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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nday Worship Message
주일예배메시지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1-11-13 (일) 13:54
분 류 누가복음
첨부#1 2011년_누가복음_30강-1.hwp (26KB) (Down: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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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누가복음 제30강] 영생을 얻는 길
2011년 누가복음 제30강

영생을 얻는 길

말씀: 누가복음 18:18-43
요절: 누가복음 18:22 “예수께서 이 말을 들으시고 이르시되 네게 아직도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네게 보화가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하시니”

   영생은 무엇이며 이를 어떻게 얻을 수 있습니까? 영생은 신앙생활의 궁극적인 목표요 방향입니다. 그런데 신앙생활 하지만 영생에 대한 관심이 없어서 영생을 얻는 길을 모른 채 형식적인 신앙생활에 머물러 있기도 합니다. 이 시간 성령께서 우리에게 영생을 얻는 길을 알게 하사 진정으로 승리의 인생을 사는 자들이 되게 하시기를 기도합니다.

Ⅰ.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18-30)
  어떤 관리가 예수님께 나아와 심각하게 질문하였습니다. “선한 선생님이여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이는 거의 탄식이었습니다. 관원은 최고 의결기관인 산헤드린 공회원이었고, 마태복음을 보면 그는 청년이라 했습니다.(마19:20) 그는 청년 시절에 벌써 고시에 합격하고 공회원이 되어 사회적인 지위와 명성과 부를 얻었습니다. 이뿐만 아니라 어려서부터 율법을 다 지키는 열성적인 신앙생활을 하며 인생을 진지하게 사는 자였습니다. 이 정도면 TV 인간승리의 성공 사례로 나올만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더 이상 부족한 것이 없어 보입니다. 그런데도 그가 예수님께 영생에 대해 질문하는 것을 보면 그의 초인적인 노력에도 영생은 얻지 못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영생’은 단지 시간적으로 영원히 사는 것이 아닙니다. 영생은 구원을 통해 내면에 기쁨과 참 만족과 행복을 누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는 세상의 모든 것을 얻었고 또한 율법대로 선한 생활을 하였지만 그의 마음은 참된 기쁨과 행복과 구원의 확신이 없었습니다. 왠지 모를 죄의식과 허무와 불안과 두려움이 가득하였습니다. 사람이 한번 죽는 것은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습니다. 이 청년 관원은 젊은 나이였지만 언젠가는 자기도 죽고 심판 받을 존재라는 사실 앞에 그가 이제껏 얻은 부와 권세와 명예가 아무 소용이 없고 영생을 얻지 못한다면 모든 것이 헛되고 헛될 뿐임을 느꼈습니다. 그에게 영생은 반드시 해결되어야 할 절대적인 인생문제였습니다. 마침 그는 심오한 진리의 말씀을 가르치시는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만사를 제쳐놓고 예수님께 나와 물었습니다. “선한 선생님이여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세상에서 모든 것을 다 얻은 그가 어찌하든지 영생을 얻고자 하는 것을 볼 때 사람이 영생을 얻지 않고서는 참 만족이 없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먹고사는 현실문제에 얽매어 영생에 대해서는 관심을 갖지 못합니다. 영생을 얻지 못한 인생, 이는 한 가지 부족한 인생이 아니라 언젠가는 영원한 불 못에 들어갈 실패한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젊은 청년이 영생에 대해 진지하게 묻는 것을 보시고 그를 사랑하사 영생을 얻는 길을 가르쳐주고자 하셨습니다. 19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어찌하여 나를 선하다 일컫느냐 하나님 한 분 외에는 선한 이가 없느니라” 예수님은 그가 예수님을 선한 선생님이라 부르는 것을 용납지 않으시고 하나님 한 분 외에는 선한 이가 없다고 못 박으셨습니다. 이는 그의 잘 못된 선의 개념을 바로 잡아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그가 예수님을 선한 선생님이라고 부른 것이나, 선한 일을 해야 영생을 얻을 수 있다고 여기는 것을 볼 때 그의 선의 개념은 다분히 상대적이고 도덕적인 차원에 있었습니다. 그는 인간의 노력의 대가로 영생을 얻을 것으로 기대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자기 의가 강하고 자신을 선하다고 생각하고 선한 행위로 구원받고자 하였습니다. 그러나 정말 그럴까요? 타락한 인간은 아무리 노력해도 절대 선에 도달할 수 없습니다. 아담의 범죄 후 인간의 본성이 부패해졌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여 하나님의 영광에 이를 수 없음과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선언합니다.(롬3:23) 예수님은 하나님 외에는 선한 이가 없다고 하심으로써 하나님만이 절대 선의 기준이 되시고 하나님이 제시하시는 선한 삶을 배워야 함을 깨우치셨습니다.
  예수님은 어릴 때부터 율법을 지켜온 이 사람도 행위로는 영생을 얻을 수 없음을 깨우치기 위해 그가 잘 알고 있는 계명에 대해 언급하셨습니다. “네가 계명을 아노니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거짓 증언하지 말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였느니라”(20) 이 계명들은 10계명 중 이웃에 대한 계명인데 이 청년은 “내가 어려서부터 다 지키었나이다” 자신만만하게 대답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에게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음을 지적하셨습니다. 22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이 말을 들으시고 이르시되 네게 아직도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네게 보화가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하시니” 예수님은 그가 모든 것을 가졌고 모든 것을 행했지만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다고 하십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첫째로, 계명의 근본정신을 지키지 못하였습니다. 이 부자 청년은 영생을 얻기 위해 선한 행위를 더 해야 할 것으로 여겼고 예수님은 그가 기본적으로 계명을 지켜야 함을 지적하셨습니다. 이는 그가 계명을 안 지켰음을 말해줍니다. 그는 문자적으로 계명을 지켰지만 그 근본정신이 이웃 사랑임을 몰랐습니다. 이웃에 대한 계명은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는 정신에 기초한 것입니다.(막12:31) 그는 ‘...하지 말라’는 계명에 기초하여 소극적으로 폐 안 끼치고 거짓말 하지 않고 욕심내지 않고 양심적으로 살고자 노력하며 부모에 대한 예의를 갖춰 율법을 지키기 위해 투쟁했지만 어디까지나 자신을 지키기 위한 투쟁에 불과하였습니다. 이런 소극적인 삶은 참된 만족과 행복을 주지 못합니다. 더구나 율법을 지켰다는 자기 의로 인해 이웃을 무시하고 정죄합니다. 신앙생활은 남에게 폐 안 끼치고 자기를 잘 지키는 소극적이고 자기 방어적인 삶이 아닙니다. 적극적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나 자신같이 사랑하고 섬기는 삶입니다. 실제로 우리도 이 부자 청년과 같이 계명을 지키기에 급급한 소극적인 삶을 살 때가 많습니다. 이웃에게 폐 안 끼치고 또 나 자신은 이웃으로부터 악영향 받지 않기 위해 애쓰기 때문에 사랑의 관계성을 가질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이 부자 청년이 가진 것을 다 팔아 이웃에게 봉사하라고 하심으로 적극적으로 사랑하라는 계명에 순종하도록 도전하셨습니다. 주님은 우리에게도 가진 것을 다 팔아 이웃에게 봉사하고 적극적으로 사랑하라고 하십니다.
둘째로, 분명한 영적 가치관이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그가 가진 것 모든 것을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면 하늘에서 보화가 있으리라 약속하셨습니다. 주님은 영생을 하늘 보화라 하심으로 그에게 참된 가치관을 심으신 것입니다. ‘무엇을 보화로 삼느냐’가 곧 그의 가치관입니다. 이 사람은 세상 재물을 보화로 삼았습니다. 겉으로는 그는 부족함이 없었지만 한 가지 부족한 것은 세상 재물을 보화로 여기고 이에 소망을 두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젊은 날에 성실하게 일하여 많은 재물을 모았습니다. 그는 율법을 잘 알았기에 가난한 이웃을 위해 구제헌금도 하고, 열심히 봉사해야 하는 것도 분명 알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재물의 힘을 맛볼수록 더 많은 재물을 소망으로 삼았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그가 세상 보화에 대한 소망을 끊고 하늘 보화에 소망을 갖는 진정한 하나님의 백성이 되도록 도우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왜 십일조를 바치라 하지 않으시고 다 팔라고 하셨을까요? 그가 붙들고 있는 세상 보화에 대한 집착과 미련을 온전히 버려야 하늘 보화를 위해 투자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 보화는 언젠가는 썩고 쇠하고 더러워지고 맙니다. 이런 세상 보화에 매달려 살 때 이 땅에서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삶을 살 수 없습니다. 심은 대로 거두는 것이 원칙입니다. 그가 가진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는 것은 그에게 거지가 되라는 것이 아닙니다. 구체적으로 세상 보화를 수단으로 삼아 이를 하나님을 섬기고 이웃을 사랑하고 봉사하는데 쓸 때 하나님이 하늘 보화 곧 영생을 선물로 주시는 것입니다. 영생은 믿음으로 얻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예수님은 세상 보화를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고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하심으로 예수님 자신이 하늘 보화가 되심을 가르쳐주셨습니다. 예수님 안에 모든 보화가 있습니다. 그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추어져 있고 구원과 영생과 하나님 나라에 이르는 진리의 길이 있습니다.(골로새서 2:3) 사도 바울은 예수님을 알기 전 세상 학문과 좋은 가문과 율법의 의를 보화로 삼았습니다. 그러나 그가 예수님을 알게 되자 예수님이야말로 참된 보화임을 발견하고 이 예수님을 얻고자 그가 자랑하던 세상 보화를 아낌없이 팔았습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13:44절에서 천국보화 비유를 말씀해주셨습니다. 어떤 사람이 밭을 갈다가 보화를 발견하였습니다. 그는 즉시 집으로 돌아와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샀습니다. 그는 이 밭에 보화가 감추어져 있는 것을 알았기에 자기 소유를 다 파는 것을 조금도 아까워하지 않았습니다. 이처럼 참 보화이신 예수님을 발견한 사람은 세상 보화를 파는 것을 아까워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이 청년에게 하늘 보화이신 예수님을 따르도록 하셨습니다. 이는 부자 청년에게 임한 구원과 영생을 얻는 기회였습니다. 그러나 부자 청년의 반응이 어떠합니까? 23절을 보십시오. “그 사람이 큰 부자이므로 이 말씀을 듣고 심히 근심하더라” 그는 예수님의 말씀이 너무 부담스러워 도저히 영접할 수 없었습니다. 그는 영생을 얻고 싶었지만 재물을 다 잃으면서까지 영생을 얻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그는 하늘 보화도 얻고 또 세상 보화도 놓치고 싶지 않는 욕심쟁이었습니다. 그는 재물과 영생 사이에서 심히 근심하다가 영생을 배척하는 어리석은 자였습니다. 이 부자 청년은 오늘날 캠퍼스 지성인의 모습입니다. 사람들이 성경공부는 하지만 영생의 길을 알게 되면 기뻐하기보다 세상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해 근심하며 떠나갑니다. 사람들은 한번 잡은 재물, 명예, 권력을 손에 움켜쥐고 있어야 안전하고 행복해질 것으로 생각합니다.
  24,25절을 보십시오. 부자 청년이 재물 때문에 심히 근심하며 물러가는 것을 보시고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재물이 있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예수님은 그를 보시고 슬픈 결말을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이 그를 보실 때 얼마나 안타까웠을까요? 더구나 열심히 인생을 산 청년이 막상 영생의 복을 놓치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것이 얼마나 가슴 아픈 일이었을까요? 재물을 붙들고 있는 한 영생을 얻을 수 없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재물은 우상이 되어 이 우상이 사람을 자기 종으로 삼기 때문입니다. 재물이 많을수록 재물은 힘을 발휘하여 사람을 세속적이고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사람으로 만듭니다. 재물에 대한 소망이 하나님 나라에 대한 소망을 빼앗아버립니다. 지금은 우리 모두가 물질주의 세력에 물들어 살고 있기 때문에 이 부자 청년에게 주신 말씀은 바로 우리 각자에게 주시는 말씀인줄 믿습니다. 세상 보화를 붙잡을 것인가? 하늘 보화를 얻을 것인가? 날마다 우리는 선택해야 합니다. 말로만, 머리로만 하늘 보화를 얻고자 하는 사람은 바로 이 부자 청년과 같은 사람입니다. 우리에게 영적 가치관을 가지고 결단하고 영생을 추구하는 복된 자들이 되게 하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들은 제자들은 깜짝 놀라 “...그런즉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나이까?”하며 절망적인 신음소리를 내었습니다. 제자들도 재물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졌기에 예수님의 말씀은 충격적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무엇이라 말씀하십니까? 27절을 보십시오. “이르시되 무릇 사람이 할 수 없는 것을 하나님은 하실 수 있느니라” 이 말씀은 구원은 사람의 노력 여하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께 속한 것임을 가르쳐주신 것입니다. 구원은 부자나 가난한 자나 상관없이 예수님을 믿고 따르면 하나님이 선물로 주십니다. 이 말씀에 힘을 얻은 베드로가 의기양양하게 말했습니다. “베드로가 여짜오되 보옵소서 우리가 우리의 것을 다 버리고 주를 따랐나이다”(28) 자기들은 부자 청년과 달리 자기는 주님을 따르기 위해 많은 것을 희생했으니 이에 따르는 상급을 기대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주님을 위해 산 자들이 받을 상급이 무엇인지 가르쳐주셨습니다.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집이나 아내나 형제나 부모나 자녀를 버린 자는 현세에 여러 배를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 하시니라”(29,30) 예수님은 먼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버리도록 격려하셨습니다. 하나님 나라에 소망을 두고 하나님 나라를 위해 버린 자는 현세에서도 여러 배를 더 받고 내세에 영생이 약속되어 있습니다. 이 얼마나 복된 약속입니까? 베드로는 모든 것을 버린 것이 아픔이요 손해로 생각하였지만 실제로 얼마나 큰 복을 받는 인생이 된 것인지 몰랐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버린 자는 상상할 수 없는 큰 상급을 받는다는 믿음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위해 버리는 삶이 바로 큰 복을 받는 비결이요 영광스러운 승리의 인생을 사는 비결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삶이 손해 보는 인생이라는 계산은 틀린 계산입니다. 이는 하나님을 믿지 못하고 하나님의 약속을 모르는 자입니다. 우리에게 온전한 믿음과 확신을 주셔서 과감하게 세상 보화를 다 팔아 예수님 안에 있는 영생을 사는 자들이 되게 하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Ⅱ.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31-43)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들을 데리고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며 말씀하셨습니다. “...보라 우리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노니 선지자들을 통하여 기록된 모든 것이 인자에게 응하리라 인자가 이방인들에게 넘겨져 희롱을 당하고 능욕을 당하고 침 뱉음을 당하겠으며 그들은 채찍질하고 그를 죽일 것이나 그는 삼일 만에 살아나리라”(31-33) 예수님의 고난과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은 성경에 예언된 복음의 비밀입니다. 선지자들을 통하여 기록되었다는 것은 하나님이 미리 정하신 필연적인 구원의 길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복음의 비밀을 반복해서 제자들에게 심으셨습니다.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은 하나님이 정하신 유일한 구원과 영생의 길입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이스라엘의 회복이라는 인간적인 꿈과 이상 때문에 영적인 맹인이 되어 주님의 말씀을 깨닫지 못했습니다.(34) 영생을 얻는데 제자들도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지상 메시아 왕국에 대한 강한 인간적인 꿈이었습니다. 그래서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을 영접하지 못하고 그 의미를 알지 못했습니다.
  제자들과는 대조적으로 육신의 눈이 감긴 맹인은 어떠합니까? 35절을 보십시오. 예수님이 여리고에 가까이 오셨을 때 한 맹인이 이 소식을 듣고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그는 비록 육신의 눈은 멀었지만 예수님이 약속된 메시아이심을 믿고 주님께 긍휼을 구했습니다. 그의 외침은 절실하였고 주님께 간절히 구하는 기도였습니다. 그러나 주위 사람들은 왜 이렇게 시끄럽게 하느냐 잠잠하라고 핀잔을 주었습니다. 맹인은 기도를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더욱 크게 소리를 질렀습니다.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그는 믿음으로 사람들이 막는 장애물을 극복하고 주님을 향하여 전진하였습니다. 그는 실로 믿음의 용사였습니다. 그의 믿음의 간구가 예수님께 상달되었습니다. 예수님은 바쁜 여정 가운데서도 한 영혼의 절실히 울부짖는 기도를 들으시고 그의 문제를 해결해주시고자 발걸음을 멈추셨습니다. 그리고 그를 가까이 부르셨습니다.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맹인에게 왜 이런 질문을 하셨을까요? 이는 그에게 믿음이 있는가 보시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는 이 절호의 기회에 물질과 평생 먹고 살 수 있는 안정된 직장을 구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주여 보기를 원하나이다!” 간구하였습니다. 이는 예수님이 맹인의 눈을 뜨게 하실 수 있는 메시아로 믿었음을 말해줍니다. 예수님은 그의 믿음을 보시고 “보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선포하셨습니다. 그러자 그가 곧 보게 되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주님을 따르게 되었습니다. 그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찬양하였습니다. 그는 비참한 맹인 거지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복의 근원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이 맹인으로부터 배울 점이 무엇입니까? 그는 비록 맹인이었지만 영적으로는 보아야 할 것을 볼 줄 아는 자였고 무엇을 구해야 할지를 아는 자였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다윗의 자손 메시아로 믿었습니다. 믿음이 있을 때 구하는 것도 분명하였고 주위의 방해에도 절망치 않고 기도의 응답 받을 때까지 끝까지 간구하여 마침내 눈을 뜨고 구원도 얻었습니다. 영생을 소유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도 예수님께 눈을 뜨게 해달라고 부르짖는 기도를 해야 하겠습니다. 영적인 눈을 떠서 하나님이 보여주시는 것을 보고, 신령한 하나님 나라와 영생과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해 이루시고자 하시는 큰 뜻을 볼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눈에 보이는 세상 것들만 바라보며 자기의 작은 꿈을 붙들고 세상 보화에 매여 어리석은 인생을 살지 않고 하나님의 크신 뜻을 바라보고 이를 이루어드리는 복된 삶을 사는 자들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우리가 얼마나 세상 보화에 눈이 가려져 있을 때가 많습니까? 물질주의, 세속주의, 육신주의 세력에 눈이 가려지는 우리를 불쌍히 여겨주셔서 눈을 뜨게 해주시며 영생을 누리고 구원을 누리게 하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결론적으로, 우리가 무엇을 추구하며 살아야 합니까? 이는 썩지 않고 쇠하지 않고 더럽지 않는 하늘 보화 곧 영생입니다. 영생을 얻지 못한 인생이야말로 가장 비참한 인생입니다. 영생이 없으면 무엇을 해도 만족과 기쁨과 자유함과 평안이 없습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세상 보화를 팔아 하늘 보화를 사는 복된 자들이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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