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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nday Worship Message
주일예배메시지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5-07-19 (일) 12:25
분 류 요한복음
첨부#1 2015_요한복음_제19강-1(오정훈).hwp (54KB) (Down: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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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요한복음 제19강]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2015년 요한복음 제19강                                                       오정훈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말씀/요한16:1-33
요절/요한16:13 “그러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스스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들은 것을 말하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성령의 역사하면 보통 어떤 것이 생각나십니까? 바다가 갈라지고 하늘에서 불이 내려오고 소경이 눈을 뜨는 그런 기적의 역사, 능력의 역사를 생각하지 않으시나요? 물론 이런 것도 성령께서 이루시는 역사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근본 성령께서 이루시는 역사는 죄를 깨닫고 회개하는 역사이며 하나님이 이루실 비젼을 보고 붙드는 소망의 역사입니다. 이 시간 진리의 성령께서 하시는 일을 배우므로 염려가 많은 세상에서 위로와 용기를 얻고 죄와 싸워 이기며 하나님이 이루실 원대한 비젼을 붙들므로 진정으로 세상을 이기는 승리하는 삶 살게 하시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1. 진리의 성령의 오시면(1-15)
  예수님은 제자들이 실족하지 않도록 그들이 받을 핍박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2절을 보십시오. “사람들이 너희를 출교할 뿐 아니라 때가 이르면 무릇 너희를 죽이는 자가 생각하기를 이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라 하리라.” 때가 이르면 제자들은 핍박을 받아 출교당하게 됩니다. 출교는 회당 중심의 사회에서 정상적인 사회생활하지 못하도록 쫓겨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나 제자들이 받을 핍박은 거기서 그치지 않고 때가 이르면 제자들을 죽이는 극한 핍박이 일어나게 됩니다. 그런데 문제는 핍박하는 자들이 이렇게 하는 것을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라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3절을 보십시오. “그들이 이런 일을 할 것은 아버지와 나를 알지 못함이라.” 유대인들은 하나님을 안다고 하였지만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하나님이 보내신 아들이 어떤 분이신지 몰랐습니다. 그들은 무지한 열심으로 자기 의를 이루고자 제자들을 죽이는 악을 저지르게 됩니다. 이 때 제자들은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기억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미리 말씀하신 바 그들이 받을 핍박에 대해 기억하고 실족하지 않아야 합니다. 예수님으로 인해 실족하지 않는 자가 복이 있습니다.
  5,6절을 보십시오. 예수님께서 이제 아버지께로 가시는데 제자들은 두려워서 어디로 가시는지 묻는 자가 없고 오히려 마음에 근심만 가득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제자들에게 자신이 가시는 것이 어떤 점에서 유익이 되는지 가르쳐 주십니다. 7절을 다 같이 읽어보시겠습니다.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 실상이란 말씀은 제자들이 근심하는 것과 달리 실제로는 예수님께서 아버지께로 가시는 것이 제자들에게 유익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예수님이 가시면 보혜사 성령께서 오시고 가시지 않으시면 보혜사께서 오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어떤 점에서 보혜사 성령님이 오시는 것이 유익이 됩니까? 보혜사는 상담자(Counselor), 위로자, 보호자란 뜻으로 우리를 보호하시고 위로하시고 힘을 주시는 성령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계실 때는 제자들의 모든 것을 돌보시고 책임져 주셨지만 육신의 한계에 갇혀 있으셨기에 항상 함께 할 수 없으셨습니다. 그러나 이제 보혜사께서 오시면 시공간을 초월하여 언제 어디라도 제자들과 항상 함께 하시므로 그들의 인도자요 보호자가 되셔서 힘주시고 격려하시고 위로하여 주실 것입니다. 이 보혜사를 의지할 때 자립적인 사람으로 성장하게 되고 또 예수님이 하신 일을 감당하는 사도로 성장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보혜사께서 오시는 것이 제자들에게 훨씬 더 유익이요 큰 힘이 됩니다.
  그러면 보혜사 성령께서 오셔서 하시는 일이 무엇입니까? 8절을 보십시오.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 책망하신다는 것은 ‘책망하여 깨닫게 하다’, ‘살펴서 죄가 있음을 입증하다’는 뜻입니다. 보혜사 성령께서는 이 세상에 대해서 세 가지 일에 대해서 책망하십니다.
첫째, 죄에 대하여. 9절입니다. “죄에 대하여라 함은 그들이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 이 말씀은 성령께서 예수님을 믿지 않는 것이 죄임을 깨닫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다는 것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지 않는 것이요 예수님의 말씀을 믿지 않는 것을 가리킵니다. 그래서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사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보통 죄 그러면 도덕적인 죄, 윤리적인 죄만 생각합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것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믿고 안 믿고는 자기 마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죄인이라고 하면 ‘내가 왜 죄인이에요? 나만큼 착하게 살아온 사람 있으면 나와 보라고 그래’ 말합니다. 남에게 피해만 주지 않는다면 괜찮은 인생, 거기다가 좀 영향력 있는 삶을 살면 아주 괜찮은 인생을 사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령은 우리의 정욕이나 이기심 등 윤리적인 죄 뿐 아니라 예수님을 믿지 않는 것이 근본 죄임을 깨닫게 하십니다. 이런 죄에 대한 인식은 우리 가운데 있는 홍승재 목자님에게 임하였습니다. 홍승재 목자님은 남달리 머리가 좋습니다. 어떤 병에 대해서 물어보면 항상 원인, 진단, 치료 세 가지로 나누어서 일목요연하게 설명해 주십니다. 지금은 경희의대에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제가 가끔 메시지나 소감발표 때문에 연락하면 지금 해외 학회 참석 중이라고 해서 저를 깜짝 놀라게 하곤 하였습니다. 아주 잘 나가시는 분이십니다. 이런 분이 뭐가 아쉬워서 믿음으로 사는가 생각할 때 이 또한 성령의 역사임을 깨닫게 됩니다. 성령께서 죄에 대해서 책망하셨기 때문에 홍승재 목자님이 예수님 앞에 무릎 꿇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요즘 집이 중계동인데도 하나님의 도우심 없이는 하루도 살 수 없음을 깊이 깨닫고 날마다 새벽을 깨워 열심히 기도하러 나오고 계십니다. 이처럼 성령께서 책망하실 때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게 되고 하나님 앞에 무릎 꿇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게 됩니다.
둘째, 의에 대하여(10절) “의에 대하여라 함은 내가 아버지께로 가니 너희가 다시 나를 보지 못함이요.” 의는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 하나님께로 이르는 길을’ 말합니다. 인간은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관계가 단절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인간은 어떤 비상한 노력을 한다 할지라도 하나님께 이를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우리의 모든 죄를 지고 십자가를 지심으로 하나님께로 이르는 새롭고 산 길을 열어 놓으셨습니다.(히10:20) ‘내가 아버지께로 가니’ 이 말씀은 오직 예수님만이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성을 회복시켜주는 유일한 길이요, 의가 되심을 나타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 하나님의 의를 깨닫지 못하고 모로 가도 정상에만 가면 된다고 생각하고 자기 의로써 구원에 이르고자 합니다. 어떤 사람은 고행을 통해서, 어떤 사람은 선행을 통해서, 바리새인들은 율법을 잘 지킴으로써 구원에 이르고자 하였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자기 나름대로의 길로 가도 결코 의에 이를 수 없습니다. 이사야 64:6절에 보면 “대저 우리는 다 부정한 자 같아서 우리의 의는 다 더러운 옷 같으며 우리는 쇠패함이 잎사귀 같으므로 우리의 죄악이 바람같이 우리를 몰아가나이다”라고 했습니다. 마틴 루터는 청년시절 금욕적인 생활을 통해 의에 이르고자 하였습니다. 그는 헛생각이 나면 무릎에 피가 흐르기까지 수도원 돌계단을 기어서 오르내리기도 하고 일부러 밥에 재를 뿌려서 먹기도 하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여도 그의 마음에는 구원의 확신이 없었습니다. 이런 그가 성경을 읽던 중 로마서 1:17절 말씀을 통해 큰 비밀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하나님의 의는 십자가 보혈로써 우리 죄를 깨끗이 씻기신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 성령께서는 바로 이 예수님을 믿음으로만 우리가 하나님과 바른 관계성을 회복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 주십니다.  
셋째, 심판에 대하여(11) “심판에 대하여라 함은 이 세상 임금이 심판을 받았음이라.” 이 세상 임금은 사탄을 가리킵니다. 예수님께서 오시기전 사단은 온 세상에 왕 노릇 해왔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죽음의 권세를 파하시고 사단의 머리를 박살내셨습니다. 이로써 그동안 사망권세로 모든 인생들을 잔인하게 지배해온 사단마귀를 완전히 심판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이제 십자가와 부활로써 건설하신 하나님나라의 임금이 되셔서 우리를 사랑과 공의로 다스려 주십니다. 성령은 바로 사단마귀가 폐위를 당하고 예수님께서 만왕의 왕이요, 만유의 주가 되셨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 주십니다. 그리고 이를 통해 멸망당할 세상에 헛된 소망을 두지 않고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 소망 두는 역사를 이루십니다.
  이상에서 볼 때 성령께서 이루시는 근본역사는 죄를 깨닫고 회개하는 역사요 멸망 받을 세상에 대한 소망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이키는 역사임을 알 수 있습니다. 꽤 오래 전에 경성3부 권영진 목자님은 저를 보기만 하면 인사말로 ‘오정훈 목자 회개했나’ 항상 물어보아서 저를 화나게 만들었습니다. ‘내가 언제 적에 회개를 했는데 뭘 더 회개할게 있다고 또 그 소리를 하는 거야!’ 속이 부글부글 끓었습니다. 그러나 성령의 역사의 핵심은 회개의 역사요 그래서 돌이켜 하나님께로 향하는 역사입니다. 성령께서 역사하는 곳에 죄를 깨닫고 애통히 회개하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1907년에 일어난 평양대부흥운동의 핵심도 회개의 역사였습니다. 우리는 이번 여름수양회를 통해서 많은 사람들이 눈물을 흘리며 죄를 고백하고 회개하는 역사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수양회 참석하는 것만 해도 기적인데 과연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요? 그러나 성령께서 역사하시면 우리 가운데 이런 놀라운 역사가 반드시 일어나게 될 것을 믿습니다. 우리가 이 성령의 역사를 기대하며 합심하여 기도하고 심방함으로 여름수양회 역사를 힘써 섬길 수 있길 기도합니다.
  성령의 역사에 대해서 가르친 예수님께서는 더 많은 것을 제자들에게 가르치고 싶으셨으나 제자들이 지금은 감당할 수 없음을 아셨습니다. 그렇다고 예수님은 낙담하지 않으셨습니다. 그것은 성령이 오셔서 제자들에게 이루실 역사를 바라보셨기 때문입니다. 13절을 다 같이 읽어보시겠습니다. “그러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스스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들은 것을 말하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세상에 대해서는 책망하시는 보혜사 성령께서 제자들에게는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는 역사를 이루십니다.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모든 진리는 세상 모든 일에 대한 진리, 인생의 진리, 결혼의 진리, 삶과 죽음에 관한 진리 더 나아가 구원의 진리 등 예수님이 가르쳐 주신 모든 진리를 말합니다. 이런 모든 진리는 인간이 다 알 수 없고 또 그렇기 때문에 미혹하는 악한 영에게 속기 쉽습니다. 또 예수님이 지금까지 말씀하신 것 중에는 지금은 깨달을 수 없는 진리, 듣고도 잊어버린 진리, 너무나 부담스러워 그냥 묻어두고 싶은 진리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산상수훈을 말씀하셨을 때는 크게 은혜를 받았는데 자기부인과 자기 십자가, 한 알의 썩는 밀알의 진리를 말씀하시자 마음에 크게 부담이 되었습니다. 특히 서로 발을 씻기라는 말씀을 듣자 제자들은 너무 난감하였습니다. 우리는 이런 제자들의 심정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진리인 줄 알고 그 길을 가야 하는 것을 알지만 그것을 실제로 감당할 믿음과 소원이 없으면 제자로 사는 것이 쉽지가 않습니다. 그래서 때로는 이 길을 끝까지 갈 수 있을까 염려합니다. 그러나 염려할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제자들을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여 주시기 때문입니다. 인도하여 주신다는 것은 그 영적 의미를 가르쳐 주시고 그것에 순종할 힘과 믿음과 소원을 주시는 것을 말합니다. 진리의 성령이 내 안에 임하실 때 세속적이고 자기중심적인데서 영적이고 하나님 중심의 사람으로 변화됩니다. 그래서 전에는 감당할 수 없었던 복음진리에 순종하며 자기부인 자기 십자가 한 알의 밀의 인생을 살 수 있게 하십니다.
  또한 진리의 성령께서 오시면 모든 장래 일을 알게 하여 주십니다. 보통 장래 일하면 나의 장래, 아이들 장래, 세상의 장래 등이 떠오릅니다. 정말 어떻게 될지 궁금합니다. 세상에서 말하는 장래 일은 경기 전망, 고용지표, 소비지수 등 주로 먹고 사는 것에 관한 것입니다. 그러나 불행히도 세상이 말하는 장래는 항상 어둡고 부정적입니다. 그러나 성령께서 보여주시는 장래는 밝고 긍정적이며 소망이 넘칩니다. 왜냐하면 성령께서는 하나님께서 나를 통해 이루실 원대한 비젼을 보여주시기 때문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위대한 인물들은 다 이런 비젼을 간직하므로 위대한 삶을 살 수 있었습니다. 요셉은 채색옷을 입고 열 명의 형들에게 치여 이름도 빛도 없이 살다가 사라질 인생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주신 지도자가 되는 꿈을 붙들므로 그 시대를 구원하는 위대한 삶을 살 수 있었습니다. 제자들도 성령을 받기 전 가장 절실한 문제는 이스라엘 회복이었습니다. 그러나 성령을 받게 되었을 때 그들은 이스라엘 회복의 문제는 하나님께 맡기고 땅 끝까지 이르러 복음의 증인들이 될 수 있었습니다. 성경공부를 하더라도 성령의 역사가 없으면 장차 이루어질 하나님의 일보다 지금 당장의 현실에 더 집착하게 됩니다. 그래서 현실에 울고 웃으며 비전을 잃고 힘없이 지내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렇게 현실에 매여 있으신 분이 아니십니다. 하나님은 말씀을 통해 장차 이루어질 일들을 환상을 통해 보여주시고 원대한 하나님 역사에 쓰임 받도록 하십니다. 현재 나는 무엇을 보고 있습니까? 답답하고 잘 풀리지 않는 현실만 바라보고 있지는 않습니까? 성령께서 우리의 닫힌 눈을 열어주셔서 하나님께서 나를 통해 이루실 원대한 역사를 바라보게 하시길 기도합니다. 그래서 현실문제에서 벗어나 비젼을 붙들고 이를 이루는 위대한 삶 살게 하시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진리의 성령이 오시기전 저는 내면이 심히도 연약하여 스스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였습니다. 치과의사가 되었지만 치과의사로 먹고 살 자신이 없어서 헌책방이나 세탁소를 해볼 요량으로 보건지소에서 군복의 주름을 칼 같이 다림질하고 주로 지냈습니다. 거기다가 결혼할 믿음이 없어서 사모님의 눈을 피해 주왕산 월출산 북한산으로 돌아다녔습니다. 성령께서는 이런 저를 붙드시고 결혼의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여 주시므로 능력 많은 동역자의 날개 그늘 아래 숨어 먹고 사는 은혜를 주셨습니다. 그리고 성령께서는 말씀의 종으로 비젼을 주시고 양식훈련을 받게 하시므로 말씀의 세계에 나가도록 도와주셨습니다. 사람을 살갑게 대하거나 양들을 피싱하는 은사는 없었지만 말씀으로 사람들을 바라보고 돕는 은사를 주셨습니다. 간혹 사람들을 윽박지르고 몰아붙이기는 하지만 말씀에 기초한 믿음을 심는 역사에 사용하여 주셨습니다. 제가 이 하나님의 비젼을 붙들고 믿음의 투쟁을 감당해야 하는데 최근에는 탁구에 대한 야심으로 넘쳐났습니다. 세계랭킹 3위에 빛나는 중국의 장지커 선수처럼 되고자 하는 생각으로 탁구유니폼에도 제 이름대신 장지커(Zhang J.K.)라고 새기고 이제까지 싸인으로 쓰던 헬라어 로고스(λογοσ)를 버리고 장지커의 이니셜을 싸인으로 쓰기 시작하였습니다. 성령께서는 이런 저를 탁구장 관장님을 통해 앞으로 15년 동안 열심히 레슨 받아도 장지커의 신들메도 풀 수 없다는 소리를 듣게 하시므로 절망케 하셨습니다. 그리고 자기 생각과 욕심을 따라 사는 것이 죄임을 깨닫게 하시고 하나님의 뜻을 좇아 살고자 하는 소원을 다시 덧입게 하여 주셨습니다. 제가 성령의 역사하심을 따라 세상의 헛된 욕심을 회개하고 하나님이 주신 말씀의 종이요 제자양성가로서의 비젼을 붙들고 진리의 성령을 의지하여 이 사명을 감당하는 종으로 쓰임 받을 수 있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2. 담대하라(16-33)
  16절을 보십시오. 조금 있으면 나를 보지 못하겠고 또 조금 있으면 나를 보리라 하신 말씀이 무슨 뜻입니까? 이 선문답 같은 말씀을 듣고 제자들은 그 뜻이 무엇인지 몰라서 서로 문의하였습니다. 앞의 ‘조금 있으면’은 예수님께서 얼마 있지 않아 십자가에 고난 받으시고 죽으실 사건을 가리킵니다. 예수님이 죽으시고 무덤에 묻히시면 제자들은 곡하고 애통하게 됩니다. 반면 예수님을 미워하던 세상은 기뻐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런 제자들의 애통함, 그리고 세상의 기쁨은 오래가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조금만 있으시면 예수님이 죽음을 이기시고 다시 부활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제자들의 근심과 애통은 곧 기쁨으로 바뀌게 됩니다. 이는 예수님의 죽으심이 패배의 죽음의 아니라 승리를 위한 영광스러운 죽으심이었음을 알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여인이 해산하는 것과 동일합니다. 21절을 보십시오. 여자가 해산을 하게 되면 그 때가 이르렀으므로 마음에 심히 근심하게 됩니다. 점점 더 좁혀지는 진통은 임산부로 하여금 극심한 산통과 해산에 대한 두려움을 갖게 합니다. 그 고통이 얼마나 심한지 어떤 여자들은 남편 이름을 부르며 마구 욕을 한다고 합니다. 심리학자들은 이 해산의 수고가 너무나 크기 때문에 그 고통 속에서 모성애가 생긴다고까지 말합니다. 산모들은 그 고통이 너무나 크기 때문에 다시는 애기를 낳지 않고자 결심합니다. <내가 다시 임신하면 사람이 아니다.> 그러나 막상 아이를 낳고 나면 새 생명이 탄생한 기쁨으로 인해, 그 고통을 까맣게 잊어버립니다. 그리고 몇 년 후에 또다시 아이를 배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처럼 현재 제자들은 근심하고 있지만 부활하신 예수님을 다시 보는 날 그 마음이 기쁘게 되고 그 기쁨은 세상이 빼앗아 갈 수 없게 됩니다. 실제로 사도행전에 보면 제자들은 매를 맞아도 기뻐하고, 감옥에 갇혀도 기뻐하고, 돌에 맞아도 다시 일어나 기쁨으로 복음을 전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런 그들은 세상이 감당치 못할 자들이었습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떠나신 후 제자들은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첫째,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23-27). 23절을 보십시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무엇이든지 아버지께 구하는 것을 내 이름으로 주시리라.” 24절에서도 “내 이름으로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면 하늘 아버지께서 들어주십니다. 당장 시급한 취직 문제 건강문제 자녀 문제 물질문제를 위해 기도할 수 있습니다. 또 해결되지 않는 내면문제 사람들 문제로 인해서 기도할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한다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이제까지 그렇게 할 필요가 없었지만 이제는 그렇게 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사랑과 그의 살아 계심을 확신하고 기도해야 합니다. 이때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해 주십니다. 그러면 그들의 기쁨이 충만하게 될 것입니다.
둘째, 환란 가운데서도 담대해야 합니다(28-33). 32절을 보십시오. “보라 너희가 다 각각 제 곳으로 흩어지고 나를 혼자 둘 때가 오나니 벌써 왔도다. 그러나 내가 혼자 있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나와 함께 계시느니라.” 예수님은 이제 군병들이 자신을 체포하러 올 것이라는 사실을 직감하셨습니다. 또한 사랑하는 제자들도 다 흩어져 도망갈 것도 아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함께 계심을 믿었기 때문에 두렵지 않으셨습니다. 33절을 다 같이 읽어보시겠습니다.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하시니라.” 예수님은 이제 얼마 후면 군병들에게 체포당하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게 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세상을 이기셨다고 말씀하십니다. 겉으로 볼 때 예수님은 패배한 것 같고 세상에서 버려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선으로 악을 이기셨습니다. 십자가로 죄를 이기셨고 부활로서 죽음을 이기셨습니다. 예수님은 인류의 최대 원수인 사단을 이기셨기 때문에 최후의 승리자 영원한 승리자가 되신 것입니다. 이 예수님께서 우리의 대장이 되시기 때문에 우리는 이제 두려워 할 것이 없습니다.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신 주님과 함께 승리가 보장된 싸움을 싸우는 우리는 담대할 수 있습니다. 세상을 이기시고 우리에게 진정한 승리를 주시는 부활의 주, 예수님을 찬양합니다.

  결론적으로, 예수님은 우리를 고아처럼 버려두지 아니하시고 보혜사 성령을 보내시므로 모든 진리 가운데 인도하여 주십니다. 힘들고 어려운 세상에서 위로와 용기를 얻게 하시므로 죄와 싸우고 승리하는 삶 살게 하십니다. 현실에 매여 답답한 삶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하나님이 이루실 비전을 보여주시므로 소망이 넘치는 삶을 살게 하십니다. 세상은 살기 어렵고 복음역사는 섬기기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 보혜사 성령을 의지할 때 세상을 이기고 믿어 순종케 하는 역사, 변화의 역사를 줄기차게 이룰 수 있습니다. 이번 수양회에도 이 성령의 역사하심을 믿고 깨어 기도하므로 말씀을 듣고 살아나는 역사가 힘차게 일어나게 되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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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0 출애굽기 [2009년출애굽기제15강] 영화롭고 아름다운 제사장 관리자 2009-07-19 2783
629 마가복음 [2012년 마가복음 제12강] 주는 그리스도 관리자 2012-06-03 2781
628 야고보서 [2010년야고보서제2강]참된 믿음 리스닝 2010-08-15 27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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