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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nday Worship Message
주일예배메시지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8-08-26 (일) 12:48
분 류 마가복음
첨부#1 2018년_마가복음22강-1(고영훈).hwp (64KB) (Down: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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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마가복음 제22강]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2018년 마가복음 제22강                                                        고영훈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말씀 / 마가복음 11:27-12:17
요절 / 마가복음 12:17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 하시니 그들이 예수께 대하여 매우 놀랍게 여기더라”


  지난 시간 예수님께서 성전을 깨끗이 하시자 종교지도자들이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느냐 따져 물었습니다. 예수님은 여러 비유를 통해 자신이 하나님의 사랑하는 아들이요, 메시야 되심을 증거하십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고 말씀하심으로써 하나님께 대한 절대적인 자세를 가르치십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우리가 받은 은혜와 특권을 새롭게 깨닫고, 우리를 택하여 주신 하나님께 우리의 모든 것을 드리고 온 마음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이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I. 예수님의 권위(11:27-33)
  27절을 보십시오. 예수님께서는 다시 예루살렘 성전에 들어가셨습니다. 이 때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장로들이 나아왔습니다. 그들은 산헤드린 공회의 주요 구성원들로서 공식적인 권위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예수님께 따져 물었습니다.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느냐 누가 이런 일 할 권위를 주었느냐” 여기서 ‘이런 일’이란 지난 시간에 예수님이 성전에서 매매하는 자들을 내쫓으시고 성전을 깨끗이 하신 사건을 말합니다. 이들은 예수님이 자기들의 허가도 없이 무슨 권위로 감히 이런 일을 행하였는지 따져 물었습니다. 그들의 질문에 대해 예수님은 “나도 한 말을 너희에게 물으리니 대답하라 그리하면 나도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는지 이르리라 요한의 세례가 하늘로부터냐 사람으로부터냐 내게 대답하라” 하고 되물으셨습니다(29,30). 이 질문은 그들이 대답하기에 참으로 난처한 것이었습니다. 만일 요한의 세례가 하늘로부터라 하면 어찌하여 그를 믿지 아니하였느냐 하고 책망 받게 되고, 요한의 영적 권위를 인정하게 되어 요한이 증거한 예수님의 권위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반대로 사람으로부터라고 한다면 백성들이 요한을 참 선지자로 인정하고 있기 때문에 백성들의 반발을 사게 됩니다. 그들은 결국 ‘우리가 알지 못하노라’ 거짓말을 하며 스스로 양심을 속이고 진실을 외면하였습니다. 그들은 하나님 앞에 살지 않고 사람들의 눈치를 보는 인본주의자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대답을 회피하는 그들에게 나도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는지 대답하지 않겠다고 하십니다. 그러나 요한의 세례가 하늘로부터 온 것 같이 자신의 권위도 하늘로부터 온 것임을 이미 증거하신 것입니다. 요한은 하늘로부터 권위를 받아 회개의 복음을 전하다가 불의한 헤롯왕에게 목 베임을 당하였습니다. 그러나 수많은 백성들이 그가 전한 회개의 세례를 통해 메시야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 산헤드린 공회의 자격증이 없더라도 요한을 통해 이루신 생명 구원 역사는 그가 하나님이 보내신 종임을 분명하게 증거해 주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의 말씀과 그가 하신 일은 예수님께서 바로 하나님이 보내신 메시야이심을 증거해 주었습니다(요14:10,11). 그리고 이제 예수님은 포도원 농부의 비유를 통해서 사실상 그들의 질문에 대한 답변을 주고자 하십니다.

II. 포도원 농부의 비유(12:1-12)
  1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비유로 그들에게 말씀하시되 한 사람이 포도원을 만들어 산울타리로 두르고 즙 짜는 틀을 만들고 망대를 지어서 농부들에게 세로 주고 타국에 갔더니” 주인은 매우 기름진 산에 포도원을 만들었습니다. 땅을 파서 돌을 제하고 튼튼한 울타리를 만들고 즙 짜는 틀을 만들고 망대를 세워 극상품 포도나무를 심었습니다. 포도원은 이제 농부가 가꾸기만 하면 극상품 포도열매를 풍성하게 맺을 수 있는 모든 환경이 마련되었습니다. 길거리에 나가보니 심각한 청년 실업 사태로 직장이 없이 빈둥거리며 노는 사람들이 부지기수였습니다. 이를 본 주인은 그들을 다 농부로 고용해서 포도원에서 마음껏 일할 기회를 제공해 주었습니다. 농부들은 너무나 좋은 일자리를 얻게 되어  기쁘고 행복하였습니다. 포도원 주인에게 감사의 카톡 메시지를 보내며 진심으로 고마운 마음을 표현하였습니다. 그런데 주인은 행여나 농부들이 자기의 눈치를 볼까봐 세를 주고 먼 타국으로 떠났습니다. 이 비유에서 포도원 주인은 하나님, 농부는 이스라엘 종교 지도자들, 포도원은 이스라엘을 가리킵니다. 넓은 의미로는 농부는 인간, 포도원은 세상을 가리킵니다. 하나님은 아름다운 에덴동산을 창설하시고 인간이 다스리고 지키며 많은 열매를 맺도록 거룩한 사명을 주셨습니다. 인간은 하나님께서 주신 포도원에서 열심히 일하여 열매 맺는 행복한 삶을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사람이 일생 일할 수 있는 터전이 있고, 일생 감당해야 할 사명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큰 복입니까?
  2,3절을 보십시오. “때가 이르매 농부들에게 포도원 소출 얼마를 받으려고 한 종을 보내니 그들이 종을 잡아 심히 때리고 거저 보내었거늘” 당시 새 포도원의 경우 정상적인 결실이 이루어지기까지 4년 정도 소작료를 면제해 주는 기간이 있었다고 합니다. 이제 이 기간이 지나 주인은 소출 얼마를 받고자 하였습니다. 당시 소출을 5대5로 나누었는데 자비가 픙성한 이 주인은 소득의 10분의 1만 바치도록 하였습니다. 이렇게 한 것은 농부들이 주인에 대한 최소한의 공경심을 유지하고 나머지는 농부들에게 상급으로 주신 것입니다. 포도원 농부들은 주인이 보낸 종을 대대적으로 환영하며 극진한 대접을 하고 가장 좋은 포도 열매를 골라서 주인에게 소출로 바침으로써 계속해서 아름다운 포도원에서 일할 수 있는 은혜와 특권을 누려야 마땅했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 일입니까? 농부들은 주인이 보낸 종을 심히 때리고 빈손으로 보내버렸습니다. 이를 본 주인은 당장에 그들을 벌하고 다른 착한 농부들로 바꾸어 버릴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주인은 참고 훈련을 많이 받은 겸손한 다른 종을 보내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도 종의 머리에 상처를 내고 능욕까지 하였습니다. 주인은 은혜를 악으로 갚는 농부들을 당장에 진멸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도 또 참고 계속해서 다른 종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그를 죽이고 또 그 외 많은 종들도 더러는 때리고 더러는 죽였습니다. 도대체 농부들이 왜 이렇게 되어버렸을까요? 그들의 문제가 무엇입니까?
첫째로, 받은 바 은혜를 감사치 않았습니다.
  농부들은 처음에는 과거에 할 일 없이 빈둥빈둥 놀며 죄만 짓던 비참한 인생에서 주인의 일방적인 은혜로 포도원을 맡게 되었을 때 감사하는 마음으로 충만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포도나무를 가꾸느라 땀 흘려 수고하다 보니 감사하는 마음이 조금씩 사라지고 자기들이 고생한 것만 생각하면서 열매는 자기 수고로 얻었다 생각하기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감사하는 마음이 사라졌을 때 그들은 사탄의 종이 되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로마서 1:21절을 보면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하지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하고 감사하지 않는 것이 죄의 뿌리임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어떤 상황에 처하든지 기본적으로 주님께서 나에게 베푸신 은혜를 감사해야 합니다. 세월이 흐를수록, 복음역사를 위해 헌신할수록, 과거에 내가 어떤 자였는데 하나님의 일방적인 은혜로 구원받게 된 것을 기억하고 감사하는 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또 과거 할 일 없이 방황하며 일생 죄짓다 심판 받을 나를 부르사 캠퍼스 포도원에서 사명을 감당하며 열매 맺는 인생을 살게 하신 은혜를 늘 감사해야 하겠습니다. 다윗 왕은 이스라엘의 주권자로 세움을 받고 통일 이스라엘의 위대한 일을 이루었을 때 자기 업적을 내세우며 자기 자랑하지 않았습니다. 사무엘하 7:18을 보면 “주 여호와여 나는 누구이오며 내 집은 무엇이기에 나를 여기까지 이르게 하셨나이까” 하면서 하나님께서 베푸신 은혜를 기억하며 감사 기도를 드렸습니다. 사도 바울도 이방인의 사도로 엄청난 업적을 이루었지만 항상 자신을 가리켜 비방자요 박해자요 폭행자요 죄인 중의 괴수라고 말했습니다(딤전1:13,15). 그리고 과거 비참한 자신을 구원하신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에 감사하여 목숨을 내놓고 주님을 섬겼습니다. 그가 구원의 은혜에 감사하여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지만 교만하지 않고 변함없이 충성할 수 있었던 것도 하나님의 은혜 때문이었습니다(고전15:10). 복음의 일꾼이 구원의 은혜와 부르심의 은혜를 잊지 않고 감사하는 것은 참으로 중요합니다. 일생동안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않고 감사하는 사람은 참으로 위대한 사람입니다. 인간은 죄악되고 연약하여 은혜는 물에 새기듯 쉽게 잊어버리고 힘들었던 기억을 평생 간직합니다. 그러나 은혜를 기억하고 감사하지 않을 때 사탄의 종이 되어 비참한 자가 되는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둘째로, 교만하여 주인을 주인으로 공경치 않았습니다.
그들은 포도원을 자율적으로 가꾸는 은혜와 특권을 받았지만 어디까지나 주인이 아니요 세를 내는 청지기였습니다. 그들은 마땅히 주인의 주권을 인정하고 주인을 공경해야 했습니다. 주인을 주인으로 공경함으로 영적 질서를 지키는 것이 농부들이 계속 일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습니다. 그러나 포도원을 열심히 가꾸다 보니 강한 주인의식이 생겨났습니다. 또 주인도 타국에 가 있어 자신들이 모든 것을 스스로 알아서 하다 보니 자신들이 주인인양 착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결국 분수를 넘어 질서를 어기고 주인의 주권을 무시해 버리고 은혜를 악으로 갚아버리게 되었습니다. 그들의 문제는 교만이었습니다. 인간이 타락하게 된 근본 원인은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 감사치 않은 것과 하나님과 동등되고자 하는 교만이었습니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입니다(잠16:18). 잠언 기자는 자기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낫다고 하였습니다(잠16:32). 하나님은 질서의 하나님이십니다.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 앞에서 늘 겸손하여 창조 질서와 영적 질서가 분명해야 하겠습니다. 그렇게 할 때 하나님이 주신 모든 은혜와 특권을 끝까지 누리는 복을 받게 됩니다.
셋째로, 모든 것을 갖고자 하는 탐심이 있었습니다.
  농부들은 포도원을 열심히 가꾸어 아름다운 극상품 포도열매를 많이 맺었습니다. 그들의 문제는 열매를 맺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많은 열매를 맺은 후 자신이 다 갖고자 하는 욕심이 문제였습니다. 그들이 가만히 따져 보니 열심히 수고한 것은 자신들이고 주인이 한 것은 아무것도 없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꼬박꼬박 세를 바치려 하니 억울하였습니다. 그들은 주인과 맺은 계약도 무시하고 모든 것을 자기들이 갖고자 탐심을 부렸습니다. 사람이 성공하여 열매를 풍성히 맺었을 때 먼저 하나님께 감사하고 소출 얼마를 가장 먼저 하나님께 바치는 가운데 마음의 탐심을 다스려야 합니다. 주인이 소출 얼마를 바치게 한 것은 바로 그들 마음에 생기기 쉬운 탐심을 다스리고 물질보다 주인을 더 사랑하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주인에게 받은 복 자체에 빠져서 주인과 맺은 언약을 파기하고 말았습니다.
  6절을 보십시오. “이제 한 사람이 남았으니 곧 그가 사랑하는 아들이라 최후로 이를 보내며 이르되 내 아들은 존대하리라 하였더니” 포도원 주인은 ‘이제 어찌할까’ 탄식하며 농부들의 악한 의도와 배은망덕한 행위를 슬퍼하였습니다. 그러나 주인은 그들을 사랑하기 때문에 진멸할 수가 없었습니다. 공의를 앞세우다 보면 불의한 그들을 심판해야 하지만 사랑을 앞세우다 보면 그들의 죄 문제가 해결될 수 없었습니다. 주인은 고민하다가 공의와 사랑을 조화시킬 수 있는 최후의 방법으로 사랑하는 아들을 그들에게 보내고자 하였습니다. 이는 위험천만한 일이었습니다. 주인은 농부들이 악하게 변해 버린 것을 잘 알고 있었기에 아들에게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또 아들은 하나 뿐인 유일한 상속자였습니다. 사랑하는 외아들을 보낸다는 것은 실로 큰 모험이요 희생이었습니다. 그러나 주인은 농부들을 여전히 사랑하였고 또 한 번 맺은 언약을 기초로 이들을 끝까지 돕고자 하였습니다. 주인은 아들을 보내면서 한 가지 희망을 가졌습니다. “내 아들은 존대하리라” 주인은 최소한 아들은 영접하고 존대할 것을 기대하였습니다. 만일 그들이 아들을 존대하기만 하면 지금까지의 모든 죄를 다 용서하고 또 포도원을 계속 맡길 것입니다. 주인이 농부들과의 관계에서 유일하게 바라는 것은 아들을 존대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이 바치는 소출도 아니요, 노동은 더욱더 아니었습니다. 존대한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이는 주인을 사랑하고 존경하는 것입니다. 존대하는 마음은 주인과 농부 사이에 반드시 있어야 할 사랑과 질서의 관계입니다. 주인은 농부들의 죄로 인해 파괴된 관계를 아들로 인해 회복되기를 바랐습니다.
  우리는 이 비유에서 하나님이 독생자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신 목적이 무엇인가 배울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독생자도 아끼지 않고 보내신 것을 볼 때 죄인들을 향한 하나님의 변함없는 사랑을 의심할 수 없습니다. 이 뿐만 아니라 독생자를 영접하고 존대하기만 하면 지금까지의 어떤 죄, 반복하여 지은 수많은 죄도 용서하시는 하나님의 무한한 용서의 사랑을 믿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믿고 존대하기만 하면 어떤 죄도 용서하시고 하나님과의 관계성을 회복시켜 주십니다. 요한복음 3:16절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실로 인자하심과 용납하심과 길이 참으심이 풍성하신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롬2:4). 그러나 하나님은 죄를 무한정 참으시는 원칙이 없는 분은 아닙니다. 마지막으로 보내신 독생자까지 영접하지 않으면 그 죄를 심판하시는 공의의 하나님이십니다.
  이 때 농부들은 어떻게 했습니까? 7,8절을 보십시오. “그 농부들이 서로 말하되 이는 상속자니 자 죽이자 그러면 그 유산이 우리 것이 되리라 하고 이에 잡아 죽여 포도원 밖에 내던졌느니라” 그들은 주인의 마지막 기대마저 저버리고 주인의 주권에 도전하여 자신들이 주인이 되고자 아들을 죽이고 말았습니다. 이에 주인이 어떻게 하겠습니까? 주인은 와서 그 농부들을 진멸하고 포도원을 다른 사람들에게 주었습니다. 그들은 주인이 무한정 참고 인내하는 사랑을 알지 못하고 힘이 없는 줄로 착각하고 무시하였습니다. 그들은 종들을 쫓아 버리고 아들까지 죽이면 포도원이 영원히 자기들의 소유가 될 것이라 생각하였습니다. 그들은 주인의 사랑과 은혜를 멸시하였습니다. 이러한 농부들의 모습은 탐심 때문에 예수님을 배척하는 타락한 인간의 모습입니다. 예수님은 인간의 죄 때문에 시편에 기록된 말씀대로 될 것을 경고하셨습니다(시118:22,23). 10,11절을 보십시오. “너희가 성경에 건축자들이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 이것은 주로 말미암아 된 것이요 우리 눈에 놀랍도다 함을 읽어 보지도 못하였느냐 하시니라” 건축자들이 버린 돌이란 종교지도자들에 의해 버림 받으시고 죽임 당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 예수님을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게 하셨습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시고 하늘에 오르셔서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앉게 되실 것을 예고하는 것입니다. 아울러 머릿돌이라는 표현을 통해서 그리스도께서 새로운 성전인 교회의 머리가 되실 것임을 암시하셨습니다. 12절을 보십시오. “그들이 예수의 이 비유가 자기들을 가리켜 말씀하심인 줄 알고 잡고자 하되 무리를 두려워하여 예수를 두고 가니라” 종교지도자들은 예수님의 이 비유가 자기들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인 줄 알았습니다. 그들은 당장 그 자리에서 회개하고 돌이켜야 했으나 반대로 예수님을 잡고자 하였습니다. 그들은 교만과 탐심으로 파멸로 향하는 길에서 돌이킬 수가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이들에게 어떤 교훈을 주십니까?

III. 가이사의 것, 하나님의 것(13-17)
포도원 농부의 비유를 통해 예수님은 종교지도자들이 죄를 깨닫고 회개함으로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회복하도록 하셨지만 그들은 오히려 어찌하든지 예수님을 없애고자 하는 계략을 꾸몄습니다. 그들은 먼저 예수님의 말씀을 책잡기 위해 바리새인과 헤롯당 중에서 사람을 보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율법에 충실한 유대주의자들로서 이방의 지배를 거부하며 가이사에게 세를 바치는 것을 반대하였습니다. 반면 헤롯당들은 세속주의자요, 친 로마파로서 가이사에게 세를 바치는 것을 적극 지지하였습니다. 이들은 평소 서로 혐오하고 경멸하며 상종치 않는 원수지간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없이하는데 있어서는 마음을 같이 하여 연합전선을 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의도를 숨기고 진지한 척 하며 예수님께 먼저 아첨의 말을 하였습니다. “선생님이여 우리가 아노니 당신은 참되시고 아무도 꺼리는 일이 없으시니 이는 사람을 외모로 보지 않고 오직 진리로써 하나님의 도를 가르치심이니이다” 그들은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하였지만 이는 그들이 오랜 시간에 걸쳐 예수님을 관찰한 결과로서 예수님에게 아주 합당한 말이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추켜세운 뒤 덫이 있는 정치적인 질문을 하였습니다. “가이사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이 옳으니이까 옳지 아니하니이까 우리가 바치리이까 말리이까” 당시 로마는 식민지 백성들에게 인두세를 부과시켰는데 유대인들은 이에 대해 늘 반항적이었습니다. 그런데 만일 예수님이 세금을 바치라고 하면 백성들의 비난거리가 되어 인기를 잃게 됩니다. 만일 예수님이 세금을 바치지 말라고 하면 로마에 대한 반역을 선동하는 죄로 헤롯당에 의해 즉각 체포당하게 됩니다. 그들은 이제야 말로 예수님이 꼼짝없이 걸려들었다 생각하고 회심의 미소를 지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곧 그들의 중심을 꿰뚫어 보시고 그 외식함을 아셨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어찌하여 나를 시험하느냐 데나리온 하나를 가져다가 내게 보이라”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 형상과 이 글이 누구의 것이냐”고 물으셨습니다. 데나리온은 당시 로마의 은화로서 앞면에는 월계관을 쓴 가이사의 흉상과 ‘신 아우구스투스의 아들 티베리우스 가이사 아우구스투스’라는 글이 새겨져 있었고, 뒷면에는 황제의 어머니 리비아가 신들의 보좌에 앉아 하늘의 평화를 주는 모습이 그려져 있었습니다. 이는 로마 제국의 황제 숭배를 위하여 고안되었습니다. 데나리온에 가이사의 형상과 글이 있다는 것은 그것이 가이사의 것임을 말해 줍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질문에 ‘가이사의 것이니이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이에 예수님은 무엇이라 말씀하셨습니까? 17절을 다 같이 읽겠습니다.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 하시니 그들이 예수께 대하여 매우 놀랍게 여기더라”
그러면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는 말씀의 뜻이 무엇입니까?
첫째,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바치라는 것입니다.
  이는 한 나라의 국민으로서 국가에 대한 의무를 다하라는 것입니다. 국가에 대한 의무로는 납세의 의무, 병역의 의무, 교육의 의무, 근로의 의무, 그리고 환경 보존의 의무가 있습니다. 우리는 이 땅에 발을 붙이고 있는 한 국가에 대한 의무를 다해야 합니다. 탈세를 한다거나 병역을 기피해서는 안됩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로마가 무력으로 유대를 점령하고 있기 때문에 이런 것을 함부로 여기고 가이사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은 부당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럴지라도 가이사에게 세금을 바쳐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그 이유를 롬 13:1에서 말씀합니다.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하라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바라” 가이사의 권력도 근본적으로는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이기에 이에 순종해야 합니다. 로마가 세금을 거두어 황제가 호의호식 하는 데만 쓰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대부분의 세금은 로마가 다스리는 나라들의 질서와 안녕을 유지하고 복지 정책을 펼치는데 쓰였습니다. 거기에는 유대 지역의 유대인들도 혜택을 누리는 만큼 세금을 납부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둘째,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는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하나님께 대한 의무도 다해야 함을 강조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이 말씀을 하시는 것은 사실 그들은 가이사에게도 안 바치고 하나님께도 바치고자 하는 마음이 없음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말로만 하나님의 종이지 성전을 이용하여 순례하러 온 사람들에게 자기들의 이익을 취하고자 했습니다. 백성들 앞에서 권위를 부리며 하나님께 돌려 드려야할 영광을 스스로 취해 가졌습니다. 그들은 이렇게 하나님께 돌려 드려야 할 많은 것들을 하나님께 드리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쳐야 합니다. 우리가 마땅히 바쳐야 할 것은 소득의 십일조입니다(말3:10). 또 첫 열매도 하나님께 드려야 합니다(출23:19). 무엇보다 안식일은 주의 날이기 때문에 다른 날과 구별하여 거룩하게 지켜야 합니다(출20:8). 또한 우리는 경배와 찬양을 하나님께만 드려야 합니다. 로마 황제가 아무리 동전에 가이사가 만민의 신이라고 새겨 놓는다 해도 진정한 경배와 찬양을 받으실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 뿐입니다. 그래서 많은 크리스쳔들이 황제 숭배를 거부하고 기꺼이 순교하였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일제 강점기 때 신사 참배를 거부하고 많은 신자들이 고통 받고 순교하였습니다. 가이사의 형상이 데나리온에 새겨져 있었다면 하나님의 형상은 어디에 새겨져 있습니까? 창세기 1장 27절은 말씀합니다.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바로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이 새겨진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는 것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우리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라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국가에 충성하고 국민의 모든 의무를 다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사랑할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 뿐이십니다. 이렇게 하나님과 바른 관계성이 맺어질 때 그 안에서 국가와 사회와 가정의 모든 관계성이 제자리를 찾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소유하고 있는 물질이나 생명이나 자녀까지도 다 하나님의 것이므로 하나님께 드려야 합니다. 우리는 먹든지 마시든지 살든지 죽든지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해야 합니다. 그런 삶을 살 때 진정으로 자유롭게 되고 행복에 이를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이 말씀대로 우리가 일생 하나님께 합당한 감사와 사랑과 헌신을 드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무 자격이 없는 저를 구원하여 주시고 캠퍼스 포도원에서 일할 수 있는 은혜와 특권을 주셨습니다. 저는 처음에 이 은혜에 감사하여 기쁘고 즐거운 마음으로 열심히 사명을 감당하였습니다. 특히 힘든 가운데 믿음의 결혼도 하여 일평생 이 포도원에서 귀한 동역자들과 함께 열심히 사명을 감당하고자 결단하였습니다. 그러나 세월이 점점 흘러가면서 처음에 가졌던 감사의 자세가 많이 사라지고 삼중의 십자가를 지며 살아가야 하는 학사 목자의 삶에 기쁨이 없이 의무감으로 지낼 때가 많았습니다. 특히 최근에 100년 만에 찾아온 무더위 가운데 3주 만에 돌아오는 주일 메신저로서의 부담감과 더 늘어난 사명의 십자가를 지며 힘들어 하고 있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치과의 에어컨이 불볕 더위에 과부하가 걸려 성능이 저하되더니 급기야 갑자기 멈춰 버리게 되었습니다. 제 마음가운데는 감사 대신 불평과 불만이 가득하게 되었고 무더위에 감당해야 할 업무들과 사명의 십자가로 인해 완전히 지쳐 주저앉고 싶은 심정이었습니다. 모든 것을 훌 훌 털어 버리고 한적하고 시원한 곳으로 가서 푹 쉬고 싶은 심정뿐이었습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을 묵상하면서 할 일 없이 빈둥거리며 죄만 짓다가 심판 받아 죽을 죄인을 일방적인 은혜로 캠퍼스 포도원으로 불러 주시고 가장 귀한 목자요, 사명인의 삶을 살도록 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깊이 깨닫게 되었습니다. 제가 누구보다도 구원의 은혜와 부르심의 은혜가 분명한 자인데 감사가 사라진 자신을 바라보고 깊이 회개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저의 생명, 시간, 물질, 직업, 가정, 자녀 등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것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쳐라 하는 말씀을 통해 내가 마치 주인인양 바치기를 꺼려하고 불평과 불만을 가졌던 것을 깊이 회개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저의 모든 것 되시는 하나님께 저의 마음과 목숨과 힘을 다하여 경배하고 사랑하기를 원합니다. 제가 이제는 캠퍼스 포도원으로 불러 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여 더욱 더 신바람 나게 사명을 감당하며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 살아가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결론적으로,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 이 말씀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께 바쳐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마음과 목숨과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경배하며 찬양과 감사와 헌신을 드려야 합니다. 포도원의 농부들처럼 자기가 주인인양 하나님의 것을 드리지 않을 때 불행이 시작됨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우리의 마음속에 하나님의 형상이 새겨져 있음을 깨닫고 신앙생활에서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께 바치며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 살아갈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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