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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nday Worship Message
주일예배메시지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8-02-11 (일) 13:07
분 류 에스겔
첨부#1 2018년_에스겔3강-1(이인구).hwp (30KB) (Down: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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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에스겔 제3강] 마른 뼈들을 큰 군대로

 2018년 에스겔 제3강                                                             이인구

마른 뼈들을 큰 군대로

 말씀/ 에스겔 37:1-14
 요절/ 에스겔 37:10 “이에 내가 그 명령대로 대언하였더니 생기가 그들에게 들어가매 그들이 곧 살아나서 일어나 서는데 극히 큰 군대더라”


여러분은 end와 and의 차이를 아십니까? end(끝)와 and(그리고)는 발음에서 큰 차이를 느낄 수 없지만 그 뜻은 전혀 다릅니다. 오늘 말씀의 마른 뼈는 이스라엘이 완전히 죽어 말라버린 뼈와 같이 소망 없는 end상태를 나타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런 마른 뼈들에게 and를 말씀하십니다. 그 위에 새 역사를 창조하실 희망을 보여주십니다. 뼈들은 완전히 말랐지만 하나님의 사랑과 권능으로 다시 새 생명주시고 전보다 더 큰 군대로 창조하실 환상을 보여주십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마른 뼈들을 큰 군대로 부활시키시는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배우고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함으로 역사가운데 쓰임 받는 자들이 될 수 있길 기도합니다.
  하나님께서 에스겔을 황량한 골짜기로 인도하셨습니다. 그곳에는 오랜 세월동안 사막의 강렬한 태양과 거친 바람에 말라 버린 뼈들만 널려 있었습니다. 그 뼈들은 편안히 살다 죽은 사람들의 뼈가 아니었습니다. 강한 군대에 의해 칼에 맞아 찢겨지고 부서져 극심한 고통과 굶주림가운데 전멸당해 죽은 병사들의 뼈였습니다. 그 골짜기는 오직 황량함과 공포 그리고 깊은 절망만이 존재하는 곳이었습니다. 에스겔 앞에 펼쳐진 골짜기의 모습은 바로 이스라엘 민족의 모습이었습니다. 이 뼈들은 바벨론에게 멸망당해서 황폐화 되어 절망하는 이스라엘백성을 상징합니다. 왕을 비롯해서 수많은 백성들이 쇠사슬에 매여 포로로 끌려갔습니다. 바벨론은 여호야긴 왕을 잡아 바벨론으로 끌고 간 후 시드기야를 꼭두각시 왕으로 세웠습니다. 시드기야는 유다의 마지막 왕으로 끝까지 우상숭배의 죄에서 벗어나지 못해 치욕을 당하게 됩니다. 그는 바벨론에 항복하는 길만이 살길이라고 말하는 예레미야 선지자의 조언을 무시하고 쇠락해가는 애굽에 붙어 반 바벨론 정책을 폈습니다. 결국 그가 왕위에 오른 지 11년에 예루살렘성은 함락되고 시드기야의 눈앞에서 아들들과 대신들은 죽임을 당하고 그는 두 눈이 뽑혀 바벨론으로 끌려가게 됩니다. 이스라엘의 청년들은 노예가 되고 처녀들은 창기가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자부심인 성전은 처참하게 훼파되고 탈취를 당했습니다. 성전 기명들은 바벨론으로 옮겨지고 성전내부의 금장식품들은 다 뜯겨져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성전이 그야말로 뼈대만 앙상하게 남은 흉가로 변했습니다. 예루살렘에는 오직 노인들과 어린아이들만 남게 됐습니다. 이스라엘의 상태는 모든 소망이 끊어져 버린 무덤 그 자체였습니다. 마른 뼈들이 수북이 쌓인 죽음의 골짜기가 바로 이스라엘의 모습이었습니다.
  왜 이런 지경까지 됐습니까? 그것은 약육강식의 세상역사 속에서 힘없는 약한 자들과 약소국의 운명처럼 보입니다. 아프리카 초원의 동물의 세계는 양육강식의 세계입니다. 최근 제가 새롭게 알게 된 것은 하이에나가 단지 다른 육식동물들이 먹다 만 죽은 고기나 썩은 고기만을 먹지 않고 스스로 초식동물들을 사냥해서 먹는다는 사실입니다. 또 수가 많으면 다른 소수의 육식동물의 먹이를 빼앗아 먹기도 합니다. 그런데 사자나 표범이 초식동물을 사냥할 때는 목을 물어 즉사시킨 후 잡아먹지만 하이에나는 떼를 지어 다니면서 초식동물의 약한 부위 뒷다리나 생식기를 물어 꼼짝 못하게 하고 산채로 잡아먹습니다. 초식동물의 어미는 빠르므로 주로 어미 뒤에서 처지는 새끼들을 물어 산채로 잡아먹는데 어미는 구할 힘이 없어 멀리서 새끼가 잡혀 먹히는 것을 바라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사악한 하이에나 무리들을 보면 인간들이 강한 힘으로 그 무리들을 전멸시켜 초원의 정의를 세우고 힘 약한 초식동물들을 보호해야 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하이에나 무리들도 자신과 새끼들이 살기 위해 그렇게 할 수밖에 없고 그들이 정의의 이름으로 전멸된다면 초원은 썩은 시체로 가득하게 될 것입니다. 초식동물들이 육식동물들에 의해 잡아먹히는 것은 양육강식의 초원의 생태입니다. 이처럼 하나님 없이 사는 인간세상에서도 약한 자들과 약소국들이 강한 자들과 강대국들에 의해 침략되고 착취되고 결국 멸망당하는 것이 피할 수 없는 세상의 운명입니다. 바벨론 또한 당시에는 천하무적이었지만 나라가 쇠락해지면 결국 더 강한 나라에 의해 멸망당하고 치욕을 당할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택함 받은 백성 이스라엘에게 이런 치욕의 역사는 무엇 때문입니까? 하나님께서 힘이 없어서, 사랑이 없어서 택한 백성들을 그런 절망으로 떨어뜨리신 것입니까? 그것은 그들이 하나님을 떠난 죄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격 없다고 포기하신 것이 아니라 그들이 세상우상에 마음을 뺏겨 우상을 섬기기 위해 스스로 하나님을 떠난 죄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의 다스림에 매이기 싫다고 뛰쳐나가 스스로 약육강식의 세상 속에 들어간 죄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의 실상인 이 황량한 절망의 골짜기에서 수많은 마른 뼈들을 보며 에스겔은 비통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단테는 지옥은 모든 희망이 사라진 곳이라고 정의했습니다. 하나님을 떠나 세상 나라들에 의해 능욕 받고 파괴되어 모든 희망이 사라진 이스라엘이 바로 지옥이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인자야 이 뼈들이 능히 살 수 있겠느냐?” 에스겔은 말하고 싶었습니다. “주여 나는 할 수 없지만 하나님은 능히 할 수 있는 분이십니다. 제발 이 백성들을 구원해주십시오.” 마른 뼈는 죽은 생명으로 곧 흙으로 분해되어 사라질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마른 뼈 위에 힘줄이 생기고 살과 가죽이 생기고 살아나는 것은 자연의 섭리에 어긋나는 불가능한 현상입니다. 인간이 아무리 의학과 과학이 발전된다 해도 본래의 생명에서 생명으로 분화시키는 것은 가능할지 모르지만 무생물을 생물로 만드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인간은 불가능하지만 하나님은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아무것도 없는 무에서 흙을 만드신 분은 하나님이시오, 흙으로 사람을 만드신 창조주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면 말씀 한마디로 능히 마른 뼈를 본래의 생명을 가진 인간으로 회복시킬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에스겔은 이 패악한 백성들의 죄의 실상을 알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오래 참는 사랑으로 수도 없이 용서하시고 구원해주셨지만 하나님의 사랑을 멸시하고 다시 우상에게로 떠난 백성들의 완악한 죄를 알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들을 돌이키기 위해 보낸 많은 선지자들까지 죽인 백성들을 다시 구원해 달라 차마 간청할 수 없었습니다. 에스겔은 타들어가는 안타까움으로 대답했습니다. “주 여호와여 주께서 아시나이다.” 에스겔은 완악한 이 백성들을 위해 다시 구해 달라 간구하기 힘들었지만 오직 하나님의 긍휼을 구했습니다. 긍휼의 하나님께서 다시 이 백성을 불쌍히 여겨달라 간구하였습니다. “주 여호와여 주께서 아시나이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에스겔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라 명령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마른 뼈들에게 생기를 주심으로 다시 살리실 것이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도록 하셨습니다. 에스겔은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마른 뼈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했습니다. “너희 마른 뼈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내가 생기를 저희에게 들어가게 하리니 너희가 살아나리라. 저희 위에 힘줄을 두고 살을 입히고 가죽으로 덮고 너희 속에 생기를 넣으리니 너희가 살아나리라. 또 내가 여호와인 줄 너희가 알리라.”(4,5,6) 이때 어떤 역사가 일어났습니까? 7절을 보십시오. 에스겔이 말씀을 대언할 때 소리가 나기 시작했습니다. ‘삐그덕, 삐그덕’ 이게 무슨 소리인가 했는데 알고 보니 뼈가 움직이는 소리였습니다. ‘뼈그덕 뼈그덕’ 뼈들이 움직이면서 이 뼈 저 뼈가 들어맞아 서로 연결되기 시작했습니다. 이전에는 뼈들이 골짜기에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자 뼈들이 제자리로 돌아가기 시작했습니다. 머리뼈가 목뼈 위로 올라오고 다리뼈가 엉덩이 뼈 밑으로 내려갔습니다. 서로 비슷하게 보이는 갈비뼈들과 척추 뼈들도 1,2,3번 순서대로 정확히 가서 연결되어 붙었습니다. 서로 비슷하게 보인다고 이번 기회를 틈타 발가락뼈가 손가락뼈에 올라가 붙는 하극상이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기전 죄에 매인 우리 내면은 혼돈 그 자체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게 될 때 정리가 됩니다. 질서가 잡히고 조화가 생깁니다. 그래서 말씀이 임하게 되면 사람이 규모있는 삶을 살게 됩니다. 뼈뿐만이 아니었습니다. 말씀을 대언하자 뼈에 힘줄이 생겼습니다. 그 위로 살이 오르고 가죽이 덮였습니다. 이제 제법 사람의 모양을 갖게 됐습니다. 하지만 모양만 갖춘다고 사람이 아닙니다. 최근 인공지능과 로봇기술이 놀랍게 발전되어 과거 공상과학영화로만 봤던 로봇인간이 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얼마 전에는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시민권까지 받은) 소피아라는 인공지능 로봇이 우리나라를 방문했습니다. 많은 사람들과 철학적 대화를 하며 로봇의 권리에 대해 일장연설까지 했습니다. 한 사람이 대형화재가 났을 때 노인과 어린이 중 누구를 먼저 구조하겠느냐 로봇에게 질문했습니다. 그러자 엄마와 아빠 중 누구를 더 사랑하겠느냐 반문하면서 아마도 출구에서 가까운 사람을 먼저 구할 것이라 현명한 대답까지 했습니다. 한번 주입한 정보를 절대로 까먹지 않고 응용까지 하는 로봇은 수도 없이 은혜를 망각하는 인간보다 나아보였습니다. 하지만 사람과 비슷하다 해서 로봇이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 로봇에는 생명이 없고 무엇보다 하나님께서 주신 영혼이 없기 때문입니다. 어떤 인간이 로봇보다 능력이 없고 머리가 나쁠지라도 그는 하나님께서 주신 영혼을 가진 존재로 하나님과 교제하며 하나님의 형상을 지니고 있어 로봇과는 비교할 수 없는 소중한 존재입니다.
  말씀의 능력으로 마른 뼈가 사람의 모양을 갖추었지만 아직 생명이 없는 시체에 불과하였습니다. 이때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또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너는 생기를 향하여 대언하라 생기에게 대언하여 이르기를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생기야 사방에서부터 와서 이 죽음을 당한 자에게 붙어서 살아나게 하라.”(9) ‘생기’는 인간에게 진정한 생명, 영혼을 주는 하나님의 영인 성령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그 코에 생기를 불어 넣으셨습니다. 생기가 들어가자 사람은 살아있는 존재요, 영혼을 소유한 진정한 인간이 되었습니다. 이처럼 성령이 임할 때 죽은 자가 살아납니다. 그런데 한낱 인간이 어떻게 생기에게 대언할 수 있습니까? 생기에게 대언하는 것은 하나님께 간구하는 기도를 의미합니다. 생명구원역사는 마른 뼈 같은 인간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는 것으로 시작되지만 기도함으로 성령께서 임하심으로 완성될 수 있습니다. 생명구원역사는 성령의 역사입니다. 사도행전의 제자들은 처음 세상을 두려워하는 인간적인 사람들이었지만 기도에 힘쓴 후 성령께서 역사하시자 믿음으로 세상을 이기는 사도들로 거듭날 수 있었습니다. 성령께서 역사하실 때 현실의 절망으로 죽어가는 젊은이들이 비전(환상)을 보고, 죽을 날만 기다리는 늙은이들이 천국의 꿈을 꾸게 됩니다.
  10절 말씀을 보십시오. “이에 내가 그 명령대로 대언하였더니 생기가 그들에게 들어가매 그들이 곧 살아나서 일어나 서는데 극히 큰 군대더라” 에스겔이 하나님의 명령대로 생기에게 대언하자 생기가 그들에게 들어가 살아나서 일어나 서는데 극히 큰 군대가 되었습니다. 그 군대는 하나님 영광을 위해 싸우는 군대로 승리에 대한 열망과 확신이 대단한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으로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사람은(거듭난 사람) 더 이상 죽음이 그를 지배할 수 없습니다. 죽음이 두렵지 않으면 세상에서 무서울 게 없는 막강한 군대가 됩니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으로 계집종 앞에서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했던 베드로는 성령의 능력을 덧입자 죽음을 각오하고 종교지도자들과 백성들 앞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증거할 수 있었습니다. 또 베드로의 메시지에 삼천 명의 사람들이 성령으로 거듭나 하나님의 군대가 되어 초대교회를 이뤄 전 세계 수많은 교회와 성도들의 뿌리가 되었습니다.
  11절을 보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이 마른 뼈의 환상의 의미를 말씀하셨습니다. 이 뼈들은 이스라엘 온 족속으로 죄 가운데 소망을 잃고 전멸되었지만 하나님께서 그들의 무덤을 열고 이스라엘 땅으로 돌아가게 하시겠다고 하십니다. “내 백성들아 내가 너희 무덤을 열고 너희로 거기에서 나오게 한즉 너희는 내가 여호와인 줄을 알리라 내가 또 내 영을 너희속에 두어 너희가 살아나게 하고 내가 또 너희 고국 땅에 두리니 나 여호와가 이 일을 말하고 이룬 줄을 너희가 알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13,14) 하나님의 말씀은 죄와 절망으로 죽은 이스라엘의 희망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진정한 희망이 되는 것은 하나님께서 사랑과 권능으로 반드시 이루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없는 세상 사람들은 사막의 신기루처럼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힐 듯 하지만 실체가 없는 희망을 붙들고 살아갑니다. 로또 복권에 대한 희망이 최근에는 가상화폐에 대한 희망으로 바뀌었습니다. 많은 성실한 젊은이들이 로또 복권 같은, 가상화폐 같은 공무원시험, 대기업에 희망을 두고 전 인생을 겁니다. 하지만 그것이 진정한 희망이 아니기 때문에 결국 절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 말씀만이 우리에게 진정한 희망이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불가능한 일을 이루심으로 세상가운데 오직 하나님만이 전능하신 분이심을 드러내시고자 하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왜 이 위대한 생명구원역사에 에스겔을 쓰시고자 하시는 것입니까? 에스겔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게 하심으로 역사를 시작하고자 하셨습니다. 오늘 말씀에 보면 대언이라는 단어가 6번이나 나왔습니다. 하나님께서 태초에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신 것처럼 친히 말씀하시고 역사를 시작하셔도 되는데 왜 에스겔에게 말씀을 대언하게 하시는 것입니까?
에스겔은 본래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선지자였습니다. 하지만 어린 나이에 하나님을 믿지 않는 바벨론에게 짓밟히는 조국을 목격하고 본인 또한 바벨론의 포악한 힘에 끌려 포로로 잡혀와 비참하고 슬픈 시간을 보낸 사람이었습니다. 자신이 하나님을 떠난 이스라엘의 죄 때문에 고통 받는 것을 알았습니다. 하지만 막상 너무나 치욕스럽고 고통스러운 현실의 고난 속에서 믿음을 잃고 포로처럼 억눌려 살아왔습니다. 하나님의 선지자였지만 하나님을 바라보고 말씀을 전하기보다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절망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절망에 빠져버렸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먼저 에스겔 한 사람이 죄악된 백성들을 불쌍히 여기시는(긍휼) 하나님의 마음을 깨닫도록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수없이 배반하며 우상에게 떠나는 백성들을 잊지 못하고 다시 돌이키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긍휼의 사랑을 깨닫도록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에 대한 지식만 있는 많은 사람보다 말씀 속에서 하나님의 마음을 덧입은 한 사람을 세워 하나님의 심정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에스겔이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함으로 먼저 자신의 절망 속에서 일어서도록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권능의 말씀을 대언함으로 먼저 마른 뼈 같은 자신을 회복하고 그 능력으로 수많은 다른 마른 뼈 같은 백성들을 회복시키시는 하나님역사에 쓰임 받도록 하셨습니다.  
  에스겔은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자 마른 뼈가 살아나 군대가 되는 환상을 보았습니다. 환상 속에서 에스겔이 말씀을 대언하자마자 ‘삐그덕 뼈그덕, 슛, 슛’ 하며 순식간에 뼈들이 움직이고 맞춰져 살이 차오르고 가죽이 덮었고 또 생기를 향해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자마자 눈 깜짝할 사이에 사방에 있는 생기들이 몰려와 생명을 불어넣어 군대가 됐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역사가 빨리 진행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기도하는 가운데 한 양에 대한 환상을 덧입고 그 양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며 그 코에 생기를 불어넣으려 하지만 그 양은 콧방귀를 뀌며 꿈쩍도 하지 않습니다. 바벨론 같은 강한 세상의 쾌락주의, 물질주의 속에서 이스라엘 백성들 같은 완악한 양들의 불신과 무기력에 부딪히면서 과연 하나님께서 이 캠퍼스와 이 양에게 소망을 주셨는가 불신에 빠지기도 합니다. 어떻게 하나님께서 주신 환상을 끝까지 붙들 수 있습니까? ‘미이라’라는 영화를 보면 죽어 미이라가 된 뼈들이 살아나는 장면이 나옵니다. 죽은 뼈에 살이 붙고 생명이 살아나 군대가 되는 장면이 몇 초 만에 이루어집니다. 하지만 그 한 장면을 만들기 위해 얼마나 길고도 많은 수고가 들어갔는지 모릅니다. 오랫동안 심혈을 기울여 시나리오를 만들고 영화를 기획하고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투자를 유치하고 연기자들을 모으고 또 컴퓨터 그래픽 기술자들을 모집해 오차 없는 완벽한 장면을 만들기 위해 몇 년 심지어 몇 십 년이 걸립니다. 한 과정에서 삐끗하면 몇 년이 더 걸릴지도 모릅니다.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던 것입니다. 하물며 한 생명이 살아나고 한 나라가 살아나기 위해서는 얼마나 많은 수고와 희생이 따르겠습니까? 하지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신 것은 오직 하나 말씀을 대언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에스겔을 부르시기 전부터 구원역사를 시작하셨습니다. 4개의 얼굴로 사방을 통찰하며 어디든지 순식간에 갈수 있는 날개와 바퀴를 가진 많은 천사들을 통해 구원역사를 시작하셨습니다. 그리고 에스겔이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함으로 하나님의 구원역사에 동참하기를 원하셨습니다. 에스겔의 사명은 하나님의 돌리시는 원대한 역사의 수레바퀴를 믿고(하나님께서 제작, 시나리오, 감독하시는 영화에 주인공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기만 하면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방향에 순종해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기만 하면 됩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영으로 각 사람의 마음속에 들어가서 살아나게 하실 것입니다. 절망스런 현실만을 바라볼 때 믿음을 잃고 같이 절망 속에 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신자는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환상 즉 하나님께서 장차 반드시 이루실 약속을 보고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환상은 신자가 결국 세상에서 부활하고 승리함을 보여줍니다. 승리가 결정된 싸움에서 신자는 작은 현실의 고난에 절망할 수 없습니다. 장차 이루어질 하나님의 약속을 영접하고 그리고 지금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말씀을 붙들고 또 대언해야 합니다.
  고흐의 유명한 아름다운 밀밭 그림이 있습니다. 이 그림은 화가가 매일 그린 한 획 한 획의 붓 자국들이 무수히 모여서 이루어져 있는데 각각의 붓 자국들을 따로 보면 과히 놀랍거나 아름답지 않습니다. 가까이 서서 보면 서로 관련 없는 노랑, 금색, 갈색의 물감들의 집합일 뿐입니다. 그러나 캔버스에서 천천히 뒤로 물러나면 각각의 붓 자국들이 하나로 합쳐지면서 광활하고 아름답고 경이로운 밀밭의 모습이 드러납니다. 하루 한 번의 일용할양식과 한 번의 일대일이 모여 위대한 하나님의 역사를 이룰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신자들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심으로 매일 말씀을 붙들고 살아가도록 하셨습니다. 아주 큰일을 이루기 위해서, 큰 고난을 극복하기 위해서 우리는 매일 작은 일을 꾸준히 감당해나가야 합니다. 때로는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것이 하루 한 마디 말씀을 붙들고 버티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신자에게 환상을 주신 하나님께서는 현실문제에 빠진 우리를 도와주시지만 현실 문제를 없애 주시지 않고 현실 문제를 극복하도록 도와주십니다. 말씀을 주심으로 말씀가운데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를 덧입고 문제를 극복하도록 도우십니다. 우리가 매일 어두운 세상에서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말씀을 붙들며 전할 때 한 걸음씩 인도함 받을 수 있습니다. 당장 생명이 살아나고 나라가 회복되지 않을지라도 말씀을 붙들고 대언할 때 하나님께서 이루신다는 믿음을 덧입을 수 있고 또 현실을 살아갈 힘과 지혜와 기쁨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내가 뿌린 씨가 자라고 열매 맺는 것을 보지 못할지라도 믿음으로 기쁨으로 말씀의 씨를 뿌릴 수 있습니다. 그때 나의 생명이 살아나고 결국 하나님의 때에 양들의 생명이 살아나고 더 나아가 나라가 회복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언하신 것처럼 B.C. 538년 바사(페르시아)제국 고레스왕은 바벨론을 점령하고 고레스 칙령을 발표하였습니다. 이 칙령은 바벨론에 의해 포로로 잡혀간 유대인들이 고향 예루살렘으로 귀향할 수 있고 동시에 예루살렘에 새로운 성전을 짓고 이전의 종교 활동을 다시 할 수 있는 권한까지 허용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영원히 무너질 것 같지 않던 바벨론을 하나님의 때가 되자 가차 없이 무너뜨렸고 하나님의 뜻 가운데 택한 백성에게 새로운 역사를 시작하도록 하셨습니다. 절망으로 어두운 때 에스겔처럼 하나님께서 주신 환상을 덧입고 하나님말씀을 대언하는 선지자들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은 믿음을 잃지 않고 하나님의 때에 새로운 회복역사를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환상대로 황폐한 땅 이스라엘이 재건되고 남유다와 북이스라엘로 깨어진 나라가 다시 합쳐져 다시 하나님의 제사장 나라, 거룩한 백성으로 서게 됐습니다. 마른 뼈 같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긍휼로 인해 하나님의 때가 되자 하나님의 뜻에 따라 마침내 부활하게 된 것입니다.

  최근 제 치과 맞은편에 큰 치과가 들어선 후 갑자기 건물주에게서 2달 간 엘리베이터 공사를 하겠다는 통보가 왔습니다. 공간 확보를 위해 치과 인테리어도 다시 해야 되는 처지가 되 공사소음과 더 좁아질 환경으로 고민하게 됐습니다. 마침 옆 건물에 자리가 있어 계약을 추진하는데 치과 직원들이 서로간의 갈등 때문에 2명이 그만 둔다 통보를 했습니다. 더구나 새로 가는 건물도 곧 건물공사를 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계속되는 스트레스 때문에 내면이 마른 뼈 같은 상태가 되었습니다. 이때 에스겔서 주일말씀을 대언하라는 통보가 왔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말씀을 준비할 수 있는가 불신하다가 말씀을 통해 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생겼습니다. 지금 절망스런 현실을 보지 않고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말씀을 찾고 붙들게 됐습니다. ‘네 장막터를 넓히라’ 이사야 54장 말씀을 일 년 요절로 다시 잡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구하게 됐습니다. 매일 새벽에 일용할 양식을 먹으며 기도하면서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말씀 속에서 나아갈 길을 깨닫게 됐습니다. “주의 말씀은 내 발의 등이요 내 길의 빛이니이다.”(시119;159) 아직 모든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지만 하나님께서는 말씀 속에서 나를 인도하셨고 조금씩 문제를 극복하는 믿음을 주셨습니다. 제가 이번 체험한 말씀을 현실의 절망가운데 마른 뼈 같은 양들에게 대언함으로 하나님께 인도할 수 있길 기도합니다. 절망을 이기는 말씀의 능력과 하나님의 긍휼의 사랑을 대언할 수 있길 기도합니다.

  결론적으로, 하나님께서는 마른 뼈가 큰 군대로 부활하는 환상을 보여주셨습니다. 우리가 에스겔처럼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환상을 영접하고 지금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을 대언함으로 마른 뼈들이 큰 군대가 되는 생명구원역사에 쓰임 받을 수 있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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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4 마가복음 [2018년 마가복음 제5강] 어느 것이 옳으냐? 관리자 2018-04-22 795
533 마가복음 [2018년 마가복음 제4강]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관리자 2018-04-15 822
532 마가복음 [2018년 마가복음 제3강] 내가 이를 위하여 왔노라 관리자 2018-04-08 695
531 고린도전서 [2018년 부활절 제2강] 부활의 영광과 승리 관리자 2018-04-01 777
530 고린도전서 [2018년 부활절 제1강] 부활의 첫 열매 관리자 2018-03-25 865
529 마가복음 [2018년 마가복음 제2강]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관리자 2018-03-18 981
528 마가복음 [2018년 마가복음 제1강]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 [1] 관리자 2018-03-11 832
527 이사야 [2018년 새학기 준비 특강 제2강]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 관리자 2018-03-04 823
526 예레미야 [2018년 새학기 준비 특강 제1강] 희망찬 미래를 주는 것이니라 관리자 2018-02-25 905
525 에스겔 [2018년 에스겔 제4강] 되살아나리라 관리자 2018-02-18 936
524 에스겔 [2018년 에스겔 제3강] 마른 뼈들을 큰 군대로 관리자 2018-02-11 1163
523 에스겔 [2018년 에스겔 제2강] 나를 대신하여 깨우치라 관리자 2018-02-04 1174
522 에스겔 [2018년 에스겔 제1강] 이 두루마리를 먹고 가서 말하라 관리자 2018-01-28 1403
521 에베소서 [2018년 신년 제3강]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 관리자 2018-01-21 1268
520 에베소서 [2018년 신년 제2강]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관리자 2018-01-14 868
519 이사야 [2018년 신년 제1강] 너는 외쳐 노래할지어다 관리자 2018-01-07 896
518 고린도후서 [2017년 고린도후서 제10강] 믿음을 확증하라 관리자 2017-12-31 1077
517 마태복음 [2017년 성탄 제3강] 아기께 경배하세 관리자 2017-12-24 917
516 이사야 [2017년 성탄 제2강]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관리자 2017-12-17 9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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