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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nday Worship Message
주일예배메시지

작성자 리스닝
작성일 2010-06-21 (월) 15:35
분 류 요한복음
첨부#1 2010요한복음16-1.hwp (55KB) (Down:258)
ㆍ추천: 0  ㆍ조회: 2887      
IP: 61.xxx.74
[2010년요한복음제16강]참된 생명의 길
 2010년 요한복음 제 16강

참된 생명의 길

말씀: 요한복음 13:36-14:17
요절: 요한복음 14:6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오늘 말씀에서 예수님은 막연한 장래에 대해 근심하는 제자들에게 하나님 아버지께 대한 믿음과 하나님 나라에 이르는 참된 생명의 길을 가르쳐주십니다. 이로써 더 이상 염려하거나 방황하지 않고 천성을 향해 거룩한 순례의 길을 가도록 분명한 인생방향을 잡아주십니다. 우리도 이 시간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님을 새롭게 영접하고 제자 인생을 살 믿음과 확신을 덧입게 하시기를 기도합니다.

Ⅰ.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13:36-14:3)
  유월절 만찬을 마치신 후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그들이 따라 올 수 없는 곳으로 가실 것이라 말씀하시며 서로 사랑하라는 새 계명을 주셨습니다.(13:33,34) 불안해진 시몬 베드로는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어린아이처럼 물었습니다. 예수님은 “내가 가는 곳에 네가 지금은 따라올 수 없으나 후에는 따라 오리라” 의미심장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이 말씀을 영접할 수 없었습니다. “주여, 내가 지금은 어찌하여 따라 갈 수 없나이까? 주를 위해 내 목숨을 버리겠나이다” 그는 죽는 데까지 따라 가겠다고 자신의 굳은 결심을 말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답변이 무엇입니까? “...네가 나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겠느냐?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38) 베드로의 치명적인 허점을 드러내시는 예수님의 말씀 앞에 제자들의 마음은 점점 더 근심과 두려움, 불안의 먹구름이 드리워지게 되었습니다. 제자들은 이날까지 예수님 한 분만을 믿고 배와 부친을 버리고 예수님을 좇았습니다. 그들에게는 예수님이 전부였습니다. 그들의 장래는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영광스럽고 희망차 보였습니다. 그들은 한 번도 예수님이 계시지 않는 자신들의 장래를 생각해 보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갑자기 자기들을 버려두고 어디론가 가신다고 하고 기둥 같은 베드로가 곧 예수님을 부인한다고 하고 어떤 사람은 예수님을 팔 것이라 하니 그들은 억장이 무너지고 눈앞이 캄캄해지고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습니다. 우리 가운데도 말은 하지 않지만 장래문제로 마음에 근심과 염려로 가득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양 시절에는 누구보다 순수하게 말씀에 순종하는 생활을 했지만 학년이 올라갈수록 현실문제가 크게 보이고 당장 졸업하면 어떻게 될까 근심이 많습니다. 거기에 결혼문제, 물질문제, 건강문제까지 겹치면 머리 속이 하얗게 된다고 합니다. 학사목자님들은 노후는 어떻게 될까, 아이들 장래는 어떻게 될까, 3-4대에 걸친 염려를 종합적으로 하다보면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염려와 두려움이 나의 삶을 지배합니다. 사람들은 보장되지 않은 막연한 장래로 인해 늘 근심이 가득 찬 인생을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염려 안 해도 될 것으로 염려에 사로잡혀 살아갈 때도 많습니다. 고사성어(故事成語)에 기우(杞憂)라는 말이 있습니다. 옛날 중국 기(杞)나라에 사는 어떤 사람이 “만일 하늘이 무너지면 어디로 피한단 말인가?” 하면서 침식을 잊고 근심했다는 이야기에서 나온 말입니다. 하늘이 설령 무너진다면 어떤 대책도 소용없습니다. 그러므로 기우는 쓸데없는 걱정이라는 뜻입니다. 이렇게 염려 병에 걸리게 되면 주와 복음역사를 생각하던 사람이 갑자기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사람으로 돌변합니다. 근심은 사람을 무기력하고 부정적으로 만드는 사탄의 강력한 무기입니다. 그러므로 사명인의 삶을 살고자 하는 자는 반드시 근심 문제를 극복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이런 제자들을 어떻게 도와주십니까? 14;1절을 보십시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첫째, 예수님은 근심하지 말라고 명령하십니다. 예수님은 먼저 근심을 차단시키라 하십니다. 그대로 놔두면 근심에 사로잡혀 마음이 분열되어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고 안절부절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근심을 방치하여 불리지 말고 cut 해야 합니다. 근심을 해결하는 첫째 길은 근심하지 말라는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둘째, 근심하는 대신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현재 제자들이 근심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아십니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없는 그들에게 예수님이 하시는 모든 말씀이 충격적이었습니다. 특히 예수님이 떠나신다고 했을 때 고아가 된 것 같이 막막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으면 육신을 입으신 예수님이 떠나신다고 해도 이날까지 그들을 인도하시며 필요한 것들을 때마다 채워주신 하나님, 사탄의 온갖 방해에도 구원역사를 잠시도 끊이지 않고 면면히 이어 오신 하나님을 기억하며 힘을 얻을 것입니다. 이 하나님을 믿을 때 또한 예수님의 말씀을 믿을 수 있습니다.
  여기서 믿으라는 말은 신뢰하라(trust) 또는 맡기라는 뜻입니다. 누구에게 나의 생명과 장래를 맡길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은 우리의 태어남에서부터 이날까지 신실하게 인도해 오신 아버지가 되시고, 장래를 가장 선한 길로 인도해 주실 유일한 인도자요 보호자이십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신뢰하고 장래를 맡길 수 있는 분은 오직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님이십니다. 사람이 살아 있는 동안은 늘 근심할 문제들이 마음속을 채우고 있습니다. 한 가지를 해결하면 또 다른 근심거리가 기다리고 있어 인생에 낙이 없어 보입니다. 그러나 이는 하나님께 의지하고 맡기지 않는 죄 때문입니다. 근심에 대한 해답은 하나님을 믿고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 그러나 믿고 맡긴다고 해서 막연히 뒷짐 지고 가만히만 있으라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은 장래문제로 근심하는 제자들에게 하늘 아버지께서 모든 것이 그들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니 하나님께 맡기고 그들은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고 하셨습니다.(마6:34) 믿음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사람을 하나님이 그냥 버려두시겠습니까? 염려하는 대신에 하나님을 신뢰하고 모든 것을 맡기고 주의 인도하심을 구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그리고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며 하나님을 의지할 때 모든 것을 더하여 주실 하나님을 믿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왜 예수님이 아버지께로 가시는가를 가르쳐주십니다. 2절을 보십시오.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를 내 아버지 집이라 하십니다. 아버지 집은 사랑하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돌아올 자녀들을 위하여 친히 예비해 두신 낙원입니다. 이 땅에 있는 집은 잠시 머물다가 떠날 곳이요 아버지 집이 돌아갈 진짜 본향입니다. 이곳은 거할 곳이 많아서 자리다툼을 하지 않아도 됩니다. 만일 이런 아버지 집이 없다면 예수님은 벌써 제자들에게 말씀하시고 다른 방향을 잡았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단지 제자들을 위로하기 위해 만들어낸 가상 세계가 아니라 실존하는 곳이기 때문에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이 희망을 확실하게 심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위해 처소를 예비하러 가십니다.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2b,3) 예수님은 제자들의 장래 문제를 어떻게 책임져주십니까? 예수님은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한다 하십니다. 제자들은 장래 안정(security)에 대한 근심을 하는데 예수님은 내가 너희를 위하여 예비하고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예수님은 지금까지 제자들과 함께 하셨습니다. 이후 잠시 제자들을 떠나시나 이것도 제자들의 장래 안정 문제를 확실히 책임지시고 보장해주시기 위해 가시는 것이요 다시 와서 이들을 예수님과 함께 있게 하시겠다고 믿음을 심으십니다. 결국 장래 문제로 제자들이 근심하지만 예수님은 내가 책임지시고 보증이 되신다고 위로해주십니다. 곧 예수님은 완벽하게 이들을 책임져주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현실문제 해결에 대한 확답보다 이 땅에서도 성령으로 이들과 함께 하시며 궁극적으로 하나님 나라로 인도하실 하나님과 예수님을 믿고 안심하도록 하십니다. 고아는 갈 데가 없지만 하나님의 자녀인 신자들은 예수님이 인도자가 되셔서 아버지 하나님께로 가장 안전하게 인도하시니 근심할 이유가 없습니다. 곧 장래 문제로 근심할 일이 아니라는 것이요 이들이 근심한다고 키를 한 자나 더할 수도 없으며 신자는 근본적으로 장래가 보장된 자임을 가르쳐주십니다. 우리가 이 예수님을 믿고 마음에 있는 근심 보따리를 다 내려놓고 쉼을 얻고 기쁘고 가벼운 마음으로 예수님만 좇을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그런데도 어떤 사람은 내 근심은 네 근심과 근본적으로 다르다, 너는 내 근심을 이해할 수도 없다 하며 큰 근심 보따리를 늘 끼고 다니며 근심 속에 살아갑니다. 이는 예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는 죄입니다. 우리의 근심을 다 예수님께 가져가 맡길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가시는 것은 염려할 것이 아니라 감사하고 찬송해야 할 일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우리 인생의 거처를 예비해주시고 늘 예수님과 함께 하는 복된 인생 살게 하신 은혜를 감사 찬송드립니다.

Ⅱ.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4-14)
  4절을 보십시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내가 어디로 가는지 그 길을 너희가 알리라” 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이제까지 여러 번 십자가와 부활의 길을 가실 것을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도마가 “주여, 주께서 어디로 가시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거늘 그 길을 어찌 알겠사옵나이까?”(5) 말했습니다. 이 말은 목적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그 길을 알겠느냐는 뜻입니다. 도마는 의심이 많은 제자로서 눈에 보이고 손으로 만져지지 않는 것은 믿지 않는 자였습니다. 이런 도마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 나라는 너무 비현실적이고 막연하여서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그는 마음에 있는 의심 때문에 예수님이 말씀하신 길을 영접치 않고 튕겨서 이제는 참된 길을 알지 못하고 방황하고 있었습니다. “그 길을 어찌 알겠사옵나이까?” 이는 참된 길을 알지 못해 방황할 수밖에 없는 답답하고 고뇌에 찬 한 인간의 질문입니다. 예수님은 그를 불쌍히 여기시고 참된 길을 가르쳐주셨습니다.
  6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이 말씀에서 예수님은 자신이 어떤 분이시며 하시는 그 역할이 무엇인지 분명히 밝히십니다. 예수님은 길이 되십니다. 예수님 자신을 유일한 길(the way)이라고 하신 것은 모든 인생들이 반드시 가야 할 길이 되심을 의미합니다. 목적지에 가려면 길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여러 가지 길 중에서 유일한 길이 되시고 또 길의 안내자가 되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님만 따라가면 방황하지 않습니다. 안전하게 하나님 아버지께 갈 수 있습니다. 이를 위해 예수님은 십자가를 통해 아버지께로 갈 수 있는 새롭고 산 길이 되셨습니다. 이 길은 십자가의 길, 생명의 길입니다. 이 길은 하나님과 하나 되게 하는 화평의 길이요 죄를 용서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신 영광의 길이요 구원의 길이 되십니다. 예수님은 진리이십니다. 예수님은 영원히 변치 않는 구원의 이치, 구원의 도리가 되십니다. 변치 않는 진리로서 어느 시대 누구에게나 진리가 되십니다. 진리란 영원불변한 절대기준, 절대이치입니다. 예수님은 인간이 구원을 얻는 절대기준이 되십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기준삼아 살 때 그 안에서 구원을 얻습니다. 예수님을 떠나서는 죄로부터 구원과 자유를 얻을 수 없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생명이십니다. 예수님은 생명의 근원이 되셔서 하나님과 분리되어 죽게 된 인생들에게 생명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중보자가 되셔서 다시 하나님과 화합하게 하시므로 하나님의 영생을 누리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는 자는 죽음과 어두움, 무기력에서 해방되어 생명력과 뜨거운 열정과 활력과 도전정신, 개척정신을 덧입게 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 되신다는 사실을 안다는 것은 얼마나 큰 복이요 특권입니까? 이어령 박사님은 ‘지성에서 영성’이라는 책에서 자신이 예수님을 만나고 영의 세계로 들어서게 된 것이야말로 그의 삶에서 얼마나 큰 은혜인가를 간증하였습니다. 그는 이성은 끊임없이 묻기만 하지 어떤 문제에 대해서도 답을 말해주는 법이 없었다고 간증하였습니다. 특히 죽음 앞에서는 속수무책이었습니다. 그러다가 예수님을 만나고 영성에 눈을 뜨게 되면서 이성은 끊임없이 질문을 하지만 영성은 해답을 말해주는 것을 체험하였습니다. 그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님을 따라 하나님 아버지께로 가고 있다고 간증하였습니다. 사람은 태어나서 어디론가 길을 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인생은 나그네 길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기 때문에 방황합니다. 도(道)를 가르치신 공자님도 조문도 석사가의(朝聞道 夕死可矣) 즉 ‘아침에 길을 찾으면 저녁에 죽어도 한이 없겠다’며 참된 길을 찾아 방황하였습니다. 석가모니도 백팔번뇌 인생길에서 참된 길을 찾기 위해 고뇌하였습니다. 내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도 모른 채 살아가고 있다는 것은 얼마나 두려운 일입니까? 길을 잃고 방황할 때 불안하고 두렵습니다. 오늘날은 정보화 시대입니다. 최신 정보에 조금만 뒤쳐져도 낙오자가 되어버립니다. 그런데 그 많은 정보들은 모두 그저 세상을 좀 더 편리하고 재미있게 살 무엇인가를 가르쳐줄 뿐입니다. 사람들이 아무리 최신 정보를 통해 편리하게 살게 되었어도 참된 길을 찾지 못한 인생들은 불안, 근심, 염려, 방황, 조급, 두려움에 사로잡혀 고통하고 있습니다. 이사야서 53:6절은 말씀합니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사람이 길을 잃고 그릇 행하다 결국은 멸망합니다. 하나님은 이런 인생들을 불쌍히 여기사 예수님을 참된 길과 진리와 생명의 주로 보내주셨습니다. 이 예수님과 함께 아버지 집으로 가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다고 하십니다. 왜 예수님만이 하나님께 이르는 유일한 길이 되십니까? 이는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을 통해 인간의 죄와 죽음문제를 해결해주시고 하늘나라의 문을 열어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젊은 날부터 길 되신 예수님을 만나 진리의 길, 생명의 길을 가고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큰 은혜요 복이 되는지 모릅니다. 아무리 훌륭한 인간조건을 갖추고 모든 것을 가졌다 해도 멸망의 기차를 타고 가고 있다면 얼마나 비참한 인생입니까? 그러나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다할지라도 구원의 기차를 타고 간다면 이보다 더 복된 삶이 없습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젊은 날에는 여러 가지 인생 경험을 해보고 인생말년에 기차를 바꾸어 타고 믿음의 길을 가면 가장 이상적인 삶이 된다며 편리한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처음에 길을 잘 못 들어서면 후에 궤도수정 하기는 더 어렵습니다. 미국의 한 감옥에 수감된 사형수가 신문 한 장을 손에 들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고 있었습니다. 그 신문에는 큰 글씨로 “미국 제 22대 대통령 클리블랜드 취임”이라는 제목이 있었습니다. 간수가 사형수에게 우는 이유를 묻자 그는 고개를 떨구며 말했습니다. “클리블랜드와 나는 대학 동기입니다. 어느 날 수업을 마치고 나오다가 우리 둘은 교회의 종소리를 들었습니다. 클리블랜드가 교회에 가보자고 말했는데 나는 거절했지요. 클리블랜드는 교회로 가고 나는 술집으로 갔습니다. 그것이 우리의 운명을 이렇게 다르게 갈라놓았습니다.” 현재 우리는 누구를 따라가고 있습니까? 세상 많은 사람들이 가는 길을 잘 못 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우리에게 참 생명의 길이신 예수님을 만나게 하시고 이 예수님을 따라 살게 하신 하나님 은혜를 진실로 감사드립니다. 때로는 좁고 고달프지만 이 길이 아버지께 이르는 유일한 생명의 길임을 확신하고 소망 가운데 찬송을 하며 주님 가신 그 길을 끝까지 따라 가기를 기도합니다.
  예수님은 계속해서 제자들의 문제가 무엇인지 말씀해주십니다. 7절을 보십시오. “너희가 나를 알았더라면 내 아버지도 알았으리로다 이제부터는 너희가 그를 알았고 또 보았느니라” 예수님은 제자들이 지난 3년간 예수님과 함께 하며 듣고 보고 배웠으므로 하나님을 알았을 것으로 판단하셨습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빌립이 엉뚱한 대답을 하였습니다. “주여,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주옵소서 그리하면 족하겠나이다”(8) 빌립은 하나님을 직접 보아야 믿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모르는 영적 무지에서 나온 말입니다. 하나님은 영이시므로 우리 인간의 눈으로 볼 수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죄악된 인간이 거룩하신 하나님을 직접 보게 되면 죽습니다.(출33:20) 예수님은 이런 빌립이 자기 문제를 인식하도록 책망하셨습니다. 9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이르시되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예수님은 빌립을 책망하신 후 자신이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이심을 증거하셨습니다.
첫째로, 예수님이 하시는 말씀이 증거가 됩니다. 10절을 보십시오. “내가 아버지 안에 거하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 것을 네가 믿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은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서 그의 일을 하시는 것이라” 예수님의 말씀은 인간의 지혜와 지식을 초월하여 신령한 영적 세계에 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인들의 말씀은 세상을 살아가는데 지침이 되고 또 외적 행위를 규제하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말씀은 영혼을 소생시켜주고 인생들의 근본문제를 해결해주는 권세와 지혜를 가지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잘 들을 때 예수님이 바로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이심을 믿을 수 있습니다.
둘째로, 예수님의 사역이 증거가 됩니다. 11절을 보십시오. “내가 아버지 안에 거하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심을 믿으라 그렇지 못하겠거든 행하는 그 일로 말미암아 나를 믿으라” 예수님이 이 땅에서 하신 일들은 모두 인간의 능력으로 할 수 있는 일들이 아닙니다. 물이 포도주가 되게 하시고, 오병이어로 오천 명을 먹이시고, 물 위로 걸으시고, 맹인의 눈을 뜨게 하시고, 죽은 나사로를 살리셨습니다. 예수님이 이렇게 하심으로 자신이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이심을 보여주셨습니다. 기적을 보고 믿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믿음의 사람은 기적을 보고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믿습니다. 예수님은 부정적인 말을 하는 빌립으로 인하여 섭섭해 하셨지만 그를 지극히 사랑하사 믿는 자가 얼마나 큰 일을 할 수 있는지 가르쳐주셨습니다. 12절을 보십시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내가 하는 일을 그도 할 것이요 또한 그보다 큰 일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라” 우리가 예수님을 믿을 때 질적으로는 예수님보다 못하지만 양적으로는 더 큰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제한된 3년 동안 제한된 유대 지방에서만 사역을 감당하셨지만 제자들은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큰 일을 하려면 남다른 능력이 있어야 하고 인간조건이 좋아야 하고 시간과 물질도 충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예수님을 믿는 자가 큰 일을 할 수 있다고 하십니다. 실제로 큰 일을 하는 사람은 믿음이 있는 자입니다. 오히려 능력이 많은 자, 인간조건이 좋은 자는 자기를 의지하기 때문에 큰일을 하지 못합니다. 믿는 자는 하나님을 믿기 때문에 장애물이 있더라도 뒤로 물러서지 않고 도전합니다. 믿는 자는 자기가 할 수 있을까 없을까를 계산하지 않고 주님께서 원하시는가를 살피고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가를 먼저 생각합니다. 주께서 아버지께로 가신다는 것은 성령을 보내실 것을 의미합니다. 성령님은 믿는 자와 함께 하셔서 큰일을 행하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믿음으로 이 시대 큰일을 할 수 있음을 믿어야 합니다.
  그러나 이 역사가 저절로 일어나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은 계속하여 기도의 능력을 가르쳐주십니다. 13,14절을 보십시오.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라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행하리라” 제자들이 자립적으로 큰일을 할 수 있는 것은 기도를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기도는 믿음의 표현입니다. 실제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하고자 하면 한계에 부딪힐 때가 많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이 한계를 뛰어넘어 큰일을 할 수 있습니까? 믿고 기도하라고 하십니다. 빌립은 머리가 명석하고 판단력이 좋아 큰 지도자가 될 가능성이 있지만 한편으로는 계산을 잘 하므로 기도에 매달릴 가능성이 적습니다. 빌립이 큰 일을 감당하는 종이 되기 위해서는 눈에 보이는 세상 것들을 의지하지 말고 무엇이든지 믿음으로 하고 또 기도를 생활화해야 합니다. 기도하는 사람은 마음의 생각이 밝고 긍정적이고 도전적입니다. 장애물 앞에서는 더욱 기도에 힘쓰고 믿음으로 도전합니다. 사도 요한은 인간적인 야심 때문에 베드로와 경쟁할 때는 기도에 대해 별 문제의식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후에 기도의 능력을 체험하고 다음과 같이 간증하였습니다. “그를 향하여 우리가 가진 바 담대함이 이것이니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요한1서5:14) 예수님은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기도함으로써 한계를 극복하고 큰일을 감당하는 자립적이고 위대한 종들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성령을 의지하고 기도함으로써 위대한 믿음의 사람이요 기도의 종들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결론적으로, 오늘날은 불확실성의 시대입니다. 사람들은 무엇인가 확실한 것을 붙잡고자 합니다. 그러나 세상 어떤 것도 우리의 장래를 확실히 보장해주는 것이 없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로 이르는 유일한 길이 되십니다. 이 예수님을 굳게 붙들고 따라 갈 때 주님은 우리를 무사히 아버지 집까지 안전하게 인도하실 것입니다.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님을 찬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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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5 요한복음 [2010 요한복음7강]오병이어를 축사하신 예수님 리스닝 2010-04-18 2850
644 누가복음 [2011년 누가복음 제30강] 영생을 얻는 길 관리자 2011-11-13 2848
643 시편 2010년 신입생 바이블 아카데미 4강 리스닝 2010-04-01 2848
642 이사야 [2010년 이사야서 제4강]포도원의 노래 리스닝 2010-10-03 2842
641 창세기 [2013년 창세기 제5강] 셋을 주신 하나님 관리자 2013-04-21 2841
640 요한복음 [2015년 요한복음 제19강]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관리자 2015-07-19 2840
639 느헤미야 [2011년 제자수양회 제4강]개혁자 느헤미야- 진요셉 리스닝 2011-06-13 2839
638 요한복음 [2009가을학기준비특강-2] 내 안에 거하라 관리자 2009-08-23 2839
637 마가복음 [2010년 가을제자수양회 주제1강] 열둘을 세우신 예수님 관리자 2010-10-31 2838
636 출애굽기 [2009년출애굽기제15강] 영화롭고 아름다운 제사장 관리자 2009-07-19 2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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