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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nday Worship Message
주일예배메시지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9-03-03 (일) 12:36
분 류 요한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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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요한일서 제5강] 세상을 이기는 믿음

  2019년 요한일서 제5강                                                            이인구

세상을 이기는 믿음

 말씀/요한일서 5:1-21
 요절/요한일서 5:4b,5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가 아니면 세상을 이기는 자가 누구냐”
 
 사도요한은 요한일서1-4장에서 사랑에 대해 증거했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고 또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을 때 우리는 진정한 사랑을 할 수 있습니다. 요한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신자가 서로 사랑해야 함을 강조했습니다. 이제 요한일서의 마지막 장인 5장에서는 사랑의 근원이 되는 믿음에 대해 언급합니다. 신자는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믿음을 가질 때 세상을 이길 수 있다고 말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세상을 이길 수 있는 진정한 믿음을 배우고 또 믿음으로 세상을 이길 수 있길 기도합니다.

  1절을 보십시오.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자는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이고 하나님과 다른 신자들을 사랑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입니다. 4절을 보십시오. “무릇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는 믿음으로 세상을 이긴다고 했습니다. 어떤 믿음으로 세상을 이길 수 있습니까? 어떤 운동선수처럼 ‘나는 할 수 있다!’는 자기 확신으로 세상을 이길 수 있습니까? 사람은 누구나 한 번 밖에 없는 인생을 성공적인 인생, 승리의 인생을 살기를 원합니다. 하지만 승리의 인생은 쉽게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인생과 인류역사는 서로 이기기 위한, 승리하기 위한 경쟁과 대결의 역사입니다. 그것은 개인뿐 아니라 기업과 나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얼마 전 중국과 미국이 정상 회담을 할 때 중국의 화웨이 부회장이 (금융사기, 기술 절취 등의 혐의로) 미국정부에 의해 체포됐습니다. 화웨이는 중국의 세계최대 통신장비업체로 5G기술 선두주자입니다. 5G기술은 기존보다 데이터 속도나 용량을 획기적으로 개선한 기술로 5G기술이 있어야 미래 자율 주행차, 인공지능로봇, 사물 인터넷 등 미래 4차 산업을 이끌 환경을 만들 수 있고 모든 미래기술의 시작점입니다. 이 사건은 (5G기술 국제표준을 선점하기 위한 싸움으로) 치열한 미중 무역전쟁의 한 면을 보여줍니다. 더 나아가 미래의 세계 패권을 누가 잡느냐의 치열한 패권 싸움입니다. 과거에는 힘센 군사들이 많아 군사력이 큰 쪽이 이기는 싸움을 했지만 이제는 첨단기술력을 가지고 돈과 경제력이 큰 쪽이 이깁니다. 한국은 두 강대국사이에서 외줄타기를 하며 싸움에서 이기지는 못해도 최소한 패배하지 않고자 노력합니다. 이번 3월 1일은 과거 일제에 맞서 나라의 독립을 외치던 삼일 만세운동을 한 지 100년이 되는 때입니다. 100년 전 ‘울밑에서 선 봉숭아’처럼 강대국들 사이에서 이리저리 치이며 나라를 뺏긴, 한 많은 역사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 우리 백성들은 그동안 쉼 없이 달려왔습니다. 그런 피나는 노력으로 짧은 기간 동안 놀라운 경제적, 문화적 발전을 이루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외적인 발전 이면에 많은 그늘이 생겼습니다. 아이가 태어나 말을 배우고 기기 시작할 때부터 인생의 승리를 위한 경쟁이 시작됩니다. Sky 캐슬에 들어가기 위한 경쟁과 싸움은 긴 인생 경주의 시작에 불과합니다. 대학입학부터 아니 태어난 환경에서부터 인생의 winner와 loser의 서열이 세워집니다. 최근에 loser들은 죽은 후 수도권에 묻힐 납골당 자리구하기도 어려워졌습니다.
  어떻게 우리는 이런 세상에서 살아남고 또 승리하는 인생을 살 수 있습니까? 싸움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먼저 나와 세상의 실체를 알아야 합니다. 손자병법에 ‘지피지기면 백전불태’라고 했습니다. 즉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번 싸워도 위태롭게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나와 상대방의 전력을 분석해서 내가 한참 부족하면 빨리 도망치든지 아니면 먼저 머리를 숙이고 들어가 종노릇하는 것이 현명한 방법입니다. 그럼 신자의 경쟁대상인 세상은 어떤 상대입니까? 세상은 하나님을 믿지 않을 뿐 아니라 하나님을 대적하는 곳입니다. 세상은 하나님의 선한 뜻 가운데 지음 받았지만 죄를 지어 하나님을 떠남으로 사단의 지배아래 들어갔습니다. 하나님 없는 세상은 마치 약육강식이 지배하는 정글의 세계처럼 이기적이고 육신적이고 물질적입니다. 이런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 자연히 이기적이 되고 탐욕적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럼 세상과 싸우는 나는 어떤 존재입니까? 내가 누구인지 어디에 속했는지 알지 못한다면 이미 세상과의 싸움에서 지고 있는 것입니다. 다시한번 4절을 보십시오. “무릇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나는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입니다. 즉 세상에서 하나님께 선택받은 자입니다.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나와 세상과의 싸움은 하나님과 사단과의 싸움의 대리전입니다. 하지만 세상에 살면서 순간순간 내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을 잊을 때가 많습니다. 구원의 은혜를 잊을 때가 많습니다. 내가 어떻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까? 5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가 아니면 세상을 이기는 자가 누구냐” 신자는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시오 하나님께서 이 땅에 보내신 구원자임을 믿고 영접함으로 죄 사함 받아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났습니다.
  그러면 신자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오 구원자라는 것을 믿을 수 있는 증거는 무엇입니까? 6절을 다 같이 읽겠습니다. “이는 물과 피로 임하신 이시니 곧 예수 그리스도시라 물로만 아니요 물과 피로 임하셨고 증언하는 이는 성령이시니 성령은 진리니라”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요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증거해 주는 세 가지는 물과 피와 성령입니다. 첫째, 물. 이것은 예수님께서 공생애(복음역사)를 시작하실 때 세례요한에게 물세례를 받으신 사건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물세례를 받을 때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시는 자라”(요1:34) 하나님께서 친히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거한 것입니다. 물세례는 죄를 깨닫고 회개하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님은 죄가 없으시지만 모든 인간들에게 죄를 깨닫게 하기 위해 물세례를 받았습니다. 자신의 죄를 깨닫는 것이 구원역사의 시작입니다. 자신의 죄를 깨닫지 못하면 구원자가 의미가 없습니다. 둘째, 피. 예수님께서는 모든 죄인들을 위해 십자가에서 피 흘려 돌아가셨습니다. 그리고 3일 만에 부활하심으로 죄와 죽음의 세력을 이기셨습니다. 이로써 예수님의 피를 믿는 모든 이들을 죄에서 구원해주셨습니다. 자신의 죄를 깨닫고 예수님의 대속의 피를 믿을 때 죄에서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죄에서 구원받았다(죄 사함 받는다)는 것은 죄의 종이었던 내가 하나님의 자녀로 회복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이 세상을 주관하던 죄와 죽음에서 승리한 것처럼 하나님의 자녀로 회복된 우리도 예수님처럼 부활함으로 세상을 이길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의 자녀로 회복된 우리는 이미 세상과의 싸움에서 승리가 결정된 싸움을 하는 것입니다. 셋째, 성령.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후 하늘로 올라가심으로 구원역사를 완성하셨지만 다시 성령의 모습으로 모든 신자들에게 찾아오셨습니다. 그것은 신자들과 영원히 함께 하시며 진리를 깨우쳐주시고 진리로 인도해주시기 위해서입니다. 성령이 우리 안에서 하는 일의 대표적인 것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임을 깨닫고 믿게 하는 것입니다. 세상의 인본적이고 물질적인 가치관속에서 어떻게 우리가 성경의 진리를 깨닫고 믿을 수 있습니까? 육신을 입고 이 땅에 내려오신 예수님이 하나님이요 구원자이심을 어떻게 믿을 수 있습니까? 그것은 내 안에 계신 성령의 도우심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임을 증거하는 이는 셋입니다. 물과 피와 성령입니다. 하나님과 예수님과 성령님입니다. 그 셋은 하나입니다. 본질적인 존재로써 삼위일체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한결같이 예수님이 하나님 아들임을 증거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또한 성경의 많은 저자들을 통해 또 수많은 선지자들을 통해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거하셨습니다(9).
  또 다른 증거는 예수님을 믿는 자가 소유한 영생입니다. 이것은 증거이자 세상을 이길 수 있는 능력이 됩니다. 11,12절을 보십시오. “또 증거는 이것이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과 이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그것이니라.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 인간은 누구나 생명이 있습니다. 하지만 육신의 생명은 결국 흙으로 돌아가는 육신처럼 한계적이고 불안전하고 연약한 생명입니다. 그러나 신자는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받아 생명의 근원되신 하나님으로부터 영생, 영원한 생명을 받았습니다. 얼마 전 세상에서 성공의 대명사라 불리는 스티브잡스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가 죽기 전 남긴 유언을 잠깐 소개하고자 합니다. “나는 세상에서 성공의 최정상에 도달했고 다른 사람들 눈에 내 인생은 성공의 상징이 되었다. 하지만 일 외에 나에게 행복을 주는 것은 없었고 부(wealth)는 나에게 그저 익숙한 삶의 일부분일 뿐이다. 지금 병들어 누워 지난 삶을 회상해보면 내가 그렇게 자랑스러워했던 영광과 막대한 부는 죽음 앞에서 빛을 잃었고 의미도 상실했다. 어둠속에서 나는 생명연장 장치의 녹색 빛과 윙윙거리는 기계음을 보고 들으며 죽음의 신의 숨결이 다가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나는 이제야 깨달았다. 인생을 유지할 적당한 부를 쌓았다면 그 이후 우리는 부와 무관한 더 가치 있는 것을 추구해야 한다는 것을—나는 인생을 통해 얻은 부를 가져갈 수 없다. 내가 가져갈 수 있는 것은 사랑이 넘치는 기억들뿐이다.” 스티브잡스는 어릴 때 잠깐 교회에 나갔지만 하나님의 주권과 섭리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믿음을 잃었습니다. 만약 그가 예수님을 십자가에 보내신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았다면, 믿음으로 구원받아 영생의 확신이 있었다면 꺼져가는 육신의 죽음 앞에서 두려워하지 않고 아쉬워하지 않고 담대하게 하나님을 찬양하며 인생을 마쳤을 것입니다.  
  우리는 그의 인생을 보면서 무엇이 세상을 이기는가 깨달을 수 있습니다. 그것은 인간의 능력이나 의지나 행운이 아니라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믿음입니다. 우리는 이 믿음으로 결국 무너질 이 세상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었습니다. 그런데 어떤 이는 말합니다. “영생은 죽은 후에야 확인할 수 있고 정말 영원히 살아봐야 알 수 있는데 어떻게 그것이 믿을 수 있는 증거가 됩니까? 설사 죽은 후 영생이 있다 해도 지금 사는 것과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영생은 단지 영원히 사는 것이 아닙니다. 의학기술의 발달로 인류의 수명은 갈수록 늘어나지만 그렇다고 행복한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패배자의 인생(loser)의 시간이 더 늘어난다면 그만큼 고통스러울 뿐입니다. 지옥에서 영생을 누리는 것만큼 비참한 것은 없습니다. 영생은 현재 생명의 연장이 아닌 하나님께서 주신 거듭난 새 생명입니다. 신자는 예수님을 믿음으로 하나님의 생명 안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것은 마치 포도나무에서 떨어진 가지가 말라죽어가다가 다시 포도나무에 붙여져 뿌리로부터 생명을 덧입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의 생명을 소유한 신자는 영이신 하나님과 대화할 수 있고 하나님과 함께 기뻐할 수 있습니다. 나중 죽은 후가 아니라 지금 세상에서도 하나님과 교제하며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으며 영생의 기쁨을 누릴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생명(영생)을 소유한 신자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또 죽음이 지배하는 세상을 두려워하지 않고 담대한 믿음으로 이길 수 있습니다. 영생을 소유함으로 당장 눈에 보이는 작은 이익을 위해 목숨 걸지 않고 긴 시야로 더 중요한 것을 위해 투자하고 헌신할 수 있습니다. 지금 눈앞에 보이고 손에 만져지는 허무한 물질이나 쾌락에 매이지 않고 믿음의 눈으로 장래를 보며 하나님영광을 위해 사랑으로 섬기며 헌신하며 또 희생할 수 있습니다. 이 편지를 쓸 때 사도요한은 유배지에서 육신의 생명이 얼마 남지 않았지만 영생의 믿음과 기쁨으로 믿음을 잃은 신자들에게 증거합니다. “내가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너희에게 이것을 쓰는 것은 너희로 하여금 너희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려 함이라(13)” 사도바울은 로마 시민권 자이자 잘나가는 바리새인으로 세상의 winner였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영접한 후 육신의 자랑을 배설물로 여기고 일생 예수님을 증거했습니다. 그리고 2번째 감옥에 투옥된 후 죽음을 앞두고 사랑하는 디모데에게 마지막 편지를 보냈습니다. “전제와 같이 내가 벌써 부어지고 나의 떠날 시각이 가까웠도다.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 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디모데후서4:6-8) 바울처럼 일생 예수님을 전하다가 감옥에서 굴속에서 심지어 지하무덤 속에서 또 지금도 세상의 낮은 곳에서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살다 죽은 많은 이들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겉으로 보기에 세상의 loser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실상 이들은 세상이 감당치 못할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었고 세상을 이긴 이들이었습니다. 왜냐면 그들은 하나님의 생명, 영생을 소유한 이들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생명을 소유한 신자가 세상을 이길 수 있는 또 다른 강력한 무기가 기도입니다. 신자는 기도를 통해 하나님과 교제함으로 하나님의 생명을 더욱 풍성히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갈 때에도 승리의 인생을 살 수 있는 비결이 믿음의 기도에 있음을 가르쳐줍니다. 14,15절을 보십시오. “그를 향하여 우리가 가진바 담대함이 이것이니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 우리가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들으시는 줄을 안즉 우리가 그에게 구한 그것을 얻은 줄을 또한 아느니라” 불신자도 기도할 수 있지만 그것은 대상이 없는 허무한 메아리일 뿐입니다. 신자는 하나님을 향해 담대하게 기도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신자는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하나님께서 들으시는 줄 알고 또 구하는 것을 얻을 수 있는 것도 압니다. 신자는 담대하게 바라는 것을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지만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뜻대로 구할 때 얻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는 아들이 아버지에게 편지를 썼습니다. “아버지 자꾸 돈을 부쳐 달라고 해서 죄송하지만 백만원이 또 필요합니다. 이번이 마지막입니다. 꼭 도와주세요. 추신; 자꾸 부탁하기가 미안해서 우체부를 쫓아가 편지를 없애고 싶었습니다. 정말 편지를 되찾길 기도했지만 너무 늦어 우체부를 놓쳤습니다. 하나님의 뜻인 것 같습니다.” 며칠 후 아버지로부터 답장이 왔습니다. “아들아 너의 간절한 기도를 하나님이 들어 주신 같구나. 너의 편지를 못 받았다. 그러니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이고 걱정 말고 잘 지내거라” 야고보서는 말합니다.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하기 때문이요,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하기 때문이라.”(야고보서4:2b,3) 그런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구하는데도 응답받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바울은 하나님역사를 더 열심히 섬기고자 자신의 육체에 있는 가시를 제거해 주시길 3번이나 기도했지만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네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네 능력이 약한데서 온전하여짐이라.”(고린도후서12:9) 하나님의 뜻을 깨달은 바울은 오히려 크게 기뻐하며 자신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해 자랑했습니다. 왜냐하면 그가 약할 때 그리스도의 능력이 그에게 머물러 오히려 강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 신자들이 오랫동안 기도한 후에야 하나님께서 들어주실 때가 있습니다. 우리는 무슨 일이든지 자신의 원하는 때에 빨리 이뤄지길 바랍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나에게 가장 좋은 하나님의 때에 이뤄주시길 원하십니다. 만일 우리가 준비도 되지 않을 상황에서 주신다면 우리는 시험에 빠질 수도 있고 또 자만하게 될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은 자식을 위해 기도한지 25년 후에야 이삭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조금 더 일찍 기도를 들어주셨다면 이스마엘을 쫓아내는 고통이 없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25년 동안 아브라함을 위대한 하나님의 믿음의 조상으로 연단할 수 있었습니다.
  예전에 어린 아들을 데리고 차로 놀이공원에 간 적이 있었습니다. 아들은 빨리 가서 많이 놀고 싶은데 차를 빨리 운전하지 않자 “아빠 빨리 달려요!” 재촉했습니다. 하지만 어린 아들은 키가 작아 운전대 너머 창밖을 볼 수 없고 제한 속도가 60km라는 표지판을 볼 수 없고 읽을 수 없습니다. 아들에게 잘 설명한 후 가다가 차를 갑자기 멈추자 아들은 다시 재촉했습니다. “아빠 바쁜데 왜 안가요?” 아들은 창밖에서 교통사고가 나서 지체되는 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기도는 언제나 믿음을 요구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믿음이며 하나님의 들으심에 대한 믿음이며 하나님의 능력과 선하심에 대한 믿음입니다. 특히 신자는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믿음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알지 못하는 것을 아시며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이다’ 라고 기도하는 것은 믿음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의 한계와 부족함을 인정하고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는 더 큰 믿음입니다. 기도는 하나님께 요청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대화요 오히려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임으로 하나님의 뜻을 찾고 깨닫는 시간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기도할 때 신자는 기도를 통해 인간적인 사람이 영적인 사람으로, 자기중심적인 사람이 하나님중심적인 사람으로 변화됩니다. 하나님의 뜻은 생명을 살리는 것입니다. 세상 그 무엇보다도 생명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신자는 본인뿐 아니라 다른 이들을 위해 중보기도 함으로 그들의 생명을 살릴 수 있습니다. “누구든지 형제가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죄 범하는 것을 보거든 구하라 그리하면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범죄자들을 위하여 그에게 생명을 주시리라 사망에 이르는 죄가 있으니 이에 관하여 나는 구하라 하니 않노라(16)” 사망에 이르는 죄는 예수님을 부인하고 끝까지 회개하지 않는 죄를 말합니다. 알면서도 고의적으로 계속해서 예수님(성령)을 부인하는 죄를 말합니다. 하지만 사망에 이르는 죄가 아닌 어떤 죄를 범해도 다시 돌이킬 수 있습니다. 신자는 그들을 위해 기도할 때 그들은 회개하고 예수님을 영접함으로 하나님의 자녀로 돌이킬 수 있습니다. 중보기도의 힘은 큽니다. 아브라함은 중보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뜻을 움직일 수 있었습니다. 소돔성에서 멸망당할 롯의 가정은 아브라함의 중보기도 때문에 소돔성의 멸망 속에서도 구원받을 수 있었습니다. 신자는 중보기도를 통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고 또 세상을 이길 수 있습니다. 우리가 부족하지만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함으로 하나님의 뜻을 찾고 그 뜻을 이뤄드리는 신자가 될 수 있길 기도합니다.
  18절을 보십시오.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는 다 범죄하지 아니하는 줄을 우리가 아노라 하나님께로부터 나신 자가 그를 지키시매 악한 자가 그를 만지지도 못하느니라” 신자는 범죄 하지 않습니다. 그 말은 절대로 죄를 짓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사망에 이르는 죄를 범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신자와 함께 하시는 성령께서 지켜주셔서 사단이 만지지도 못하게 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신자는 예수님의 값진 보혈로 되찾은 생명이므로 성령께서 반드시 지켜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21절을 보십시오. “자녀들아 너희 자신을 지켜 우상에게서 멀리하라” 하지만 세상우상에 빠질 때 하나님의 자녀라도 위험해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신자와 항상 함께 하며 깨우쳐주시고 인도하시지만 신자의 자유의지까지 주관하지 않으십니다. 그러나 신자가 세상우상에 미혹되 받은 은혜까지 부인하고 계속 인도하심까지 거부한다면 하나님은 오래 참다 사랑으로 강하게 연단하실 것입니다. 사랑의 하나님이시지만 죄를 미워하시고 공의로우신 하나님의 연단의 손길은 무척 강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깨어서 세상우상에게서 자신을 지켜야 할 것입니다. 어떻게 지킬 수 있습니까? 3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 그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로다.” 그런데 우리는 어떻게 무거워 보이는 그 많은 계명들을 다 지킬 수 있습니까? 모든 계명의 근본정신은 하나님 사랑, 이웃사랑입니다. 무슨 일이든지 억지로 하게 되면 무거운 짐으로 느껴지지만 사랑할 때는 어떠한 일도 기꺼이 하고자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보다 세상을 사랑할 때 말씀이 부담스럽고 무겁게 느껴집니다. 우리는 한 달 동안 요한일서 말씀을 통해 사랑에 대해 수없이 많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사랑 이웃사랑의 말씀이 가슴과 손발까지 가지 못하고 머릿속에서만 맴도는 이가 있습니다. 사랑보다도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 세상에서 이기기 위해 염려와 두려움과 욕심과 이기심에 매여 삽니다. 그런 삶속에서 하나님의 자녀로써의 믿음을 잃어버리고 다시 사단의 종으로 살아가게 됩니다. 신자는 하나님의 자녀로써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아야 합니다. 신자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 위해 계명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에 계명을 지켜야 합니다. 예수님은 세상을 이기셨습니다. 그리고 신자들에게도 세상을 이기라고 말씀하십니다. 어떻게 이길 수 있습니까? 우리는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로써 나를 위해 십자가를 지시고 부활하셨다는 것을 믿음으로 또 매일 예수님이 이루신 복음의 말씀에 순종함으로 예수님의 승리에 동참할 수 있습니다. 세상을 지배하는 죄에서 자유를 얻고 죽음에 대해 승리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승리합니다. 믿음자체가 승리입니다. 바울은 고백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로마서 8:37)

  하나님께서는 인생의 큰 환란가운데 세상의 패배자의 인생을 살 수밖에 없던 죄인을 구원하셔서 예수님을 따르며 세상을 이기는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나도록 도우셨습니다. 하지만 수시로 세상에 얽매임으로 하나님의 자녀로써의 믿음을 잃을 때가 많았습니다. 세상경쟁에서 뒤처지지 않을까 인간적 의지와 열심으로 끊임없이 뛰면서도 두려움과 걱정과 욕심가운데 매이며 과거처럼 죄의 종으로 살 때가 많았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런 불신에도 꾸준히 생명의 말씀을 주시고 믿음으로 말씀을 붙들고 하나님의 자녀로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도록 인도하셨습니다. 부족하지만 팀을 섬기고 말씀역사를 섬겼을 때 힘든 문제도 능히 극복하도록 도우셨습니다. 작년 주변에 치과들이 들어서는 치열한 경쟁 속에서 건물주의 뜻 가운데 원치 않게 병원이전하며 또 병원 직원 7명이 연속적으로 교체되는 상황 속에서 이러다 망하지 않을까 걱정했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뜻을 찾고 기도하며 말씀을 붙들었을 때 하나님께서는 함께 하시며 결국 가장 좋은 길로 인도하셨습니다. 더 좋은 곳에서 더 충성스런 직원들과 더 많은 수입을 얻게 도와주셨습니다. 또 가끔씩 나타나는 진상환자들을 예수님의 사랑으로 잘 섬겨줬을 때 오히려 병원을 홍보하는 단골환자가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제가 체험한 세상에서의 작은 승리의 역사를 통해 하나님을 신뢰하고 세상가운데 하나님나라를 확장하는 종으로 인도하셨습니다. 제가 받은 하나님의 사랑의 체험으로 말씀 공부 팀 형제들을 기도와 말씀을 섬길 수 있길 기도합니다. 각자 다른 세상의 경쟁 속에서 뛰고 있는 이분들이 말씀 속에서 자신을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하고 하나님의 자녀로써 믿음으로 세상을 이길 수 있도록 도울 수 있길 기도합니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오 나의 구원자 되심을 믿음으로 세상을 이길 수 있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써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고 순종함으로 세상을 이길 수 있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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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호     글 제 목  작성자 작성일 조회
585 창세기 [2019년 창세기 제6강] 홍수 심판과 구원의 방주 관리자 2019-04-14 805
584 창세기 [2019년 창세기 제5강] 가인에게 표를 주신 하나님 관리자 2019-04-07 874
583 창세기 [2019년 창세기 제4강] 여자의 후손을 약속하신 하나님 관리자 2019-03-31 742
582 창세기 [2019년 창세기 제3강] 에덴동산을 창설하신 하나님 관리자 2019-03-24 1152
581 창세기 [2019년 창세기 제2강]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사람 관리자 2019-03-17 834
580 창세기 [2019년 창세기 제1강]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 관리자 2019-03-10 902
579 요한일서 [2019년 요한일서 제5강] 세상을 이기는 믿음 관리자 2019-03-03 1091
578 요한일서 [2019년 요한일서 제4강]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관리자 2019-02-24 699
577 요한일서 [2019년 요한일서 제3강] 행함과 진실함으로 사랑하자 관리자 2019-02-17 1401
576 요한일서 [2019년 요한일서 제2강] 그의 형제를 사랑하는 자 관리자 2019-02-10 677
575 요한일서 [2019년 요한일서 제1강] 우리의 사귐 서삼문 2019-02-03 771
574 열왕기상 [2019년 열왕기상 제10강] 내가 여호와인줄 알리라 관리자 2019-01-27 877
573 열왕기상 [2019년 열왕기상 제9강] 하나님의 세미한 소리 관리자 2019-01-20 918
572 예레미야 [2019년 신년말씀 제3강]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관리자 2019-01-13 828
571 기타 [2019년 신년말씀 제2강] 성전을 건축하라 관리자 2019-01-06 654
570 요한복음 [2019년 신년말씀 제1강]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 관리자 2018-12-30 745
569 누가복음 [2018년 성탄말씀 제3강]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느니라 관리자 2018-12-23 678
568 누가복음 [2018년 성탄말씀 제2강] 구원의 뿔 돋는 해되신 예수님 관리자 2018-12-16 962
567 누가복음 [2018년 성탄말씀 제1강] 영원한 왕 예수님 관리자 2018-12-09 720
566 열왕기상 [2018년 열왕기상 제8강] 바알에게 도전한 엘리야 관리자 2018-12-02 1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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