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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nday Worship Message
주일예배메시지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3-04-21 (일) 12:38
분 류 창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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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창세기 제5강] 셋을 주신 하나님

 2013년 창세기 제5강                                                                         최바울

셋을 주신 하나님

말씀 / 창세기 4:1-5:32
요절 / 창세기 4:25  “아담이 다시 자기 아내와 동침하매 그가 아들을 낳아 이름을 셋이라 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이 내게 가인이 죽인 아벨 대신에 다른 씨를 주셨다 함이며”
 우리는 창세기 3장에서 죄가 어떻게 이 세상에 들어오게 되었으며, 또한 그 결과가 얼마나 무서운가를 배웠습니다. 오늘 말씀은 아담 한 사람에게서 시작된 죄가 어떻게 그 후손들에게 유전되어 성장하고 퍼져 나가는지를 보여 줍니다. 죄는 인간을 병들게 하고 병든 인간들이 만든 문화와 문명도 함께 병들게 하였습니다. 죄로 인해 타락한 세상은 아무런 소망이 없어보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새로운 소망의 역사를 이루어가십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는 죄가 어떠한 속성을 갖고 있는지 배우고 죄를 다스리는 비결을 배울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또한 소망의 역사를 이루어나가시는 하나님을 영접하고 하나님의 구속역사에 쓰임 받는 종들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제 1 장  가인의 후예들(4:1-24)
1절을 보십시오.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아담과 하와는 첫 아들을 낳았습니다. 말로만 듣던 해산의 고통이 계속되자 하와는 ‘하나님께 죄를 지어 이렇게 죽을 고통을 당하는구나’ 생각했을 것입니다. 마침내 해산의 고통이 끝나고 품에 사랑스러운 첫 아이를 안게 되었을 때 “내가 여호와의 도우심으로 남자아이를 얻었다” 기쁨의 소감발표를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의 이름을 ‘얻음’이라는 의미로 ‘가인’이라고 지었습니다. 그런데 둘째를 낳았을 때에는 감격적인 신앙고백이 없고 아이 이름도 ‘허무, 안개’라는 뜻의 ‘아벨’이라고 지었습니다. 첫아들 가인이 하나님이 약속하신 여자의 후손이라 여기고 정성을 들여 키웠지만 가인의 전혀 ‘여자의 후손’ 같지 않은 행동들을 보고는 심히 낙심하여 둘째 아이의 이름을 이렇게 지었는지도 모릅니다. 어쨌든 가인은 농사하는 자가 되었고, 아벨은 그의 이름대로 안개처럼 조용하게 양을 치며 자랐습니다. 3,4절을 보십시오. 세월이 지나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드렸고, 아벨은 ‘양의 첫 새끼와 기름’으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그 결과가 어떠합니까? 여호와께서는 아벨과 그의 제물은 받으셨지만 가인과 그의 제물은 받지 않으셨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하나님이 받으시는 제사가 있고 받지 않으시는 제사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받고 안받고는 하나님의 주권에 속한 문제이지만 하나님은 분명한 기준에 따라 그 주권을 행사하십니다. 하나님이 받으시는 제사는 어떤 제사입니까? 두 사람이 드린 제물에 무슨 차이가 있을까요? 히브리서 저자는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렸다고 증언하고 있습니다.(히11:4) 아벨이 드린 제물인 ‘양의 첫 새끼와 기름’이라는 말 속에 ‘God first’의 믿음과 ‘God is best!’의 믿음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아벨은 땀 흘려 얻은 열매를 먼저 하나님께 예물로 구별하여 드렸습니다. 비록 농사지을만한 땅이 없어 기껏 절벽 같은 곳을 돌아다니며 양 몇 마리 키우는 가난한 목자의 삶을 살고 있지만 하나님께 만큼은 자기가 가진 것 중에서 가장 귀한 것을 따로 구별해서 드리고 싶은 간절한 마음으로 제사를 드렸습니다. 또한 아벨의 제물에는 피흘림이 있습니다. 아벨은 먹고 살게 해 주신 데 대한 감사 뿐 아니라 자기 죄에 대해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으로 피 흘림이 있는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드렸습니다. 그는 의례적으로 세금 바치듯이 의무적으로 제사를 드렸습니다. 여호와께서는 이런 가인과 그의 제물은 거절하셨습니다. 우리는 아벨의 제사를 통해 하나님께 어떤 자세로 제사를 드려야 하는지 배울 수 있습니다. 신앙생활은 우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는 영적 예배입니다.(롬12:1) 그러나 우리가 가인과 같이 감사하는 마음이 없이, 상하고 통회하는 심정이 없이 의무감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드린다면 하나님이 받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형식적인 제사라도 은혜로 슬쩍 받아주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삶에 하나님을 최우선시하여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God first” “God best”의 믿음을 원하십니다.
거절당한 가인은 어떻게 하였습니까? 그는 몹시 분하여 안색이 변했습니다(5b). 하나님께 인상을 쓰고 화가 난다며 씩씩거렸습니다. 자기도 없는 시간을 내서 제사를 드렸고 오랜 시간동안 공들여 키운 땅의 소산을 드렸는데 동생의 제물은 받으시고 자기 제물은 받지 않으시는 하나님이 못마땅했습니다. 그런 그에게 여호와께서 뭐라고 하십니까? 6,7절을 보십시오.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가 분하여 함은 어찌됨이며 안색이 변함은 어찌 됨이냐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하지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려 있느니라 죄가 너를 원하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는 말씀은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하나님이 네 제사를 받아주시지 않겠느냐?’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가인의 제사를 받지 않으신 것은 제물 한번 잘못 바쳐서 그런 것이 아니라 그가 평소에 선을 행치 않는 죄 때문이라고 분명히 깨우쳐주셨습니다. 선을 행치 않을 때 죄가 문에 엎드리게 됩니다. 이는 굶주린 사자가 숨어 있다가 문만 열면 삼키려는 것 같이 선을 행치 않는 사람을 죄가 삼키려고 노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 이 말씀은 범죄 한 인간에게 주신 하나님의 첫 번째 명령입니다. 이는 죄가 심각하고 무서운 것임을 말해줍니다. 죄를 다스리지 않을 때 죄가 그 사람을 삼켜 죄의 종이 되게 합니다. 세상은 거대한 죄의 세력으로 가득합니다. 이 세력이 우리를 삼키려합니다. 또한 우리 속에는 죄의 소원이 있습니다. 젊은이들에게 정욕은 가장 강력한 사단의 미끼입니다. 선을 행하는 삶을 살지 않으면 정욕의 죄를 다스리지 못하고 정욕의 노예가 되어 지금까지 쌓아온 인생을 하루아침에 망치게 됩니다. 또한 하나님과 복음역사를 섬기는 사람이 선을 행하는 삶을 살지 않으면 안일의 죄가 문열고 들어와 중풍병자가 되고 이기심, 욕심의 죄가 문열고 들어와 자기중심적인 세리가 되고 맙니다. 이런 죄의 심각성을 인식할 때 멸망치 않으려면 죄를 다스려야만 합니다.(You must master it.) 우리가 어떻게 이런 죄를 다스릴 수 있습니까? 사람에게는 선을 행하고자 하는 영적 소원과 죄를 짓고자 하는 죄의 소욕이 함께 있습니다. 어느 인디언 부족의 할아버지가 꼬마 아이한테 ‘네 마음 속에는 착한 늑대와 나쁜 늑대가 같이 살고 있단다’ 말해 주었습니다. 그러자 아이는 그 두 늑대가 싸우면 누가 이기냐고 물었습니다. 할아버지는 ‘당연히 네가 먹을 것을 많이 주는 늑대가 이기지’ 라고 대답해 주었습니다. 우리가 적극적으로 성령을 좇아 살지 않을 때 결국 죄의 소원에 지배당하여 죄의 종이 되고 맙니다.(갈5:16,17, 롬6:14) 또한 우리가 범죄하였을 때 그것을 합리화하거나 핑계대지 말고 있는 모습 그대로 하나님께 들고 나와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사함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의로우시고 미쁘시사 우리가 진실하게 죄를 고백하고 회개하면 과거를 묻지 않으시고 죄사함의 은혜를 베푸십니다.

이제 가인은 기로에 섰습니다. ‘죄를 다스릴 것인가?’ ‘죄에게 다스림 받을 것인가?’ ‘반발심과 시기심을 다스릴 것인가, 아니면 그것에게 말려들 것인가?’ ‘끓어오르는 분노와 화를 다스릴 것인가? 그것에게 먹혀버릴 것인가?’ 가인은 자기 잘못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고집과 하나님께 대한 반발심,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아벨에 대한 시기심과 미움의 죄를 진실되게 회개함으로 죄를 다스려야 했습니다. 그러나 죄를 다스리지 못한 가인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8절을 보십시오. 그는 동생 아벨을 가만히 들로 불러내 돌로 쳐 죽였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가인을 어떻게 도우십니까? 범죄한 아담을 먼저 찾아가신 것처럼 이번에도 하나님께서 가인을 먼저 찾아오시고 물으십니다. “가인아, 네 동생 아벨이 어디 있느냐?” 그런데 가인은 이런 하나님의 물음에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니이까”라고 오리발을 내밀며 무책임하게 말했습니다. 사실 가인은 형으로서 동생 아벨을 지키는 자입니다. 아벨이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지금 그의 고민과 아픔이 무엇인지, 그의 기도제목이 무엇인지 직접 해결해 줄 수는 없어도 최소한 알고는 있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그는 동생을 지키지 않고 오히려 생명을 빼앗아 버렸습니다. 죄를 다스리지 않았을 때 마땅히 지키고 사랑해야 할 자의 생명을 죽이고도 죄의식을 느끼기는 커녕 거짓말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죄를 인정하지 않을 뿐 아니라 악을 행하고도 하나님께 반발하고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가인에게 벌을 내리십니다. 10-14절을 보십시오 “이르시되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 네 아우의 핏소리가 땅에서부터 내게 호소하느니라 땅이 그 입을 벌려 네 손에서부터 네 아우의 피를 받았은즉 네가 땅에서 저주를 받으리니 네가 밭을 갈아도 땅이 다시는 그 효력을 네게 주지 아니할 것이요 너는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되리라 가인이 여호와께 아뢰되 내 죄벌이 지기가 너무 무거우니이다 주께서 오늘 이 지면에서 나를 쫓아 내시온즉 내가 주의 낯을 뵈옵지 못하리니 내가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될지라 무릇 나를 만나는 자마다 나를 죽이겠나이다” 회개치 않은 가인은 다시는 땅을 통해서 생계를 이어갈 수 없게 됩니다. 어느 땅, 어느 곳, 어느 모임에도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유리방황하는 방랑자의 삶을 살게 됩니다. 살면서 만나게 되는 자들과 진실된 교제도 누리지 못하게 됩니다. 그는 이제 안식이 없고 평안이 없고 사랑의 교제도 없이 불안과 절망과 방황 속에서 일생 고통하며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자기가 지은 죄는 회개하지 않고 벌이 너무 무겁다고 불평하는 그를 어떻게 도와주십니까? 15절을 보십시오.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그렇지 아니하다 가인을 죽이는 자는 벌을 칠 배나 받으리라 하시고 가인에게 표를 주사 그를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서 죽임을 면하게 하시니라” 하나님은 그에게 표를 주셔서 그를 죽이려는 사람들의 손에서 그의 생명을 보호해 주셨습니다. 가인에게 주신 표는 가인을 향한 하나님의 무한한 인내와 깊은 사랑의 증거입니다. 회개치 않는 가인을 당장 심판하지 않으신 것을 볼 때 하나님은 처음부터 가인을 사랑하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가인이 자기 나름대로 제사를 드렸을 때에도 이를 받지 않으심으로 그를 사랑하셨습니다. 그의 죄문제가 드러나 대들고 반발할 때에도 그를 사랑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가인이 당장 회개하지는 않더라도 언젠가 이 표를 보고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회개하고 돌아오기를 원하셨습니다.
하나님에게서 표를 받은 가인은 어디에 가서 삽니까? 16절을 보십시오. “가인이 여호와 앞을 떠나서 에덴 동쪽 놋 땅에 거주하더니” 그는 여호와 앞을 떠나 나가 에덴 동편 놋 땅에 거하였습니다. 가인이 하나님을 떠나서 가장 먼저 한 일이 무엇입니까? 표를 주셔서 생명을 지켜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여 제단을 쌓았습니까? 17절을 보십시오. 가인은 에녹을 낳고, 성을 쌓아 그 이름을 에녹이라고 불렀습니다. 가인은 감사의 제단을 쌓는 대신 자기를 위한 성을 쌓았습니다. 성을 쌓았다는 것은 하나님이 약속하신 표를 믿지 못하고 자기의 힘과 노력으로 자기를 보호하고, 자기를 방어하고자 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성을 높이 쌓는다 해도 하나님 없이 살면 그 마음이 불안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많은 돈으로, 안정된 직장으로, 학벌과 자격증으로, 화려한 인맥으로 무너지지 않는 자기만의 성을 높이 쌓아 험한 세상에서 자기를 지키고자 합니다. 그러나 인간이 쌓은 성은 결코 사람을 지켜주지 못합니다. 저희가 자기 힘으로 자기를 지켜줄 성을 쌓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표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이 예수님을 진정한 피난처로 삼는 자들이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가인의 후예들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는 그들이 낳은 자녀들의 이름을 살펴보면 잘 알 수가 있습니다. 가인이 에녹을 낳고 에녹이 이랏을 낳았습니다. ‘이랏’이란 ‘과시하다, 나타낸다’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곧 자기를 과시하고 자기를 드러내고자 하였습니다. 이랏은 므후야엘을 낳았는데 ‘므후야엘’은 ‘하나님 때문에 맞았다, 하나님 때문에 깨졌다’는 뜻입니다. 곧 하나님 때문에 이런 생고생을 한다는 의미로 하나님에 대한 원망과 피해의식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므후야엘은 므드사엘을 낳았는데 이는 ‘지옥의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마지막으로 이 ‘지옥의 사람’ 므드사엘이 유명한 라멕을 낳았는데, ‘라멕’은 ‘나는 강하다’는 뜻입니다. 이처럼 가인의 후손들의 이름에는 모두 하나님에 대한 적대감과 원망, 그리고 자기 과신과 교만의 뜻이 담겨 있습니다. 19-22절을 보십시오. 가인의 후손 중 라멕이라는 사람은 인류 최초로 두 아내를 취하므로 하나님이 지으신 결혼의 질서를 깨뜨렸습니다. 특히 그의 두 아내의 이름을 살펴보면 첫 아내는 ‘아다’요, 둘째 아내의 이름은 ‘씰라’입니다. ‘아다’는 ‘쟁쟁거리다’라는 뜻이고, ‘씰라’는 ‘딸랑거리다’란 뜻인데 라멕은 정숙한 믿음의 여인을 아내로 얻지 않고 쟁쟁거리고 딸랑거리는 여자들과 결혼하였습니다. 첫 부인 아다는 야발과 유발을 낳았고 씰라는 두발가인을 낳았습니다. 야발은 장막에 거하여 육축 치는 자의 조상이 되었고, 유발은 수금과 퉁소 잡는 모든 자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두발가인은 구리와 쇠로 여러 날카로운 기계를 만드는 자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육축 치는 자의 조상이 되었다는 것은 기업형 목축업을 했다는 의미입니다. 또 수금과 퉁소 잡는 자의 조상이 되었다는 것은 취미로 악기를 연주했다기보다 상당히 높은 수준의 음악과 예술을 발전시켰다는 것입니다. 쇠와 구리로 날카로운 기계를 만들었다는 것은 과학과 기술을 비약적으로 발전시켜 삶의 풍요를 가져왔다는 것이요 나아가서 강력한 전쟁무기가 생산되어 사람을 죽이고 살상하게 되었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이를 볼 때 가인의 후손들은 물질적인 풍요로움을 누리고, 아름다운 음악을 유행시키고, 여러 신기한 기계와 무기를 만들어 편리하고 재미있고 그러면서 신변의 안전이 보장된 수준높은 삶을 살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이룩한 문명과 과학과 기술에 비해 그들의 내면과 도덕성은 어떠합니까? 23,24절을 보십시오. 이는 살인자 가인의 5대손인 라멕이 무자비한 살인을 저지른 후 그의 아내들에게 바친 인류 첫 오페라입니다. “아다와 씰라여 내 소리를 들으라 라멕의 아내들이여 내 말을 들으라 나의 상처로 말미암아 내가 사람을 죽였고 나의 상함으로 말미암아 소년을 죽였도다. 가인을 위하여는 벌이 칠 배일진대 라멕을 위하여는 벌이 칠십칠 배이리로다” 라멕은 자기의 두 아내에게 자신이 얼마나 잔인한 피의 보복을 했는가 노래하며 자신의 무자비함과 폭력과 살인을 자랑했습니다. 그는 작은 상처를 인하여 사람을 죽였고 소년을 죽였습니다. 어깨 좀 부딪쳤다고, 째려본다고 아들 두발가인이 만든 무기로 사람을 죽여 버렸습니다. 라멕은 ‘가인을 위하여는 벌이 칠 배일진대 라멕을 위하여는 벌이 칠십칠 배이리로다’라고 노래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풍자하고 조롱하였습니다. 이처럼 에덴 동쪽 사람들은 물질과 예술과 문명을 발달시켰지만, 영적으로는 끔찍하고 흉악할 정도로 강포하고 음란하고 악해져갔습니다. 가인에게서 시작된 작은 죄의 불씨가 자라고 커져서 온 세상이 죄의 불길로 가득하게 되었습니다.
이상에서 가인의 후예들의 족보와 삶을 살펴볼 때 세상은 정말 소망이 없어 보입니다. 아벨은 하나님을 믿고 의롭게 살다가 가인에게 무참하게 살해당했고 가인은 하나님을 떠나 성을 쌓고 그 속에서 하나님을 대적하는 죄악된 문화를 이루며 살고 있습니다. 세상은 가인의 후손들로 번성하였고 그들은 죄를 지으면서 살아도 벌을 받아 죽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라멕 같은 엽기적인 인간이 매스컴에 나와 엽기적인 노래를 불렀고 또 그런 노래가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인기를 끌었습니다. 가인의 후손들로 가득 찬 세상은 온통 어두움과 절망과 파멸을 향해 치닫는 것만 같습니다. 이런 세상을 볼 때 하나님이 과연 살아 계시는가? 잠시 졸거나 주무시고 계시는게 아닌가? 회의가 들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졸지도 주무시지도 않고 그 시대에 무엇을 하셨습니까? 하나님은 에덴 동쪽의 병들고 타락해가는 곳에서 어떤 희망의 역사를 이루십니까?

제 2 장  셋의 후예(4:25-5:32)
25절을 보십시오. 다 같이 소망을 담아 읽어보겠습니다. “아담이 다시 자기 아내와 동침하매 그가 아들을 낳아 이름을 셋이라 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이 내게 가인이 죽인 아벨 대신에 다른 씨를 주셨다 함이며” 하와는 셋에 대해서, 하나님이 아벨 대신에 주신 ‘다른 씨’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와는 셋이라는 씨를 통해 지금까지와는 다른, 새로운 믿음의 싹이 자랄 것을 보았습니다. 아벨과 같은 순종과 희생의 역사가 다시 시작될 희망을 보았습니다. 그런 셋의 아들은 에노스였는데 그때 사람들이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중요한 몇 가지 사실을 배울 수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께서 친히 구속역사를 주권적으로 이끌어 가십니다. 하나님은 아벨을 대신하여 아담과 그 아내 사이에 셋이라는 아들을 주셨습니다. 사단은 가인을 통해 믿음의 씨가 될 아벨을 죽여 하나님과 인간 사이를 영원히 갈라놓고자 했지만 하나님은 죽은 아벨 대신에 셋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의 후손을 통해 하나님을 예배하는 믿음의 사람들을 이어가셨습니다. 이를 볼 때 아무리 사단이 믿음의 사람들을 핍박하고 때론 죽이기까지 하여도 하나님께서 친히 구속 역사를 주권적으로 이루어 가신다는 사실을 배울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시대마다 가인의 후손들로 가득 찬 것 같은 세상에 셋과 같은 거룩한 그루터기들을 예비해 두시고 이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구속역사를 이루어 가시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섬기는 캠퍼스도 시대가 갈수록 물질적이고 세속적이고 육신적으로 변해가서 도무지 누가 성경을 공부하며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을 따르고자 할 것인가 회의가 들 때가 많습니다. 잘 자라던 아벨과 같은 양이 어느날 갑자기 사단에게 핍박을 받고 떠나갈 때  절망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런 가운데서도 셋의 후손들을 남겨두시고 믿음의 역사를 계승해 나가고 계십니다.
둘째,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 세상을 이기는 길입니다. 5장을 보십시오. 5장 내용은 하나님이 죽은 아벨 대신 허락하신 셋의 후손들의 이야기입니다. 여기에 보면 그들이 어떤 문명을 만들고 어떤 기술을 발전시켰는지, 또 어떤 업적을 이루었는지에 대한 기록이 없습니다. 대부분의 내용이 그냥 아들,딸을 낳고 살다가 몇 살에 죽었다는 이야기의 단순한 반복입니다. 어찌 보면 이 사람들은 그 긴긴 세월동안 도대체 뭐하고 살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이들 자손 중에 하나님과 동행한 에녹이 있고, 나중에 세상을 구원한 의인 노아가 나옵니다. 이들은 약 100년 한 명씩, 자주 낳은 것도 아니고 100년에 한 명씩 믿음의 자녀를 낳은 것 외에는 한 것이 아무것도 없는 것 같지만, 이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 믿음의 계보가 면면히 이어져 가고 있었습니다. 한쪽에서 가인의 후손들이 하나님 없는 문명을 발전시키며 화려하고 편리하고 한편으로 강포한 세상을 만들어가는 중에도 하나님은 조용히 셋의 후손들을 통해 다른 역사, 믿음의 역사를 신실하게 이루어가고 계셨습니다. 사람들은 화려한 가인의 후손들을 주목하고 그들이 이룩한 문명과 문화와 업적을 동경하며 부러워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주목하시고 하나님께 쓰임 받은 사람들은 셋의 후손들입니다. 그럼 셋의 후손들에게서 어떻게 믿음의 사람들이 면면이 이어져 올 수 있었을까요? 4:26절을 다시 보십시오. “그 때에 사람들이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 그들이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기 때문입니다.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다’는 것은 하나님께 대한 예배가 이루어졌다는 것입니다. 가인의 후손들은 찬란한 문화는 꽃피우고 테크노피아는 이루었지만 하나님께 대한 예배가 없는 삶, 하나님과의 교제가 없는 영적으로 죽은 삶이었습니다. 그러나 셋의 후손들은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셋의 후손들은 성을 쌓고, 육축을 치고, 날카로운 기계를 만드는 일보다 영적인 일에 먼저 마음을 드렸습니다. 가인의 후손들이 죄를 짓고 칼의 노래를 부를 때 셋의 후손들은 여호와를 의지하여 죄와 싸우고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가인의 후손들이 날카로운 기계로 서로 빼앗고 복수할 때 셋의 후손들은 여호와의 이름으로 서로 사랑하며 섬겼습니다. 이런 셋의 후손 가운데서 에녹이 나오고 노아가 나오고 아브라함이 나오며 다윗으로 이어지고 마침내는 예수 그리스도가 오시게 됩니다. 이를 볼 때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출세를 하거나, 탁월한 업적을 세우는 것보다 더 귀하고 중요하게 여겨야 할 것이 바로 하나님을 경외하며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예배하는 삶인 것을 배우게 됩니다.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그를 예배하는 삶을 사는 사람은 비록 세상에서 큰 업적을 세우지 못하고, 당장 뛰어난 능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하나님이 인정하시고 하나님이 귀하게 여기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구속역사에 귀하게 쓰임 받게 될 것을 믿습니다.

말씀을 통해 하나님은 하나님을 떠나 자기만의 성을 쌓고 그 속에서 세속문화를 즐기며 살아가는 가인의 후손들에게서 저의 모습을 보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을 귀하게 여기는 청년들이 희귀한 시대에 저희 요회에 이마태오, 진승민, 신현준, 왕교 형제자매님들을 보내주셨습니다. 이 분들은 ‘양의 첫 새끼와 기름’과도 같은 자신들의 젊음을 하나님께 바치며 아벨처럼 믿음으로 살고자 투쟁하는 귀한 분들입니다. 그런데 정작 요회목자인 자신은 “내가 이들을 지키는 자니이까?” 하며 양들에게 관심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치과일로인한 스트레스에서 벗어나기 위해 책과 인터넷을 통해 세상지식의 성을 쌓고 그 안에서 세상 잔재미를 누리며 복음역사와 무관하게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가인의 문화는 진정한 만족과 기쁨을 주지 못하고 오히려 죄를 다스릴 힘을 빼앗아가고 제사장 나라, 거룩한 백성으로 살지 못하게 내면을 병들게 했습니다. 제가 사명을 떠나 자기만의 성 안에서 가인의 문화를 즐기며 살았던 것을 회개하고 부르심대로 셋의 후예로 살겠습니다. 안일과 세상 잔재미의 죄의 소원을 회개하고 다스려서 캠퍼스 가운데 아벨과 같은, 셋과 같은 믿음의 후손들을 돌보고 지키는 목자의 삶을 살겠습니다.

결론적으로, 아담의 범죄 이후 죄는 더욱 심해지고 악해져갔습니다. 가인은 첫 살인자가 되었고 그는 하나님의 벌을 받고 쫓겨났습니다. 그의 후손들이 인간 문명을 주도했지만 그곳에는 참된 구원의 소망이 없었습니다. 이와 같이 절망과 파멸가운데 있는 인류를 위해 하나님은 당신의 거룩한 다른 씨, 셋을 허락하시고 구원 역사를 이어가셨습니다. 인류 역사의 주체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당신의 거룩한 씨들, 다른 씨들을 택하여 세우고 계십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셋과 같이, 에노스와 같이, 에녹과 같이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하나님과 동행하는 복된 삶을 살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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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호     글 제 목  작성자 작성일 조회
675 출애굽기 [2009년출애굽기제14강] 내가 거할 성소를 지으라 -권영진 관리자 2009-07-12 2988
674 마태복음 [2009년마태복음제38강]열매 맺는 백성이 받으리라 관리자 2009-02-08 2984
673 요한복음 [2010년요한복음제16강]참된 생명의 길 리스닝 2010-06-21 2981
672 요한복음 [2010 요한복음7강]오병이어를 축사하신 예수님 리스닝 2010-04-18 2977
671 출애굽기 [2009년출애굽기제10강] 내 말을 잘 듣고 지키라 관리자 2009-06-14 2972
670 로마서 [2010신년말씀제1강]복음은 하나님의 능력-서홍일 휴화산 2010-01-14 2963
669 출애굽기 [2009년출애굽기제2강] 왕자에서 나그네로 관리자 2009-04-19 2962
668 요한복음 [2010 요한복음4강]거듭남 리스닝 2010-03-21 2960
667 마가복음 [2012년 마가복음 제3강]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관리자 2012-03-25 2959
666 사무엘상 [2011년 신년수양회 제1강]미스바의 영적 부흥(고영훈) 관리자 2011-01-02 2959
665 요한복음 [2009가을학기준비특강-2] 내 안에 거하라 관리자 2009-08-23 2952
664 이사야 [2013년 성탄절 제2강]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관리자 2013-12-15 2948
663 누가복음 [2011년 누가복음 제30강] 영생을 얻는 길 관리자 2011-11-13 2948
662 누가복음 [2011년 누가복음 제10강]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관리자 2011-05-22 2935
661 이사야 [2010년 이사야서 제4강]포도원의 노래 리스닝 2010-10-03 2935
660 시편 2010년 신입생 바이블 아카데미 4강 리스닝 2010-04-01 2934
659 출애굽기 [2009년출애굽기제15강] 영화롭고 아름다운 제사장 관리자 2009-07-19 2933
658 야고보서 [2010년야고보서제2강]참된 믿음 리스닝 2010-08-15 2932
657 마가복음 [2010년 가을제자수양회 주제1강] 열둘을 세우신 예수님 관리자 2010-10-31 2930
656 요한복음 [2015년 요한복음 제19강]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관리자 2015-07-19 2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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