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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nday Worship Message
주일예배메시지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9-03-17 (일) 12:14
분 류 창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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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창세기 제2강]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사람

  2019년 창세기 제 2 강                                                          최동진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사람

말씀/ 창세기 1:26-2:3
요절/ 창세기 1:27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가?” 이는 매우 심오한 질문 같지만 사실 자녀가 부모에게 “아빠, 나는 누구야? 나는 어디서 왔어?”하며 천진난만하게 하는 질문과 다를 바 없는 단순한 질문입니다. 이런 질문에 대해 “얘야, 넌 내 아들이고 나는 너의 아버지란다” 라고 대답할 것이고 자녀들은 그 대답을 그대로 받아들일 것입니다. 하나님이 성경말씀을 통해 우리 인간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씀도 이것이라 믿습니다. 이는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성이 맺어져 있을 때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의심 없이 영접할 수 있습니다. 인간 창조는 엿새 동안의 하나님의 창조사역의 백미로서 가장 오묘하고 아름답고 신비스러운 역사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 지으신 인간의 본래 모습은 어떠한지 배우고 본래의 모습을 회복함으로 하나님의 창조 목적에 합당한 삶을 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I.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존재(26,27)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실 때에는 다른 피조물을 만들 때와는 차이가 있습니다. 26,27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여기서 ‘우리’라는 표현을 쓴 것은 하나님은 성부, 성자, 성령의 삼위일체의 하나님이심을 나타냅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각기 종류대로’가 아닌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을 따라 만드셨습니다. 형상과 모양은 같은 의미를 담고 있는데 중복해서 표현함으로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아주 소중하고 특별한 존재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인간은 본래 여섯째 날에 동물과 함께 지음 받았음으로 동물의 속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본능에 충실한 것을 인간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본능에 충실한 삶은 인간적인 것이 아니고 동물적인 것입니다. 동물은 본능을 좇아 행하고 그 본능이 충족되었을 때 만족합니다. 그러나 인간은 처음부터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아 하나님의 DNA를 가지고 있는 아주 특별하고 소중한 존재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이란 하나님의 내면적 속성을 말합니다. 캘빈은 하나님의 형상에 대해 “명료한 이성, 이성에 복종하는 지성, 적절히 통제된 감성, 창조주가 부여한 탁월하고 찬탄할 만한 재능들”이라고 정의했습니다. 인간은 미학적, 도덕적, 영적 속성을 지닌 영원한 영을 지녔습니다. 인간에게는 동물과 달리 도덕적인 의식, 미에 대한 인식, 하나님을 경배하고 사랑하는 속성이 있습니다. 인간만이 하나님께 기도하고 찬양할 수 있습니다.  
  인간은 이성적 존재이기 때문에 추리하고 분석, 종합할 수 있으며, 지식을 축적하여 후대에 전달할 수 있습니다. 또한 문자를 가진 언어로 의사소통을 할 수 있습니다. 동물은 수천 년이 지나도 문화를 창조하지 못하지만 인간에게는 창조적인 지성이 있기 때문에 끊임없이 새로운 문화를 창조해 냅니다. 최근 몇 년 사이에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 AI)의 발달로 과거에는 몇 년이 걸려야만 해결되었던 문제들을 순식간에 해결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건축기술의 발달로 두바이에 우리나라의 기술로 세워진 높이 828m에 달하는 버즈칼리파가 세계 최고의 빌딩이라는 명성을 얻고 있는데 2019년에는 1300m의 높이로 추산되는 제다 타워가 완공될 예정이라 하니 인간이 가진 재능의 한계가 어디인지 궁금하게 만듭니다. 또 인간은 동물과 달리 도덕적인 존재로 지음 받았습니다. 동물은 도덕관념이 없기 때문에 부끄러움이나 수치심을 모릅니다. 그래서 고상하고 순수하고 진실된 삶을 영위할 수 없습니다. 돼지가 고상한 뜻을 품고 높은 이상을 소유하고 성스러운 삶을 살 수 없습니다. 인간이 고상한 뜻을 품고 순수하고 진실되게 살고자 하는 것은 양심을 지닌 도덕적인 존재로 지음 받았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선과 악을 분별할 수 있는 능력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뜻에 따라 그 중 어떤 쪽을 선택하여 실행할 수 있는 자유의지를 가졌습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거룩함을 닮은 순결한 존재입니다.
  무엇보다도 인간은 영적인 존재입니다. 인간은 영의 소유자로서 육신의 만족에 머무르지 않고 끊임없이 영적인 만족을 추구합니다. 하나님을 예배하고 하나님께 기도하며 하나님과 영적으로 교제함으로 진정한 기쁨과 만족을 누릴 수 있습니다. 인간이 고귀하고 존엄한 것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형제를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미워하거나 저주해서는 안됩니다. 인간이면 누구나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았다는 한 가지 이유만으로 존귀한 것입니다. 연약한 어린 아이뿐만 아니라 심지어는 어머니 뱃속의 태아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형상을 담고 있는 생명체로서 존중받고 보호 받아야 합니다. 이 점에서 인간은 하나님 앞에서 평등합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남자와 여자 각자에게 적합한 역할을 주심으로 서로 귀하게 여기고 연합하고 동역하며 하나님 앞에서 살도록 지으셨습니다. 그리고 다른 모든 피조물들을 다스릴 지배권을 부여하셨습니다. 사람은 힘이나 크기나 빠르기에 있어서 동물들보다 못한 부분도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영화와 존귀로 관을 씌우시고 만물을 다스리게 하심으로 인간을 만물 위에 높이셨습니다.(시8:4-8)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노예생활에서 막 벗어나기는 했지만 광야생활을 하고 있던 자신들의 가치에 대해 초라하게 생각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모세는 그들이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가를 깨우쳐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대리자로 세움 받은 인간은 창조주 하나님 안에서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를 나타낼 때 사람 고유의 존엄성과 가치를 지키며 위대하고 고귀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인간은 범죄함으로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렸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린 인간은 육체가 되어 음란하고 불의하고 부패하고 강포해졌습니다. 거짓말, 도둑질, 사기, 폭력, 살인, 강도, 비방, 학대를 서슴지 않고 자행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인간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사 십자가에서 인간의 모든 죄를 속량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을 본받는 생활을 하게 하심으로 잃어버린 하나님의 형상을 되찾게 하셨습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는 목적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에베소서 4장2절은 말합니다.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또 골로새서 3:9,10절은 말합니다. “너희가 서로 거짓말을 하지 말라 옛 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 버리고  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이의 형상을 따라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입은 자니라.” 여기서 ‘새 사람’이란 옛 사람, 곧 죄성을 지닌 타락한 사람과는 구별되는 거듭난 새 사람으로서, 옛 사람이 개선된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생명을 소유한 완전히 다른 사람을 말합니다. 우리가 복음을 전파하는 것도 잃어버린 하나님의 형상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되찾도록 도와주기 위한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고 신앙생활 하면 자신의 개성이나 자유의지가 말살되는 것이 아닌가 두려워합니다. 그러나 오히려 정반대로 인간성이 회복되어 예수님과 같이 거룩하고 의롭고 진실되고 사랑이 풍성한 완전한 자로 빚어지게 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따름으로 죄로 말미암아 잃어버린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고 본래의 영광스러운 자아의 모습을 되찾을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II. 사명을 복으로 받은 존재(28-30)
  하나님은 인간의 행복에 깊은 관심을 가지시고 사명을 축복으로 주셨습니다. 28절을 다 같이 읽어보시겠습니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하나님께서는 이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인간들이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가를 가르쳐주십니다.
첫째,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말씀은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사람을 많이 낳으라는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열매를 많이 맺으라는 것입니다. 열매를 맺는 것은 과목이나 짐승이나 사람에게 축복의 상징입니다. 그런데 세상이 힘들수록 사람들은 아이를 낳지 않으려 합니다. 요즈음에는 출산 기피 현상이 늘어나 지난해에는 우리나라 여성1인당 합계 출산율이 0.98명으로 나타나 OECD 국가 평균인 1.68명에도 크게 밑돌면서 꼴찌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저희 소아과에서도 요즈음 갈수록 신생아들이 줄어들고 있어서 저출산의 현실을 피부로 절실히 느끼고 있습니다. 정부에서는 출산율 하락을 막기 위해 막대한 돈을 쏟아 붓고 있지만 그 효과는 미미합니다. 요즘처럼 풍요로운 시대에도 아이를 키우는 것이 힘들게 느껴지는데 광야생활을 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것이 더 힘든 고통으로 느껴졌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어떻게 복이 됩니까? 자녀를 키움으로서 독생자까지 아끼지 않고 내어주신 하나님의 인간을 향한 사랑을 조금이나마 깨달을 수 있습니다. 또한 양들을 키우기 위해서는 눈물로 기도하며 죄 문제와 싸워야 하지만 그 수고로 한 사람이 변화되고 새 인생으로 거듭날 때 생명이 살아나는 기쁨을 누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사람이 영육 간에 믿음의 자손들을 낳고 키우며  하나님의 생명구원 역사에 쓰임 받는 기쁨을 충만히 누릴 수 있습니다. 우리가 사명감을 가지고 영육 간에 자녀들을 낳고 키움으로 이 땅 캠퍼스에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자녀들로 충만하기를 기도합니다.
둘째, 땅을 정복하라
  땅을 정복하라는 것은 자연을 마음대로 파괴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자연에 지배당하지 말고 개간하고 개척하여 인간의 유익을 위해 적절히 사용하라는 의미입니다. 과거 우리 조상들은 자연을 숭배의 대상으로 보고 자연을 두려워하여 산신령이나 바다의 용왕을 섬기고 고목나무에 절을 하며 자연에 정복당해 왔습니다. 또 반대로 인간들의 편리만을 추구하며 탐욕을 채우기 위해 하나님이 창조하신 아름다운 세상을 마구 파괴한 결과 수많은 자연 재해와 환경파괴로 돌아와 사람들의 일상생활을 위협하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환경에 지배당할 때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신 축복을 모두 잃어버릴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한계상황에 부딪칠 때 환경을 탓하며 주저앉기를 잘합니다. 요즈음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는 영적인 환경 뿐 아니라 정치환경, 경제환경, 사회환경, 교육환경, 국제 환경 어느 것 하나  만만해 보이지 않습니다. 이런 힘든 상황에서 패배주의에 빠져 의욕을 잃고 자포자기하고 무기력하게 지내기 쉽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가 환경에 지배당하여 주저앉는 것을 원하지 않으십니다. 환경을 정복하기 위해 끊임없이 도전하는 사람과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으로 친히 능력을 드러내십니다. 우리가 각자 처한 환경에 굴복하지 않고 믿음으로 도전하여 승리를 체험하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을 살기를 기도합니다.
셋째,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인간은 하나님의 대리인으로서 세상을 창조의 섭리대로 잘 관리하며 하나님의 법도에 맞게  다스려야 합니다. 하나님은 창조 질서가 무너진 세상 가운데 우리를 통하여 하나님 나라를 다시 세우기를 원하십니다.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이는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들에게 주신 거룩한 사명입니다. 하나님은 이 사명을 복으로 주셨습니다. 인간은 단순히 먹고 살기 위한 일차원적인 존재가 아닙니다. 먹고 살기 위해 공부하고, 먹고 살기 위해 직장에 다닌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인생이 얼마나 허무하고 비참하겠습니까? 그러나 인간은 사명의 존재입니다. 인간을 인간답게 하고 위대하게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입니다. 인간이 사명을 열심히 감당할 때 보람과 행복을 느끼며 생명력 넘치는 함찬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죄로 인해 죽어가고 있는 캠퍼스 영혼들에게 복음을 전함으로 사람을 살리고, 더 나아가 하나님의 사람으로 키우는 위대한 사명을 주셨습니다. 이 사명을 좇아 살 때 가장 복되고 위대한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29,30절은 사람이 사명을 감당할 때 먹는 문제도 하나님께서 친히 해결해 주심을 가르쳐줍니다. 많은 사람들이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되어야 사명을 감당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생활 문제를 어느 정도 해결하고 나서 사명인의 인생을 살고자 하는 자는 평생 사명인의 인생을 살 수 없습니다. 예수님도 마태복음 6:33절에서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III. 하나님이 심히 기뻐하신 존재(31)
  31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이 지으신 그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여섯째 날이니라.” 하나님께서는 천지만물을 창조하실 때마다 “좋았더라” 소감발표 하셨습니다. 그러나 여섯째 날 인간을 포함한 모든 것을 창조하신 후에는 “심히 좋았더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의 창조의 역사가 흠이 없고 아름답고 조화 있게 완벽하게 이루어졌음을 나타냅니다. 모든 만물 안에 좋지 않은 요소는 전혀 없습니다. 들에 있는 이름 없는 풀이나 작은 벌레조차도 하나님의 지혜와 권능이 담겨 있습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이 세상의 모든 것이 하나님의 선하심과 아름다움과 지혜와 영광을 나타냅니다. 그 중에서도 하나님의 최고의 걸작품인 인간만큼 하나님의 영광을 잘 드러내는 존재는 없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모든 것이 상품화 되어가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학력이나 외모 부와 타이틀과 능력으로 사람의 가치를 평가합니다. 사람들은 이런 세상의 평가 기준에 맞춰 자신의 가치를 높이고 인정받기 위해 열심히 스펙을 쌓으며 무한경쟁 속에 살아갑니다. 그런 가운데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진짜 가치를 잃어버리고 다른 사람과 비교하며 상대적인 우월감, 열등감에 사로잡혀 운명주의와 패배의식 속에 살아갑니다. 그러나 우리 각 사람은 세상에 존재하는 여러 상품(comodities) 중의 하나가 아닙니다. 골동품이 값이 비싼 이유는 오래되고 똑 같은 것을 구할 수 없는 희소가치 때문입니다. 이 지구상에 살고 있는 76억의 인구 중에 똑같이 생긴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우리 각자는 하나님이 이 지구상에 단 한사람으로 만드신 유일한 최고의 걸작품(masterpice)입니다. 하나님에게 있어서 인간은 하나뿐인 자식과 같이 소중한 존재요, 심히 기뻐하신 존재입니다. 우리가 죄로 인해 하나님을 떠나 그 형상을 잃어버렸을 때에도 하나님은 변함없이 우리를 사랑하시고 귀하게 여기셨습니다. 범죄한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 독생자까지 보내시고 마침내 십자가에서 희생하심으로 우리를 회복시키시고 인간들을 향한 사랑을 확증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각 사람을 있는 모습 그대로 사랑하시고 기뻐하십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셨기 때문에 나도 나를 기뻐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볼 때 하나님이 심히 기뻐하신 모든 것들을 사랑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시고 심히 기뻐하신 것은 인간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창조되었음을 말해줍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 때 가장 행복합니다. 고린도전서 10:31절은 말합니다.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우리는 먹든지 마시든지, 공부를 하든지 직장에 다니든지, 양을 치든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해야 합니다. 그때 인생은 의미가 있고 참 자유함이 있고 진정으로 행복한 인생을 살게 됩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내 인생은 나의 것인데 내 영광을 위해 살아야 행복하지 않는가 생각합니다. 또 가족을 위해, 가문을 위해,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사는 것이 가치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런 것들은 불멸의 가치를 지닌 것은 아닙니다. 세상에는 그 어디에도 불멸의 가치 있는 것을 찾을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영광만이 썩어지지 않는 영원불멸의 가치 있는 것입니다. 우리를 당신의 형상대로 창조하시고 심히 기뻐하신 하나님께 감사와 찬송을 드립니다.

IV. 안식이 필요한 존재(2:1-3)
  하나님은 엿새 동안 심혈을 기울여 창조 역사를 마치신 후에 모든 일을 그치고 안식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안식하신 것은 창조 사역으로 인해 피곤해서 쉬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일곱째 날에 안식하신 데에는 특별한 의미가 있습니다. ‘안식하다’란 말은 ‘끝내다, 그치다’라는 뜻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엿새 동안의 창조 사역을 마치신 후 창조 사역을 기념하기 위해 모든 일을 내려놓고 안식하신 것입니다. 3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이 그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그 날에 안식하셨음이니라.” 하나님은 그 날을 복되고 거룩한 날로 선포하셨습니다. 출애굽기 20:8절에서는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고 하였습니다. 요즘처럼 바쁘고 할 일 많은 시대에 안식일을 지키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안식일을 지키는 것은 선택 사항이 아니라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안식의 의미를 모를 때 안식일을 지키더라도 기쁨 없이 의무적으로 지키기 쉽습니다. 신학자 댄 알렌더는 그의 저서 ‘안식’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안식일은 일손을 놓고 그냥 쉬는 날이 아니다. 더 열심히 일하기 위해 힘을 비축하는 날도 아니다. 안식일은 하나님의 기쁨을 경험하는 날이다." 아무런 감격이나 기쁨 없이 그저 예배만 드리는 것으로 안식일의 의무를 다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안식일을 제대로 지킨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생각하면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며 하나님이 의도하신대로 안식일을 보낼 때 하나님 안에서 하나님이 주시는 최고의 기쁨을 누릴 수 있습니다. 안식은 창조역사의 마지막으로서 창조의 목적이 바로 여기 있습니다. 이는 장차 우리가 누리게 될 영원한 안식을 상징합니다. 우리는 7일마다 찾아오는 안식일을 통해 장차 맞이하게 될 영원한 안식을 의식하고 두렵고 떨림으로 살아야 합니다. 안식일을 지킬 때 우리의 믿음과 소망이 견고해지고 어떤 어려움도 이길 수 있는 내적인 힘을 충전하게 됩니다. 그래서 안식일이 정말 복된 날입니다.

  하나님은 과거 저의 참 모습을 모른 채 세상 사람들의 눈으로 저를 바라보고 자신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 애쓰며 세상 사람들의 인정을 구하느라 지치고 피곤한 삶을 살던 저를 말씀으로 찾아오셔서 하나님의 걸작품으로서의 자신의 존재를 발견하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가운데 하나님께서 본래 지으신 형상을 회복하게 하시고, 하나님의 뜻을 섬기며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삶을 살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저희 가정과 단대에 많은 양들을 보내주시고 하나님의 대리인으로서 영육간의 자녀들을 낳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키우는 사명을 감당하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때로는 감당해야 할 사명이 너무 많아 쉴 틈이 없다는 불평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깨어서 기도하게 하심으로 육신의 죄악된 본성과 싸우게 하시고  날마다 일용할 양식 말씀으로 힘을 덧입혀 주시고 맡기신 양들을 감당하면서 하나님의 마음을 배우게 하셨습니다. 무엇보다 매주 하나님 안에서 참 안식을 누림으로 영육 간에 강건하게 하시고 많은 사명을 능히 감당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오늘 말씀을 묵상하는 가운데 자격 없는 자가 여러 모양으로 하나님께서 맡기신 사명을 감당하며 축복된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되었습니다. 제가 하나님의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양들을 바라보고 세상을 바라보며 하나님께서 심히 기뻐하신 한 영혼 한 영혼을 귀하게 여기고 섬김으로 나를 통해 하나님의 사랑과 의가 드러나고 생명의 열매 맺는 삶을 살기를 기도합니다.

  결론적으로, 하나님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인간을 창조하셨습니다. 인간이 고귀한 것은 하나님의 형상이 우리 안에 내재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하나님의 최고의 걸작품으로서의 존재의미와 목적을 발견하고 주님께서 주신 사명을 힘써 감당함으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열매를 맺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진정으로 복된 삶을 살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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