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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nday Worship Message
주일예배메시지

작성자 리스닝
작성일 2010-03-21 (일) 12:12
분 류 요한복음
첨부#1 2010요한복음4-1.hwp (26KB) (Down:4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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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요한복음4강]거듭남

2010년 요한복음 제 4강

거듭남

말씀: 요한복음 3:1-15
요절: 요한복음 3:5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생명의 탄생은 참으로 신비스러운 일입니다. 오늘 말씀에서 예수님은 육적인 존재가 영적인 존재로 거듭나 새로운 존재로 탄생되는 신비스러운 역사를 말씀하십니다. 복음사역의 핵심은 거듭나게 하는 역사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우리에게 거듭남의 진리를 깨닫게 하시며 변화의 역사를 체험하는 은혜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Ⅰ. 사람은 반드시 거듭나야 합니다(1-3)
  1절을 보십시오. “그런데 바리새인 중에 니고데모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유대인의 지도자라” 저자는 니고데모가 어떤 사람인지 자세히 소개하고 있습니다. 첫째로, 그는 바리새인이었습니다. 바리새인이란 구별된 자, 분리된 자란 뜻으로 세상 사람들과는 구별되어 경건하게 사는 자라는 것입니다. 바리새파는 B.C. 5세기 경 선지자 에스라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이 70년간 바벨론 포로 생활로 이방문화에 동화되어 선민의 identity를 잃어가고 있을 때 위기의식을 느낀 선지자 에스라는 하나님의 율법을 연구하고 가르치므로 백성들이 선민의 정체성을 지키도록 일깨워주었습니다. 그 후 B.C. 2세기경 헬라의 통치 아래 있게 되었을 때 헬라는 잔인하게 유대의 헬라화를 강행하여 할례와 안식일을 사형으로 금하고 이방신 숭배를 강요하였습니다. 이때 죽기를 각오하고 율법을 지킨 경건주의자들이 에스라의 후계자들인 바리새파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들은 율법에 대한 열심이 대단하여 여섯 살 때부터 모세오경을 암송하였고 서기관들이 만든 미쉬나와 그 주석서인 탈무드를 공부했습니다. 또 규칙적으로 매주 두 번씩 금식 기도를 하였으며, 하루 세 번씩 목욕하고 기도하였습니다. 당시 이스라엘에는 6000여명의 바리새파 사람들이 있었는데 니고데모는 이들 중 한 사람이었습니다. 둘째로, 그는 유대인의 지도자였습니다. 그는 유대의 최고 의결 기관인 산헤드린의 한 관원이었습니다.(a member of the Jewish ruling council) 산헤드린은 70명으로 구성되었으며, 입법은 물론이요 사법권도 있어 사형까지 선고할 수 있는 막강한 권세를 가졌습니다. 또한 10절을 보면 이스라엘의 선생으로서 사람들의 신뢰와 인정을 받는 영향력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니고데모는 권세와 명예와 부를 소유한 종교적으로나 사회적으로도 최고의 위치에 있는 당대의 대표적 인물이었습니다. 그의 성공신화는 그가 보통 사람과는 구별된 범상한 사람임을 나타내줍니다. 그는 행복만점을 찾는 사람들의 기준이었습니다. 그의 삶은 기쁨과 행복이 넘쳤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니고데모가 어느 봄날 밤에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그가 왜 밤에 예수님을 찾아왔을까요? 낮에는 공적인 일로 너무 바빠서, 아니면 사람들의 이목이 두려워 밤에 찾아왔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요한복음에서 밤은 어두움을 상징합니다. 곧 그의 내면이 밤과 같이 어두움에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가 지금까지 이룬 세상 명예와 부와 권세와 학문과 종교적 열심으로 참 만족이 있었다면 어두운 밤에 예수님을 찾아올 리 없습니다. 밤중에 절박한 환자가 응급실을 찾아오듯 니고데모는 어두운 내면문제를 안고 절박한 심정으로 예수님을 찾아온 것입니다. 그는 예수님께 찾아와 간접적으로 그의 심경을 토로하였습니다. “...랍비여 우리가 당신은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선생인 줄 아나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아니하시면 당신이 행하시는 이 표적을 아무도 할 수 없음이니이다”(2) 그는 예수님이 행하신 표적을 보고 예수님을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선생으로 알고 있었고, 예수님의 행하시는 표적은 하나님이 함께 하심이라고 믿고 있었습니다. 그가 예수님이 행하시는 표적 이야기를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니고데모는 그의 내면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려고 애를 쓰다가 해결하지 못해 고뇌에 찬 나날을 보내다가 예수님의 기적을 통해 해결 받고자 이 표적에 희망을 걸고 밤중에 찾아온 것이었습니다. 우리도 해결되지 않은 문제가 기적적으로 해결되기를 바랄 때가 많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런 니고데모를 어떻게 도와주셨습니까? 3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예수님은 그의 말을 들으시고 그의 문제가 하나님 나라를 보지 못하는 것임을 간파하셨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본다는 것은 하나님이 통치하심으로 말미암아 그 내면에 평안과 자유와 기쁨과 사랑과 만족과 화평을 누리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14:17절에서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고 증거하였습니다. 그러나 죄와 사망 권세의 다스림을 받을 때 사람은 늘 두려움과 불안, 염려, 죄의식에 시달려 평안이 없습니다. 이런 자들이 어떻게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있습니까? 예수님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다 하셨습니다. 곧 사람은 누구나 거듭나야만 하나님 나라를 보게 된다고 강조하셨습니다. 왜 반드시 거듭나야만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있습니까? 거듭나지 않으면 아담의 죄성(罪性)을 그대로 가진 존재로서 죄와 사단의 지배 하에 있기 때문에 죄의 세력과 하나님의 심판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사람이 아무리 인간성이 훌륭하고 도덕적으로 순결하고 니고데모와 같이 세상의 모든 것을 다 얻어도 거듭나지 아니하면 본질상 진노의 자식으로 살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과 단절된 자는 죄의 대가로 받을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허무, 무의미 등 죽음의 세력에 시달려 그 내면은 늘 밤과 같이 어둡습니다. 그러나 거듭난 자는 하나님이 은혜와 진리와 사랑과 용서로 다스려주심으로 천국의 기쁨과 평안과 죄 짐을 벗은 자유함으로 살게 됩니다. 더 이상 두려움과 허무와 운명주의와 절망에 시달리지 않습니다. 어디를 가든지 하나님이 함께 하시며 보호하시고 진리의 길로 인도하시니 안전하고 형통합니다.
  니고데모의 문제는 거듭나지 않아 하나님 나라를 보지 못하는 영적 문제였습니다. 그가 하나님 나라를 보기 위해서는 반드시 거듭나야 했습니다. 거듭난다는 것은 위로부터 다시 태어난다(born again from above)는 뜻입니다. 새로 태어난다는 것은 본질적으로 변화되는 것을 말합니다. 이는 아담 안에서의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영의 존재로 탄생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육적인 탄생으로 세상에 속하게 되는 것같이 거듭남으로 하나님 나라에 속하게 되는 것입니다. 성 어거스틴은 거듭나기 전에 방탕한 삶을 살았는데 어머니 모니카의 끈질긴 중보기도로 거듭나 새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옛날에 잘 가던 술집 여인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 여인은 친근한 목소리로 요즈음은 왜 오시지 않으세요? 말을 걸었습니다. 그러자 어거스틴은 “당신이 알던 어거스틴은 얼마 전에 죽었소. 나는 전혀 다른 사람이오.” 하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거듭나면 과거의 옛 사람은 죽고 새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서 땅의 일은 버리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거듭남에 대해 중요하게 생각지 않습니다. 거듭나지 않아도 세상 살아가는데 별로 불편하지 않는데 거듭나야 할 이유가 무엇인가 말합니다. 그러나 사람이 온 천하를 얻는다 할지라도 거듭나지 않아 그 영혼이 구원받지 못한다면 가장 불행한 것입니다. 거듭남의 문제는 구원이냐 심판이냐, 영생이냐 영벌이냐의 인간에게 가장 중요하고 시급한 문제인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반드시 거듭나야 합니다. 복음역사의 궁극적인 목표도 복음전파를 통해 거듭나게 하는데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하나님 나라를 주시기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이 말씀으로 생명의 절대 진리를 가르쳐주십니다. 사람은 반드시 거듭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진리를 반드시 깊이 영접해야 합니다. 이런 분명한 구원의 진리를 가질 때 거듭나지 않은 사람을 불쌍히 여기고 거듭나서 하나님의 나라를 보도록 올바로 도울 수 있습니다. 우리가 거듭나는 중생의 역사에 대한 절대성을 가지고 양들의 거듭나는 역사를 섬길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Ⅱ. 어떻게 거듭날 수 있습니까?(4-15)
첫째로, 물과 성령으로 거듭날 수 있습니다.(4-8)
  ‘거듭나야 하리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대해 니고데모는 매우 부정적인 자세를 보였습니다.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사옵나이까?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사옵나이까?”(4) 그는 예수님의 말씀이 도저히 이해되지 않았고 표적을 바라는 자기 기대에 합당한 말씀으로 들리지 않았습니다. 그는 늙은 자기 육신이 다시 태어나는 것으로 생각하여 불가능한 일로 여기는 영적으로 무지한 자였습니다. 그는 육의 세계에서는 이스라엘의 선생이 될 만한 지식을 가졌지만 영적인 세계에서는 기본적인 거듭나는 진리를 모르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거듭나지 못해 고뇌에 찬 나날을 보내는 한 영혼을 불쌍히 여기시고 어떻게 거듭날 수 있는가를 설명해주셨습니다. 5절을 다 같이 읽겠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예수님은 오직 물과 성령으로만 거듭날 수 있음을 강조하셨습니다. 물은 하나님의 말씀(벧전1:23), 또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요1 5:8)을 가리킵니다. 이는 모두 인간의 죄를 깨닫게 하고 죄를 씻는 역할을 하는 것들입니다. 벧전 1:23절은 말씀합니다. “너희가 거듭난 것은 썩어 없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살아 있고 항상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되었느니라” 요한 일서 5:6-8절을 보십시오. “이는 물과 피로 임하신 이시니 곧 예수 그리스도시라 물로만 아니요 물과 피로 임하셨고 증언하는 이는 성령이시니 성령은 진리니라 증언하는 이가 셋이니 성령과 물과 피라 또한 이 셋은 합하여 하나이니라” 하나님의 말씀과 그리스도의 피는 모두 물과 같이 인간의 죄를 씻는 역할을 하는데 이 중생의 역사를 성령께서 친히 주도하십니다.  
  거듭나는 역사는 니고데모가 기대하는 것처럼 특별한 기적이나 비상한 인간의 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거듭나는 역사는 전적으로 하나님께 속한 은혜의 선물입니다. 하나님은 말씀을 듣고 회개하여 예수님을 믿음으로 영접한 자에게 성령으로 역사하여 거듭나게 하십니다. 이는 육을 입고 있는 인간들에게 얼마나 은혜로운 약속입니까? 예수님은 계속하여 육적 탄생이 있듯이 영적인 탄생이 있음을 가르쳐주십니다. 6,7절을 보십시오.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이니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놀랍게 여기지 말라” 육으로 난 것은 어디까지나 육의 세계에 속한 것이요 아무리 높은 수준이어도 육을 벗어나지 못합니다. 그러나 성령으로 난 것은 영으로서 전혀 다른 영의 세계입니다. 사람이 육으로 태어날 때 그 부모의 본성을 이어받습니다. 이와 같이 성령으로 다시 태어나면 하나님의 속성을 받아 신의 성품에 참여하게 됩니다. 이런 자가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있고 그 삶이 영적으로 바뀌게 됩니다.
  예수님은 물과 성령으로 인한 거듭남의 역사가 결코 기이한 역사가 아님을 바람에 비유하여 설명해주십니다.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는 들어도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도 다 그러하니라”(8) 예수님께서 성령의 역사를 바람에 비유하신 것은 성령과 바람은 모두 ‘프뉴마’라는 같은 단어이며 그 성격과 역사 방법도 비슷합니다. 바람이 임의로 불듯이 성령도 주도적으로 역사하십니다. 우리가 바람 소리는 듣지만 눈으로 볼 수 없고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는 것처럼 성령의 역사도 결과를 보고 아는 것이지 어디서 와서 어떻게 역사하셨는지 그 과정은 알지 못합니다. 성령께서 한 사람 속에 역사하실 때 영안(靈眼)이 뜨여 영적인 세계를 보게 되고 가치관과 역사관과 비전이 영적인 것으로 변화됩니다. 성령으로 난 사람은 다 이런 변화를 체험하게 됩니다. 성령의 역사는 기이한 것이 아니요 항상 우리 가운데 역사하여 왔으며 지금도 역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니고데모는 성실과 의지로 살아온 사람이라 성령의 역사를 깨닫기 힘들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하시는 역사를 받아들여야 했습니다. 우리가 성령의 역사를 믿을 때 인간적인 노력을 하기보다 겸손히 성령을 따라 행하게 됩니다.(갈5:16)
둘째, 예수님의 증언을 받아들여야 합니다.(9-13)
  예수님은 목자의 심정으로 니고데모에게 거듭남의 비밀을 가르쳐주셨습니다. 그런데 니고데모는 “어찌 그러한 일이 있을 수 있나이까?”(9) 탄식하며 반발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그를 “너는 이스라엘의 선생으로서 이러한 것들을 알지 못하느냐?” 책망하셨습니다. 주님은 책망의 망치로 그의 돌과 같이 완악한 마음을 깨셨습니다. 니고데모는 이스라엘의 선생으로서 이런 거듭남의 진리를 알고 백성들이 거듭나도록 도와야 했습니다. 그런데 그는 거듭남의 주체이신 성령의 역사를 알지 못하였고, 또 교만하여서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가 왜 예수님의 말씀을 안 받아들이는 것입니까? 예수님은 그가 영적으로 무지하게 된 내면의 죄 문제를 지적하십니다. 11,12절을 보십시오.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우리는 아는 것을 말하고 본 것을 증언하노라 그러나 너희가 우리의 증언을 받지 아니하는도다. 내가 땅의 일을 말하여도 너희가 믿지 아니하거든 하물며 하늘의 일을 말하면 어떻게 믿겠느냐?” 니고데모는 지적인 교만과 말씀에 대한 불신에 갇혀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니고데모는 모르면 배우려고 하기보다 어찌 그러한 일이 있을 수 있나이까? 배척하며 거부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아는 것과 본 것을 증언하시지만 니고데모는 자기 생각으로 판단하여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이런 교만이 그의 영적 눈을 멀게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그에게 땅의 일을 말하여도 믿지 않는데 하늘의 일을 말하면 어떻게 믿겠느냐? 하시며 받아들이지 않고 믿지 않는 완악한 자세를 책망하셨습니다. 예수님이 땅의 일을 말씀하시는 것은 믿음과 소망을 심어 하늘의 일을 가르치고 이를 영접하도록 하심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신비스러운 거듭남의 진리를 듣지만 두려움과 지적 교만 때문에 이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영적 세계에 들어오기를 거부합니다. 단순히 믿고 받아들이기만 하면 신비스러운 영적 세계로 들어와 하늘의 일을 체험하는데 안타깝게도 그렇게 하지 못합니다.
  예수님은 이런 니고데모에게 믿음이란 어떤 것인가를 가르치시기 위해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사건을 소개하십니다. 14,15절을 보십시오.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모세가 뱀을 든 사건은 니고데모가 잘 아는 모세오경 중 민수기 21:4-9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사건은 믿음과 구원에 대해 잘 가르쳐줍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크신 권능과 사랑으로 애굽의 종살이 하던 데서 구원을 받아 새 삶을 출발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이들을 훈련하셔서 제사장 나라 거룩한 백성으로 쓰시고자 곧장 지름길로 인도하시지 않고 광야 길로 둘러가게 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은 이런 하나님의 원대한 뜻을 알지 못하고 길이 험하다고 불평을 쏟아놓았습니다. 그들은 오랫동안 노예근성에 쪄들어 조금만 힘들어도 하나님과 목자를 원망하는 죄를 범했습니다. 이때 하나님은 불 뱀을 보내어 하나님을 믿지 못하고 불평하는 그들을 물게 하셨습니다. 불 뱀에 물리면 순식간에 온 몸에 독이 퍼져 죽게 됩니다. 백성들은 그제야 자기들의 죄를 깨닫고 구원해달라고 애걸하였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모세로 하여금 놋 뱀을 만들어 장대에 높이 달도록 하시고 이를 쳐다보는 자는 누구든지 구원을 받을 것이라 약속하셨습니다. 이는 믿으면 구원을 얻는다는 진리를 가르치신 것으로서 믿음으로 고개를 들어 놋뱀을 쳐다보는 것이 하나님이 그들에게 제시하신 유일한 구원의 길이었습니다. 믿음이 없으면 이성적으로 생각할 때 독사에 물리면 즉시 독을 빨아내고 잘 살펴서 뱀을 피해야 할 것으로 생각할 것입니다. 위를 쳐다보는 일은 어리석은 행위로 생각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신뢰하고 “쳐다보면 살리라”는 약속의 말씀을 믿고 쳐다본 자는 누구나 구원을 받았습니다.
  이처럼 구원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이성과 경험을 뛰어넘어 믿음을 가질 때 하나님이 주시는 것입니다. 놋 뱀이 장대에 높이 달린 사건은 예수님이 인류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 높이 달리실 사건을 예표합니다. 세상은 죄로 인해 불 뱀들이 우글거리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우상숭배의 불뱀, 교만과 정욕과 세상 욕심의 불뱀에 물려 죽어가고 있습니다. 캠퍼스 양들은 취직난으로 인해 두려움과 염려의 불뱀, 상대적 열등감과 비교의식, 패배감의 불뱀에 물려 고통하고 있습니다. 이 뱀에 물리면 그 어떤 처방도 효과가 없습니다. 예수님은 바로 이런 죄인들을 위해 십자가에 높이 달리셨습니다. 누구든지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바라보기만 하면 아무리 상처가 깊어도 구원을 받고 영생을 누리게 됩니다. 예수님은 니고데모에게도 이 불뱀 사건 교훈을 통하여 그가 예수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할 때 구원받을 것을 가르쳐주신 것입니다.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 하나님 나라를 본다는 말씀을 듣고 믿음으로 영접할 때 그도 거듭나 그 마음에 하나님 나라가 임하고 영생을 얻게 될 것입니다. 궁극적으로 예수님은 이런 죄인들의 죄를 담당하시기 위해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우리에게 이 믿음의 도리를 영접하게 하사 십자가의 사랑으로 구원받게 하신 주님의 은혜를 감사 찬송 드립니다.

결론적으로, 하나님 나라를 소유한 행복한 인생을 살려면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 한다는 주님의 말씀을 영접하고 믿고 순종해야 합니다. 우리가 날마다 교만과 불신을 회개하고 믿음의 도리를 영접하고 순종하여 구원의 은혜를 누리고 하나님 나라를 보는 자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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