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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nday Worship Message
주일예배메시지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7-12-03 (일) 12:28
분 류 고린도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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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고린도후서 제9강] 약한 것을 자랑하는 바울

  2017년 고린도후서 제9강

약한 것을 자랑하는 바울

 말씀: 고린도후서 11:16-12:10
 요절: 고린도후서 12:9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지금까지 바울은 거짓 사도들과 자신을 비교하면서 거짓 사도들의 위선과 교만을 폭로하고 자신의 사도권을 변증하였습니다. 오늘 말씀에서는 사도바울이 자신을 자랑하는 내용이 구체적으로 나옵니다. 자랑하는 것을 어리석은 일이라고 하면서도 자랑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는 뼈대 있는 정통 유대인으로서 높은 학벌과 지식을 갖춘 자였으나 양들과 하나님의 역사를 위해서는 위험을 무릅쓰고 생명을 바쳐 수고한 그리스도의 일꾼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이런 위대한 인생을 살 수 있었던 근본 힘은 약한데서 강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 때문이었음을 자랑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의 간증을 통해 약한데서 온전하게 하시는 하나님께 대한 믿음을 배울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1. 사도 바울의 자랑(11:16-33)
  16절을 보십시오. “내가 다시 말하노니 누구든지 나를 어리석은 자로 여기지 말라 만일 그러하더라도 내가 조금 자랑할 수 있도록 어리석은 자로 받으라” 바울은 자기 자랑은 이유가 무엇이든지간에 어리석은 일임을 인정합니다. 특히 주 안에서 자랑하라고 강조한 자기가 자기자랑을 하고자 할 때 어리석은 자로 오해받지 않기를 바랐습니다. 그런데도 부득불 자랑하는 것은 전적으로 고린도 교인들의 목자 바울에 대한 오해를 풀고 그가 진정한 그리스도의 일꾼임을 간증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주님의 사도로서 자기 자랑을 하는 것은 주님의 명령과 뜻에 어긋나는 일인 줄 알지만 오직 어리석은 자 곧 거짓 사도들의 속임에 빠져 목자를 배척한 고린도 성도들을 위해 부득불 자기자랑을 기탄없이 하겠다고 말합니다.(17) 또 여러 사람이 육신을 따라 자랑하니 나도 자랑하겠다 말합니다.(18) 사도 바울이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고린도 성도들이 지혜로운 자로서 어리석은 자들을 기쁘게 용납하기 때문이었습니다. 알 만한 사람들이 속아 넘어가니 목자 바울은 얼마나 답답하겠습니까? 거짓사도들이 고린도 교인들의 신뢰를 얻은 후에는 그들을 종으로 삼거나 잡아먹거나 빼앗거나 스스로 높이거나 때로는 뺨을 치는 악을 행했는데도 그들은 분별이 없이 그들을 용납하였습니다.(20)
  21절을 보십시오. “나는 우리가 약한 것같이 욕되게 말하노라 그러나 누가 무슨 일에 담대하면 어리석은 말이나마 나도 담대하리라” 바울은 역설적으로 우리는 너무 약하다고 인정하였습니다. 그러나 거짓 사도들이 담대히 자기 자랑을 한다면 바울 자신도 어리석은 자처럼 자기 자랑을 하겠다고 하였습니다. 22절에서 바울은 거짓 사도들의 자랑과 비교하며 자신도 그들 못지않은 자랑거리가 있음을 밝힙니다. “그들이 히브리인이냐 나도 그러하며 그들이 이스라엘인이냐 나도 그러하며 그들이 아브라함의 후손이냐 나도 그러하며” 특히 히브리인이라는 것은 혈통적으로도 순수하며 조상들의 유전으로도 결함이 없는 순수한 유대인임을 밝히는 것입니다. 또한 바울 자신도 택함 받은 이스라엘 백성이요 할례 받은 언약의 조상 아브라함의 후손임을 자랑하였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거짓 사도들이 그리스도의 일꾼인가 물으며 나는 더욱 그러하다 역설합니다. 그리스도의 참된 일꾼이라면 복음역사를 위해 기꺼이 고난 받고 수고한 자를 의미합니다. 그런 면에서 바울은 자신이 얼마나 주님을 위해 고난 받고 수고한 자인가를 자세히 증거합니다. 사도 바울이 당한 고난을 3가지로 분류해본다면 첫째는, 복음전파에 대한 박해로서 많은 수고와 옥에 갇히는 일과 애매하게 매를 맞고, 죽을 고비를 당한 것입니다.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이나 맞았고 태장을 세 번이나 맞았습니다. 대개 39번의 매를 다 맞기 전에 죽었다고 하는데 그는 이를 다섯 번이나 맞았습니다. 태장은 사람을 죽게 만들 수도 있는 가혹한 형벌이기 때문에 로마 시민에게는 면제되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로마 시민권자임에도 로마 시민들의 선동으로 세 번이나 태장을 맞았습니다. 한번은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고 일주야를 깊은 바다에서 지내기도 하였습니다. 둘째는, 전도여행 중 여러 위험을 당한 것이었습니다.(26,27)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였습니다. 생활면에서도 자지 못하고 주리고 목마르고 굶고 춥고 헐벗었으며 사람이 견딜 수 있는 그 이상의 고난이었습니다.
  셋째는, 교회를 위한 염려였습니다. 그 어떤 고생보다도 목자 바울의 심령을 짓눌렀던 것은 모든 교회를 위한 염려였습니다.(28) 바울은 자신이 개척한 교회로부터 누가 실족하거나 분파가 생겼다거나 거짓 교사들이 교회를 혼란하게 하는 일이 생겼다는 소식을 들을 때마다 노심초사 하였습니다. 그는 양들을 위해 마음 편할 날이 없었습니다. 29절을 보십시오. “누가 약하면 내가 약하지 아니하며 누가 실족하게 되면 내가 애타지 아니하더냐?” 교인 중에 누가 믿음이 약하여 신앙이 곧지 못한 형제를 보면 바울도 함께 고민하고 누가 죄에 빠지게 되면 그로 인해서 목자 바울은 마음으로 애타하였습니다. 이는 교회의 공동체 구성원을 한 몸으로 여겼기 때문이었습니다. 바울은 양들과 생사고락을 함께 한 목자였습니다. 이렇게 자기가 당한 고난과 아픔을 길게 자랑하는 이유는 그가 양들을 위해 고난 받은 것은 그리스도의 일꾼이라는 참된 증거가 됨을 알리기 위함이었습니다. 바울은 갈라디아 성도들에게도 “이 후로는 누구든지 나를 괴롭게 하지 말라 내가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지니고 있노라”
  고난이 닥치기 전에는 과연 누가 진정한 그리스도인(real christian)인가, 진짜 사도인가 분별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사도라면 주와 복음을 위해 기꺼이 고난을 당할 것입니다. 진정한 그리스도의 일꾼은 직분이나 명칭만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주와 복음역사를 위해 고난받는 것을 주님의 종이 된 증표로 삼는 자가 진정으로 그리스도의 일꾼이라 할 수 있습니다. 프란시스 자비어 선교사는 동양 선교사의 먼 길을 출발하기 전 하나님의 부르심을 확인하고자 기도하였습니다. 이런 그에게 하나님은 어느 날 밤 꿈에 그에게 닥칠 많은 고난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는 꿈에서 자기가 넘어야 할 험난한 많은 산들과 건너야 할 강들과 광야와 사막을 보았습니다. 그는 이 고난들을 하나님이 자기를 동양 선교사로 부르셨다는 증표로 영접하고 힘든 선교사의 길을 출발하였습니다. 후에 그는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주의 일을 하는데 있어 고난은 필수적인 것입니다. 지난날 내게 있을 고난의 환상을 보았을 때 나는 주님이 나를 선교사로 부르신 것을 확신하였고 주님을 위해 고난당할 수 있음에 감격하였습니다. 지금도 받는 고난이 주를 위한 것이기에 나는 고난을 회피하지 않습니다.” 주와 복음을 위해 고난을 받고 수고하는 자가 그리스도의 일꾼이라는 분명한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인정받고 존경받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30절을 보십시오. “내가 부득불 자랑할진대 내가 약한 것을 자랑하리라” 바울은 꼭 자랑해야 한다면 자기의 약한 것을 자랑하겠다고 합니다. 이는 주 예수의 아버지 영원히 찬송할 하나님이 자기가 거짓말 하는 것이 아님을 아신다고 증거하였습니다.(31) 32,33절에서 바울은 자신의 약함을 보여주는 한 부끄러운 사건을 소개합니다. “다메섹에서 아레다 왕의 고관이 나를 잡으려고 다메섹 성을 지켰으나 나는 광주리를 타고 들창문으로 성벽을 내려가 그 손에서 벗어났노라”(32,33) 여기서 아레다 왕은 헤롯 안디바의 장인으로서 다메섹 동남쪽의 아라비아 지역을 약 48년간이나 통치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바울이 회심한 직후 다메섹에서 복음을 증거하다가 아레다 왕의 방백들에 의해 체포될 위기에서 광주리를 타고 성벽의 외곽에 있는 작은 구멍을 통해서 극적으로 탈출한 사실을 언급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는 그가 처음으로 받은 박해인데 이때 그가 도망간 것은 사도로서 매우 수치스럽고 부끄러운 일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이 이런 사실을 드러내는 것은 자신은 연약하나 하나님께서 그때마다 피할 길을 예비해주시고 인도하여 주셨음을 증거 한 것입니다. 바울의 위대한 업적을 생각할 때 그는 항상 강하고 훌륭한 자로만 생각하는데 그도 처음에는 연약한 자였음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2. 하나님의 은혜를 자랑하는 바울(12:1-10)
  1절을 보십시오. “무익하나마 내가 부득불 자랑하노니 주의 환상과 계시를 말하리라” 이제 바울은 14년 전에 체험하였던 ‘주의 환상과 계시’에 관하여 자랑합니다. 사실 육체를 따라 자랑하는 것이 아무런 유익이 없는 것을 아는 바울이 이 체험을 지금에 와서 부득불 자랑하는 이유는 환상과 계시를 자랑하는 거짓 사도들에 비해 자신이 사도로서 조금도 부족하지 않다는 것을 드러내기 위함이었습니다. 특별히 ‘주의’ 환상이라고 강조한 것은 이 환상과 계시의 주체는 주님이심을 밝히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결정적이고 중대한 일을 만날 때마다 주의 환상으로 인도된 순종의 사람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환상과 계시를 자랑하면서 마치 다른 사람의 경험을 말하는 것처럼 3인칭을 사용한 것은 이 일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주권과 능력에 기인한 것임을 강조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러면서도 14년 전(A.D. 41-42)이라고 정확한 년 수를 기록하여 자신의 고백의 진실성을 증명하였습니다. 이때 하나님은 바울을 셋째 하늘로 이끌려가게 하셨습니다. 히브리인들은 새가 날고 뭉게구름이 둥실둥실 떠다니는 하늘을 첫째 하늘로 보았고, 또 그 하늘 위쪽으로 금속판이 둘러져 있고 그 위에 물이 저장되어 있는 곳을 둘째 하늘로 보았으며, 그 너머 끝없이 맑고 넓은 곳에 하나님과 천사들이 거하는 곳을 셋째 하늘이라 불렀습니다. 이곳은 거룩하고 완전하신 하나님이 계신 곳 하나님의 보좌를 의미합니다.
  그런데 그때 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자기는 모르지만 하나님은 아신다고 반복하여 말합니다. 이는 그의 체험이 너무 신비로워 그 자신은 그것을 영으로 체험한 것인지 육을 가진 채로 체험한 것인지 판단할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4절을 보십시오. “그가 낙원으로 이끌려가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말을 들었으니 사람이 가히 이르지 못할 말이로다” 바울은 이곳에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신비한 말을 들었습니다. 이 말은 너무 신비하여 인간의 언어로 표현할 수 없을 뿐 아니라 표현이 용인되지도 않은 말씀이었다고 합니다. 이는 하나님이 하늘의 비밀이 벗겨지기를 허락하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이 말은 하나님과 바울 사이에서 숨겨진 비밀이었습니다. 바울은 이런 신비한 체험을 자랑하였지만 자기 자신을 위하여서는 약한 것들 외에는 자랑하지 않겠다고 밝힙니다.(5) 이런 신비한 체험을 주신 것은 어디까지나 자기를 위하여 주신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이었고 또 이 신비한 체험에 대해 유약한 고린도 성도들이 지나치게 생각하여 몰입하게 될까 두려워하여 그만 둔다고 분명하게 밝혔습니다.
  그러면 그가 자랑하는 자신의 약함이 무엇입니까? 7절을 보십시오.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탄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 육체의 가시는 육체에 말뚝이 박혀 있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니 그 고통이 극심했다는 것입니다. 바울에게는 안질, 간질, 편두통의 가시가 있었다고 합니다. 이 고통을 사탄의 사자를 주셨다고 표현한 것은 사탄이 바울의 육체에 고통을 가했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그 고통 가운데서 하나님이 가시를 주신 뜻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시려고...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7) 하나님 안에서 사도 바울은 많은 자랑거리, 자랑할 근거가 많았습니다. 이를 위해 하나님은 너무 자랑하지 않게 하시려고 가시를 주신 것을 그는 마음으로 영접했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떠나게 하기 위하여 세 번씩이나 간구하였습니다. 이는 간단히 세 번만 간구했다는 뜻이 아니라 예수님이 겟세마네 동산에서 세 번 간절히 기도하신 것처럼 애끓는 심정으로 기도했다는 뜻입니다. 이때 하나님은 가시를 당장 제거해주지 않으시고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데서 온전하여짐이라”고 답변해주셨습니다.
  육체의 걸림돌이 되는 가시 때문에 사람들은 하나님의 은혜가 부족하다고 느낍니다. 이 고통스런 문제를 해결해주셔야 하나님의 은혜가 크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런 가시가 있는데도 하나님의 은혜는 그에게 현재형으로 충분하다고 하셨습니다.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는 내 능력이 약한데서 온전하여짐이라”(9b) 곧 하나님의 능력이 그의 연약함 안에서 완전하게 만들어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그를 연약한 채로 버려두지 않으시고 그의 연약함을 통해서 하나님의 능력을 온전히 나타내신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연약함 없이 하나님의 능력이 온전히 나타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의 연약함 안에 하나님의 능력이 완전케 되어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시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게 하십니다. 이 비밀을 깨달은 사도 바울은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자신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해 자랑하게 되었습니다.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9c) 그의 연약한 것들마다 그리스도의 능력이 머물게 되니 그는 더욱 강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는 이제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가득한 강한 자가 되었습니다. 그의 약함은 그리스도의 능력이 머무는 수단이 되었고 기회가 되었습니다. ‘머물게 한다’는 것은 장막을 펴고 확고부동하게 머문다는 뜻입니다. 곧 하나님의 영광이 성막 위에 임재 했던 것처럼 그리스도의 임재로 사도 바울이 보호받고 인도받는 것을 나타낸 것입니다.
  바울은 이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그의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며 그리스도의 능력이 그에게 머물게 되기를 소망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를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한 그때에 강함이라”(10) 그는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뿐 아니라 더 나아가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까지도 기뻐하게 되었습니다. 이전에는 이런 것들이 바울을 괴롭히는 것들이었으나 이제는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할 기회로 생각하니 도리어 하나님께 대한 기대와 희망을 가지게 되고 확신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는 내가 약한 그때에 강함이라(For when I am weak, then I am strong!)’ 내가 약해 있을 때 그때가 바로 하나님이 강하게 하시는 때입니다. 나의 연약함은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통로가 되고 부활의 능력을 드러내시는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기회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육체의 가시 때문에 절망하고 슬퍼하고 하나님께 매달립니다. 우리의 소원은 늘 어찌하든지 이 가시 문제를 해결해 달라는 불굴의 의지를 관철시키는데 있습니다. 그래서 때로는 이를 위해 하나님께 협박기도도 하고, 하나님께 섭섭하다고 불평도 하고 해결해주시지 않는 하나님께 마음의 문을 닫고, 하나님을 불신하며 하나님께 반발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에게 주신 답변을 통해 우리도 깨달음을 얻어야 하겠습니다.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데서 온전하여짐이라” 가시 때문에 하나님의 은혜가 부족한 것이 아닙니다. 가시가 있어도 하나님의 은혜는 내게 충분하다는 것입니다.
  또 하나님의 능력이 나의 연약함 안에서 온전케 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이는 가시를 통해 온전케 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드러내시려는 뜻이 있다는 것입니다. 만일 문제마다 내 뜻대로 해결되어 자신이 부해지면 너무 자만해질 것을 아시고 자만하지 않게 도우시는 하나님의 도우심이요 오직 하나님의 능력,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하나님의 종이 되기를 바라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제는 고통을 주는 가시가 있어도 하나님의 은혜가 내게 충만한 것을 영접해야 하겠습니다. 또한 이를 통해 하나님의 능력을 드러내실 것을 믿고 소망하고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내가 약할 때 위축되고 절망하고 포기할 것이 아니라 바로 그 점을 통해 강하게 하실 하나님을 믿는 믿음의 용사들이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다윗은 사울에게 애매히 고난 받을 때 처량한 신세였지만 그가 약할 때 하나님의 능력이 함께 하사 광야에서도 600명가량이 그와 함께 하며 이스라엘의 건국에 귀한 동역자들이 되게 하셨습니다. 요셉이 애굽으로 끌려가 천하 고아가 되었지만 하나님이 함께 하사 가는 곳마다 승리하여 리더가 되게 하시고 꿈을 푸는 능력을 주셔서 대 애굽제국의 총리가 되게 하셨습니다. 허리 문제로 누워서 살던 천수원 목자님이 하나님의 능력으로 강하게 되어 많은 양들을 섬기고 때마다 드라마 역사로 은혜를 끼치고 있습니다. 연약하였던 양노아 목자님을 하나님의 능력이 온전케 하셔서 절대중심으로 하나님께 충성하는 강한 종이 되게 하셨습니다. 연약하고 부족한 죄인들을 하나님의 능력이 온전케 하사 귀한 종으로 빚어주신 하나님의 크신 은혜를 감사 찬송드립니다.
  바울은 앞에서 거짓 사도들의 허탄한 자랑에 속아 진실을 바로 알지 못하는 고린도 성도들을 위해 자신이 그리스도의 일꾼으로서 많은 고난을 받았으므로 얼마나 더욱 자격이 있는가를 밝혔습니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많은 외부적인 절박한 위험과 어려움 가운데서 하나님이 친히 생명을 지키시고 보호하셨음을 자랑한 것입니다. 뒷부분에서는 자신의 연약함을 통해 하나님의 능력으로 온전케 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증거함으로써 자신을 강하게 하신 하나님의 능력을 자랑하였습니다. 그는 자신의 사도권을 변증하지만 하나님이 친히 자신을 사도로 세우신 하나님의 강력한 역사를 자랑하며 온통 하나님과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의 수많은 고난과 역경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불신하거나 섭섭한 마음이 조금도 없이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복음전파에 헌신하고, 오직 말씀에 순종하여 가시를 주신 하나님의 뜻을 영접하고 기쁨으로 하나님을 체험코자 하였습니다. 그의 인생은 오직 복음전파, 오직 주님을 자랑하는 삶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이 시대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꾼으로 세워주셨습니다. 이 은혜를 위해 우리도 복음전파를 위해, 양들을 굳게 하기 위해 믿음으로 많은 고난을 감당해야 하겠습니다. 그러나 많은 부분에서 우리의 연약함에 갇혀 지내며 연약함 때문에 할 수 없다고 순종치 못 할 때가 많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에게도 현재 ‘하나님의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하시고 이는 내 능력이 약한데서 온전하여진다고 믿음을 심어주십니다. 우리가 연약함에 빠져 복음전파를 위한 고난에 동참하지 못함을 회개하고 순종하는 가운데 오히려 그리스도의 능력이 머무는 것을 체험할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아직도 자기자랑을 위해 수고하고 힘쓰고 자기자랑거리로 영광을 누리고자 하는 속된 욕심을 가지고 있는 죄인들임을 고백합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을 통해 비천한 나를 써주신 하나님을 자랑하고 약함까지도 쓰셔서 온전케 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자랑하는 종들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또한 내가 약할 때 강하게 하시는 하나님을 믿고 체험하는 종들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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