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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nday Worship Message
주일예배메시지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9-07-14 (일) 12:40
분 류 창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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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창세기 제18강] 이삭의 축복을 받은 야곱

  2019년 창세기 제18강                                                          최동진

이삭의 축복을 받은 야곱

말씀/ 창세기 27:1-45
요절/ 창세기 27:29 “만민이 너를 섬기고 열국이 네게 굴복하리니 네가 형제들의 주가 되고 네 어머니의 아들들이 네게 굴복하며 너를 저주하는 자는 저주를 받고 너를 축복하는 자는 복을 받기를 원하노라”

  오늘 말씀은 이삭이 받은 축복이 야곱에게 넘어가는 과정에 대해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이삭의 가족들의 허물과 죄가 그대로 드러나고 있습니다. 자칫하면 하나님의 계획을 그르칠 수도 있었지만 하나님께서 적극적으로 개입하셔서 이삭의 허물을 감당해 주심으로 축복의 물줄기가 하나님의 계획대로 이어질 수 있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 쓰임 받기 위해 가져야 할 삶의 자세와 믿음의 가치관을 배울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역사의 주관자 하나님을 깊이 영접하고 우리에게 주신 신령한 복을 잘 감당하며 후손들에게 하나님의 축복을 계승하는, 복된 삶을 살기를 기도합니다.

  1a절을 보십시오. “이삭이 나이가 많아 눈이 어두워 잘 보지 못하더니” 이 말은 이삭이 나이가 많아져 육신의 눈 뿐 만 아니라 영적인 눈도 어두워져서 분별력을 잃어가고 있음을 상징합니다. 이는 그의 인생을 마무리하는 계승역사를 앞두고 그대로 나타났습니다. 26장 마지막 부분에서 에서는 헷 족속의 딸 두 명을 아내로 맞이하여 이삭과 리브가의 마음에 근심을 안겨주었으며 계승자로서 합당치 않음이 드러났습니다. 그런데 이삭은 앞으로의 삶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고 맏아들 에서를 불러 축복하고자 했습니다. 당시 축복의식은 가문의 모든 사람을 모아놓고 공개적으로 행해지는 것이 보통이었는데 리브가도 모르게 은밀하게 행하려 한 것을 보면 에서의 이런 점 때문에 공개적인 검증과정을 통과하지 못할 것을 이삭도 알았던 것 같습니다. 3,4절을 보십시오. “그런즉 네 기구 곧 화살통과 활을 가지고 들에 가서 나를 위하여 사냥하여 내가 즐기는 별미를 만들어 내게로 가져와서 먹게 하여 내가 죽기 전에 내 마음껏 네게 축복하게 하라.” 평소 즐겨먹던 에서가 만들어준 별미를 먹고 에서를 축복하려 한 것은 하나님의 주권보다 이삭의 입맛에 맞는 사람을 후계자로 세우려 했다는 것을 말합니다. 에서가 어떤 면에서 이삭의 입맛에 맞는 사람이었습니까? 대게 사람들은 자기가 가지지 못한 장점을 가진 사람을 부러워하고 좋아합니다. 이삭은 조용하고 사색을 좋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아내로 말미암아 죽을까봐 아내를 누이라 속일 정도로 두려움 많고 소심하였으며 반복해서 우물을 빼앗길 때에도 저항 한 번 안하고 그대로 양보할 정도로 온유한 사람이었습니다. 반면 에서는 야성적인 외모에다 사냥도 잘하였고, 이방 족속들과도 잘 지낼 정도로 사교적이었기 때문에 이삭이 볼 때 야곱보다는 믿음직스럽고 최소한 자기처럼 당하고 살지는 않을 것으로 생각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는 하나님의 뜻이 아니었습니다. 이삭의 잘못된 판단으로 인해 하나님의 계획이 틀어질 위기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삭이 에서에게 하는 이 말을 리브가가 우연히 듣게 되었습니다. 리브가는 아이들이 자기 뱃속에서 싸울 때부터 이미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뜻이 야곱에게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리브가는 하나님의 축복이 잘못된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을 그냥 보고만 있을 수 없었습니다. 리브가는 에서가 사냥하러 들로 나갔을 때 야곱을 불러 현재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알려주었습니다. 그리고 야곱이 할 일에 대해 말해주었습니다. 8-10절을 보십시오. “그런즉 내 아들아 내 말을 따라 내가 네게 명하는 대로 염소 떼에 가서 거기서 좋은 염소 새끼 두 마리를 내게로 가져오면 내가 그것으로 네 아버지를 위하여 그가 즐기시는 별미를 만들리니 네가 그것을 네 아버지께 가져다 드려서 그가 죽기 전에 네게 축복하기 위하여 잡수시게 하라.” 야곱에게는 드디어 자기가 그토록 바라던 꿈을 이루기 위한 마지막 퍼즐을 완성할 기회가 온 것입니다. 야곱이 이 순간을 얼마나 기다려 왔습니까? 그런데 한편으로는 두려운 생각이 들었습니다. 형 에서는 털이 많은 사람이고 야곱은 매끈매끈한 사람이기 때문에 아버지가 만져 보는 순간 금방 탄로가 날 것이 뻔했기 때문입니다. 괜한 욕심을 부리다 축복은 고사하고 저주를 받지나 않을까 두려웠습니다. 이는 팩트에 기초한 합리적인 두려움이었습니다. 그러나 리브가는 흔들리거나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여자는 약하지만 엄마는 강했습니다. 13절을 보십시오. “어머니가 그에게 이르되 내 아들아 너의 저주는 내게로 돌리리니 내 말만 따르고 가서 가져오라.” 리브가가 왜 자신이 저주를 대신 받을 각오를 하면서까지 이런 일을 꾸민 것입니까? 이는 단순히 엄마로서 자기가 더 사랑하는 야곱이 축복을 받도록 하기 위한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이는 자식의 성공을 위해 물불 안 가리고 어떤 희생도 마다하지 않는 요즘 엄마들의 치맛바람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입니다. 리브가는 이삭의 축복이 단순히 아버지로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대리자로서 하는 것임을 잘 알았습니다. 리브가는 야곱을 쓰시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분명히 알고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드리고자 하는 순수한 믿음의 동기에서 한 일이었습니다. ‘너의 저주는 내게로 돌리리라’는 이 말은 두려움 때문에 주저하며 포기하려 하던 야곱에게 큰 용기를 불어넣어 주었습니다. 리브가의 도움이 아니었다면 야곱도 하나님의 축복의 자리에 설 수 없었을 것입니다. 한 사람이 축복의 자리에 서는 것은 혼자만의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축복의 자리에 서기까지는 리브가와 같은 숨은 조력자들의 도움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두려울 때 힘과 용기를 주고, 절망 가운데 있을 때 희망을 심어주고, 지쳐 넘어질 때 손잡아 일으켜 주고, 외로울 때 함께 동행해 주는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나의 힘든 소리를 다 들어주고, 때로는 내 대신 욕도 먹고, 저주까지 받을 각오로 도와주는 중보자가 있어야 합니다. 리브가와 같은 부모, 리브가와 같은 목자, 리브가와 같은 동역자가 있을 때 연약한 한 사람이 일어나 감히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자리에 서게 됩니다. 연약하고 허물 많은 우리가 구원 받고 하나님의 축복의 자리에 서게 된 것도 우리가 믿음의 길을 갈 수 있도록 격려하고 기도하며 섬겨준 주님의 종들의 도움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근본적으로는 죄로 인해 심판과 저주의 자리에 설 수 밖에 없던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모든 저주를 대신 받으시고 돌아가신 예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우리가 구원의 은혜와 축복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엄마 리브가의 말을 통해 용기를 얻은 야곱은 곧바로 실행에 옮겼습니다. 그는 좋은 염소 새끼를 잡아 리브가에게 갖다 주었고 리브가는 야곱을 위해 이삭에게 줄 별미를 만들었습니다. 에서의 좋은 의복을 입히고 손과 목의 매끈매끈한 곳에 염소 새끼의 가죽을 입혀서 에서처럼 완벽하게 변장시켰습니다. 그리고 자기가 만든 별미와 떡을 야곱의 손에 들려 아버지 이삭의 방으로 보냈습니다. 18절을 보십시오. 야곱은 떨리는 가슴을 누르며 용기를 내어 “내 아버지여” 불렀습니다. 그러자 이삭은 “내가 여기 있노라 내 아들아, 네가 누구냐?” 물었습니다. 야곱은 “나는 아버지의 맏아들 에서로소이다. 아버지께서 내게 명하신 대로 내가 하였사오니 원하건대 일어나 앉아서 내가 사냥한 고기를 잡수시고 아버지 마음껏 내게 축복하소서” 대답하였습니다.(19) 하지만 성대모사가 서툴렀는지 뭔가 이상한 느낌을 받은 이삭은 바로 검증 절차에 들어갔습니다. “내 아들아 네가 어떻게 이같이 속히 잡았느냐?”(20a) 예상치 못한 질문에 야곱은 순발력을 발휘하여 재치 있게 대답했습니다. “아버지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나로 순조롭게 만나게 하셨음이니이다(20b).” 그래도 의심이 해소되지 않은 이삭은 2단계 본인인증 절차에 들어갔습니다. “내 아들아 가까이 오라 네가 과연 내 아들 에서인지 아닌지 내가 너를 만져보려 하노라.(21)” 실제로 만져보니 털이 많은 것이 에서가 분명했습니다. 야곱은 죽었다 깨어나도 이런 피부를 가질 수는 없었습니다. 이삭은 설마 리브가와 야곱이 합심하여 자기를 속일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음성은 야곱의 음성이나 손은 에서의 손이로다(22)” 야곱은 무사히 검증을 통과하였습니다. 이삭은 더 이상 의심하지 않고 사냥한 고기를 가져와서 먹고 마음껏 축복하고자 하였습니다. 결국 하나님은 여러 번의 확인 절차를 거쳐 에서를 축복하고자 했던 이삭의 의도와는 다르게 하나님의 뜻을 따라 야곱이 축복을 받도록 이끌어주셨습니다. 잠언 기자는 말씀합니다.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잠 16:9)” 하나님은 하나님께서 복 주고자 하는 사람에게 복주시고 하나님께서 세우고자 하는 사람을 세우셔서 선하고 거룩하신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나가시는 역사의 주관자가 되십니다.
  이삭의 축복의 내용이 무엇입니까? 28,29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은 하늘의 이슬과 땅의 기름짐이며 풍성한 곡식과 포도주를 네게 주시기를 원하노라. 만민이 너를 섬기고 열국이 네게 굴복하리니 네가 형제들의 주가 되고 네 어머니의 아들들이 네게 굴복하며 너를 저주하는 자는 저주를 받고 너를 축복하는 자는 복을 받기를 원하노라.” 이삭은 자가가 만난 하나님, 자기가 받은 은혜에 기초하여 축복하였습니다. ‘하늘의 이슬’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밤에 내려와서 곡식에게 수분을 공급함으로 메마르지 않게 합니다. ‘땅의 기름짐’은 역시 눈에 보이지 않지만 열매의 풍성함을 좌우합니다. 이처럼 이삭의 하나님은 메마른 세상에서 이삭을 풍성하게 하셨습니다. 기근 가운데 백배의 수확을 거두게 하셨고, 주변 사람들이 시기할 만큼 양과 소가 떼를 이루어 심히 많게 하셨습니다. 우물을 빼앗기고 그 땅에서 쫓겨났을 때에도 가는 곳마다 우물을 얻게 하심으로 이방인들도 이삭이 하나님의 복을 받은 자임을 인정할 정도로 풍성하게 하셨습니다. 사람들은 대부분 자녀들이 자신보다 사회적, 경제적으로 더 나은 삶을 살기를 희망합니다. 그래서 지식과 물질을 물려주기 위해 애를 씁니다. 그러나 이런 눈에 보이는 것들이 행복한 삶을 보장해 주지는 않습니다. 세상에서 아무리 성공적인 삶을 살았다 하더라도 하나님의 축복의 물줄기에서 벗어나 있다면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자녀들이 진정으로 축복된 삶을 살기를 원한다면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만한 믿음을 갖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믿음의 조상들을 통해 내게 주신 축복을 잘 보존하여 영육간의 자녀들에게 그대로 계승되도록 해야 합니다. 축복의 물줄기가 이어져 내려갈 때 진정으로 복된 삶을 살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삭은 자기와 함께 하시고 자기의 인생길에서 축복하신 하나님이 야곱의 인생길에도 복을 주시도록 축복하였습니다. 29절을 다시 한 번 보십시오. “만민이 너를 섬기고 열국이 네게 굴복하리니 네가 형제들의 주가 되고 네 어머니의 아들들이 네게 굴복하며 너를 저주하는 자는 저주를 받고 너를 축복하는 자는 복을 받기를 원하노라.” 이 복은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주셨던 복이요, 이삭이 계승받은 바로 그 복입니다. 야곱은 축복과 무관한 둘째 아들로 태어났지만 하나님의 뜻 가운데 가문을 잇는 후계자요, 동시에 하나님의 구속역사의 계승자가로 세움 받았습니다. 야곱은 이제 하나님의 구속 역사의 물줄기에 주인공으로 우뚝 서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이삭을 통해 일하신 하나님께서는 이제부터 야곱을 통하여 일하실 것입니다. 한마디로 야곱은 하나님의 구속역사에 있어서 축복의 통로가 되었습니다.
  에서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축복을 받은 야곱이 아버지 이삭 앞에서 나가자 곧 에서가 사냥하여 돌아왔습니다. 엄마 뱃속에서 태어날 때에는 형 에서가 간발의 차이로 먼저 나왔는데 이번에는 동생 야곱이 간발의 차이로 형의 발목을 잡고 전세를 역전시켰습니다. 에서가 별미를 만들어 아버지에게로 가지고 가서 축복해달라고 하자 이삭은 깜짝 놀라 물었습니다. “너는 누구냐?” 자신이 아버지의 맏아들 에서라는 말을 들은 이삭은 그제서야 리브가와 야곱에게 자신이 속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야곱에게 한 축복을 취소하거나 번복하지 않았습니다. 에서에게 주고자 하였던 축복이 자기 의지와 상관없이 야곱에게 가는 것을 보고 심히 크게 떨었습니다.(33) 그는 잠시 눈이 어두워져 잘못된 길로 갈 뻔 했지만 자신을 사랑하셔서 실족하지 않도록 다시 발걸음을 인도해주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야곱을 위하여 축복하였으므로 그가 복을 받을 것이라고 말하였습니다. 에서는 아우에게 두 번씩이나 속은 것이 분하고 원통하여 울부짖으며 자기를 위해 남은 복이라도 축복해달라고 호소하였습니다. 과거에 그는 장자의 명분을 팥죽 한 그릇과 바꿔 먹었습니다. 그에게 장자의 명분 따위는 배고픔의 문제 앞에서 무가치해 보였습니다. 그런 그가 이제 와서 왜 이토록 울고불고 하면서 복을 원하는 것일까요? 그도 뒤늦게 진정한 복이 무엇인지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팥죽으로만 사는 것도 아니고, 사냥이나 하면서 인생을 즐기면서 살 수만은 없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일반적인 복은 누구에게나 언제든지 줄 수 있지만 하나님이 주시는 참된 복은 그 복을 받을 그릇이 준비된 자에게만 주어집니다. 이삭은 야곱에게 이미 복을 다 주었기 때문에 에서에게 나눠줄 복이 없다고 분명하게 말했습니다. 히브리서 저자는 그가 그 후에 축복을 이어받으려고 눈물을 흘리며 구하되 버린 바가 되어 회개할 기회를 얻지 못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히12:17) 한 번 잃어버린 축복의 기회는 이후에 아무리 눈물, 콧물 흘리며 회개해도 다시 주어지지 않습니다.
  축복을 빼앗긴 에서는 장차 어떤 인생을 살게 됩니까? 39,40절을 보십시오. “그 아버지 이삭이 그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네 주소는 땅의 기름짐에서 멀고 내리는 하늘 이슬에서 멀 것이며, 너는 칼을 믿고 생활하겠고 네 아우를 섬길 것이며 네가 매임을 벗을 때에는 그 멍에를 네 목에서 떨쳐버리리라 하였더라.” 에서의 삶은 하늘 이슬과 땅의 기름짐과는 거리가 먼 인생을 살게 됩니다. 그가 아무리 열심히 밭을 갈아도 땅이 기름지지 않고 하늘에서 이슬도 내리지 않을 것입니다. 땅과 하늘에서 내리는 풍성함이 없습니다. 이는 궁핍한 삶이라기보다 하나님의 축복에서 멀어진 삶을 의미합니다. 후에 야곱이 돌아올 때 400명의 부하를 거느리고 마중 나가는 것을 보면 에서도 인간적으로는 크게 성공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보다 칼을 믿고 살게 됩니다. 칼을 믿고 산다는 것은 남의 것을 빼앗고 약탈하는 삶을 말합니다. 즉 다른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고 고통스럽게 하는 인생을 살게 됩니다. 이는 인간적으로는 강해보이지만 하나님이 보실 때에 큰 자의 삶은 아닙니다. ‘네 아우를 섬길 것’이란 말씀은 훗날 다윗에 의해 에돔이 정복당함으로 이루어졌습니다.(삼하8:14)
  우리는 여기서 왜 에서는 하나님의 복을 받지 못하고 야곱은 받을 수 있었는가, 하나님의 복을 받는 사람과 받지 못하는 사람의 차이가 무엇인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인간적으로 볼 때 에서는 들판을 누비는 외향적이고 튼튼한 사람이며 화끈하고 자립적이며 지도자의 자질이 있어 보입니다. 사냥 기술도 좋고 야성미가 넘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때그때 현실 문제를 잘 해결해 나가는 유능한 사람이었습니다. 게다가 에서는 효성이 지극하여 늙은 아버지 이삭을 위해 사냥한 고기를 요리해 드리는 자상한 아들이었습니다. 에서는 인간적으로 볼 때 매력있고 흠잡을 데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신앙적으로 볼 때 귀한 장자의 명분을 팥죽 한 그릇에 팔아버릴 정도로 눈에 보이지 않는 귀중한 가치와 의미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사람이었습니다. 당장 배가 고프면 우선은 배고픔을 먼저 해결해야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히브리서 저자는 이런 에서를 한 그릇 음식을 위하여 장자의 명분을 판 망령된 자라고 평가하였습니다.(히12:16) 신앙이 없는 두 이방 여인과 결혼할 정도로 분별력이 없고 육신적인 사람이었습니다. 에서는 ‘지금’, ‘현재’가 중요한 것이고 미래를 보고, 영원을 볼 줄 아는 안목과 가치관이 없었습니다. 반면 야곱은 어떤 사람입니까? 그는 아주 조용한 사람이었고 눈에 잘 띄지도 않았습니다. 인격적으로 완벽한 사람도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그에게는 그런 약점에도 불구하고 장자의 명분과 가치를 귀하게 볼 줄 아는 가치관이 있었습니다. 미래를 위해 현재의 배고픔을 참고 인내하고 손해를 볼 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이삭의 가정은 하나님의 구속역사를 섬기는 가정으로서 이 가정의 장자가 된다는 것은 하나님의 축복의 역사, 구속 역사의 주역이 되는 것이요, 장차 오실 메시야의 조상이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야곱은 이 장자의 권리가 귀한 것을 알고 그것을 어찌하든지 쟁취하고자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이 야곱에게는 이 세상 최고의 가치였고 삶의 목적이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이 주신 명분의 영적인 가치, 하나님께 쓰임 받는 삶의 소중함을 아는 사람이 결국은 하나님의 복을 받게 됩니다. 그런데 아무리 하나님의 축복이 좋아도 리브가와 야곱이 이삭을 속이면서까지 꼭 이렇게 해야만 했는가 하는 의문이 들 수 있습니다. 물론 믿음으로 한다고 모든 행위가 다 용납될 수는 없습니다. 아무리 옳은 일이라 할지라도 때로는 절차상의 이유로 정당성에 문제가 생길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생명의 촌각을 다투는 응급상황에서 절차를 따지다가 골든타임을 놓친다면 오히려 이것이야 말로 비난받을 일입니다. 당시 상황은 응급상황으로서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이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에 비난과 오해를 무릅쓰고 어떤 대가를 지불하더라도 무리하게 일을 추진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도 그런 믿음을 인정하셨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축복을 원하지만 이 축복을 얻기 위한 구체적인 투자나 노력을 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마 11:12).” 천국은 신사적인 방법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천국은 그 가치를 알고 이를 얻고자 침노하듯 달려드는 사람의 것입니다. 야곱만큼이나 그 마음에 천국과 하나님의 축복에 대해 간절한 소원을 가지고 도전하며 침노하는 자가 결국 천국의 축복을 쟁취 할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누리기를 간절히 사모하고 후손들에게 잘 계승해야 할 하나님의 축복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는 우리 모임에도 믿음의 선진들을 통해 많은 믿음의 유산들을 남겨주셨습니다. 아브라함과 같이 말씀에 순종하여 본토 친척 아버지 집을 떠나 세계 선교를 위해 낯선 이방 땅에서 터를 닦고 믿음의 사람 한 명을 키우기 위해 평생 헌신하는 삶을 사는 분들이 계십니다. 또 이 땅에 거주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영적으로 메마른 캠퍼스 땅에서 묵묵히 말씀의 씨를 뿌리며 양들을 섬기시는 분들도 계십니다. 신자로서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캠퍼스에서 또는 직장에서 각종 오해와 손해를 감당하며 묵묵히 자리를 지키며 믿음으로 살고자 투쟁하는 분들도 계십니다. 어렵게 얻은 휴가를 여름수양회를 섬기기 위해 온통 드리며 헌신하는 분들도 계십니다. 이런 분들의 헌신과 양들을 향한 희생과 복음정신은 현실의 유익을 좇아 사는 에서의 가치관으로는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런 분들의 순수하고 절대적인 믿음을 축복하셔서 지금까지 캠퍼스 미션과 세계선교 역사를 이루어오셨습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하나님의 축복을 귀하게 여기고 주와 복음 역사에 헌신하는 종들을 쓰셔서 생명구원 역사를 이루어 나가십니다. 저희가 믿음의 조상들로부터 받은 믿음의 유산들을 귀하게 여기고 잘 간직하며 믿음의 후손들에게도 축복의 물줄기가 흘러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동생 야곱에게 속은 것을 안 형 에서의 반응이 어떠합니까? 41절을 보십시오. “그의 아버지가 야곱에게 축복한 그 축복으로 말미암아 에서가 야곱을 미워하여 심중에 이르기를 아버지를 곡할 때가 가까웠은즉 내가 내 아우 야곱을 죽이리라 하였더니” 에서는 자신이 축복 받지 못한 모든 원인이 동생에게 있다고 보고 죽여 한을 풀고자 하였습니다. 이런 에서의 모습은 가인의 모습과 흡사합니다. 이 사실을 안 리브가는 야곱을 불러 형의 노가 풀리기까지 몇 날 동안 잠시 하란에 있는 외가에 피신해 있도록 방향을 주고 급히 피신을 시켰습니다. 이로 인해 리브가는 사랑하는 둘 째 아들과 이별의 아픔을 겪어야 했습니다. 야곱은 장자의 축복을 받았지만 빈손으로 고향을 떠나 20년 이상을 자신보다 더한 외삼촌 라반 밑에서 고생하며 훈련을 받아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무 자격 없는 저를 일방적인 주권 가운데 택하사 풍성한 은혜를 주시고 하나님의 구속 역사의 물줄기에 서서 쓰임 받는 삶을 살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갈수록 인본주의, 세속주의의 세력이 강해지면서 복음 진리가 훼손되고 영적으로 메말라 가고 있고 이 시대를 바라보면 장차 후손들에게 우리가 누렸던 믿음의 유산을 물려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런 현실만 바라보면 내가 하나님의 역사를 위해 현재 드리고 있는 모든 것들이 무의미하게 느껴집니다. 그럴 때 실속을 챙기며 자기중심적인 신앙생활에 빠지기 쉽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지금도 보이지 않는 가운데 하늘의 이슬 같이 성령의 은혜로 캠퍼스 땅을 적시시고 땅의 기름짐 같이 믿음의 후손들이 역사의 주역으로 자라나 열매로 맺혀지게 하고 계십니다. 시대가 어두울수록 영적인 분별력을 덧입고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목자요 성경선생의 명분을 귀히 여기고 감당하기 위해 애쓰는 삶을 살기를 기도합니다. 한 영혼을 귀하게 여기고 살리기 위해 시간과 물질을 아낌없이 드림으로 하나님이 주신 복을 캠퍼스 양들과 함께 나누며 하나님이 주신 축복을 그대로 계승하는 역사에 쓰임 받기를 기도합니다. 이제 여름 수양회가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수양회 통해 풍성한 복을 내려주시기를 원하십니다. 저희가 야곱처럼 하나님의 축복을 무엇보다도 귀하게 여기고 간절히 사모하는 마음으로 수양회에 참석하여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와 축복을 풍성히 받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상황이 어렵다고 포기하지 말고 이번 수양회가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가 될 수도 있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기도하고 도전함으로 하늘의 축복을 쟁취하기를 기도합니다.

결론적으로, 이삭, 리브가, 야곱 모두 인간적인 허물과 실수가 있었지만 하나님께서 합력하여 선을 이루심으로 하나님의 계획대로 계승역사가 차질 없이 이루어질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야곱과 같이 장자의 명분을 귀하게 여기는 사람을 축복하시고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이루어나가십니다. 우리가 부족하지만 야곱의 영적 소원과 가치관을 잘 배워서 우리에게 주어진 장자의 명분, 캠퍼스 목자의 명분, 성경선생의 명분을 귀하게 여기고 지켜나가기를 기도합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으로 이어지는 축복의 물줄기에 굳게 서서 하나님께서 이루시는 축복의 역사에 귀하게 쓰임 받고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축복의 유산을 후손들에게 그대로 물려주는 복 된 삶을 살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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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2 창세기 [2019년 창세기 제21강] 야곱에서 이스라엘로 관리자 2019-08-11 825
601 창세기 [2019년 창세기 제20강] 야곱에게 열두 아들을 주신 하나님 관리자 2019-08-04 865
600 요한복음 [ 2019년 여름수양회 주제3강]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관리자 2019-07-28 774
599 창세기 [2019년 창세기 제19강] 벧엘의 하나님 관리자 2019-07-21 985
598 창세기 [2019년 창세기 제18강] 이삭의 축복을 받은 야곱 관리자 2019-07-14 1223
597 창세기 [2019년 창세기 제17강] 약속의 땅에 거주한 이삭 관리자 2019-07-07 928
596 창세기 [2019년 창세기 제16강] 이삭의 결혼 관리자 2019-06-30 981
595 창세기 [2019년 창세기 제15강]아브라함을 시험하신 하나님 관리자 2019-06-25 962
594 창세기 [2019년 창세기 제14강] 약속대로 이삭을 주신 하나님 관리자 2019-06-16 929
593 창세기 [2019년 창세기 제13강] 아브라함을 친구 삼으신 하나님 관리자 2019-06-09 910
592 창세기 [2019년 창세기 제12강] 여러 민족의 아버지 아브라함 관리자 2019-06-02 918
591 창세기 [2019년 창세기 제11강] 뭇별을 보여주신 하나님 관리자 2019-05-26 903
590 창세기 [2019년 창세기 제10강] 아브람에게 승리를 주신 하나님 관리자 2019-05-19 897
589 창세기 [2019년 창세기 제9강] 아브람을 부르신 하나님 관리자 2019-05-12 961
588 누가복음 [2019년 부활절 수양회 제2강] 청년아 일어나라 관리자 2019-05-05 10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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