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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nday Worship Message
주일예배메시지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9-03-31 (일) 12:20
분 류 창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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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창세기 제4강] 여자의 후손을 약속하신 하나님

  2019년 창세기 제4강                                                             이인구

여자의 후손을 약속하신 하나님

말씀/ 창세기 3:1-24
요절/ 창세기3:15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하나님께서는 흙으로 지음 받은 인간이 흙과 같은 존재로 머물러 있기를 원치 않으시고 행복하게 살도록 에덴동산을 창설하시고 행복한 가정을 세우셨습니다. 하지만 지금 세상은 미움, 거짓, 부패, 폭력, 전쟁, 환경오염, 질병 등 온갖 종류의 악으로 가득합니다. 그렇다면 악의 근원은 무엇이며 악은 어디에서 나온 것인지 의문을 가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시고 의로우신 분이신데 왜 악이 존재하도록 허용하시는가? 의문이 들기도 합니다. 무신론자들은 세상에 악이 존재한다는 것은 하나님이 없다는 증거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어거스틴은 ‘악은 선의 결핍’이라고 말했습니다. 선하신 하나님을 떠나면 악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인간을 지으셨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에서 중요한 것 중 하나가 ‘자유의지’인데 인간은 동물처럼 본성대로 사는 존재도 아니고 로봇처럼 프로그램대로 움직이는 존재도 아닌 ‘자유의지’를 가진 인격체로 지음 받았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이 하나님의 주신 축복을 깨닫고 감사해서 스스로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며 하나님과 사랑으로 교재하기를 원하셨습니다. 하지만 인간은 ‘자유의지’로 하나님을 떠나 악에 빠졌습니다. 창세기 3장은 세상에 어떻게 악이 들어오게 되었는가 세상의 비극의 원인을 말하면서 동시에 악에 빠진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구원의 사랑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오늘 말씀을 통해 세상과 자신의 내면의 악을 깨닫고 악을 이길 수 있는 믿음을 배울 수 있길 기도합니다.
  1절을 보십시오. 아담과 여자가 아름답고 평화로운 에덴동산에서 하나님의 주신 사명을 감당하며 행복하게 살고 있을 때 한 침입자가 나타났습니다. 바로 뱀의 탈을 쓴 사단입니다. 요한계시록에서는 사단을 큰 용, 옛 뱀으로 온 천하를 꾀는 자로 하늘에서 땅으로 쫓겨났다고 했습니다.(계12:9) 사단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실제로 존재하는 영적인 존재로 세상 악을 지배합니다. 성경에는 세 명의 대표적인 천사들이 언급되어 있습니다. 미가엘, 가브리엘, 루시퍼입니다. 미가엘은 천사장으로서 하나님의 원수들과 싸우는 위대한 용사입니다.(유9, 계12:7, 단12:1) 가브리엘은 하나님의 특별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사자로서 세례요한의 탄생, 그리스도의 탄생소식을 알려주었습니다.(눅1:19,26,27) 루시퍼는 계명성이라는 의미로 본래 하나님의 영광을 지키는 최고의 수호자였으나 축복을 받고 교만해져 쫓겨나 하나님을 대적하는 악의 세력을 잡은 사단이 되었습니다. (사14:12-15, 유6, 벧후2:4, 겔28:12-17) 1절에서 뱀은 가장 간교하다고 했습니다. 간교하다는 말의 원어(아룸)의 의미는 영리하고 신중하다는 뜻인데, 사단은 타락하기 전 영리하고 신중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떠났을 때 간교하고 교활한 악의 화신이 되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 없는 영리함과 총명은 오히려 사단의 악한 목적에 이용당하기 쉽습니다. 사단의 목적은 간교한 거짓으로 하나님을 떠나 자신의 종으로 만드는데 있습니다. 이처럼 사단의 간교함은 사람을 유혹하는데서 잘 나타납니다. 그럼 사단은 어떻게 사람들을 유혹합니까?
첫째, 의심을 심습니다. 사단은 화려하고 가벼운 세상의 말이 아닌 거룩한 하나님의 말씀을 인용하며 접근했습니다.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에게 동산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사탄의 이 말 가운데는 하나님이 말씀하신 본래의 뜻을 완전히 뒤집어 엎어버리는 무서운 힘이 있습니다. 사단은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인용하지 않고 ‘참으로 그런가?’ 질문함으로 의심을 유도했습니다. 약육강식의 경쟁세상에서 의심은 생존을 위해 필요합니다. “당신의 생각을 의심하라” “당신이 믿고 맡긴 보험금을 의심하라” “사람의 본심을 읽고 싶은 자 얼굴을 의심하라” 데카르트는 모든 것을 의심하고 있는 자신만이 결코 의심할 수 없는 사실이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사실 자신도 믿을 수 없는 것이 세상의 현실이고 진정 의심할 수 없는 진실은 하나님이 세상과 나를 선한 뜻 가운데 지으셨다는 사실입니다. 나를 낳고 키우신 부모님이 정말 나의 부모님이 맞는가 의심하지 않는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신뢰하는 것은 모든 존재와 삶의 기초가 됩니다. 사단은 하나님의 말씀을 의심하도록 유도하면서 하나님의 선하심과 사랑을 의심하도록 했습니다. 각종 나무의 열매를 자유롭게 먹어도 좋다는 무한대한 자유를 빼버리고 선악과 하나를 금지한 것을 마치 모든 나무 열매를 금지한 것처럼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하고 신뢰를 무너뜨려 관계성을 깨뜨리고자 했습니다.
  몸이 연약해졌을 때 병에 잘 걸리듯이 우리가 말씀이 없고 지치고 힘들 때 사단의 시험에 들기 쉽습니다. 사단은 질병을 옮기는 바이러스처럼 면역기능이 떨어진 사람들의 생각과 영혼에 침투해 죄를 감염시킵니다. 이때 사단은 뿔 달린 도깨비나 피 흘리는 귀신의 모습이 아니라 둘도 없는 친한 친구처럼 다가와 마음에 의심을 심습니다. 하나님은 참으로 살아계시는가? 살아 계시다면 세상이 왜 이렇게 불의하고 모순투성인가? 하나님이 참으로 나를 사랑하시는가? 나를 사랑하신다면 왜 힘든 나를 도와주지 않은가? 성경이 참으로 절대적인 진리인가? 이렇게 꼭 힘들게 자기부인하고 자기십자가를 지는 것이 진리인가? 등 한번 의심에 사로잡히면 의심이 의심을 낳아 내가 전혀 생각지 못한 방향으로 끌려가게 됩니다. 마음에 의심이 들면 두려움이 생기고 무기력해집니다. 이런 의심이 들면 사단의 역사임을 깨닫고 하나님께 기도하고 말씀으로 물리쳐야 합니다. 말씀과 기도가 사단의 공격을 막는 면역체계입니다. 사단의 미혹에 여자는 분별력을 잃었습니다. “동산 나무의 열매를 우리가 먹을 수 있으나 동산중앙에 있는 나무의 열매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2,3)” 그도 하나님의 말씀을 알고 있었지만 사단처럼 자기 생각대로 생략하고 과장하고 변질시켰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중 ‘각종 나무 열매는 네가 임의로 먹되’ 자유를 빼 버렸습니다. 자유를 빼버리면 남는 것은 율법입니다. 또 ‘만지지도 말라’ 말을 첨가해 과장했습니다. 무엇보다 ‘반드시 죽으리라’ 절대적인 명령의 말씀을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상대화시켜 약화시켰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자기 마음대로 바꾼 여자의 문제가 무엇 때문입니까? 아담의 갈비뼈 하나로만 만들어져 이해력과 암기력이 부족한 것입니까? 여자가 말씀에 대한 절대성을 잃은 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축복에 대한 감사가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여자는 에덴의 아름다운 환경과 거룩한 사명과 무엇보다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자유를 누릴 수 있는 데도 단 한 가지 선악과를 먹지 못하게 하는 하나님의 계명의 말씀 때문에 감사가 사라졌습니다. 우리는 자신이 얻지 못한 작은 것이 아닌 자신이 얻은 큰 축복을 바라볼 때 감사할 수 있습니다. 신자는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로 영생을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축복을 바라볼 때 어떤 형편에서도 항상 감사할 수 있습니다. 감사하는 마음이 있을 때 하나님께서 나를 이해되지 않은 고난의 길로 인도할지라도 그 사랑을 믿고 인내하며 끝까지 따를 수 있습니다.
사단의 유혹을 어떻게 이길 수 있는지 한 예화를 소개합니다. 한 아이가 ‘요나와 큰 물고기’라는 그림책을 가슴에 안고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한 불신자가 간교한 미소를 띠며 질문했습니다. “너는 요나와 큰 물고기 이야기를 진실이라고 믿어?” 이에 아이가 대답했습니다. “물론이죠.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 말씀이고 교회에서도 배웠는걸요.” 불신자가 어려운 질문을 했습니다. “너는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서 3일 밤낮을 살다가 살아난 이야기가 사실이라는 것을 증명할 수 있어?” 아이가 잠시 생각 후 대답했습니다. “제가 천국에 가면 요나 아저씨께 물어볼께요.” 그러자 불신자가 당황하며 더 어려운 질문을 했습니다. “요나가 만일 천국에 없고 지옥에 갔으면 어떻게 할래?” 아이는 즉시 대답했습니다. “그러면 아저씨가 물어보세요.” 어떤 이는 창세기 인간의 타락 말씀이 인간이 지어낸 신화라고 믿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노아의 방주 이야기처럼) 성경뿐 아니라 세계 여러 곳(바벨론, 애굽, 수메르 등)에서 발견되었습니다. 바벨론에서 BC 2000경으로 추정되는 고대의 도장(temptation seal)에서 인간의 타락과정을 보여주는 그림이 발견되었는데 그것은 남자와 여자가운데 한 과일나무가 있는데 여자가 과일을 따고 있고 그 뒤에는 뱀이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여자를 유혹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기록들을 통해 인간의 타락이 고대인들에게도 널리 알려진 사실로 인정되었습니다. 그럼에도 확실한 증거가 없다고 믿지 않는 이들도 있겠지만 신자는 성경의 하나님 말씀을 믿음으로 죄와 악을 이길 수 있는 인생의 비밀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둘째, 교만을 부추깁니다. 사단과 대화를 시작한 여자의 마음에는 이미 의심의 독이 침투하기 시작했습니다. 여자의 약점을 파악한 사단은 즉시 결정적인 한 방을 날렸습니다.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4,5)” 사단은 ‘어쩌면 죽지 않을지도 몰라’ 가 아닌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거짓 확신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정면으로 거부했습니다. 사단은 거짓확신을 심은 후 하나님과 같이 된다는 교만을 심었습니다. 마음이 교만해지면 영적질서를 무너뜨리고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게 됩니다. 분별력을 잃고 영적 눈이 가리워져 자기가 원하는 것만 보며 거짓확신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하나님이 다른 열매를 허용하면서 굳이 선악과를 못 먹게 한 것은 뭔가 숨겨진 이유가 있어. 선악이 뭔지 모르지만 뱀의 말처럼 선악과를 먹으면 하나님처럼 세상을 움직일 수 있는 선악의 비밀을 알 수 있고 또 좁은 에덴동산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내 마음대로 살 수 있는 더 넓은 세상을 얻게 될지도 몰라’ 인간이 타락하게 된 근본원인은 사단의 타락처럼 하나님과 같이 되고자 하는 교만 때문입니다. 교만은 모든 죄의 뿌리입니다.(어거스틴) 교만을 품게 된 여자는 선악과를 보는 눈이 변했습니다.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6a).” 여자의 온 몸과 마음과 영혼이 선악과를 간절히 원하고 있었습니다. 여인의 마음에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 생긴 것입니다.(요일2:16) 결국 여자는 선악과를 따서 한 입 베어 물고는 아담에게도 주어 먹게 했습니다. 아담은 여자가 자신에게 상의도 없이 하나님말씀에 거역한 것이 섬뜩했지만 여자가 선악과를 먹은 후에도 죽지 않은 것을 확인하고는 남은 부분을 다 먹었습니다. 아담은 마땅히 하나님말씀에 불순종한 여자를 책망하고 하나님께 끌고 나아가야 했지만 그도 하나님께 대한 사랑과 감사보다도 하나님처럼 되고 싶은 교만의 욕구를 이기지 못했습니다. 이렇게 아담과 여자는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함으로 악의 세계에 들어가게 됐습니다.
  선악과를 먹은 그들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들은 사단의 말대로 눈은 밝아졌지만 하나님과 같이 되지 않았고 오히려 악의 세계에 눈을 뜨게 됐습니다. 그들은 눈이 밝아져 자기들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로 삼았습니다. 동산을 거니시는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두려움으로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었습니다. 수치심과 자의식 또 두려움 등 죽음의 세력이 그들을 사로잡았습니다. 생명의 근원되신 하나님을 떠났을 때 하나님 말씀처럼 죽음의 세력에 붙들려 서서히 죽어가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죄가 무서운 것은 한 번의 경험으로 죄의 노예로 만든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마치 들어갈 때는 자유롭게 들어갈 수 있으나 한번 들어가면 스스로 나올 수 없고 죽어서야 나올 수 있는 감옥 같은 곳입니다. 그들은 죄를 지은 후 악에 빠져 스스로 다시 돌이킬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들을 포기치 않으셨습니다. 포기할 수 없으셨습니다. 하나님은 나무 뒤에 숨어있는 아담과 여자를 찾아가셔서 “아담아 어디 있느냐” 부르셨습니다. 그것은 아담이 숨어 있는 장소를 몰라 묻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떠난 아담의 실존을 일깨워주는 말씀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을 떠나면 잃어버린 자가 됩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자로서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 영광을 위해서 살 때 삶의 의미를 느끼고 행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떠날 때 자신이 어디에 있어야 하는지? 왜 있어야 하는지?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지 알지 못하고 방황하게 됩니다. 삶의 의미를 상실한 인간은 인생의 목적을 상실하고 사명도 상실하고 하나님의 형상도 상실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아담이 자신의 비참한 존재를 깨닫고 돌이키기를 원하셨습니다. 하지만 아담은 죄의 회개보다도 죄를 감추고 변명하기에 바빴습니다.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 있게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열매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12).” 날 때부터 솔로로 살다가 하나님의 은혜로 자신의 반쪽을 만나 후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감동하며 기뻐한지가 엊그제 같은데 이제 모든 죄의 원인을 여자와 하나님께 돌려 자신의 죄를 벗고자 했습니다. 아담의 변명을 들은 여자도 가만히 있을 수 없었습니다. “뱀이 나를 꾀므로 내가 먹었나이다(13).” 인간의 범죄로 하나님과 인간사이의 사랑과 신뢰가 파괴되었습니다. 동시에 인간 상호간의 관계성도 파괴되는 것은 물론 인간과 자연과의 관계도 파괴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영적 질서를 파괴한 인간을 심판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시만 또한 죄를 싫어하시는 공의의 하나님으로 말씀대로 죄를 심판하셨습니다. 뱀은 사단의 도구였지만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었습니다. 뱀은 심판 이전에는 꼬리를 땅에 댄 채 서서 이동했던 짐승으로 추측됩니다(Luther). 그러나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모든 짐승보다 더욱 저주를 받아 배로 다니고 살아 있는 동안 흙을 먹게 됐습니다. 그것은 극도의 멸시와 수치와 굴욕의 상태입니다. 지금도 사람들은 무의식속에서 과거 뱀에게 유혹받아 인생망친 기억이 남아 있어 뱀을 보면 소스라치게 놀라고 증오합니다. 다음 선악과를 따먹고 아담까지 공범으로 만든 여자에 대해 하나님께서는 출산의 고통과 남편의 다스림 받는 고통을 주셨습니다. ‘수고하고 자식을 낳는 것’은 출산의 고통과 더불어 자식을 낳아 기르는 전 과정에서 여자가 겪어야 할 고통을 말합니다. 새 생명을 낳는 것은 큰 축복이었지만 죄에 빠진 후 자식을 낳고 키우는 큰 고통이 되었습니다. 특히 사춘기가 되면 자녀들은 마치 선악과를 따먹은 것처럼 부모 말을 듣지 않고 피하며 반항합니다. 그런 자녀를 보면 선악과를 따먹고 반발하는 아담을 바라보는 하나님의 안타까운 마음을 조금이나마 깨달을 수 있습니다. 또 죄를 짓기 전 여자는 남편과 동등관계였지만 심판 후 힘의 논리에 의한 주종관계가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마지막으로 아담을 심판하시며 죽을 때까지 수고하며 일해야 하는 고통을 주셨습니다. 그전에는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최적으로 만드신 에덴동산에서 노동은 놀이처럼 기쁘고 즐거웠습니다. 하지만 인간이 하나님께 불순종하자 땅도 인간에게 불순종하여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내며 인간이 수고한 만큼 그 효력을 내지 않게 되었습니다. 인간과 더불어 인간의 다스림 받는 만물도 함께 고통 받게 됐습니다.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인간은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고 살게 됐고, 죽을 때까지 죽도록 일하다 결국 죽어 흙으로 돌아가는 허무한 인생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고생을 하더라도 그 대가로 열매가 있을 때 보람을 느끼고 기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모든 수고가 결국 무로 돌아갈 때 우리는 절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삶의 모든 고통과 수고와 허무한 결과를 안다 해도 아담의 후손인 인간은 죄 가운데 태어나 평생 죽음을 향한 험한 여행길을 가다 결국 허무하게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어떤 이는 “아담의 죄 때문에 왜 내가 저주를 받아야 되는가?” 반발하는 이도 있지만 아담의 피를 물려받은 우리는 죄악된 세상에서 아담보다 더 심한 불순종의 죄를 짓고 살아갑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피조물인 인간이 사랑과 생명과 빛 되신 창조주 하나님을 떠났을 때 나타나는 자연스런 결과입니다. 아담과 여자는 선악과를 먹은 후 선악을 알게 됐습니다. 하나님과 함께 하는 것이 선이고 하나님을 떠날 때 악에 빠질 수밖에 없음을 알게 됐습니다. 하지만 이미 선악과를 먹은 후 돌이킬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죄의 심판의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구원의 길을 여셨습니다.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15)” 하나님은 뱀을 저주하시면서 또한 뱀으로 위장한(뱀의 탈을 쓴) 사단을 심판하셨습니다. 여기서 뱀의 후손은 사단과 그 추종세력을 말하고 여자의 후손은 예수그리스도를 말합니다. 예수님은 남자의 도움 없이 순수한 동정녀 마리아에게 성령으로 잉태되어 태어났기 때문에 여자의 후손이라 했습니다. 사단은 여자를 통해 인류를 멸망시키려고 했지만 하나님의 섭리가운데 여자를 통해 그 자신이 멸망당하게 됐습니다. 여자로 말미암아 죄가 왔지만 여자로 말미암아 구원자가 오셨습니다. 사단이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한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수난을 가리킵니다. 예수님은 인류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히셨습니다. 나의 죄를 위해 수치를 당하고 매 맞고 피를 흘리고 죽으셨습니다. 하지만 죽음에서 부활하심으로 사단의 머리를 상하게 하셨습니다. 이로써 인간을 죄와 사망의 세력에서 해방시킬 길을 여셨습니다. 그런데 어떤 이는 말합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심으로 사단의 죄와 죽음에서 승리하셨고 또 마지막 때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 사단을 완전하게 소멸하시겠다고 약속하셨지만 아직도 세상은 사단의 죄와 죽음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아직도 악이 지배하는 것 같습니다. 세상을 눈에 보이는 대로, 인간적인 눈으로 볼 때 절망스럽습니다. 하지만 이 세상을 주관하는 분은 하나님이지 사단이 아닙니다. 다만 사단은 타락한 세상에서(세상의 어둠에서) 타락한 사람들을 지배할 뿐입니다. 사단은 인간을 뛰어넘는 능력이 있지만 하나님의 주권아래 있는 존재로 하나님의 능력아래 있습니다. 사단은 하나님의 심판의 선고를 받은 후 예수님을 통해 돌이킬 수 없는 큰 상처를 입었습니다. 현재 시한부로 세상에 영향력을 끼치지만 결과는 정해져 있고 하나님은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십니다. 신자는 믿음의 눈으로 세상을 선한 뜻 가운데 주관하시고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볼 수 있고 믿음으로 그 역사에 동참할 수 있습니다.
  하박국 선지자는 하나님의 선민 이스라엘이 하나님 없이 사는 죄악된 주변 강대국들의 침략을 받고 수치당하는 세상역사 속에서 절망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의인은 그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합2:4) 말씀하시며 세상을 능력과 선한 섭리로 주관하시는 하나님께 대한 믿음을 갖도록 하셨습니다. 이에 믿음을 덧입은 하박국은 기쁨으로 외쳤습니다.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 나를 나의 높은 곳으로 다니게 하시리로다.”(합3:17-19) 여자의 후손은 예수 그리스도와 또 그를 믿는 신자들입니다. 신자는 믿음으로 예수님 안에서 세상의 죄와 죽음을 지배하는 사단과 싸워 이길 수 있습니다. 인류역사는 뱀의 후손과 여자의 후손과의 전쟁의 역사입니다. 이것은 선과 악의 싸움으로 신자는 대장되신 예수님께서 이미 사단에게 승리하셨기 때문에 예수님 안에 있을 때 승리가 보장된 싸움을 싸우고 있는 것입니다. 신자는 장래뿐 아니라 지금 구원자 되신 예수님을 믿음으로 세상의 악에서 이길 수 있습니다. 선악과의 유혹은 첫 사람 아담뿐 아니라 현재 신자들에게도 수시로 겪게 되는 사단의 유혹입니다. 하지만 설사 신자가 죄의 유혹에 넘어질지라도 예수님의 피를 믿음으로 다시 돌이킬 수 있습니다. 믿음으로 예수님을 따르고 예수님 안에 있을 때 사단의 악이 신자들을 정복할 수 없고 결국 최후 승리할 수 있습니다. 사도요한은 인생 순례 길의 끝을 눈앞에 두고 믿음으로 증거했습니다. “무릇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가 아니면 세상을 이기는 자가 누구냐?(요일5:4,5) 그래서 예수님 안에 있는 신자는 세상의 악이 일시적으로 부분적으로 세상을 지배하는 것같이 보일지라도 믿음으로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야 할 것입니다.
  20절을 보십시오. “아담이 그의 아내의 이름을 하와로 불렀으니 그는 모든 산자의 어머니가 됨이더라.” 아담은 죄의 심판에서도 구원의 길을 예비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붙들었습니다. 그래서 자신을 타락의 길로 인도한 여자를 용서하고 하나님께서 주신 약속에 기초해 여자의 이름을 ‘하와’ 즉 ‘모든 산자의 어머니’로 불렀습니다. 그전까지 아담은 하와에게 이름을 지어주지 않고 그냥 ‘여자’, 기분 좋으면 ‘허니’라고 부르다, 죄를 지은 후에는 ‘야!’라고 불렀습니다. 하지만 이제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하와’라 부르며 믿음의 동역자로 영접했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죄를 지음으로 이제 더 이상 생명나무가 있는 에덴동산에서 살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낙원을 잃었지만 하나님께서 함께 하셨습니다. 낙원에서 쫓겨나 먹고 살기 위해 땅을 가는 아담과 하와를 위해 가죽옷을 지어 입히셨습니다. 그들은 수치심으로 스스로 무화과나무 잎으로 치마를 만들어 입었지만 며칠도 되지 않아 시들어 구멍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위해 짐승을 희생시켜 가죽옷을 입혀주셨습니다. 그 가죽옷은 예수님을 상징합니다. 인간은 스스로 죄를 가릴 수 없지만 예수님께서 살과 피를 희생하셔서 우리의 죄를 가려주셨습니다.
이 말씀을 준비하면서 큰 부담감과 억매임이 들었습니다. 다시 첫째 아이의 기흉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됐기 때문입니다. 고2때부터 시작된 기흉 증상은 자주 재발되었고 그것도 항상 제가 메시지를 준비할 때 나타나 병원에 입원했었습니다. 이번에 또 나타나면서 이것이 하나님의 뜻인가 아니면 사단의 간계인가 분별이 생기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역사를 섬기는 가운데 계속해서 문제가 생기자 의심과 불신이 들어왔습니다. 하지만 말씀을 준비하면서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선한 섭리의 역사를 믿어야 함을 깨닫게 됐습니다. 오히려 인생문제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면서 문제를 극복할 수 있는 믿음을 덧입게 됐습니다. 인생을 사는 동안 세상문제는 끊임없이 일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그 문제의 원인이 나의 죄 때문에 생긴 하나님의 연단인지 아니면 사단이 주는 시험인지 알 수 없지만 중요한 것은 오직 하나님께 돌이킬 때 하나님 안에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음을 깨닫습니다. 제가 문제 앞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붙드는 가운데 하나님께서 주시는 믿음과 능력을 덧입고 사단이 주는 의심과 불신을 극복하고 하나님께 영광 돌릴 수 있길 기도합니다.

결론적으로 하나님은 인간의 범죄에도 불구하고 여자의 후손을 통한 구원의 길을 예비하셨습니다. 창세기 3장 15절에서 메시야를 주시겠다는 약속은 요한복음 3장 16절에서 성취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은 죄인들을 사랑하셔서 독생자를 희생하셨습니다. 우리가 이 사랑을 영접하고 예수님을 믿고 따름으로 세상의 악을 이기고 하나님영광을 위해 살 수 있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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