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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nday Worship Message
주일예배메시지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2-03-25 (일) 12:32
분 류 마가복음
첨부#1 2012마가복음_3강_(홍일기).hwp (52KB) (Down:1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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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마가복음 제3강]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2012년 마가복음 제 3 강                                                                 홍일기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말씀/ 마가복음 2:1-22
요절/ 마가복음 2:22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넣는 자가 없나니 만일 그렇게 하면 새 포도주가 부대를 터뜨려 포도주와 부대를 버리게 되리라 오직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느니라 하시니라”

새로운 메시지를 원하십니까? 원하시는대로 오늘 말씀에는 '새로운(new)'이라는 말이 많이 나옵니다. 우리에게 정말 새로운 것은 새로운 일을 행하시는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은 세 가지 사건을 통해 이제껏 보지 못한 방식과 능력으로 도무지 보지 못한 새 일을 행하십니다. 그리고 저희가 새 사람이 되어 이 새 일에 동참하기를 원하십니다. 저희가 새 부대가 되어 새 포도주 되신 예수님을 영접하고 복음의 능력을 체험하는 새 봄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I. 죄사함의 권세자 예수님
예수님이 가버나움에 다시 들어가셨습니다. 집에 계시다는 소문을 들리자 많은 사람이 모여서 문 앞까지도 들어설 자리가 없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도를 말씀하셨습니다. 이 때 사람들이 한 중풍병자를 네 사람에게 메워 가지고 예수님께로 왔습니다. 그러나 무리들 때문에 예수님께 데려갈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계신 곳의 지붕을 뜯어 구멍을 내고 중풍병자가 누운 상을 달아 내렸습니다. 모임의 분위기가 흐트러지고 예수님의 말씀이 중단되었습니다. 이 때 사람들이 느꼈을 심정은 한마디로 “헐~”이었습니다. 어찌 이런 예의도 없고, 상식도 없고, 무법천지에나 있을 법한 일이 일어난단 말입니까?
5절을 보십시오. 다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예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이르시되 작은 자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시니” 예수님은 그들의 믿음을 보셨습니다. 그들의 믿음은 어떤 믿음입니까? 첫째로, 예수님은 고쳐주실 수 있다는 믿음입니다. 예수님께만 가면 나을 수 있다는 믿음이 이런 일을 시도할 수 있게 하였습니다. 둘째, 행동하는 믿음입니다. 믿음은 행동하는 것입니다. 찾고 구하고 두드리는 것입니다. 길이 없다고 생각하면 없습니다. 그러나 있다고 생각하면 지붕에라도 있는 것입니다. 마가복음에는 이런 행동하는 믿음의 예가 많이 나옵니다. 혈루증 앓는 여인이 예수님께 다가와 옷에 손을 대었습니다. 율법의 장애물을 넘어 예수님께 나왔습니다. 예수님은 이 여인에게“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말씀하셨습니다. 맹인 거지 바디매오는 어떠합니까?“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힘써 소리 질렀습니다. 예수님은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하십니다. 이들의 믿음은 모두 가만히 앉아 있는 믿음이 아니라 예수님께 나아오는 믿음이었습니다. 창조적인 아이디어는 앉아서 계산하는데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믿음을 가지고 길을 찾는데서 나옵니다. 예수님 안에는 무한한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떤 장애물이라도 뛰어 넘어 예수님께로 나아가야 합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믿음을 귀하게 여기시고 “작은 자야, my son”하며 영접하여 주십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네 병이 나았다 하지 않으십니다. “네 죄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십니다. 예수님은 그의 근본적인 문제가 죄 문제임을 아시고 그의 죄를 사하여 주십니다. 이는 그가 몸이 건강한 사회 구성원이 되기보다 거듭나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기를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7절을 보십시오. “이 사람이 어찌 이렇게 말하는가 신성 모독이로다 오직 하나님 한 분 외에는 누가 능히 죄를 사하겠느냐” 서기관들의 생각이 맞습니다. 인간은 누구도 죄를 사할 수 없습니다. 죄사함의 주권은 오직 하나님께만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이신 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생각을 곧 중심에 아셨습니다. 예수님이 누구신가에는 관심이 없고 그들의 율법적인 낡은 사고방식의 틀에서 예수님의 말씀을 판단하며 반발하고 있는 것을 아셨습니다. 이에 예수님은 그들에게 직접적으로 도전하십니다.
9절을 보십시오. “중풍병자에게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는 말과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걸어가라 하는 말 중에서 어느 것이 쉽겠느냐” 어느 것이 쉽겠습니까? 말로만 하면 죄사함을 받았느니라 하는 말이 쉽습니다. 그러나 이를 증명하려면 중풍병자를 낫게 하는 능력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결국 어느 것도 사람의 힘으로는 할 수 없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줄을 알게 하고자 중풍병자에게 말씀하십니다. 11절을 보십시오. “내가 네게 이르노니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하시니” 이 예수님의 말씀에 중풍병자는 어떻게 반응합니까? 서기관들처럼 ‘어찌 이렇게 말하는가? 내가 불구인데 어찌 일어나라고 하는가?’ 하지 않고 순종하였습니다. 이 때 마비가 풀리고 팔다리에 힘이 생겨 보란 듯이 일어나 자기 상을 가지고 모든 사람 앞에서 나갔습니다. 그가 순종함으로 예수님의 죄사함의 능력을 드러내는 증인이 되었습니다. 이를 본 무리들은 우리가 이런 일을 도무지 보지 못하였다하며 다 놀라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죄사함의 권세자 예수님은 누구도 보지 못한 새 일을 이루시는 영광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럼 예수님이 어떻게 죄사함의 권세자가 되시는 것입니까? 예수님은 10절에서 자신을 ‘인자’라고 표현하십니다. ‘인자’란 인간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을 의미합니다. ‘인자’ 예수님은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시기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마20:28). 인자는 많은 고난을 받고 버린 바 되어 죽임을 당하고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날 것이며 (막 8:31), 이로 말미암아 하나님께로부터 권세와 영광과 나라를 받고 모든 백성들의 섬김을 받게 될 것입니다 (단 7:13-14). 즉 인자 예수님은 복음을 완성하신 그리스도가 되십니다. 당시까지만 해도 죄사함은 죄를 범한 자가 제물을 가지고 성전에 가서 제사를 드리면 제사장을 통하여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예수님이 성전이시고 제물이시며 제사장이 되시고 죄사함을 선포하시는 하나님이 되십니다.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복잡한 제사 과정을 거치지 않고도 율법의 요구를 단 번에 만족시켜 죄사함 받게 됩니다. “네 죄사함을 받았느니라” 이 말씀은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낡은 율법의 시대는 끝이 나고 새로운 복음의 시대, 은혜의 시대가 열렸음을 알리는 선포의 말씀입니다.

II. 죄인을 부르러 오신 예수님
예수님께서 다시 바닷가에서 큰 무리를 가르치시고 또 지나가시다가 알패오의 아들 레위가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셨습니다. 그가 세관에 앉아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요? 과거를 후회하고 있었을까요? 아니면 사람들을 등쳐먹을 새로운 세목을 연구하고 있었을까요? 어찌되었든 사람들은 그가 세관에 앉아있는 것만으로 그를 죄인으로 규정하고 상종하지 않았습니다. 과거 행적으로 한 사람의 모든 것을 평가해 버린다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일입니까? 이런 세상에서 한 번 죄인은 영원한 죄인입니다. 소망이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세관에 앉아있는 레위를 다른 눈으로 보셨습니다. 그의 과거를 목자의 심정으로 보셨습니다. 그의 미래를 소망의 눈으로 보셨습니다. 이제까지의 잘못된 인생 방향을 예수님께로 향하게 하면 하나님 나라를 위해 위대한 일을 할 제자감으로 보셨습니다. 예수님은 그에게 “나를 따르라” 말씀 하십니다. 이는 과거의 삶이 어떠하였을지라도 이제부터는 예수님을 바라보며 예수님을 배우는 새로운 인생을 살도록 하시는 초청의 말씀입니다. 다른 사람이 아무리 흉을 볼지라도 예수님께서 보호하시며 키워주시겠다는 약속의 말씀입니다. 레위는 예수님의 부르심의 은혜가 크고 놀라워 공인세무사 자격증을 버려두고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15절을 보십시오. 그의 집에 앉아 잡수실 때에 많은 세리와 죄인들이 함께 와서 앉았습니다. 이는 그러한 사람들이 많이 있어서 예수님을 따랐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를 본 바리새인의 서기관들이 제자들에게 “어찌하여 세리 및 죄인들과 함께 먹는가” 하며 이를 문제 삼았습니다.
예수님께서 들으시고 그들에게 말씀하십니다. 17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들으시고 그들에게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예수님은 죄인들과 함께 하는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의인을 선발하러 오지 않으셨습니다. 죄인을 심판하러 오지도 않으셨습니다. 죄인을 부르러 오셨습니다. 영혼이 병든 죄인을 불러 치료하심으로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돌아오게 하는 영적 의사로 오셨습니다. 바리새인은 세리와 죄인을 정죄의 대상으로 여기고 격리하고 잘라버립니다. 율법이라는 낡고 어려운 방식으로는 그들을 치료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율법으로 치유함 받을 수 없다는 것은 바리새인도 마찬가지 입니다. 오히려 예수님 앞에서는 자신을 의인이라고 여기는 바리새인들이야말로 구원의 소망이 없는 중증 환자였습니다. 자신이 환자임을 인정하지 않고 스스로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죄인에 대한 목자의 심정과 긍휼, 희생, 사랑으로 죄인들을 치료하시는 영적 의사이십니다. 이 치료법은 율법의 틀에서는 생각할 수 없고 받아들일 수 없는, 그러나 근본적으로 완치가 가능한 새 치료법입니다. 세상에 의인은 없으며 예수님 외에는 의롭다 여김 받을 길도 없습니다. 죄인을 부르러 오신 예수님 앞에 나아와야 합니다. 예수님 앞에만 나오면 영접하여 주시고 친구되어 주시며 의롭게 하여 주십니다.

III.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새인들이 금식하고 있었습니다. 아마도 요한의 제자들은 회개와 경건을 위해, 바리새인들은 율법의 요구를 만족시키기 위해 금식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과 죄인들과 함께 잔치를 벌이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새인의 제자들은 금식하는데 어찌하여 당신의 제자들은 금식하지 아니하나이까?” 하며 항의하였습니다. 그들은 금식을 왜 하는지, 언제 해야 하는지 에는 관심이 없이 금식을 하는가, 안 하는가만을 보며 문제삼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혼인 집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을 때에 금식할 수 있느냐 신랑과 함께 있을 동안에는 금식할 수 없느니라 그러나 신랑을 빼앗길 날이 이르리니 그 날에는 금식할 것이니라” 말씀하십니다. 이제 신랑되신 예수님이 오셨으므로 혼인잔치가 시작되었습니다. 혼인잔치에서 금식하는 자는 없습니다. 잔치의 즐거움에 참여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함께 있는 동안은 죄사함의 은혜와 하나님 나라의 기쁨을 누리며 감사하고 찬양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신랑을 빼앗길 날이 올 것입니다. 그 때는 참으로 금식해야 합니다.
21절을 보십시오. “생베 조각을 낡은 옷에 붙이는 자가 없나니 만일 그렇게 하면 기운 새 것이 낡은 그것을 당기어 해어짐이 더하게 되느니라” 생베 조각을 낡은 옷에 붙여 놓으면 옷을 빨 때 기운 새 옷감이 줄면서 낡은 그것을 당기어 해어짐이 더하게 됩니다. 22절을 다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넣는 자가 없나니 만일 그렇게 하면 새 포도주가 부대를 터뜨려 포도주와 부대를 버리게 되리라 오직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느니라 하시니라.” 새 포도주는 발효와 숙성이 덜 된 포도주입니다. 발생하는 가스들로 인해 팽창하는 힘이 있습니다. 또한 묵은 포도주와 달리 새 포도주는 그 속에 단백질을 분해하는 효소들이 남아 있어서 가죽부대의 힘을 지탱하는 단백물질들을 파괴하여 부대를 약하게 합니다. 그래서 낡은 가죽부대는 새 포도주의 확장력을 감당하지 못하고 터져버리게 됩니다. 그러므로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부대에 넣는 자가 없습니다.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합니다.
우리는 세 가지 사건을 통해서 예수님이 참으로 새 포도주이심을 알 수 있습니다. 율법이라는  낡은 가죽부대적인 생각으로는 이해할 수 없고 받아들일 수 없는 새 일을 행하시는 분입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새 일을 하고자 하시는데 바리새인들이 "어찌하여?" 하면서 '왜 그렇게 하느냐, 근거가 뭐냐' 하며 사사건건 따지는 것을 볼 때 얼마나 답답하고 화가 나셨겠습니까? 저희는 새 부대가 되어 새 포도주 되신 예수님을 영접하기를 기도합니다.
새 부대가 된다는 것은 어떻게 하는 것입니까? 첫째로, 중풍병자처럼 예수님의 말씀의 능력을 믿고 순종하는 것입니다. 중풍병자는 ‘일어나 걸어가라’ 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에 단순히 순종해서 예수님이 도무지 보지 못한 새 일을 행하는데 주인공으로 쓰임 받았습니다. 둘째로, 예수님의 부르심을 영접하고 따르는 것입니다. 세리 레위가 예수님을 따랐을 때 성 마태가 되었습니다. 자기 만을 위해 살던 자가 사랑의 사도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따를 때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이 벗어지고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음 받은 새 사람이 됩니다 (엡 4:22-24). 셋째로, 죄인을 부르러 오신 예수님의 마음을 본받는 것입니다. 양들이 소망 없어 보인다고 판단하고 잘라버릴 것이 아니라 목자의 심정과 희생의 사랑, 헌신적인 섬김으로 병든 영혼을 치유하시는 예수님을 본받는 것입니다.
새 봄이 왔습니다. 새 포도주 되시는 예수님은 지금 역동적인 성령의 역사를 준비하시며 우리가 도무지 보지 못한 새 일을 계획하고 계십니다. 저희가 새 포도주 되신 예수님 앞에 나아가 죄사함 받고 예수님을 따름으로 새 인생 살기를 기도합니다. 저희가 구태의연하게 과거의 성공에 도취되거나 실패에 절망하지 않고 새 부대가 되어 새 포도주 예수님을 담는 자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새 포도주 예수님이 하시는 일에 쓰임 받기를 기도합니다. 우리를 통해 새 역사를 이루시는 예수님께 감사와 찬송을 돌려드립니다.

저는 새 학기 새롭게 교수가 되었고, 새 집으로 이사를 왔습니다. 동역자도 새 직장에 다니게 되었고 아이들도 새 학교와 새 유치원에 다니고 있습니다. 그런데 막상 복음역사를 대할 때에는 새로운 영적 소원이 생기지 않았습니다. 올 해라고 작년과 크게 달라 보이지 않았습니다. 신입생들을 열심히 만나보고 섬기고자 하는 열심이 생기지 않았습니다. 새로운 영혼에게 도전하여 관계성 맺는 것이 피곤하게 여겨지고 관계성 깊은 익숙한 양들이나 제대로 섬기고 싶었습니다. 새 일을 행하시는 예수님께 대한 기대와 믿음이 없는 것이 문제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하느니라” 말씀을 통해 제가 새 부대가 되어 함께 일하기 원하시는 예수님의 소망을 가르쳐 주십니다. 제가 낡은 마음, 안주하고자 하는 마음을 회개하고 믿음을 덧입어 새 부대가 되겠습니다. 날로 새로워져서 새 포도주 되신 예수님을 품고 복음이 전파되는데 사용되기를 기도합니다.

결론적으로, 새 포도주 예수님은 이제껏 누구도 도무지 못한 일을 행하십니다. 저희가 날로 새로와져서 새 부대가 되어 예수님의 새 역사에 동참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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