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HOME | 세계선교 | 각부모임 | 경성소모임 | 성경연구 | 사진자료실 | 영상자료실 | 경성쉼터 | JBF/EBF/CBF | 기타 |

회원등록 비번분실

  Bible Study  
주일예배메시지
성경공부문제지
수양회강의
특강
구약강의자료실
신약강의자료실
강의안책자



 Sunday Worship Message
주일예배메시지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09-02-08 (일) 12:48
홈페이지 http://ksubf.com
분 류 마태복음
첨부#1 2009년마태복음제38강-1.hwp (48KB) (Down:329)
ㆍ추천: 0  ㆍ조회: 3091      
IP: 211.xxx.18
[2009년마태복음제38강]열매 맺는 백성이 받으리라
2009년 마태복음 제 38 강

열매 맺는 백성이 받으리라

말씀 마태복음 21:23-46
요절 마태복음 21:43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의 나라를 너희는 빼앗기고 그 나라의 열매 맺는 백성이 받으리라”

  지난 시간에 우리는 예수님이 겸손의 왕으로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는 것을 배웠습니다. 오늘 말씀은 예수님의 권세를 다루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을 해하려는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들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도전을 피하지 않으시고 진리의 말씀으로 그들의 악함을 드러내시고 죄를 책망하셨습니다. 이 시간 오늘 말씀을 통하여 우리도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 받은 은혜와 특권을 온전히 감당할 만한 자들이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Ⅰ. 두 아들의 비유(23-32)
  예수님은 전날 깨끗케 하신 성전에 다시 들어가시어 말씀을 가르치셨습니다. 예수님은 진리의 말씀을 선포하심으로 성전의 기능을 회복하셨습니다. 성전에는 여전히 예수님께 앙심을 품은 종교지도자들이 있었지만 예수님은 담대히 말씀을 전하셨습니다. 이때였습니다. 예수님의 행동을 못마땅한 듯 째진 눈으로 보고 있던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들이 예수님께 나아와 질문하였습니다. “네가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느냐 또 누가 이 권위를 주었느냐” 그들은 예수님의 영적 권위에 자신들의 자리에 위협을 느끼고 예수님을 책잡고자 하였습니다. 이 질문은 후에 사도행전의 제자들에게도 던진 질문이었습니다.(행4:7) 또 종교 개혁시절 개혁가들에게도 또 청교도들에게도 기존 교회에 기득권을 가진 자들은 똑같은 질문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들의 질문 공세에 곧바로 대답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그들의 의도를 잘 알고 계신 예수님은 역으로 공격하셨습니다. “요한의 세례가 어디로부터 왔느냐 하늘로부터냐 사람으로부터냐” 요한은 이미 광야에서 회개의 세례를 전파하여 사람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었습니다. 요한의 회개의 메시지는 사람들에게 역사하여 완악한 종교지도자, 강포한 군인, 이기적인 세리 등 회개하기 힘든 죄인들까지 나아와 회개하고 세례를 받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죄를 자복하는 놀라운 회개의 역사가 있었습니다. 이에 사람들은 요한을 메시야로 생각할 정도로 그에게 주신 하나님의 권위를 인정하였고 하나님께서 보내신 선지자로 알았습니다. 곧 요한은 하나님께서 주신 권위, 권세가 있었습니다. 이 모든 사실을 종교지도자들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질문에 그들은 ‘하늘로부터입니다’ 선뜻 답하기가 곤란하였습니다. 왜냐하면 하늘로부터 왔다고 대답하면 왜 요한을 믿지 아니하였느냐 하실 것이고, 또 그렇다고 사람으로부터라 하면 모든 사람이 선지자로 여기니 백성들이 두려웠습니다. 결국 그들은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 모른다고 편리하게 대답하였습니다. 종교지도자들은 정치꾼들이었습니다. 어떤 책임도 지지 않고 빠져 나가려 하였습니다. 그들은 철저히 자기들 이익을 위하여 행동을 하였습니다. 진리를 좇으며 하나님의 의에 길을 가려 하지 않았습니다. 진리가 그 안에 없을 때 상황에 따라 사람들 눈치나 보며 거짓에 종 되어 살아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예수님도 그들에게 자신이 어떤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는지 말씀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통해 우리는 예수님은 하나님이 주시는 권위로 이와 같은 일들을 행하심을 알 수 있습니다. 복음의 일꾼들은 사람이나 단체의 권위로 말미암아 복음 역사를 섬기는 자들이 아닙니다. 외적인 타이틀을 가지고 일하지도 않습니다. 오직 복음의 일꾼들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권위를 의지하는 자들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자칫 나이나 선배의 권위를 의지하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신앙경륜을 앞세우며 목자나 선교사의 타이틀을 내세우며 양들에게 은근히 순종을 요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것들을 의지하면 사람들은 겉으로는 인간적인 권위에 순종할 줄 모르지만 마음으로 순종하지는 않습니다. 마음으로 순종하도록 하려면 예수님처럼 자신을 겸손히 낮추고 섬기고 희생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의 권위를 의지하고 그 권세를 다른 사람을 섬기는데 사용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종교지도자들을 깨우치시기 위해 두 가지 비유를 말씀하셨습니다. 28절을 보십시오. 어떤 사람에게 두 아들이 있었습니다. 그 사람은 먼저 맏아들에게 ‘오늘 포도원에 가서 일 좀 하려무나’ 말하였습니다. 이에 맏아들은 ‘아버지 가겠나이다 Yes, sir’ 하였습니다. 큰 아들은 언제나 대답은 'Yes'였습니다. 청소를 하라 하여도 yes, 1:1을 하라 하여도 yes, 새벽 기도를 하라고 하여도 대답은 yes 였습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뺀질거리며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이름은 뺀질이었습니다. 맏아들은 말은 늘 그럴듯하게 하였지만 실제로 행함이 없었습니다. 자기가 하고 싶은 것만 하였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맏아들이 포도원에 가지 않은 이유에 대해 생각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맏아들이 끝내 불순종한 것은 가야한다는 것을 머리로는 알았고, 또 장남으로서 책임감도 있었지만 포도원에서 일하는 사명이 얼마나 큰 은혜요 특권인지 몰랐습니다. 아버지가 자기를 얼마나 사랑하고 소망을 두고 돕고자 하는지를 몰랐습니다. 자신도 아버지를 사랑하고 경외하지 않았습니다. 아버지와의 관계는 사랑의 관계가 아니라 율법의 관계였습니다. 그럴 때 포도원에 가서 일하며 고생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다른 일이 생기자 이를 핑계 대며 가지 않았습니다. 자기 일을 앞세우다 보니 아버지께서 명하신 일은 나중 일이 되어버렸습니다. 아버지를 사랑하고 아버지의 명령을 마음으로 영접했다면 기꺼이 갔을 것입니다. 다른 어려운 일이 있더라도 가고자 했을 것입니다. 사실 포도원 일은 어려운 일도 아니었습니다. 둘째 아들도 싫다고 했다가 다시 가서 일한 것을 보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사람은 하나님을 사랑하면 어떤 힘든 일이라도 순종하지만 사랑하지 않으면 어떤 이유를 대어서도 순종하지 않습니다.
  반면에 둘째는 어떻게 했습니까? 둘째 아들에게도 아버지는 말하였습니다. 그런데 둘째 아들은 처음에는 젊은 혈기로 반발심이 들었든지 ‘싫어요! 저 지금 인터넷 게임 하잖아요. 바빠서 안되겠어요’ 대답하였습니다. 그러나 후에 자신의 행동을 뉘우치고 포도원에 가서 일을 하였습니다. 뉘우쳤다는 것은 아버지 편에서 상황을 생각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아버지의 마음을 생각하고는 자신이 반발한 것이 잘못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버지의 명령은 아들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또한 아버지는 사랑하는 아들에게 불가능한 일, 어려운 일을 맡기지 않았습니다. 마음만 있다면 포도원 일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작은 아들은 이를 깨달았습니다. 무엇보다도 그는 아버지를 사랑하였습니다. 그는 불순종이 사랑하는 아버지의 마음을 얼마나 아프게 하는 것인가 느꼈을 때 즉시 일어나 순종함으로 아버지의 마음을 위로해 드리고 싶었습니다. 이렇게 둘째는 아버지의 마음을 깨닫고 기쁜 마음으로 순종할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이 비유 말씀을 하시며 누가 아버지의 뜻대로 하였는가 물으셨습니다. 종교지도자들은 둘째 아들이라 대답하였습니다. 종교지도자들도 순종하지 않은 맏아들이 아니라 회개하고 순종한 둘째 아들이 아버지의 뜻에 따랐음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교만한 그들에게 세리들과 창녀들이 너희보다 먼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리라 경고하셨습니다.(31b) 예수님은 계속해서 그 이유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32절을 다함께 읽겠습니다. “요한이 의의 도로 너희에게 왔거늘 너희는 그를 믿지 아니하였으되 세리와 창녀는 믿었으며 너희는 이것을 보고도 끝내 뉘우쳐 믿지 아니하였도다” 요한은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 의의 길을 제시하였습니다. 그 길은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을 믿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자기 의와 교만으로 가득 찬 종교지도자들은 요한의 말을 영접하고 뉘우치지 않았습니다. 반면 겸손하게 자기 죄를 인정한 세리와 창녀는 믿고 영접하였습니다. 자신이 얼마나 죄인인가 깊이 회개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기뻐하시고 하나님 나라로 먼저 영접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이미 여러 번 이와 동일한 진리를 하나님의 선민이라 자부하는 유대인들에게 가르치셨습니다. 예수님은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하시며 오직 말씀에 순종하여 행하는 자라야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아버지를 알고 있어도, 아버지의 자식이어도 천국에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지식이나 혈통으로는 안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심각한 죄인이라도 회개하는 자는 황태자와 황공주로 영접하시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게 됩니다. 지성인들은 자기 생각과 주관이 분명하기 때문에 힘든 일이나 잘 이해되지 않는 일을 시키면 반발하기를 잘 합니다. 우리가 어떻게 순종의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회개하기에 힘쓰고 새롭게 주님을 믿어야 합니다. 또한 순종을 적극적으로 배워야 합니다. 우리가 말로만 신앙생활 하는 구신자의 삶을 회개하고 실제 삶에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둘째 아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Ⅱ. 포도원 농부의 비유(33-46)
  예수님은 종교지도자들이 말씀을 듣고도 회개하지 않자 그들을 돕기 위해 다시 한 비유를 말씀하셨습니다. 33절을 보십시오. 어떤 집 주인이 포도원을 만들었습니다. 주인은 포도원을 외부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산울타리를 두르고 망대도 지었습니다. 즙 짜는 틀도 만들어 수확할 때 사용하도록 하였습니다. 주인은 포도원에 필요한 모든 것을 갖추었습니다. 좋은 환경을 만들어 농부들은 와서 일만 하면 되도록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주인은 농부들을 모집하였습니다. 주인은 농부들이 놀지 말고 포도원에서 열심히 사명을 감당하며 행복하게 살기를 바랐습니다. 또 주인은 농부들에게 정한 세를 내도록 하였습니다. 그런데 다른 주인과 달리 소출에 반이 아니라 십분의 일만 내도록 하였습니다. 아무리 인심이 후한 주인도 30%는 내야 하는데 이 주인은 너무나 후하였습니다. 주인은 이렇게 한 이유는 다른 이유가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것은 주인은 자신의 이익보다 자신과 농부사이에 주인과 소작인의 관계를 지키고자 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를 통해 농부들이 계속해서 포도원에서 일하기를 바라셨습니다. 이제 농부들은 주인도 먼 나라로 떠나 자유롭게 일하며 정한 세만 내면 포도원에서 어려운 시절에도 안정되게 영원히 일하며 살 수 있었습니다.
  이리하여 포도원 주인은 농부들에게 모든 것을 맡기고 먼 타국으로 갔습니다. 시간이 흘러 열매를 거둘 때가 되었습니다. 주인은 자신의 종들을 보내 세를 받으려 하였습니다. 그런데 마땅히 감사함으로 세를 내어야 할 농부들의 반응은 기대와 딴판이었습니다. 마땅히 농부들은 주인이 보낸 종들을 환영하며 영접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농부들은 조폭들을 동원하여 종들을 핍박하였습니다. 이들 중 하나는 병신이 되고 하나는 죽고 다른 하나는 돌에 맞아 의식을 잃었습니다. 주인은 이 소식을 듣고는 당장 진멸해야 마땅했습니다. 그러나 주인은 참았습니다. 주인은 농부들을 여전히 신뢰하고 더 훌륭한 종들을 더 많이 보냈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도 농부들의 태도는 변함이 없었습니다. 전과 같이 주인의 정당한 요구를 거절하고 악을 행하였습니다. 주인은 이런 악한 농부들을 당장에 군대를 보내어 처단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주인은 이번에도 참았습니다. 주인은 길이 참으셨습니다. 주인은 그들이 악한 농부임을 알면서도 계속해서 종을 보내기란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보낸 종들이 깨지고 부러지고 심지어 죽어 돌아 왔을 때 참기란 불가능하였습니다. 그러나 주인은 인내하고 또 인내하였습니다. 끝내는 농부들에게 다시 한번 기회를 주고자 하였습니다. 결국 자신의 사랑스런 아들을 보내고자 하셨습니다. 주인은 아들을 보내며 기대하였습니다. ‘그들이 아들은 존대하리라!’ 주인은 자신의 상속자요 분신과도 같은 아들은 영접하고 환영하리라 기대하였습니다. 주인은 아들을 보내면서 농부들이 마지막 기회는 영접하고 다시 관계성이 회복되기를 기대하셨습니다. 농부들이 비록 이전에 악을 행했으나 아들만 영접하면 이전의 모든 악은 용서하고 주인과 농부의 관계를 회복하고자 하였습니다. 주인은 끝까지 농부들을 잃지 않고자 하였습니다. 주인의 목적은 자격을 박탈하고 심판하는 것이 아니라 어찌하든지 살리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아들을 보내신 주인의 무한한 사랑을 알 수 있습니다.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신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이 이와 같습니다. 인간은 늘 하나님의 은혜를 잊고 불순종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길이길이 참으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 하나님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혹 네가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너를 인도하여 회개하게 하심을 알지 못하여 그의 인자하심과 용납하심과 길이 참으심이 풍성함을 멸시하느냐”(롬2:4) 하나님은 무한한 사랑으로 한번 택하신 자들을 결코 버리시지 않으십니다. 죄로 인해 깨어진 관계성을 계속해서 회복하고자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말로만 하는 사랑이 아니라 희생하는 사랑입니다. 한 사람을 진심으로 사랑해보셨습니까? 어느 정도까지 사랑해 보셨나요? 한 사람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가늠해보려면 그를 위해 얼마나 희생하는지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을 사랑해보면 원수 같은 죄인들에게 독생자를 내어주신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큰가를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양들을 사랑하기 때문에 시간과 물질을 희생하고 진심을 드려 섬길 수 있습니다. 어느 정도는 희생할 수 있지만 내가 몸이 아프거나 문제가 있거나 시험 때는 섬기기가 쉽지 않습니다. 나아가 자신의 삶을 다 드려 희생하기는 더욱 어렵습니다. 그러나 독생자를 희생한다는 것은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독생자를 죄인들을 위해 내어주셨습니다. 어찌 이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이라도 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길이 참으시는 사랑, 독생자도 아끼지 않고 내어주신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을 찬양합니다!
  그러나 농부들은 이런 주인의 마지막 기대마저 처참하게 짓밟았습니다. 오히려 농부들을 말하였습니다. ‘이는 상속자니 자 죽이고 그의 유산을 차지하자’ 농부들은 소작인으로 살면서도 주인 없이 자유롭게 일할 수 있는 특권을 가졌습니다. 그들은 이에 감사하고 마땅히 내야 할 세를 감사하는 마음으로 바쳐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의 것도 아닌 물질에 눈이 어두워졌습니다. 탐욕의 종이 되어 아들까지 죽이는 죄를 짓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주인도 멀리 있으니 마치 모든 것이 자기 것인 양 생각하였습니다. 더구나 그들이 내야 할 것은 10%뿐이었습니다. 나머지 90%는 자신들의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한번 탐심에 빠지자 십의 구는 보이지 않고 십의 일마저도 자기 것으로 삼고자 하였습니다. 욕심이 분별력을 잃게 만들었습니다. 탐심은 그들의 눈을 멀게 하였습니다. 그들은 적어도 종들이 다시 찾아왔을 때 마땅히 죄를 회개하여야 했습니다. 그러나 회개치 않자 이 죄가 장성하여 그들을 삼켜 버렸습니다. 이성적으로 행하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용감하게 죄를 짓게 만들었습니다. 죄를 회개치 않으면 결국 사단의 종이 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돌이킬 수 없는데 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탐심의 죄는 참으로 무섭게 사람을 망쳐 놓았습니다. 멸망의 길로 가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들이 처음부터 이렇게 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처음에는 자신을 포도원에 불러 주시어 감사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인의 은혜를 잊어버린 것이 문제였습니다. 시간이 지나고 감사가 사라지자 자신들이 포도원에서 일하게 된 것이 너무나 당연한 것으로 여겼습니다. 비참하게 보냈던 시절을 모두 잊어버리고 현재 모습이 자기가 한 것처럼 생각하였습니다. 이런 생각은 결국 자신의 분수도 잊게 하였습니다. 결국 자기가 주인 인양 행세하고자 하였습니다. 교만은 패망에 이르게 하고야 말았습니다.
  예수님은 이 모든 비유를 말씀하시고 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포도원 주인이 이 농부들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물으셨습니다. 이에 그들은 “그 악한 자들을 진멸하고 포도원은 제 때에 열매를 바칠 만한 다른 농부들에게 세로 줄지니이다” 하였습니다. 그들은 농부들이 악함을 알고 그에 대한 형벌까지 잘 알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이 두 가지 비유에도 깨닫지 못하자 시편 말씀을 인용하여 그들의 무지를 깨우쳐 주셨습니다. 42절을 보십시오. “건축자들이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 이것은 주로 말미암아 된 것이요 우리 눈에 기이하도다” 예수님은 시편 말씀을 인용하시어 종교지도자들이 자신들이 원하는 메시야가 아닌 예수님을 죽이고 버리지만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이 버린 예수님을 다시 살리셔서 하나님의 복음 역사에 모퉁이의 머릿돌로 귀하게 쓰실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비유의 결론을 말씀하셨습니다. 43,44절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의 나라를 너희는 빼앗기고 그 나라의 열매 맺는 백성이 받으리라 이 돌 위에 떨어지는 자는 깨지겠고 이 돌이 사람 위에 떨어지면 그를 가루로 만들어 흩으리라 하시니” 종교지도자들은 끝내 탐심을 회개하지 않고 독생자를 배척함으로 본래 은혜와 특권을 다 빼앗기게 됩니다. 주인은 무골호인이 아니셨습니다. 주인은 무한정 용서해주시며 손해만 보지 않으셨습니다. 종교지도자들은 예수님을 쓸모없는 돌이라 버렸지만 이 예수님은 그들에게 심판주로 나타나실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고 예수님의 돌에 부딪히는 자들은 모두 깨어져 흩어질 것입니다.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이십니다. 주인이신 하나님은 이 은혜를 감당 못한 종교지도자들은 심판하시고 이 특권을 열매 맺는 백성에게 주실 것이라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에 백성이 되는 것은 민족이나, 신분에 구애됨이 없습니다. 단지 주인의 명령에 순종하여 열매를 맺어 이를 주인에게 바칠 수 있는 자들입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이 은혜와 특권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열매를 맺는 백성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그러한 백성이 하나님 나라를 받으리라 하십니다. 우리는 은혜에 매우 익숙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은혜가 풍성하시다 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동시에 공의의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이 사실을 깊이 영접하고 말씀에 순종하여 열매 맺는 자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제가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기에 힘써야 함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자신을 돌아보면서 독생자를 보내신 하나님의 사랑과 세를 통해서 관계성을 유지하고자 하시는 주님의 뜻을 잊고 살 때가 많음을 알았습니다. 제가 습관적으로 일 속에서 살지 않고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하나님의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는 자가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온전히 순종할 때 반드시 열매를 맺게 되고 이것이 하나님께 영광이 됨을 믿습니다. 제가 올 한해 주님께서 주신 말씀에 순종하여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열매를 맺을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의 모든 비유를 듣고서는 이것이 자기들을 가리켜 하신 말씀임을 알았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처럼 회개치 않았습니다. 오히려 예수님을 잡아 해하고자 하였습니다. 그러나 무리들이 예수님을 선지자로 알기에 무서워 함부로 하지 못했습니다.

결론적으로, 하나님은 모든 인생들이 회개하고 돌아오기를 길이 참으시며 기다리십니다. 이를 위해 독생자도 아끼지 않으시고 내어주셨습니다. “내 아들은 존대하리라!” 우리가 이 하나님의 나에 대한 믿음과 소망과 사랑을 기억하고 감사하며 하나님께 적극적으로 세를 바침으로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유지해야 하겠습니다. 회개하고 순종하기에 힘씀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일생 은혜와 특권을 누리는 복된 삶을 사는 자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0
3500
번호     글 제 목  작성자 작성일 조회
691 누가복음 [2011년 누가복음 제 9강]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리라 관리자 2011-05-15 3102
690 마가복음 [2012년 마가복음 제8강] 두려워 말고 믿기만하라 관리자 2012-05-06 3098
689 갈라디아서 [2011년 신년수양회 제2강]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품으라 관리자 2011-01-02 3095
688 이사야 [2010년 이사야서 제8강]내가 이 성을 구원하리라 관리자 2010-11-14 3095
687 출애굽기 [2009년출애굽기제14강] 내가 거할 성소를 지으라 -권영진 관리자 2009-07-12 3091
686 마태복음 [2009년마태복음제38강]열매 맺는 백성이 받으리라 관리자 2009-02-08 3091
685 요한복음 [2009가을학기준비특강-2] 내 안에 거하라 관리자 2009-08-23 3082
684 요한복음 [2010년요한복음제16강]참된 생명의 길 리스닝 2010-06-21 3076
683 마가복음 [2012년 마가복음 제3강]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관리자 2012-03-25 3073
682 사무엘상 [2011년 신년수양회 제1강]미스바의 영적 부흥(고영훈) 관리자 2011-01-02 3072
681 로마서 [2010신년말씀제1강]복음은 하나님의 능력-서홍일 휴화산 2010-01-14 3068
680 출애굽기 [2009년출애굽기제10강] 내 말을 잘 듣고 지키라 관리자 2009-06-14 3066
679 요한복음 [2010 요한복음4강]거듭남 리스닝 2010-03-21 3058
678 누가복음 [2011년 누가복음 제30강] 영생을 얻는 길 관리자 2011-11-13 3056
677 이사야 [2013년 성탄절 제2강]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관리자 2013-12-15 3054
676 요한계시록 [2008년송년감사예배]처음 행위를 가지라 사무실 2008-12-29 3040
675 이사야 [2010년 이사야서 제4강]포도원의 노래 리스닝 2010-10-03 3038
674 시편 2010년 신입생 바이블 아카데미 4강 리스닝 2010-04-01 3036
673 출애굽기 [2009년출애굽기제15강] 영화롭고 아름다운 제사장 관리자 2009-07-19 3036
672 누가복음 [2011년 누가복음 제10강]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관리자 2011-05-22 3031
12345678910,,,42
서울 동대문구 이문2동 264-231
Tel:070-7119-3521,02-968-4586
Fax:02-965-8594
서제임스목자님메일:Suhjt@hitel.net
[UBF한국본부] [유럽UBF] [UBF국제본부] [UBF TV] [시카고UBF] [Mother Barry's Homepage]
[뉴욕UBF] [워싱턴UBF] [노스웨스턴UBF] [콜롬비아UBF] [코스타리카UBF] [프랑크푸르트UBF]
[키에프UBF] [상파울루UB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