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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nday Worship Message
주일예배메시지

작성자 휴화산
작성일 2010-01-14 (목) 11:25
분 류 로마서
ㆍ추천: 0  ㆍ조회: 2764      
IP: 211.xxx.239
[2010신년말씀제1강]복음은 하나님의 능력-서홍일
2010년신년말씀제1강                    서 홍 일
         
            복음은 하나님의 능력

말씀/로마서1:8-17
요절/로마서1:16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

  대망의 2010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사람들은 떠오르는 해를 바라보며 변화와 성장을 염원합니다. 우리 역시 새해에 직장도 얻고 개원도 하고 결혼도 하고 더 넓은 집으로 이사도 하고 아이들도 건강무탈하게 자라 주기를 소망합니다. 영적으로도 더 깊이 성장하여 믿음의 세계를 개척하며 열매맺는 목자의 삶을 기대해봅니다. 신년말씀은 이런 우리에게 구원의 능력, 변화와 성장의 능력인 복음을 상기시켜줍니다. 저희모두가 하나님 말씀 안에서 복음의 능력을 확신하고 힘차게 내달려서 진일보 성장하는 한해가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로마 성도들을 생각하는 바울의 마음에는 늘 감사와 기도가 충만했습니다. 로마 성도들은 소수였지만 그들의 믿음의 영향력은 널리 전파되었기 때문입니다. 당시 세계를 제패한 로마는 세계의 중심이 되어 식민지에서 끌어들인 물적, 인적자원으로 부와 사치, 향락을 누렸습니다. 로마는 각종 이방종교와 사상들이 범람하여 육신주의, 물질주의로 들끓는 거대한 용광로와 같았습니다. 어떤 것도 그 안에서는 용광로의 일부로 용융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소수의 신자들은 대부분 로마로 온 이주민으로 사회적으로 낮은 신분의 사람들로 무시와 천대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믿음은 녹아 없어지지 않고 그 원형을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믿음의 경륜은 어리지만 중심을 지켜내는 성도들을 생각할 때 바울은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우리에게도 이방타지에서 자립의 고난과 외로움 속에도 이방에 녹아 들지 않고 묵묵히 헌신하는 한, 두가정의 선교사님들의 믿음을 생각할 때 감사드리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저희가운데도 동역자들을 파송하고 이제 한 가정으로 광운대 양들을 섬기고 계신 서삼문 목자님, 서세희 사모님의 헌신을 생각할 때 감사하게 됩니다. 홀로 자립하기에도 벅찬 이방 땅에서 여러 중국 양들을 섬기며 성탄예배에 데려온 풍하자매님의 믿음과 영향력을 생각할 때 무엇보다 하나님께 감사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주목받지 못하는 소수이나 시대에 녹아들지 않고 그 믿음을 지켜가는 자들을 귀하게 여기십니다.

  바울은 로마 성도들을 향한 감사에 그치지 않고 쉬지 않고 기도했습니다. 성도들의 믿음을 위해서 기도했으며 또한 자신이 로마에 갈수 있는 길을 열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이미 3차전도 여행을 통해서 많은 교회를 개척한 뒤였으나 바울의 마음에는 로마를 거쳐 땅끝 서바나까지 가고자하는 선교의 열정으로 불타고 있었습니다. 바울이 로마에 가고자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로마 성도들에게 신령한 은사를 나눠주고 싶은 간절한 소원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11절을 보십시오. “내가 너희 보기를 간절히 원하는 것은 어떤 신령한 은사를 너희에게 나누어 주어 너희를 견고하게 하려 함이니” 여기서 신령한 은사(spritual gift)란 복음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복음중에서도 바울이 경험한 그리스도의 충만한 복음입니다. 로마 성도들도 복음이 있지만 무시와 박해를 간신히 견뎌나가는 초보적 수준의 복음이었습니다. 바울은 이들에게 신령한 은사를 나누어줌으로 그들을 복음신앙위에 견고하게 세우고자 하였습니다. 또한 피차 안위를 받으며 그들을 통해 좋은 열매를 맺고자 하였습니다. 바울에게는 늘 하나님의 충만한 생명의 말씀이 있었습니다. 그리스도의 헤아릴 수 없는 사랑과 은혜, 고난과 핍박을 이기고 영적전쟁에서 승리한 놀라운 영적체험과 비밀들을 늘 신선하게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그에게는 누구를 만나든지 충만한 복음을 나누어주는 열정으로 충만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늘 나누어주기에 충만했던 목자 바울을 배울 수 있습니다. 받기만을 바라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주기를 잘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신앙도 은혜를 받기만을 바라는 초보적 수준이 있는 반면 은혜를 나누어주는 성숙한 신앙이 있습니다. 사람은 때론 받기도 하고 주기도 해야 합니다. 그러나 은혜를 받기만을 바랄 때 우리는 나누어줄 수 없고 성장할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은혜를 나누어줄 수 있는 사람으로 성장하기를 원하십니다. 이미 우리는 하나님께 가장 값진 선물을 받은 자들입니다. 생명의 말씀을 받았으며 그 속에 나타난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과 은혜를 받았습니다. 우리는 돈이 있어도 살수 없는 복음을 받았고, 권세가 있어도 누리지 못하는 은혜를 누리고 있습니다. 이제는 더욱더 복음진리위에 견고하게 설 뿐만 아니라 받은 복음진리와 신령한 영적체험들을 영적으로 굶주린 자들에게 나누어주는 종들이 되어야겠습니다. 동역자간에도 서로가 받은 은혜들을 나누며 피차 안위함을 얻어 좋은 열매맺는 사랑의 교제를 이룰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바울은 신령한 선물, 복음을 나누고 전하고자하는 내적인 동기에 대해서 말합니다. 14,15절을 보십시오. “헬라인이나 야만인이나 지혜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다 내가 빚진자라 그러므로 나는 할 수 있는대로 로마에 있는 너희에게도 복음전하기를 원하노라” 바울은 헬라인이나 야만인에게 자신이 빚졌다고 합니다. 사실 표현 그대로라면 그들에게 빚진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헬라인이 누굽니까? 헬라인이 아니면 다 야만인 취급을 하고 지혜와 철학을 자랑하며 복음에 대해서는 콧방귀를 뀌는 교만한 자들입니다. 야만인들은 또 어떠합니까? 오늘날로 말하면 머리에 든 것도 없이 힘자랑, 외모자랑하고 먹고 마시고 즐기는데만 골몰하는 어리석고 육신적인 자들입니다. 그들은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타인이요, 약소민족의 피를 빨아먹는 원수에 불과한 자들입니다. 바울은 이런 그들에게 빚진 자의 심정 때문에 복음을 전하고자 한 것입니다. 그것은 죄인중의 괴수였던 자신을 구원하신 예수님의 구원의 은혜와 사랑에 빚을 졌기 때문입니다.

  바울의 심정은 빚 독촉에 시달리는 채무자의 압박감이나 부담감이 아닙니다. 빚을 청산하기 전에는 하고 싶은 것도 못하고 얽매여 사는 자유상실의 심정이 아닙니다. 많이 얻어먹었으니 나도 한번 사야한다는 체면 같은 것도 아닙니다. 그것은 아무 자격 없는 자에게, 죄로 인해서 죽을 수밖에 없는 자에게, 아무 것도 드릴 것이 없는 자에게 일방적인 은혜를 베푸신 우리 주님의 사랑에 대한 감사에서 나오는 심정입니다. 주님이 우리를 구원하신 것은 단순히 빚을 탕감해주는 힘 있는 자의 관용과 아량에서 나온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벌레만도 못한 죄인들을 위해 종의 모습으로 낮아져 자신의 몸을 십자가에 내어드린 희생과 거룩한 사랑에서 나온 것입니다. 바울은 이 사랑에 감동을 받아 빚진 자의 심정으로 복음을 전한 것입니다. 제거 0순위였던 자신에게 임한 주님의 은혜에 감사하여 주님이 부탁하신 이방인들에게도 복음을 증거함으로 주님 은혜의 빚을 조금이라도 갚고자 한 것입니다.

  우리에게 때론 성탄 때 받는 카드 한 장, 선물하나가 빚진 자의 심정을 들게 합니다. 센터의 한 목자님은 2009년에도 어김없이 지극한 겸손과 감사가 담긴 성탄카드를 보내왔습니다. 제가 한 것이라고는 침 몇 번 놓아드리고 기도해준 것 밖에 없었습니다. 그것도 잊혀지고도 남을 과거사입니다. 저는 마음이 차가운 사람이지만 카드를 받고 심령이 뜨거워졌습니다. 저에 대한 감사이전에 우리 주님의 은혜를 잊지 않는 빚 진자의 심정이 다가왔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이분을 통해 제게 베푸신 주님의 은혜와 사랑을 돌아보는 마음의 여유를 주셨습니다. 저야말로 정욕과 교만과 세상욕심으로 헬라인과 야만인처럼 살다가 수치와 정죄를 받아 죽을 자였습니다. 오직 예수님의 은혜와 사랑으로 오늘날 여기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젊은날부터 지금까지 죄인에게 베푸신 주님의 사랑은 이리도 크고 분명한데 빚진 자의 감사가 식어지고 헌신에 대한 부담감과 이기심으로 가슴이 냉냉해져 버렸습니다. 제게 베푸신 주님의 은혜와 사랑에 대한 감사와 빚진 자의 심령을 회복하기를 기도합니다. 빚진 자의 심정으로 새해에 캠퍼스를 오르며 제가 받은 복음을 양들에게도 전하여 주기를 기도합니다. 캠퍼스 양들에게 복음전할 열정은 우리의 인간적 의지와 성실에서 지속적으로 나올 수 없습니다. 이정도 헌신하고 수고했으면 빚도 좀 갚지 않았는가 하는 자기 의로는 더 이상 낮아지고 섬길 수 없습니다. 오직 주님의 은혜와 사랑을 기억하는 빚진 자의 심령이 어떤 영혼도 영접하고 섬기도록 합니다. 의무감에서도 아닌, 체면을 위해서도 아닌, 갚아도 다 갚을 길 없는 주님 사랑에 빚진 심정으로 캠퍼스 영혼들에게 복음 전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16절을 보십시오. 빚진 자와 심령과 함께 바울에게는 복음의 능력에 대한 확신이 있었습니다.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 부끄러워하지 않는다는 말을 쓴 것을 볼 때 당시 복음과 복음을 믿는 성도들은 부끄럽게 여겨지는 분위기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고린도전서1:22,23절을 보면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성과 철학을 자랑하는 헬라인들이 볼 때 복음은 혁명에 실패한 약소국 구원자의 비극적 최후에 지나지 않습니다. 부활의 복음 역시 이성을 중시하는 그들에게는 믿을 수 없는 자작 사기극이요 미련한 자들의 허황된 신념에 불과합니다. 유대인들에게는 신성을 모독하여 뿌리뽑아야하는 나사렛 이단종파 일뿐입니다. 그래서 복음자체가 무시당했고 복음을 영접하고 사는 자들도 멸시와 천대를 받았습니다. 소수의 로마 성도들은 대다수가 추구하는 헬라의 철학이나, 거대한 물질문명을 이룬 로마제국 앞에서 곱지 않는 시선을 받으며 위축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복음을 영접했지만 복음의 능력을 과소평가하고 복음을 전파하고 복음으로 사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기 쉬웠습니다. 그러나 이는 복음의 능력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데서 오는 것입니다. 바울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복음의 능력을 알면 결코 복음을 부끄러워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당시에 복음을 무시하고 힘을 자랑하던 로마의 현실이 어떠했습니까? 방탕과 쾌락에 취한 것도 모자라 변질된 음욕으로 짐승보다 못한 존재로 추하게 전락해버렸습니다. 지혜와 철학을 자랑하는 헬라의 형편은 또 어떻습니까? 스스로 지혜있다 하나 우준하게 되어 금수와 버러지 형상의 우상을 만들어 피조물을 창조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기는 어리석은 자들로 추락하고 말았습니다. 겉은 화려하고 번지르하나 속은 죄로 곪고 썩어 악취를 풍기는 진노의 자식들이 되고말았습니다. 천하를 호령한 로마황제도, 진시황도 죄와 죽음의 권세에 굴복한 죄인에 불과합니다. 세상영광과 지혜를 자랑하고 의지해본들 죄와 죽음이 주는 불안과 두려움과 허무앞에서는 그저 무력할 뿐입니다. 그러나 복음은 어떻습니까? 복음은 헬라의 철학으로도, 로마의 힘으로도 정복할 수 없었던 죄와 죽음을 정복했습니다. 이 복음을 영접하는 자의 내면에 죄사함과 영생의 기쁨을 선물로 주고, 죄와 죽음의 권세에서 해방된 삶을 살게 하는 살아있는 하나님의 능력이 되었습니다. 바울은 이 살아있는 복음의 능력을 체험했습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이 인간본질의 문제인 죄와 죽음으로터 인간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능력임을 확신했을 때 복음은 결코 부끄러운 것일 수 없습니다. 헬라인이나 야만인이나 지혜로운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나 복음은 믿는 자를 구원하고 변화시키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복음은 바울이 죄수의 몸에 처한 순간에도 담대히 전하고 외쳐야만했던 하는 구원의 승전입니다.

  복음은 살아있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단순히 지식과 정보가 아니라 사람을 변화시키고 새롭게 하는 살아있는 능력의 소스입니다. 헬라어에는 이 능력을 ‘뒤나미스’라고 하는데 여기에서 영어 ‘다이나마이트’가 유래되었습니다. 삽질로는 골백번을 해도 안되는 터널공사에 다이나마이트 한방이면 끝납니다. 즉 복음에는 다이나마이트와 같은 폭발적인 파워가 있다는 것입니다. 복음이 들어가면 사람이 변합니다. 복음이 들어가면 타락한 내면과 질긴 죄의 습성이 조각나고, 영성이 충만한 사람으로 재창조됩니다. 원래 복음의 대적자였던 바울자신이 복음의 능력으로 변화된 증인입니다. 1960년대에 살인마의 대명사로 불리던 고재봉이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온나라를 떠들썩하게 해서인지 저는 어릴 때 아이들이 각슬이 타령처럼 부르던 노랫말에 ‘원맨쇼에 백남봉, 살인자에 고재봉’이라는 이름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는 군시절 대대장 사역병으로 차출되어 장작을 패다가 목마르고 배고파 식모가 먹으려고 긁어놓은 누룽지를 먹었습니다. 그런데 식모는 고재봉이 도둑질을 하고 전에 도둑맞은 라디오도 그의 소행이라고 고자질을 했습니다. 화난 대대장은 그를 헌병대에 넘겨 1년 동안 징역살이를 하게 했습니다. 억울한 징역살이를 하면서 복수심에 불타던 그는 출소한 후 대대장의 집을 찾아가 잠자고 있는 일가족 5명과 식모를 도끼로 살해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가 살해한 대대장은 새로 전근 온, 신자였습니다. 체포되어 사형당할 목숨이었던 고재봉은 악령의 노예가 되어 감옥에서도 교소도장의 눈을 찔러버렸습니다. 감방에 제일 늦게 들어온 사형수가 왕초노릇을 하고 아무도 무서워서 그에게 접근하지 못하게 됩니다. 그는 한 집사님의 심방을 받았지만 성경책을 찢어 코를 풀고 바닥에 내동댕이쳤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심심해서 성경책을 한번 읽어보았습니다. 그때 지옥 불이 활활 타오르고 자기가 그 속에서 소리치는 환상을 보았습니다. 그는 너무나 두려워서 ‘누구 예수 믿는 사람 없소?’ 소리쳤습니다. 그때 5,16반혁명분자로 몰려 감옥에 들어와 있던 신실한 신자였던 이인수 대령이 있었습니다. 이인수 대령으로부터 복음을 들은 살인마 고재봉은 변화되기 시작했습니다. 얼마나 성경을 열심히 읽었던지 7일 만에 신구약 성경을 다 읽었습니다. 복음이 들어가자 살인마 고재봉은 순한 양이 되었습니다. 그는 빚진 자의 심정이 충만해져 죽기 전까지 어찌하면 다른 사람에게 복음을 전할까 생각합니다. 교도소장에게 찾아가 죄수들을 모아주면 간증을 하겠다고 합니다. 그는 쇠사슬에 묶인 채로 죄수 2,000명 앞에서 눈물을 흘리며 자신이 받은 구원의 은혜를 간증했습니다. 이때 거기에 모인 2,000명 중에서 1,800명이 예수를 믿겠다고 결신하였습니다. 이후로 교도소는 찬송과 회개의 기도가 넘치는 교회가 되었습니다. 복음이 대적자 사울을 바울로, 살인마를 순한 양으로 변화여 새 사람 되게 하였습니다. 복음은 무엇입니까? 복음은 능력입니다. 사람을 변화시키는 능력입니다. 믿고 영접하는 어떤 죄인에게도 역사하는 살아있는 능력입니다. 이 복음의 능력이 우리도 변화시켜 캠퍼스를 말씀으로 먹이는 목자요 성경선생의 거룩한 삶을 살게 하였습니다. 이 복음이 마음속에 살아있을 때 우리는 더 이상 두렵지가 않습니다. 사람들의 냉랭한 시선도, 배척의 아픔도 두렵지가 않습니다. 복음이 내속에 있을 때 모든 불안과 염려와 피해의식은 산산 조각나 버립니다. 복음이 살아있을 때 듣지 못한 자들에 대한 빚진 자의 심정, 목자의 심령으로 충만해지게 됩니다. 구원을 주는 복음의 능력을 우리 속에 담아서 캠퍼스를 향해 복음의 다이나마이트를 힘차게 던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복음에 무엇이 있기에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주는 하나님의 능력이 됩니까? 17절 말씀을 보십시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 있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의는 하나님으로부터 온 의로서 인간의 선행을 통한 의와 대조를 이룹니다. 인간은 죄로 말미암아 타락하였기에 율법을 지켜 행할 수 있는 선의지와 능력을 상실했습니다. 율법을 지키고 선을 행하고자 애쓸수록 인간은 심판에 처한 죄인임을 발견할 뿐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복음을 통하여 하나님의 의, 곧 인간을 구원하고자 하시는 자신의 일을 나타내셨습니다. 하나님과 바른 관계성을 회복하고 구원에 이르는 길을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통하여 완성하신 복음에 선명하게 계시하여 주신 것입니다. 복음에 인간이 의롭게 될 수 있는 길이 나타난 것입니다. 바울은 구약성경 하박국 2장 4절을 근거함으로 이 의는 믿음으로 획득되는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믿음으로 믿음에’ 라는 말은 ‘by faith from first to last’ ‘처음부터 끝까지 믿음에 의해서’라는 뜻입니다.(ivp 주석성경 신약 389p) 구원에 이르는 의가 율법의 선한행위에 의해서가 아닌 오직 복음을 믿음으로 주어진다는 입니다. 하나님은 어떤 죄인이든지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믿고 영접하는 자를 의롭다 하시고 구원을 선물로 주십니다.

  로마서 전체를 관통하는 17절 말씀은 마틴 루터가 면죄부를 팔아먹던 타락한 카돌릭의 부패를 개혁하고 가려진 복음진리를 드러낸 기독교 교리의 핵심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진리는 이미 구약성경 하박국에서 인용되고 있듯이 새로운 것이 아니리 이마 선포된 진리입니다. 하나님은 하박국 선지자에게 세상이 아무리 악하여도 의인은 믿음으로 살아야 한다고 대답하셨습니다. 불의가 판을 치고 악한 자들이 득세하는 불의한 세상에서도 의인은 세상에 동화되지 말고 궁극적으로 악을 심판하시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살라 하셨습니다.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이 말씀은 믿음으로 구원받은 우리가 또한 이 시대를 끝까지 믿음으로 살아야 함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어떻게 사는 것입니까? 믿음의 조상아브라함을 상기하여 보십시오, 손에 잡히는 것이 하나 없는 그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붙잡았습니다. 믿음으로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으며, 드러눕기도 했지만 뭇별을 만드신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나이 들어 바랄 수도 없고, 바란다고 해서 되는 것도 아니지만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따라 살았습니다. 신약의 바울 사도는 어떠합니까? 복음을 전하다가 추위와 배고픔의 고난을 당하며, 배척받고 매 맞고 옥에 갇히며 죽을 고비도 여러 번 넘겼습니다. 그의 모든 인내와 수고에는 상 주실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내게 능력주신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간증하였습니다. (빌4:13). 그들은 세상에 살고 있으나 세상을 보고 살지 않았습니다. 오직 하나님을 믿음으로 말씀을 따르는 삶을 살았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믿음으로 살기는 만만치 않습니다. 믿음의 열매라도 맺혀준다면, 손에 잡히는 것이라도 짭짤하게 들어온다면 믿음으로 살 만은 합니다. 하지만 현실이 그렇지가 않습니다. 불확실한 장래와 수고와 헌신만 따를 것 같은 신앙의 현실은 두려움과 낙심을 안겨줍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살아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때론 우리는 아브라함과 바울에 견줄 수 없는 우리의 믿음 수준 때문에 낙심도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그럴 때도 믿음으로 기도하기 원하십니다. 기도할 때 하나님은 우리를 믿음의 높은 세계로 견인하여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복음진리를 믿음으로 사는 자를 결코 낙심시키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믿음으로 사는 우리 모두에게 그 믿음대로, 약속대로 행하시는 신실하신 분이십니다. 대망의 2010년 한해 저희 모두가 믿음의 사람이 되고자하는 소원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믿음으로 말하고, 믿음으로 행하고, 믿음으로 살아가는 복음의 종들 되기를 기도합니다. 복음을 능력을 확신하고 담대하게 복음을 증거하는 주의 종들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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