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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nday Worship Message
주일예배메시지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3-03-10 (일) 12:37
분 류 로마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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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로마서 제16강] 빛의 갑옷을 입자

2013년 로마서 제16강                                         고 영훈

빛의 갑옷을 입자

말씀 / 로마서 13:1-14
요절 / 로마서 13: 12 “ 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둠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
                 

  오늘 말씀은 말세의 때를 살아가는 우리들이 국가와 사회에 대해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하는지, 그리고 이웃에 대해 어떤 자세로 대해야 하는지 잘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이 죄악된 시대 가운데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않고 영적으로 깨어 있도록 권면하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우리 모두가 이 말세의 때에 경각심을 갖고 날마다 깨어 믿음의 선한 투쟁을 하므로 승리하는 인생 살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I. 권세들에게 복종하라(1-7)
  1절을 보십시오.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하라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바라” 여기서 ‘위에 있는 권세들’이란 백성들 위에서 통치하는 모든 권세를 뜻합니다. 바울은 신자들이 기본적으로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첫째로, 모든 권세는 하나님께로 났기 때문입니다. 모든 권세가 하나님께로 났다는 것은 하나님은 세상 모든 나라와 역사를 주관하시는 절대 주권자라는 것입니다. 골로새서 1:16을 보면 “만물이 그에게서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왕권들이나 주권들이나 통치자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말씀하므로 모든 세상 권세는 하나님께로부터 나왔음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세상을 바라볼 때 사람들이 권력 투쟁하거나 선거 운동을 잘하여 임의로 권력을 장악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지나온 역사를 면밀히 살펴보면 하나님께서 세상역사를 주관하고 계심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은 세울 자를 세우시고 폐할 자를 폐하시는 절대 주권자가 되십니다. 한 나라의 흥망성쇠도 하나님의 주권아래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교만하여 하나님을 배반하고 우상 숭배하였을 때 하나님께서는 앗수르, 바벨론, 헬라, 로마 등 주위 강대국들을 통해 징계하셨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심판의 막대기 역할을 하였던 앗수르, 바벨론, 로마와 같은 강대국들이 교만하였을 때 하나님은 다른 나라들을 통하여 멸망시키셨습니다. 이 시대의 미국도 과거 하나님의 뜻을 좇아 전 세계로 선교사를 내 보내고 제사장 나라 역할을 잘 했을 때는 하나님이 넘치는 복을 부어주사 강대국이 되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교만하여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잘 감당하지 못하고 죄악가운데 행하면 모든 복을 거두어 가실 것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을 바라볼 때 몇 몇 강대국의 지도자에 의해서 통치되어 지고 있다고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절대 주권대로 세상을 다스리고 계심을 믿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세상 권세자들에게 복종하는 것은 세상 사람들에게 복종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주권에 복종하는 것입니다.
둘째로, 양심을 따라 권세에 복종해야 합니다(2-7).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이 절대 주권가운데서 정하셨기 때문에 권세를 거스르는 자는 하나님의 명을 거스르는 것이 되어 심판을 받게 됩니다. 다스리는 자들은 하나님의 사역자가 되어 선을 행하는 자는 칭찬하고 악을 행하는 자는 징벌합니다. 그러므로 권세를 두려워 아니하려면 열심히 선을 행해야 합니다. 우리가 실생활에서 법을 어겨 악을 행할 때 두려운 마음이 듭니다. 시내에서 운전을 할 때 교통신호를 어긴 다음 경찰관을 만나면 너무나 두렵습니다. 이는 경험해 본 사람만이 압니다. 우리가 법을 어기고 죄를 짓게 되면 경찰이 두렵지만 법을 잘 지키고 적극적으로 선을 행하면 전혀 두렵지 않습니다. 5절을 보십시오. 다 같이 읽겠습니다. “그러므로 복종하지 아니할 수 없으니 진노 때문에 할 것이 아니라 양심을 따라 할 것이라” 우리가 권세에 복종하는 것이 벌 받지 않기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양심을 따라 해야 됨을 말해 줍니다. 세상 사람들은 법을 어기면 처벌을 받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복종합니다. 그러나 우리 믿는 자들은 하나님 앞에서 양심을 따라 복종해야 하는 것입니다. 특히 바울은 나라에 대한 세금문제를 예로 들어 말하고 있습니다. 6,7절을 보십시오. “너희가 조세를 바치는 것도 이로 말미암음이라 그들이 하나님의 일꾼이 되어 바로 이 일에 항상 힘쓰느니라 모든 자에게 줄 것을 주되 조세를 받을 자에게 조세를 바치고 관세를 받을 자에게 관세를 바치고 두려워 할 자를 두려워하며 존경할 자를 존경하라” 우리는 하늘나라 시민권자이지만 동시에 이 땅에서도 시민권을 가진 자들로서 이 땅에서도 해야 할 의무를 다해야 합니다. 우리에게는 이 땅의 국민으로서 4대 의무를 반드시 잘 지켜야 합니다. 납세의 의무, 병역의 의무, 교육의 의무, 근로의 의무입니다. 우리가 내는 세금으로 국가가 운영되기 때문에 탈세하려고 하지 말고 내야 할 세금은 꼬박꼬박 잘 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형제들은 군대 가는 것을 기피하지 말고 사명감을 가지고 가야 하겠습니다. 이렇게 우리 믿는 자들은 실생활에서 구체적으로 국민의 의무를 다함으로써 세상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력을 끼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더 나아가 우리가 권세자들을 비난하고 거스르고자 할 것이 아니라 그들을 존경하고 그들이 나라를 잘 다스리도록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권세자가 로마의 네로황제나 독일의 히틀러처럼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악독한 자들도 있습니다. 특히 권세자들이 신앙적인 박해를 가하거나 우상숭배를 강요하거나 주일성수를 못하게 하는 등 하나님과의 관계성을 파괴하는 행위를 할 때는 맹목적으로 복종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사도행전 5장에서 사도들이 성전 앞에 서서 담대하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이에 화가 난 제사장들과 이스라엘 족속의 원로들이 베드로와 사도들을 공회 앞에 세우며 말씀을 가르치지 말라고 엄포를 놓았습니다. 이때 베드로와 사도들이 사람보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니라 하며 그들의 명령에 복종하지 않았습니다.(행5:29). 출애굽기 1장에서도 애굽의 바로왕이 히브리 산파들에게 아들을 낳으면 죽이라고 명령하였습니다. 그러나 산파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애굽왕의 명령을 어기고 남자 아기들을 살렸습니다(출1:17). 다니엘서 3장에서도 느부갓네살 왕이 금신상을 만들어 누구든지 금신상에게 엎드려 절하지 아니하는 자는 즉시 맹렬히 타는 풀무불에 던져 넣으리라 명령하였습니다. 그러나 다니엘의 세 친구들은 풀무불에 들어갈 각오를 하고 왕의 명령을 어겨 금신상에게 절하지 않았습니다. 이들 모두는 하나님께 순종하기 위해서 권세자들에게 저항한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 나라의 시민으로서 기본적으로는 다스리는 권세에 복종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 권세가 하나님의 뜻에 정면으로 대치될 때는 맹목적으로 복종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 신자들은 세상 권세자보다 더 높으신 하나님의 뜻을 따라야 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권세에 복종하는 것은 매우 어렵고 예민한 문제이기 때문에 하나님께 나아가 간절히 기도하며 영적 분별력을 덧입고 결정해야 하겠습니다.

II. 사랑의 빚을 지라(8-10)
  사도 바울은 신자의 사회생활에 있어서 사랑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8절을 보십시오.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느니라” 신자들은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도 아무 빚도 지지 말아야 합니다. 특히 물질의 빚을 지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물질의 빚으로 인해 서로 사이가 좋지 않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살다보면 피치 못하게 빚을 질 때가 있습니다. 신용카드로 결제하는 것도 일정기간 빚을 지는 것입니다. 신자가 다급한 사정으로 빚을 졌으면 바로 갚으려고 노력해야지 빚진 상태로 계속 있으면 안 됩니다. 또한 은혜의 빚을 졌으면 반드시 그 은혜를 갚고자 해야 합니다. 나는 아직 어리니까 마땅히 받아야 한다는 생각은 잘못된 것입니다. 은혜 받는 데만 익숙하거나 은혜를 받고 감사함이 없으면 믿음이 자라질 않습니다. 그리고 모임 내에서 성도간의 관계성이 파괴되기가 쉽습니다.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 이 말씀에는 사랑의 빚은 적극적으로 져야함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사랑’이란 아가페의 사랑을 말합니다. 이 사랑은 자기를 비우는 사랑이요 자기 유익보다 상대방의 유익을 구하는 사랑입니다. 상대방의 행복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섬겨 주는 희생적인 사랑입니다. 이러한 사랑은 보답을 바라지 않고 아무 값없이 섬겨주는 무조건적인 사랑입니다. 이 사랑은 죄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독생자도 아끼지 않고 내어주신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우리는 예수님께 엄청난 사랑의 빚을 진 자들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의 희생을 통하여 아무 값없이 사죄의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영원한 파멸에서 구원하사 영생을 선물로 주시고 하나님 나라를 기업으로 허락하셨습니다. 이렇게 엄청난 은혜를 받았으므로 우리가 도움이 필요한 형제에게 사랑을 베푸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입니다. 사랑의 빚이라고 한 것을 보면 우리가 이웃을 사랑하는 것은 마땅히 갚아야 할 신자의 의무임을 알 수 있습니다. 사랑은 샘물과 같아서 우리가 사랑의 빚을 갚기 위해 애쓰면 애쓸수록 사랑은 더욱 풍성해지고 깊어지고 맑아집니다. 자신이 이웃을 사랑하고자 애쓰면 애쓸수록 본인의 삶은 은혜와 사랑과 기쁨이 넘치게 됩니다.
  우리는 사랑을 받을 줄도 알고 베풀 줄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피차 사랑의 빚을 지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수차례의 전도여행을 통해 많은 곳을 개척하고 수많은 사람들을 제자로 세웠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철저하게 자비량으로 헌신하므로 물질의 빚을 지지 않고자 하였습니다. 하지만 사랑은 풍성히 나누어 주고 본인도 사랑의 빚을 적극적으로 졌습니다. 갈라디아서 4:15절에 보면 “ ...너희가 할 수만 있었더라면 너희의 눈이라도 빼어 나에게 주었으리라” 바울은 이 당시에 건강이 안 좋았었고 특히 눈에 안질이 있어 많은 고통을 당해야 했습니다. 이에 갈라디아 성도들은 바울을 자신들의 눈이라도 빼어주고 싶을 정도로 극진히 사랑했습니다. 바울은 그 사랑을 받은 자로서 그들에게 다시 사랑을 베풀고자 하였습니다. “나의 자녀들아 너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기까지 다시 너희를 위하여 해산의 수고를 하노니”(갈4:19) 바울은 그들의 현재 힘든 문제들을 부담스러워 하거나 정죄하지 않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다시 처음부터 해산의 수고를 감당하고자 하고 있습니다. 바울과 갈라디아 성도들은 이처럼 서로 사랑을 주고받으며 피차 사랑의 빚을 지고 살았습니다. 그러므로 아버지와 자식처럼 서로 끈끈한 사랑의 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께로부터 말할 수 없이 큰 사랑을 받은 자로서 다른 사람들을 사랑으로 섬겨야 할 의무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적극적으로 사랑으로 섬기는 생활을 할 때 하나님께서 축복해 주심으로 그 삶은 풍성해지고 윤택하게 됩니다. 잠언 11:24,25절은 말합니다. “흩어 구제하여도 더욱 부하게 되는 일이 있나니 과도히 아껴도 가난하게 될 뿐 아니라 구제를 좋아하는 자는 풍족하여질 것이요 남을 윤택하게 하는 자는 자기도 윤택하여 지리라” 남을 사랑하는 자는 이미 율법을 다 이룬 자입니다.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둑질 하지 말라, 탐내지 말라”는 이 계명들은 모두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는 말씀에 다 포함되어 있습니다.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악의 본성과 배치되기 때문에 상대방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으면 악을 행하지 않게 되고 어찌하든지 잘해 주고자 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입니다. 완성이라는 말은 충만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둑질 하지 말라”는 계명은 소극적입니다. 이 계명은 아무리 열심히 지켜도 마음에 행복이 없고 공허하게 됩니다. 신앙생활이란 소극적으로 계명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할 때 내면의 공허가 사라지고 하늘나라의 참된 기쁨이 샘솟게 됩니다. 그러므로 사랑은 계명의 공허함을 채우고 그 약점을 보강하여 그 계명이 뜻하면서 성취하지 못하는 바를 완성시켜 줍니다. 이 과정에서 사랑은 율법의 완성입니다.  

III. 빛의 갑옷을 입으라(11-14)
  사도 바울은 끝으로 우리 신자들이 재림 신앙으로 살아야 할 것을 권면합니다. 국가에 대한 의무, 이웃에 대한 사랑의 의무에 충실하다보면 정작 하늘나라의 시민권자로서의 정체성을 잊어버리고 살기 쉽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시민임을 한 시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 신자들은 이 시대에 대해 깊은 문제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11절을 보십시오. “또한 너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으니 이는 이제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웠음이라” 여기서 ‘이 시기’는 예수님의 재림의 시기를 의미합니다. 바울은 지금이 자다가 깰 때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이 시대가 급박한 가운데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재림의 시기는 우리가 처음 예수님 믿을 때 보다 더 가까이 오고 있습니다. 12절에서는 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제 드디어 복음역사의 흐름이 끝나가고 예수님의 재림의 마침표만 남았음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이 시기를 살펴볼 때 전 세계 곳곳에서 우리 주님께서 말씀하신 말세의 징조들이 너무나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전 세계에서 지진과 기상이변으로 인한 징조들은 그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정도로 그 강도와 횟수가 마치 산모의 산통과 같이 간격이 점 점 짧아지고 강해지고 있습니다. 자고 일어나면 세계 곳곳에서 이제는 동시 다발적으로 발생해서 말세가 점 점 가까워 오고 있음을 피부로 느끼게 됩니다. 말세의 때에는 사단의 역사도 강하게 일어나서 거짓 선지자들과 이단 사상들이 신자들을 미혹케 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교계에서도 이단인 신천지로 인해 골머리를 앓고 있습니다. 요즘 교회 옆을 지나가다 보면 어느 교회든지 신천지 관련자들은 출입을 금한다는 경고문이 붙어 있습니다. 그만큼 이들은 교묘하게 위장하여 교회로 침투해서 교회를 송두리째 넘어뜨리고자 하고 있습니다. 또한 말세의 때에는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고 돈을 사랑하고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보다 더 할 것이라 예언하였습니다(딤후3장).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경제적으로 발전하고 싸이의 강남 스타일이 전 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끌고 한류 열풍이 거세게 부니까 잘 나가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우리 사회를 살펴보면 OECD국가 중에서 자살율과 이혼 증가율이 1위를 달리고 있습니다. 인터넷 보급률과 그 속도가 1위지만 반면에 인터넷을 통하여 죄악되고 유해한 정보들이 홍수처럼 범람하고 있습니다. 청소년들은 물론이고 초등학생들까지 스마트폰으로 죄를 짓는 시대가 되어버렸습니다. 돈 때문에 아내가 남편을 죽이고 자식이 부모를 서슴없이 죽이는 죄악된 시대입니다. 얼마 전 전주에서 한 남성이 부모와 형에게 수면제를 먹이고 연탄불을 피워서 살인을 저질렀습니다. 그 이유가 막대한 보험금과 수십억대의 재산을 노렸다는 것입니다. 또 놀라운 것은 경찰관인 외삼촌이 이 사실을 알고 증거인멸하기 위해 도왔다는 것입니다. 이제는 동네 사람만 무서운 것이 아니라 제 몸에서 낳은 자식과 가까운 친척도 믿을 수 없는 무서운 세상이 되어 버렸습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도 종말을 향해 무섭게 치닫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 주님께서 재림하실 날이 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 날과 그 시는 하나님만이 아십니다. 역사적인 종말뿐만 아니라 우리 인생이 언제 끝날지 모르는 개인적인 종말이 올 수도 있습니다. 정말 자다가 깰 때가 되었습니다. 잔다는 것은 영적인 잠을 자는 것으로서 현세의 일과 육신의 일에 도취되어 영적인 일을 등한시 하는 것을 말합니다. 영적으로 무감각한 상태를 의미합니다. 잠자는 자는 무의식 상태에 빠지게 됩니다. 이와 같이 영적인 잠을 자는 사람은 이 시대에 대한 인식이 없습니다. 인생에 대한 문제의식이 없습니다. 재림신앙이 없이 영원히 이 땅에서 살 것처럼 인생을 즐기며 살아갑니다. 우리는 주께서 오실 날이 멀지 않았다는 것을 인식해야 합니다. 우리 각자가 주님 앞에 설 날이 멀지 않았다는 것을 인식해야 합니다. 이 사실을 분명하게 인식할 때 영적 긴장감을 갖고 살아가게 됩니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12절 말씀을 다 같이 읽겠습니다. “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둠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둠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어야 합니다. 빛의 갑옷을 입으라는 뜻이 무엇입니까? 갑옷은 전쟁에 나가는 사람이 완전무장하는 것을 말합니다. 즉 빛으로 완전무장하는 생활을 하라는 것입니다. 날마다 하나님의 말씀이 나의 삶을 지배하고 말씀에 붙잡힌바 되는 삶을 살라는 말씀입니다. 그럴 때 어두운 사단과의 영적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어두움의 세력은 너무나 강하기 때문에 사단과의 싸움에서 질 수 밖에 없습니다. 이 영적 싸움에서 패배하면 멸망이요, 심판을 뜻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싸움에서 반드시 승리해야 합니다. 승리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 “빛의 갑옷”을 입는 것입니다.
  그러면 빛의 갑옷을 입는 것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는 것입니까? 13,14절을 다 같이 읽겠습니다.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하거나 술 취하지 말며 음란하거나 호색하지 말며 다투거나 시기하지 말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이는 당시 죄악된 로마시대의 분위기였습니다. 방탕과 술취함은 육욕이요, 음란과 호색함은 성욕이요, 쟁투와 시기는 감정적인 죄입니다. 로마는 이런 죄악으로 결국 망하였습니다. 우리는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해야 합니다. 비록 세상은 죄악이 만연한 어두운 밤과 같지만 빛되신 예수님과 함께 할 때 낮에와 같이 행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단정히 행한다는 것은 순수하고 의롭고 진실되고 충성되고 부지런하고 겸손히 행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주님이 재림하실 때에 책망 할 것이 없는 상태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단정히 행할 수 있을까요?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스도로 옷 입는다’는 것은 그리스도와 연합하는 생활이요 그리스도를 본받는 생활입니다. 옷은 그 사람의 정체성을 나타냅니다. 의사는 의사 가운을 입고 환자를 진료하고 판사는 법복을 입고 재판을 진행합니다. 우리 신자들은 이 시대의 왕 같은 제사장들입니다. 그러므로 제사장은 날마다 제사장의 옷을 입어야 합니다. 즉 이시대의 제사장으로서 양들을 위하여 열심히 중보기도의 직분을 감당해야 합니다. 그리고 항상 양들을 말씀으로 가르치고 돌보는 성경선생의 직분을 잘 감당해야 합니다. 이 말씀은 성 어거스틴을 변화시킨 말씀입니다. 어거스틴이 회심은 했지만 죄악된 옛 습관을 끊을 수 없어 괴로워했습니다. 그는 정욕으로 인해 깊은 영적 잠을 자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어머니 모니카는 그가 영적인 잠에서 깨어나도록 10년을 한결같이 눈물로 기도했습니다. 어느 날 그가 정원에서 방황하고 있을 때 이웃집 아이들이 놀다가 성령 충만해서 외쳤습니다. ‘가서 책을 들고 읽어라’ 그는 즉시 집에 들어가 성경책을 펴서 읽었는데 바로 본문 13장 11-14절 말씀이었습니다. 그는 이 말씀을 통해 영적인 깊은 잠에서 깨어나 영적 투쟁을 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가 날마다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주님의 일에 힘썼을 때 그는 하나님의 역사에 길이 빛나는 위대한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저는 오늘 말씀을 통하여 주님의 재림이 가까운 이 시기에 어떤 자세로 신앙생활을 감당해야 하는지 분명한 방향을 잡게 되었습니다. 저는 2년 전부터 하나님 앞에서 날마다 새벽기도를 1시간 이상 감당하고자 굳게 결단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까지 새벽기도를 잘 감당하도록 섬세하게 인도하여 주셨습니다. 그러나 세상에서도 할 일이 많은 학사 목자가 날마다 새벽에 일어나 하루도 안 빠지고 기도를 한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전날 밤에 할 일이 많아 늦게라도 자는 날에는 새벽에 일어나기가 너무도 힘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건강이 안 좋아 피곤하고 지친 날에는 이 힘든 기도의 노동을 그만두고 푹 자고 싶은 마음이 들 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에서와 같이 이 시대가 자다가 깰 때가 되었고, 밤이 깊고 낮이 가까운 주님의 재림이 바로 앞에 다가온 시기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비록 조금 힘이 들더라도 나 한사람이 깨어 이 시대의 영적 파숫군이 되어 이 새벽기도의 직분을 끝까지 감당하고자 다짐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분명한 소원이 있을때 날마다 육신의 피곤을 극복할 수 있었고 안일하게 살라는 사단의 달콤한 유혹을 단호히 물리칠 수가 있었습니다. 제가 계속하여 주님이 다시 오실 그 날까지 새벽기도로 깨어 영적 투쟁하는 삶을 기쁨으로 감당하는 종이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주님의 재림이 가까운 시기에 살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 시대를 잘 분변하여 영적인 잠에서 깨어 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날마다 빛의 갑옷인 그리스도로 옷 입고 왕 같은 제사장의 직분을 잘 감당하기를 기도합니다. 국가와 사회에 대한 의무를 양심에 따라 다하고 더 나아가 이 어두운 시대에 빛의 증거자의 사명을 잘 감당할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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