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HOME | 세계선교 | 각부모임 | 경성소모임 | 성경연구 | 사진자료실 | 영상자료실 | 경성쉼터 | JBF/EBF/CBF | 기타 |

회원등록 비번분실

  Bible Study  
주일예배메시지
성경공부문제지
수양회강의
특강
구약강의자료실
신약강의자료실
강의안책자



 Sunday Worship Message
주일예배메시지

작성자 리스닝
작성일 2011-06-13 (월) 11:57
분 류 느헤미야
첨부#1 2011년_제자수양회_4강(진요셉).hwp (53KB) (Down:176)
ㆍ추천: 0  ㆍ조회: 2717      
IP: 61.xxx.23
[2011년 제자수양회 제4강]개혁자 느헤미야- 진요셉

2011년 제자 수양회 제4강                                              진요셉(노르웨이)

개혁자 느헤미야

말씀 : 느헤미야 11-13장
요절 : 느헤미야 13:22 “내가 또 레위 사람들을 명하여 몸을 정결케 하고 와서 성문을 지켜서
안식일로 거룩하게 하라 하였느니라 나의 하나님이여 나를 위하여 이 일도 기억하옵시고 주의 큰
은혜대로 나를 아끼시옵소서 ”

이번 제자 수양회를 통해 느헤미야 말씀을 배우게 하셔서 감사합니다. 오늘은 느헤미야  마지막 강의 입니다. 말씀의 제목은 개혁자 느헤미야 입니다. 제가 기도하겠습니다.

개혁! 이 말이 여러분에게 어떻게 들리십니까? 우리에게 개혁이 과연 필요합니까? 아니면 이대로 괜찮습니까? 오늘 말씀에서 느헤미야는 개혁자의 모습으로 나옵니다. 그는 황폐해진 예루살렘을 재건한 후 세상적인 누룩이 공동체에 들어오는 것과 싸우고, 철저히 하나님중심 율법(말씀)중심 성전(교회)중심의 신앙공동체를 세우고자 했습니다. 사실 개혁이란 새로운 것으로 바꾼다 라는 의미보다 처음으로 본질로 회복하는 것입니다. 느헤미야는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두셨던 처음 모습으로의 회복을 소원했습니다. 세상의 모든 신앙 공동체는 개혁하지 않으면 점차 사람중심, 관행과 전통 중심으로  딱딱하게 굳어 갑니다. 경건의 모양만 있고 능력이 없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날마다 신앙의 본질을 향해 개혁해야 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느헤미야의 개혁정신을 배울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제 1 장  예루살렘에 거하는 자들.
11장 12장에 걸쳐 성경은 예루살렘에 와서 거하게는 자에 대해 자세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1절2절을 보십시오. ”백성의 두목들은 예루살렘에 머물렀고 그 남은 백성은 제비 뽑아 십분 의 일은 거룩한 성 예루살렘에 와서 거하게 하고 그 구분은 다른 성읍에 거하게 하였으며 무릇 예루살렘에 거하기를 자원하는 자는 백성들이 위하여 복을 빌었느니라” 예루살렘에 거하게 된 자들은 백성들의 리더들과, 자원하는 자들과 백성 중의 제비를 뽑아 선택된 자들입니다. 예루살렘 성벽은 중건되었지만 사실 그곳은 살rl 힘든 곳이었습니다. 유다가 다시 강성해지는 것을 꺼려하는 주변의 세력들이 늘 예루살렘을 위협했습니다. 1장에서는 예루살렘이 큰 환난을 만나고 능욕을 받으며 성은 훼파되고 성문들은 소화되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많은 이들이 떠나갔고, 성은 광대하나 거민은 희소했습니다. 이곳에 거주한 다는 것은 외부의 위협을 안고 사는 것이며 또한 재건의 수고와 헌신을 떠안고 사는 것을 전제로 하는 것이었습니다. 쉽지 않은 결단입니다.  

그럼 이제 그 땅에 누가 살게 됩니까. 첫째, 백성의 두목과 제사장과 레위인 즉 이스라엘의 리더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예루살렘에 머물렀습니다. 자신의 안녕보다 공동체를 먼저 생각했고, 헌신과 희생이 요구되는 곳에 남았습니다. 이 시대의 리더들이 왜 비난을 받습니까? 섬김 받는 자리에서만 모습이 보이고 섬기고 희생하는 자리에서 모습을 보기 힘들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러나 주님 말씀하셨듯 참된 권위는, 참된 리더쉽는 섬김과 희생에서 나옵니다. 리더들의 헌신과 결단은 하나님 역사의 중심이 되며, 개혁의 주춧돌이 됩니다.

또한 자원하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드러나 앞서 행하는 리더들은 아니었지만 묵묵히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공동체에 정말 숨겨진 보석과 같은 자들입니다. 이스라엘도 이를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을 위해 복을 빌었습니다. 축복을 하여 주었습니다. 우리 센터에도 이런 사람 많죠, 그 사람들의 자원하는 마음을 당연히 여겨서는 안됩니다. 이런 이들은 조용히 하나님역사를 섬기기에 주목 받지 못할 때 많은데 정말 귀히 여기고 축복해주어야 합니다. ”자기 같은 사람이 있어서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주님 이 사람을 축복해주십시오” 해야 합니다. 머리를 쓰다듬으며 안수하며 축복해야 합니다.  

그 다음에 재미있는 세번 째 그룹이 제비 뽑힌 자들입니다. 느헤미야가 맘을 단단히 먹었습니다. 어찌하든 예루살렘을 채우고자 작정했습니다. 그래서 백성의 10분의 1이 제비를 뽑아 예루살렘에 거하고 나머지 사람들은 다른 성읍에 거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무조건적이 택함을 받은 자들이었습니다. 사실 성경에 언급되는 모든 제비 뽑기는 사람의 주권이 아닌 하나님의 주권을 구하고자 방법입니다. 뽑힌 자들의 반응은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주권으로 은혜로 영접하고 아멘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주권을 영접하지 못할 때 하나님을 원망하고, 느헤미야를 원망하고, 잘못 뽑은 제비를 탓하게 됩니다. 황폐한 예루살렘을 회복하기 위해선 헌신된 거주민들이 필요합니다. 누군가는 그곳에서 살며 재건의 수고를 감당해야 합니다. 성벽만 멋지게 쌓고, 사는 이가 없으면 무슨 소용입니까? 사람이 없으면 건물이 무슨 소용입니까? 교회는 건물이 아니라 믿는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신앙공동체의 회복과 재건을 위해서는 줄기차게 리더들과 자원하는 자들과 하나님 주권을 영접하는 사람들이 나와야 합니다. 1세대 2세대 3세대를 걸쳐 이런 사람들이 계속 나와야 합니다. 이런 자들이 나와 역사가 황폐해 보이더라도 주님 주신 비전을 품고, 하나님 도우심을 구하며 다시 개척하고 개혁하고 헌신해야 합니다. 우리가 어떤 자이건 리더이건, 풀 타임이건, 평신도이건, 학생목자이건, 자원하는 자이건, 아니 제비 뽑힌 것처럼 이 자리에 왔더라도 이를 하나님의 주권으로 은혜로 영접하고, 어느 자리에 있든 하나님의 소원을 따라 신앙공동체의 개혁과 회복을 위해 사는 자 되길 기도합니다.

2004년 군 제대를 앞두고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개척선교사로 나가는 건 어때요? 제가 자원했겠습니까? 부담스러워 했겠습니까? 부담스러웠습니다. 여러 가지 자기생각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말씀 앞에서 내 생각을 내려 놓고 하나님의 뜻을 구했습니다. 누군가 가야 한다면 내가 가야겠다! 소원이 생겼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영접하니 부르심이 은혜가 되고 개척이 수고스러워 보이기보다 축복으로 보였습니다. 그러고 정말 축복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 늘 감사하고, 또 저희를 이끌어주신 목자님께 감사하고 있습니다. 말씀을 통해 이 첫 마음을 기억하게 하셔서 감사합니다. 저희가 이 부르신 땅에 거하며, 이 땅의 영적인 회복을 위해 헌신하고, 기도하며, 하나님 주신 비전을  품고 살겠습니다.

제 2 장 성벽 봉헌식, 기쁨의 예배
12장 27 절 을 보십시오. 드디어 예루살렘 성벽을 봉헌하게 되었습니다. 예루살렘에선 감사와 찬송이 터져 나왔습니다. 사실 이는 다만 성벽이 세워져서가 아니라 이전 에스라와 함께 했던 성경공부를 통해 깊이 회개하고 구원의 은혜를 회복한 상태에서 봉헌 예배를 하였기 때문입니다. 또 재건된 성벽을 통해 무너진 이스라엘을 다시 회복하실 하나님의 비전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30절을 보십시오.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이 몸을 정결하게 하고 또 백성과 성문과 성벽을 정결하게 하니라” 봉헌예배를 인도 하기 전 예배 인도자들이 자신을 정결케 하고 백성들과 성문과 성벽을 정결케 하였습니다. 우리도 예배전의 정결함이 필요합니다. 이것이 많이 잊혀졌습니다. 몸과 마음을 정결케 해야 합니다. 육신의 정욕을 회개하고, 마음의 분주함을 내려놓고 예배에 나와야 합니다. 샤워하고 예배에 나온다고 정결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좋은 옷 입고 나온다고, 넥타이 맨다고, 정결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영이시고, 중심을 보십니다. 중심을 진실함을 주께서 원하신다고 다윗은 고백합니다. 우리는 예배 전 마음의 중심을 진실하게 정결해야 합니다. 세상에 속한 마음을 버리고, 거짓과 이기심과 음란과 세상쾌락을 회개하고 하나님을 사모하는 맘으로, 말씀을 사모하는 맘으로, 찬송가를 부르는 것이 아니라 찬송 받기에 합당하신 주님을 찬양하는 맘으로 예배에 나와야 합니다.

43절을 보십시오. ”이날에 무리가 큰 제사를 드리고 심히 즐거워 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이 크게 즐거워하게 하셨음이라 부녀와 어린아이도 즐거워 하였으므로 예루살렘이 즐거워하는 소리가 멀리 들렸느니라.” 이 본문 말씀은 우리의 예배가 어떠해야 하는가 보여줍니다. 말씀을 통해 회개하고, 구원의 은혜를 회복하고 하나님께 기쁨으로 찬송하는 것입니다. 영적인 기쁨은 하늘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크게 즐거워하게 하셨습니다.

우리도 이런 기쁨의 예배 찬양의 제사를 드려야 합니다. 예배는 보는 것이 아니라 드리는 것이고 찬송가는 부르는 것이 아니라 정말 찬양하는 것입니다. 찬양은 예배이자 우리의 존재 목적입니다.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니라”(사44:21) 찬양을 섬기는 이는 정말 메신저와 같은 정체성을 가지고 찬양을 섬겨야 합니다. 하나님을 찬양하는 심정으로 현악기를 연주하고, 악기가 안되면 목소리로 찬양하고, 목소리가 안되면 몸으로라도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얼마나 기뻐하시겠습니까? 우리를 크게 즐거워하게 하시지 않겠습니까?

느헤미야 말씀을 통해 예배회복의 소원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저희 가정은 예배를 드린 것이 아니라 예배를 보았습니다. 찬양의 제사를 드린 것이 아니라 그냥  찬송가를 불렀습니다. 정결한 준비 없이 허둥지둥 준비하고, 아이들을 조용히 해라 윽박지르며, 예배가 끝나면, 즐거움이 대신, 이렇게 라도 지켰다는 자기 의와 무언가 잘못되었다라는 자책만 남았습니다. 제가 기도합니다. 주님 저를 불쌍히 여기시고, 느헤미야와 같은 스피릿을 주십시오. 제게 회복의 비전을 주시고, 우리 가정예배를 회복시켜 주세요. 저희가 다시 말씀의 종으로 세움 받고, 예배를 드리며 찬양의 제사를 드리기를 기도합니다. 정결! 말씀! 찬송! 기도! 섬김! 축복! 기쁨!  이 아름다운 모든 것들이 우리 안에 충만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성벽봉헌의 기쁨은 회복의 기쁨입니다. 무너졌던 성벽의 회복은 무너졌던 이스라엘과 하나님과의 관계의 회복을 상징합니다. 우리도 우리의 죄와 허물 때문에 하나님과의 관계, 동역자 서로 간의 관계가 황폐해 질 때 있습니다. 말씀 앞에서 회개하고 주의 보혈로 죄사함 받아야 합니다. 예배는 이런 회복의 시간입니다. 그렇기에 회복의 기쁨과 감사가 있고, 하늘이 주시는 평안과 즐거움이 있습니다. 우리가 모여 예배할 때 이 하늘의 즐거운 소리가 캠퍼스 멀리까지 들리기를 기도합니다.

44절부터 47 절 까지는 기쁨의 봉헌예배 이후 제사장과 레위인들은 마음을 다해 하나님역사를 섬겼습니다. 이 모습이 너무 아름다워 유다 사람들이 즐거워했습니다. 리더들이 열심으로 주와 역사를 섬기는 모습을 보고 유다인은 즐겁게 예물을 드렸습니다. 이 예물이 하나님의 역사에 귀히 쓰임 받게 됨을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개혁된 신앙공동체 모습은 각자의 자리에서 열심으로 헌신하고 서로의 헌신을 보며 시기하는 것이 아니라 온전히 기뻐하고 감사하고 즐거워하는 바로 이 모습입니다.

제 3 장 개혁자 느헤미야
예루살렘 재건과 함께 신앙공동체의 개혁과 회복이 이루어졌습니다. 그런데 13장의 모습을 보니 다시 예루살렘의 모습이 세상누룩에 물들고 변질된 모습이 나옵니다. 느헤미야 마지막 장은 개혁이란 1 차적인 사건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것이며, 신앙인과 신앙공동체는 늘 개혁주의 정신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 줍니다. 느헤미야의 개혁의 내용을 보면 세상 누룩의 제거, 성전의 회복, 십일조, 안식일, 믿음의 결혼 입니다. 특별히 새로운 것입니까? 아주 신앙의 기본적인 것입니다. 그러나 또 무너지기 쉬운 것입니다. 거룩한 성 예루살렘에 이 신앙의 본질이 변질되었습니다. 느헤미야는 지켜 볼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개혁을 단행합니다.  

1절을 보십시오. ”그 날에 모세의 책을 낭독하여 백성에게 들렸는데 그 책에 기록하기를 암몬 사람과 모압 사람은 영영히 하나님의 회에 들어오지 못하리니”| 모압과 암몬의 롯의 후예들입니다. 그들은 소돔과 고모라 땅에서 하나님을 잊고, 물질과 육신주의에 깊이 빠지고, 인간의 기본적인 윤리조차 저버린 롯과 롯의 딸들의 후예입니다. 그들은 이내 곧 우상숭배의 족속이 되었고, 그모스, 몰렉등 사탄적인 우상들을 섬겼습니다. 이스라엘이 이집트에서 나올 때 이들은 발람을 고용해 오히려 이스라엘을 저주하려 고 했습니다. 민수기에선 모압 여인들은 이스라엘을 음행으로 빠뜨리고 심판 받게 하는 모습이 나옵니다. 이스라엘 총회속의 모압과 암몬은 신앙공동체에 섞여 있는 육신주의 쾌락중의의 누룩을 말합니다. 느헤미야는 총회가운데 이들을 분리하여 단절 합니다.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함께 멍에를 질 수 없고, 빛과 어두움이 함께 사귈 수 없고, 하나님의 총회에 물질주의 육신주의 세력이 공존할 수 없습니다. 분리하고 단절해야 합니다. 지금 교회 안에 얼마나 많이 들어와 있는 지 모릅니다. 교회인지 세상 모임인지 모를 정도로 세상가치관과 똑같이 행하는 것이 많습니다. 이 세상 누룩이 어떻게 공동체를 파괴하는 가 성경은 말해줍니다. 4절에서 9절을 보십시오. 느헤미야의 부재 중에 성전에서 이상한 일이 일어납니다. 대제사장 엘리야십이 암몬의 두목 격되는 도비야와 친분이 있었습니다. 그에게 하나님의 전 뜰에서 큰 방을 내어 주었습니다. 도비야는 산발랏과 함께 성전건축을 방해한 자였습니다. 원수 같은 자입니다. 그러나 세상에선 영향력이 있지만, 영성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그를 엘리야십은 떠 받들었습니다. 누가 봐도 이건 직권남용이며, 잘못된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무도 그에게 언급하지 않습니다. 느헤미야가 예루살렘에 가서 보고야 이 일을 알았습니다. 이 뿐 아닙니다.  리더의 세속적인 모습에 민장들도 직분을 소홀이 여겨 레위인 들에게 받을 몫을 주지 않았습니다. 전임사역자인 레위인들은 먹고 살기 위해 다시 각자 자기 밭으로 도망 하였습니다. 한 리더의 죄악된 행동이 전체 공동체에 엄청난 영향력을 끼치고 신앙공동체의 모습이 파괴되었습니다.

이때는 성벽 회복 후 12 년이 지난 후 였습니다. 10여년 지나자 사람들이 처음의 감사와 감격을 잃었습니다. 이를 깨워주고 개혁해야 할 리더들도 그냥 현실에 안주하고 살았습니다. 변절 되었습니다. 교회가 교회답기 위해서는 교회의 본질을 지켜야 합니다. 리더가 헌신하는 모습, 리더가 먼저 정결 하는 모습, 양들이 이 모습을 보고 본받는 것, 그리고 말씀과 찬양과 기쁨의 예배가 있어야 합니다. 예루살렘에 이런 모습이 다 없어 졌습니다. 그럼에도 아무도 이를 해결하고자 나서는 개혁자가 없었습니다. 이때 느헤 미야가 다시 나섰습니다. 그는 리더들인 민장들을 꾸짖고, 충직한 자를 다시 세웠 습니다. 느헤미야가 분명한 방향을 가지고 개혁을 단행하자, 공동체는 회복되고, 유다는 다시 새 포도주와 기름의 십일조로 드려 곳간이 채워 졌습니다.

15절에서 22절은 안식일에 대한 개혁입니다. 안식일은 하나님께서 특별하게 구별하셔서 거룩하게 하신 날입니다. 우리가 세상일에 분주한 맘을 내려 놓고 하나님을 예배하고, 교제함으로 영혼에 쉼과 은혜의 양식을 주는 우리를 위한 하나님의 은총 입니다. 그러나 하나님보다 물질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어떤 유다인이 포도주 장사를 하고, 어떤 두로 사람이 물고기 물건 장사를 했습니다. 서서히 장사꾼이 늘어나고, 새로 번성하려는 예루살렘은 장사꾼들의 소리로 가득하고, 안식일에도 거래와 유흥이 뒤따랐습니다. 느헤미야는 안식일이 거룩한 성 예루살렘에서 범해지는 것에 분노를 느끼며 귀인들을 꾸짖고, 성문에서 자면서까지 물건을 파려는 자들을 금하고, 레위인들로 몸을 정결케 하고 성문을 지켜 안식일을 거룩하게 구별하도록 하였습니다. 주님이 성전에서 장사하는 자를 좇았듯이 느헤미야도 끝까지 안식일에 장사하는 자들을 끝까지 경고하여 좇아 내어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도록 개혁합니다.

23절 이후는 믿음의 결혼에 대한 개혁역사 입니다. 인생에서 주님을 만나는 것 다음으로 중요한 것이 믿음의 동역자를 만나는 것입니다. 가정은 하나님 세우신 최초의 신앙 공동체입니다. 교회보다 이전에 세우신 것이 가정입니다. 가정을 세우는 결혼은 정말 믿음으로 준비하고 해야 합니다. 그런데 유다 사람들이 이방 여인 아스돗과 암몬과 모압여인을 취하여 가정을 이루었습니다. 결혼할 때는 지금은 이 사람이 하나님 을 모르지만 내가 룻과 같은 믿음의 여인으로 변화시킬 겁니다 생각하고 결혼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곧 문제가 생겼습니다. 보통 아빠들은 말을 잘 안 하는데 그러다 보니 2세들이 모국어도 잊어버리고 아스닷 방언만 하고 있었습니다. 말을 못한다는 것은 민족의 정체성을 잃어버리는 것이고, 말을 모르니 율법을 가르칠 수도 없었습니다. 2세들은 찬송보다는 아스돗의 가요를 부르며, 모압, 암몬 사람처럼 되어버렸습니다. 느헤미야는 이들의 뺨을 때리고 머리털을 뽑으면서까지 책망했습니다. 좀 과격합니다. 니들이 맞아야 정신차리겠니, 제발 정신차려 했습니다. 나라도 잃은 처지에 2세들마저 이방에 동화된다면 그들에게 아무 희망이 없었습니다. 우리는 정말 믿음의 결혼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여인들의 아름다움은 꺼풀과 같은 것입니다. 자매의 진정한 아름다움을 보는 눈을 미혼 형제들에게 주시길, 또 우리 가운데 리브가, 마리아 같은 믿음의 자매님들을 많이 주시길 기도합니다. 기혼자들도 결혼생활에 개혁이 필요합니다. 제가 개혁은 새롭게 바꾸는 것이 아니라 처음으로 본질로 회복이라고 말했습니다. 첫 마음 첫사랑을 회복해야 합니다. 부족한 저를 받아주셔서 감사합니다. 라는 마음으로 항상 자기보다 동역자를 낫게 여겨야 합니다. 한 몸으로 여기고 사랑해야 합니다. 아! 믿음의 결혼에는 비밀이 너무 많습니다. 비밀이기 때문에 더 이상 말하지 않겠습니다. 또한 자녀를 믿음으로 양육해야 합니다. 이제는 뺨을 때리고 머리털을 뽑으면 안됩니다. 그러나2세를 볼 때 그 정도의 안타까움과 심정이 있어야 합니다. 2세는 가정과 공동체의 희망입니다. 2세에게 믿음의 계승역사가 없다면, 희망이 없습니다. 2세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겨주신 정말 귀한 양으로 섬겨야 합니다. 그리고 그들에 말씀을 가르치고, 신앙을 계승해야 합니다.

느헤미야가 중단 없는 개혁을 추진 하다 보니 적이 생기고 비난이 많았습니다. 사실 개혁에는 아픔이 따릅니다. 상처를 들어내고 하는 데 아프지 않겠습니까? 기존의 기득권자들이 반발하지 않겠습니까, 너나 잘해 소리도 듣지 않겠습니까? 느헤미야는 이 가운데 하나님의 도우심과 인정을 바랍니다. 느헤미야는 하나의 개혁을 추진하면 꼭 기도합니다. 나를 기억하옵소서, 나의 행한 선한 일을 도말 하지 마옵소서, 이 일도 기억 하옵시고 나를 아끼시옵소서, 나를 기억하사 복을 주옵소서. 하나님의 도우심이 없으면 할 수 없기에, 사람의 인정을 생각하면 어렵기에 하나님의 인정을 바라며 때마다 기도로 개혁을 이룹니다. 개혁의 주체는 하나님이시며 이루시는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오늘 말씀에서 느헤미야의 개혁의 소망은 성벽과 예루살렘의 재건뿐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 중심, 성경중심, 교회중심의 신앙공동체였습니다. 리더들과 자원하는 자들과 부르심을 받은 자들이 이 비전을 함께 품고 함께 했습니다. 첫 결실로 성벽이 재건되고 그들은 봉헌예배를 드립니다. 우리는 이 모습을 통해 정결함과 말씀과 찬송 기쁨이 넘치는 예배의 본 모습을 보았습니다. 또한 마지막 장을 개혁이란 1회 적인 사건이 아닌 신앙의 본질을 지키기 위해 신앙인의 삶에 지속적으로 가져야 하는 스피릿임을 배웠습니다. 개혁자 느헤미야! 이제 개혁자 000로 살기를 기도합니다. 우리 모임이 안주하고 정체되지 않고, 늘 개혁을 추구하는 살아있는 아름다운 공동체로 계승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0
3500
번호     글 제 목  작성자 작성일 조회
627 출애굽기 [2009년출애굽기제14강] 내가 거할 성소를 지으라 -권영진 관리자 2009-07-12 2734
626 누가복음 [2011년 누가복음 제30강] 영생을 얻는 길 관리자 2011-11-13 2728
625 출애굽기 [2009년출애굽기제2강] 왕자에서 나그네로 관리자 2009-04-19 2728
624 출애굽기 [2009년출애굽기제10강] 내 말을 잘 듣고 지키라 관리자 2009-06-14 2724
623 느헤미야 [2011년 제자수양회 제4강]개혁자 느헤미야- 진요셉 리스닝 2011-06-13 2717
622 마가복음 [2012년 마가복음 제22강] 언약의 피 관리자 2012-08-19 2712
621 로마서 [2013년 로마서 제16강] 빛의 갑옷을 입자 관리자 2013-03-10 2711
620 시편 2010년 신입생 바이블 아카데미 4강 리스닝 2010-04-01 2709
619 로마서 [2010신년말씀제1강]복음은 하나님의 능력-서홍일 휴화산 2010-01-14 2704
618 말라기 [2016년 말라기 제4강] 공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관리자 2016-02-21 2703
617 누가복음 [2011년 누가복음 제10강]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관리자 2011-05-22 2702
616 요한복음 [2010 요한복음7강]오병이어를 축사하신 예수님 리스닝 2010-04-18 2701
615 마가복음 [2010년 가을제자수양회 주제1강] 열둘을 세우신 예수님 관리자 2010-10-31 2697
614 야고보서 [2010년야고보서제2강]참된 믿음 리스닝 2010-08-15 2697
613 마가복음 [2012년 마가복음 제12강] 주는 그리스도 관리자 2012-06-03 2696
612 요한계시록 [2009년요한계시록제10강]여자와 용 관리자 2009-11-15 2695
611 출애굽기 [2009년출애굽기제15강] 영화롭고 아름다운 제사장 관리자 2009-07-19 2694
610 로마서 [2009신년말씀]이방인을 제물로-권영진 관리자 2009-01-04 2692
609 마태복음 [2009년마태복음제41강]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관리자 2009-03-01 2688
608 이사야 [2010년 이사야서 제4강]포도원의 노래 리스닝 2010-10-03 2685
12345678910,,,39
서울 동대문구 이문2동 264-231
Tel:070-7119-3521,02-968-4586
Fax:02-965-8594
서제임스목자님메일:Suhjt@hitel.net
[UBF한국본부] [유럽UBF] [UBF국제본부] [UBF TV] [시카고UBF] [Mother Barry's Homepage]
[뉴욕UBF] [워싱턴UBF] [노스웨스턴UBF] [콜롬비아UBF] [코스타리카UBF] [프랑크푸르트UBF]
[키에프UBF] [상파울루UB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