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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nday Worship Message
주일예배메시지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5-01-04 (일) 13:00
분 류 고린도전서
첨부#1 2015_신년2강_십자가의_도-1(고영훈).hwp (56KB) (Down: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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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신년 말씀 제2강] 십자가의 도

2015년  신년 말씀 제 2 강                                                                   고영훈

십자가의 도

말씀/ 고린도전서 1:1-31
요절/ 고린도전서 1:18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Happy new year! 을미년 새해가 밝아왔습니다. 올해는 양의 해입니다. 양들이 살아나고 성장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좋은 군사로 빚어지기를 간절히 바라시는 하나님의 소원이 이루어지기를 기도하며 새해를 출발합니다. 고린도 전서는 바울이 쓴 서신서중에서 로마서와 쌍벽을 이루는 말씀입니다. 로마서가 교리적인 특성을 지니고 있다면 고린도 전서는 복음의 진리가 어떻게 실제적인 문제를 해결해 주는가를 말씀합니다. 고린도 교회에는 크고 작은 많은 문제들을 안고 있었습니다. 특히 사람을 중심으로 파를 나누어 서로 다투는 문제가 심각하였습니다. 이런 분쟁의 원인은 사람 중심, 인간의 지식 중심이기 때문이었습니다. 바울은 오늘 말씀을 통하여 해결책을 제시해 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그리스도 중심이 되고 그리스도 십자가에 집중하는 것입니다. 우리도 오늘 말씀을 통하여 2015년도 대망의 새해를 시작할 때 복음의 핵심인 그리스도 십자가의 도를 심령에 깊이 영접하여 하나님의 능력을 덧입음으로 생명 구원역사에 귀하게 쓰임 받을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I.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헛되지 않게(1-17)
  1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의 뜻을 따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로 부르심을 받은 바울과 형제 소스데네는” 사도 바울은 자신이 사도가 된 것은 자기 의지나 어떤 모임에 의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따라 되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소스데네는 바울이 고린도 개척 당시 고린도의 회당장이었는데 바울이 전한 복음을 영접하고 그 후에는 바울과 생명이 결탁된 복음전파의 동역자가 되었습니다. 고린도 교회는 사도 바울의 제 2차 전도여행 때 개척된 교회입니다. 고린도는 발칸 반도의 남쪽에 위치한 항구도시였습니다. 고린도는 경제적으로 매우 부유하였고 헬라 철학도 유행했습니다. 또 고린도인들은 고대 그리스의 3대 경기 중의 하나로서 이스무스에서 열리는 스포츠에 매료되어 열광하고 있었습니다. 또한 아프로디테 신전과 연관되어 수천 명의 신전 창기들이 있어 이들과의 성적 타락이 극심하였습니다. 또한 식육시장은 신전에 바쳤던 제물들을 팔면서 번창했습니다. 고린도 사람들은 잘 먹었으며 아무런 죄책감 없이 그들의 강한 성적 욕구를 만족시켰고 헬라 철학을 기초로 인간의 지혜를 즐겼습니다. ‘고린도인과 같이 되다’라는 헬라어 동사는 ‘음란한 행위를 한다’라는 의미였습니다. 이런 죄악된 도시 고린도를 사도 바울이 개척하였습니다. 그는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부부와 함께 텐트 메이커로 일하면서 1년 6개월 동안 열심히 교회를 개척하였습니다. 그 결과 많은 고린도 사람들이 주님을 믿고 구원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 후 바울은 고린도를 떠났고 아볼로가 이곳으로 와서 역사를 계승하여 섬겼습니다.
  2절을 보십시오.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 곧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받은 자들과 또 각처에서 우리의 주 곧 그들과 우리의 주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들에게” 바울은 고린도 교회를 ‘하나님의 교회’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교회란 하나님이 소유권을 갖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이 주인이시요, 하나님의 소유입니다. 사도 바울이 처음부터 고린도 교회를 하나님의 교회라고 강조한 이유는 고린도 교회가 사람 중심으로 파벌을 형성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또한 바울은 고린도 교회를 말할 때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받은 자들”이라고 합니다. 교회의 본질은 교회 건물이나 조직이 아니라 사람임을 알 수가 있습니다. 즉, 세상에서 구별되어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으로 부르심 받은 성도들의 공동체가 교회입니다. 그리고 고린도 교회를 “우리의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자들”이라고 합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른다는 것은 예수님을 구원자요, 삶의 주인으로 인정하고 살아간다는 신앙고백입니다. 예수님을 그리스도 주로 신앙 고백하는 사람들의 공동체가 교회입니다. 바울은 그들에게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기원합니다.
  인사를 마친 바울은 이제 고린도 성도들에 대해 감사하고 있습니다. 그의 감사제목이 무엇입니까? 5절을 보십시오. “이는 너희가 그 안에서 모든 일 곧 모든 언변과 모든 지식에 풍족하므로” 바울은 먼저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일 곧 언변과 지식이 풍족한 것을 감사했습니다. 여기서 ‘언변’은 복음을 말로 잘 설명하는 능력이고, ‘지식’은 복음 안에 있는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입니다. 당시 고린도 성도들은 세상의 기준으로 볼 때 약하고 천하고 멸시받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그들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자 그들은 담대하게 복음을 전하는 자들로 변화되었습니다. 3명으로 시작된 고린도 교회가 불과 5년 만에 50명 예배로 성장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외적인 성장뿐만 아니라 그들 가운데 바울이 전한 그리스도에 관한 증거가 견고해졌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세상에서 가장 타락한 고린도에 살면서도 거룩한 성도들로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그들에게 하나님의 교회를 섬기는데 필요한 영적 은사들을 허락해 주셨습니다. 믿음, 사랑, 지식과 같은 내적 은사를 비롯하여 이적 행함, 병 고침, 방언, 예언과 같은 외적인 은사들까지 풍성하게 허락해 주셨습니다. 또한 그들은 세상에서 잘 먹고 잘 사는데 희망을 두지 않고 주님의 나타나심을 기다리는 재림신앙과 하늘나라에 대한 산 소망으로 살았습니다. 이 뿐만이 아닙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 성도들이 세상 끝 날까지 흠잡을 데 없는 사람으로 세워주실 것을 믿었습니다. 그가 이런 확신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미쁘신 하나님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것으로 끝났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고린도 교회는 바울이 떠난 후에 여러 문제에 휘말리게 되었습니다. 그럼 고린도 교회의 문제가 구체적으로 무엇입니까? 10절을 보십시오. “형제들아 내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모두가 같은 말을 하고 너희 가운데 분쟁이 없이 같은 마음과 같은 뜻으로 온전히 합하라” 그들은 같은 신앙공동체 안에 있으면서도 서로 말이 다르고 마음이 다르고 뜻이 달랐습니다. 그래서 서로 사랑하고 동역해야 할 형제들끼리 서로 대적하고 미워하고 시기하고 갈등하며 분쟁했습니다. 바울은 이 사실을 글로에의 집 사람들을 통해 전해 들었습니다. 그들의 보고에 의하면 ‘나는 바울 파다’ ‘나는 아볼로 파다’ ‘나는 게바 파다’ ‘나는 그리스도 파다’하며 다투고 있었습니다. 바울 파는 바울이 고린도 교회를 개척할 때 바울에게 은혜를 받고 자란 개척기 조상들이었건 것 같습니다. 아볼로 파는 아볼로의 학식과 웅변적인 메시지에 매료된 사람이거나 아볼로에게 직접 복음을 듣고 자란 양들입니다. 게바 파는 수리아 지역에서 베드로의 선교 사역을 통해 회심한 유대인들로서 고린도 교회에 들어온 유대인 성골파입니다. 이들은 숫적으로는 얼마 되지 않았지만 보수꼴통인 자기들이 중요 직책을 맡아야 교회가 제대로 잘 운영될 수 있다고 주장하였습니다. 그리스도 파는 이 세 그룹에 대한 반발로 생겼는데 자신들은 그리스도와 직통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입니다. 이들 모두는 신학적인 교리 때문에 분파를 나눈 것이 아니라 지도자에 따라서 파를 나누었습니다. 사실 바울이나 아볼로나 게바가 파를 조성한 것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들을 추종하는 사람들이 자기 세력을 키우기 위해서 파를 만든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이 좋아하는 사람을 높이고 그의 추종자가 된 것을 자랑했습니다. 그리고 다른 분파와 서로 대적하며 경쟁하고 미워하며 시기하였습니다. 표준 새 번역에는 “어느 한 쪽을 편들고, 다른 쪽을 얕보면서 뽐냈습니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심령을 울리는 아볼로 목자님의 웅변적인 메시지, 아볼로 목자님은 정말 이 시대의 불의 사자야!” 하면 바울 파는 “무슨 개 풀 뜯어 먹는 소리야 메시지하면 신앙의 경륜이 있는 바울 목자님이시지” 하며 바울을 자랑하였습니다. 이러한 분쟁은 그리스도 중심이 아닌 인간 중심에서 나온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역사를 그리스도 중심으로 섬기지 아니하고 사람 중심으로 섬겼습니다. 이로 인해 교회는 영적인 모임이 되기보다는 정치적인 모임이 되어 성령의 그릇을 이룰 수 없었습니다. 세상에서는 서로 갈등하고 경쟁하는 것이 무한경쟁 사회 속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큰 동력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교회에서는 이는 치유 받아야 할 심각한 죄입니다.
  바울은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고자 합니까? 먼저 그들의 문제를 지적하며 책망합니다. 13절을 보십시오. “그리스도께서 어찌 나뉘었느냐 바울이 너희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혔으며 바울의 이름으로 너희가 세례를 받았느냐”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변하지 않는 분이십니다. 그런데 이런 예수 그리스도를 어떻게 나눌 수 있겠습니까? 인간은 그 누구도 예수 그리스도를 대신할 수 없습니다. 바울이라 하더라도 그들을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죄와 죽음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없습니다. 또한 세례 문제와 연결하여 바울은 자신이 세례를 많이 베풀지 않았음을 감사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바울에게 세례를 받았다고 자랑하며 파벌을 형성할 수 있는 위험이 있기 때문입니다. 17절을 보십시오. “그리스도께서 나를 보내심은 세례를 베풀게 하려 하심이 아니요 오직 복음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로되 말의 지혜로 하지 아니함은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헛되지 않게 하려 함이라” 바울은 그리스도가 자신을 보내심은 세례가 아니라 복음을 전하게 하기 위함임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또한 바울은 복음을 전할 때 말의 지혜로 하지 않았습니다. 말의 지혜라는 것은 말을 철학적으로 아름답게 하는 수사학이나 변론술을 의미합니다. 그는 복음을 전할 때 철학이나 수사적인 말의 기법을 의지하지 않았습니다. 이는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헛되지 않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말의 지혜는 결국 전하는 사람을 드러내고 십자가의 말씀을 헛되이 만듭니다. 헛되이 만든다는 것은 형식만 남기고 내용은 없어진다(empty)는 뜻입니다. 말이 많고 논쟁이 많은 곳은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형식일 뿐 십자가의 능력은 사라집니다. 하나님의 자녀요 그리스도 예수의 제자라는 증거는 많은 지식이나 말 잘 하는데 있지 않습니다. 오직 그 속에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중심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곧 우리의 삶의 중심에 예수님의 십자가가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예수님의 십자가가 내 중심에 있을 때 십자가를 중심으로 한 견고한 신앙과 성숙한 인격이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우리 삶 속에 십자가가 빠지면 복음 신앙의 핵심이 빠지는 것입니다. 이는 곧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헛되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 내면에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중심이 되게 하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또한 복음을 전할 때도 다른 어떤 것보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증거하는 종들이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II. 십자가의 도, 하나님의 능력(18-31)
  18절을 보십시오.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바울이 전한 복음의 핵심은 십자가의 도입니다. 여기서 “십자가의 도”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관한 말씀, 십자가의 복음, 십자가의 메시지를 가리킵니다. 십자가의 메시지는 고린도 전서 15장 3,4절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의 내용입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내의 분쟁 문제가 십자가의 복음을 잃어버린 데서 비롯되었음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고린도 성도들이 다시금 이 십자가의 말씀위에 굳게 서도록 권면하고 있습니다. 십자가의 메시지가 선포될 때 두 가지 극단적인 반응이 나타납니다. 하나는 십자가의 도를 미련하게 여기고 십자가를 거부하고 배척하는 것입니다. 이런 자들은 멸망하는 자들입니다. 또 하나는 십자가의 도를 영접하고 구원을 얻는 자들입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게 됩니다. 동일한 십자가인데도 십자가에 대한 반응에 따라서 멸망과 구원이 결정됩니다. 이것은 어느 시대에나 동일합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영접치 않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심판이요 영접하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 됩니다. 어떤 점에서 그렇습니까? 당시에는 철학자들이 지혜로운 자로 여김을 받았습니다. 그들은 인생의 의미와 행복을 논하며 우주의 근본원리가 무엇인가를 탐구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인간의 지혜로 우주의 근원이신 창조주 하나님을 만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자신들의 지혜를 자랑하고 마음이 교만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스스로 지혜 있다 하는 자들의 지혜를 멸하시고 총명한 자들의 총명을 폐하십니다. 바울은 이 세상의 지혜가 다 헛되다고 선언합니다. 20절을 보십시오. “지혜 있는 자가 어디 있느냐 선비가 어디 있느냐 이 세대에 변론가가 어디 있느냐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지혜를 미련하게 하신 것이 아니냐”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전도의 미련한 것 즉, 어리석게 들리는 십자가의 메시지를 통하여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십니다. 십자가의 말씀을 영접하는 자는 누구든지 구원을 얻습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십자가의 도보다 표적을 구했습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께서 행하셨던 과거의 그 능력을 그리워했습니다. 그래서 약속된 메시아가 오셔서 다시 한 번 더 강력한 능력으로 과거의 영광을 회복시켜 주시기를 기대했습니다. 이런 유대인들에게 ‘십자가에 못 박힌 메시아’는 전혀 생각도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이 때문에 십자가의 도는 그들을 걸려 넘어지게 하는 돌이었습니다. 헬라인은 지혜를 찾았습니다. 그들은 얼마든지 그들의 철학으로 삶의 행복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그들이 볼 때 자신의 원수들에게 사로잡혀 십자가에 처참하게 죽은 신의 이야기는 넌센스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으로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에게 십자가의 도는 무엇입니까? 24,25절을 보십시오. “오직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하나님의 어리석음이 사람보다 지혜롭고 하나님의 약하심이 사람보다 강하니라”
첫째,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The message of the cross is the power of God. 인간은 죄로 인하여 사망에 이르고 영원한 파멸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이 죄와 죽음의 세력에서 우리를 구원해 줄 능력을 가진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철학으로도 안되고 도덕으로도 안됩니다. 내 의지로도 안되고 내 힘으로도 안됩니다. 오직 예수님께서 십자가위에 대속 제물이 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 죄를 대신 담당해 주심으로 죄 사함과 구원을 얻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가 우리를 영원한 파멸에서 영원한 생명으로 옮겨 주셨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죄를 없이 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또한 예수님의 십자가는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는 능력이 있습니다. 로마서 1:16은 말씀합니다.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
둘째,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옛날부터 사랑과 공의를 조화시키는 문제는 가장 어려운 문제였습니다. 죄를 미워하면서도 어떻게 죄인을 사랑할 수 있겠습니까? 결국 죄를 없이 하기 위해서는 죄 지은 그 당사자를 죽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죄를 미워하시고 철저히 벌하시는 하나님의 공의와 죄인을 지극히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이 잘 조화되어 나타났습니다. 이것은 죄를 용납하실 수 없는 하나님의 거룩한 속성도 만족시키고, 죄인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의 속성도 만족시켰습니다. 여기에 죄인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지혜가 잘 나타나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죄인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지혜의 극치입니다.
  그런데 우리를 죄에서 구원해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지혜인 십자가의 말씀이 어떻게 고린도 교회내의 분파 문제까지도 해결해 줄 수 있을까요? 바울은 고린도전서 1장에서 십자가의 말씀으로 시작해서 마지막 15장 부활장에서도 다시 십자가의 말씀으로 끝을 맺습니다. 고전 15:2 “너희가 만일 내가 전한 그 말을 굳게 지키고 헛되이 믿지 아니하였으면 그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으리라” 결국 그리스도의 십자가만이 고린도 교회 내에 일어나는 모든 문제를 근본적으로 치유하고 해결해줄 수 있습니다. 사실 고린도 성도들도 처음에는 십자가의 말씀에 은혜를 받고 신앙생활을 출발했습니다.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님의 십자가 사랑에 감사하여 헌신하였습니다. 열심히 제자를 양성했습니다. 그런데 세월이 흐르면서 자신도 모르게 십자가의 도를 서서히 잃어버렸습니다. 그러자 그리스도 중심으로 하나가 되었던 교회가 이제는 자신들이 좋아하는 지도자를 중심으로 파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영적인 모임이었던 것이 사람 중심의 모임이 되고 말았습니다. 문제는 이것만이 아니었습니다. 성도들이 세상 법정에서 소송을 하며 싸우고, 우상 앞에 바친 제물을 먹는 것 때문에 서로 다투었습니다. 심지어 교회 내의 음행과 서로 은사를 자랑하며 시기하고 미워했습니다. 한마디로 십자가의 도가 흔들리자 모든 것이 다 흔들렸습니다. 만일 고린도 성도들 가슴에 십자가의 도가 살아 있었다면 이 많은 문제들을 복음 안에서 은혜롭게 해결 했을 것입니다. 서로 나뉘어 다투기 보다는 그리스도 안에서 서로 사랑하였을 것입니다. 타락한 고린도에서 구별되어 주님 믿으며 거룩하게 살고자 하는 동역자들이 얼마나 귀한 사람들입니까? 바울 파 사람들도 사랑스럽게 보이고, 아볼로 파, 게바 파, 그리스도 파 사람들도 다 사랑스럽게 보였을 것입니다. 십자가의 은혜와 감격이 살아 있다면 어떻게 형제를 세상 법정에 세우고, 버젓이 음행 죄를 지으며, 은사를 자랑하는 교만을 떨 수가 있겠습니까? 또 우상에게 바친 고기를 먹는 문제로 형제가 힘들어 하면 어떻게 해서든 머리를 맞대고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을 것입니다. 또한 십자가의 능력을 믿는데 어떻게 그리스도의 부활을 부인할 수가 있겠습니까? 결국 ‘십자가의 도’가 모든 문제의 답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문제 많은 고린도 교회를 도우면서 다른 말씀이 아니라 십자가의 도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도 새해를 시작할 때 우리 가운데 해결되지 않는 내적, 외적 문제들로 인해 걱정과 근심이 들게 됩니다. 새해가 왔다고 뭐 달라지는 것이 있는가 생각하기 쉽습니다. 학생 개척 역사가 몇 년 째 답보 상태에 있습니다. 캠퍼스에서 영적 소원 있는 양들을 찾기가 하늘에 별을 따는 것보다도 힘들게 보입니다. 그 중에 소원이 있어 보여 어렵게 말씀을 공부하지만 연말이 되면 소원을 잃고 어떻게 수습해야 할지 난감한 경우가 많습니다. 섬기는 모임에서도 인간적인 갈등으로 고통을 당하기도 합니다. 또한 학사목자들은 직장 문제. 자녀 문제가 많이 생깁니다. 학사들은 취업문제가 무척이나 어렵게 여겨집니다. 이 외에도 질병으로 인한 건강 문제, 물질 문제 등 어느 것 하나 만만하게 해결되어질 문제가 없습니다. 우리 가운데 있는 문제들을 찾아내려면 끝이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나름대로 이런 문제들을 해결할 길을 찾기 위해서 시간만 나면 서로 이야기하고 해결책을 찾아봅니다. 그러나 사실 뾰족한 해결책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답답한 마음이 들고 힘들어 합니다. 그럼 정말 해결책은 없는 것입니까? 2015년 새해에는 어떻게 하면 이 어려운 문제들을 해결해 나갈 수 있을까요?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우리는 좀 더 기도하며 동역자간의 지혜를 모아야 할 필요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 모두가 ‘십자가의 메시지’에 집중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만이 문제 해결의 답이라는 믿음으로 십자가에 좀 더 집중하는 것입니다. 문제가 어려울수록 가장 기본적인 핵심 진리에 집중해야 한다는 것은 문제를 해결하는 분명한 원리입니다. 내게 임한 십자가, 나를 구원한 십자가, 그 십자가를 통한 하나님의 능력에 집중해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새로운 영적 힘을 덧입게 되고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게 됩니다. 우리 내면에 십자가 복음으로 인한 은혜와 감동이 살아 있다면 누구에게나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납니다. 사도 바울 이상의 열정과 스피릿으로 하나님의 역사를 섬길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십자가의 능력으로 죄에 빠져 있는 이 시대의 청년들을 구원하고 제자로 세울 수가 있습니다.
  저에게도 새해를 맞이하여 십자가의 도 말씀을 주셔서 감사를 드립니다. 제가 섬기는 치대팀에도, 그리고 개인적으로도 많은 문제를 안고 한 해를 출발하게 되었습니다. 올 해부터는 치대에도 신입생 양들이 들어오는데 어린 이들을 어떻게 섬겨야 할지 감을 잡을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팀내의 학사님들 취직과 결혼까지 기도가 많이 필요함을 느낍니다. 또한 개인적으로도 자녀들 진로와 교육 문제, 점점 힘들어 지는 개업가에서 생존하기 등등 어느 것 하나 쉬운 문제가 없습니다. 이제 나이도 한 살 더 먹어 건강이 현실문제로 다가왔습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을 통하여 부족한 나에게 임하였던 십자가를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죄로 인해 절망하고 고통하던 죄인에게 십자가 말씀을 듣게 하시고 그 십자가 앞에 눈물로 죄를 자복하고 죄사함 받았던 은혜가 생각이 났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문제들 앞에서 내게 임한 십자가, 나를 구원하신 그 십자가를 바라보니 새롭게 심령에서부터 감사와 찬송이 흘러나오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내 앞에 놓여진 여러 문제들을 이 십자가를 붙들고 감당하므로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고자 하는 영적 소원을 덧입게 되었습니다. 제가 예수님의 십자가 말씀을 굳게 붙들고 새해에는 하나님의 생명구원역사에 귀히 쓰임 받으며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는 귀한 한 해가 될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결론적으로, 십자가의 도는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지혜입니다. 새 해에는 이 믿음으로 십자가의 복음을 사랑하고 자랑하는 귀한 모임이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무엇보다도 캠퍼스의 죄로 방황하는 영혼들이 십자가의 복음을 듣고 생명이 살아나는 역사가 흥왕하게 일어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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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5 요한복음 [2015년 요한복음 제19강]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관리자 2015-07-19 2803
634 요한복음 [2010 요한복음7강]오병이어를 축사하신 예수님 리스닝 2010-04-18 2795
633 시편 2010년 신입생 바이블 아카데미 4강 리스닝 2010-04-01 2789
632 느헤미야 [2011년 제자수양회 제4강]개혁자 느헤미야- 진요셉 리스닝 2011-06-13 2786
631 이사야 [2010년 이사야서 제4강]포도원의 노래 리스닝 2010-10-03 2786
630 출애굽기 [2009년출애굽기제15강] 영화롭고 아름다운 제사장 관리자 2009-07-19 2782
629 마가복음 [2012년 마가복음 제12강] 주는 그리스도 관리자 2012-06-03 2781
628 야고보서 [2010년야고보서제2강]참된 믿음 리스닝 2010-08-15 27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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