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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nday Worship Message
주일예배메시지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0-10-31 (일) 16:27
분 류 마가복음
첨부#1 2010년_가을제자수양회_주제1강(권영진)-1.hwp (51KB) (Down:1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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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가을제자수양회 주제1강] 열둘을 세우신 예수님
2010 제자 수양회 주제 1 강                                      권영진

열둘을 세우신 예수님

말씀 마가복음 3:13-19
요절 마가복음 3:14 "이에 열둘을 세우셨으니 이는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또 보내사 전도도 하며"

  이번 수양회의 주제는 '제자란 무엇인가?'입니다. 오늘은 그 대답을 위한 첫 번째 말씀으로 예수님께서 따르는 무리와 구별하여 열둘을 따로 세워 사도라 칭하시는 말씀입니다.(눅6:13) 이 일은 예수님의 생애에 있어서나 또 열두 제자들에게 있어서 매우 중요한 사건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인류 구속역사에 있어서도 뺄 수 없는 가장 중요한 장면 중 하나입니다. 우리도 오늘 말씀을 통해 주님의 부르심의 의미를 되새기고 이 시대에 우리 각 사람을 제자로 부르시는 예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Ⅰ. 원하시는 자를 부르신 예수님(13,14a)
  막 3:1-6절에서 예수님은 그 시대의 타락한 지도자들을 보시고 근심하며 노하셨습니다. 그들은 선악의 분별력과 생명에 대한 존엄성을 상실해버린 자들이었습니다. 백성들의 영혼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었고 교권을 유지하는데 혈안이 되어 있었습니다. 이런 지도자들의 다스림 받는 백성들은 영혼에 안식을 얻지 못하고 피곤하고 무기력한 삶을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젊은이들조차 삶에 의욕을 잃고 물고기나 잡아 자기 생계 꾸리기에 바쁜 소시민적 인생을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들 가운데는 병든자, 절망하며 자포자기해 버린 자, 정신질환에 시달리는 자들이 많았습니다. 사람들은 누군가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하였습니다. 이때 예수님은 무엇을 하셨습니까? 13절을 보십시오. “또 산에 오르사 자기가 원하는 자들을 부르시니 나아온지라” 예수님은 모든 문제를 떠나 산에 오르셨습니다. 누가복음을 보면 이때 예수님은 기도하러 산으로 가셔서 밤이 새도록 기도하셨다고 하였습니다.(눅6:12) 기도하셨다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구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기도하신 후 자기가 원하는 자들을 부르셨습니다. “원하는 자들을 부르셨다”는 말씀을 통해 우리는 주님의 부르심의 성격에 대해 몇 가지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첫째로, 부르심의 주체가 예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열둘을 세우셨습니다. 16-19절에 그 명단이 나옵니다. 베드로·야고보·요한·안드레·빌립·바돌로매·마태·도마·(알패오의 아들)야고보·다대오·(가나나인)시몬·(가룟)유다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거명된 사람들은 아무리 보아도 주님께서 어떤 기준을 갖고 세우셨는지 알 길이 없습니다. 대부분 갈릴리 출신으로 지역 분배를 고려하신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렇다고 직능별로 하신 것 같지도 않습니다. 또 베드로와 안드레, 야고보와 요한은 형제들이므로 이스라엘 열두 지파에서 한 사람씩 택하신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분명한 것은 예수님은 자신이 원하시는 자를 부르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당신이 원하시는 베드로를 부르셨습니다. 세관에 앉아 있는 레위 마태를 원하셔서 부르셨습니다. 예수님은 요한복음에서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요15:16a)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도 현재 우리 자신을 예수님의 제자라 생각한다면 그것은 예수님이 나를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누가 원하셨다고요? 네 예수님이 원하셨습니다.) "예수님이 나를 원하신다." 이 말을 곰곰이 생각해보면 이는 참으로 놀라운 은혜입니다. "내가 널 원해" 사람들은 자신을 원하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만으로 기뻐하고 감격해합니다. 반대로 어떤 사람들은 '날 원하는 사람은 세상에 없어 난 버려진 존재야'라고 생각하고는 어두움 속에 갇혀 세상과 이별을 생각하기도 합니다. 날 원하는 사람이 있을 때 행복합니다. 세상을 살아갈 존재의미가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원하는 자가 되는 것도 감격할 일인데, 예수님께서 원하시다니 이 보다 더 감격할 일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열둘은 예수님이 원하시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 잘 몰랐겠지만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셨습니다. 이 세상을 구원하실 메시야이셨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높으시고 귀하신 분이 그들을 원하신 것입니다. 로마황제 아니 당시 유대 총독이 원하는 자만 되어도 그들은 감사하고 성은이 망극하다 연발했을 것입니다. '자자 손손 가문에 영광입니다' 말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을 원하신 분은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세상을 말씀으로 창조하신 전능하신 하나님이셨습니다. 우주를 보십시오. 광대한 우주 속에 은하계, 수많은 별들 얼마나 놀랍고 신비합니까? 들에 핀 풀 한포기를 바라 보십시오. 그 생명의 신비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렇게 놀라운 세상을 창조하신 그 무엇과도 비길 수 없는 영광의 하나님께서 그들을 원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부르심에 제자들의 반응이 어떠했습니까? 13b절을 보면 이들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 머뭇거리지 않고 즉시 응답하여 나아왔습니다. 이들은 예수님의 부르심이 자기들의 삶에 유익이 되는지 손해가 되는지 앉아서 계산하지 않았습니다. 또한 자기가 자격이 있는지 없는지, 부르심을 감당할 수 있을까 없을까 따지지도 않았습니다. 단순히 예수님을 믿고 신뢰하여서 모든 것을 주님께 맡기고 믿음으로 나왔습니다. 그들이 나왔다는 것은 그들이 예수님의 제자로 살고자 결단하였다는 뜻입니다. 지금까지 이들은 자기 나름대로 살던 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이를 부인하고 예수님께서 자기들에게 원하시는 뜻을 영접하고 그 뜻대로 살고자 결단한 것입니다. 그들 중 마태는 원래 세리입니다. 그를 원하는 사람이라곤 그에게 뇌물을 받으려는 로마 관리나 탈세를 원하는 악덕 사업가 뿐이었습니다. 보통 사람들은 마태를 원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손가락질하며 무시하고 저주하였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이 그는 출교 대상이고 공적인 죄인이었습니다. 회당에서 예배도 드릴 수 없었고 사람들과 식사도 할 수 없는 그런 자였습니다. 그렇지만 예수님은 그를 원하셨습니다. 그에게 다가오사 '나를 따르라' 하셨습니다. "내가 널 원해" 레위는 예수님이 자신을 원하시는 것을 알았을 때 감격하였습니다. 앞뒤 가리지 않고, 계산하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나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마침내 그는 세리 레위에서 산상수훈을 기록한 성 마태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원하셔서 이 자리에 있게 된 것을 믿습니다. 예수님이 원하셔서 우리를 부르셨다는 사실은 매우 중요합니다. 이를 믿고 영접할 때 더 이상 방황하지 않고 분명한 인생목적과 방향을 가지고 행복하게 살 수 있습니다. 한번뿐인 인생을 가장 의미 있고 보람있게 확신을 가지고 살 수 있습니다. 또 예수님께서 원하셨다는 것은 단순히 원하심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그들의 인생을 책임져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친히 그들을 돌보시고 치유하시고 인도하십니다. 하나님은 한번 택하신 이스라엘을 끝까지 돌봐 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지금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지으신 이가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너와 함께 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하지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지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사43:1,2) 하나님께서 이사야에게 주신 말씀과 같이 예수님께서 원하사 부르신 자들은 인생길에서 물과 불 가운데로 지날 때에라도 상하지 않도록 지켜 주십니다.
둘째로, 열둘을 세우셨습니다.(14a) 예수님이 열두 명을 세우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냥 열둘이란 숫자를 좋아하셨기 때문일까요? 아닙니다. 열두 명은 열두지파 곧 세상 만민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에서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상이 새롭게 되어 인자가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을 때에 나를 따르는 너희도 열두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심판하리라"(마19:28) 예수님께서 열두 명을 세우신 이유는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생각하셨기 때문이었습니다. 이 시점에서 아무 자격 없는 이들 열두 명을 세우신 것은 이들을 통해 새 이스라엘을 건설하시고 그들을 통해 세상 만민을 구원하고자 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애굽의 노예였던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택하시고 그들을 거룩한 백성, 제사장 나라로 뜻 두셨습니다. 그들을 통해 온 세상을 구원하시고자 하셨습니다.(출19:5,6) 그런데 이 하나님의 크신 소망을 이스라엘 열두 지파는 저버렸습니다. 세상을 위해 기도해야 할 그들은 유다이즘에 빠져 자신들만 하나님의 백성이고 이방인들은 저주 받은 백성으로 배척하였습니다. 그렇다고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이 파해진 것으로 보시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새로운 이스라엘의 열 두 지파, 곧 열두 사도를 세우셨습니다. 이들을 통해 그 시대의 양 무리를 먹이시며 장차 예수님을 이어 구속 역사의 주인공으로 사용하고자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마지막 승천하시면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막16:15) 예수님께서 열두 사도를 세우셨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세상을 떠나신 이후에도 복음 역사는 끊어지지 않고 계속 이어갈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열둘을 세우신 것은 복음 역사의 기초를 놓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도 힘든 시대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복음 역사를 섬기기가 쉽지만은 않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예수님께서 우리를 이 시대에 먼저 부르셨다는 것입니다. 이는 이 시대에도 하나님의 구속 역사를 이루어 가시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한 사람 한사람을 부르십니다. 우리를 통해 만민 구원 역사를 이루시고자 강력한 뜻을 가지고 계십니다. 우리가 새롭게 이 시대에 우리를 부르시는 음성을 듣고 영접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부르심의 소망을 가지고 나아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Ⅱ. 열두 사도를 세우신 목적(14b-19)
  예수님은 열두 사도를 세우시고 그들에게 어떤 방향을 주셨습니까? 14,15절을 보십시오. “이에 열둘을 세우셨으니 이는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또 보내사 전도도 하며 귀신을 내쫓는 권능도 가지게 하려 하심이러라” 이 말씀에는 예수님께서 열둘을 세우신 목적과 교육방법이 분명하게 나타나 있습니다.
첫째,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부르시고 처음부터 끝까지 언제든지 함께 하셨습니다. 혼인잔치에 초대받으셨을 때에도 혼자 가시지 않으셨습니다. 병을 고치시거나 말씀을 전하실 때에도 언제나 옆에는 제자들이 함께 있었습니다. 잠깐 쉬러 가실 때에도 제자들과 함께 하셨습니다. 제자들이 광풍으로 고생하고 있을 때에도 함께 하셨습니다. 사람들에게 핍박을 받으실 때에도 귀신이 들렸다는 심한 말을 들으실 때에도 심지어 고향 사람들에게 욕을 먹으며 배척을 받으실 때에도 제자들과 함께 하셨습니다. 물론 힘든 때만 함께 하신 것이 아니셨습니다. 변화산의 영광스러운 모습 때, 예루살렘에서 무리들의 환영과 찬송을 받으실 때에도 제자들과 함께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인기가 있을 실 때나 배척받으실 때, 고난 중에나, 영광중에도 언제나 제자들과 함께 하셨습니다. 심지어 십자가를 지시긴 전 제자들에게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다"라고 속마음을 그대로 드러내셨습니다.
  함께 있게 하신 것은 먼저 늘 예수님을 배우는 사람이 되게 하셨다는 뜻입니다. 만약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성경말씀만을 가르치시려 했다면 늘 함께 하실 필요가 없으셨습니다. 주일에 회당에서 만나 성경 공부하는 것으로도 충분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제자들과 늘 함께 하시며 성경지식만이 아니라 예수님의 모든 것을 배우도록 하셨습니다. 함께 할 때 예수님의 인격을 본받고 예수님의 마음을 닮은 자가 되는 것입니다. 후에는 예수님께서 지니셨던 비전까지도 함께 공유하여 완전 예수님을 닮은 '리틀 지저스'가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배우는 가장 좋은 길은 예수님과 함께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멀리서 볼 때는 예수님에 대해서 오해를 많이 합니다. 예수님은 고운 모양도 없으시고 풍채도 없으시고 우리가 보기에 흠모할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이는 함께 있지 않고 피상적으로 예수님을 알기 때문에 나온 예수님의 일부분의 모습에 불과합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에 대한 잘못된 선입관 때문에 예수님의 제자 되기를 부담스러워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과 함께 하면 예수님의 거룩한 인격에 감화 받지 않을 사람이 없습니다. 또한 예수님이 그들과 함께 하시고자 하신 것은 그들의 약점과 허물을 감당해 주시고 병든 내면을 치료해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험한 세상에서 되는대로 살아온 제자들은 모든 것이 부족하였습니다. 이름만 사도 팀이었지 실제로는 쌩둥이 양과 다를 바 없었습니다. 영적인 세계를 모르고 감정적이고 자기중심적이었습니다. 이들을 하나님께서 쓰실만한 사도들이 되게 하시는 것은 24시간 함께 하시며 교육과 훈련을 시키는 길이 가장 좋은 방법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좋은 제자가 되기 위해서 우리가 가장 힘써야 할 일이 예수님과 함께 하는 일입니다. 어떻게 주님과 함께 할 수 있습니까? 말씀을 묵상하면서, 기도시간을 통해 주님과 함께 할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실제 삶 가운데서도, 또 양들을 돌보면서도 주님과 함께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하는 것 이것이 우리 삶의 목표가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늘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아침에 자리에서 일어나면서부터 하루 일과 동안, 그리고 밤에 잠잘 때에도 늘 함께 하십니다. 문제는 내가 나름대로 바쁘게 지내다보니 예수님을 멀리 하는 것입니다. 제자생활에서 예수님을 알고 예수님을 배우는데 초점을 맞추지 않으면 모든 것이 다 무거운 짐이 되어 피곤한 생활을 벗어나지 못합니다. 힘든 세상을 살아가기에도 벅찬데 양치는 십자가, 기도의 십자가, 훈련받는 십자가, 소감 쓰는 십자가 등 여러 가지 일들을 감당하기에는 역부족이라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알고 예수님을 배우고자 하면 이 모든 십자가들이 의미가 있고 감당하면 할수록 예수님을 배우는 기쁨과 즐거움이 넘쳐나게 됩니다. 요한팀 형제들이 처음 이곳에 올 때는 한 사람 한 사람 모두 어린아이같이, 순수하기는 하였으나 부족한 것 천지였습니다. 그러나 지난 몇 개월간 주말마다 말씀 앞에 나와서 예수님을 배우고자 투쟁했을 때 몇 개월 되지 않은 짧은 기간 동안 영적으로 엄청난 진보가 있게 되었습니다. 이들이 계속하여 예수님을 배우고 본받음으로 이렇게 성장한다면 얼마나 놀라운 진보가 있겠습니까? 예수님은 제자들을 무리에서 머물러 있지 않고 제자가 되도록 하셨습니다. 사람들과 다른 자들로 키우고자 하셨습니다. 우리가 이리저리 바뀌는 무리가 아니라 늘 예수님과 함께 하여 예수님을 배우는 제자들이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이 시대의 리틀 지저스가 되어 세상에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증거하는 자들로 귀하게 쓰임 받는 자들이 될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둘째, 보내사 전도도 하며 귀신을 내쫓는 권능도 가지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열둘을 세우신 목적은 또 그들을 보내사 전도도 하며 귀신을 내쫓는 권능도 가지게 하려 하심이었습니다. 오늘날 기술의 발달은 놀랍습니다. 스마트 폰만 보아도 세상이 이렇게까지 되었구나 실감하게 됩니다. 정말 인류가 어디까지 발전할지 모르겠습니다. 인류가 태어난 시작부터 오늘날까지 변화된 모습을 그래프로 그린다면 최근 백년동안 경사가 가장 심할 것입니다. 이런 시대에 각종 첨단 기술은 산업시대에 부작용을 해결하며 인류를 더 편안하고 안전하게 살 수 있게 하지 않을까 기대를 가지게 합니다. 그러나 미래 학자들이 예견하는 지구의 앞날은 그렇게 장밋빛이 아닙니다. 오히려 기술이 발달할수록 사람들의 삶은 더 척박해진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계층간, 나라간의 갈등이 심화되고 분쟁이 많아지며 사회의 양극화는 심해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세계 역사를 보아도 이 사실을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인류의 문화가 발달하고 기술이 발전하여도 세상의 존재하는 문제는 해결할 수 없었습니다. 오히려 문제는 더욱 복잡해지고 해결하기 힘든 쪽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세상의 모습은 변하지만 그 안에 살아가는 사람들은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아벨을 죽인 가인이나 바벨탑을 쌓은 사람들이나 소돔과 고모라 백성들이나 하나님을 배신한 이스라엘, 로마 시대 사람이나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강산은 수십 수백 번 바뀌었지만 사람이 죄인인 이 세상은 그대로입니다. 이는 분명 인간의 문제는 외적인 문제가 아니라 영혼의 문제임을 보여 주며 기술이나 지식이 이를 해결할 수 없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그러면 사람들은 이렇게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까? 해결할 방법이 없습니까? 이런 세상에 대해 성경은 선포합니다. "보라 날이 이를지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 사람이 이 바다에서 저 바다까지, 북쪽에서 동쪽까지 비틀거리며 여호와의 말씀을 구하려고 돌아다녀도 얻지 못하리니, 그 날에 아름다운 처녀와 젊은 남자가 다 갈하여 쓰러지리라"(암8:11-13) 하나님의 말씀이 없으니 아무리 양식이 있고 물이 있다 하여도 영혼은 고통하게 됩니다. 전보다 생활은 나아진다 하여도 내면은 허무해 지게 됩니다. 또한 하나님의 말씀이 없으니 사람들은 정도의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악령에 시달리게 됩니다. 앞날에 대한 두려움과 염려로 더욱 자기중심적이 되고 이기적이 되고 내면은 황폐하게 됩니다. 그래서 바울은 아들과 같은 디모데에게 강력하게 명했던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과 앞과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그가 나타나실 것과 그의 나라를 두고 엄히 명하노니,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딤후4:1,2) 예수님께서 보실 때 제자들이 전도인이 되며, 영혼의 목자가 되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었습니다. 이 세상의 근본문제인 죄문제를 해결하며 세상을 구원하는 길이었습니다. 그래서 처음부터 제자들에게 분명하게 가르치셨고 권능을 갖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정욕과 죽음으로 끝나는 인생의 허무함으로 인생을 되는대로 즐기며 함부로 살다가 죽을 자를 일방적인 은혜로 구원하셨습니다. 또한 막내로 태어나 자기만 아는 이기적인 자를 예수님의 양을 섬기며 예수님을 배우는 목자로 살도록 불러 주셨습니다. 저는 주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죄인을 구원하신 예수님을 믿음으로 순종하였습니다. 하나님은 부족하지만 저의 믿음을 축복하셔서 목자로 살 수 있도록 귀한 동역자도 허락하여 주시고 가정 가운데서도 부모님은 저를 위해 중보기도해 주시는 든든한 동역자가 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제까지 주님의 역사에 동역하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으시고 부족한 자에게 개척역사의 방향을 주셨습니다. 이는 고난이 따르지만 주님의 영광에 참여하는 놀라운 축복이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막상 주님의 부르심에 약간 당황하였습니다. 말씀도 잘 모르고 기도도 하지 못하고 무엇보다 믿음이 부족한 저 자신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전 아무래도 안되겠는데요, 준비가 되면 하겠습니다.'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이런 저를 주 앞에 무릎 꿇게 하셨습니다. 어찌할 수 없는 답답한 마음으로 기도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점점 저의 내면 가운데 믿음을 주셨습니다. 평안을 허락하셨습니다. 무엇보다 기도와 말씀을 통해 예수님이 원하셔서 죄인을 부르셨음을 깨닫게 하셨습니다. 이제까지 인도하셨고 지금도 그러함을 알게 하셨습니다. '네가 부족하고 연약하여 실수가 많다는 것을 다 안다 하지만 내가 원하여 너를 지명하여 부른다 내가 너를 원한다' 말씀하시는 음성을 듣게 하셨습니다. 저는 주님의 부르심에 죄악 되게 가졌던 불신과 부정한 입술을 회개치 않을 수 없었습니다. 또 주님께서는 장래 어찌할 바를 모르지만 주의 말씀에 순종케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죄인을 택하신 이유가 주님과 함께 하며 주님을 더욱 닮은 자가 되도록 하심임을 새롭게 영접하고 감사하게 하셨습니다. 부르심이 죄인을 향한 주님의 크신 은혜와 특권임을 알고 감사하게 하셨습니다. 죄인이 주님의 부르심에 감사하며 이제 온전히 믿음으로 나아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개척 역사를 위해 기도할 때 주님께서는 많은 일을 하려 하기 보다 먼저 말씀과 기도에 힘쓰도록 말씀하셨습니다. 특히 주님의 음성을 듣고 주님과 함께 하는 삶을 살아가도록 주 앞에 무릎 꿇는 자가 되기를 원하심을 영접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기도하는 종들 앞에 한 없이 부족하지만 먼저 주 앞에 꿇어 주님의 말씀을 듣기에 마음을 다할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또한 주님께서 주시는 생명의 말씀을 먼저 온전히 받기에 힘쓰며 이를 담대히 선포하는 자가 될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부족하지만 주님 죄인에게 말씀의 권세를 더하여 주시고 귀신을 내쫓는 권세를 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결론적으로, 예수님은 그 시대의 근본문제를 지도자 문제로 보시고 열 두 사도들을 부르시고 소망 가운데 키우셨습니다. 이 역사는 처음 시작은 지극히 미미하고 보잘 것 없어 보였지만 결국 변화된 이들을 통해 어두운 그 시대에 역사의 흐름을 바꾸어 놓는 위대한 역사를 창조해내셨습니다. 예수님은 말세지 말을 치닫고 있는 이 시대에 구원역사를 이루시기 위해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이 원하시는 사도로 성장하기 위해 열심히 예수님의 말씀을 배우고 연구함으로 영적 권세를 덧입어서 이 시대의 역사의 흐름을 바꿔놓는 역사 창조의 주역들이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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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2 시편 2010년 신입생 바이블 아카데미 4강 리스닝 2010-04-01 2789
631 이사야 [2010년 이사야서 제4강]포도원의 노래 리스닝 2010-10-03 2786
630 출애굽기 [2009년출애굽기제15강] 영화롭고 아름다운 제사장 관리자 2009-07-19 2786
629 마가복음 [2012년 마가복음 제12강] 주는 그리스도 관리자 2012-06-03 2785
628 마가복음 [2010년 가을제자수양회 주제1강] 열둘을 세우신 예수님 관리자 2010-10-31 27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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