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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nday Worship Message
주일예배메시지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1-01-02 (일) 13:48
분 류 갈라디아서
첨부#1 2011년_신년수양회_2강-1.hwp (55KB) (Down: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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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신년수양회 제2강]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품으라
2011년 신년수양회 제 2강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품으라

말씀: 빌립보서 2:1-18
요절: 빌립보서 2:5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Happy new year! 누구나 새해가 되면 새 마음으로 새 출발하고자 굳게 결심합니다. 더구나 올해는 대학생성경읽기 선교회(UBF)의 나이 50이 되는 뜻 깊은 해입니다. 50년 되는 해를 희년(Jubilee)이라 합니다. 희년의 나팔소리가 울려 퍼지면 모든 빚을 탕감 받고 토지와 가옥과 가족들도 모두 되돌려 받고 전쟁 포로까지 자유를 주어 새 마음으로 새 출발할 수 있기에 정말 기쁘고 즐거운 해가 됩니다. 2011년은 바로 그 희년이니 더욱 새 마음으로 출발해야 함을 깨우치십니다. 이를 위해 오늘 말씀에서는 무엇보다도 예수님의 마음을 품으라고 명하십니다. 미스바 회개운동에 이어 예수님의 마음을 품은 성숙한 종으로 성장하는 새해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Ⅰ.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1-11)
 1절을 보십시오. “그러므로그리스도안에무슨권면이나사랑의무슨위로나성령의무슨교제나긍휼이나자비가있거든” 권면, 위로, 교제, 긍휼, 자비는 모두 성경 선생이요 목자로서 절대적으로 갖추어야 할 역량입니다. 빌립보 교회는 사도 바울이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유럽으로 건너와 처음 개척한 교회로서 그가 빌립보 성도들에게 목자가 해야 할 기본 생활을 잘 가르친 결과, 그들은 짧은 시간에 영향력 있는 성도들로 성장하였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들의 훌륭한 점을 잘 알고 인정하였습니다. 그런데 훌륭한 사람들이 모인 곳에 흔히 있을 수 있는 문제가 빌립보 교회에도 있었습니다. 이들이 개인적으로는 훌륭하나 각각 자기 생각이나 계획을 주장하며 마음을 같이 하여 한 마음을 이루는 것은 쉽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할 때 성령의 그릇이 이루어지지 않고 불협화음을 내어 배가 산으로 올라가는 불상사를 일으켰습니다. 교회 내에서 분열과 반목은 공동체를 파괴하는 가장 무서운 적입니다. 아무리 좋은 방향을 세우더라도 같은 마음을 품지 않을 때 하나님의 일을 섬길 수 없고 오히려 사탄이 역사할 빌미를 제공하게 됩니다. 복음역사를 잘 섬기려면 개인의 능력 발휘를 앞세우기보다 먼저 마음을 합쳐 함께 동역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이 시점에서 빌립보 성도들에게 주는 사도 바울의 권면이 무엇입니까?
첫째로, 한 마음을 품어야 합니다.
2절을 보십시오. “마음을같이하여같은사랑을가지고뜻을합하여한마음을품어” 교회는 다양한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성격이 다르고, 개성이 다르고, 가치관이 다르고, 은사가 다릅니다. 이런 사람들이 어떻게 마음을 합할 수 있습니까?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여 한 마음을 품어야 합니다. 이는 어떤 경우에도 모두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마음을 앞세울 때 가능합니다. 각자 자기 생각이나 자기 소원대로 한다면 결코 하나될 수 없습니다. 신자들은 모두 하나님의 자녀들로서 하나님의 뜻을 섬기도록 부르심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신자들은 하나님을 중심으로 하나님의 뜻을 섬기고자 하는 한 목적으로 한 영(one spirit)을 이루어 한 마음을 품어야 합니다.
둘째로,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겨야 합니다.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3) 다툼(selfish ambition)이나 허영(vain conceit)은 모두 자기중심에서 나오는 것들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하나님을 위한 순수한 동기가 아니라 자기 야심에 기초한 것이 될 때 다툼을 일으킵니다. 허영은 하나님의 영광보다 헛된 자기 영광을 구하는 욕심입니다. 신자들은 자기영광을 구하는 마음을 십자가에 못박고 살든지 죽든지 그리스도가 존귀히 여김을 받는 것에 그 인생목적을 두어야 합니다.(빌1:20) 곧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자기를 먼저 낮추고 남을 존중하는 겸손한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 말에 “쥐꼬리만한 자존심을 내세운다” 혹은 “쥐뿔도 없으면서 있는 척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렇게 죄악된 인간은 근본적으로 교만한데 어떻게 겸손한 마음을 가질 수 있는 것입니까? 이는 불가능한 일처럼 보입니다. 아무 근거도 없이 교만을 떠는 사람을 보면 어처구니 없어 하는데 실제로 나 자신도 별반 다를 바 없는 교만한 죄인으로 자아 발견할 때 이런 나를 감당해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며 마음을 합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겸손은 죄인으로서 자아 발견하는 데서부터 시작됩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신이 비참한 죄인임을 낱낱이 알아갈 때 다른 사람의 훌륭한 점이 보이고 배우는 마음이 생기고 다른 사람을 귀하게 여기게 됩니다. 하나님 편에서 볼 때 저 사람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나보다 월등하고, 이 사람은 절대성과 인내심이, 혹은 성실함이, 혹은 섬기는 내면이 나보다 더 나은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양을 사랑하는 마음이 뜨겁고, 어떤 사람은 넓은 마음이, 어떤 사람은 희생적인 헌신이 나보다 나은 것을 인정하고 존경하게 됩니다. 우리가 주위를 둘러보고 동역자들의 훌륭한 점이 무엇인가 찾아보아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그를 깊이 인정하고 칭찬하고 신뢰한다면 하나 되는 동역의 그릇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어디를 둘러보아도 문제투성이인 사람만 보인다면 나에게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자기 의에 가득 차 있는 사람들에게 다른 사람의 훌륭한 점을 찾고 존중하는 마음으로 동역하라 하십니다. 고 Dr. Samuel Lee 선교사님과 Mother Barry 선교사님은 서로 훌륭한 종으로 존경하시면서 아름다운 동역의 그릇을 이루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셨습니다. 다윗과 요나단은 서로를 자기보다 낫게 여기고 배우고 존경하며 서로의 생명을 아끼고 보호하고 사모하였습니다. 서로 적수가 될 운명이었지만 가장 아름다운 사랑의 동역자가 되어 영적인 사랑의 좋은 예를 남겼습니다. 우리 마음에 나보다 남을 낫게 여기는 겸손함을 배우도록 은혜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셋째로, 자기 일을 돌볼뿐더러 다른 사람의 일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각각 자기 일을 돌볼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하게 하라”(4) 사도 바울은 각각 자기 일을 돌보아 남에게 부담이 되거나 폐를 끼치지 않는 것은 기본으로 하되 자기 일은 물론이요 다른 사람의 일을 돌아보아야 한다고 하십니다. 이는 목자 바울에게 충만한 기쁨을 줍니다. 요즈음은 다 같이 바쁘고 내 일만 하기에도 벅차게 느끼며 어떻게 다른 사람의 일까지 돌아볼 수 있는가 하며 돌아보는 자체를 벅차게 생각합니다. 실제로 다른 사람의 일을 돌아보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는 일의 많고 적음의 문제가 아니라 이웃에 대한 관심과 사랑의 문제입니다. 늘 자기 일에 얽매어 살면 자기 하나 추스르기에도 급급합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돌보고자 할 때 동역이 이루어지고, 서로 관심을 가지고 돌보며 섬기는 곳에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고 천국이 이루어집니다. 사도 바울은 감옥에 있으면서도 문제 있는 교회들을 돌보아 주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자신의 인생문제도 컸지만 조카 롯이 사로잡혔음을 듣고 생명의 위협을 무릅쓰고 밤새 기습작전으로 롯을 구했습니다. 자기 일만 잘 돌보는데 집중해서 사는 삶은 목자의 삶이 아닙니다. 자기 문제를 다 해결한 후에 다른 사람을 돌아보고자 한다면 평생 다른 사람을 돌볼 수 없습니다. 자기중심성에서 벗어나야 한 마음으로 동역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서로 옆으로 얼굴을 돌려 다른 사람을 보고 돌보는 목자들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넷째로,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품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이들이 자기중심에서 벗어나 하나님 중심, 양 중심이 되는 근본 힘이 어디서 오는가를 가르쳐주십니다. 5절을 보십시오. “너희안에이마음을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예수님의 마음 자세를 덧입는 데서 그 힘을 얻으라 하십니다. 사람의 마음 자세에 따라 모든 것이 달라집니다. 아무리 한 마음을 품고 다른 사람을 섬기고자 해도 작심삼일로 끝나는 죄악된 본성 앞에 우리는 절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때 어떻게 하라고 하십니까?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Your attitude should be the same as that of Christ Jesus.) 이 마음은 어떤 마음입니까? 예수님의 마음입니다. 여기서 마음은 심정(mind)과 자세(attitude)를 말합니다. 곧 어떤 경우를 만나든지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실까?” “예수님의 마음은 무엇을 원하실까?”를 생각하는 것입니다. 자기중심적인 자세에서 벗어나 예수님의 마음 자세를 가지라는 것입니다. 신자는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고 그리스도의 사역을 감당하는 사람입니다. 매사에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으면 예수님과 같이 행할 수 있는 힘과 사랑과 지혜와 능력을 덧입게 될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실제 삶을 통해서, 동역자들과의 동역을 통해서 예수님을 체험하고자 노력해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가져야 할 그리스도의 마음은 어떤 마음입니까?
첫째로, 자기 권리를 포기하는 마음입니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6) 예수님은 영원 전부터 계신 창조주시요, 생명의 수여자이십니다.(요1:1-4) 골로새서 1:15절에서는 예수님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형상이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은 마땅히 창조주로서의 권세와 영광을 누리시고 모든 피조물로부터 경배와 찬양과 섬김과 존귀를 받으셔야 합니다. 그런데도 예수님은 하나님과 동등한 대우를 취하지 않으셨습니다. 이는 하나님으로서 마땅히 누리실 권리와 특권을 포기하셨다는 것입니다. 작은 권리조차 더 크게 누리려고 애를 쓰는 것이 인간의 본성인데, 여기서 다툼이 생기고 허영을 부리게 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자기 권리를 포기하심으로써 인간들과 함께 하셨습니다.
둘째로, 자신을 비우는 마음입니다.
7절을 보십시오. “오히려자기를비워종의형체를가지사사람들과같이되셨고” ‘자기를 비웠다’는 것은 자신을 아무것도 아닌 자(made himself nothing)로 여긴 것으로써 적극적인 자기부인입니다. 인간은 교만하여 어찌하든지 자기 존재를 과대 포장하여 인정받고 섬김 받고자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모든 사람들보다 더 낮아지심으로 죄인들이 부담 없이 예수님께 나오게 하셨습니다. 섬김 받아야 마땅하신 분이 오히려 다른 사람을 섬기고자 종의 형체를 가지셨습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이 최후의 만찬을 가질 때였습니다. 이들이 식사하려면 반드시 발을 씻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그 일은 가장 낮은 종이 하는 일이었기에 교만한 제자들은 아무도 그 일을 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때 예수님이 자리에서 일어나셔서 친히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스승이셨지만 종의 자세로 죽기까지 섬기시므로 이들의 죄 문제를 해결해 주셨습니다.
셋째로, 자기 희생의 마음입니다.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8) 하늘 보좌에 계셔야 마땅하신예수님이사람의모양으로이땅에오신것만도엄청난희생인데사람중에서도종의형체를가지실뿐아니라십자가에죽기까지자신을희생하셨습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 땅에서의 삶이 종과 같을지라도 인생의 마지막만큼은 아름답게 끝나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가장 수치스러운 십자가에 못박혀 고통스럽게 죽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서 섬기는 종으로 사셨을 뿐 아니라 십자가에 죽기까지 복종하셔서 하나님의 구원역사를 완성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실로 가장 높으신 분이 가장 비천한 자로 자신을 희생하심으로 모든 죄인들을 품어주셨습니다. 이로써 예수님은 자신을 완전히 비우심으로 겸손과 화해, 용서의 본체가 되셨습니다. 이로써 하나님의 사랑이 나타나고,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고 죄인들에게 구원의 은혜가 임했습니다. 우리는 이 예수님을 통하여 예수님의 마음이 무엇인가를 배우게 됩니다. 예수님의 마음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드리기 위해 자기를 포기하고 비우고 희생함으로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는 마음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예수님의 마음은 한 순간의 굳은 결심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앞서 가신 길을 따라 가는 믿음의 실천으로 배울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마음을 품는 것은 인격의 변화요 믿음의 성장입니다.
‘광야의 학교에서’라는 글에서 예수님을 잘 배울 수 있는 길을 가르쳐줍니다. “저는 광야대학 고생과에 다니고 있습니다. 총장님은 하나님이시요 멘토는 성령님이시므로 어물쩡 넘어가는 일이 절대로 없습니다. 그래서 커닝한다는 것은 불가능하고 시험을 볼 때도 누군가의 도움을 받을 수도 없습니다. 학비는 상당히 비싼 편입니다. 인생을 모두 걸어야 하니까요. 지금 내가 배우고 있는 과목은 버리기 입니다. 욕심을 버려야 하고, 고집을 버려야 하고 지금까지 세상에서 배웠던 생각도 버려야 합니다. 또 있습니다. 하나님 찬송하는 일을 배운답니다. 즐거울 때라면 누가 못하겠어요? 병들었을 때, 가난할 때 찬송하는 시험을 보니 패스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이렇게 고생을 감당하여 과목을 이수하면 예수님의 제자라는 도장을 찍어주고 헌신과, 충성과에 진급할 수 있습니다. 광야학교는 아는 것이 힘이 아니고 믿는 것이 힘입니다. 하나님의 참 사람은 광야학교에서 배출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한 가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광야학교에 입학하였다고 무조건 졸업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광야학교에서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말씀의 사람, 기도의 사람, 사랑의 사람으로 거듭날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기까지 하나님께 복종하셨을 때 하나님은 그를 어떻게 하셨습니까? 9-11절을 다 같이 읽겠습니다. “이러므로하나님이그를지극히높여모든이름위에뛰어난이름을주사하늘에있는자들과땅에있는자들과땅아래에있는자들로모든무릎을예수의이름에꿇게하시고모든입으로예수그리스도를주라시인하여하나님아버지께영광을돌리게하셨느니라” 성부 하나님은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복종하신 예수님을 능력으로 살리사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게 하셨고,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셔서 예수님을 주라 시인하며 그 이름에 꿇게 하셨습니다. 이로써 예수님을 모든 사람들이 복종해야 할 만 왕의 왕이 되게 하셨습니다. 우리는 이를 통해 몇 가지 중요한 진리를 배우게 됩니다. 첫째로, 하나님은 하나님의 뜻을 섬기기 위해 자기를 낮추는 자를 높이십니다. 사람들이낮아지기를싫어하는것은낮아질때본래자신의위치마저잃어버리고비천해진다고생각하기때문입니다. 그러나 목자요 선교사의 본체는 하나님의 부르심으로 말미암아 주어진 것이기에, 우리가 자신을 낮춘다고 낮아지거나 잃어버리는 것이 아닙니다. 또 우리가 자기를 스스로 높인다고 높아지는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은 교만한 자는 낮추시고 겸손한 자는 높이십니다. 예수님은 높아지고자 애를 쓰는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자기를높이는자는낮아지고누구든지자기를낮추는자는높아지리라”(마23:12) 수제자 베드로는 높은 자리를 유지하고자 인간적인 노력을 했을 때 큰 소리만 쳤지 실수와 허물로 낮은 자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그리스도의 겸손을 배웠을 때 하나님의 크신 은혜를 체험하고 이렇게 권면하였습니다. “젊은 자들아 이와 같이 장로들에게 순종하고 다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에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벧전 5:5,6) 하나님이 높이시는 자가 진정으로 높은 자입니다.
   둘째로, 예수님의 낮아지심으로 구원의 은혜를 누리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자기 비움’과 ’낮아짐’으로 우리는 구원받았고, 이 세상에서도 예수님을 본받아 위대한 인생을 살게 되었습니다. 만일 예수님이 이런 본을 보여주시지 않으셨다면 우리는 남을 나보다 낮게 여기고 남을 위해 희생하고 양보하는 것은 자기 굴욕이요 손해 보는 것으로 여기고 할 수 있는 대로 높아지고자 발버둥치다가 낮고 천한 인생을 살았을 것입니다. 우리를 구원하시고자 십자가에 죽기까지 하나님께 복종하심으로 겸손과 복종의 본을 보이신 우리 주 예수님을 찬양합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드리기 위해 자기를 비우고 낮추고 희생하는 자가 될 수 있도록 예수님의 마음을 품고 배우는 한 해가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저는 UBF 희년을 맞이하는 새해를 새 마음으로 출발하고 싶었지만 정체된 복음역사로 인해 마음이 답답하기만 하였습니다. 적극적으로 복음역사에 동참하지 못하는 동역자들을 판단하고 정죄하느라 속이 시끄러웠습니다. 그렇지만 정작 저 자신은 남을 낫게 여기고 돌아볼 여유도 없이 그저 자신의 믿음 하나 지키는 것으로 만족하는 지극히 자기중심적인 죄인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사무엘서를 통해 바로 저 자신이 바알신과 아스다롯을 섬기는 비참한 죄인임을 깨우치시고 회개하도록 도우셨습니다. 또 빌립보서를 통해 예수님의 마음을 가르쳐주셨습니다. 예수님의 마음은 남을 낫게 여기는 마음이요, 종과 같이 낮아져 섬기는 마음이요, 죽기까지 하나님께 복종하는 마음이었습니다. 저는 이 예수님 앞에서 교만과 무지의 죄를 자복하고 애통함으로 회개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저를 긍휼히 여기시고 새해 예수님을 새롭게 배우는데 초점을 맞추고 새 출발하도록 도우셨습니다. 우리 모두 예수님의 마음을 품고 나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서로를 돌아보며 한 마음으로 동역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드리는 새해를 맞이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Ⅱ. 너희 구원을 이루라(12-18)
 12절을 보십시오. “그러므로나의사랑하는자들아너희가나있을때뿐아니라더욱지금나없을때에도항상복종하여두렵고떨림으로너희구원을이루라” ‘구원을 이루라’는 말씀은 우리가 거듭난 후 우리의 내면에 그리스도의 형상이 새겨지기까지 내적 성장(성화, sanctification)을 이루는 것입니다. 우리가 구원받고 거듭난 후 사람들의 인정이나 외적인 열매에 매여 내적 투쟁을 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실제 삶은 불신자와 다를 바 없는 삶이 됩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힘써야 할 것은 하나님 앞에서 자기 죄를 발견하고 끊임없이 회개함으로써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으로 성장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구원을 이루는 것은 의지적인 노력으로 구원을 완성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사도 바울은 무엇이라고 가르쳐 주십니까? 13,14절을 보십시오. “너희안에서행하시는이는하나님이시니자기의기쁘신뜻을위하여너희에게소원을두고행하게하시나니모든일을원망과시비가없이하라” 우리 내면에 그리스도의 형상이 조각되게 하는 것은 하나님이 크신 소원을 가지고 역사하심으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두신 소원이 무엇일까요? 우리의 속 사람이 변화되어 little Jesus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거룩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은 나의 소원이기 전에 하나님의 간절한 소원입니다. 우리의 소원은 할 수 있는 대로 편안히 살고, 하나님의 영광보다 내 영광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나에게 두신 소원은 너무나 엄청난 것이어서 우리의 노력만으로는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내 속에 하나님의 소원이 이루어지도록 나를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성 어거스틴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소원한다, 그러나 하나님이 우리 속에서 그 소원을 불러일으키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행한다. 그러나 하나님이 우리 안에서 그 일을 행하시는 것이다.” 하나님은 지금도 구원의 완성을 이루시기 위해 우리 속에서 행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두렵고 떨림으로 순종하는 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합니까? 모든 일을 원망과 시비가 없이 해야 합니다. 원망(complaining)과 시비(arguing)는 모두 자기를 주장하는 데서 생깁니다. 그러나 우리가 구원받은 것이나 현재 하나님의 자녀로 살고 있는 것이나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원망과 시비 대신에 범사에 하나님께 감사하고 세상에 대해 적극적으로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해야 할 것입니다.(15) 그리고 생명의 말씀을 밝혀야 합니다. 구원받은 신자의 중요한 사명은 말씀을 전파하고 중보기도를 감당하는 것입니다. 이에 충성할 때 목자 바울의 수고가 헛되지 않고 주님 앞에 설 때 자랑할 것이 있을 것이라 강조합니다.(16) 새해 우리가 힘써 해야 할 사명도 어두운 캠퍼스에 생명의 말씀을 밝히는 일입니다.
 17,18절을 보십시오. “만일너희믿음의제물과섬김위에내가나를전제로드릴지라도나는기뻐하고너희무리와함께기뻐하리니이와같이너희도기뻐하고나와함께기뻐하라” 그 당시 하나님께 온전한 제사를 드리기 위해 제물 위에 포도주를 부어드렸는데, 사도 바울은 빌립보 성도들의 믿음의 제물과 섬김 위에 자신의 순교의 피를 전제로 부어드려도 기뻐할 것이라 고백합니다. 그는 실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 목숨을 바치고자 하는 충성스러운 종이요, 자기 생명을 바쳐 양들의 믿음이 하나님께 바쳐지도록 돕는 선한 목자였습니다. 이런 점에서 사도바울은 예수님의 마음을 품은 목자였습니다.

결론적으로, 우리 신앙생활의 목표는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을 본받고 예수님을 배우는 삶입니다. 우리가 그 동안 우리 신앙의 중심이시요 목표가 되신 예수님을 놓치고 살 때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원치 않게 자기를 주장하며 감사 대신 원망과 시비가 있었고, 동역하는 대신 무관심하게 나름대로 살 때가 많았습니다. 새해에는 이런 묵은 찌끼를 모두 버리고 전폭적으로 예수님을 본받고 예수님의 마음을 덧입어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종들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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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7 요한계시록 [2010 요한계시록 제12강] 자기 옷을 지키는 자-고영훈 휴화산 2010-01-14 3126
686 누가복음 [2011년 누가복음 제27강]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관리자 2011-10-23 3124
685 요한복음 [2010년요한복음제16강]참된 생명의 길 리스닝 2010-06-21 3124
684 요한복음 [2010 요한복음4강]거듭남 리스닝 2010-03-21 3124
683 사무엘상 [2011년 신년수양회 제1강]미스바의 영적 부흥(고영훈) 관리자 2011-01-02 3122
682 마가복음 [2012년 마가복음 제3강]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관리자 2012-03-25 3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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