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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nday Worship Message
주일예배메시지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7-11-26 (일) 12:31
분 류 고린도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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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고린도후서 제8강] 주 안에서 자랑하는 바울

 2017년 고린도후서 제8강

주 안에서 자랑하는 바울

 말씀/ 고린도후서 10:1-11:15
 요절/ 고린도후서 10:17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할지니라”


  앞에서 사도 바울은 예루살렘 성도들을 위한 구제헌금에 대해 언급하였는데 10장부터는 분위가 바뀌어 강한 어조로 자신의 사도권에 대한 변증으로 일관하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 가운데 중요한 말씀은 ‘자랑’, ‘하나님의 능력’이라 할 수 있습니다. 거기에다 ‘중매’라는 특이한 말씀이 나옵니다. 이는 모두 바울이 어떤 자세로 사도직을 감당했고 무엇을 의지하여 사탄과의 영적 싸움을 싸웠는가를 말해줍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사도 바울의 복음신앙과 양들로 향한 목자의 참된 사랑을 배울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1. 주 안에서 자랑하라(10장)
  1,2절을 보십시오. “너희를 대면하면 유순하고 떠나 있으면 너희에 대하여 담대한 나 바울은 이제 그리스도의 온유와 관용으로 친히 너희를 권하고 또한 우리를 육신에 따라 행하는 자로 여기는 자들에 대하여 내가 담대히 대하는 것 같이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나로 하여금 이 담대한 태도로 대하지 않게 하기를 구하노라” 대적자들은 바울이 떠나서 편지를 쓸 때는 담대하지만 막상 마주 대하면 나약한 겁쟁이처럼 행동한다고 비난하였는데 이에 대해 바울은 그리스도의 품성을 본받아 그리스도의 온유와 관용으로 대한 것이라고 변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양무리를 온유와 겸손으로 대하셨습니다.(마11:28,29) 그러나 복음의 원수들에 대해서는 조금도 타협함이 없이 강하게 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외식하는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에게는 독사의 자식들이라고 무섭게 책망하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런 은혜와 진리의 예수님을 본받고자 애를 썼습니다. 본래 바울은 율법적이고 타협이 없는 강경한 사람이었으나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 거듭난 후에는 예수님을 본받아 모든 겸손과 눈물로 양무리를 섬겼습니다.(행20:19) 그러나 복음의 원수들과는 타협이 없었습니다. 사도 바울의 대적자들은 이런 바울을 육신을 따라 행하는 자라고 비난했습니다. ‘육신’은 성령과 대비되는 인간적 속성을 의미합니다. 곧 바울이 세상의 기준을 따라 행하며 인간적인 욕심을 내어 사역을 감당한다고 비난한 것입니다. 바울은 이들에게는 담대히 엄하게 대하겠다고 말합니다. 이는 그들이 사도 바울을 통해 이루신 성령님의 역사를 훼방하는 죄를 짓기 때문이었습니다.
  3절을 보십시오. “우리가 육신으로 행하나 육신에 따라 싸우지 아니하노니” 바울은 자신이 세상에 살고 있으나 세상 사람들이 하는 대로 맞서 싸우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바울은 성령을 따르는 영적인 싸움을 하였습니다.(롬8:5) 4,5절을 보십시오. “우리의 싸우는 무기는 육신에 속한 것이 아니요 오직 어떤 견고한 진도 무너뜨리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모든 이론을 무너뜨리며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무너뜨리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하게 하니” 사도 바울이 싸우는 무기는 오직 어떤 견고한 진도 무너뜨리는 ‘하나님의 능력’이었습니다. 백전노장 사도바울은 사탄과의 영적 전쟁에서 하나님의 능력, 곧 기도와 말씀과 믿음을 가지고 싸웠습니다. 세상적인 기준으로 볼 때 바울의 무기는 약한 것처럼 보였지만 성령님의 역사와 하나님의 권세를 덧입었을 때 그 어떤 대적도 당할 수 없었습니다.(고전2:4,5)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능력은 세상 그 어떤 무기보다 강력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합니다.(히4:12) 또한 기도는 어떻습니까? 요한복음 14:13,14절은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행하리니 ...또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행하리라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라” 우리의 무기는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는 기도와 말씀의 영적인 무기입니다.
  이 무기가 어떤 역사를 이룹니까? 이는 어떤 견고한 진도 무너뜨리는 신적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모든 이론, 하나님을 아는 것을 대적하는 교만을 다 무너뜨리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께 복종하게 합니다. 영적 무기는 하나님을 거슬리는 모든 세력을 그리스도에게 복종시키는 힘이 있습니다. 바울은 이를 확신하였으므로 대적자들과 육신을 따라 맞서 싸우지 않았습니다. 이제 고린도 성도들이 먼저 온전하게 복종하게 될 때 모든 복종하지 않는 것을 벌하려고 준비 중에 있다고 경고하였습니다. 거짓 사도들은 팔레스타인에서 고린도에 스며들어온 유대주의적 율법주의자들로서 이들은 자신들의 율법주의적 이단 교리를 고린도 교회를 비롯한 여러 초대교회에 심고, 또 자신들의 입지를 공고히 하고자 사도 바울의 주장을 약화시키기 위해 그의 사도권을 공격한 자들이었습니다. 이들의 자세가 어떠하였습니까? “너희는 외모만 보는도다 만일 사람이 자기가 그리스도에게 속한 줄을 믿을진대 자기가 그리스도에게 속한 것 같이 우리도 그러한 줄을 자기 속으로 다시 생각할 것이라”(7) 이 말씀은 거짓 사도들이 바울을 약하다고 비난하는데 대한 변증입니다. 거짓 사도들은 외모만 내세워 자기들은 그리스도에게 속하였으나 추천서도 없고 말도 제대로 못하는 바울은 그리스도께 속하지 않다고 주장하였습니다. 그런데 고린도 교인들이 거짓 사도들에게 속아 목자 바울을 외모로만 보는 것이 더 큰 문제였습니다. 당시 고린도 교인들은 추천서나 언변술, 환상적인 신비한 체험들을 사도직의 기준으로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이들이 하나님의 이루신 역사를 보고 제대로 판단하도록 돕고 있습니다.
  8절을 보십시오. 주님이 바울에게 사도의 권세를 주신 것은 성도들을 무너뜨리려고 하신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세우려고 주신 것으로서 바울은 하나님이 맡겨주신 양들을 잘 양육하여 교회를 굳건히 세워나가기 위해 모든 수고를 하였으므로 이는 그가 참 사도임을 증명하는 분명한 증거였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얼마든지 자기를 자랑해도 지나치지 않다고 확신 있게 증거하였습니다. 그러나 그가 이렇게 자신의 사도적 권위를 주장할 수 있으나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은 “내가 편지들로 너희를 놀라게 하려는 것같이 생각하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9) 거짓 사도들은 바울이 편지로는 큰 소리를 치지만 만나면 약하고 말도 시원치 않다고 빈정대었습니다.(10) 그러나 바울은 직접 만나게 될 때에 그때도 회개하지 않는다면 편지에 경고한 대로 징벌할 것임을 알라고 경고하였습니다.(11) 12절을 보십시오. “우리는 자기를 칭찬하는 어떤 자와 더불어 감히 짝하며 비교할 수 없노라 그러나 그들이 자기로써 자기를 헤아리고 자기로써 자기를 비교하니 지혜가 없도다” 이들은 자기 스스로를 높이는 자들이었습니다. 이들은 온갖 겉치레로 자랑하지만 바울은 그들처럼 그런 식으로 비교하지 않았습니다. 13절에서 바울은 이들과 달리 자기가 자랑하는 것은 하나님이 이루신 역사임을 증거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분수 이상의 자랑을 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이 우리에게 나누어주신 그 범위의 한계를 따라 하노니 곧 너희에게까지 이른 것이라” 곧 하나님이 자기를 통해 이루신 역사 그 이상을 자랑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루신 그 역사 안에서 자랑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는 하나님이 자기를 통해 이루신 정당한 영역임을 밝힙니다. 14절에서 ‘우리가 너희에게 미치지 못할 자로서 스스로 지나쳐 나아간 것이 아니라’는 것은 바울이 고린도에까지 복음을 전한 것은 그가 마음대로 지나치게 뻗어나간 것이 아니라 주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고린도 교회까지 개척하게 되었음을 자랑하는 것이었습니다.(행18:5) 15,16절에서 바울은 다시 한 번 고린도 교회에 대한 자랑과 그의 소원을 밝히고 있습니다. 우리는 남의 수고를 가지고 분수 이상의 자랑을 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이들의 믿음이 성장하여 그의 활동범위가 크게 풍성하여지기를 바라며 이들의 지역이 넘는 곳까지 복음을 전하려 한다는 것입니다. 대적자들은 바울이 개척한 고린도 교회에 들어와서 마치 자기들이 주인역할을 하는 것처럼 다른 사람이 수고한 일을 가지고 자기자랑 하였습니다. 실로 사도 바울의 선교정책은 자기자랑을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신 선교명령에 순종한 역사요 하나님의 능력으로 이루신 역사였습니다. 이러한 그의 자세는 분수 이상 자랑하려는 거짓 사도들과 명백히 구분되는 것으로써 바울이야말로 하나님이 세우신 사도임을 증명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거짓 사도들을 보며 사도 바울이 주는 교훈이 무엇입니까? 17절을 다 같이 읽겠습니다.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할지니라” 사람들은 자기를 자랑하며 인정받기를 좋아합니다. 우리도 별것도 아닌 것까지 포함하여 수백 가지가 넘는 자기 자랑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것은 별의미가 없고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고 교만하게 할 뿐입니다.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거짓 사도들은 남의 수고를 가지고 분수 이상 자기가 큰 몫을 한 것처럼 헛된 자랑을 하였습니다. 주 안에서 자랑한다는 것은 하나님이 자랑이 되고 하나님의 복음, 하나님의 말씀이 자랑이 되고 하나님이 이루신 역사를 자랑하는 것입니다. 모든 자랑은 주님께서 이루신 사역을 자랑하고 그것을 이루신 주님을 자랑해야 합니다. 주님의 권능과 은혜를 자랑해야 합니다. 주님을 자랑할 때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고 자랑하는 자의 영적 권위가 서고 역사하는 힘이 생깁니다. 사도 바울은 선교사역을 감당한 후에는 언제나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렸습니다.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고전15:10) 또한 바울은 주님께서 정해주신 분량의 한계 내에서 자랑했습니다. 사람들은 틈만 나면 자기 자랑을 하고자 애를 씁니다. 출신학교를 자랑하고 업적을 자랑하고, title이나 license, 세상 경험과 경륜과 지식을 자랑합니다. 이런 것을 인정해주지 않으면 분노하고 상처받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런 인간의 자랑은 하나님이 보실 때 허탄한 것입니다. 예레미야 9:23,24절을 보면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지혜로운 자는 그의 지혜를 자랑하지 말라 용사는 그의 용맹을 자랑하지 말라 부자는 그의 부함을 자랑하지 말라 자랑하는 자는 이것으로 자랑할지니 곧 명철하여 나를 아는 것과 나 여호와는 사랑과 정의와 공의를 땅에 행하는 자인 줄 깨닫는 것이라 나는 이 일을 기뻐하노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중국 선교의 아버지인 허드슨 테일러에게 어떤 사람이 물었습니다. “선교사님, 이렇게 위대한 일을 하셨는데 왜 자랑하지 않습니까?” 테일러 선교사님은 이렇게 답했습니다.“내가 무엇을 했다는 것입니까? 저는 아무것도 한 것이 없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이 하셨습니다. 제가 자랑할 것이 있다면 하나님의 종이라는 것뿐입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자랑해야 할 것은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 가운데 행하신 아름다운 덕입니다.(벧전2:9) 주님을 자랑하는 자를 하나님도 자랑하시고 칭찬하십니다.(18) 그는 옳다 인정함을 받는 자입니다.

2. 그리스도께 성도들을 중매하는 바울(11:1-15)
  1-4절 사이에서 ‘용납하라’는 말이 세 번이나 반복됩니다. 이는 고린도 교인들이 진정으로 용납해야 할 목자 바울은 배척하고 용납해서는 안 될 거짓 사도들의 말은 잘 용납하기 때문에 이를 깨우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1절을 보십시오. “원하건대 너희는 나의 좀 어리석은 것을 용납하라 청하건대 나를 용납하라” 바울은 자기를 자랑하는 어리석은 것을 용납해달라고 부탁합니다. 바울은 자기자랑을 하는 것이 어리석은 일인 줄 알면서도 부득불 자랑하였습니다. 이는 현재 고린도 교회에 침투해 들어온 적대자들의 정체를 드러내고 바울 자신의 사도권을 지키기 위해 자랑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기 때문이었습니다. 2절을 보십시오. “내가 하나님의 열심으로 너희를 위하여 열심을 내노니 내가 너희를 정결한 처녀로 한 남편인 그리스도께 드리려고 중매함이로다...” 바울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위해 열심을 내시는 그런 열심으로 이들을 그리스도께 중매하기 위해 애썼습니다. 여기서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를 남편으로, 성도들을 신부로, 자신은 중매인으로 비유합니다. 그러므로 사도직은 성도들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하기 위해 정결한 처녀로 준비시키는 일을 하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를 ‘한 남편’이라고 한데는 특별한 의미가 있습니다. 이는 그리스도만이 우리의 유일한 남편이 되심으로 신자는 정결한 처녀로서 그리스도 예수님과 절대적인 사랑의 관계성을 누리는 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고린도 교회가 거짓 사도들의 말에 속아 진정한 유일한 남편 되신 예수님을 떠나는 위험에 처해 있었습니다. 이는 뱀이 그 간계로 하와를 미혹한 것 같이 거짓 사도들이 성도들을 미혹하여 그들의 마음이 그리스도를 향하는 진실함과 깨끗함에서 떠나 부패하도록 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3) 그런데도 고린도 교인들은 분별력이 없이 어리석게 이들을 용납하였습니다.
  4절을 보십시오. “만일 누가 가서 우리가 전파하지 아니한 다른 예수를 전파하거나 혹은 너희가 받지 아니한 다른 복음을 받게 할 때에는 너희가 잘 용납하는구나” 거짓 사도들은 고린도 성도들에게 다른 예수, 다른 영, 다른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사도 바울이 전한 복음은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셨다‘는 사실이었습니다.(고전15:3,4) 그러나 거짓 사도들은 예수님을 전하나 바울이 고백하는 그리스도와는 본질적으로 다른 예수님을 전파하고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로 구원 받는 도리를 인정하기 꺼려하는 다른 영, 다른 복음을 전파하였습니다. 그런데 고린도 성도들은 이를 깨닫지 못하고 그들이 전한, 진리가 아닌 다른 복음을 쉽게 용납하였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들은 거짓 사도의 말에 속아 그들의 마음이 그리스도를 향한 진실함과 깨끗함(sincere and pure devotion)에서 떠나 부패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리스도의 신부인 신자는 한 분 그리스도께 신실하여 다른 것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도록 진실함과 깨끗함을 지켜야 합니다. 그러나 이들은 그리스도 예수님에게서, 또 진정한 복음에서 떨어져 나가 있었기 때문에 거짓 사도들의 말에 속아 넘어간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예수님과 그의 말씀에서 멀어지면 다른 예수, 다른 영, 다른 복음을 분별할 수 없습니다. 지금도 인본주의, 세속주의, 혼합주의 세력으로 복음신앙은 흐려지고 세상세력, 인본적 사고에 타협한 신앙이 더 마음에 와 닿고, 부담이 없고, 기쁨을 준다고 느끼게 합니다. 이런 자는 오직 은혜와 사랑만을 원하고 십자가의 진리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을 배척하고 이를 율법적이라고 공격합니다. 이 시대 우리 가운데도 다른 예수, 다른 영, 다른 복음이 용납되는 것이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얼마든지 쉽게 우리 가운데 들어올 수 있습니다. 이런 세력 앞에서 우리는 어떻게 우리 신앙을 지키고 부패함에서 떠날 수 있습니까? 이는 오직 예수님과 그의 말씀을 붙드는 것입니다. 우리가 더욱 더 예수님을 가까이 배우고자 하고 예수님의 말씀을 기준으로 살고자 애써야 합니다. 십자가를 통해 참 그리스도인으로 연단 받는 것을 꺼려하고 오직 아무 규범이 없이, 한정 없이 자기 마음 내키는 대로 자유롭게 살고자 하고 복음에 얽매임 없이 사는 것을 인격적인 것으로 착각하여 세상적으로 산다면 속히 부패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 가운데도 이런 세력 때문에 하나님의 아름다운 역사가 방해받고 있습니다. 믿음으로 산다 하는 우리들이 이런 세력을 용납할 것이 아니라 경계하고 그리스도께 복종하는 자녀로 키우는 올바른 중매쟁이가 될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5-15절 말씀에서 바울은 거짓 사도와 비교하여 자신의 사도직의 우월성을 자랑합니다. 5,6절을 보십시오. “나는 지극히 크다는 사도들보다 부족한 것이 조금도 없는 줄로 생각하노라 내가 비록 말에는 부족하나 지식에는 그렇지 아니하니 이것을 우리가 모든 사람 가운데서 모든 일로 너희에게 나타내었노라” 여기서 바울은 지극히 큰 사도들과 견주어도 자신은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사도임을 당당히 밝힙니다. 바울은 특히 그의 영적 체험적 지식은 모든 사도 가운데 모든 일로 이미 나타내어진 것임을 자랑합니다. 바울은 지식 면에서는 누구보다 뛰어난 하나님의 종이었습니다. 바울은 자신의 삶으로 ‘바른 예수님’ ‘바른 성령님’ 그리고 ‘바른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는 구체적으로 이를 어떻게 실천했습니까? 7-11절에서 사도 바울은 무보수로 복음사역을 한 것에 대해 비난하는 자들에 대해 변증을 합니다. 바울은 자기를 낮추어 겸손한 자세로 하나님의 복음을 값없이 전했습니다. 그런데 바울의 적대자들은 이러한 그의 진심과 헌신하는 자세를 오해하였습니다. 이들은 바울이 보수를 받지 않음은 사도권에 결함이 있기 때문이요 고린도 교인들에 대한 애착이 없고 무관심하기 때문이라 왜곡시켰습니다. 그러나 바울이 이렇게 한 것은 자기를 낮추고자 한 것이요 이들에게 폐를 끼치지 않기 위함이었습니다.(7) 심지어 이들을 섬기기 위해 다른 여러 교회로부터 물질 지원을 받은 것을 탈취한 것으로 표현할 만큼 그는 자기를 지원한 마게도냐 여러 교회들에 대해 미안해하였습니다. 실제로 “또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 비용이 부족하였으되 아무에게도 누를 끼치지 아니하였음은 마게도냐에서 온 형제들이 나의 부족한 것을 보충하였음이라 내가 모든 일에 너희에게 폐를 끼치지 않기 위하여 스스로 조심하였고 또 조심하리라”(9) 고백하고 있습니다. 바울이 고린도 교회 개척 18개월 기간 동안 아굴라와 함께 천막을 제조하는 일에 종사하면서 생활비를 충당하였는데 그때마다 가난한 마게도냐 교회들이 보내온 후원금이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바울이 아가야 지역에서 아무런 보수도 받지 않고 사역을 감당한 것은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진리대로 산 것이므로 그 자랑은 어떤 사람도 막지 못할 것을 확신하였습니다.
  12절에서 바울은 앞으로도 자신의 자비량 선교정책을 고수할 것을 밝히고 또한 기회를 찾는 자들, 곧 바울의 대적자들이 바울에게 물질적 도움을 받아들이게 함으로써 자기들도 바울과 동등하게 진짜 사도로 인정받으려는 그 기회를 바울은 끊고자 하였습니다. 바울은 이제까지 밖으로는 거짓 사도들과 싸우고 고린도 교인들에게는 그들의 문제를 깨우치고 사도 바울의 사도권을 인정하고 이들이 예수님께 돌아오도록 온갖 투쟁을 했습니다. 사실 목자의 해산의 수고로 믿음을 배우고 하나님의 복을 받은 이들이 복음을 굳게 붙들지 않아서 흔들리고 이제는 배은망덕하여 거짓 사도들의 말에 미혹되어 목자 바울을 비난하는 일에 동참하는 것을 보는 바울의 마음은 얼마나 고통스럽고 원망이 되었겠습니까? 이들을 판단하고, 어쩔 수 없다 포기하고, 이들의 죄 문제로 치부하고 그냥 내버려 둘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무지해져서 미혹되어 부패해진 이들을 어찌하든 예수님께 중매하고자 이제까지 모든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았습니다. 책망도 하고, 칭찬도 하고, 깨우치기도 하고, 거짓 사도들의 정체를 폭로하며 정신 차리도록 돕기도 하였습니다. 목자 바울을 불신하는 이들에게 어리석은 줄 알지만 자랑도 하며 자신이 정당한 하나님이 세우신 사도요 목자임을 증거하였습니다. 심지어 무보수로 섬긴 그의 헌신을 오해한 이들에게도 고린도 성도들에 대한 바울의 지극한 사랑이 어떠했는가를 말해야만 했을 정도로 바울은 양들을 살리기 위해 별별 일을 다 하며 눈물 나는 투쟁을 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진정한 목자 바울의 진면목을 보며 목자의 자세가 어떠해야 하는가를 배웁니다. 우리는 양들이 조금만 반응이 안 좋아도, 또 신실치 못해도 쉽게 소망을 끊고 무관심하기 잘하며 죄와 싸워서 깨닫도록 돕지 못한 자였음을 회개케 됩니다. 사도 바울은 자기 열심으로 하다가 어느 날 갑자기 끊어지는 그런 열심이 아니라 하나님의 열심으로 양들을 섬겼습니다. 하나님의 열심은 영원토록 변치 않는 일방적인 하나님의 사랑의 힘입니다. 우리가 이런 하나님의 열심을 덧입고 양들을 섬기는 사도들이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이제 사도 바울은 거짓 사도들이 어떤 자들인가를 밝힙니다. 그들은 거짓 사도요, 속이는 일꾼이요, 자기를 그리스도의 사도로 가장하는 자들입니다.(13) 그들이 이렇게 짝퉁 노릇을 하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사탄도 자기를 광명의 천사로 가장합니다. 사탄의 일꾼들이 자기를 의의 일꾼으로 가장하는 것도 더 이상 대단한 일이 아닙니다. 이는 언제나 어디서나 일어나는 사탄의 역사라는 것입니다. 사탄은 지금도 그리스도의 사도로, 광명의 천사로, 의의 일꾼으로 가장하여 우리에게 침투합니다. 이런 사탄의 역사를 분별하고 우리는 바른 예수, 바른 복음을 따라 적극적으로 복음신앙을 고수하고 이 길을 끝까지 가야 할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주님만 자랑하고 양무리를 주님께로 인도하는 사도직을 믿음으로 감당해야 하겠습니다. 이를 위해 하나님의 열심으로 양들을 그리스도께 중매하는 종들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또한 거짓이 난무하는 이 시대 오직 말씀과 기도로써 사탄의 세력과 싸워 그리스도를 향하는 진실함과 깨끗함을 지켜나가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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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6 이사야 [2017년 성탄 제2강]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관리자 2017-12-17 9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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