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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nday Worship Message
주일예배메시지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7-10-29 (일) 12:31
분 류 고린도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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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고린도후서 제5강] 화목하게 하는 직분

2017년 고린도후서 제5강

화목하게 하는 직분

말씀/ 고린도후서 5:11-6:10
요절/ 고린도후서 5:18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서 났으며 그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주셨으니”

바울은 자신의 사도직에 대한 변증과 고린도 교인들이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새롭게 하도록 도왔습니다. 오늘 말씀에서는 이들이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은혜와 특권이 어떤 것인가 깨우치십니다. 하나님은 이들을 화목하게 하시고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주셔서 세상이 하나님과 화목하도록 하셨습니다. 이 은혜의 직분을 깨달을 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우리도 이 시간 하나님의 은혜를 깊이 깨닫고 이 영광스러운 직분을 오직 믿음으로 감당하는 종들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1.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주셨으니(5:11-21)
  사도 바울의 대적자들은 바울이 경솔하게 행한다고 비난하고, 예루살렘 교회의 추천서가 없다고 무시하였습니다. 이에 대한 바울의 답변이 무엇입니까? 11절을 보십시오. “우리는 주의 두려우심을 알므로 사람들을 권면하거니와 우리가 하나님 앞에 알리어졌으니 또 너희의 양심에도 알리어지기를 바라노라” 바울은 자신이 하나님을 두려움과 경외심으로 하나님을 섬겼다고 말합니다. 그는 하나님의 일꾼으로 살고자 진실되게 사도직을 감당하였습니다. 바울은 그의 진실성을 하나님께서 알고 계시며 고린도 교인들도 편견과 사사로운 감정을 버리고 양심에 비추어 바울을 인정하게 되기를 원한다고 말합니다. 사도 바울이 자신의 진실성에 대해 변증하는 이유는 ‘오직 우리로 말미암아 자랑할 기회를 너희에게 주어 마음으로 하지 않고 외모로 자랑하는 자들에게 대답하게 하려 하는 것이라’(12) 증거합니다. 새 번역 성경에서는 이렇게 번역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또 다시 우리가 우리 자신을 여러분에게 치켜세우려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여러분이 우리를 자랑할 수 있는 근거를 여러분에게 드리려는 것입니다. 그래서 속에는 자랑할 것이 없으면서도 겉으로만 자랑하는 사람들에게 여러분이 대답할 말을 가지게 하려는 것입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이 이를 통해 마음으로 하지 않고 외모를 기초로 말하는 거짓 교사들의 거짓에 속지 않고 바울이 전한 복음을 굳게 붙들기를 원했습니다.
  13절을 보십시오. “우리가 만일 미쳤어도 하나님을 위한 것이요 정신이 온전하여도 너희를 위한 것이니” 미쳤다는 것은 어느 일에 정신없이 몰입하여 빠져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표현으로 하면 ‘마니아’입니다. 바울은 미쳤다는 소리를 들을 만큼 복음전파에 온 열정과 마음을 바쳤습니다. 그리고 정신이 온전하여 양들을 돌보았습니다. ‘정신이 온전하다’는 것은 미쳤다는 말과 대조되는 말로서 절제된 마음상태를 가리킵니다. 바울이 이렇게 자신의 절제하는 삶을 산 것도 고린도 교인들에게 거리낌이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바울이 어떻게 이런 삶을 살 수 있었을까요? 14a절을 보십시오.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Christ's love compels us.)...”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에 사로잡혀 하나님과 양들을 위해서 헌신적인 삶을 살았습니다. 다메섹 도상에서 자기같이 그리스도를 대적하던 죄인을 일방적인 은혜로 구원해주실 뿐만 아니라 이방인의 사도로 불러주신 그리스도의 사랑을 생각하면 양들이 아무리 힘들게 해도 뒤로 물러설 수가 없었습니다.
  이렇게 그를 강권한 그리스도의 사랑은 어떤 사랑입니까? 14b,15절을 보십시오. “...우리가 생각하건대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은즉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 그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살아 있는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그들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그들을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이를 위하여 살게 하려함이라” 그리스도의 사랑은 모든 죄인들을 살리기 위하여 십자가에서 대속의 죽음으로 희생하신 사랑입니다. 이는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보이신 사랑의 극치입니다. 누가 나의 생명을 대신 하여 죽어줄 수 있습니까? 누가 나의 죄를 대신 하여 자기 생명을 줄 수 있습니까? 그리스도는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우리의 질고와 아픔과 죄악과 슬픔을 담당해 주셨습니다.(사53:4,5) 나의 아픔과 슬픔을 가져가 주시고 고통당하시고 내 대신 채찍에 맞으시고 내 대신 십자가에서 눈물로 우리의 죄를 용서해주실 것을 하나님께 간구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의 대속의 사랑에 강권되었을 때 바울은 복음을 믿지 않는 자들에게 이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습니다. 이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화가 미칠 것이라 간증했습니다.(고전9:16)
  그러면 예수님이 죄인들을 대신하여 죽으신 목적이 무엇입니까? 다시 한번 15절을 보십시오. 우리가 다시는 자기 자신을 위해 살지 않고 우리를 대신하여 죽으신 주님을 위해 살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 우리는 과거 어릴 적부터 자기 욕심과 이상과 꿈을 이루기 위해 살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하실 때부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존재로 지으셨습니다. 그런데도 죄인들은 하나님을 믿지 못하고 불신과 불순종, 반발심으로 하나님을 떠나 자기 욕심대로 살면서 멸망의 길을 자초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죄인들을 위해 다시금 예수님을 통하여 구원해주시고 다시는 그들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그들을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이 예수님을 위하여 살도록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하나님과 합하여 하나님의 복을 누리며 살도록 하셨습니다. 이를 볼 때 우리를 구원하신 목적은 자기중심에서 하나님 중심이 되고, 세상 백성에서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사는 본래의 목적대로 살도록 하신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자기를 위하여 살고자 한다면 이는 옛 사람으로 살고 있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신앙생활의 목적은 자기 욕심을 이루기 위한 수단이 아니요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주님의 영광을 위한 변화된 삶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주님을 위해 살고자 하면 그 나아 갈 길도 분명해집니다. 인생 목적이 자기 유익에 있는 사람은 유익을 계산하다가 길을 찾지 못하고 방황합니다. 우리가 이 말씀을 통해 예수님의 대속의 은혜를 기억하며 예수님을 위하여 사는 순수한 인생목적을 정립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그럴 때 경건한 삶을 살고 풍성한 열매를 맺고 승리의 인생을 살게 될 것입니다.
  16절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우리가 이제부터는 어떤 사람도 육신을 따라 알지 아니하노라 비록 우리가 그리스도도 육신을 따라 알았으나 이제부터는 그같이 알지 아니하노라” ‘이제부터’라는 말씀의 의미는 그리스도께서 우리 모든 사람의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부활하셨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부터를 의미입니다. 사도 바울이 주님의 십자가와 부활의 의미를 알게 되었을 때 영적인 눈을 뜨게 되고 모든 것을 영적인 눈으로 제대로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육신을 따라 안다’는 것은 육에 속한 것, 곧 소유나 인간조건을 기초로 평가한다는 뜻입니다. 그가 예수님을 육의 잣대로 보았을 때 예수님의 역사를 이단으로 보고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하는데 앞장섰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 있게 되었을 때 놀라운 변화의 역사로 인해 가치관과 관점이 완전히 바뀌게 되었습니다. 그는 예수님 안에서 변화된 자신을 보며 확신 있게 증거합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17) 그리스도 안에서 바울 자신이 새로운 피조물로 변화되었습니다. 그가 변한 것은 저절로 된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곧 그리스도와 연합될 때, 그리스도와 하나가 될 때, 그리스도의 힘으로 새로운 존재, 영의 존재로 변화 되었습니다.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다는 것은 하나님이 재창조를 하셔서 육의 존재가 영의 존재로 완전히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다는 의미입니다. 이는 엄청난 기적의 역사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감탄하고 있습니다. 이전 과거의 존재는 지나갔습니다. 죄의 본성대로 살던 과거 이전 세력이 지나가고 새로운 믿음과 은혜의 세계에 거하는 새 사람, 완전 딴 사람이 된 것입니다.
  목마름으로 물 길으러 왔던 사마리아 여인이 예수님을 만나고 변하여 사마리아로 달려가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 되었을 때 그는 분명 딴 사람, 새 사람이 되어 있었습니다. 날 때부터 맹인이 되어 걸인으로 살았던 자가 예수님을 만나 변화된 후 그는 쏟아지는 공격과 위협에도 한 가지 아는 것을 붙들고 믿음의 중심을 지키며 오히려 바리새인들을 깨우치는 자가 되었을 때 그는 완전히 새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을 만나면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됩니다. 과거 우리도 보잘 것 없는 죄악된 자신을 변화시켜보려고 별일을 다해보고 나름대로 투쟁을 많이 해보았지만 번번이 실패하며 절망하고 슬퍼하며 어두운 인생을 살았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만나고 그리스도 안에 거하므로 완전히 새로운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하나님의 택한 백성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다는 것은 하나님과, 세상에 대해, 또 인간관계에 대해 그 관계성이 완전히 변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성이 어떻게 변했습니까? 하나님과 원수 되어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하나님을 불신하고 무관심하던 데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로 하나님과의 관계성이 달라졌습니다. 세상에 대한 관계성도 세상을 사랑하고 세상의 지배를 받던 데서 세상을 정복하고 다스리는 사명인이 된 것입니다. 인간관계도 삶의 목적이 바뀌게 되니 서로 미워하고 시기하고 경쟁하던 데서 사랑하고 섬기고 동역하는 관계를 맺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통해 이 놀라운 기적의 역사를 이루어주신 주님의 은혜를 감사 찬양드립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더 이상 혈과 육을 좇는 육의 존재로 살지 않고 하나님을 자랑하고 섬기는 새로운 피조물로 살아야 합니다. 우리 자신이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음을 인식하고 새로운 피조물의 정체성을 가지고 변화된 인생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이제 사도 바울은 우리를 위해 대신 죽으신 그리스도를 위하여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가르쳐줍니다. 18절을 다 같이 읽겠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서 났으며 그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주셨으니”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서 났다’는 것은 새 창조는 인간의 어떤 행위나 힘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주권적, 일방적인 은혜로 말미암은 역사라는 것입니다. 곧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불화의 관계를 화목하게 하신 것도 전적으로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된 역사입니다. 누구와 불화한 적이 있습니까? 사람과 불화관계에 있으면 삶이 고통스럽고 고달픕니다. 우리나라는 남북 간 불화 관계에 있습니다. 언제 북한의 핵이 남한을 향하여 날아올지 모릅니다. 불화한 사람은 잠시 피할 수도 있지만 북한은 안 볼 수도, 피할 수도 없습니다. 이 때문에 끊임없는 갈등과 분쟁으로 긴장상태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는 서로가 화목할 길을 찾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하나님과 원수된 죄인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먼저 화해의 손길을 내미셨습니다. 불화관계를 풀기 위해서는 화목제물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은 아무 죄 없으신 예수님을 하나님의 어린양으로 삼아 화목제물이 되게 하셨습니다. 이 예수 그리스도의 피의 은혜를 덧입고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셨습니다. 이 은혜로 우리는 평안과 자유, 담대함과 행복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이런 은혜만 받은 것이 아닙니다. 화목하게 하는 직분도 받았습니다. 이 직분은 세상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는 직분입니다. 세상에는 불화가 심합니다.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짓고 하나님과 불화하게 되자 제일 먼저 부부끼리도 화목이 깨졌습니다. 하나님과 불화하게 되면 인간 사이에도 불화하게 됩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이런 불행한 삶에 대해 문제의식 없이 물질로, 조건개선으로 살 길을 찾고자 합니다. 누군가가 가서 먼저 하나님과 화목해야 한다는 이 사실을 속히 알려주어야 하는데 바울은 이에 자처하였습니다.

  바울은 이 직분을 어떻게 감당하였습니까? 19절을 보십시오. “곧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그들의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느니라” 바울은 먼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셨음을 강조합니다.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이 하나님과 화목하기에 힘써야 합니다. 그리고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통해 구원에 이르는 지혜를 공급받도록 도와야 합니다.(딤후3:15) 이사야 시대에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초청하셨습니다.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let us reason!) 너희의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지라도 양털 같이 희게 되리라”(사1:18)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고 순종하면 모든 죄를 사함 받고 하나님과 화목하게 될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20절에서 사도 바울은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감당한 자세를 말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사신이 되어 하나님이 우리를 통하여 너희를 권면하시는 것 같이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간청하노니 너희는 하나님과 화목하라” ‘사신’은 대사(ambassador) 또는 사절단(새 번역 성경)이란 뜻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보내신 특사입니다. 이 얼마나 영광스러운 직분입니까?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신이 되어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전파하는 신령한 복과 특권을 가진 자들입니다. 죄를 알지도 못하시는 그리스도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 곧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고 하나님의 의를 덧입게 하려는 것입니다. 이를 통해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간청하여 ‘너희는 하나님과 화목하라’ 권면했습니다. 우리가 외적인 조건개선이나 사람들 사이에 문제해결을 앞세우다 보면 하나님과 화목하지 못하고, 하나님과 화목하지 않을 때 더욱 큰 문제에 빠지게 됩니다. 사울 왕은 블레셋과의 전쟁의 위기 앞에서 믿음으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기보다 외적인 문제해결을 앞세우며 하나님께 불순종했을 때 하나님은 사울 왕을 버리실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생명의 위협 앞에서도 때마다 하나님께 묻고 하나님의 뜻을 따른 다윗은 하나님이 그 생명을 지키시고 승리케 하셨습니다. 우리를 하나님의 특사로 세우신 뜻을 따라 외적인 문제해결보다 먼저 하나님과 화목하도록 양들을 돕는 목자들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2.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6:1-10)
  이제 바울은 화목하게 하는 복음을 어떤 자세로 전했으며 어떤 고난을 겪었는지 자세히 증거합니다. 1절을 보십시오.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로서 너희를 권하노니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 사도 바울은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로서 하나님의 종의 권위로 고린도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고 명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신 구원의 은혜를 헛되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들이 붙들어야 할 중요한 기본은 바로 구원의 은혜입니다. 이 은혜를 거절하거나 미루지 말고 바로 지금 믿음으로 받아들이라고 합니다. 바울은 이사야서 49:8절 말씀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를 인용하여 하나님과 화목하고자 투쟁하여 지금 은혜 받을 때, 구원의 날에 다시금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고 그 은혜를 누리는 자들이 되도록 강권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이 화목케 하는 직분을 실제로 어떻게 감당했습니까?
첫째로, 비방을 받지 않게 하려고 아무에게도 거리끼지 않게 했습니다. 3절을 보십시오. “우리가 이 직분이 비방을 받지 않게 하려고 무엇에든지 아무에게도 거리끼지 않게 하고” 바울은 누구도 실족하여 넘어지지 않도록 하여 하나님의 역사가 비방 받지 않도록 조심하였습니다.
둘째로, 하나님의 일꾼으로 자천하여 많은 고난을 감당했습니다. 4절을 보십시오. 사도 바울이 오직 모든 일에 하나님의 일꾼으로 자천하여 주의 역사를 섬길 때 많은 고난이 있었습니다. 바울은 먼저 많이 견뎠다고 간증합니다. 그는 환난과 궁핍과 고난을 견디었고 외부로부터 오는 매 맞음과 갇힘과 난동을 견디었습니다. 또 수고와 자지 못함과 먹지 못함으로 받는 심한 고난도 감당했습니다. 제 2차 전도여행 때 빌립보에서는 매를 맞고 옥에 갇히기도 했고,(행16:21-24) 돌에 맞아 거의 죽을 지경에 이르기까지 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이런 가운데서도 타협하지 않고 오직 복음의 종으로서의 자세를 굳건히 지켰습니다.
  6,7절을 보십시오. “깨끗함과 지식과 오래 참음과 자비함과 성령의 감화와 거짓이 없는 사랑과 진리의 말씀과 하나님의 능력으로 의의 무기를 좌우에 가지고” 바울은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두 가지 원칙을 가지고 수행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깨끗함과 지식과 오래 참음과 자비함’(4가지)은 도덕적 원칙을, ‘성령의 감화, 거짓이 없는 사랑, 진리의 말씀, 하나님의 능력’(4가지)은 영적 원칙입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 성도들이 거짓 교사에 속아 목자 바울을 비방하고 대적할 때도 이 ‘의의 무기’를 좌우에 가지고 영광을 받을 때나 불명예스러울 때나, 나쁜 평판이나 좋은 평판의 때나 변함없이 순수하게 목자의 직분을 감당했습니다.(8a) 이 모습은 오른 손에 진리의 검을, 왼손에 하나님의 능력의 방패를 가지고 싸우는 영적인 군인의 모습을 연상시킵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 성도들과 혈과 육의 싸움을 싸우지 않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 사탄과의 영적 싸움을 싸웠습니다.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감당하려면 사탄과의 영적 싸움을 해야 합니다. 사탄은 거짓과 유혹으로 하나님과 사람 사이, 사람과 사람 사이에 영적 질서와 관계성을 불화하게 만듭니다. 사도 바울은 화해의 직책을 감당할 때 사람과 싸우지 않고 하나님에게서, 복음에서 멀어지게 하고, 믿음에서 떨어지게 하는 사탄의 세력과 싸워 말씀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도록 간청하고 설득하고 명령하였습니다. 사도 바울은 힘든 양들의 모습에 관계없이 이들을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강권하여 하나님의 복된 자녀가 되도록 생명의 위협과 고난을 기꺼이 감당하였습니다. 목자인 자신을 비난하고 불신하는 양들을 볼 때 밉고 판단이 되고 섬기기가 얼마나 어려웠겠습니까? 그러나 사도 바울은 하나님이 주신 화목의 직분에 충성하고 양들을 살리는 데는 두려울 것이 없었습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에 강권된 사도 바울의 변치 않는 목자의 심정과 사랑과 충성심을 볼 때 큰 은혜를 받게 됩니다. 그 동안 우리는 얼마나 쉽게 힘든 양들을 판단하고 소망을 끊기를 자주 했는가 회개치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에게 이런 사도 바울의 목자의 사랑과 믿음과 인내를 배우도록 은혜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이런 믿음과 심정으로 양들을 끝까지 하나님의 백성이 되도록, 기도의 종들이 되게 하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그가 이렇게 고된 삶을 끝까지 살았을 때 어떤 열매를 맺게 되었습니까? 8b-10절을 보십시오. “...우리는 속이는 자 같으나 참되고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요 죽은 자 같으나 보라 우리가 살아 있고 징계를 받는 자 같으나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고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 사도 바울의 사명인의 삶이 사람들이 보기에 속이는 자 같고 무명한 자 같이 보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참되고 진실한 하나님의 일꾼이었습니다. 그는 또 특별한 타이틀이나 권세도 없는 무명한 자 같았으나 실제로 그는 하나님 앞과 성도들 앞에서는 유명한 자가 되었습니다. 그는 자주 극심한 환난에 처해져 죽은 자 같았으나 오히려 늘 살아있는 불사조 같은 삶을 살았습니다. 그는 억울하게 징계를 받는 자 같았으나 이런 것으로 죽임을 당하지 않고 도리어 고난과 시련을 통해 정금 같은 믿음의 사람으로 빚어져 오뚝이 같이 일어섰습니다. 또 늘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영적인 기쁨과 하나님의 위로가 충만한 삶을 살았습니다. 가난한 자 같으나 수많은 사람들을 부요케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 살았습니다. 하나님은 사도 바울의 모든 고난과 희생을 받으시고 영광과 생명과 위대한 승리로 채워주셨습니다. 우리도 생전 모르는 사람에게 복음을 전할 때 무시 받고 배척 받는 아픔이 있습니다. 이런 나는 점점 초라해지고 내 생명은 점점 쇠잔해지고 가난한 자가 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우리야말로 하나님 앞에서 유명한 자요,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산 자요 복음으로 많은 사람들을 부요케 하는 진정으로 복 받은 자들입니다. 이 땅에서도 주님을 모시고 하늘 영광을 누림으로 모든 것을 가진 가장 부요한 자로 살고 있는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께 헌신한 목자의 삶을 하나님의 은혜로 채우시고 복주시고 받으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런 확신과 믿음으로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감당하는 종으로 끝까지 충성하기를 기도합니다.

결론적으로, 하나님은 우리를 화목하게 하는 자들로 세우시고 이 시대의 평화의 사도요 하늘나라의 대사로 쓰시고자 하십니다. 우리는 이 은혜와 특권을 마음에 새기고 우리 자신이 먼저 하나님과 화목하고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감당하는 목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원수 되었던 죄인들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모든 은혜를 감사 찬송드립니다. 우리를 통해 이 땅에 하나님과 화목하게 된 주의 백성들이 충만케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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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7 마태복음 [2017년 성탄 제3강] 아기께 경배하세 관리자 2017-12-24 917
516 이사야 [2017년 성탄 제2강]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관리자 2017-12-17 9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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