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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nday Worship Message
주일예배메시지

작성자 리스닝
작성일 2010-04-18 (일) 12:44
분 류 요한복음
첨부#1 2010요한복음_7-1.hwp (27KB) (Down: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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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요한복음7강]오병이어를 축사하신 예수님

2010년 요한복음 제 7 강

오병이어를 축사하신 예수님

말씀 요한복음 6:1-15
요절 요한복음 6:11 "예수께서 떡을 가져 축사하신 후에 앉은 자들에게 나눠 주시고 고기도 그렇게 저희의 원대로 주시다"

오늘 말씀은 4복음서 모두에 기록된 매우 중요한 사건입니다. 특히 요한은 이 사건을 통해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지도자 상을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열두 제자를 그 시대를 섬길 목자요 영적 지도자로 부르셨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제자들을 친히 훈련하셨습니다. 우리도 오늘 말씀을 통해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지도자 상을 배우고 주님께서 쓰실만한 영적 지도자로 성장하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Ⅰ.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을 먹이겠느냐(1-7)
  1절을 보십시오. 디베랴의 '갈릴리 바다'는 바다라 불릴 정도로 큰 호수로 매우 아름다운 호수입니다. 오늘날도 주변에는 휴양지가 들어서 있고 많은 사람들이 관광과 휴식을 위해 찾아오고 있습니다. 예수님도 이곳에서 제자들과 함께 휴식 시간을 갖고자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번 여행은 단순한 휴식 그 이상의 의미가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복음 역사를 잠시 떠나 자신을 돌아보면서 예수님을 좇으며, 무리들 앞에서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을 갖게 하셨습니다. 제자들에게 이 시간은 예수님을 배우며 훈련받느라 정신없이 달려온 지난 시간을 돌이켜 보면서 앞으로 역사 방향을 계획하고 비전을 새롭게 하는 소중한 시간이 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에게 주어진 잠시의 휴식의 시간은 예수님을 따라온 큰 무리들로 인해 곧 무산되었습니다. 큰 무리가 예수님께서 병자들에게 행하시는 표적을 보고 예수님을 따라왔습니다. 무리들은 각자의 다양한 문제를 들고 먼 거리를 단숨에 달려왔습니다. 곧 다가오는 유월절 명절 준비도 뒤로하고 예수님께로 모여 들었습니다. 예수님은 이들을 목자 없는 양같이 불쌍히 보시고 이들을 친히 먹이시고자 하셨습니다.
  5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눈을 들어 큰 무리가 자기에게로 오는 것을 보시고 빌립에게 이르시되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을 먹이겠느냐 하시니” 예수님이 빌립에게 이 질문을 하신 것은 큰 무리를 어떻게 먹일 것인가 하는 문제로 빌립을 시험코자 하심이었습니다.(6)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현장에서 살아있는 교육을 시키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왜 하필 빌립을 시험하신 것일까요? 예수님이 보실 때 빌립에게 있어 주님께서 쓰실만한 지도자가 되는데 분명 약점이 있었습니다. 빌립은 계산에 밝고 아주 정확한 사람이었습니다. 이론적으로는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빌립같이 이론에 밝고 자기 생각이 강한 사람은 이성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거나 현실적으로 불가능해 보이는 일이라면 아예 시도조차 하지 않고 포기하기를 잘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역사는 머리로 다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실제로 계산으로는 맞지 않지만 믿음으로 도전하면 이루어지는 것이 더 많습니다. 예수님은 빌립이 머리를 잘 쓰기보다 믿음과 심정이 있는 예수님의 제자로 성장하기를 원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빌립의 문제를 잘 아시고 이 시험을 통해 그가 자기 문제를 깨닫고 이를 극복함으로써 주님께서 쓰실만한 믿음의 사람, 심정의 사람으로 성장하도록 현장 실습을 시키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질문에 빌립의 대답이 무엇이었습니까? 7절을 보십시오. "각 사람으로 조금씩 받게 할지라도 이백 데나리온의 떡이 부족하리이다" 과연 빌립은 빌립이었습니다. 그의 대답은 현실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었습니다. 객관적으로 판단하여 틀리지 않은 맞는 말이었습니다. '오천 명의 무리를 먹이려 한다. 빵과 고기를 사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다. 그런데 제자들은 가난하다.' 빌립은 여러 정황을 살피고 계산해 보니 제자들이 모은 장막비로 무리를 먹이기에는 어림도 없는 큰 액수의 돈이 모자랐습니다. 빌립의 계산으로 사람들이 한 입씩 조금만 먹는다 하여도 당시 노동자의 8개월분의 임금에 해당하는 거액이 필요했습니다. 그의 대답은 사실에 기초한 정확한 답변이어서 설득력이 있었습니다. 다른 제자들은 그의 빠른 머리에 감탄하며 머리를 끄덕이며 동조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의 대답은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대답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의도를 전혀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질문은 무리를 먹일 수 있는가 없는가 생각해 보고 계산해 보라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어떤 시험이든지 문제를 잘 풀기위해서 출제자의 의도를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중간고사를 잘 치르기 위해서는 담당 교수님이 무엇을 알기를 원하시는지 파악해야 이를 준비하고 좋은 점수를 기대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빌립에게 질문하신 의도가 무엇입니까? 첫째 빌립이 목자로서 무리를 먹이고자하는 심정이 있는가를 시험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무리를 이끌어갈 지도자로 부르셨습니다. 지도자는 마땅히 무리들의 문제를 해결해 주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이와 같은 자세를 원하셨습니다. 빌립에게 문제를 내신 것도 그러한 마음을 갖고 있는가 알아보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사실 빌립은 큰 무리를 먹일 만한 큰 부자도 아니었습니다. 빵 가게를 운영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는 능력도 없고 가진 것이 없는 평범한 사람임을 예수님도 잘 알고 계셨습니다. 그러나 빌립은 현재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은 무리들을 이끌 목자였습니다. 목자는 예수님께서 무리를 먹이고자 하시는 의도를 파악하여 어찌하든지 그에 합당한 답을 찾을 줄 알아야 합니다. 지도자는 어떠한 문제를 만나더라도 문제의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합니다. 100% 완벽한 해답을 제시하지 못한다 하여도 불가능한 상황 가운데 일말의 가능성이라도 찾아야 합니다. 무리와 지도자의 차이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지도자가 부딪히는 문제는 쉬운 일이 없습니다. 항상 만나는 문제들은 어렵고 불가능한 일이 더 많습니다. 그러나 지도자는 이를 헤쳐 나가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 지도자가 존재하는 것입니다. 어려운 문제를 만나 '이는 어렵다, 불가능하다, 안되겠는걸!' 말하는 것은 지도자답지 못한 자세입니다.
  두 번째는 예수님께 대한 믿음을 시험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분명 '우리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빌립의 대답에는 예수님이 빠져 있었습니다. 빌립은 예수님을 믿음으로 예수님께서 일하실 것을 기대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빌립은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고 능력도 없는 자신들만 생각했습니다. 예수님을 바라보지 않았을 때 빌립은 부정적인 대답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예수님께 믿음이 없는 보통 사람들처럼 한계에 갇혀 아무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경험과 이성에 기초하여 생각할 때 부정적인 결론에 이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질문은 이런 조건들을 염두에 두시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무조건 먹이시고자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이 예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기 위해서는 반드시 목자의 믿음이 필요하였습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보통 사람들과 다를 수 있는 유일한 것이 무엇입니까? 예수님과 함께 일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에게는 불가능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제자들에게는 예수님 때문에 불가능이 없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이 말했듯이 예수님의 제자는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모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하시고자 하시면 어떤 상황에서도 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갖는 자가 예수님의 제자입니다. 빌립의 문제는 힘든 상황만 바라보고 전능하신 예수님을 바라보지 않은데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빠졌을 때 그의 대답은 'NO' 였습니다. 이는 우리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큰 무리를 먹일 수 있습니까?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캠퍼스 양들을 먹일 수 있을까요?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수많은 미전도 종족들을 먹일 수 있습니까? 우리의 힘만 의지한다면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이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러나 믿음의 세계에서는 가능합니다. 우리는 할 수 없지만 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능히 하실 수 있습니다. 믿음이란 나는 할 수 없지만 하나님은 하실 수 있다고 믿는 것입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순간에 우리와 함께 하시며 친히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이 믿음입니다. 빌립은 예수님의 목자의 심정을 몰랐고 능히 이들을 먹이실 수 있는 예수님을 바라보지 않아서 부정적인 생각에 갇혀 결과적으로 예수님의 시험에 통과할 수 없었습니다.

Ⅱ. 안드레의 오병이어를 축사하신 예수님(8-15)
  8,9절을 보십시오. 빌립이 없는 이백 데나리온을 생각하며 절망하고 있을 때 시몬의 형제 안드레가 자신에게는 묻지도 않았는데 예수님께 나아와 말하였습니다. "여기 한 아이가 있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있나이다" 안드레는 불쑥 앞으로 나아오더니 분위기와 맞지 않는 행동을 하였습니다. 자신도 수많은 사람 앞에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가 어울리지 않았던지 머리를 극적이며 "그러나 그것이 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되겠사옵나이까" 말하였습니다. 사실 그가 가지고 나온 보리떡과 물고기는 가난한 사람들의 한 끼 식사에 불과하였습니다. 수많은 사람들과 한 아이의 간식, 두 사이의 간격은 너무나 커 보였습니다. 그런데 안드레의 행동은 같은 상황, 같은 조건에서 빌립의 대답과 너무나 달랐습니다. 안드레가 빌립과 다른 점이 무엇이었습니까?
첫째, 안드레는 예수님의 마음을 알았습니다. 안드레는 예수님께서 빌립에게 하신 말씀을 듣고서 예수님께서 어찌하든지 무리를 먹이시고자 하심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그 말씀에 순종하여 먹을 것을 찾아보았습니다. 순종은 계산해서 될 것 같아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불가능해보여도 주님의 뜻이기에 순종하는 것이 참된 순종입니다. 이렇게 말씀을 영접하고 주님의 뜻에 순종하고자 하였을 때, 안드레는 한 아이가 가지고 있는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가 보였습니다. 남자 어른만 해도 오천 명이나 되는 현실 앞에서 오병이어는 부정적인 생각을 하는 사람에게는 없는 것이나 다름없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 어찌하든지 순종하고자 하는 안드레에게는 분명히 보였습니다. 그가 예수님을 믿는 믿음이 있었을 때 오병이어를 드려 도전할 수 있었습니다. 그가 오병이어를 들고 나옴으로써 주님이 일하실 수 있는 작은 꼬투리를 제공해 드린 것입니다.
둘째로, 안드레는 그와 함께 예수님이 계심을 인식하였습니다. 예수님께 오병이어를 들고 나온 안드레의 말 속에는 예수님께 대한 기대감을 담고 있었습니다. 어떻게 하실지 모르지만 예수님은 오병이어로 무엇인가를 하실 것을 바라고 믿었습니다. 이제까지 제자로 부르심을 받고 여러 표적을 행하시는 주님을 목격하였습니다. 안드레도 자신의 행동이 말도 안 되는 어리석은 행동 같았지만 예수님께 드렸을 때 예수님께서 무엇인가를 하신다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안드레는 어린 아이가 가지고 있던 오병이어로 오천 명을 먹이고자 하는 시도를 하였던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영적 지도자의 자질이었습니다. 지도자는 작은 것이라도 주님께서 쓰실 것이다 믿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안드레는 주님을 믿었을 때 보잘 것 없어 보이는 오병이어라도 주님께 들고 나갈 수 있었습니다. 이런 안드레의 믿음은 절망 중에 희망을 보게 하였고 불행 중에서 행복을 만들어 낼 수 있었습니다.
  안드레의 행동은 돌출적이었지만 매우 창의적이고 도전적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이런 안드레의 생각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다른 제자들은 아마 안드레의 행동을 보고 비웃었을 것입니다. 오병이어 자체만을 볼 때 우스운 것이 분명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안드레에게는 주님께 대한 기대하는 것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믿음의 사람을 기뻐하시고 귀하게 사용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역사를 잘 섬기는 비결이 무엇입니까? 우리 가운데 있는 보리떡 다섯 개, 물고기 두 마리를 열심히 찾아서 주님께 들고 나가는 것입니다. 그냥 들고 나가면 안 되고 이것으로 주님께서 큰일을 하실 것을 기대하는 믿음으로 나가는 것입니다. 50여년 전 1961년 우리 모임이 시작되었을 때 하나님께서는 안드레와 같은 믿음의 종들을 쓰시었습니다. 믿음의 선배들은 캠퍼스 영혼들에 대한 목자의 심정과 친히 주님께서 역사하실 것을 믿었습니다. 가진 것이 없고 원조를 받아야 하는 백성들이었지만 각 복음서마다 결론 맺는 세계선교 방향에 순종하여 1964년 제주도에 선교사를 파송하였고 동남아에 선교사를 파송했다고 믿음으로 광고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믿음의 종들을 사용하시어 50년간 오대양 육대주 세계 각 국에 놀라운 복음 역사를 이루어주셨습니다. 이제 우리 모임이 새로운 50년을 시작해야 할 때입니다. 하나님께서 21세기에도 변함없이 복음 역사를 이루어 가시고자 하십니다. 우리가 주님의 뜻에 순종하여 끝까지 믿음으로 섬겨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과거에 놀라운 역사를 이루었다고 자족해서는 안 됩니다. 또 시대가 상황이 바뀌고 어려워졌다고 뒤로 물러나 힘들다고 포기해서도 안 됩니다. 성령의 역사를 좇아 주님께서 이루시는 새 역사에 순종하여 새롭게 나아가야 합니다. 이러한 때 우리가 안드레와 같은 믿음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주님의 마음을 덧입고 우리와 함께 일하시는 주님을 믿음으로 오병이어를 찾아 주님께 갖고 나가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안드레의 믿음을 잘 배워서 앞으로의 주님께서 이루실 성서한국과 세계 선교의 역사에 순종하여 동역할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예수님도 현재 우리에게 없는 200데나리온을 가져오라 하시지 않으십니다. 단지 심정을 가지고 오병이어를 찾아 주님께 믿음으로 가져 나오기를 원하십니다. 한 아이가 갖고 있었던 오병이어를 찾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믿음이 없을 때 심정이 없을 때는 오병이어를 찾지 못합니다. 자신들에게 오병이어가 있다는 사실도 발견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믿음을 가지고 찾고 도전할 때 오병이어를 발견합니다. 그리고 이를 주님께 가져 나갑니다. 이러한 믿음의 자세는 하나님께서 복음 역사에 귀하게 쓰시는 살아 있는 역사의 모습입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오병이어를 찾아 드릴 때와 그렇지 않을 때 하나님의 복음 역사의 모습은 엄청나게 차이가 나게 될 것입니다. 상황이나 조건이 차이를 만드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우리에게 없는 것이 너무 많아 못하는 것이 아닙니다. 가장 중요한 변수는 복음 역사를 주관하시는 주님이십니다. 우리 예수님께서 축복하실 때 아무리 많은 무리라도 풍족하게 먹을 수 있습니다. 아무리 영적으로 어려운 시대라도 하나님의 생명 구원 역사는 끊임없이 줄기차게 이루어져 나가 복음은 땅 끝까지 이르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믿음으로 오병이어를 주님께 드릴 수 있는 믿음의 사람, 이 시대를 먹이고자 하는 심정이 있는 목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께 쓰임 받는가 아닌가는 인간적인 능력에 달려 있지 않습니다. 좋은 시대, 영적으로 좋은 때에 태어났는가에 달린 것이 결코 아닙니다. 오직 오병이어의 지극히 작은 차이입니다. 예수님 없이 부정적인 생각을 하고 있는가 아니면 예수님을 믿음으로 긍정적인 생각을 하는가 차이입니다. 한마디로 믿음으로 순종하느냐 않느냐의 차이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쓰임 받는 사람이 되려면 실제 삶에서 예수님의 심정을 배우고 믿음을 배워야 합니다. 이것은 말처럼 쉽게 되지는 않습니다. 실제 생활에서 부딪히고 순종하는 가운데 하나하나 배워나가야 합니다. 작은 것 하나에서 우리는 예수님의 심정을 배울 수 있고 예수님께 대한 믿음을 배울 수 있습니다. 때로는 믿음으로 했는데도 계속 실패만 반복할 수도 있습니다. 결과가 좋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인내하며 끝까지 도전할 때 나중 돌이켜 보면 실패 속에서도 큰 믿음을 배우고 더 큰 교훈을 얻게 됨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실패도 두려워하지 않는 믿음의 사람으로 성장하여 시대에 필요한 큰일을 감당하는 시대의 영적 지도자로 성장해 나갈 것입니다.
  우리가 믿음과 심정을 가지고 우리 안에 있는 오병이어를 찾아 주님께 갖고 나갈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우리에게는 기도의 오병이어가 있습니다. 또한 우리에게는 일대일의 오병이어도 있습니다. 또 우리에게는 심방의 오병이어가 있습니다. 발달된 시대, 각종 매스 미디어가 범람하는 시대, 컴퓨터와 대화하는 시대에 사람들은 외롭습니다. 시대가 하도 수상하고 사람들이 바쁘게 살아서 인지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힘들게 느껴집니다. 그러나 이러한 때 일수록 사랑과 관심이 필요한 사람들을 찾아가는 주님의 섬김이 필요함을 보게 됩니다. 열심히 살아가는데 무엇을 향해 나아가는지 혼자서 방황하기만 하는 양들과 함께 있으면서 좋은 친구가 되어주는 것도 좋은 오병이어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맛있는 것을 사서 함께 먹으며 즐거운 시간을 가질 때 인격적인 사랑의 관계성을 맺을 수 있습니다. 기도도 혼자 하지 않고 합심하여 기도할 수 있습니다. 두 사람 이상씩 마음을 합하여 더욱 간절하게 기도의 오병이어를 드릴 수 있습니다. 어떤 분은 복음 역사에 자신의 점심시간을 오병이어로 드렸습니다. 짧은 시간 간단하게 식사를 하고 캠퍼스 심방을 꾸준히 감당하였습니다. 우리 모두 각자가 드릴 수 있는 오병이어를 찾아 주님께 드려 구원역사에 귀히 쓰임 받는 종들이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예수님은 안드레의 말을 들으시고 제자들에게 다시 명하사 사람들을 잔디에 앉게 하셨습니다. 앉은 사람들의 수를 세어 보니 오천 명 쯤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얼마든지 혼자 일하실 수 있지만 제자들과 함께 일하셨습니다. 제자들이 하나님께서 역사하실 수 있는 환경을 만들도록 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안드레가 가져온 한 아이의 떡을 가지시고 어떻게 하셨습니까? 11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떡을 가져 축사하신 후에 앉아 있는 자들에게 나눠주시고 물고기도 그렇게 그들의 원대로 주시니라” 예수님은 떡을 축사하셨습니다. 하나님께 감사기도를 드렸습니다. 예수님께는 오병이어가 단순한 오병이어가 아니었습니다. 정말 주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다 들어 있었습니다. 안드레의 심정과 믿음이 있었습니다. 한 아이의 온전한 헌신이 그 안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축사하신 후 떡을 앉은 자들에게 일일이 손수 나눠 주셨습니다. 물고기도 그렇게 하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무리들에게 나눠 주신 떡과 물고기는 빌립이 말한 것처럼 감질나게 입맛만 다실 수 있는 조금씩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은 놀랍게도 그들이 원하는 대로 풍족하게 주셨습니다. 얼마나 풍성하게 주셨든지 오천 명이 다 배불러 배를 두드리며 흡족해 하였습니다. 그 남은 조각을 거두니 열두 바구니에 찼습니다. 예수님은 남은 조각을 버리지 말라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역사를 잊지 않고 기억하도록 하셨습니다. 오병이어로 오천 명을 먹이신 예수님께 대한 믿음을 잊지 않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안드레가 가져온 작은 것을 무시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귀한 역사의 꼬투리요 성령의 역사의 시작으로 보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드린 오병이어도 그렇게 사용하십니다. 주님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신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오병이어로 오천 명을 풍족하게 먹이셨습니다.
말씀을 통해 자격 없는 자를 일방적으로 이 시대에 목자로 세워 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였습니다. 그러나 목자로서 세움 받았지만 양무리를 어찌하든지 먹이고자 하는 간절한 심정이 부족하고 말씀을 듣고 순종한다고 하지만 경험에 기초하여 잘 될까 하며 부정적인 생각에 온전히 순종하지 못하였음을 깨닫고 회개케 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말씀을 통해 목자로서 이 시대를 먹일 책임감을 새롭게 하셨습니다. 또한 죄인을 구원하시고 인도하시는 예수님을 믿음으로 이 시대에 도전하는 믿음을 새롭게 하셨습니다. 죄인이 이 시대를 먹이고자 하시는 예수님과 동역하여 믿음으로 오병이어를 들고 나아가겠습니다. 부족한 자라로 주님의 귀한 복음 역사에 사용하여 주시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결론적으로, 예수님은 이 시대를 이끌어갈 영적 지도자를 찾고 계십니다. 양 무리를 먹일 목자를 세우시고자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소망 가운데 목자로 부르셨습니다. 우리가 이 부르심에 합당한 종들로 성장하기 위해 무엇보다도 예수님의 마음을 아는 제자요, 예수님의 의도에 순종하는 믿음의 종들이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우리 가운데 있는 오병이어를 찾아 주님께 헌신함으로 원대로 먹이시는 풍성한 주님의 은혜를 체험하는 역사가 일어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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