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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nday Worship Message
주일예배메시지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8-07-15 (일) 13:35
분 류 마가복음
첨부#1 2018년_마가복음17강-1(이인구).hwp (64KB) (Down: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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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마가복음 제17강] 믿는 자에게는 능히하지 못할일이 없느니라

 2018년 마가복음 제17강                                                       이인구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

말씀/ 마가복음 9:1-29
요절/ 마가복음 9:23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시니”

 오늘 말씀에는 두 가지 사건이 나옵니다. 예수님께서는 변화산상에서 영광스런 본래의 모습을 보여주심으로 제자들에게 고난의 열매가 무엇인지 가르쳐주셨습니다. 이어 산 아래에서 귀신들린 아이를 치유하는 사건을 통해 제자들에게 산 믿음을 가지고 기도하도록 도와주고자 하셨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고난을 가운데 영광에 이르는 진리의 길을 배우고 기도로써 사탄과 싸워 귀신들린 자들을 구원해내는 예수님의 제자의 길을 힘차게 달려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1.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1-8)
  2절을 보십시오.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 신앙고백을 한 후 6일이 지났습니다. 베드로는 그날 천국과 지옥을 경험했습니다. 성령의 도우심으로 예수님을 그리스도라고 고백한 후 예수님께서 그리스도로서 많은 고난을 받아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실 것을 말씀하시자 그는 본능적으로(인간적 의리로) 예수님의 말씀에 강하게 항변했습니다. 사랑하는 예수님께서 고난 받는 것을 원치 않아 한 말인데 오히려 예수님으로부터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 호되게 책망 받았습니다. 많은 사람들 앞에서 책망 받은 것도 그렇지만 예수님이 정말 십자가에서 죽으신다면 과연 자신이 예수님을 계속 따를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습니다. 베드로는 신앙의 위기를 맞이했습니다. 항상 넘치는 자신감과 스피릿으로 예수님을 따르던 베드로의 이런 모습에 다른 제자들도 같이 침울해졌습니다.
  이때 예수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 요한을 데리시고 높은 산으로 올라갔습니다. 높은 산 위에서 어느 순간 예수님께서 변화되셨는데 그 옷이 광채가 나며 세상에서 빨래하는 자가 그렇게 희게 할 수 없을 만큼 희어졌습니다. 그것은 옷이 명품으로 변해서가 아니라 예수님의 몸이 신령한 몸으로 변화되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얼굴이 해처럼 밝게 빛나셨습니다.(마17;2) 예수님의 모습은 변화되기 전에 남루한 옷을 입은 초라한 모습과는 너무나 대조적으로 영광스러운 큰 빛의 모습으로 변화되셨습니다. 예수님은 변화되신 후 어느새 나타난 엘리야와 모세와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이 순간 모세와 엘리야가 나타난 것은 무슨 뜻이 있습니까? 모세는 율법을 대표하고 엘리야는 선지자를 대표합니다. 선지자와 율법의 말씀이 구약입니다. 모든 구약의 말씀과 선지자의 예언의 초점은 구원자 되신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께서 구원자로서 십자가를 지시고 부활하심으로 모든 인류를 죄에서 구원하는 것이 하나님의 생명구원역사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길은 그리스도로서 반드시 가야 할 길이고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도 반드시 따라야 할 길입니다. 하지만 인간의 본성으로 쉽게 갈수 없는 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십자가의 길이 끝난 후의 부활의 영광을 보여주시고자 하신 것입니다. 모세와 엘리야도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해 많은 고난을 받은 선지자들이었습니다. 모세는 이스라엘의 위대한 지도자로서 40년 동안 광야에서 인생 연단 받은 후 생을 마칠 때까지 40년을 끊임없이 불평하고 원망하는 이스라엘 노예백성을 이끌고 광야를 지나 약속의 땅 가나안 앞까지 인도하는 고난을 감당했습니다. 그는 간절히 그리던 가나안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섬김의 인생을 끝냈지만 모든 이스라엘 백성의 가장 존경하는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또 엘리야는 사악한 왕 아합과 이세벨이 통치하던 시대 일생 쫓겨 다니면서 까마귀와 과부에게까지 얻어먹는 등 많은 고난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권능을 덧입고 바알선지자 450명과 대결해 승리했고 하나님께서는 죄악된 시대 엘리야를 죽음 없이 하늘로 올리셨습니다. 사실 이들뿐 아니라 성경에서 하나님의 뜻대로 산 신자들 중 고난 없이 살다 간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하지만 고난이 큰 만큼 그 영광도 컸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인생의 끝에서 결국 승리의 인생을 살게 하시고 그 인생을 영화롭게 하셨습니다. 이 세상의 즐거움도 이 세상의 고난도 잠간이지만 고난 후 영원히 영광 받도록 하셨습니다. 하나님을 떠난 인생은 그 자체가 고난이지만 하나님을 위해 받는 고난은 진정한 기쁨과 영광의 근거가 됩니다.
  예수님의 놀라운 영광스런 모습에 제자들은 두려움가운데 말을 잃었습니다. 그런데 베드로가 수제자로서 무의식적으로 한마디 했습니다. “랍비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우리가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를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사이다.” 취중진담이라는 말도 있듯이 베드로는 얼떨결에 자신의 마음 깊은 곳에 있는 본심을 드러냈습니다. 베드로는 문제 많고 고난 많은 세상으로 내려가고 싶지 않았습니다. 베드로의 마음 깊은 속에는 고난 없는 영광을 얻기를 원했습니다. 베드로는 모세와 엘리야를 위대한 하나님의 종으로 존경하지만 그렇다고 그들처럼 고난의 인생을 살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더구나 더 큰 고난의 십자가를 지시려는 예수님을 따라 십자가의 길을 가는 제자의 삶은 더욱 부담스러웠습니다. 큰 영광이 없어도 십자가가 없는 이곳이 더 좋았습니다. 이것이 모든 인간의 공통된 마음입니다. 설사 지금 변화산의 모습이 완전한 영광이 아닐지라도, 설사 자신은 초막도 없이 세 개의 초막지기로 영원히 산다 해도 십자가의 고난 없이 영광스런 분들과 함께 하는 이곳이 좋았습니다.
  최근 장래의 꿈을 위해 힘들더라도 참고 견디며 도전하고 개척하기보다, 꿈을 포기하고 현실을 즐기며 살려고 하는 젊은이들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장래의 꿈에 투자하기보다 지금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는 현재를 즐기며 살고 싶어 합니다. 무엇이 문제입니까? ‘마시멜로 실험’을 아십니까? 1966년 미국 심리학자 월터 미셸은 기발한 실험을 했습니다. 4세 아이들에게 마시멜로를 보여주면서 약속했습니다. “여기 있는 마시멜로를 언제든 먹을 수 있어. 하지만 선생님이 잠깐 없는 동안 마시멜로를 안 먹고 기다리면 하나를 더 줄께!” 그 후 15분 동안 자리를 비웠는데 아이들의 반응은 제각각이었습니다. 15분을 꾹 참고 기다려 하나를 더 받은 아이가 있는 반면 달콤함의 유혹을 이기지 못해 먹은 아이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미셸은 15년이 지난 후 추적조사를 했는데 마시멜로의 유혹을 끝까지 참았던 아이들은 그렇지 못한 아이들보다 학업 성취도, 사회적응력 등이 월등히 높은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는 이 연구결과를 가지고 ‘인내심=미래의 성공’이라는 공식을 만들었습니다. 꿈과 비전을 갖는 것이 중요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꿈을 위해 인내하는 것입니다. 많은 신자들이 부활의 영광을 알고 있지만 예수님을 따라 십자가의 길을 가지 못합니다. 왜냐면 부활의 영광이 크다 해도 부활의 영광까지 가는 십자가의 길이 길고 고통스러워(좁고 협착해)인내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장래의 영광과 꿈을 위해 지금 현실의 고난을 인내할 수 있습니까? ‘마시멜로 실험’에 의문을 제기하는 이들이 있었습니다. 미국 로체스터대 셀레스티 키드 등이 발표한 논문(2013년)이 대표적입니다. 그들은 어린이들에게 미술활동을 할거라며 먼저 크레용을 주고 나중 색종이를 주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런데 어린이들 중 반은 약속대로 색종이를 주었지만 나머지 반은 색종이를 주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마시멜로 실험을 해봤습니다. 약속대로 색종이를 받은 아이들은 대부분 약속을 믿고 마시멜로를 먹지 않았지만 어른들의 거짓말을 경험한 아이들은 대부분 약속을 믿지 못하고 마시멜로를 먹었습니다. 이 실험결과는 ‘마시멜로 실험’을 이렇게 반박했습니다. 마시멜로를 빨리 먹어치운 아이 중 일부는 인내와 의지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나중에 돌아오면 하나를 더 주겠다.”는 어른의 말을 믿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불신이 깔린 불안정한 환경이나 가난한 가정에서 자란 아이는 기회가 있을 때 일단 ‘먹는 것이 남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아이들에게 확실히 보장된 미래는 없습니다. 몇 분 뒤 마시멜로를 한 개 더 얻을 수 있을지 불확실하다면 당장 눈앞에 있는 마시멜로를 먼저 먹어치우는 것이 현명한 것입니다. 많은 이들이 꿈을 위해 현실을 투자하며 희생하지 못하는 이유는 인내의 노력 후 꿈이 이루어진다는 확고한 믿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꿈을 이룰 가능성이 없다면 그것은 거짓 꿈으로 빨리 포기하는 것이 나을 것입니다. 신자가 부활의 영광을 보았다 해도 십자가의 길을 따른 후 영광을 받을 수 있다는 믿음이 없으면 십자가의 길을 끝까지 갈 수 없습니다. 신자는 부활의 영광에 대한 믿음이 있을 때 예수님의 십자가의 길을 끝까지 따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이 보여주시는 부활의 영광에도 믿음을 갖지 못하는 제자들에게 친히 말씀하셨습니다. 7절을 보십시오. “마침 구름이 와서 그들을 덮으며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하는지라.” 구름은 하나님의 임재를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영광중에 친히 나타나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칭하며 그의 말을 들으라 명령하셨습니다. 거짓이 넘치는 세상에서 오직 하나님께서 보내시고 확증하신 예수님의 말씀만이 믿을 수 있는 진리가 됩니다. 진정한 믿음은 예수님의 말씀을 들을 때 가질 수 있습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롬10:17) 신자는 믿음을 가질 때 장래의 영광을 위해 인내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제자들이 친히 확증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믿음으로 끝까지 십자가의 길을 가 부활의 영광에 이르도록 하셨습니다. 신자는 부활의 영광을 믿지 않으면 십자가를 질수 없습니다. 부활의 영광에 대한 믿음과 소망이 클 때 현실의 십자가의 고난은 적게 느껴집니다. 영광의 소망이 큰 만큼 십자가는 작아집니다. 누구보다도 인생 고난을 많이 받은 사도바울이 증거했습니다.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롬8:18) 그는 장차 영광을 보았기 때문에 현재 날마다 죽고 날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길을 따르는 인생을 살 수 있었습니다. ‘No cross, No crown.’ ‘No pain No gain.’ ‘No sweat No sweet.’ 이것은 성경의 진리입니다. 8절을 보십시오. 제자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두려움으로 엎드려 있다 문득 둘러보니 아무도 보이지 않고 오직 예수님과 자기들뿐이었습니다.

2. 믿는 자에게는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9-29)
그들이 산에서 내려올 때 예수님께서 부활 때까지 본 것을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 경고하셨습니다.(9) 부활의 영광을 가슴에 묻어 두고 산 아래 내려오니 벌써 십자가의 고난의 길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남은 9명 제자들이 큰 무리에게 둘러싸인 채 서기관들과 변론하고 있었습니다. 변론은 말싸움입니다. 그들은 한 아버지가 데려온 귀신들린 아들에 대해 말싸움하고 있었습니다. 그 아들은 아버지에게 외아들이었습니다. (눅9:38) 그 생명이 처음 아버지를 찾아왔을 때 아버지란 이름이 낯설고 어색했습니다. 하지만 종일 잠만 자던 아이가 걷기 시작하면서 자신을 따라하며 닮아가는 아들은 아버지에게 힘든 세상을 이길 수 있는 기쁨과 위로와 삶의 이유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어릴 때부터 절망스런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멀쩡했던 아이가 귀신이 어디서든지 그를 잡으면 거꾸러져 거품을 흘리며 이를 갈며 파리해졌습니다. 귀신이 그를 죽이려고 불과 물에 자주 던지면서 아버지는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하고자 했습니다. 용하다는 많은 의사들과 신통하다는 많은 퇴마사들을 찾아갔지만 빈번히 실패하였습니다. 실패가 반복되면서 절망과 불신이 그를 사로잡았습니다. 그러다 마침내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가까스로 산 아래에서 제자들을 만났습니다. 9명이나 되는 제자들이 자신들도 귀신을 내쫓은 경험이 있다면서 자신 있게 아이 앞에 섰을 때는 먼 길을 돌아서라도 이곳까지 인도하신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그런데 자칭 용하다는 제자들이 아들을 고치기 위해 처음엔 한 제자씩 돌아가면서 아들을 붙들고 “귀신아 나가라!” 선포하다가 그래도 안되니 2명씩 합심해서 외치다가 마침내 9명이 합심해서 아들을 둘러싸 윽박지르며 힘으로 누르려 했지만 그럴수록 귀신은 더욱 발광하며 아이에게서 나갈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주변에서 구경하던 무리들 틈 사이에서 서기관들이 “그렇게 하면 어떻게 귀신이 나가겠느냐? 귀신이 웃겠다.” 비웃자 귀신과 싸우다가 감정이 격화된 제자들이 오히려 서기관들과 싸우기 시작했습니다. 이를 지켜보던 아버지의 마음은 더욱 절망과 불신으로 무너졌습니다.
  이때 예수님께서 산에서 내려오셔서 이 광경을 보시며 탄식하셨습니다. “믿음이 없는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얼마나 너희에게 참으리요.” 예수님은 이 모든 문제의 원인을 믿음 없는 문제로 보셨습니다. 아이주변에서 구경하며 방관했던 무리들은 믿음도 책임감도 없었습니다. 종교지도자들은 백성들을 믿음의 길로 인도하도록 하나님께 택함 받은 자들이었지만 위선과 형식주의에 빠져 믿음을 잃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더욱 안타까워하신 것은 진정한 믿음을 위해 지금까지 함께 하시며 인도하시며 훈련하신 제자들마저 믿음 없이 감정적이 된 상황이었습니다. 귀신들린 아이를 두고 모든 사람이 깊은 불신과 절망에 빠져 있었습니다. 이처럼 우리사회에서는 수많은 문제들 앞에서 불신에 빠져 있습니다. 청년실업과 노후문제 교육과 주거문제 등 정권이 바뀔 때마다, 매해마다 새로운 해결책들이 나오지만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또 다른 문제들을 낳으며 사람들을 불신에 빠뜨립니다. 인터넷과 스마트폰을 통해 많은 지식과 정보를 얻은 사람들은 어느새 전문가가 되어 해결책도 없이 서로 비판만 하지만 믿음 없는 세상 속에서 더욱 문제를 복잡하게 만들고 상처를 깊게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믿음 없는 세대를 불쌍히 여기시며 아버지를 불러 치유를 시작하셨습니다. 아이의 문제는 근본적으로 아버지의 문제였습니다. 아버지가 아이를 예수님께 데려오자 심한 경련을 일으키며 땅에 구르며 거품을 물었습니다. 아버지는 그 아이 앞에서 병력을 말하면서 마지막에 한 마디 덧붙였습니다. “-그러나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도와주옵소서.” 이 말은 “아이의 상태가 너무 심각하지만 어떻게 하실 수 있으면 한번 도와주세요.” “할 수 있는 만큼 해 주시고 안 되도 너무 부담 갖지는 마세요.” 그런 의미입니다.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이 아버지는 너무 신사적입니다. 예수님께 부담주지 않으려고 최대한 예의를 차리고 부탁합니다. 하지만 이 말은 예수님을 무시하는 말입니다. 마치 초등학교 1학년 학생이 의대교수님이신 원규연 목자님께 산수 문제를 가지고 와서 “이 문제 풀 수 있으면 풀어주세요. 그러나 못해도 원망하지 않겠습니다.” 라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사실 이 아버지는 제자들은 못했을지라도 예수님께는 이번이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하고 간구해야 했습니다. 지붕을 뚫은 중풍병자처럼 죽기 살기로 매달려야 했습니다. 예수님 뒤로 와서 옷자락을 만진 혈루증 앓는 여인처럼 필사적으로 붙들어야 했습니다. 개 취급을 당해도 상 밑의 부스러기 은혜를 구하는 수로보니게 여인처럼 온 힘을 다해 도움을 청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아이의 아버지는 끝없는 실패와 절망 속에서 믿음을 잃어버렸습니다. 아버지의 말에는 실패로 인해 더 이상 상처받고 싶지 않은 본성이 숨어 있습니다. 또 다시 실패한다면 이제 더 이상 일어설 수 없을 것 같았습니다. 더 이상 상처받고 싶지 않아 믿음을 포기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믿음을 잃어버린 아버지를 불쌍히 여기시고 믿음을 갖도록 도우셨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시니”(23) 예수님께서는 믿음을 잃은 아버지에게 도전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믿는 것 같기도 하고 안 믿는 것 같기도 하는 그를 강하게 책망하셨습니다. 반신반의한 믿음은 안 믿는 것이고 믿음이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에게 겨자씨만큼 작더라도 절대적인 믿음, 순수한 믿음을 갖도록 촉구하셨습니다.
  그럼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믿음은 구체적으로 어떤 믿음입니까? 우리는 무엇을 믿어야 합니까?
첫째, 예수님을 믿어야 합니다.
  당연히 예수님을 믿는 것이 아닌가 말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이들이 많습니다. 제자들은 전도여행 중에 귀신을 내쫓은 경험이 있었어도 귀신들린 아이를 고치지 못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보다 과거의 경험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믿음은 과거의 것도 아니고 미래적인 것도 아니고 항상 현재적인 것입니다. 과거에 아무리 능력 있는 삶을 살고 큰일을 했다 할지라도 현재 예수님 없이 산다면 그것은 믿음을 잃은 것입니다. 지금 나와 함께 하신 예수님을 붙들고 따르는 것이 믿음입니다. 종교지도자들은 예수님보다 자기 지식과 자기 권위를 믿었습니다. 자기 자신을 믿을 때 오히려 구원자 되신 예수님을 믿지 못했습니다. 사실 현재도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믿습니다. “나는 할 수 있다. 나는 할 수 있다!”하며 운동을 하면서 공부를 하면서 또 게임을 하면서 자기 확신으로 한계를 극복하고자 합니다. 나폴레옹은 ‘나의 사전에는 불가능이란 단어가 없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런 그에게도 불가능은 있었습니다. 그는 러시아를 정복하지 못했고 죽음의 권세를 이기지 못했습니다. 믿음은 자신을 믿는 신념과는 다릅니다. 신념은 자신을 믿고 자신의 영광을 구하지만 믿음은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영광을 구합니다. 우리는 신념으로 모든 것을 할 수 없지만 믿음으로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 왜냐면 신념은 자신의 의지와 능력의 한계에 갇히지만 믿음은 전능하신 하나님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믿음은 나는 할 수 없지만 하나님은 할 수 있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자신이 무능력하다는 것을 깊이 깨달을수록 예수님께 대한 믿음을 가질 수 있습니다.
둘째, 예수님의 능력을 믿어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불가능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말씀 한 마디로 천지를 창조하셨습니다. 홍해를 갈라 마른땅같이 건너게 하시고 광풍도 잠잠케 하셨습니다. 많은 귀신들린 자와 죽어가는 병자를 고치셨고 또 죽은 자도 살리셨습니다. 이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이 가능합니다. 하나님이 할 수 있느냐 없느냐는 문제가 될 수 없습니다. 문제는 내가 하나님을 믿느냐 안 믿느냐 입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능력을 받을 수 있는 통로입니다. 내가 이 하나님을 믿을 때 하나님께서 나를 통해 불가능을 가능케 하십니다.
셋째, 예수님의 사랑을 믿어야 합니다.
  많은 이들이 예수님께 나아가지 못하는 이유는 예수님과의 사랑과 신뢰의 (믿음의) 관계성이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나를 사랑하셔서 나의 문제를 해결해주실 것을 믿지 못합니다. 하지만 내가 믿음으로 나아갈 때 믿음의 관계성이 시작됩니다. 사실 내가 먼저 예수님께 나아가는 것이 아닌 예수님께서 먼저 나를 믿음의 길로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내가 부족할지라도, 더러운 죄인이라도 믿음으로 나아가면 함께 하시고 믿음의 관계성을 시작하십니다. 단지 당면한 문제를 해결해주시는 것을 넘어 죄의 종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구원받게(거듭하게) 도와주십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음으로 죄의 종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날 수 있습니다. 자녀가 아무리 부족해도 아버지에게 자신의 원하는 것을 담대히 구하며 얻을 수 있는 것처럼 신자도 하나님의 자녀로서 믿음으로 당당히 구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믿음이 없는 죄의 종은 예수님께 담대히 구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요15:7) 믿음의 능력을 깨달은 사도바울은 간증했습니다.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4:13) 예수님께서는 내가 아무리 부족하고 죄악 되어도 믿음으로 나오길 간절히 바라십니다. 내가 문제를 해결받기 위해 나가려는 마음보다도 예수님은 나보다 더 간절하게 내가 예수님께 나오길 원하십니다. 예수님은 나의 부족함을 아십니다. 연약함을 아십니다. 그동안의 실패와 절망을 아십니다. 예수님은 믿음으로 나온 나와 함께 하시며 도와주시길 원하십니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예레미야33:3) 예수님은 우리가 믿음으로 부르짖을 때 반드시 응답하시고 도와주십니다. 우리가 나의 문제를 들고 믿음으로 예수님께 나아감으로 예수님과의 믿음의 관계성을 시작할 수 있길 기도합니다.
  24절을 보십시오. 아이의 아버지는 믿음을 갖기를 간절히 원하시는 예수님의 마음을 깨달았습니다. “곧 그 아이의 아버지가 소리를 질러 이르되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주소서 하더라” 아이의 아버지는 자신이 예수님을 믿지 않고 반신반의한 것을 회개했습니다. 예수님의 능력을 불신한 것을 회개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부족함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자신이 믿음을 갖도록 도와달라고 간구했습니다. 수많은 실패와 절망의 기억이 아직도 그의 발목을 잡고 있지만 아버지는 믿음으로 불신을 끊도록 예수님께 도와달라 간구했습니다.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주소서.” 예수님은 아버지의 믿음의 고백을 기뻐하셨습니다(25). 그리고 더러운 귀신을 꾸짖어 말씀하셨습니다. “말 못하고 못 듣는 귀신아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 아이에게서 나오고 다시는 들어가지 말라.” 그러자 귀신이 소리 지르며 아이로 심히 경련을 일으키게 하더니 마침내 아이에게서 나갔습니다. 귀신이 나가고 아이가 죽은 것처럼 쓰러지자 주변 사람들이 귀신을 내쫓으려다가 아이를 죽였다 웅성거렸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아이의 손을 잡아 일으키시며 믿음의 기적을 보이셨습니다. 그의 눈동자에 생기가 돌았고 말도 하며 완전한 정상인으로 돌아와 아버지의 품에 안겼습니다. 이를 지켜보던 제자들은 집으로 돌아와 조용히 예수님께 우리는 어찌하여 능히 그 귀신을 쫓아내지 못했는가 물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종류가 나갈 수 없느니라.” 우리의 신앙생활은 영적싸움입니다. 하나님영광을 가리고 믿음생활을 막는 세상 사람들과 양들과 또 말 안 듣는 자녀들과의 싸움이 아닌 그들 뒤에서 주관하는 사단과의 싸움입니다. 신자가 믿음의 능력을 덧입기 위해서 기도생활은 필수입니다. 기도 없이 사단과 싸우는 것은 내가 직접 싸우는 것이지만 간절히 기도하면 예수님께서 나와 함께 또 나 대신 싸워주시고 승리를 주십니다. 말씀을 붙들고 기도할 때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끝까지 십자가의 좁은 길을 따라갈 수 있는 믿음을 주시고 결국 부활의 영광을 보게 도와주실 것입니다. 우리가 여름수양회가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서 믿음으로 끝까지 기도함으로 예수님의 능력과 사랑을 덧입고 병든 양들에게 도전하여 예수님께 인도할 수 있길 기도합니다.

  말씀을 준비하면서 믿음 없는 자신을 발견하고 저의 불신을 회개하게 됐습니다. 무한경쟁사회를 살다보니 자신도 모르는 사이 사람들을 쉽게 믿지 못하고 불신하며 살게 됐습니다. 문제는 세상 사람들 뿐 아니라 나를 인도하시는 예수님도 온전히 믿지 못하고 내 생각과 경험으로 살 때가 많았습니다. 골치 아팠던 병원이전 후 병원이 안정을 찾고 또 산소망팀 책임목자의 직분에서도 물러나면서 이제 큰 영광도 십자가도 없는 평안한 삶을 추구하게 됐습니다. 섬기는 양들이나 목자들도 무리되지 않은 적당한 수준에서 감당하고자 했습니다. 그런데 고3이 돼서 조금씩 정신을 차리려는 첫째가 며칠 전 다시 기흉으로 응급실에 입원하게 됐습니다. 작년 첫 번째 입원 후 힘들어졌다 이제 겨우 정신을 차렸는데 시험을 앞두고 중요한 시기에 다시 입원하게 됐고 심각하면 수술까지 해야 하는 상황에 첫째아이가 불신과 절망에 빠지게 됐습니다. 저도 잠시 낙심됐지만 말씀가운데 귀신들린 아이를 위해 간구하는 아버지같이 간절히 찾고 구하는 믿음을 덧입어야 함을 깨닫게 됐습니다. 그동안 제 인생가운데 수많은 불가능한 상황 속에서도 전능하시고 선하신 손길로 구원해주시고 인도하신 예수님을 바라보고 이번 사건을 통해 첫째 아이의 인생도 함께 하며 인도할 수 있도록 믿음으로 간구할 수 있길 기도합니다. 제가 직접 아이의 불신과 절망과 싸울 수 없지만 기도함으로 예수님의 능력을 덧입고 믿음으로 그를 얽매이는 사단과 싸울 수 있길 기도합니다. 또 섬기는 양들과 목자들도 아버지의 심정과 믿음으로 도우며 예수님께 인도할 수 있길 기도합니다. 제가 믿음 없는 사람처럼 매일 눈앞에 보이는 현실에 억매이며 울고 웃지(일희일비) 않고, 매일 말씀과 기도를 통해 부활의 영광을 바라보며 믿음으로 십자가의 길을 따르는 자가 될 수 있길 기도합니다.

결론적으로, 예수님은 불가능이 없는 전능하신 하나님으로 지금도 살아계셔서 믿는 이와 함께 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어둡고 죄악되고 불신적인 세상에서 오직 믿음으로 예수님께 나오길 간절히 바라십니다. 우리가 불신과 절망의 역사를 끊고 믿음으로 예수님께 나아감으로 승리의 인생, 영광의 인생을 살 수 있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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