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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nday Worship Message
주일예배메시지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3-12-15 (일) 12:35
분 류 이사야
첨부#1 2013_성탄2강(최동진)-1.hwp (64KB) (Down: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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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성탄절 제2강]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2013년 성탄절 제2강                                                                         최동진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말씀: 이사야 9:1-7
요절: 이사야 9:6“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오늘 말씀은 선지자 이사야에게 임한 성탄메시지입니다. 위를 쳐다보나 땅을 굽어보아도 환난과 고통의 흑암뿐인 시대에 하나님은 선지자 이사야에게 장차 한 아기로 오실 메시야 탄생에 대한 소망을 보여주셨습니다. 이 시간 한 아기로 오신 예수님을 깊이 만남으로 타락한 이 시대에 두신 하나님의 크신 소망을 보고 기쁨과 감사가 충만한 성탄을 맞이하기를 기도합니다.

제 1장, 큰 빛으로 오신 예수님(1-5)
  1절을 보십시오. “전에 고통 받던 자들에게는 흑암이 없으리로다 옛적에는 여호와께서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이 멸시를 당하게 하셨더니 후에는 해변 길과 요단 저쪽 이방의 갈릴리를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스불론과 납달리 땅은 갈릴릴 바다 인접한 곳으로서 가나안 정복 시 스불론과 납달리 지파에게 분배되었던 곳인데 이방인들을 완전히 쫓아내지 못하고 적당히 타협하여 함께 살다가 이방의 우상 문화에 오염되어 타락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이곳은  북방 국경 지역으로서 이민족의 침입이 잦아 많은 고통을 겪었습니다. 그러다가 BC 734년, 이스라엘 왕 베가 때에 앗수르 왕 디글랏 빌레셀이 쳐들어 와 갈릴리 지역을 점령하고 그 백성을 포로로 삼고 앗수르 전역으로 강제 이주시켰습니다.(왕하15:29) 뿐만 아니라 앗수르 사람들이 갈릴리 지역에 이주해 오면서 혼혈족과 혼합 종교가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이 때문에 그들은 동족들로부터 ‘이방의 갈릴리’라고 멸시를 당했습니다. ‘이방의 갈릴리’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순수성을 상실한 잡놈이란 조롱과 멸시의 표현이었습니다. 나라를 잃어버린 것도 서러운데 그들을 지탱해주던 선민으로서의 자부심마저 무참히 짓밟힌 그들의 고통이 얼마나 컸겠습니까? 갈릴리에 대한 멸시는 700년이 지난 예수님 당시까지 계속되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제자 나다나엘은 예수님에 대해 처음 들었을 때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수 있느냐’(요1:46)고 말했습니다. 취업을 하려 해도 갈릴리 출신이라고 하면 서류심사에서 떨어졌고 공직에 진출하려 해도 상당한 차별대우를 받았습니다. 오늘날에는 갈릴리라고 하면 신자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가보고 싶어 할 정도로 사모하는 성지이지만 이사야 시대에는 아무런 희망도 없는 버림받은 땅이었습니다. 8:21,22절에는 “이 땅으로 헤매며 곤고하며 굶주릴 것이라 그가 굶주릴 때에 격분하여 자기의 왕과 자기의 하나님을 저주할 것이며 위를 쳐다보거나 땅을 굽어보아도 환난과 흑암과 고통의 흑암뿐이리니 그들이 심한 흑암 가운데로 쫓겨 들어가리라”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들은 왕이 정치와 외교를 잘못해서 이렇게 되었다며 왕을 저주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지신들을 버렸다고, 이제 이런 하나님은 믿지 않겠다고 돌아섰습니다. 위를 쳐다보아도 땅을 굽어보아도 아무런 희망을 찾을 수 없다며 절망하였습니다. 그러나 이사야는 하나님께서 멸시를 당하게 하셨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영어로는 'he humbled the land'로 하나님께서 그 땅을 겸손케 하셨다는 의미입니다. 이는 그들이 하나님을 떠나 우상숭배의 죄에 빠졌기 때문입니다. 죄 가운데 살면서 선지자들을 통해 주시는 하나님의 경고의 메시지를 무시하고 하나님의 종들을 배척하고 하나님께 불순종하였을 때 하나님께서 강대국들을 심판의 도구로 쓰셔서 이들이 멸시와 고통을 당하게 하셨습니다. 그러는 가운데 마음이 겸손케 되고 메시야를 갈망하게 되었습니다. “곧 오소서 임마누엘, 오 구하소서 이스라엘, 그 포로 생활 고달파, 메시야 기다립니다.” “주여, 오시옵소서!” 절박한 심령으로 메시야를 간절히 부르며 기다렸습니다. 이사야는 이들이 겸손해졌을 때 하나님께서 이 땅을 영화롭게 하실 소망을 보았습니다. 2절을 보십시오. “흑암에 행하던 백성이 큰 빛을 보고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주하던 자에게 빛이 비치도다” 하나님은 이방의 갈릴리에 큰 빛이신 예수님을 보내주심으로 멸시받던 이 땅을 영화롭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이곳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셨고, 공생애 기간 대부분의 사역이 이곳에서 이루어졌습니다. 갈릴리는 예수님이 말씀을 가르치시고, 기적을 행하시고, 제자 양성을 하신 생생한 발자취가 서려있는 곳입니다. 가룟 유다를 제외한 열 한 제자들이 갈릴리 출신으로서 인류 역사를 바꾸어 놓은 위대한 사도들이 이곳에서 나왔습니다. 하나님은 멸시 받던 이방의 갈릴리를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가장 영화로운 곳이 되게 하셨습니다. 멸시를 당하게 하는 분도 하나님이시오, 영화롭게 하는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이 하나님을 믿을 때 멸시와 고통 중에도 희망이 있습니다.
  큰 빛이 임하기 전 백성들은 흑암에 행하고 사망의 그늘진 땅에 살고 있었습니다. 이는 좁은 의미로는 침략과 포로 생활로 고통하게 될 이스라엘 백성들을, 넓은 의미로는 하나님을 떠나 사탄의 노예가 되어 죄와 사망 권세 아래 고통하며 영원히 심판받게 될 모든 인류를 가리킵니다. 오늘 날에도 많은 사람이 흑암에 행하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흑암에 행하는 삶이 어떠합니까?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캄캄한 상황에서 인생의 목적이나 방향을 잡지 못하고 방황하며 답답한 인생을 살게 됩니다. 무엇을 해도 확신이 없어 불안하고 지치고 피곤한 삶을 살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다 인생을 결산할 때에는 죄의 열매만 맺고 절망하고 후회만 남게 됩니다.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주한다’는 것은 죽음이 주는 허무와 두려움, 무의미, 무기력으로 삶의 의욕을 잃고 죽은 자처럼 죽음의 권세 아래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다시 말해서 죽지 못해 사는 인생입니다. 이사야가 살던 시대에 이스라엘은 앗수르의 침공으로 땅은 황폐해졌고 동족간의 분쟁으로 상황은 더욱 피폐해졌으며 하나님의 징계에도 우상숭배의 죄에서 돌이키지 않음으로  점점 더 깊은 흑암 속으로 빠져 들어가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오시기 전 이스라엘의 상황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로마의 식민 통치 아래서 착취당하며 가난과 질병과 귀신의 세력에 사로 잡혀 사람들은 병들고 무기력한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정치 지도자들은 음란하고 강포하였으며, 밤낮 정쟁만을 일삼았고, 종교지도자들은 세상 권세와 욕심에 사로잡혀 백성들을 돌볼 생각은 하지 못하고 사리사욕을 채우기에 급급하였습니다. 이런 병든 시대에 백성들은 세리 마태와 같이 지극히 이기적이 되거나 사마리아 여인과 같이 쾌락을 좇아 살았습니다. 그런 가운데 경쟁 사회에서 떨어진 자들은 38년된 중풍병자와 같이 되었습니다. 젊은이들은 갈릴리 호수에서 물고기나 잡아먹고 사는 소시민적 인생을 살고 있었습니다. 참으로 그 시대는 아무런 희망이 보이지 않는 어두운 시대였습니다.
  오늘 날에는 어떠합니까? 갈수록 살기 힘들어지는 이 시대에 많은 부모들이 자녀들에게 희망을 두고 살아갑니다. 자신들은 힘들게 살더라도 자녀들에게 더 나은 미래를 물려주기 위해 자신의 전 인생을 투자합니다. 어릴 때부터 명품분유를 먹입니다. 어린이집에 다니기 시작하면서는 아인슈타인같은 사람이 되라고 아인슈타인 우유를 먹입니다. 유치원에 들어가면 나중에  서울대에 가라고 서울우유를 먹입니다. 한글을 배우기도 전부터 영어조기교육에 몰입합니다. 아이들은 유치원에 들어갈 때부터 치열한 경쟁을 해야 합니다. 초등학교 때부터는 학원 두 세 곳을 전전하며 사교육에 많은 시간과 물질을 투자합니다. 그렇게 해서 명문 대학에 들어간다 해도 이것이 끝이 아닙니다. 취업의 좁은 문을 뚫기 위해서 1학년 때부터 또다시 피 튀기는 경쟁을 해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년 실업률은 날로 증가하여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대학이 더 이상 미래를 보장해주지 못하는 어두운 현실로 인해 많은 젊은이들이 깊이 절망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요즘 20대를 일자리도 없고 소득도 없고 집도 없고 결혼도 안하고 출산도 안하고 거기다 희망도 없으니 6무 세대라고 합니다. 희망이 없기는 기성세대도 마찬가지입니다. 자녀교육에 올인하느라 노후대비를 하지 못하여 암울한 노후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역사상 그 어느 시대보다 풍요로운 시대에 살고 있지만 개개인이 체감하는 삶의 질은 오히려 나빠지고 있습니다. 자살률은 치솟고 우울증 환자는 늘어나고 있습니다. 이는 풍요로운 경제가 어두움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음을 말해줍니다. 예수님은 이런 어두운 세상에 큰 빛으로 오셨습니다. 이 빛은 각 사람에게 영원토록 비추는 참 빛이요 죄와 사망 권세를 근본적으로 물리치는 생명의 빛입니다. 절망에 사로잡힌 자에게 희망을 주는 소망의 빛입니다. 예수님은 어떤 어두움도 물리치는 구원의 빛이 되십니다. 예수님이 오시자 모든 것이 변했습니다. 갈릴리 바다의 어부였던 베드로, 요한, 야고보, 안드레가 큰 빛이신 예수님을 만남으로써 예수님의 제자요 인류의 스승이 되었습니다. 소경 거지가 눈을 뜨고 빛된 인생을 살게 되었으며 자기만을 위해 살던 세리 레위가 구원 받고 병든 내면이 치료되어 성마태의 인생을 살 수 있었습니다. 큰 빛 되신 예수님을 만날 때 모든 어두움이 물러가고 밝고 건강한 새 인생을 살게 됩니다.
  큰 빛 되신 예수님으로 인해 우리가 구체적으로 누리게 된 즐거움이 어떠합니까? 3절을 보십시오. “주께서 이 나라를 창성하게 하시며 그 즐거움을 더하게 하셨으므로 추수하는 즐거움과 탈취물을 나눌 때의 즐거움 같이 그들이 주 앞에서 즐거워하오니” 그들이 누릴 즐거움은 추수하는 농부의 즐거움이요, 탈취물을 나누는 군인의 즐거움입니다. 추수하는 즐거움은 봄부터 열심히 땀 흘리며 수고한 농부가 열매를 거둘 때 얻는 즐거움이며, 탈취물을 나누는 즐거움은 목숨 걸고 싸워 승리한 군인이 누릴 수 있는 즐거움입니다. 주변 강대국들의 잦은 침략으로 인해 슬픔과 두려움과 고통 속에 살던 이스라엘에게 있어서 이런 즐거움은 꿈도 꿀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각 사람의 심령과 이 세상 가운데서 그의 나라가 점점 커지게 하시고 그것을 통한 즐거움이 충만하게 하십니다. 우리는 언제 이런 즐거움을 느낄 수 있습니까? 신입생 피싱 하면서 받은 설문 조사지를 동역자들과 나누면서 탈취물을 나누는 즐거움을 맛보지 않습니까? 열심히 캠퍼스에 나아가 피싱을 해서 한 사람과 일대일을 하게 되었을 때 목자생활의 즐거움을 느낍니다. 한 양을 위해 간절히 기도하며 말씀으로 섬기던 양이 여름수양회에 참석하여 예수님을 만나고 거듭날 때 그동안의 모든 수고는 더 이상 기억되지 않고 큰 기쁨과 즐거움을 누립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드린 믿음의 수고를 헛되이 하지 않으시고 반드시 이에 합당한 상급을 주십니다. 이런 즐거움은 수고한 자만이 누릴 수 있습니다. 눈물로 씨를 뿌린 자는 반드시 기쁨으로 열매를 거두게 됩니다.
  흑암 중에 있던 백성들이 어떻게 이런 즐거움을 누릴 수 있습니까? 4절을 보십시오. “이는 그들이 무겁게 멘 멍에와 그들의 어깨의 채찍과 그 압제자의 막대기를 주께서 꺾으시되 미디안의 날과 같이 하셨음이니이다” 우리가 즐거워할 수 있는 것은 주님께서 우리의 무겁게 멘 멍에를 벗겨주셨기 때문입니다. 이 멍에는 죄의 멍에요 먹고 살기 위해 수고하는 삶의 멍에입니다. 이런 무거운 멍에로 인해 죄로 병들고 연약해진 인간은 고통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인생들을 불쌍히 여기사 무거운 멍에를 벗기시고 쉬게 해주셨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11:28) 뿐만 아니라 주님은 어깨의 채찍과 압제자의 막대기를 꺾으셨습니다. 이는 우리를 옭아매고 있는 사탄의 세력을 근본적으로 꺾으신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사탄의 세력을 꺾으시되 미디안의 날과 같이 하셨습니다. 이는 기드온의 300용사를 통해 이스라엘을 미디안의 군대로부터 구원하신 통쾌한 승리의 사건을 가리킵니다. 사사 시대에 이스라엘이 열심히 농사를 지어 추수할 때면 미디안 군대는 메뚜기 떼같이 몰려와 열매를 싹쓸이로 약탈해 갔습니다. 그러나 힘이 없는 이스라엘은 이를 뻔히 보면서도 땅을 치고 통곡할 뿐 어떻게 할 도리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기드온 300 용사와 함께 하사 메뚜기 떼같이 많은 미디안 군대를 통쾌하게 진멸하시고 탈취물을 나누는 즐거움을 누리게 하셨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사탄의 세력을 단번에 꺾으시고 우리에게 근본적인 승리를 주심으로 주 안에서 즐거움을 누리게 하셨습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5절을 보십시오. “어지러이 싸우는 군인들의 신과 피 묻은 겉옷이 불에 섶 같이 살라지리니” 이는 더 이상 전쟁이 없어지게 될 것을 노래한 것입니다. 선지자 이사야는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이 땅에 진정한 평화가 올 것을 예언하였습니다. 이 평화는 힘의 균형에서 오는 일시적인 평화가 아니라 독생자의 희생으로 우리에게 주시는 영원하고 참된 평화입니다. 예수님을 통해 구원받고 주님의 다스림을 받으면 더 이상 세상욕심과 미움, 증오심 때문에 남들과 싸우지 않게 됩니다. 큰 빛이 임하면 남북 간에도 참된 평화가 와서 손에 손을 잡고 제사장 나라 거룩한 백성으로 부르신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게 될 것입니다. 어두움을 물리치는 것은 빛입니다. 아무리 짙은 어두움이라도 큰 빛 앞에는 견디지 못합니다. 우리들에게 큰 빛 예수님을 보내주심으로 참된 즐거움과 평화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와 찬송을 드립니다.

제 2장, 한 아기로 오신 예수님(6,7)
  이 모든 복이 하나님께서 한 아기를 보내주심으로 이루어지게 됩니다. 사람들은 강보에 싸여 한 아기의 모습으로 오신 예수님에게 관심조차 두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 아기는 보통 아기가 아닙니다. 본래 하나님의 아들로서 태초부터 하나님과 함께 계셨던 분이 사람의 모양으로 이 땅에 내려오신 것입니다. 6절을 보십시오.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그분은 한 아기로 오셨지만 그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습니다. 정사란 통치권을 의미하는 것으로서 이는 이 아기가 우주와 세상 만민을 다스리는 왕이라는 뜻입니다. 선지자 이사야는 이 아기의 이름을 여러 가지로 말함으로써 이 아기가 우리 인생들에게 어떤 분이 되시는지 증거합니다.
첫째, 기묘한 모사(Wonderful counselor)
  기묘하다는 것은 인간의 이성을 초월한 신적 경지에 속한 것을 말합니다. 모사란 상담자, 위로자란 뜻입니다. 사람들은 험한 세상에서 끊임없는 문제와 사건을 만납니다. 장차 어떤 삶을 살 것인가? 어떤 대학에 갈 것인가? 전공은 무엇을 할 것인가? 어떤 직장에 취직할 것인가? 결혼은 어떻게 할 것인가? 우리 인생은 끊임없이 선택과 결단이 요구됩니다. 어떤 선택을 하는가에 따라 인생이 달라집니다. 인생의 방향을 잡고 중요한 결정을 해야 하는 순간에 명쾌한 방향을 제시해주는 지혜로운 조언자가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답답한 심정을 해결받기 위해 선배 멘토, 지도교수님을 찾아가기도 하고 점쟁이에게 자기의 인생을 맡기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누구도 책임 있는 명확한 방향을 제시해 주지 못합니다. 하나님을 떠난 이스라엘은 이방신을 섬기는 제사장들과 술객들과 신접한 자들을 찾아감으로써 멸망의 길을 자초하였습니다.(사8:19) 사람은 죄인으로서 근본적으로 무지하고 또 문제를 해결할 능력이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기묘한 상담자가 되셔서 우리의 근본 문제를 깨닫게 하시고 진리의 바른 길로 가도록 상담해주십니다. 이사야 11:2절은 말씀합니다. “그의 위에 여호와의 영 곧 지혜와 총명의 영이요 모략과 재능의 영이요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영이 강림하시리니” 이 예수님의 상담을 받는다면 해결 받지 못할 문제가 없습니다. 예수님은 진리의 말씀을 통하여, 우리의 기도를 응답하심으로, 때로는 성령의 역사를 통해서, 때로는 주의 종들을 통하여 기묘한 상담자 되신 예수님을 만나게 하십니다. 이 예수님의 인도함을 받을 때 구원과 영생을 누리는 최고의 인생을 살게 됨을 믿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위로자가 되셔서 인생들의 슬픔과 고통을 아시고 진리의 말씀으로 위로해주십니다. 예수님은 외아들을 잃고 깊은 슬픔과 절망에 빠져 있던 과부를 “울지 말라” 위로해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지금도 기묘한 모사가 되어주십니다.
둘째, 전능하신 하나님(Mighty God)
  예수님은 연약한 아기의 모습으로 오셨지만 본질에 있어서는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천지를 지으신 창조주이시며, 광풍을 잔잔케도 하시고 죽은 자도 살리시는 권능의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사탄의 권세를 파하시고 죽음 권세도 이기신 부활의 주님이십니다. 예수님에게는 불가능이 없습니다. 사도바울은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4:13)” 고백하였습니다. 사도 바울은 몸에 가시를 가진 병약한 사람이었지만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었을 때 누구보다 더 많이 수고하여 많은 교회를 개척하였고, 기독교 신앙의 기초를 놓는 위대한 삶을 살았습니다. 우리도 비록 연약할지라도 전능하신 예수님을 의지할 때 풍성한 생명의 열매 맺는 위대한 하나님의 종이 될 것을 믿습니다.
셋째, 영존하시는 아버지(Everlasting father)
  예수님은 영원토록 우리와 함께 하시는 아버지가 되십니다. 우리에게 있어서 아버지는 어떤 존재입니까? 아버지는 한 가정의 보호자로서 공급자요, 인도자요, 든든한 지지자이며 때로는 엄한 훈련관이 됩니다. 그러나 육신의 아버지는 아무리 훌륭해도 한계가 있고 언젠가는 떠나야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영원토록 변함없는 사랑으로, 진리의 말씀으로 양육해주시고, 일생 필요한 것을 공급해 주시고, 악의 세력에서 보호해주시는 우리의 영원한 아버지요 참 아버지가 되십니다. 자식이 좀 부족해도 결코 정죄하거나 잘라버리지 않으십니다. 믿음으로 나오기만 하면 언제든지 있는 모습 그대로 받아주시고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해주시는 사랑이 풍성하신 아버지이십니다. 그리고 마침내는 자식의 죄를 대신해 십자가를 지시고 죄 값을 담당해주신 희생적인 아버지이십니다. 우리에게 이런 아버지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릅니다. 영존하시는 아버지 예수님을 찬양합니다.
넷째, 평강의 왕(Prince of peace)
  예수님은 우리를 평강으로 다스려주시는 왕이십니다. 오늘 날 현대인들은 불안한 장래와 무한 경쟁사회 속에서 수많은 스트레스를 받아 내면에 진정한 평강이 없습니다. 스트레스에서 벗어나고자 여행을 떠나기도 하고 영화나 음악, 운동이나 컴퓨터 게임에 몰입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런 것들은 잠시 스트레스에서 해방시켜줌으로 일시적인 평안을 가져다주기는 하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지는 못합니다. 하나님과 사람 사이를 불화하게 하는 죄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세상 어디에도 진정한 평강은 없습니다. 우리의 노력이나 돈으로도 얻을 수 없습니다. 오직 평강의 왕이신 예수님을 통해 죄 사함 받고 주님의 다스림을 받을 때에만 우리는 평강을 누릴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생명을 십자가에 내어주심으로 우리에게 평강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또한 우리를 사랑과 공의와 은혜와 진리로 다스려주심으로 불안하고 두렵지 않고 평안을 누리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주시는 평강은 누구도, 어떤 환난도 빼앗을 수 없는 진정한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한 아기로 겸손히 낮아져 오심으로 우리 인생들의 구주요 왕이 되어주신 주님의 은혜를 감사 찬송드립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나라는 어떻게 지속될 수 있습니까? 7절을 보십시오. “그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 또 다윗의 왕좌와 그의 나라에 군림하여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지금 이후로 영원히 정의와 공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 세상나라는 흥망성쇠를 거듭합니다. 절대 망할 것 같지 않던 바벨론도 망하고 로마도 망했습니다. 이 시대의 초강대국인 미국도 예전 같지 않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한 아기로 오시면서 출발한 이 역사는 시작은 미미한 것 같았지만 멸시받던 갈릴리를 영화롭게 하시고 그 나라는 그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합니다. 예수님은 다윗의 왕좌와 나라에 군림하여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그 나라를 영원히 정의와 공의로 보존하실 것입니다.(삼하7:16) 이는 하나님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기 때문입니다. 이사야는 가장 힘든 시기에 한 아기를 통해서 이런 놀라운 비전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한 아기를 주시겠다는 예언의 말씀은 약 730년 후 예수님께서 동정녀 마리아의 몸을 빌려 한 아기로 탄생하심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지금도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모든 인생들 속에 구원 역사를 이루고 계심을 믿고 감사 찬양을 드립니다.
  이제 며칠 있으면 성탄절을 맞이하게 되지만 세상은 밝고 희망찬 기쁨의 소식보다는 어둡고 우울한 소식들로 가득 차있습니다. 북한은 공포정치를 강화하여 언제 도발할지 모르는 불안한 상황을 보이고 있고 강대국들의 이권 다툼의 틈바구니에서 힘과 지혜를 모아 대처해도 시원치 않을 판에 정치 지도자들은 연일 정쟁만을 일삼음으로 희망이나 비전이 보이지 않습니다. 이런 가운데 사람들은 극도로 이기적이 되어 제 몫 챙기기에 열을 올리고 각박해져 가고 있습니다. 의료계도 갈수록 힘들어지고 있는데다가 원격진료와 영리병원허용이라는 메가톤급 변화를 앞두고 있어 저의 관심은 온통 현실문제에 빼앗겨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사야에게 주신 말씀을 통해 저의 어두운 내면에도 빛을 비춰주시고 한아기로 오신 예수님을 통해 새로운 비전을 보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이 어둡고 절망적인 시대 가운데에 저희를 통해 새로운 역사를 이루기를 원하십니다. 제가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와 힘과 위로를 덧입고 빛으로 오신 예수님을 증거하며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드리는 삶을 살기를 기도합니다. 이번 성탄절에 죄와 어둠의 세력 아래 절망하고 고통가운데에 있는 캠퍼스 양들이 다 나와 한 아기의 모습으로 오신 예수님을 깊이 만남으로 예수님 안에 진정한 평화를 함께 누리기를 기도합니다.

결론적으로, 무력하고 연약한 한 아기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은 흑암에 있던 우리에게 큰 빛이 되시고 모든 죄와 사망의 멍에를 완전히 꺾으셔서 진정한 구원을 누리게 하신 구원의 주가 되십니다. 그분은 기묘한 모사가 되시고 전능하신 하나님이 되시고 영존하시는 아버지가 되시고 평강의 왕이 되셔서 우리의 진정한 희망이 되어주심을 감사 찬송 드립니다. 성탄절에 나를 위해 탄생하신 아기 예수님을 통해 진정한 구원의 기쁨을 충만히 누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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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호     글 제 목  작성자 작성일 조회
675 누가복음 [2011년 누가복음 제 9강]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리라 관리자 2011-05-15 2989
674 마태복음 [2009년마태복음제38강]열매 맺는 백성이 받으리라 관리자 2009-02-08 2987
673 요한복음 [2010년요한복음제16강]참된 생명의 길 리스닝 2010-06-21 2984
672 요한복음 [2010 요한복음7강]오병이어를 축사하신 예수님 리스닝 2010-04-18 2981
671 출애굽기 [2009년출애굽기제10강] 내 말을 잘 듣고 지키라 관리자 2009-06-14 2973
670 로마서 [2010신년말씀제1강]복음은 하나님의 능력-서홍일 휴화산 2010-01-14 2967
669 출애굽기 [2009년출애굽기제2강] 왕자에서 나그네로 관리자 2009-04-19 2965
668 요한복음 [2010 요한복음4강]거듭남 리스닝 2010-03-21 2964
667 마가복음 [2012년 마가복음 제3강]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관리자 2012-03-25 2961
666 사무엘상 [2011년 신년수양회 제1강]미스바의 영적 부흥(고영훈) 관리자 2011-01-02 2961
665 요한복음 [2009가을학기준비특강-2] 내 안에 거하라 관리자 2009-08-23 2955
664 이사야 [2013년 성탄절 제2강]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관리자 2013-12-15 2950
663 누가복음 [2011년 누가복음 제30강] 영생을 얻는 길 관리자 2011-11-13 2948
662 시편 2010년 신입생 바이블 아카데미 4강 리스닝 2010-04-01 2939
661 이사야 [2010년 이사야서 제4강]포도원의 노래 리스닝 2010-10-03 2937
660 누가복음 [2011년 누가복음 제10강]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관리자 2011-05-22 2936
659 출애굽기 [2009년출애굽기제15강] 영화롭고 아름다운 제사장 관리자 2009-07-19 2936
658 야고보서 [2010년야고보서제2강]참된 믿음 리스닝 2010-08-15 2935
657 마가복음 [2010년 가을제자수양회 주제1강] 열둘을 세우신 예수님 관리자 2010-10-31 2933
656 창세기 [2013년 창세기 제5강] 셋을 주신 하나님 관리자 2013-04-21 2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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