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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nday Worship Message
주일예배메시지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8-03-04 (일) 12:48
분 류 이사야
첨부#1 2018년_새학기준비2강-1(최바울).hwp (32KB) (Down: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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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새학기 준비 특강 제2강]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

 2018년 새학기 준비 특강 제2강                                                   최바울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

 말씀/ 이사야 40:1-31
 요절/ 이사야 40:31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의 날개 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하지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아니하리로다"

 기세등등했던 추위도 조금씩 물러가고 캠퍼스에 봄이 찾아오고 있습니다. 고달팠던 고3시절, 감옥 같던 재수 삼수 장수 시절을 끝내고 캠퍼스에 입학하는 신입생들의 얼굴에 호기심과 설레임이 가득해 보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이스라엘 백성들도 고달팠던 70년간의 바벨론 포로 생활을 끝내고 꿈에도 그리던 고향땅 이스라엘로 돌아갈 날을 목전에 두게 되었습니다. 과거 노예로 살 때는 꿈도 꾸지 못했던 것들을 이제는 자유인으로서 마음껏 누릴 수 있다는 희망에 마음이 설레일 법도 했습니다. 그런데 정작 그들의 마음은 위로가 필요할 만큼 어둡고 무거웠습니다. 피곤하고 곤비했습니다. 힘을 잃고 넘어지며 쓰러져 있었습니다. 이때 하나님께서 이들을 위로해 주십니다. 다시 하늘로 높이 날아오를 수 있도록, 달음박질 할 수 있도록, 종일 걸어 다닐 수 있도록 새 힘을 주십니다. 이 시간 우리도 하나님으로부터 참된 위로를 받고 새 힘을 얻어서 새 학기 진정한 회복의 역사를 누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I. 내 백성을 위로하라 (1-11)
  1절을 보십시오. "너희의 하나님이 이르시되 너희는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 지금까지 이스라엘의 형편이 어떠했습니까? 그들은 과거 하나님 앞에서 지은 죄 때문에 이방 땅으로 끌려간 후 믿음으로 살았더라면 안 해도 되었을 고된 노역을 하고 있었습니다. 스스로 자초한 노역이었지만 바벨론 포로생활로 힘들어하는 자기 백성들을 보시고 하나님은 위로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 그러면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위로하셨습니까? 2절을 보십시오. '너희는 예루살렘의 마음에 닿도록 말하며 그것에게 외치라 그 노역의 때가 끝났고 그 죄악의 사함을 받았느니라 그의 모든 죄로 말미암아 여호와의 손에서 벌을 배나 받았느니라 할지니라 하시니라' 가장 먼저 임한 하나님의 위로는 그들의 노역의 때가 끝났고 그 죄악의 사함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살기 좋은 바벨론에서 슬기로운 감방 생활을 했다고 하더라도 죄의 대가로 치르는 노역은 괴롭고 비참할 수밖에 없습니다. 남들보다 노역을 열심히 해서 인정을 받고 출세를 하고 돈을 모아도 노역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 마음에 와 닿는 위로가 되지 못합니다. 우리 가운데 모세나 마태오, 정현이 같은 군인들에게 가장 큰 위로는 낼모래 제대한다는 소식이요, 병자에게 가장 큰 위로는 병이 깨끗이 나아 퇴원해도 된다는 소식일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죄인에게는 출소 소식이 가장 마음에 와 닿는 복되고 좋은 소식입니다. 더군다나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받은 죄 사함은 죄 값을 제대로 치르지 않아서 죄 사함의 확신을 주지 못하는 광복절 특사가 아닙니다. 그들의 사함은 지난날의 죄에 대한 대가를 배나 치렀다할 정도로 충분히 치르고 받은 완전한 죄 사함입니다. 사람이 받을 수 있는 최고의 위로는 하나님으로부터 죄 사함을 받는 것입니다. 인간은 짐승과 다르게 영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죄를 짓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불편한 채로는 맘 편히 살 수 없습니다. 죄는 사람을 짓누르고 뼈를 상하게 합니다. 사람이 아무리 좋은 집에서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편히 산다 해도 죄의 사슬에 매여 있다면 그곳이 감옥이고 그 음식은 사식이자 콩밥입니다. 죄수가 명품 죄수복을 입고 50평 감방에서 지낸다고 출소소식을 들었을 때 만큼이나 행복하겠습니까? 진정한 위로, 진정한 행복은 죄 사함을 받을 때 임합니다. 다윗도 죄를 사함 받았을 때 이렇게 노래하고 있습니다. "허물의 사함을 받고 자신의 죄가 가려진 자는 복이 있도다 마음에 간사함이 없고 여호와께 정죄를 당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내가 입을 열지 아니할 때에 종일 신음하므로 내 뼈가 쇠하였도다 주의 손이 주야로 나를 누르시오니 내 진액이 빠져서 여름 가뭄에 마름 같이 되었나이다. 내가 이르기를 내 허물을 여호와께 자복하리라 하고 주께 내 죄를 아뢰고 내 죄악을 숨기지 아니하였더니 곧 주께서 내 죄악을 사하셨나이다(시 32:1-5)." 우리 가운데 마음이 아프고 눌려서 위로가 필요하신 분이 계십니까? 고린도후서 1:5절은 말씀합니다. “그리스도의 고난이 우리에게 넘친 것 같이 우리가 받은 위로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넘치는도다” 독생자 예수님을 보내시고 십자가에서 우리가 받을 죄의 대가를 배나 치르심으로 우리를 죄의 사슬에서 풀어주사 노역의 때를 끝내시고 우리에게 온전한 죄 사함을 주신 하나님으로부터 마음에 닿는 참된 위로를 받을 수 있기길 기도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죄 사함을 주신 후 그들 가운데 임하고자 하십니다. 진정한 위로는 죄 사함 받은 후에 적극적으로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을 때 임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으려면 하나님을 맞이할 길을 준비해야 합니다. 3절을 보십시오. "외치는 자의 소리여 이르되 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사막에서 우리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하게 하라." 골짜기처럼 절망으로 패이고, 허무와 운명, 열등감, 원망으로 패인 마음을 돋우어야 합니다. 그리고 산은 낮추어야 합니다. 교만으로 높아진 마음을 깎아야 합니다. 고르지 않은 곳을 평탄하게 하고 험한 곳을 평지로 만들어야 합니다. 쉽게 화를 내고 신경질 부리는 거친 마음을 다듬어야 합니다. 한마디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는 것은 회개하는 것입니다. 우리 각자가 회개하며 겸손히 주의 길을 예비하므로 내 마음 가운데, 우리 모임 가운데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히 임하기를 기도합니다.
  그러면 그들이 포로 생활을 끝내고 돌아갈 때 마음에 새겨야할 역사적 교훈이 무엇입니까? 6-8절을 보십시오. "말하는 자의 소리여 이르되 외치라 대답하되 내가 무엇이라 외치리이까 하니 이르되 모든 육체는 풀이요 그의 모든 아름다움은 들의 꽃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듦은 여호와의 기운이 그 위에 붊이라 이 백성은 실로 풀이로다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서리라 하라." 하나님을 떠난 이스라엘은 세상 풍조를 좇아 살았습니다. 세상 풍조대로 육체를 가꾸기 위해 많은 시간과 물질을 투자했습니다. 아름다움을 얻기 위해 가꾸고 만지고 고치고 또 고쳤습니다. 그런데 그들의 자랑스러운 육체와 아름다움이 어떻게 됩니까? 마치 들의 풀과 같고 꽃과 같아서 여호와께서 훅 하고 바람 한번 부시자 마르고 시들어 버렸습니다. 여기에는 어떤 위대한 인간도, 어떤 위대한 제국도 예외가 없습니다. ‘미투 운동’이라는 바람이 훅 하고 불자 꼭꼭 숨겨졌던 정욕의 죄악들이 드러나면서 교수들도, 스타들도 그 명성이 하루아침에 마르고 시들어 추해지고 말았습니다. 거대한 바벨론 제국도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지금은 얼마 되지도 않는 돌무더기로 남아 있습니다. 하나님을 떠난 모든 것이 이러합니다. 그에 반해 여호와의 말씀은 어떠합니까? 8b절을 보십시오. '여호와의 말씀은 영원히 서리라.' 세상의 부귀영화, 인생의 젊음과 아름다움도 때가 되면 마르고 시들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서 있습니다. 마태복음 5:18절은 말씀합니다.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실제로 그들이 하나님을 버렸을 때 하나님의 말씀대로 고난을 받았고 때가 되자 말씀대로 70년 만에 포로생활에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말씀만이 우리의 믿을 바요, 말씀만이 우리의 진정한 위로가 됩니다. 말씀을 잘 듣고 순종하는 자는 말씀과 함께 영원히 서게 될 것을 믿습니다. 우리가 봄 학기 말씀을 열심히 듣고 배워서 말씀을 통해 진정한 하나님의 위로하심을 받을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II. 주를 앙모하는 자 (12-31)
  이어 선지자는 그들의 하나님이 얼마나 위대하신가 노래하며 그들이 이 하나님만을 믿고 의지하도록 도전합니다. 12-15절을 보십시오. '누가 손바닥으로 바닷물을 헤아렸으며 뼘으로 하늘을 쟀으며 땅의 티끌을 되에 담아 보았으며 접시저울로 산들을, 막대저울로 언덕들을 달아 보았으랴 누가 여호와의 영을 지도하였으며 그의 모사가 되어 그를 가르쳤으랴 그가 누구와 더불어 의논하셨으며 누가 그를 교훈하였으며 그에게 정의의 길을 가르쳤으며 지식을 가르쳤으며 통달의 도를 보여주었느냐 보라 그에게는 열방이 통의 한 방울 물과 같고 저울의 작은 티끌 같으며 섬들은 떠오르는 먼지 같으리니' 세상 나라가 아무리 크고 강해 보여도 창조주 하나님 앞에서는 통의 한 방울 물 같을 뿐이요, 저울의 티끌 같을 뿐입니다. 섬들은 고작해야 먼지 정도입니다. 우상이 화려하게 번쩍거리지만 금으로 입힌 것에 불과합니다. 도금처리라도 한 고급형 우상과 달리 그냥 나무로 만든 보급형 우상은 흔들리지 않도록 고정시켜야 할 정도로 스스로 설 수 없는 나무 조각에 불과합니다. 반면에 하나님은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실 때 땅 위 궁창에 앉으셨습니다. 차일을 펴듯 하늘을 피셨습니다. 귀인들을 폐하시고 세상의 사사들을 헛되게 하십니다. 그들이 겨우 심기고 겨우 뿌려지고 간신히 땅에 뿌리를 박아도 하나님이 훅 한번 부시면 모든 것이 마르는, 회오리바람에 불려가는 초개같을 뿐입니다.(18-24) 하지만 때때로 세상이 우리에게 너무나 대단해 보일 때가 있습니다. 미국과 중국이 세상을 지배하고 구글 아마존 유투브 페이스북 같은 글로벌 기업이 인간의 물질세계, 정신세계를 지배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세상 지식도 대단해서 차가 스스로 목적지를 찾아가게 하는 인공지능기술과 없는 것을 있는 것처럼 만드는 가상현실 기술을 볼 때 경외심마저 듭니다. 이에 비해 우리의 신앙, 우리의 믿음은 한없이 작고 초라해 보입니다. 그러나 26절을 보십시오. 다같이 읽어보겠습니다. '너희는 눈을 높이 들어 누가 이 모든 것을 창조하였나 보라 주께서는 수효대로 만상을 이끌어 내시고 그들의 모든 이름을 부르시나니 그의 권세가 크고 그의 능력이 강하므로 하나도 빠짐이 없느니라.' 눈을 들어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삼라만상을 들여다보면 오히려 세상이 작아지고 초라해 집니다. 실제로 과학이 발달했다고 하지만 얼음이 왜 미끄러운지 왜 단단하기도 하고 미끄럽기도 해서 그 위에서 썰매도 타고 컬링 경기도 하면서 동계올림픽을 즐길 수 있게 하는지 아직 모릅니다. 의학이 발달했다고 하지만 탈모는 여전히 불치병이요 노화와 죽음은 막지 못합니다. 치과학문도 마찬가지입니다. 임플란트가 보편화되어서 이가 하나도 없어 죽만 먹던 환자들도 몇 달이면 이를 만들어서 갈비를 뜯어먹게 할 수 있지만 정작 왜 아이들 젖니가 때가 되면 저절로 빠지고 그 자리에 영구치가 위로 올라오게 되는지 모릅니다. 하나님께서 설계하시고 제작하시고 운영하시는 우주만물, 삼라만상에 비하면 인간이 만든 것들은 티끌에 불과합니다. 성경 말씀 속에 담겨 있는 구원과 심판과 영생의 지식에 비하면 인간의 지식은 수영장 바닥에 떨어져 있는 물 한 방울과도 같습니다. 한 나라를 움직이는 지도자들이, 대중의 마음을 움직이는 스타들이 겨우 심기고 겨우 뿌려지고 겨우 땅에 뿌리를 박아도 하나님이 폐하시면 초개같이 날아가게 됩니다. 이스라엘이 눈을 높이 들어 이 하나님을 바라보고 신뢰하고 믿을 때 세상을 두려워하지 않게 될 것이요, 세상 지식을 부러워하지 않게 될 것이요, 세상 사람들을 두려워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도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어떻게 원망합니까? 27절을 보십시오. "야곱아 어찌하여 네가 말하며 이스라엘아 네가 이르기를 내 길은 여호와께 숨겨졌으며 내 송사는 내 하나님에게서 벗어난다 하느냐?" 그들은 하나님이 자기들의 길, 자기들의 송사를 살피지 않으신다고 불평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아무리 창조주시고 온 우주 세상 만물을 주관하시는 분이라고 해도 자기들의 미래와 자기들의 사정과 원통함을 모른 척 하신다면 자기들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분이라 여겼습니다. 그들은 코앞에 닥친 어려운 현실문제로 인해 하나님의 사랑과 능력과 선한 주권을 믿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먼저 내 길을 보여주시고 보장해주셔야 나의 하나님이 되시고 내 송사를 해결해 주셔야 나의 하나님이 되신다고 주장했습니다. 이사야는 이런 이스라엘 백성들의 무지와 불신을 책망하면서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심습니다. 28,29절을 보십시오. 다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너는 알지 못하였느냐 듣지 못하였느냐 영원하신 하나님 여호와, 땅 끝까지 창조하신 이는 피곤하지 않으시며 곤비하지 않으시며 명철이 한이 없으시며 피곤한 자에게는 능력을 주시며 무능한 자에게는 힘을 더하시나니" 이스라엘은 세상 어느 누구보다 하나님을 잘 안다고 생각했지만 실상은 영적인 눈이 감기고 귀가 닫혀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알지 못하고, 은혜와 진리가 충만한 진리의 말씀도 듣지 못했습니다. 자기가 가야할 길이 보이지 않는다고, 복잡하고 힘든 송사에 휘말리게 되었다고 눈을 감고 귀를 닫은 채 하나님의 사랑과 능력에 대해 오해하고 있었습니다. 이들에게 이사야는 그들의 불신과 무지를 책망한 다음 여호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제대로 가르쳐 줍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땅 끝까지 창조하신 창조주로서 피곤을 모르시고 곤비하지 아니하시며 명철이 한이 없으신 전지전능하신 분이십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피곤한 자에게는 능력을 주시고 무능한 자에게는 힘을 더하시는 능력과 지혜의 근원이십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하나님을 의지하면 피곤하지 않고 무능하지 않으며, 솔로몬과 같이 지혜가 넘치게 됩니다. 반면에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으면 소년이라도 피곤하며 장정이라도 넘어지며 쓰러집니다.(30) 소년은 가장 힘과 열정이 넘치는 시기입니다. 축구할 때도 조금 뛰어다니다가 힘을 소진한 채 입으로만 공을 차는 아저씨들과 달리 몇 시간을 뛰어다녀도 피곤해하지 않습니다. 또한 ‘장정’은 원어로는 ‘선택받은 사람’이란 뜻으로 소년의 강철같은 체력에다가 경험과 노련미와 전문성까지 갖춘 선택받은 인재를 말합니다. 소년시절부터 열심히 훈련받아 장정으로 성장한 이들은 역사 창조의 주역이 되어 이제 가정과 모임과 나라를 위해 열심히 일을 해야 할 일군들입니다. 그런데 이들이 힘을 못 쓰고 자꾸 넘어지고 쓰러진다면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젖먹이 아기도 아니고 살만큼 산 노인도 아니고 그야말로 한창때인 소년들과 장정들이 왜 자꾸 피곤해 하고 왜 자꾸 넘어지며 쓰러질까요? 하나님은 이것이 건강문제 경험문제 실력문제가 아니라고 하십니다. 열심히 달음박질하고 열심히 걸어 다니다가도 도중에 힘이 빠졌을 때 새 힘을 공급받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하십니다. 이에 이사야는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약속을 증거합니다. 31절을 보십시오. 다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의 날개 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하지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아니하리로다" '여호와를 앙망한다'는 것은 하나님께 모든 희망을 두고 하나님만 의지한다는 뜻입니다.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힘으로 항상 새 힘을 얻습니다. 나에게 왜 힘이 없습니까? 이는 잘못된 것을 앙망하기 때문입니다. 힘이 남아 있지 않은 자기를 의지하고 거짓 힘을 주는 세상을 의지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습니다. 새 힘을 얻어 독수리가 날개 치며 올라감 같을 것입니다. 독수리는 크고 강한 날개가 있어서 단번에 높은 창공을 올라갑니다. 폭풍우가 몰아치면 다른 새들은 둥지로 들어가 숨어버리지만 독수리는 폭풍우를 타고 더 높은 창공으로 올라갑니다. 높은 창공에서 시력 6.0의 눈으로 다른 새들이 볼 수 없는 먼 곳까지 바라봅니다. 이처럼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고난이 몰아친다고 둥지로 숨지 않고 더 힘차게 날개 짓하며 고난을 극복하고자 애를 씁니다. 영적인 눈으로 고난 가운데 두신 하나님의 뜻을 바라보고 고난을 이겨낸 후 찾아올 밝고 희망찬 미래까지 내다봅니다. 그런데 이처럼 멋진 독수리의 위용과 카리스마는 하늘에 있을 때 그 진가를 발휘합니다. 독수리가 비행하는 모습을 찾다가 우연히 독수리가 땅에서 걸어 다니는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어떤 사람이 그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보고는 바람의 파이터가 추리닝을 입고 동네 구멍가게 마실 가는 것 같다고 했습니다. 독수리가 그 큰 날개를 고이 접은 채 먹이를 낚아채던 발톱으로 어색하게 땅을 짚고 어기적어기적 돌아다니는 모습 그 어디에서도 창공에서의 독수리의 위용과 카리스마를 찾을 수 없었습니다. 더 가관인 것은 독수리가 땅에서 그런 꼴로 돌아다니니까 하늘에서는 근처에도 못 오던 온갖 잡새들이 도망도 안가고 오히려 친구 하자고 달려드는 것이었습니다. 독수리는 날개를 펼치고 날아오를 때, 날아올라 높은 하늘에서 유유히 먹이감을 찾아 비행할 때, 먹이감이 정해지면 온 몸을 던져 날아가 힘센 발톱으로 먹이감을 낚아 챌 때 비로소 창공의 왕자 독수리답게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독수리처럼 날개 치며 날아오르는 인생 살기를 원하십니다. 참새처럼 땅만 보고 살지 않고 광대하신 하나님, 신실하신 하나님, 명철이 한이 없으신 하나님께 희망을 두고 살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이 주신 큰 날개를 접은 채로 땅에서 다른 잡새들과 먹이다툼하며 살기를 원치 않으십니다. 독수리가 날아오를 때 중력의 법칙을 거슬러야 하듯 신자가 신자답게 살려고 하면 세상의 법칙을 거슬러야 할 때가 있습니다. 독수리처럼 살다가 때론 외롭기도 하고 때론 굶기도 하고 때론 감당키 어려운 폭풍우를 만나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래도 힘차게 날개 짓해서 한번 높이 솟아올라보면 그곳에는 지상과는 다른 기류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 기류에 몸을 맡기는 법을 배우게 되면 큰 힘을 들이지 않고도 하나님의 백성답게 하나님께서 주신 높은 이상을 붙들고 살 수 있습니다. 현실의 작은 유익보다 영원히 가치 있는 일을 위해 살 수 있습니다. 소시민의 아기자기한 삶보다 사명인의 십자가를 지는 삶을 사모하게 됩니다. 세상의 잔재미를 즐기기보다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즐거움을 삼게 됩니다. 저 아래 발밑 세상에 소망을 두지 않고 더 높은 영원한 하늘나라에 소망을 두게 됩니다. 이런 자의 삶은 달음박질하여도 곤비하지 않고 걸어가도 피곤치하지 않으며 겉모습은 후패하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져 만년 청춘의 인생이 됩니다. 그런데 사람은 누구나 한번 뿐인 인생을 이왕이면 참새가 아니라 독수리처럼 살기를 원합니다. 독수리처럼 살기 위해서는 독수리 훈련을 받아야 합니다. 독수리 훈련의 첫 번째 관문은 자기가 독수리인 것을 깨닫는 것입니다. 독수리 새끼를 태어나자마다 닭장에 넣어놓았더니 자기가 닭인 줄 알고 주인이 던져주는 모이를 쪼아 먹으며 큰 덩치와 왕성한 식욕으로 닭장 속 진짜 닭들한테 민폐만 끼쳤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자기가 독수리라는 것을 안 후에는 어미 독수리 밑에서 제대로 된 훈련을 받아야 합니다. 실제로 독수리는 보통 생후 5개월 만에 비행을 하지만 동물원에서 날개를 다친 독수리 부모 밑에서 태어나 훈련을 받지 못한 새끼 독수리가 일 년이 지나도록 날지 못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는 독수리로 태었다고 독수리가 되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훈련을 받아야 독수리가 됨을 보여줍니다. 어미는 안락한 둥지를 흩어 불편하게 만들기도 하고 새끼를 일부러 둥지에서 떨어뜨려 날개 짓 하도록 합니다. 때론 모자의 정이 끊어질 것을 각오하고 시키는 혹독한 훈련을 잘 받은 독수리만이 어미 품을 떠나 거친 세상에서 자립적인 독수리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어제 소회원 선서를 하고 추천을 받은 분들이 봄학기 훈련을 잘 받아서 진정한 독수리의 삶을 사시길 기도합니다. 뿐만 아니라 저희들도 새 학기 우리를 피곤하게 하고 넘어지게 하는 헛된 소망들을 버리고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에게 주시는 새 힘을 덧입어서 달음박질 하는 인생, 종일토록 걸어가는 인생을 살게 하시기를 기도합니다.

말씀을 통해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에게 새 힘을 주셔서 독수리처럼 살도록 하시는 하나님을 배우게 하셔서 감사를 드립니다. 지난 번에 동역자에게 지금 내가 지고 있는 십자가가 너무 무거워서 피곤해 죽겠다고 하소연을 한 적이 있습니다. 이에 보약을 지어주겠다는 동역자에게 자동차 엔진이 과열 되어 있으면 시동을 끄고 쉬도록 해야지 기름을 들이 부으면 되겠냐고 엄한 소리를 했다가 그나마 보약 한 접 못 얻어먹고 말았습니다. 게다가 지난 주 갑자가 고영훈 목자님이 치대역사를 계승해서 맡도록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고자 하시는 것이 재앙이 아니라 평안이라는 말씀에 영접을 하기는 했지만 치과일에 가정일에 복음역사까지 얹어져 제 마음에 그나마 있던 작은 평안들이 사라지고 재앙이 임하는 것 같았습니다. 십자가도 힘이 있을 때 감당하는 것인데 아무리 쥐어짜도 힘이 나지 않는 것 같아 절망과 두려움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을 통해 힘은 쥐어짜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임을 배우게 하십니다. 자기 실력과 든든한 동역자를 믿고 의지하던 데서 전능하신 하나님,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 세상 역사를 주관하시고 인생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믿고 이 하나님께 희망을 둘 때 하나님께서 새 힘을 주심을 영접하게 하십니다. 제가 봄학기 닭장 속에 갇힌 닭처럼 살지 않고 하나님께서 주신 새 힘으로 독수리처럼 날아오르는 인생, 소년처럼 장정처럼 달음박질 하는 인생, 종일토록 걸어가는 인생사는 자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결론적으로, 모든 것이 원래 있던 자리로 돌아가는 회복의 역사는 세상이 주는 거짓 위로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 힘과 노력으로 되는 것도 아닙니다. 저와 여러분의 인생에 회개하는 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참된 위로가 임하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을 앙망하는 자에게 주시는 새 힘을 덧을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독수리와 같이 비상하는 인생, 소년처럼 장정처럼 달음박질하며 걸어가는 인생을 살면서 세상을 이기는 한 해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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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0 고린도전서 [2018년 부활절 제1강] 부활의 첫 열매 관리자 2018-03-25 8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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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8 마가복음 [2018년 마가복음 제1강]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 [1] 관리자 2018-03-11 832
527 이사야 [2018년 새학기 준비 특강 제2강]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 관리자 2018-03-04 823
526 예레미야 [2018년 새학기 준비 특강 제1강] 희망찬 미래를 주는 것이니라 관리자 2018-02-25 905
525 에스겔 [2018년 에스겔 제4강] 되살아나리라 관리자 2018-02-18 935
524 에스겔 [2018년 에스겔 제3강] 마른 뼈들을 큰 군대로 관리자 2018-02-11 1162
523 에스겔 [2018년 에스겔 제2강] 나를 대신하여 깨우치라 관리자 2018-02-04 1173
522 에스겔 [2018년 에스겔 제1강] 이 두루마리를 먹고 가서 말하라 관리자 2018-01-28 1402
521 에베소서 [2018년 신년 제3강]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 관리자 2018-01-21 1268
520 에베소서 [2018년 신년 제2강]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관리자 2018-01-14 867
519 이사야 [2018년 신년 제1강] 너는 외쳐 노래할지어다 관리자 2018-01-07 895
518 고린도후서 [2017년 고린도후서 제10강] 믿음을 확증하라 관리자 2017-12-31 1076
517 마태복음 [2017년 성탄 제3강] 아기께 경배하세 관리자 2017-12-24 917
516 이사야 [2017년 성탄 제2강]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관리자 2017-12-17 9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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