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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nday Worship Message
주일예배메시지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8-09-23 (일) 12:27
분 류 마가복음
첨부#1 2018년_마가복음26강-1(최동진).hwp (64KB) (Down: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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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마가복음 제26강] 아버지 원대로 하옵소서

 2018년 마가복음 제26강                                                                   최동진

아버지 원대로 하옵소서

말씀 / 마가복음 14:27-72
요절 / 마가복음 14:36 “이르시되 아빠 아버지여 아버지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오니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

오늘 말씀은 예수님의 생애 중에서 가장 고통스럽고 약한 모습을 보여주는 순간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십자가를 앞두고 예수님은 육신을 입고 계신 한 인간으로서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될 지경에 이르시기까지 고뇌하셨습니다. 예수님도 십자가의 잔을 피하고 싶으셨지만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드리고자 하는 소원으로 간절히 기도하셨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모든 슬픔과 절망과 연약함을 극복하시고 승리하셨습니다. 예수님의 기도를 통해 연약한 육신을 입고 있는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드리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잘 배울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I.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27-42)
  은혜로운 성찬식을 마치시고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감람산으로 가셨습니다. 이때 예수님은 충격적인 말씀을 하셨습니다. 27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다 나를 버리리라 이는 기록된 바 내가 목자를 치리니 양들이 흩어지리라 하였음이니라.” 양들은 목자만 있으면 행복합니다. 아무 걱정 없이 마음껏 꼴을 먹으며 은혜의 살이 올라 포동포동해집니다. 그러나 목자가 없으면 부모 없는 고아와 같이 슬프고 외롭고 불안하며 방향을 잃고 헤매게 됩니다. 목자되신 예수님이 체포당하면 양들은 자연히 흩어지게 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위기의 순간에 모두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갈 것을 아셨습니다. 자식처럼 돌본 양이 도망갈 것을 안다는 것은 목자로서 가장 고통스러운 일입니다. 그럴 때 그 양에 대한 애정이 사라지고 소망을 끊어버리기 쉽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제자들이 도망갈 것을 아시면서도 그들에 대한 소망을 끊지 않으셨습니다. 제자들의 연약함을 이해하시고 변함없이 사랑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이 도망가더라도 근본적으로 실족하지 않고 일어설 수 있도록 부활의 소망과 함께 분명한 방향을 주셨습니다. 28절을 보십시오. “그러나 내가 살아난 후에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리라.” 이 말씀은 제자들에게 큰 힘과 위로가 되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의 죽으심으로 제자들은 잠시 큰 슬픔과 절망에 빠지지만 곧 예수님의 부활하심으로 그들은 큰 기쁨과 희망이 넘치는 새로운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겸손하게 자신들의 연약함을 인정하고 실족하지 않도록 기도로 준비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다 버릴지라도 나는 그리하지 않겠나이다(29)” 자신 있게 말했습니다. 야고보나 요한이나 다른 제자들은 다 도망할지라도 자신은 절대 도망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이는 베드로의 진심이었습니다. 베드로에게는 예수님께 대한 남다른 충성심이 있었습니다. 또 누구보다도 예수님을 사랑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충성심은 하나님을 믿는 믿음에 기초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의지와 인간적인 의리에 기초한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베드로의 의리와 충성심을 인정해 주시기는커녕 그에게 더 충격적인 예언을 하셨습니다. “오늘 이 밤 닭이 두 번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30).” 베드로가 예수님을 부인하는 것이 그렇게 먼 훗날의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바로 오늘 이 밤, 몇 시간 안에 세 번 부인한다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자신을 아는 것보다 예수님이 베드로를 더 잘 아셨습니다. 후에 베드로는 예수님의 이 말씀 때문에 돌이킬 수 있었습니다(14:72). 그러나 베드로는 여전히 예수님의 말씀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그는 더욱 힘주어 예수님께 대한 충성을 다짐했습니다.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 그러자 모든 제자도 이와 같이 말했습니다.(31) 베드로는 자신의 충성심을 안 믿어주는 예수님께 대해 매우 섭섭했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말씀보다 자신을 더 믿었습니다. 그는 사탄의 역사가 얼마나 강한지 영적인 세계를 몰랐습니다. 그는 기도하지 않았고 결국 철저히 실패함으로 그의 인생에 큰 오점을 남기게 되었습니다.
  십자가 죽음을 앞두고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겟세마네라 하는 곳에 이르렀습니다. ‘겟세마네’란 올리브를 으깨어 기름을 짜는 틀이란 뜻입니다. 예수님은 이곳에서 자신의 몸을 으깨어서 기름을 짜듯이 피땀 흘리며 간절히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혈과 육의 싸움을 싸우지 아니하시고 기도로 영적인 싸움을 싸우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내가 기도할 동안에 너희는 여기 앉아 있으라 말씀하시고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만 데리고 가셨습니다. 이때 예수님은 심히 놀라고 슬퍼하시며 세 제자들에게 기도 부탁을 하셨습니다. 34절을 보십시오. “말씀하시되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깨어 있으라 하시고” 예수님은 이때까지 이렇게 연약한 모습을 보이신 적이 없었습니다. 광풍이 휘몰아치는 중에도 배에서 편안하게 주무시고, 살기등등한 종교지도자들 앞에서도 조금도 놀라거나 두려워하지 않으시고 영적 권위로 당당하게 맞서 싸우셨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평소 예수님답지 않게 왜 이렇게 놀라고 슬퍼하시는 것입니까? 예수님의 죽음은 보통 사람의 죽음과는 차원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보통 사람의 죽음은 자신의 죄로 인한 개인적인 죽음이지만 예수님의 죽음은 인류의 모든 죄를 담당하시는 대속의 죽음입니다. 예수님은 죽음이 가져다주는 육체적 고통을 두려워하신 것이 아니라 인류가 지은 모든 죄의 무게에 짓눌리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인류가 지은 모든 죄로 말미암아 대신 저주 받으시고 십자가에 높이 달려 만민의 비방의 표적이 되실 뿐만 아니라 일시적으로나마 하나님께로 부터도 버림을 받으셔야 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당해야 할 모든 육체적, 정신적, 영적 고통을 감당코자 하실 때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될 지경에까지 이르신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왜 세 제자들에게 자신의 연약한 모습을 보여 주시며 기도 부탁 하신 것입니까? 이는 그들이 깨어서 기도함으로 예수님의 고난에 동참하기를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비록 영적으로 어리지만 기도의 동역자로 삼으시고 기도 부탁을 하셨습니다. 그러나 마지막 순간에는 단독자로 나아가 하나님께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의 기도제목이 무엇입니까? 35,36절을 보십시오. “조금 나아가사 땅에 엎드리어 될 수 있는 대로 이때가 자기에게서 지나가기를 구하여 이르시되 아빠 아버지여 아버지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오니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 예수님은 조금 나아가사 땅에 엎드리어 기도하셨습니다. 땅에 엎드렸다는 것은 하나님께 대한 복종과 겸허한 자세를 나타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엎드려 필사적으로 기도의 싸움을 싸우기 시작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셨습니다. 이는 하나님께 대한 예수님의 깊은 사랑과 신뢰를 나타냅니다. 예수님은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된 지경에 이르렀는데도 하나님의 사랑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어린 아이가 부모를 사랑하고 신뢰하듯, 하나님 아버지를 절대적으로 사랑하고 신뢰하셨습니다. ‘이 때’란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셔야 하는 때이고 ‘잔’은 십자가의 고통과 죽음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할 수만 있으면 십자가를 지고 싶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기 때문에 십자가의 쓴 잔을 마시지 않고 인류 구속 역사를 이루어 주시기를 간구했습니다. 이런 예수님의 모습을 보면 베드로보다 더 연약해 보입니다. 그러나 이는 십자가를 회피하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고통스러운 심정을 토로하는 것입니다. 이는 육신을 입고 계신 예수님의 솔직한 마음의 소원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마음의 번민과 고통을 하나님께 진실되게 아뢰었습니다. 이처럼 기도는 솔직하고 진실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이미 우리의 마음을 다 알고 계시기 때문에 센 척 할 필요가 없습니다. 마음의 힘든 상태를 그대로 진실되게 고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도와주실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소원을 아뢰는데서 한 걸음 더 나아가셨습니다.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예수님은 자기의 소원보다 하나님의 뜻을 더 앞세우셨습니다. 자기를 기쁘게 하기보다 적극적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시고자 간절히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적극적으로 감당하기 위해 몸부림치며 기도하셨습니다. 겟세마네 기도는 하나님의 뜻에 자신의 뜻을 쳐 복종시키는 영적 투쟁이었습니다. 이것이 성숙한 진짜 기도입니다. 기도란 자기 생각, 자기 고집, 자기의 뜻을 관철시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자기를 복종시키는 것입니다. 인간은 연약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도우심 없이 나의 힘만으로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드릴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나님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아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에 순종할 수 있도록 하나님의 도우심을 청하신 것입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기 위해서는 하나님께서 도와주시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그런데 대게 사람들은 하나님의 뜻보다 자기의 생각과 뜻을 더 앞세웁니다. 그래서 “아버지의 원대로 마옵시고 내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라고 기도합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원하시는 뜻이 무엇인가를 찾고 순종하고자 하기보다 내가 하나님께 바라는 것만 일방적으로 청구합니다. 사람들은 자기가 원하는 소원이 이루어져야 행복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겉으로는 믿음으로 사는 것 같지만 내면 깊은 곳에서는 하나님의 소원보다 자기 소원에 더 관심이 많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자기의 원대로만 하고자 할 때 영적 세계의 비밀을 알 수 없고 또 영적으로 성장할 수도 없습니다. 자기 생각과 뜻을 부인하고 적극적으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할 때 놀라운 영적 세계의 비밀을 깨닫게 되고, 하나님이 쓰실만한 영적인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겟세마네 기도는 예수님의 순종의 삶의 결정체라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본래 그 본체가 하나님으로서 모든 영광과 찬양과 경배를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분이십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버리시고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이루어드리고자 비천한 육신의 몸을 입고 이 땅에 낮아져 오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에 죽으시기까지 철저히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 순종하시기 위해 말할 수 없는 고통을 겪으셨습니다. 이는 히브리서 5:7-9절에 잘 나타나있습니다. “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의 경건하심으로 말미암아 들으심을 얻었느니라. 그가 아들이시면서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온전하게 되셨은즉 자기에게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 예수님도 고난을 통해 순종을 배우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겟세마네 기도의 싸움에서 승리하셨기 때문에 하나님의 구원 역사가 완성될 수 있었습니다. 우리도 예수님의 겟세마네 기도를 배워서 날마다 아버지 하나님께 나아가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기까지 진실되게 기도함으로 하나님께서 쓰실만한 영적인 사람으로 빚어지기를 기도합니다.
  37절을 보십시오. 예수님께서 기도하신 후 제자들에게 돌아오사 제자들이 자는 것을 보셨습니다. 그리고 “시몬아 자느냐? 네가 한 시간도 깨어 있을 수 없더냐?” 안타까워하셨습니다. 사실 한 시간씩 깨어서 기도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닙니다. 그런데 그 어느 때보다도 간절한 기도가 필요한 이 중요한 시점에 제자들이 왜 자고 있는 것입니까? 예루살렘 입성 이후 전과 달리 예수님께서 자꾸 십자가에 대해 말씀하심으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고 슬픔에 짓눌렸던 것 같습니다. 스트레스가 심하면 피곤해져서 영적 투쟁을 하기가 힘들어집니다. 기도를 하려 하면 헛생각이 많이 들어오고 잠이 쏟아져서 기도에 집중하기가 힘이 들고 잠으로 현실을 도피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기도하지 않을 때 결국 실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로를 깨우시며 말씀하셨습니다.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38)." 이 말씀은 우리가 어떤 상황 가운데에서도 깨어 기도해야 하는 절대적인 이유에 대해 가르쳐줍니다. 첫째로, 사탄의 시험에 들지 않기 위함입니다. 사탄은 우리보다 강하고 간교하기 때문에 우리의 힘과 지혜로는 이길 수 없습니다. 깨어 기도하지 않으면 자기도 모르게 영적 분별력을 잃고 사탄의 시험에 들게 됩니다. 둘째로, 육신이 약하기 때문입니다. “마음은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이는 육신이 약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합리화 하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육신이 약하기 때문에 더욱 깨어 기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강하면 기도할 필요가 없습니다. 자신의 연약함을 깊이 인정하고 순간순간 기도로 주님을 의지하며 문제가 생길 때마다 겸손히 주님께 도움을 구해야 합니다. 깨어 기도할 때 우리 마음속에 끊임없이 일어나는 인간적인 생각과 죄의 소욕을 물리칠 수 있습니다. 깨어 기도할 때 하나님의 뜻을 거스리는 반발심과 불순종을 물리치고 하나님의 뜻에 기쁨으로 순종할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가 깨어 기도함으로 연약함을 이기고 십자가를 능히 지는 능력 있는 하나님의 종으로 빚어지기를 기도합니다.
  예수님은 동일한 기도제목을 가지고 세 번이나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마음으로 깊이 영접하고 앞으로 모든 십자가의 고난을 감당할 영적인 힘을 덧입으시기까지 반복해서 기도하셨습니다. 누가복음 22:44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얼마나 힘쓰고 애써 간절히 기도하셨는지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 같이 될 정도였습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기도하심으로 모든 슬픔과 연약한 생각을 다 물리치시고 적극적으로 십자가를 질 힘을 얻으셨습니다. 처음 기도를 시작하실 때에는 예수님의 마음에 번민과 고통과 슬픔과 두려움으로 죽게 될 지경이셨습니다. 그러나 기도하신 후의 예수님의 모습은 확신과 용기와 담대함으로 충만해졌습니다. 42절을 보십시오. “일어나라 함께 가자 보라 나를 파는 자가 가까이 왔느니라.”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시기 위해 담대히 일어나셨습니다. 예수님은 기도의 투쟁에서 이미 승리하셨습니다.

II. 내가 그니라(43-72)
  43절을 보십시오. 예수님께서 말씀하실 때 곧 열 둘 중의 하나인 가룟 유다가 공회에서 파송된 무장한 군인들을 데리고 겟세마네 동산으로 왔습니다. 유다는 이미 약속한 신호대로 예수님께 나아와 랍비여 하고 입을 맞추었습니다. 입을 맞추는 것은 사랑과 신뢰를 의미합니다. 그러나 유다의 입맞춤은 배반의 키스였습니다. 이 때 곁에 섰는 자 중 한 사람이 검을 빼어 대제사장의 종의 귀를 쳐서 떨어뜨렸습니다. 요한복음에서는 베드로라고 그의 실명을 밝히고 있습니다. 베드로는 이렇게 함으로 예수님께 대한 충성을 표시하였습니다. 그러나 인간적인 충성심은 예수님께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했습니다. 또 그가 검을 빼어 혈기로 대항한 것은 용감해 보이지만 사실은 그의 내면의 두려움에서 비롯된 것이었습니다. 그가 깨어 기도하지 않았을 때 내면의 두려움을 이길 수 없었고 감정적이 되어 나름대로 행했습니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드릴 수 없습니다. 마태복음 26:52절에서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네 칼을 도로 칼집에 꽂으라 칼을 가지는 자는 다 칼로 망하느니라”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검을 사용하지 않으신 것은 검을 사용할 능력이 없기 때문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드리기 위해 크신 능력을 포기하신 것입니다.
  48,49절을 보십시오. 예수님은 자신을 체포하러 온 자들에게 너희가 강도를 잡는 것 같이 검과 몽치를 가지고 나를 잡으러 왔느냐고 책망하셨습니다. 그리고 이는 성경을 이루려 하심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강도와 같이 잡히시고 강도 대신 형을 받으시고 강도들 사이에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습니다. 예수님은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기 위해 범죄자 중 하나로 헤아림을 받으신 것입니다.(사53:12)  예수님은 체포당하실 때에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실 때에나 항상 모든 것을 성경을 기초로 생각하고 받아들이셨습니다. 예수님은 죽는 순간까지 철저하게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셨습니다. 반면 제자들은 위기의 순간에 모두 다 도망가고 말았습니다. 51,52절에 보면 한 청년이 벗은 몸에 베 홑이불을 두르고 예수님을 따라가다가 무리에게 잡히게 되자 홑이불을 버리고 벗은 몸으로 도망하는 장면이 묘사되어 있습니다. 이 청년은 저자 마가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는 이런 방법으로 자신이 예수님이 체포당하신 것을 본 목격자임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53절을 보십시오. 그들이 예수님을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다 모여 있는 곳으로 끌고 갔습니다. 이 때 베드로는 도망가다가 자신이 큰소리친 것이 생각나서 되돌아왔습니다. 그러나 두려움 때문에 멀찍이 예수님을 좇았습니다. 그러다가 결국 그는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하는 치명적인 오점을 남기고 말았습니다. 예수님을 따르기는 하지만 일정한 간격을 두고 멀찍이 따르는 자들도 있습니다. 이런 자들은 주님께 헌신하면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릴 것 같은 두려움 때문에 따르는 것도 아니고 안 따르는 것도 아닌 어정쩡한 상태로 따라갑니다. 그러나 이런 자는 결국 사탄의 시험에 들게 되고 모든 것을 잃게 됩니다. 우리는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가까이서 확실하게 좇아가야 합니다. 공회는 증거도 없이 예수님을 불법으로 체포한 후 야간에 불법 집회를 열어 예수님을 심문하였습니다. 그들은 이미 예수님을 죽이기로 결정해 놓고 증거를 찾았지만 얻지 못했습니다. 거짓 증거자가 많이 있었지만 이들의 거짓 증거조차 서로 합하지 못하였습니다. 예수님은 털 깎는 자 앞에서 잠잠한 양과 같이 입을 열지 않으셨습니다. 그러자 대제사장이 물었습니다. “네가 찬송 받을 자의 아들 그리스도냐?(61b)” 예수님은 이 질문의 의미를 잘 알고 계셨습니다. 굳이 부인하지 않더라도 계속해서 잠잠하게 묵비권을 행사하실 수도 있으셨습니다. 그러면 십자가의 죽으심을 피할 수도 있으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러지 않으셨습니다. 62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그니라 인자가 권능자의 우편에 앉은 것과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너희가 보리라 하시니” 예수님은 자신이 그리스도이심을 분명히 밝히셨습니다. 나아가 부활승천 하셔서 하나님의 영광의 보좌 우편에 앉으시고 장차 심판의 주로서 재림하실 것까지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심문을 받는 자리에서도 위축되지 않으시고 그리스도요 심판주로서 당당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조금 전만 해도 놀라며 슬퍼하며 두려워하던 예수님께서 이렇게 담대해질 수 있었던 것은 겟세마네 기도에서 승리하시고 이미 잔을 마시고자 결단하셨기 때문입니다. 기도에서 승리하셨을 때 어떤 상황에서도 분명하게 진리를 증거할 수 있으셨습니다. 대제사장은 옷을 찢으며 예수님을 신성모독 죄로 사형을 언도하였습니다. 그리고 얼굴에 침을 밭고 손바닥으로 치며 조롱했습니다.
  반면 베드로는 어떠했습니까? 그는 담대하게 대제사장의 집 뜰 안까지 들어갔지만 속으로는 벌벌 떨고 있었습니다. 결국 그는 군대의 협박이나 무자비한 고문에 의해 예수님을 부인한 것이 아니라 한 비천한 여종 앞에서 힘없이 무너졌습니다. 마지막에는 저주하며 맹세까지 하면서 예수님을 모른다고 하였습니다. 베드로가 세 번 예수님을 부인했을 때 닭이 두 번 울었습니다. 모든 것이 예수님의 말씀대로 되었습니다. 순간 베드로는 예수님의 말씀이 생각나서 통곡하며 울었습니다. 베드로가 이렇게 실패한 이유는 자기를 믿고 기도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런 베드로라도 진실되게 회개했을 때 주님은 그를 버리지 않으시고 다시 제자로 세워주셨습니다. 그는 “돌이킨 후에 다른 형제를 굳게 하라(눅22:32)” 하신 예수님의 말씀대로 다른 연약한 자를 일으켜 세우는 충성스러운 하나님의 종으로 변화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저를 학창시절 일방적인 은혜로 구원하여 주시고 예수님의 제자로 불러주셨습니다. 어떤 십자가든지 주어진 십자가는 최선을 다해 감당하고자 했고 하나님께서 부족한 저에게 때마다 십자가를 감당할 힘을 주심으로 여러 모양으로 역사에 쓰임 받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을 준비하면서 자신의 연약함을 솔직히 인정하고 하나님께 도우심을 구하기보다 다분히 자기 의와 성실에 기초한 신앙생활을 했음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팀장 직분도 계승이 되고 나니 이제는 조금 쉬면서 여유 있게 살고 싶은 생각이 들어왔습니다. 새벽기도를 할 때에도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하기보다 의무감으로 형식적으로 기도할 때가 많이 있었습니다. 그럴 때 과거에 비하면 십자가가 많이 줄어들었는데도 늘 감당해오던 십자가들이 무겁게 느껴졌습니다. 본성을 좇아 자기의 원하는 대로 살면 스트레스도 안 받고 편하고 재미있게 살 수 있을 것 같지만 아무런 열매도 맺을 수 없습니다. 그렇게 되면 지금까지 젊음을 바쳐 주와 복음 역사에 투자한 모든 수고가 무의미하게 됩니다. 지금 캠퍼스 영적 환경은 매우 힘든 가운데에 있습니다. 사회적으로도 여러 가지 문제로 도전을 받으면서 과거에 경험해 보지 못한 어려움들을 만나고 있습니다. 지금은 어느 때보다도 깨어서 기도할 때임을 영접합니다. 하나님은 이런 시대 가운데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통해서라도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나가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제가 무엇보다도 기도로 예수님의 고난에 동참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리고 이는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의 영광에 참예하는 길입니다. 제가 예수님의 겟세마네 기도를 배워서 편안하게 살고자 하는 죄악된 본성을 회개하고 자기를 부인하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삶을 살기를 기도합니다. 제가 연약한 저의 본성으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지만 모든 것이 가능하신 하나님께 나아가 간절히 기도함으로 성령의 도우심으로 능력과 믿음을 덧입고 맡기신 십자가를 적극적으로 감당하며 사명에 충성하는 삶 살기를 기도합니다.

  결론적으로, 예수님은 인류구원을 위한 십자가를 앞에 두고 간절히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생애는 기도로 시작하여 기도로 끝났습니다. 우리가 날마다 예수님의 십자가 앞에 나아가 진실되게 회개함으로 사죄의 은혜를 덧입고 늘 주님과 동행하는 삶 살기를 기도합니다. 자신의 연약함을 인정하고 깨어서 기도함으로 성령의 도우심으로 사탄의 공격을 능히 물리치기를 기도합니다. 나아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함으로 이 시대 하나님께서 이루시는 생명 구원 역사에 쓰임 받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을 살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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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1 기타 [2019년 신년말씀 제2강] 성전을 건축하라 관리자 2019-01-06 715
570 요한복음 [2019년 신년말씀 제1강]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 관리자 2018-12-30 803
569 누가복음 [2018년 성탄말씀 제3강]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느니라 관리자 2018-12-23 732
568 누가복음 [2018년 성탄말씀 제2강] 구원의 뿔 돋는 해되신 예수님 관리자 2018-12-16 1054
567 누가복음 [2018년 성탄말씀 제1강] 영원한 왕 예수님 관리자 2018-12-09 794
566 열왕기상 [2018년 열왕기상 제8강] 바알에게 도전한 엘리야 관리자 2018-12-02 1116
565 열왕기상 [2018년 열왕기상 제7강] 여호와 보시기에 관리자 2018-11-25 841
564 시편 [2018년 추수감사예배] 주의 은택을 감사하나이다 관리자 2018-11-18 861
563 열왕기상 [2018년 열왕기상 제6강] 금송아지를 만든 여로보암 관리자 2018-11-11 929
562 열왕기상 [2018년 열왕기상 제5강] 마음을 돌려 하나님을 떠난 솔로몬 관리자 2018-11-04 840
561 열왕기상 [2018년 열왕기상 제4강] 이곳을 향하여 기도할 때에 관리자 2018-10-28 818
560 열왕기상 [2018년 열왕기상 제3강] 성전을 건축한 솔로몬 관리자 2018-10-21 1061
559 열왕기상 [2018년 열왕기상 제2강] 지혜를 구한 솔로몬 관리자 2018-10-14 8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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