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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nday Worship Message
주일예배메시지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0-06-14 (일) 12:36
분 류 마태복음
첨부#1 2020년_마태복음_제15강-1.hwp (28KB) (Down: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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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마태복음 제15강] 내가 이 일을 할 줄을 믿느냐
2020년 마태복음 제 15 강
말씀 / 마태복음 9:18-38절
요절 / 마태복음 9:28절

내가 이 일을 할 줄을 믿느냐

“예수께서 집에 들어가시매 맹인들이 그에게 나아오거늘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능히 이 일 할 줄을 믿느냐 대답하되 주여 그러하오이다 하니”

오늘 말씀에는 다양한 믿음이 나옵니다. 관리는 죽어버린 딸을 살리실 것을 믿었고, 혈루증 앓는 여인은 옷깃만 만져도 오랜 병에서 나을 것이라 믿었습니다. 맹인은 이제껏 없었던 눈을 뜨는 역사가 일어날 것을 믿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에 대해 부활과 생명을 줄 수 있는 분, 반복되는 실패를 극복케 하시는 분, 이제까지 없었던 새 일을 보여주시는 분으로 믿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어떠한 분으로 믿고 있습니까! 말씀을 통해 우리의 믿음을 새롭게 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18절을 보십시오. 한 관리가 예수님앞에 엎드려 간구합니다. “내 딸이 방금 죽었지만 오셔서 그 몸에 손을 얹어 주십시오. 그러면 살아나겠나이다.” 예수님 제자들도 감히 갖지 못한 믿음이었습니다. 그런데도 마태는 관리의 이름을 기록하지 않았습니다. 마태가 세리 출신이어서 공무원을 싫어했던 것입니까? 아무튼 열두 사도처럼 이름이 드러난 믿음의 용사도 있지만, 이름을 드러내지 않는 위대한 믿음의 사람들도 있음을 보여줍니다. 예수님은 그러한 믿음을 기뻐하시고 그의 집으로 발걸음을 옮기십니다.(19)

바로 그때 열두 해 동안이나 혈루증으로 앓던 한 여자가 예수님의 뒤로 와서 겉옷, 아니 겉옷 가를  가만히 만졌습니다.(20) 12년 동안 혈루증으로 엄청난 고생을 했으니, 예수님 앞에 달려와서 엉엉 울며 간구해야 할 것 같습니다. 나병환자도 예수님 앞으로 나왔고 중풍병자도 침상 채 지붕을 뚫고 예수님 앞에 실려 왔습니다. 그녀는 나병환자의 용기나 중풍병자의 뻔뻔함을 보여주지 않았습니다. 아무도 몰래 뒤로 와서 살짝 겉옷을 만질 정도로 액션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겉으로는  스피릿이 없는 것처럼 보였지만, 마음에는 분명한 믿음이 있습니다.
21절을 보십시오. “이는 제 마음에 그 겉옷만 만져도 구원을 받겠다 함이라” 관리처럼 혹은 나병환자처럼 앞으로 나오는 것만 믿음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22절 말씀을 같이 읽겠습니다. “예수께서 돌이켜 그를 보시며 이르시되 딸아 안심하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하시니 여자가 그 즉시 구원을 받으니라” 예수님은 여인을 책망하지 않았습니다. ‘믿으려면 제대로 믿어야지, 왜 그리 당당하지 못해? 그리 연약해서 은혜받을 수 있겠어?’ 오히려 반대였습니다. “딸아 안심하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여인을 딸로 불러 주십니다. 예수님은 내 옷깃이 너를 구원하였다고 말씀하지 않았습니다. 여인의 믿음이 여인을 구원하였다고 말씀하심으로 여인을 믿음의 사람으로 높여 주셨습니다.
우리는 눈에 보이지 않는 믿음보다도 겉으로 보여지는 스타일에 주목할 수 있습니다. ‘어떤 믿음으로 했는가’, 믿음에 집중하기보다 ‘어떤 식으로 했기에 좋아진 것인가?’, 방식에 더 주목할 수 있습니다. 어떤 복권판매소에서 1등 당첨자가 나오면 한동안 사람들로 붐빈다고 합니다. ‘나도 같은 장소에서 복권을 사면 당첨되지 않을까?’라는 기대감 때문입니다. 그와 같이 남들 하는 모양처럼 나도 하면 뭔가 이루어질 것을 기대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예를 들어 남들 공부하는 시간만큼 나도 공부하는 자리에 앉아있으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실은 ‘공부시간을 채웠다’는 것보다 ‘어떻게 그 시간을 채웠는가’가 더 중요합니다.
코로나가 오기 전. 동대문 정보화도서관에 종종 갔는데, 공무원이나 여러 자격시험 준비하는 사람들을 흔치 않게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오랜 시간을 핸드폰 만지며 셀프 웃음을 짓거나 이어폰을 끼고 학원 강의 반, 영화 반 시청하는 사람들을 심심치 않게 보았습니다. 몸은 목표를 향하여 움직이고 있지만, 마음은 그렇지 않을 수도 있음을 보여주는 모습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따라가는 신앙생활도 그런 모습이 될 수 있습니다. 슬픈 생각, 불신과 회의, 두려움과 염려를 마음 가득히 쌓아놓고 있는 것에 대해 문제의식을 놓쳐버리고 남들 하는 대로, 지금까지 해오던 대로 움직이고 있는 것으로 자족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겉모습을 보지 않고 믿음을 보십니다. 믿음은 치열한 내적 싸움입니다. 여인은 로또 복권을 사는 심정으로, “나으면 좋구요. 안 나아도 어쩔 수 없지요”라는 심정으로 겉옷을 만진 것이 아닙니다. “특별히 갈만한 곳도 없구요. 남들도 옷자락 만진다고 하니 저도 한번 만져보는 거지요” 분위기 따라 만진 것이 아닙니다. 지금까지의 실패의 기억을 붙들기보다 예수님에 대한 무한 신뢰를 담아 손을 뻗은 것입니다. 낙심과 절망으로 어쩔 수 없이 손을 내민 것이 아니라 주님의 사랑과 능력을 믿음으로 손을 내민 것입니다. 우리는 무슨 문제를 만나든지 먼저 믿음을 준비하고자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 당신은 빛이시며 권능과 사랑의 주님이십니다. 주님은 얼마든지 새 일을 행할 수 있음을 믿습니다.’ 항상 긍정과 희망을 담은 믿음을 놓치지 않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그러한 믿음으로 손을 내미는 자들을 기뻐하십니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이는 성경의 약속이며 예수님의 약속입니다. 이전의 경험이나 실패에 붙잡혀 있지 말고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도전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23절을 보십시오. 드디어 예수님이 관리의 집에 도착했습니다. 도착해보니 피리 부는 자들과 떠드는 무리들이 있었습니다. 당시 유대의 장례식은 2명의 피리 부는 악사와 1명의 곡하는 여인을 불러 초상집 분위기를 유지했습니다. 곡하는 소리와 슬픈 피리소리로 가득한 장례식장의 모습은 인간이 죽음앞에 할 수 있는 것은 슬픔이외에 다른 것이 없음을 보여줍니다. 코로나가 전 세계 문명을 뒤흔드는 이유도 죽음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죽음앞에 인간의 모든 가치는 흔들리고 무너지고 맙니다. 그러나 믿는 자들에게 죽음은 끝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24) “물러가라 이 소녀가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 소녀의 아버지가 얼마나 간절히 듣고 싶었던 말씀입니까! 그런데 세상의 누가 죽은 자녀를 둔 부모에게 이런 말씀을 해 줄 수 있습니까! 예수님은 부활이요 생명이십니다.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 모든 죽은 자들을 깨우실 것이며, 영원한 생명에 들어가게 하십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음으로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습니다. 죄의식에서 해방되어 평안을 얻습니다. 기도의 응답을 받아 시험에 합격할 수도 있고 건강이 좋아질 수도 있습니다. 아름다운 믿음의 가정을 이루고 성령의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모든 것과 비교되지 않은 최고의 축복은 부활과 영생입니다. “물러가라 이 소녀가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 이는 세상 어디에서도 들을 수 없는 위대한 복음입니다. 우리에게 부활의 복음, 영생의 복음을 주시는 예수님께 감사와 찬송을 드립니다.

그런데 초상집 하객들은 은혜받기는 커녕 예수님을 비웃는 것이었습니다. 죽음에 짓눌린 자들이 죽음을 이기고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예수님을 비웃습니다. 세상에는 종종 이런 일이 있습니다. 믿음 없는 자들이 믿음 있는 사람을 비웃습니다. 예수님은 비웃는 자들을 모두 내보내셨습니다. 불평하고 비웃고 냉소적인 분위기에서는 구원의 역사, 생명의 역사가 없습니다. 예수님은 영적 분위기가운데 일하시는 분이십니다. 작은 것에 감격하고 같이 기도하고 마음을 모으는 거기에 성령으로 역사하십니다. 예수님은 무리를 내보낸 후에 소녀의 손을 잡아 일으키셨습니다.(25) 그러자 잠에서 깨어난 아이처럼 죽은 아이가 일어나는 것이었습니다. 부활이요 생명이신 예수님을 찬양합니다.(26) 우리도 믿음으로 영적 분위기를 준비하여 성령의 역사를 체험하는 자들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27절을 보십시오. 예수님이 거기서 떠나가실 쌔 두 맹인이 따라오며 소리 지르는 것이었습니다. “다윗의 자손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얼마나 크게 지르는지, 주변 사람들이 ‘조용하라’며 짜증 낼 정도였습니다. 예수님은 저들의 간청에도 불구하고 집으로 들어가 버리셨습니다.(28) 그런데도 맹인들은 포기하지 않고 따라왔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맹인들에게 물으십니다. “내가 능히 이 일 할 줄을 믿느냐” 구약성경에서는 맹인의 눈을 뜨게 하였다는 기록이 없습니다. 죽은 자를 살리고 나병을 고쳤다는 기록은 있는데, 맹인의 눈을 뜨게 한 기록은 없습니다. 맹인의 눈을 뜨게 하는 역사는 전무후무한 역사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장차 하나님이 오실 것인데, 그 때 맹인이 눈을 뜨게 될 것이요 못 듣는 사람의 귀가 열릴 것이라 예언했습니다.(사35:4,5) 그러므로 예수님의 질문은 ‘나를 하나님으로 믿느냐’는 도전이었습니다. 예수님을 훌륭한 랍비나 선지자로 믿는 사람이 있습니다. 공자나 석가에 비견되는 위대한 4대 성인 정도로 믿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전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만한 새 일을 하시는 분으로 믿는 자들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그를 믿는 모든 자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그리고 다시 오셔서 마귀를 심판하시고 죄와 죽음을 심판하시고 악한 자들을 심판하시고 새 하늘과 새 땅을 여시는 분이십니다. 그것이 어떻게 가능합니까! 예수님은 그 근본 본체가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그리스도로 믿는 사람은 세상이 보여줄 수 없는 새로운 세계를 보게 될 것을 믿습니다. 지금까지는 맹인처럼 캄캄한 세계에서 살았던 사람이라도 구원의 세계, 영생의 세계, 성령의 열매를 맺고 하늘 백성의 길을 가게 될 것을 믿습니다.  
맹인들은 무엇이라 고백했습니까! “주여 그러하오이다” 그들은 처음이나 지금이나 끝까지  믿음을 지켰습니다. 29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이에 예수께서 그들의 눈을 만지시며 이르시되 너희 믿음대로 되라 하시니” ‘너희 믿음대로 되라’, 그들이 눈을 뜨지 못할 것으로 불신했으면 뜨지 못할 것이며, 눈을 뜨고 새로운 세계를 볼 것으로 믿었으면 눈을 볼 것입니다. ‘안될 것이다. 망할 것이다’ 불신했으면 안되고 망할 것이며, 승리하고 회복될 것을 믿었으면 승리하고 회복할 것입니다. 예수님 말씀은 믿음을 가진 자들에게 축복의 말씀이며, 불신을 가진 자들에게는 심판입니다. 맹인들은 그들의 믿음대로 눈이 밝아졌습니다.(30)
하나님은 사랑하는 자들에게 믿음을 주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믿음을 소중히 여겨야 합니다. 사탄은 우리의 믿음을 빼앗고자 끊임없이 공격해 옵니다. 우리는 믿음을 주시도록 기도하고 믿음을 지킬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루터는 열이 나지 않는 불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기도 없이는 믿음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기도 외에는 이런 류가 나갈 수 없다고 말씀했습니다.(막9:29) 우리는 사람을 찾고 조건 개선을 위해 몸부림을 치는 것보다 나의 믿음이 무엇인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32절을 보십시오. 맹인들이 눈을 뜨고 나가자, 이번에는 귀신들려 말 못하는 사람을 데리고 왔습니다. 그러자 귀신이 쫓겨나고 말 못하는 사람이 말하는 것이었습니다.(33) 무리들이 놀랍게 여겨 환호성을 질렀습니다. “와! 이스라엘 가운데서 이런 일을 본 적이 없다!” 무리들은 예수님을 하나님의 그리스도로 기대하게 되었고 구원의 희망을 본 것이었습니다. 반면 무리들과 전혀 다르게 예수님을 해석하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34절을 보십시오.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에 대해 귀신의 왕을 의지하여 귀신을 쫓아내고 있다며 비난했습니다. 눈먼 자들이 보게 되고 벙어리 귀신이 쫓겨나는 전무후무한 역사를 보고도 어찌 이리 악담을 쏟아내는 것입니까! 한 사람가운데 일어나는 구원의 역사를 크게 생각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한 사람의 구원은  성령의 역사가 아니면 결코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사람을 변화되는 역사는 세상이 개벽되는 것 같은 기적의 역사입니다. 이를 크게 생각하는 사람은 예수님을 믿게 되고 이를 가볍게 생각하는 사람은 바리새인처럼 복음역사를 대적하게 됩니다.

예수님은 악한 비방을 듣는 중에도 힘쓰신 일이 무엇입니까? 35절을 보십시오. 예수님은 모든 도시와 마을에 두루 다니사 그들의 회당에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모든 병과 약한 것을 고치셨습니다. 가르치고(teaching) 복음을 전파하시고(preaching) 고치셨습니다.(healing) 가르치셨다는 것은 하늘 백성에게 필요한 가치관과 믿음을 가르치셨다는 것입니다. 복음을 전파하셨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과 영생의 복음을 전파하셨다는 것입니다. 고치셨다는 것은 병들고 상처받은 영혼을 위로하고 격려하고 회개시켜서 건강하게 회복시켰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인간관을 알 수 있습니다. 사람은 teaching과 preaching과 healing이 필요합니다. 사람 스스로 영적 가치관을 갖추고 구원과 영생의 확신을 얻고 건강한 내면을 유지할 수 있다면 좋은 텐데, 그렇지 않습니다. 세상의 룰에 휘둘리다보면 불법이 정의인 것처럼, 정의가 불법인 것처럼 헷갈리게 됩니다. 죄의식과 심판의 두려움에 사로잡히기도 하고 세상을 향해 선한 영향력을 뿜어내기보다 영향을 받고 상처 입은 영혼이 되어 버리기도 합니다.

36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시니 이는 그들이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기진함이라” 방어기제가 없는 양은 목자를 갖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습니다. 그와 같이 사람에게 목자가 없으면 누구나 고생하며 기진합니다. 소년이라도 피곤하며 곤비하며 장정이라도 넘어지며 쓰러집니다.(사40:30) 어린 사람만 혹은 양들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신앙연륜이 있고 성공의 자리에 오른 사람이라도 그러합니다. teaching 해주고 preaching해주고 healing해주는 목자가 없다면 메마른 세상 분위기에 흔들리다가 방향감각을 잃어버립니다. 죄사함의 은혜를 놓쳐버리고 상처 입은 영혼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세상에는 목자라고 하면서 실상은 양들의 영혼을 파괴하는 이리들이 많습니다. 신천지 같은 이단들은 세상에서 곤고한 청년들을 끌고 가서 거짓과 탐욕의 자식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사마리아 여자처럼 남편을 목자로 삼아 달려가다가 야곱의 우물가를 전전하며 목마른 인생을 사는 사람도 있습니다. 세리처럼 돈을 인생의 목자 삼아 달려가다가 막다른 후회에 부딪히는 사람도 있습니다. 부모가 목자가 되어주고 스승이 목자가 되어주기를 바라지만, 부모나 스승 또한 목자가 필요한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고 배우며 끊임없이 교제하지 않으면 누구나 고생하며 기진할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은 양들의 구원과 영생과 행복을 위해 자기 목숨을 버리신 선한 목자이십니다. 예수님은 성령으로 그를 따르는 자들을 치유하며 진리와 생명의 길을 가게 하십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을 믿고 배우며 믿고 따라갈 때, 구원을 얻고 진리의 길을 갈 수 있습니다. 나아가 양들을 먹이는 목자의 역할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분명한 기도제목을 제시했습니다. 37,38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이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추수할 것은 많되 일꾼이 적으니 그러므로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어 주소서 하라 하시니라” 열두 제자들이 세상 모든 사람들을 도와줄 수 없습니다.  teaching과 preaching과 healing이 필요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도우심이 필요합니다. 사람을 돕는데 있어서 법칙이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닙니다. 목자는 항상 목자역할을 해야 하고 양은 항상 양노릇하는 것이 아닙니다. 양이었던 사람이 성령의 감동을 받아 목자노릇을 할 수 있고, 어린 사람이 성령의 감동으로 자기보다 나이 많은 사람을 도와줄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현실문제만 붙들고 기도하지 말고, 추수할 일꾼을 보내어 달라고 간절히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하는 사람은 하나님께 대한 믿음을 갖게 되고 지금 누구를 도와야 할지 성령의 손길도 보이게 됩니다. 기도하지 않는 사람은 성령의 역사를 보지 못하고 현실문제에 휘말려들어 영적으로 무기력해집니다. 주위에 도와야 할 사람들이 많은데, 그 시간을 다 놓쳐버립니다. 예수님은 추수할 것이 많은데 일군이 적다고 말씀했습니다. 당시 유대사회는 예수님과 제자들을 배척하는 분위기였습니다. 밭은 황폐해졌고 추수할 것이 없는 것처럼 볼 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시각은 달랐습니다. 요한4장 보면, 제자들은 사마리아를 지나가면서 ‘여기는 밥 문제나 해결하고 지나가는 곳이다’라고 생각하고 아무런 기대를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눈을 들어 밭을 보라 희어져 추수하게 되었도다’ 말씀하십니다. 상황을 보면 아무 것도 없는 것 같으나, 한 영혼을 내면 깊이 들여다보면 도와야 할 사람들이 참으로 많습니다. 추수할 때가 다가왔는데도 추수하지 않으면 알곡은 땅에 떨어져 썩어버립니다. 혹은 도둑이 훔쳐갑니다. 모든 것에는 때가 있듯이, 사람을 돕는 거기에도 때가 있습니다. 가난한 마음을 갖고 목자와 말씀에 대해 열린 마음을 가진 때를 따라 도와야 합니다. 사람의 마음을 들여다보지 못하는 우리는 추수할 시기가 왔는데도 그 때를 모르고 있을 때가 많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추수할 일군을 보내어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받으시고 우리를 추수할 일군으로 세워 주십니다. 우리들의 기도를 받으사 생각하지 못했던 사람들을 복음의 일군으로 보내사 당신의 역사를 이루어 가십니다. 그러므로 학교에 가든지, 직장에 가든지, 가정에 가든지 믿음으로 추수할 일군을 보내어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주님, 우리의 캠퍼스에 추수할 일군을 보내어 주소서. 세계 곳곳의 선교현장에 추수할 일군을 보내어 주소서, 우리와 우리의 양들과 자녀들이 추수할 일꾼으로 보내어 주소서” 바쁜 현실을 핑계대지 말고, 연약한 자신을 핑계대지 말고 믿음으로 기도해야 겠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기도를 받으사 믿음대로 역사하십니다. 믿음으로 기도의 싸움을 감당하는 일군들이 됩시다!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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