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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nday Worship Message
주일예배메시지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7-10-22 (일) 12:31
분 류 고린도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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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고린도후서 제4강] 질그릇에 담긴 보배

 2017년 고린도후서 제4강                                                         오정훈

질그릇에 담긴 보배

 말씀/고린도후서4:7-5:10
 요절/고린도후서4:7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살다보면 자신의 부족함과 인생의 고난으로 절망할 때가 많습니다. 거기다가 점점 낡아져가는 육신으로 인해 낙심하여 소망을 잃고 주의 일에 힘쓰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낙심하지 않고 고난을 감당하며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질그릇 같은 우리 안에 보배로운 복음을 담아주시고 그것을 통해 크신 능력을 나타내시기 때문입니다. 이 시간 말씀을 통해 보배로운 복음으로 인해 나타날 주의 영광을 바라보고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소망 가운데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종들이 되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바울은 극한 고난을 받았지만 그 가운데서도 낙심하지 않았는데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첫째로, 질그릇에 담긴 보배로 인해 낙심하지 않았습니다(4:7).
7절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보배하니까 어쩔 수 없이 생각나는 분이 한 분 계시네요. 김보배 자매님! 보배를 사랑하는 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여기서 보배는 구원의 복음을, 질그릇은 바울 자신이자 택함 받은 우리를 가리킵니다. 보통 보배하면 금이나 다이아몬드 같이 값비싼 보석들이 생각나고 이런 것들은 번들번들한 유리진열대 안에 있어야 빛이 나고 보배 같아 보입니다. 그런 보배를 된장국이나 간장을 담는 뚝배기 질그릇에 담는다는 것은 전혀 어울리지 않습니다. 미녀와 야수 그런 느낌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보배로운 복음을 질그릇에 담길 원하셨습니다. 이는 심히 큰 능력이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기 위함입니다. 심히 큰 능력은 죄인을 구원하고 변화시키는 복음의 능력, 하나님의 능력을 말합니다. 사도 바울은 이 복음의 능력을 믿었을 뿐 아니라 많이 체험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힘을 자랑하는 로마에서 초라한 이민 생활을 하고 있는 로마 성도들에게도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롬1:16) 증거하였습니다.
  이 하나님의 심히 큰 능력은 음란한 도시 고린도에 살던 사람들을 변화시켜 거룩한 하나님 백성이 되게 하였습니다. 이는 복음이라는 보배가 비록 질그릇에 담겨 있어도 그것을 영접하는 사람을 변화시키어 새 사람 되게 하는 능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운명주의로 내면이 칠흑같이 어둡던 사람의 얼굴을 환하게 만들어 주고 추하고 지저분하게 살던 사람을 정결하고 경건한 사람으로 변화시켜 줍니다. 복음이 임하는 곳에 빛이 임하고 아름답고 향기로운 삶이 피어납니다. 그래서 왠만해서는 결코 웃지 않던 조영수 형제님도 요즘 한숨을 멈추고 간간히 웃으므로 하나님의 은혜와 영광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또 예전의 주민등록 사진만 봐서는 좀 고개를 갸웃거리게 되는 고승원 사모님도 복음의 능력으로 변화되어 이제는 온화한 미소로 뭇사람을 품고 섬기는 열국의 어미 중의 어미로 쓰임 받고 있습니다. 이는 심히 큰 능력이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있지 않다는 것은 우리가 얼마나 말을 잘하는가, 우리가 얼마나 능력 있고 괜찮은 사람인가에 달려 있지 않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나름 열심히 했는데 눈에 보이는 열매가 없다고 초라해하고 낙심할 필요가 없습니다. 자신의 부족한 그릇으로 인해 비교의식, 열등감 느끼며 절망할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약하고 부족한 것을 통해 하나님의 능력이 더 잘 나타나기 때문입니다.(고후12:9) 질그릇 같은 내 안에 보배로운 복음을 담겨 있음을 인해 오히려 감사하고 이를 힘써 증거하므로 고린도 같은 이 시대 사람들을 구원하고 변화시키는 역사에 귀히 쓰임받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둘째로, 고난 가운데서도 구원하시는 하나님으로 인해 낙심하지 않았습니다(4:8-15).
8,9절을 보십시오. “우리가 사방으로 욱여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박해를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라는 말은 포도주를 만들기 위해 포도를 밟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흔히 말하는 사면초가의 상태를 말합니다. 사도 바울은 이런 상황에서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완전히 싸이지 아니하였습니다.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라는 것은 ‘빠져나갈 길이 없을 정도로 절망적인 상태’를 가리킵니다. 건강이 나빠지고 하는 일도 잘 안되고 기대했던 자식도 뜻대로 되지 않으면 낙심하고 절망하게 됩니다. 바울은 믿었던 고린도 성도들에게 배척당하는 일을 만나 낙심할 수밖에 없었지만 하나님을 힘입어 낙심하지 않았습니다. 또한 박해를 받아도 버린바 되지 않고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않았습니다. 거꾸러뜨린다는 것은 검투사가 상대방을 넘어뜨려 목을 밟고 이제 칼로 찌르려는 상태를 가리킵니다. 사람들이 엄지손가락을 아래로 내려 죽이라고 하면 이제 끝인 것입니다. 그러면 정말 끝나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끌날 때까지 결코 끝난 것이 아닙니다. 바울은 이런 극한 환난 속에서도 낙심하거나 결코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하나님을 힘입어 믿음위에 굳게 섰습니다. 루스드라에서 돌에 맞아 거꾸러졌지만 하나님을 힘입어 다시 성으로 들어가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이는 그가 불사조라서가 아니라 생명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을 믿고 굳게 붙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힘들어도, 아무리 어려워서 길이 보이지 않아도 결코 포기하면 안됩니다. 왜냐하면 우리에게는 보배인 복음이 있고 보배로운 복음을 전파하는 목자의 직분이 있기 때문입니다. 현재 사방으로 욱여쌈을 당하고 하는 일마다 안되서 낙심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포기하지 말거나 낙심하지 말고 끝까지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음으로 이 가운데 역사하는 하나님의 은혜와 도우심 체험할 수 있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10,11절을 다 같이 읽어보시겠습니다. “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우리 살아 있는 자가 항상 예수를 위하여 죽음에 넘겨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죽을 육체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바울은 죽음을 통해 생명이 나타난다는 역설적 진리를 증거합니다. 이는 역설적으로 들리지만 실은 자연의 법칙으로 씨가 모든 영양분을 쏟아내고 죽을 때 생명의 싹이 돋아나는 이치와 닿아 있습니다. 오늘 살아있는 내가 예수의 죽음을 짊어질 때 누군가에게 반드시 예수의 생명이 나타나게 됩니다. 12절을 보십시오. “그런즉 사망은 우리 안에 역사하고 생명은 너희 안에서 역사하느니라.” 목자가 당하는 고난과 수고를 통하여 양들이 생명을 얻습니다. 목자가 얼마나 양들을 위해 고난 받고 수고하는가에 따라 양들이 얼마나 꼴을 얻고 생명을 누리는가가 결정됩니다. 오늘 우리가 목자로서 겪는 고난은 양들의 구원을 위한 몸짓임을 알아야 합니다. 13절을 보십시오. 이 말씀은 다윗의 시편116:10 말씀을 인용한 것으로서 다윗이 고통 가운데서 구원하시는 하나님을 믿은 것처럼 바울 자신도 이 하나님께서 자신을 구원하여 주실 것을 믿었다는 것을 말합니다. 이처럼 고난이 고난으로 끝나지 않고 그로 인한 생명의 역사와 거기서 구원하시는 하나님으로 인해 넘치는 감사를 돌려드리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본뜻입니다.(15).
세째로, 겉 사람은 낡아지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기 때문에 낙심하지 않았습니다.(4:16-18)
16절을 다 같이 읽어보시겠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 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 사람이 고생을 많이 하면 빨리 늙습니다. 예전에 공보의 시절 기차 타고 서울로 올라올 때 원주역에서 한 장교를 보게 되었습니다. 얼핏 봐도 당시 서른이던 저와 비슷해 보여 적어도 대위는 될 줄 알았는데 기차를 탄 그 장교가 고작 소위밖에 안되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얼마나 고생했으면 저렇게 삭았을까 마음이 아팠습니다. 바울도 주와 복음역사를 위해 받는 고난을 인해 겉 사람이 많이 후패하여졌습니다. 그는 육체에 가시를 가지고 있어 그것이 자기에게서 떠나가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세 번이나 간구할 만큼 육신이 약하였습니다.(12:7,8) 이런 그가 동족의 위험과 돌에 맞고 파선하며 옥에 갇히는 고난을 숱하게 당했으니 그의 겉 사람은 얼마나 낡아졌을까요? 우리 목자님들 새벽부터 기도하느라 수고하시고 양들과 씨름하느라 속이 썩다보면 머리카락도 자꾸 빠지고 눈도 침침해지고 여기저기 몸이 예전 같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너무 속상해하거나 절망할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겉 사람은 낡아지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기 때문입니다. 이는 컴퓨터 하드웨어는 아무리 최신 사양을 사도 시간이 지나면 낡아지게 되지만 소프트웨어는 버전을 업그레이드시키므로 날로 새로워지게 되는 것과 같습니다. 그것이 어떻게 가능합니까? 우리 안에 보배인 복음이 있기 때문에 가능합니다. 전에 알던 말씀, 전에 체험했던 말씀이 새롭게 다가오고 나의 하나님을 더 깊이 체험하게 될 때 우리 속사람은 새로워지게 됩니다. 환난을 통하여 우리의 소망이 새로워지고 믿음이 새로워지고 내면은 더 어린 아이 같이 순수해지게 됩니다. 그러므로 겉 사람이 낡아지는 것으로 인해 낙심하지 말고 날로 새로워지는 속사람의 소망 가운데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종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17절을 보십시오. “우리가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바울은 욱여쌈을 당하고 양들로 인해 낙심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는 환난까지 받았습니다. 이런 환난을 만나면 영광은 보이지 않고 고난이 영원히 지속될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환난은 잠깐이요 영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합니다. 지금의 고난이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는 통로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 앞에 닥친 환난과 시련으로 인해 절망하지 않고 지극히 큰 영원한 영광을 바라보며 이를 묵묵히 감당해야 하겠습니다. 다같이 18절을 읽어보시겠습니다.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 바울이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이 세상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하나님 나라였습니다. 왜 그랬습니까?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보이는 이 세상을 주목하며 살아갑니다. 좋은 집, 좋은 차, 좋은 옷, 맛있는 음식 멋진 여행지를 주목하며 살아갑니다. 저의 동역자는 사지도 않을 옷을 검색하고 저는 도저히 살 수도 없는 값비싼 자동차를 자주 검색하였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주목하여야 할 것은 잠깐 있다가 사라질 이 세상이 아니라 영원하신 하나님 나라입니다. 이 소망 가운데 눈에 보이는 것에 마음을 뺏기지 않고 적극적으로 말씀의 씨를 뿌리는 고난, 양들과 선교사님들을 위한 중보기도의 고난을 감당하므로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얻는 종들이 되게 하시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넷째로, 하늘에 영원한 집이 있기에 낙심하지 않았습니다(5:1-10).
5:1절을 보십시오.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느니라” 바울은 이 땅에 살아가는 우리의 육체를 장막 집으로, 장차 신령한 몸으로 변화될 우리의 몸을 영원한 집으로 비유합니다. 이 땅에 있는 장막 집은 언젠가 반드시 무너집니다. 이번에 최악의 허리케인이 미국 남동부 해안을 강타함으로 엄청난 가옥과 인명 피해가 났습니다. 한국 집보다 더 튼튼하게 지은 미국 집들도 무너지는데 장막집 곧 임시로 친 천막은 얼마나 쉽게 무너지겠습니까? 이처럼 이 땅의 장막집인 우리 육체도 그러합니다. 젊었을 때는 무쇠도 씹어서 삼키는 강철 체력을 자랑하지만 나이 들면 오장육부가 하나씩 탈이 나고 기억력도 깜빡깜빡하며 근골이 쇠하여져서 꼬부라지고 결국은 무너져버리고 맙니다. 가끔 치과에 제 나이 또래도 안됐는데 어금니가 다 흔들려서 찾아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다 뽑아야 하는데 남일 같지 않습니다. 참으로 서글프지만 이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이렇게 우리의 장막집이 무너지게 되면 사람들은 절망합니다. 무너진 육신을 다시 세울 수 없고 회복할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소망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사람의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닌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 집은 예수님의 부활로 완성된 완전하고도 영원한 집으로 우리가 궁극적으로 덧입게 될 부활의 몸, 영생의 몸을 가리킵니다. 이 집은 병들어 무너지거나 죄로 인해 부서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더 이상 소화불량 변비 불면증 허리디스크 치질로 고생할 필요가 없고 비교의식 열등감 정욕과 교만 반발심 우울증으로 괴로워할 필요도 없습니다. 아무거나 잘 먹고 잘 자고 항상 감사와 찬송과 기쁨이 넘치는 완전하고도 완벽한 집입니다. 바울은 이 영원한 몸이 있음을 인하여 낙심하지 않았습니다.
2절을 보십시오. 그러나 여기 있는 우리 육신의 현실은 어떠합니까? 약하고 추하고 죄악되기 때문에 바울은 탄식하며 하늘로부터 오는 몸 덧입기를 간절히 사모하였습니다. 이는 바울뿐만 아니라 모든 피조물이 탄식하며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서 몸의 속량을 이루어주길 고대하는 바였습니다.(롬8:22,23) 바울이 이렇게 이 몸을 덧입고자 하는 것은 벗은 자들로 발견되기를 꺼렸기 때문입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죽은 자의 영혼이 부활하기까지 육신을 덧입지 못하고 벗은 상태로 음부에 거한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유대인들이 가장 꺼리는 것이 나체로 발견되는 것이었으므로 바울은 자기 영혼이 그런 벗은 몸으로 발견되지 않기를 바란 것이었습니다. 4절을 보십시오. “참으로 이 장막에 있는 우리가 짐 진 것 같이 탄식하는 것은 벗고자 함이 아니요 오히려 덧입고자 함이니 죽을 것이 생명에 삼킨 바 되게 하려 함이라.” 그러면 바울이 이 땅에 있으면서 짐 진 것 같이 탄식하는 것은 고난이 너무 많고 이꼴 저꼴 못 볼꼴을 많이 봐서 빨리 확 죽어서 하늘나라에 가고 싶었기 때문일까요? 그런 마음도 없지 않았겠지만 바울의 본심은 벗고자 함이 아니라 오히려 덧입고자 함이었습니다. 마치 문서를 복사해서 덮어씌우기 하듯이 바울은 죽지 않고 자신의 죽을 몸에 부활의 몸을 덧입기를 간절히 원했습니다. “이 썩을 것이 반드시 썩지 아니할 것을 입겠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으리로다. 이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함을 입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을 때에는 사망을 삼키고 이기리라고 기록된 말씀이 응하리라.”(고전15:53,54) 하나님은 이 일이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라는 보증으로 성령을 주셨고 성령을 통해 확신을 주십니다. 이런 확신을 가지고 있던 바울의 삶이 어떠했습니까? 6,7절을 보십시오. 바울은 항상 담대하여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삶을 살았습니다. 대부분은 죽음을 두려워하여 소심하게 살아갑니다. 원치 않게 죄와 타협하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바울은 부활신앙이 있었기에 담대하게 죄와 싸울 있었습니다. 그리고 적극적으로 고난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것, 손에 잡히는 것이 없으면 절망합니다. <통장의 잔고가 없으면 절망합니다.> 그러나 바울은 눈에 보이는 것이 없고 손에 잡히는 것이 없어도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을 보는 것 같이 담대하게 믿음으로 살았습니다. 8,9절을 다 같이 읽어보시겠습니다. “우리가 담대하여 원하는 바는 차라리 몸을 떠나 주와 함께 있는 그것이라. 그런즉 우리는 몸으로 있든지 떠나든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가 되기를 힘쓰노라.” 바울이 담대히 원하는 바는 몸을 떠나 주님과 함께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주님과 함께 살 것을 알았습니다. 바울은 그날을 소망하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기에 힘썼습니다.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가 아니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가 그렇지 않은가 중요합니다. 그러므로 썩어 없어질 자기 한 몸 기쁘게 하는 삶에서 영원하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으로 변화되어야 합니다.  
  그가 이렇게 살든지 죽든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자 애쓴 궁극적인 이유가 무엇입니까? 10절을 읽겠습니다.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나타나게 되어 각각 선악 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 우리는 한 명의 예외도 없이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됩니다. 그날에는 이 땅에서 어떻게 살았는지 그 행한대로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여기에는 재시가 없습니다. 재시가 없다는 것은 정말 끝이라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두렵고 떨림으로 죄 짓기를 두려워하며 절대 복음 신앙으로 살아야 합니다. 자기 부인 자기 십자가의 길을 가므로 복음의 능력을 나타내고 생명의 구원하는 역사에 힘쓰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런 자에게 영원한 생명과 영광스러운 부활이 있는 줄 믿습니다.

  몇 달 전 한아브라함 목자님 병원에서 검진을 받았는데 중성지방이 489나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동안 운동하나는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정도였는데 몸이 예전 같지 않아 조금 놀라게 되었습니다. 거기다가 지난주부터 앞쪽에 보이지 않던 흰머리가 생겨나서 깜짝 놀라게 되었습니다. 어떤 선교사님이 붙여준 영원한 청년이라는 말이 무색해지는 것 같았습니다. 이런 가운데 영적인 열매라도 풍성하면 힘이 날 텐데 천수원 목자님 말고는 구체적인 열매가 없어 보여 낙심할 때가 많았습니다. 별로 붙임성도 없고 말주변도 없는데다가 나이도 점점 먹어 이제 하나님 역사에 쓰임받기 어렵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이제 제가 할 일은 이 육신의 장막을 잘 관리하여 빨리 무너지지 않도록 하는 것 밖에 없다 생각하고 시간 날 때마다 탁구라켓을 열심히 휘둘렀습니다. 그러나 탁구라켓이 저를 구원하여 주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탁구도 저를 자주 낙심하게 만들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저에게 오늘 말씀을 통해 질그릇 같은 제 속에도 여전히 보배로운 복음이 담겨져 있고 이를 통해 사람들이 변화되고 구원받는 역사가 계속해서 일어나게 될 것이라는 소망을 주십니다. 또한 이 땅의 낡아지고 무너져가는 장막집으로 인해 절망할 것이 아니라 영원하고도 완전한 집이 하늘에 있음을 소망하고 이 땅에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아야 함을 가르쳐 주십니다. 제가 이 소망 가운데 썩어질 자기 한 몸 기쁘시게 하는 삶을 회개하고 말씀을 연구하고 가르치며 양들의 내면문제와 씨름하는 수고를 힘써 감당하므로 생명의 역사 섬기는 종으로 쓰임받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부족한 자신으로 인해 또 낡아져가는 자신으로 인해 낙심할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질그릇 같은 우리 안에 보배로운 복음이 담겨져 있고 이를 통해 하나님의 큰 능력이 나타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겉 사람은 후패하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며 궁극적으로 영원한 집이 하늘나라에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 소망 가운데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않고 복음의 보배를 잘 담아 드러내는 역사에 헌신하므로 생명이 살아나는 역사에 귀히 쓰임받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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