계를 다루는 내용입니다. 각 사건들의 총 결론은 ‘내가 여호와인줄 알리라’는 것입니다. 이런 사건들을 통해 하나님은 역사를 주관하셔서 택한 백성을 구원하시는 구원의 하나님, 말씀대로 이루시는 언약에 신실하신 하나님, 우상숭배와 불순종을 심판하시는 공의의 하나님이심을 선포하십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우리 모두가 하나님은 여호와이심을 깨닫고, 여호와 하나님께 대한 믿음과 순종의 자세를 새롭게 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1. 아람과 이스라엘 간의 전쟁(20장)
  B.C. 856년 아람의 벤하닷 왕이 그의 군대를 모으고 32명의 왕들과 함께 사마리아를 에워싸고 그곳을 치고 사자들을 성 안에 있는 아합 왕에게 보내 위협하였습니다. 벤하닷은 ‘네 은금과 네 아내들과 네 자녀들의 아름다운 자도 내 것이라’ 하며 그를 굴복시키고자 하였습니다. 아합 왕은 급한 나머지 납작 엎드려 ‘왕의 말씀같이 나와 내 것은 다 왕의 것이니이다’ 하며 항복하였습니다.(1-4) 그러나 사신들은 다시 와서 벤하닷의 말을 전했습니다. ‘네 은금과 아내들과 자녀들을 넘기고, 다음 날에 또 신하들을 보내어 네 집과 네 신하들의 재산도 가져가겠다’고 협박하였습니다.(5,6) 아람과 이스라엘간의 전쟁은 아람 왕 벤하닷의 지나친 패권주의에서 발단되었습니다. 그는 아람의 여러 군소 도시 국가들을 하나로 통일하여 근동에서 큰 세력으로 부상하자 그 힘만 믿고 이스라엘을 송두리째 집어삼키고자 했습니다. 벤하닷이 막강한 군사력을 과시하며 진영을 치니 이스라엘은 미약하지만 대응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13절을 보십시오. 이런 판국에 하나님은 한 선지자를 보내셨습니다. “한 선지자가 이스라엘의 아합 왕에게 나아가서 이르되 여호와의 말씀이 네가 이 큰 무리를 보느냐 내가 오늘 그들을 네 손에 넘기리니 너는 내가 여호와인 줄을 알리라 하셨나이다” 아람 군사력은 이스라엘과 비교가 안 되는 큰 규모여서 아합 왕이 이길 수 없는 것은 너무나 당연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아람 군대를 아합 왕에게 넘기셔서 이 전쟁을 통하여 아합 왕과 백성들에게 ‘하나님은 여호와이시다’는 사실을 알게 하겠다고 하셨습니다. 이들이 여호와 하나님이 참 신이시오 구원자가 되심을 알게 되기를 원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에게 전쟁의 승패는 군사력에 있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께 달려 있음을 보여주고자 하신 것입니다.
  위로와 힘을 얻고 정신을 차린 아합 왕은 ‘누구를 통하여 그렇게 하시리이까?’ ‘누가 싸움을 시작하리이까?’ 물었습니다. 하나님은 각 지방 고관의 청년들로 할 것이요, 전쟁의 시작은 아합 왕이 직접 나서야 함을 지시하셨습니다.(14) 15절을 보십시오. 아합 왕이 각 지방 고관의 청년들을 계수하니 232명이었고 그 외에 이스라엘의 모든 자들이 7,000명이었습니다. 겨우 이런 미약한 힘으로 십만 명 이상의 막강한 아람 군대에 맞서 싸우러 나간 것입니다. 그러나 이들은 기드온 300 용사와 같이 잘 훈련된 용맹한 자들이었습니다. 16절을 보십시오. 그들이 정오에 나갔을 때 벤하닷은 승리는 이미 따 놓은 것으로 여기고 장막에서 돕는 왕 32명과 함께 술에 취해 있었습니다. 벤하닷은 얼마 안 되는 고관들의 청년들이 먼저 나오는 것을 보고 화친하러 오는 것으로 여겨 화친하러 올지라도 사로잡고 싸우러 올지라도 사로잡으라고 단단히 명했습니다.(17,18) 그러나 놀랍게도 청년들과 그들을 따르는 군대가 성읍에 가서 각각 적군을 쳐 죽이매 긴장을 풀고 있던 아람 사람들이 혼쭐이 나서 도망하기 시작하더니 이스라엘의 추격을 받아 전세가 바뀌자 벤하닷은 말을 타고 도주해버렸습니다. 이는 하나님이 이루신 기적의 역사였습니다. 또한 역시 훈련 받은 고관 청년들이 일어서니 무서운 대적이 없었습니다. 다시 한 번 훈련 받은 청년들의 위력을 보여주는 멋진 장면이었습니다. 우리 가운데도 이런 청년들이 있음을 인해 힘이 나고 든든합니다. 아멘이지요? 하나님은 이들을 귀하게 쓰셔서 각 사람이 힘을 발휘하게 하시고 크게 이기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이 사건으로 하나님이 사랑과 구원의 하나님 여호와가 되셔서 승리를 주신 것을 마음에 새기도록 하셨습니다.
  22절을 보십시오. 아람과의 1차 전투에서 대승을 거둔 후 하나님은 다시금 선지자를 아합 왕에게 보내셔서 해가 바뀌면 아람 왕이 다시 치러 올 것이니 한번 승리했다고 자만하지 말고 철저히 대비하도록 방향을 주셨습니다. 아람 군대는 선지자의 예언대로 해가 바뀌니 그 동안 나름대로 패배의 원인을 분석하고 잃어버린 군사를 보충하고 왕 대신에 총독들을 세우고 말과 병거도 보충하고, 평지에서 싸우면 그들보다 강해진다는 확신으로 아벡으로 올라와 이스라엘 군대와 싸우려 만반의 준비를 하였습니다.(25) 이스라엘 군대는 또 다시 막강한 아람 군대와 싸워야 했습니다. 그런데 이때도 이스라엘의 소집된 전력은 두 무리의 적은 염소 떼와 같고 이에 비해 아람 사람들은 그 땅에 가득하였습니다. 두 무리의 적은 염소 떼는 본래의 한 무리의 떼로부터 떨어져 나와 배회하는 작은 무리를 의미하는데 이는 이스라엘의 군대는 매우 작은 병력임을 표현하는 말입니다. 그러니 이스라엘 백성들은 얼마나 두려웠겠습니까? 바로 이때 하나님은 주의 종을 통해 다시금 여호와의 말씀을 전해주셨습니다. 28절을 다 같이 읽겠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에 아람 사람이 말하기를 여호와는 산의 신이요 골짜기의 신은 아니라 하는도다 그러므로 내가 이 큰 군대를 다 네 손에 넘기리니 너희는 내가 여호와인 줄을 알리라 하셨나이다 하니라” 하나님은 재차 이 전쟁을 통해, 하나님은 일개 한 지역의 신이 아닌 천지를 창조하시고 다스리시는 만군의 하나님이시오 구원의 하나님이심을 보이시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와가 참 하나님이심을 믿도록 하신 것입니다.
  아람과 이스라엘은 6일 동안 서로 탐색전을 벌리다가 7일째 전투가 시작되었는데 이스라엘이 하루에 아람 보병 10만 명을 죽이는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남은 자들은 아벡으로 도망하여 성읍에 들어갔는데 들어가자 성벽이 무너져 남은 자 27,000명도 깔려죽고 벤하닷은 겨우 도망하여 성읍에 이르러 골방으로 들어가는 비참한 지경이 되었습니다.(30) 이는 하나님이 말씀하신 대로 아람의 큰 군대를 아합 왕의 손에 넘기셔서 대승을 거두게 하셨기 때문이었습니다. 아람이 아무리 재정비를 철저히 준비하여도 하나님이 넘기시니 세상 힘은 아무 힘을 못 쓰고 무너져버렸습니다. 하나님은 이때도 이들이 하나님이 여호와이심을 깊이 체험케 하셨습니다. 우리에게도 세상의 막강한 세력, 사탄의 위협적인 세력은 마치 벤하닷의 모습처럼 두려움을 심습니다. 그러나 때마다 하나님의 사람을 보내사 하나님께 대한 믿음을 심으시고 하나님이 사랑과 구원의 여호와이심을 체험하게 하실 줄 믿습니다. 우리가 연약한 우리 모습만 보지 않고 “내가 여호와인줄 알리라” 하신 말씀을 믿는 믿음으로 승리하는 종들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그러면 두 번이나 완전히 전멸당한 아람군대는 무엇을 하고 있었습니까? 31절을 보십시오. 아람의 신하들이 벤하닷에게 이스라엘 집의 왕들은 인자한 왕이라 하니 만일 우리가 허리에 굵은 베를 동이고 테두리를 머리에 쓰고 참회하는 모습으로 이스라엘 왕에게 나가면 혹시 왕의 생명을 살리리라 조언하였습니다. 신하들은 이를 위해 겸비한 모습으로 아합 왕에게 나아와 ‘왕의 종 벤하닷이 내 생명을 살려 달라’고 간청한다고 전했습니다. 아합 왕이 이를 반가워하며 ‘그는 내 형제이니라’하니 그들도 벤하닷은 왕의 형제니이다 하자 그를 인도하여 오라고 하여 벤하닷을 자기 병거에 올렸습니다. 사실 전쟁의 결말은 적군의 우두머리가 처형되는 것으로 끝나는데 아합 왕은 벤하닷과 화친조약을 궁리하고 있었습니다. 겨우 살아난 벤하닷은 자기 아버지가 빼앗은 모든 성읍을 돌려주고 아합 왕을 위하여 다메섹에 아합의 거리를 만들어줄 것을 약조하였습니다. 그러자 아합 왕은 “...내가 이 조약으로 인해 당신을 놓으리라 하고 이에 더불어 조약을 맺고 그를 놓았더라”(34b) 하였습니다. 이렇게 아합은 자기 마음대로 원수 벤하닷을 살려주고 대신에 자신은 실리를 챙기고자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는 하나님 앞에 큰 죄였습니다. 아합 왕은 온전한 승리를 주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해야 했습니다. 아합 왕이 ‘내가 여호와인줄 알리라’ 하신 말씀을 영접하였다면 하나님의 뜻을 찾아 순종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께 대한 인식이 없었습니다. 승리를 주신 하나님을 벌써 잊고 승리 후에 더욱 실리와 유익을 얻는데 정신이 없었습니다.
  이때 하나님은 한 선지자를 보내셔서 아합의 죄를 깨우치십니다. 35-42절 말씀은 한 선지자가 아주 특이한 방법으로 아합 왕에게 하나님의 심판의 메시지를 전하는 내용입니다. 한 선지자가 하나님의 명령을 받아 다른 선지자에게 ‘너는 나를 치라’ 하였는데 그는 차마 친구요 같은 동료를 칠 수 없었던지 그 사람 치기를 싫어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는 것이므로 결국 그는 심판을 받아 사자에게 물려죽었습니다.(36) 그 선지자가 또 다른 사람을 만나 ‘너는 나를 치라’ 하자 그 사람은 있는 힘을 다해 선지자를 치되 상하도록 쳐서 눈탱이가 밤탱이가 되게 하였습니다.(37) 그는 인본주의, 이해관계를 떠나 하나님의 말씀에 단순히 순종하였습니다. 심한 상처를 입은 선지자는 수건으로 자기 눈을 가리고 전쟁에서 부상당한 사람처럼 자연스럽게 변장하고 길가에서 아합 왕을 만나 비유를 들어 말했습니다. 한 사람이 자기에게 포로를 데리고 와서 감시하라고 하면서, 만일 포로가 도망가면 생명을 내놓던지, 아니면 노동자가 한 평생 종살이를 해도 벌 수 없는 큰 금액인, 은 한 달란트를 내놓아야 한다는 명령을 받았는데 포로는 감시가 허술한 틈을 타서 도망을 갔다고 말했습니다. 아합 왕은 생각할 여지도 없이 ‘네가 스스로 결정하였으니 그대로 당하여야 하리라’ 명쾌한 대답을 하였습니다. 그러자 선지자는 급히 눈을 가린 수건을 벗어 자신이 선지자임을 밝히고 하나님의 말씀을 아합 왕에게 전하였습니다. 42절을 다 같이 읽겠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멸하기로 작정한 사람을 네 손으로 놓았은즉 네 목숨은 그의 목숨을 대신하고 네 백성은 그의 백성을 대신하리라 하셨나이다” 선지자는 자기 나름대로 벤하닷을 놓아준 아합 왕의 죄로 인해 벤하닷을 대신하여 아합 왕이 죽게 될 것이라 전하였습니다. 아합 왕은 믿을 수 없는 큰 승리에 도취되어 현실적인 유익을 구하고자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순종하지 않아 심판을 받게 됨을 깨우쳤습니다. 아합 왕은 이런 심각한 문제 앞에서도 잠시 답답해하다가 또 다시 탐심의 죄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2. 나봇의 포도원을 탈취한 아합 왕(21장)
  1절을 보십시오. 아합 왕이 벤하닷 왕과 싸워 승리한 후 그는 나봇이란 사람의 포도원을 보고 탐심이 발동하여 그것을 취하고자 하였습니다. 당시 이스르엘 사람 나봇에게 포도원이 있었는데 아합의 왕궁에서 가까웠고, 이스르엘은 경치가 아름답고 비옥한 보기 드문 평지인데다 수도인 사마리아에서도 가까운 곳이어서 나봇의 포도원은 아합이 탐낼만한 것이었습니다. 나봇은 ‘열매’ 또는 ‘생산하다’라는 의미의 이름으로 포도를 생산했던 그에게 꼭 맞는 이름이었습니다. 아합은 그의 포도원을 탐내어 나봇에게 ‘네 포도원이 내 왕궁 곁에 있으니 내게 주어 채소밭을 삼게 하라 내가 그 대신에 그 보다 더 아름다운 포도원을 네게 줄 것이요 만일 네가 좋게 여기면 그 값을 돈으로 네게 주리라’(2) 제안을 했습니다. 왕의 제안에 웬만한 사람이라면 내놓았을 텐데 나봇은 달랐습니다. 3절을 다 같이 읽겠습니다. “나봇이 아합에게 말하되 내 조상의 유산을 왕에게 주기를 여호와께서 금하실지로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땅은 근본 여호와의 소유이며 가문에 맡겨주신 하나님의 기업으로 믿었습니다.(레25:23) 그러므로 함부로 땅을 사고 팔 수가 없었습니다. 여기서 나봇의 굳건한 여호와의 신앙을 볼 수 있습니다. 나봇은 비록 왕의 명령일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앞세워 거절하였습니다. 그는 하나님께 받은 기업을 귀하게 여겼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고자 하였습니다. 나봇은 팥죽 한 그릇에 장자의 명분을 팔아버린 에서와 아주 대조됩니다. 비록 북이스라엘이 타락하였지만 나봇과 같이 심지가 곧고 하나님이 맡기신 기업을 목숨처럼 지키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나봇에게 거절당한 아합 왕은 마음이 상하여 드러누워 음식도 먹지 않았습니다. 마치 떼 부리는 어린아이 같았습니다. 이세벨은 아합이 상심한 이유를 알게 되자 아합이 왕권을 가진 자이면서도 자기 뜻대로 하지 못하는 것을 답답해하면서도 자기가 나봇의 포도원을 왕께 드리겠다고 큰 소리 치고는 곧 바로 음모를 꾸몄습니다. 그는 아합의 이름으로 편지를 쓰고 인을 치고 봉하여 나봇과 함께 사는 성읍 장로와 귀족들에게 보냈습니다. 그 편지 내용은 금식을 선포하고 나봇을 백성 가운데 높이 앉힌 후에 불량자 두 사람을 시켜 나봇이 하나님과 왕을 저주했다고 거짓증거 하여 돌로 처 죽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이를 전달 받은 성읍 장로들과 귀족들은 이세벨이 시키는 대로 나봇을 모함하였습니다. 결국 나봇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조상들로부터 물려받은 기업을 지키려다가 돌에 맞아 죽었습니다. 아합의 탐심과 그 탐심을 이루기 위해 거짓 음모를 꾸민 이세벨과 악한 일에 동조한 장로들과 귀족들을 볼 때 이스라엘이 얼마나 총체적으로 죄의 모습으로 타락하였는가를 보여줍니다. 15,16절을 보십시오. 나봇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아합 왕은 곧 바로 일어나 나봇의 포도원을 차지하기 위해 그곳으로 내려갔습니다. 탐심 때문에 경건한 하나님의 사람을 죽게 한 아합은 큰 죄를 인식하지 못하고 그저 포도원을 차지하는 데만 정신이 팔린 무지한 자였습니다.
  하나님은 아합이 나봇의 포도원을 빼앗은 것을 아시고 선지자 엘리야를 통해 심판의 메시지를 주셨습니다. 19절을 보십시오. “...네가 죽이고 또 빼앗았느냐? 개들이 나봇의 피를 핥은 곳에서 개들이 네 피 곧 네 몸의 피도 핥으리라...” 하나님은 아합이 나봇을 죽인 장본인이라 하십니다.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재앙을 네게 내려 너를 쓸어버리되 네게 속한 남자는 이스라엘 가운데 매인 자나 놓인 자를 다 멸할 것이요 또 네 집이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집처럼 되게 하고 아히야의 아들 바아사의 집처럼 되게 하리니 이는 네가 나를 노하게 하고 이스라엘이 범죄하게 한 까닭이니라”(21,22) 선지자 엘리야는 이세벨에 대해서도 개들이 이스르엘 성읍 곁에서 이세벨을 먹을지라 하셨습니다.(23,24) 하나님이 이들을 이렇게 무섭게 심판하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20b절을 보십시오. “...그가 자신을 팔아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으므로” 이는 아합이 탐욕의 죄에 자신을 팔아서 하나님 앞에서 악을 행하였기 때문이라 하셨습니다. 여기에는 이세벨의 악한 영향력이 컸습니다. 25절을 다 같이 읽겠습니다. “예로부터 아합과 같이 그 자신을 팔아 여호와 앞에서 악을 행한 자가 없음은 그를 그의 아내 이세벨이 충동하였음이라” 아합 왕의 범죄가 유례없이 극악한 것은 이세벨의 충동질의 결과라는 것입니다. 아합 왕은 바알 숭배자로서 영적으로 무지하였고 정치적 실리에는 밝으나 내면에 탐심이 많고 심약하여 충동되기 쉬운 자였습니다. 그런데 강력한 이세벨의 충동을 받으니 그는 하나님과 멀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무엇보다 심령에 하나님의 말씀이 없으니 악한 세력, 죄의 세력에 충동될 수밖에 없었습니다.(26)
  27절을 보십시오. 아합이 이 모든 말씀을 들었을 때 그의 옷을 찢고 굵은 베로 몸을 동이고 금식하고 굵은 베에 누우며 또 풀이 죽어 다녔습니다. 그의 회개는 비록 일시적이었지만 하나님은 그의 겸비함을 보시고 재앙을 유보해주셨습니다.(29) 이는 하나님이 회개를 얼마나 기뻐하시는지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에스겔 33:11절은 말씀합니다.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나는 악인의 죽는 것을 기뻐하지 아니하고 악인이 그의 길에서 돌이켜 떠나 사는 것을 기뻐하노라” 북이스라엘에 아합 왕이 있었다면 남 유다에는 므낫세 왕이 악한 왕이었습니다.(왕하 21:13) 그런데도 하나님은 므낫세 왕이 회개기도 할 때 진노를 누그러뜨리셨습니다.(대하 33:12,13) 죄인이 심판받는 것은 그가 지은 죄 때문이 아니라 그 죄를 회개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어떤 죄인이라도 자기 죄를 인정하고 하나님 앞에서 겸비케 된 자에게 은혜를 베푸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 찬양 드립니다.

3. 아합 왕의 최후(22장)
  1절을 보십시오. 아합이 아람왕 벤하닷을 돌려보낸 지 3년이 지났습니다. 이때 유다의 여호사밧 왕이 이스라엘 왕에게 내려갔습니다. 여호사밧 왕은 남 유다 왕국의 3대 종교 개혁자 중 한 사람으로서 경건한 왕이었는데 한 가지 잘 못한 것은 바알 숭배자인 아합 가문과 혼인함으로 인척 관계를 맺은 것입니다.(대하18:1) 이런 이유 때문에 여호사밧 왕이 이스라엘 왕에게 내려갔습니다. 마침 그때 아합 왕은 그의 신하들과 길르앗 라못 땅에 대해 의논하고 있었습니다. 이 땅은 본래 이스라엘의 성읍이었으나(신4:43) 아람에게로 넘어갔다가 지난 번 전쟁에서 패한 벤하닷 왕이 이 땅을 돌려주겠다고 약속을 했지만 3년이 지나도록 돌려주지 않았습니다. 아합은 이 땅을 탈환하고자 여호사밧에게 이 전쟁에 참여해줄 것을 요청하자 여호사밧은 먼저 여호와의 뜻을 묻고자 하였습니다.(5) 이에 아합 왕은 400명의 선지자들을 모아 길르앗 라못에 가서 싸우랴 말랴 물었습니다. 그런데 이들은 하나같이 하나님께서 그 성읍을 왕의 손에 넘기시리라 하며 왕이 듣기 원하는 말을 했습니다.(6) 심지어 그나아나의 아들 시드기야는 자기를 위하여 철로 뿔들을 만들어 ‘여호와의 말씀이 왕이 이것들로 아람 사람을 찔러 진멸하리라’ 퍼포먼스를 하면서 왕에게 듣기 좋은 말을 하였습니다.(11) 하지만 여호사밧은 이들이 믿음직스럽지 못해 이외에 물을만한 여호와의 선지자가 없는지 찾았습니다. 그러자 아합 왕은 마지못해서 이믈라의 아들 미가야가 있는데 그는 한 번도 자기에게 좋은 일을 예언한 적이 없기 때문에 그를 미워한다고 밝혔습니다. 이렇게 아합처럼 듣기 좋은 말을 하는 사람만 좋아하고 진실을 말하는 사람을 싫어하면 타락의 길로 갈 수밖에 없습니다. 여호사밧은 한마디로 아합 왕의 말을 잘랐습니다. ‘왕은 그런 말씀을 마소서’ 하며 미가야 선지자를 부르게 하였습니다.
  미가야를 부르러 간 사신은 다른 선지자들처럼 길한 말을 하라고 귀띔을 해주었는데 미가야의 대답이 무엇입니까? 14절을 다 같이 읽겠습니다. “여호와께서 살아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여호와께서 내게 말씀하시는 것 곧 그것을 내가 말하리라” 선언했습니다. 15절을 보십시오. 아합 왕이 정식으로 미가야에게 우리가 길르앗 라못으로 싸우러가랴 또는 말랴 묻자 그는 이상하게도 지금까지 거짓 선지자들의 말과 똑같이 대답하였습니다. 그러자 아합 왕이 화를 내면서 진실을 말하라고 다그치자 미가야는 자기가 본 실상을 말했습니다. 그것은 아합이 이번 전쟁에서 패하여 죽게 될 것이라는 것이었습니다.(17) 그러자 아합 왕은 예상대로 그는 흉한 것을 예언하는 자라고 불평하였습니다. 그러나 미가야는 분명하게 ‘그런즉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소서’(19a) 명했습니다. 그리고 선지자들이 똑같이 올라가 승리를 얻으라고 한 것은 하나님이 거짓말 하는 영을 선지자들의 입에 넣으셨고 왕에 대해서는 화를 말씀하셨음을 가르쳐주었습니다. 결국 아합 왕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참말을 하는 미가야를 자신이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올 때까지 감옥에 가두고 고생의 떡과 고생의 물을 먹이라고 명령하였습니다.(27) 그러자 미가야는 “...왕이 참으로 평안히 돌아오시게 될진대 여호와께서 나를 통하여 말씀하지 아니하셨으리이다...” 하며 아합이 결코 살아서 돌아오지 못할 것을 또 한 번 경고하였습니다.(28a) 그러나 아합은 이 최후의 경고마저도 묵살하고 나갔다가 최후를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아합과 미가야의 대화를 백성들도 다 듣게 함으로써 백성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작정하신 일의 성취를 보고 각성하도록 촉구하였습니다.(28b)
  29-40절은 아합의 비참한 최후에 대해 기록하고 있습니다. 아합 왕은 출전하면서 미가야의 예언을 무시하면서도 내심 불안하여 왕복은 여호사밧에게 입히고 자신은 일반 병사로 변장하여 전쟁터로 들어갔습니다.(30) 그런데 아람 왕은 병거의 지휘관 32명에게 오직 이스라엘의 왕만 목표로 삼아 싸우라는 명령을 내렸습니다.(31) 이에 아람군대 병거의 지휘관들은 왕복을 입은 여호사밧이 이스라엘의 왕인 줄 알고 그를 공격하였는데 여호사밧이 소리를 지르매 여호와께서 그를 도우시며 하나님이 그들을 감동시키사 그를 떠나가게 하셨습니다.(역대하18:31) 그런데 어찌하든지 살아남고자 변장을 한 아합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34-36절을 다 같이 읽겠습니다. 한 사람이 무심코 활을 쏘았는데 그 화살이 이스라엘 왕의 갑옷 솔기를 맞힌 것이 치명상이 되어 맹렬한 전투에서 치료한번 받지 못하고 저녁 무렵에 전사하게 되었습니다. 아합이 변장하여 아람 사람들을 속이면 안전할 줄 알았지만 하나님의 심판은 피할 수 없었습니다. 전쟁이 끝나고 사람들은 그의 시체를 가지고 사마리아로 돌아와서 장사하였습니다. 38절을 다 같이 읽겠습니다. “그 병거를 사마리아 못에서 씻으매 개들이 그의 피를 핥았으니 여호와께서 하신 말씀과 같이 되었더라 거기는 창기들이 목욕하는 곳이었더라.” 아합은 일시적으로 회개하였지만 근본적으로 회개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은 죄로 징계를 받아 비참한 죽음을 맞이하였습니다.
  41절을 보십시오. 이스라엘의 아합 왕 제 4년에 유다 왕이 된 여호사밧은 35세에 왕이 되어 25년 동안 하나님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였으나 산당을 폐하지는 않았습니다. 여호사밧이 책망 받을 일은 정략적 결혼을 통해 아합과 연합한 것이었습니다. 이로 인해 60년간의 분열된 남 유다와 북이스라엘은 겉으로 평화를 이루었으나 영적으로는 이세벨의 딸 아달랴에 의해 바알 신앙을 퍼뜨리게 되었습니다. 또한 여호사밧과 아합의 아들 아하시야와의 상업적 동맹관계도 하나님이 주권적으로 간섭하셔서 오빌로 가는 배를 파선시키셔서 여호사밧이 우상 숭배자와 친밀한 교제를 더 이상 나누지 못하게 하셨습니다.(대하 20:36,37) 여호사밧은 영적으로 훌륭했으나 인본주의와 혼합주의 세력을 끊지 않아 그의 아들 여호람을 아합의 집과 같이 되게 하였습니다. 한편 북이스라엘 왕 아합의 아들 아하시야가 왕이 되었으나 조상들의 우상숭배의 길로 행했습니다.(51) 이는 조상들의 우상숭배의 악영향이 대대로 이어진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상에서 하나님은 아합 왕과 이스라엘에게 사건 사건을 통하여 여러 선지자를 통하여 반복하여 “내가 여호와인 줄을 알리라”하신 말씀을 주시고 하나님을 인식하도록 도우셨습니다. 하나님이 여호와인줄 안다는 것은 하나님이 역사의 주권자시오 진정한 구원자가 되심을 믿는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믿는 사람들도 하나님이 여호와이심을 깨닫지 못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보다 자기영광을 취하고 하나님을 의지하기보다 성실과 의지로 자기 인생을 구원코자 헛된 노력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여호와이심을 알면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고자 할 것이요 하나님 앞에서 내 속에 탐심과 우상숭배와 불순종의 죄를 회개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지난 삶을 통해 하나님이 여호와인줄을 체험케 하셨습니다. 건강문제를 통하여, 성적이나 진급 문제를 통하여, 때로는 나의 허물과 실수를 감당해주신 일을 통하여, 때로는 나의 인생문제를 해결해주심을 통하여 내게 하나님이 사랑과 구원의 하나님이심을 알게 하셨습니다. 이 하나님 앞에 우리는 어떻게 살고 있습니까? 은혜는 벌써 잊고 아합처럼 하나님이 주신 승리를 이용해 자기만족, 자기 유익, 자기 욕심을 채우며 살고 있지 않은가 돌아보아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이 나의 여호와이심을 믿고 순종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종들로 살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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