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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nday Worship Message
주일예배메시지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7-11-12 (일) 12:46
분 류 고린도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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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고린도후서 제7강] 이 은혜에도 풍성하게 할지니라

  2017년 고린도후서 제7강

이 은혜에도 풍성하게 할지니라

 말씀/ 고린도후서 8,9장
 요절/ 고린도후서 8:7  “오직 너희는 믿음과 말과 지식과 모든 간절함과 우리를 사랑하는 이 모든 일에 풍성한 것 같이 이 은혜에도 풍성하게 할지니라.”


 오늘 8,9장 말씀에서 사도 바울은 연보에 관한 귀중한 교훈을 주십니다. 이는 어려움에 처한 예루살렘 교회를 돕기 위해 고린도 교회가 일 년 전부터 연보를 시작하였는데 중간에서 흐지부지 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이들에게 연보의 의미와 유익함을 깨우치면서 작정한 연보는 끝까지 성취하도록 권면합니다. 우리도 연보의 의미와 유익함을 배워 실천함으로 믿음과 연보가 풍성하여 균형 잡힌 신앙생활을 함으로써 하나님의 더 큰 은혜와 복을 감당하는 복의 통로로 쓰임 받게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1. 이 은혜를 성취하라(8장)
  사도 바울은 먼저 마게도냐 교회들의 모범적인 연보의 자세를 소개합니다. 1,2절을 보십시오. “형제들아 하나님께서 마게도냐 교회들에게 주신 은혜를 우리가 너희에게 알리노니 환난의 많은 시련 가운데서 그들의 넘치는 기쁨과 극심한 가난이 그들의 풍성한 연보를 넘치도록 하게 하였느니라” 여기서 마게도냐 교회들은 현재의 발칸 반도에 위치한 빌립보, 데살로니가, 베뢰아 교회를 가리킵니다. 그들은 환난의 많은 시련과(행16:20) 극심한 가난 가운데서도 넘치는 기쁨과 풍성한 연보를 넘치도록 하였습니다. 환난의 많은 시련은 광신적인 유대교도들로부터 시기와 대적을 받은 고난을 의미합니다. 극심한 가난은 그리스도 인들에 대한 박해로 로마에 착취를 받음으로 인한 것을 의미합니다. 많은 환난이 있으면 고통스러워 슬퍼하게 되고 극심한 가난에 처하면 자기중심적이 되어 평소에 하던 헌금도 안하기 쉬운데 오히려 마게도냐 성도들은 슬픔 대신 넘치는 기쁨으로, 또 자기만 생각하는 대신 다른 사람을 위한 구제에 풍성한 연보를 하였습니다. 이들은 환난과 가난을 겪으면서 기근으로 인해 환난을 겪고 있는 예루살렘 성도들을 누구보다 더 이해하는 심정으로 불쌍히 여겨 돕고자 하였습니다. 바울은 그들이 이렇게 할 수 있었던 비결은 하나님이 주신 은혜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8장에 ‘은혜’라는 말이 모두 8번 반복되어 나옵니다. 아름다운 연보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임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마게도냐 성도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며 심령에는 넘치는 기쁨이 있었고 그 기쁨은 모든 역경을 헤쳐 나가는 힘이 되었습니다. 이 은혜는 베푸는 은혜를 말합니다. 대개 받는 것만 은혜라 생각하는데 주는 자가 되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마게도냐 교회들은 하나님의 은혜가 넘쳤기에 연보를 힘대로 할 뿐 아니라 힘에 지나도록 자원하여 감당했습니다. 1960년대 우리나라는 지극히 가난했습니다. 먹을 것이 없어서 영양실조로 인한 질병에 시달렸고, 돈이 없어서 병원에도 갈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자 태풍으로 쑥대밭이 되어 구제를 기다리던 방글라데시에 구제헌금을 보내는 은혜에 동참할 수 있었습니다. 이 은혜에 참여하고자 당시 학생 목자들은 교통비와 점심 비를 아끼고 모아서, 어떤 분은 헌혈을 해서라도 받은 돈으로 연보를 하였습니다.
  4,5절을 보십시오. “이 은혜와 성도 섬기는 일에 참여함에 대하여 우리에게 간절히 구하니 우리가 바라던 것뿐 아니라 그들이 먼저 자신을 주께 드리고 또 하나님의 뜻을 따라 우리에게 주었도다.” 마게도냐 성도들은 은혜, 곧 성도 섬기는 일을 특권(privilege, NIV)으로 여기고 목자 바울에게 이 은혜에 참여할 수 있기를 간절히 구하였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연보의 의미를 배우게 됩니다. 연보는 어쩔 수 없는 신자의 의무나 단순한 희생이 아니라 은혜요 특권이라는 것입니다. 연보할 수 있다는 자체가 하나님의 은혜요, 생명을 살리는 역사에 동참하는 것이므로 큰 특권이 되는 것입니다. 특권은 누구나 누리고 싶어 합니다. 이들이 이런 영적 의미를 알기에 연보에 대한 자세도 적극적이었습니다. 힘에 지나도록, 자원함으로, 이런 특권을 누리기를 간절히 구했습니다. 바울은 그들의 빈곤을 잘 알고 있었기에 그들에게 차마 연보를 요청할 수 없었을 텐데 그들은 이를 하나님의 은혜로 여기고 어찌하든 이 은혜에 참여하고자 간청을 하였으니 얼마나 감동을 받았겠습니까? 거기다가 그들은 먼저 자신을 주께 드리는 자세로, 또 하나님의 뜻을 따라 헌신하였습니다. 마게도냐 성도들은 단순히 예루살렘 교회를 위한 연보를 한 것이 아니라 먼저 하나님께 헌신하는 믿음의 자세로 연보를 하였습니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것을 잘 알았고 그들의 소유를 주님을 섬기는 일에 드리는 것이 큰 은혜요 특권으로 여겼습니다. 우리가 연보의 의미를 알게 될 때 연보하는 자세도 바뀌게 될 것입니다. 또한 그 동안의 우리의 연보의 자세가 어떠하였나를 돌아보게 됩니다. 그 동안의 소극적이고 타성적인 자세로 드렸던 것을 회개하고 자원하여 특권을 누리는데 빠지지 않고자 간청하여 먼저 자신을 주님께 드리는 성숙한 믿음으로 연보하는 자들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사도 바울은 마게도냐 성도들의 모범적인 연보의 자세를 소개하며 고린도 교인들도 이 은혜를 그대로 성취하도록 돕고 있습니다. 7절을 보십시오. “오직 너희는 믿음과 말과 지식과 모든 간절함과 우리를 사랑하는 이 모든 일에 풍성한 것 같이 이 은혜에도 풍성하게 할지니라” 사도 바울은 여기서 균형 잡힌 신앙이란 어떤 것인가를 가르쳐주십니다. 고린도 교회는 하나님의 은혜로 여러 은사들을 가지고 있었고(고전12장),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믿음도 있었고, 복음 진리에 대한 이해력과 지식도 높았으며, 목자를 향한 사랑도 풍성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자기를 희생하는 연보에는 부족하였습니다. 그들의 신앙생활은 다분히 이론적이고 논리적이어서 다른 영성에는 탁월한데 연보에는 부족하였습니다. 성경읽기를 통해 믿음을 쌓고 신앙서적을 읽고 인문학에 대한 지식을 쌓고 기도와 말씀 가르치는 일에 힘을 쓰는 것이 참으로 중요한 역사입니다. 그러나 교회에서 물질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 세속적이 된 것으로 여기고 연보를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이 모든 일에 풍성한 것 같이 이 은혜에도 풍성하게 하라고 격려하고 도전하십니다. 예수님은 물질 있는 곳에 네 마음도 있다고 하셨습니다.(마6:21) John Wesley는 너의 돈 주머니가 회개하기까지 너의 회개를 믿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곧 연보는 하나님 사랑, 형제 사랑의 표현인 것입니다. 균형 잡힌 신앙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믿음을 갖기 위해 투쟁하는 것처럼 자신을 드리고 물질을 드리는 실제적인 믿음을 갖기 위해서도 투쟁해야 하는 것입니다. 다른 것은 다 잘하는데 연보에 인색하다면 이는 신앙이 실제적이고 복음적이지 못한 것입니다. 그렇다고 바울은 연보를 명령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다른 이들의 간절함을 가지고 그들의 사랑의 진실함을 증명하고자 함이라고 말합니다.(8) 말로만 lip service를 하는 것으로는 사랑의 진실함이 나타나지 않습니다. 연보의 구체적인 희생이 진실한 사랑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그 예가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죄인들에 대한 그의 진실한 사랑을 어떻게 나타내셨습니까? 9절을 보십시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이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부요하게 하려 하심이라” 예수님은 만물을 존재케 하신 창조주이십니다. 이 세상의 모든 것과 측량할 수 없는 우주의 무한한 공간속에 있는 모든 것이 다 주님의 것입니다. 예수님의 영광과 존귀와 권세를 인간의 머리로 어떻게 측량할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은 이 모든 것을 버리시고 낮고 천한 이 땅에 육신을 입고 말구유에 오셔서 머리 둘 곳 없이 가난하게 사시다가 가장 비참한 중죄인으로 취급 받아 십자가에 못 박혀 죽기까지 가난하게 되셨습니다. 왜 이렇게 하셨습니까? 사도 바울은 ‘그의 가난함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부요하게 하려 하심이라’(9b)고 증거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대속의 희생으로 죄에서 구원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죽음과 심판밖에는 상속 받을 것이 없던 죄인들이 그의 말할 수 없는 풍성한 은혜로 영원한 하나님 나라 기업의 상속자가 되는 부요함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그의 가난함으로 말미암아 죄인들을 부요하게 하셨습니다. 이로써 하나님의 사랑의 진실함이 증명되고 확증되었습니다. 이 하나님의 사랑을 감사 찬양 드립니다. 우리는 이 하나님의 증명된 사랑 앞에 할 말이 없는 자들입니다. 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것이 근거가 되고 기준이 되어 우리도 형제 사랑의 진실함을 증명하는 자가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10,11절을 보십시오. “이 일에 관하여 나의 뜻을 알리노니 이 일은 너희에게 유익함이라 너희가 일 년 전에 행하기를 먼저 시작할 뿐 아니라 원하기도 하였은즉 이제는 하던 일을 성취할지니 마음에 원하던 것과 같이 완성하되 있는 대로 하라” 고린도 교회는 이미 1년 전에 연보를 작정하였습니다. 이제는 약정한 연보를 성취해야 할 때입니다. 연보를 성취하는 것은 물질의 많고 적음의 문제가 아니라 헌신하고자 하는 마음, 자원하는 마음의 문제입니다. 하나님은 있는 대로 받으실 터이요 없는 것은 받지 않으시는 분이십니다.(12) 13,14절을 보십시오. “이는 다른 사람들은 평안하게 하고 너희는 곤고하게 하려는 것이 아니요 균등하게 하려 함이니 이제 너희의 넉넉한 것으로 그들의 부족한 것을 보충함은 후에 그들의 넉넉한 것으로 너희 부족한 것을 보충하여 균등하게 하려 함이라” 연보의 또 다른 의미는 성도들에게 균등한 은혜를 누리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바울은 출애굽기 16:18절을 인용하여 하나님의 균등의 역사원칙을 가르쳐주십니다. “기록 된 것 같이 많이 거둔 자도 남지 아니하였고 적게 거둔 자도 모자라지 아니하였느니라”(15)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만나를 먹이실 때 내일 먹을 것을 염려하여 많이 거두어들인 자나 또 적게 거두어들인 자나 장막으로 돌아와 되어보면 한 오멜씩 모두 같았습니다. 곧 구제헌금으로 인해 자신들은 곤고하게 되고 다른 사람은 부요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안에서 균등하게 하려는 것임을 깨우쳐주십니다. 균등(equality)이란 ‘공정하게 한다’ ‘공평하게 한다’는 뜻입니다. 연보의 목적은 균등하게 하는데 있습니다. 현재 여유 있는 사람이 궁핍한 자의 부족함을 보충함은 후에 그들의 넉넉한 것으로 자신의 부족한 것에 도움을 받아 보충하여 부족함을 채우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현재 부자라고 영원토록 부자로 사는 것이 아니요 현재 가난하다고 항상 가난하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현재 부족하여 보충을 받은 자가 넉넉해져서 갑자기 가난하게 된 사람에게 그 은혜를 도로 갚게 하는 것이므로 결국은 지금의 선행으로 후에 자신이 도움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연보는 손해가 아니요 미래를 위한 투자입니다. 연보는 궁극적으로 자기를 위한 것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서로 나누는 일로 성도들 마음에 천국이 임하는 것입니다.
  16-24절에는 연보 위원들을 세워 고린도 교회로 파송하는 내용입니다. 연보를 어떤 사람이 관리해야 합니까? 첫째로, 간절함으로 자원하는 마음이 있는 사람입니다(16,17). 디도의 경우 에베소에서 고린도로 갔다가 마게도냐로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아 몹시 피곤했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그는 목자 바울로부터 예루살렘 교인들을 돕기 위해 고린도 교회에 가라는 권함을 듣자마자 더욱 간절함으로 자원하여 이 십자가를 지고자 나섰습니다. 디도는 연보에 대한 중요성을 알기에 자원하는 마음으로 이를 감당하고자 하였습니다. 또한 사도 바울은 그를 ‘나의 동료요 너희를 위한 나의 동역자요 우리 형제들로 말하면 여러 교회의 사자요 그리스도의 영광’이라고 소개하며 추천하고 있습니다.(23) 둘째로, 복음으로써 모든 교회로부터 칭찬 듣는 사람입니다.(18,19) 바울이 연보 위원을 신중하게 세움으로 연보에 대해 어떤 비방도 생기지 않게 하려는 것이요(20), 하나님 앞과 사람 앞에서 선한 일에 조심하기 위함이었습니다.(21) 셋째로, 여러 차례에 걸쳐서 열성적인 신앙이 입증된 자입니다. “또 그들과 함께 우리의 한 형제를 보내었노니 우리는 그가 여러 가지 일에 간절한 것을 여러 번 확인하였거니와 이제 그가 너희를 크게 믿으므로 더욱 간절하니라”(22) 연보를 감당하는 자는 사람들로부터 신뢰를 받는 자라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연보를 오직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데 쓰임 받도록 신중하고 지혜롭게 믿음의 사람들에게 맡겨서 주님께 영광이 되게 하였습니다.(24)

2. 모든 은혜를 넘치게 하시는 하나님(9장)
  1,2절을 보십시오. “성도를 섬기는 일에 대하여는 내가 너희에게 쓸 필요가 없나니 이는 내가 너희의 원함을 앎이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마게도냐 인들에게 아가야에서는 일 년 전부터 준비하였다는 것을 자랑하였는데 과연 너희의 열심이 퍽 많은 사람들을 분발하게 하였느니라.” 바울이 고린도 교인들에게 연보모금에 대해 더 이상 말할 필요가 없는 것은 그들에게 간절한 마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또 그들의 이런 열심은 다른 교회 성도들을 분발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실천이 부족한 이들의 준비를 돕기 위해 연보 실무자를 보내고자 하였습니다. 이를 통해 고린도 성도들이 나중에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도록 섬세하게 돕기 위함이었습니다.(3,4) 그들이 아직 준비하지 못한 것은 무엇보다도 거짓 교사들이 이들의 믿음을 흔들리게 하였고 목자 바울에 대한 불신을 심어서 이들의 간절함이 사라졌기 때문이었습니다. 믿음이 흔들리고 간절함이 없으니 참 연보를 할 수 없었습니다.
  참 연보는 어떤 연보입니까? 5b절을 보십시오. “... 이렇게 준비하여야 참 연보답고 억지가 아니니라” 준비된 연보야말로 참 연보답고 또 참 연보는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억지’로 하는 것은 자원하는 마음이 없이 체면치레로 하는 것입니다. 연보는 마음에서 우러나서 주님으로부터 받은 은혜의 분량에 따라 감사하는 마음으로 드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대부분 사람들은 연보를 드리는 순간 나의 소유가 나에게서 떨어져나가 없어졌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연보에 인색하게 되고 의무감으로 눈치껏 하게 됩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연보는 심는 것이라 하십니다. 6절을 보십시오. “이것이 곧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 하는 말이로다.” 농부가 가을 추수를 위해 이른 봄부터 자발적으로 열심히 씨를 뿌리듯이 연보는 씨를 심듯 심는 것입니다. 그래서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 하십니다. 여기서 연보는 헬라어로 ‘율로기아’ 곧 복(a blessing)으로 표현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연보는 복을 심는 것입니다. 잠언 11:25절은 “구제를 좋아하는 자는 풍족하여질 것이요 남을 윤택하게 하는 자는 자기도 윤택하여지리라” 가르칩니다. 7절에서는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 연보를 할 때 하나님은 즐겨내는 자를 사랑하신다고 하십니다. 연보하는 것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하나님의 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자에게 하나님이 주시는 복이 무엇입니까?
첫째로,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도록 하십니다. 8절을 다 같이 읽겠습니다. “하나님이 능히 모든 은혜를 너희에게 넘치게 하시나니 이는 너희로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게 하려 하심이라” 이 말씀에서 ‘모든’이란 말이 반복되어 나옵니다. 즐겨내는 자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은 그가 계속하여 하나님의 선한 일을 하도록 넘치는 모든 복을 주십니다. 하나님의 복이 없으면 계속하여 모든 착한 일을 할 수 없고 일회적으로 끝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능히 모든 은혜를 넘치게 하셔서 그들이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도록 복을 내려주십니다. 하나님은 연보를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더 큰 선한 일을 하도록 도우십니다.
둘째로, 그의 의가 영원토록 있게 하십니다. 9절 말씀은 시편 112:9절을 인용한 말씀으로 흩어 가난한 자들에게 베푸는 삶을 사는 자에게 하나님은 그의 의를 영원토록 있게 하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9) 하나님은 흩어 구제하는 자들을 빈궁하게 하지 않으시며, 그의 의를 시들게 하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베풀면 베풀수록 그의 삶을 더욱 부요하게 하시며 그의 의가 영원토록 있게 하십니다. 옥합을 깨뜨린 여인의 진심을 받으시고 예수님은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이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서는 이 여자가 행한 일도 말하여 그를 기억하리라 하셨습니다.(마26:13) Mother Barry 선교사님은 미시시피의 부호의 집안에서 태어나 공주와 같이 사실 분이었으나 가난한 한국 백성들을 위해 자기 인생을 흩어 영육 간에 가난한 학생들을 섬기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를 통해 하늘에 뭇별과 해변에 무수한 모래와 같이 많은 영혼들이 살아나는 역사로 축복하셨습니다. 하나님 역사에 이 종이 헌신한 그의 의가 영원토록 있게 하실 줄 믿습니다.  
셋째로, 의의 열매를 더하게 하십니다. “심는 자에게 씨와 먹을 양식을 주시는 이가 너희 심을 것을 주사 풍성하게 하시고 너희 의의 열매를 더하게 하시리니”(10) 가난한 자를 구제하는 것은 의의 열매를 맺는 길입니다. 구제를 심는 자에게 하나님께서는 구제할 씨와 먹을 양식을 주시고, 계속 심을 것을 주셔서 풍성하게 하시고 의의 열매를 더하게 하십니다. 그래서 구제하는 자에게 계속 의의 열매를 맺는 복을 받게 하십니다.
넷째로, 하나님께 감사하게 하십니다. 11,12절을 보십시오. “너희가 모든 일에 넉넉하여 너그럽게 연보를 함은 그들이 우리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게 하는 것이라 이 봉사의 직무가 성도들의 부족한 것을 보충할 뿐 아니라 사람들이 하나님께 드리는 많은 감사로 말미암아 넘쳤느니라.” 결국 고린도 교인들의 구제 연보를 통해 사람들은 실제적인 도움을 받을 뿐만 아니라 이들이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고 하나님께 감사함으로 하나님과 관계성을 맺도록 돕게 되는 것입니다.
다섯째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됩니다.(13) 이들의 헌신된 삶은 그들이 복음을 진실 되게 믿고 복종하는 믿음의 사람인 것을 입증하는 것이 되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됩니다.
여섯째, 기도와 사랑을 받게 됩니다. 14절을 보십시오. “또 그들이 너희를 위하여 간구하며 하나님이 너희에게 주신 지극한 은혜로 말미암아 너희를 사모하느니라” 연보의 은혜를 받게 된 자들은 자기들을 위해 헌신한 종들에게 감사하며 그들을 위해 기도해줍니다. 또한 그들을 사모하며 사랑의 교제를 하게 됩니다. 고린도 교회의 연보를 받게 된 예루살렘 교회는 고린도 교회가 보여준 헌신을 통해 두 가지 사실을 확인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는 이방 세계에 있는 고린도 교회가 복음을 진실 되게 믿고 복종했다는 것이요, 둘째는 고린도 교회와 예루살렘 교회 사이에 영적인 교제가 싹트게 되어 기도해주며 서로 사모하는 아름다운 영적인 관계를 맺게 된다는 것입니다. 물질로 다른 사람을 도울 때 끈끈한 사랑의 관계가 맺혀지게 됩니다. 예루살렘 교회는 감사함으로 구제헌금을 보낸 교회들을 위해 열심히 중보기도를 하게 될 것입니다. 연보의 비밀을 깨달은 사도 바울은 감격하여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말할 수 없는 그의 은사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노라!”(15)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연보를 통해 얼마나 많은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의 복을 받으며, 얼마나 하나님께 대한 감사와 영광을 드러내게 하시며, 얼마나 아름다운 사랑의 교제가 되는가를 가르쳐주심으로써 연보가 얼마나 유익하며 복인가를 증거합니다. 우리는 물질주의, 인본주의, 개인주의의 세력에 영향을 받아 신앙생활은 원하나 연보, 구제 헌금은 부담스러워하고 동참하기를 싫어할 때가 많았습니다. 연보가 하나님의 복의 통로인 것을 깨닫지 못하고 실제적인 희생은 피하면서 하나님의 복을 받는 데만 매달리는 절름발이가 되고 있었습니다. 이제 이런 우리를 깨우쳐주셔서 회개하여 물질주의 세력을 꺾고 영원한 의를 쌓는 복된 인생이 되게 하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결론적으로, 연보는 사랑의 진실함을 증명하는 것임을 영접하고 실천하는 자가 되고자 힘써야 하겠습니다. 또한 연보를 함으로써 더 큰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계속하여 일생 동안 모든 선한 일을 넉넉히 하는 종들이 되게 하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이를 통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자들이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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