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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nday Worship Message
주일예배메시지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0-08-08 (토) 16:21
분 류 요한복음
첨부#1 2020년_여름수양회_주제1강.hwp (32KB) (Down: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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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여름수양회 주제1강]빛 되신 예수님
2020 여름수양회 1강  
                  빛 되신 예수님  
말씀 / 요한복음 1:1-18
요절 / 요한복음 1: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오늘말씀은 철학적이고 어렵기 때문에 수양회에는 잘 나오지 않는 말씀입니다. 저 역시 이 말씀을 맡고 이 어려운 말씀을 어떻게 전해야 할 것인가 부담을 느꼈습니다. 또한 지성을 강조하다 흥미가 떨어질까봐 걱정이 되기도 했고 무엇보다 걱정되는 점은 지성만 강조하다가 영성을 잃은 메시지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제가 먼저 말씀을 이해하기 위해 또한 요한복음 해석에 대한 객관성을 갖기 위해 여러 자료를 찾아볼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말씀을 연구하는 동안 제가 먼저 큰 은혜를 받게 되었습니다. 또한 요한복음 1장에 기록된 예수님에 대한 요한의 증거를 이해한다는 것은 매우 가슴 벅찬 일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여러분도 이 기대를 가지고 오늘 말씀을 듣기를 소원합니다.
 우리는 코로나19로 인하여 전무후무한 고난의 시대요 어둠의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캠퍼스 낭만을 꿈꾸며 힘든 수험생활을 마치고 대학에 들어온 신입생들은 학교도 한번 못 가본 채로 방학을 하게 되었습니다. 복음역사 측면에서도 학생이 없는 캠퍼스를 바라보는 목자들의 심정은 답답하기 그지없습니다. 여름수양회를 가지 못하는 어려움에 봉착하기도 합니다. 이전에는 당연하였던 것들이 이제는 불가능한 것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현실의 고난보다 우리를 더욱 힘들게 하는 것은 이 고난이 과연 언제까지 이어질지 아무도 알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어두운 시대 가운데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당연히 이 어두움을 물리쳐줄 빛일 것입니다. 요한복음은 빛의 복음입니다. 특히 1장은 빛에 대해 증거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깊은 어두움 속에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말씀입니다. 우리 모두 요한복음 말씀 통하여 내 안에 어두움을 물리치고 빛의 사자가 되는 역사가 있기를 기도합니다.

요한복음 1절을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참 읽어도 무슨 뜻인지 한 번에 이해가 가지 않는 말씀입니다. 요한은 왜 시작부터 이렇게 어려운 문장을 써서 독자의 흥미를 떨어뜨리는 것입니까? 보통 글을 쓸 때 첫 문장은 더욱 깊이 고민하고 씁니다. 요한이 요한복음의 첫 문장을 이렇게 어렵게 쓴 것은 우리를 골탕 먹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 문장에 심오하고 중요한 의미가 있어 깊게 묵상해 보라는 뜻입니다. 17세기 옥스퍼드 대학의 철학과 논리학 교수로 있었던 유니우스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유명한 목회자였습니다. 그는 어려서는 아버지를 따라 신앙생활을 하였지만 성장하며 고등학문을 배우고 머리가 크면서 점점 신앙을 잃어버렸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신앙생활 똑바로 하라고 윽박지르고 혼내는 대신 아들을 위해 기도하기 힘썼습니다. 그리고 아들이 자신의 서재에 자주 와서 책을 읽는 것을 알고 그가 자주 찾는 곳에 성경책을 꽂아두었습니다. 기도하던 중 언젠가 성경을 읽고 변화될 것이라는 믿음이 생겼기 때문이었습니다. 어느 날 유니우스는 무슨 일인지 고민에 차서 아버지의 서재를 서성거렸습니다. 그러다 문득 서재에 꼽혀 있는 성격책을 발견하고 무심코 펼쳤는데 요한복음이었습니다. 그는 요한복음 1장 1절 말씀을 읽고는 깜짝 놀라고 말았습니다. 그는 철학자요 논리학자였기 때문에 논증에 대해 알아보는 식견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요한복음 1장 1절을 보니 논증의 기본이라 할 수 있는 삼단논법을 가진 문장이었고 군더더기 없이 간결하면서도 힘이 있는 훌륭한 논증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성경에 이런 말씀이 있었나 놀라며 다시 읽어보았는데 그 말씀이 마음에 무언가 큰 울림을 주었습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는 요한복음 1장 1절을 읽은 후 책을 덮고 서재를 나갔는데 머릿속에 계속 이 말씀이 맴돌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다시 책을 펴서 요한복음을 1장을 쭉 읽어 나갔습니다. 그랬더니 그에게 뭐라고 형언할 수 없는 감동과 흥분, 가슴 떨림이 생겼는데 잠도 오지를 않고 몇일이 지나도 진정되지가 않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견딜 수가 없어진 그는 마침내 변화되어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였고 후에 목회자가 되어 기독교 백과사전에 실릴 정도로 기독교 역사에 한 획을 긋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1장 1절 말씀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먼저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로 시작합니다. 여기서 말씀이란 무엇입니까? 말씀은 로고스(logos)로 이것은 좁게는 언어, 논리를 뜻하는 말로 본문에 나오는 ‘말씀’으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당시 시대에는 좀 더 넓고 깊은 의미로 쓰였던 말입니다. 사도요한이 에베소에서 자신의 노년을 보내면서 설교와 가르침에 몰두할 당시 기독교는 급속도로 전세계에 전파되고 있었습니다. 수많은 이방인들이 기독교인으로 흡수되었으며 이방인들의 의식구조나 문화 등을 고려하여 복음을 전할 필요성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유대인들의 독특한 종교관념과 사상을 가지고는 이들을 전도하기 어려웠기 때문이었습니다. 요한은 당시 이방인들에게 보편화되어 있던 헬라적 사고 관념을 고려하여 심오한 진리를 소개하고자 하였습니다. 기원전 3세기 아리스도텔레스의 제자이기도 했던 알렉산더 대왕은 온 세상을 헬라화시켜야 한다는 분명한 꿈을 가지고 세상을 정복했고 이로 인해 헬라사상은 온 세상에 널리 퍼져있었습니다. 플라톤 등 많은 사람들이 주장했고 헬라철학의 중심사상인 스토아주의에서 이 로고스는 그 핵심을 이룹니다. 로고스란 우주를 지배하는 궁극적인 통일 원리로 우주이성, 또는 세계이성이라는 뜻입니다. 헬라인들은 사유의 힘으로 이 세상을 움직이는 신적인 존재 즉 로고스가 있음을 알아낸 것입니다. 로마서 1장 20절은 말합니다.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핑계하지 못할지니라” 세상을 자세히 바라보고 사유하면 우리는 만물 속에 보여진 어떤 초월적 이성, 즉 조물주의 존재를 어렴풋이 알 수 있습니다. 저는 병리학교수로써 인간의 병에 대해 탐구하는 것이 저의 직업입니다. 그런데 다양하고도 복잡한 병에 대해 연구하다 보면 이 정교한 인간을 움직이는 로고스에 대해 생각하게 됩니다. 그러나 사유의 힘으로 알아낸 로고스의 존재는 명확한 한계가 있었습니다. 로고스란 존재가 있다는 것까지 깨닫게 될 뿐 그 존재가 무엇인지 알지 못합니다. 그런데 성경은 그 로고스가 즉 예수님임을 분명히 알려줍니다. 14절을 보면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라고 말씀합니다. 이는 말씀 즉 로고스가 성육신하신 예수님이심을 명확히 드러낸 것입니다. 진리를 탐구하나 그 진리를 알지 못해 방황하던 사람들에게 이 말씀은 매우 놀라운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이 로고스 즉 예수님은 어떠한 존재이십니까? 그는 태초부터 하나님과 같이 계셨습니다. 함께 있는 것은 곧 그 사람의 정체성을 말해줍니다. 사람이 매일 함께 지내는 가족, 친구는 곧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를 말해줍니다. 또한 함께 있다는 것은 하나의 존재가 아니라 각각으로 구별된 별개의 존재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또한 영원히 함께 있을 수 있는 것은 동일한 존재 밖에는 없습니다. 참 모순된 말입니다. 이는 즉 삼위일체를 말합니다. 말씀이신 성자는 성부와 함께 계시기도 하며, 동시에 동일한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고 하셨고(요10:30),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고, 내가 아버지 안에 거하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다고 하셨습니다(요14:9-11). 성부와 성자는 삼위일체에 있어 두 개의 구별된 존재이시지만 함께 동등하시고, 함께 영원하시며, 본질상 하나이며, 연합되어 있어 결코 나누일 수 없습니다. 두 하나님이 아니라 오직 한 하나님만이 존재하십니다. 성부가 하나님이신 것처럼 성자도 하나님이십니다. 즉 요한복음 1장 1절은 너희가 말하는 우주를 지배하는 궁극적인 통일 원리가 예수님인데 이 예수님은 하나님과 다른 존재이지만 또한 같은 존재인 삼위일체의 하나님이시다 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을 로고스라고 표현한 것은 분명 성령의 인도하심이었습니다. 헬라철학을 접한 당시 사람들은 예수님의 존재를 한 번에 이해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을 어떤 단어로 표현하는가는 관념과 직결되기 때문에 믿음에도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저는 일본어에 대해 전혀 모르지만 일본에서는 하나님을 가미사마라고 지칭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가미사마라는 말은 일본의 왕에게도 쓰이고 또는 여러 귀신을 지칭하는 말로도 쓰인다고 합니다. 그래서 일본인들은 유일하시며 창조주이신 하나님에 대한 존재를 깨닫는데 더욱 어렵다고 합니다. 반면에 우리나라는 하나님이라는 좋은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을 듣는 순간 하나님은 유일무이 하신 존재라는 것을 관념적으로 깨닫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로고스라는 단어는 창조주시오 세상의 주관자되시는 예수님의 존재를 분명히 깨닫게 하여 줍니다.

3절을 한번 읽어 보겠습니다.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이 말씀은 구체적으로 예수님의 창조사역을 말씀해 주십니다. 1절에서 3절은 예수님이 누구신가에 대해 말하고 있는데 이 예수님은 생명의 근원이 되시고 삼위일체의 하나님이 되시며 창조주가 되십니다. 요한복음의 독특성은 예수님을 창조주 하나님으로 선포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본래 모습입니다! 이 예수님을 알 때 어떤 것에도 흔들리지 않습니다. 코로나로 인해 사람들에게 세상의 불확실성과 두려움이라는 문제가 더욱 커지게 되었습니다. 코로나 뿐 아니라 환경문제, 기후문제, 경제문제, 안보문제 등 수많은 위협이 우리를 두렵게 합니다. 우리는 어느 때보다 예측 불가능한 불확실성의 시대 가운데 살고 있고 이로 인해 위협받고 있습니다. 이러할 때 우리는 더욱 창조주 예수님에 대한 믿음을 확실히 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 만물의 창조자 되시며 또한 지금도 이 세상을 주관하시는 분이십니다. 이 세상 만물의 창조자를 알고 그 분이 나의 목자이신데 무엇이 두렵겠습니까!
4절을 다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창조주 예수님은 우리 생명의 근원이 되십니다. 헬라철학의 로고스와는 달리 예수님은 생명이 있는 로고스, 인간과 교감할 수 있는 인격적인 로고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생명의 근원이요 원천이며, 공급자요 주관자입니다. 이 생명은 헬라어 ‘조에’로 기록되어 있는데 이는 일시적인 생명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을 의미합니다. 이는 시간적인 영원함 뿐 아니라 영적으로도 죽음의 요소가 전혀 없는 생명력이 넘치는 영적인 생명을 뜻합니다. 예수님으로부터 생명의 물줄기가 흘러나와 우리를 생명에 이르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 삶이 곤고할 때 언제든지 이 샘 근원으로 찾아가 생명의 샘물을 누릴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 됩니다. 삶에서 실망하고 절망하여 지쳐 쓰러진 사람들에게 희망이 되고 힘이 되고 빛이 됩니다. 사람들은 살아있을 동안에 죄와 허무의 세력에 시달리며 어둡게 살아갑니다. 어둠 중에 가장 어두운 것은 무서운 죄성입니다. 이러한 죄는 빛의 창조자 하나님만이 없앨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때론 갑작스레 죽음을 맞이하기도 합니다. 전쟁이나 살인, 사고나 질병 등으로 인해 소중한 생명을 잃어버립니다. 그리고 모든 사람의 육신의 생명은 결국 죽습니다. 죽음 앞에 서서야 비로소 사람들은 생명이 얼마나 소중한가 깨닫습니다. 노후에 무병장수를 위한 노력도 필요하지만, 죽음 자체를 이기는 영생의 길을 알아야 합니다.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말씀이요 창조주이신 예수님 안에 영원한 생명의 길이 있습니다.

  5절을 보십시오. 그런데 이 생명의 빛이 어둠에 비쳤는데도 어둠이 깨닫지 못했습니다. 사람들은 시대가 어둡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현제는 코로나 때문에 어둡고 그로인한 경제 위기 때문에 어둡습니다. 세상을 보면 어두운 소식 투성이입니다. 빚이 존재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빛이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빛이 있으되 그 빛에 대해 깨닫지 못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빛에 대해 깨닫는 자는 빛을 볼 수 있게 됩니다. 그러나 빛에 대해 깨닫지 못하면 계속 어두움에 거하게 됩니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빛의 증거자 세례 요한을 보내셨습니다. 그는 이 빛에 대해 증언하여 모든 사람으로 믿게 하려 했습니다. 이 증언자를 통해 예수님은 참 빛으로 각 사람에게 비추셨습니다. 증언자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참 빛이시지만 빛의 증언자를 통해서 일하십니다. 하나님은 오늘날도 생명과 빛이 충만한 빛의 증언자들을 통해 참 빛이신 당신을 나타내십니다. 우리가 생명의 빛 예수님을 만나고 그 생명의 빛을 이 세상에 비추는 예수님의 증언자로 살아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이유입니다.

  그런데 태초의 말씀이요 생명의 근원이신 예수님에 대한 반응이 어떠했습니까? 세상은 그를 알지 못했습니다.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들이 영접하지 않았습니다. 유대인들은 비천한 나사렛 출신이요 목수의 아들인 예수님의 신성을 용납하지 않고 십자가에 못 박아버렸습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현대인은 과학과 이성에 기초한 사고방식으로 예수님이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포도원 농부들처럼 자기 욕심 때문에, 자기들 맘대로 살고픈 마음 때문에 아들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자기 삶의 주도권이 빼앗길까봐, 어둠을 즐길 수 없을까봐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습니다. 이를 볼 때 믿음은 모든 사람의 것이 아니며, 믿음은 하나님의 선물이요 특권임을 알 수 있습니다. 12절 13절을 다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 하나님께서는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 당신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십니다. 이 권세는 하나님께 예배드리고 기도할 수 있는 권세,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며 교제할 수 있는 권세, 장차 하나님 나라를 상속할 상속자의 권세입니다.

 요절말씀인 14절 말씀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이것이 요한의 메시지의 핵심이었습니다. 영원 전에 계셨던 말씀이신 예수님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셨습니다. 그 분에게는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 있었고,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였습니다. 여기서는 특히 하나님의 영광이 강조되어 있습니다. 왜 하나님의 영광이 우리에게 중요할까요? 성경에는 하나님께서 친히 믿는 자들에게 그 영광을 나타내신 적이 있습니다. 출애굽기 33장에서 하나님은 주의 영광을 보여주기를 간구하는 모세에게 그 영광을 보여 주셨습니다. 또한 마태복음 17장에서 예수님은 제자들과 산에 올라가 변화되사 영광스러운 모습을 보여주셨습니다. 이 영광의 모습을 보여 주셨을 때는 모세나 예수님의 제자들이나 가장 힘들었던 때였습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이 금송아지를 우상으로 만들고 범죄하여 주의 비젼을 잃어버릴 만큼 힘들었을 때이고 제자들은 예수님의 반복된 십자가 말씀 앞에 제자생활에 고민과 회의를 가지고 있었을 때였습니다. 우리에게도 무엇보다 주의 영광을 바라보는 것이 중요한 때가 있습니다. 이때는 온 세상이 어둠에 둘러싸인 것 같고 세상에서 어떤 희망도 보이는 것 같지 아니할 때입니다. 코로나19 이후 저는 삶의 본질에 대해 묵상하는 시간이 많아졌습니다. 이전에는 당장 눈앞에 해야 할 일과 눈앞의 목표를 생각했지 삶에 대해 이처럼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코로나19를 겪으며 인간이란 존재의 본질과 삶이란 어떤 것일까 종종 생각을 하게 됩니다. 요즘 드는 생각은 삶은 영광을 좆아 오르막길을 오르는 것이 같다고 느껴집니다. 세상 사람들을 물질의 영광, 권력의 영광, 인기의 영광 등 자신의 영광을 좆아 오르막길을 오릅니다. 더 큰 영광을 얻기 원하는 사람일수록 더 힘들게 더 높고 가파른 언덕을 오릅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자신이 좆아 왔던 영광이 허상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면 어떻게 될까요? 세상 사람들은 힘들게 올라왔던 언덕의 끝이 죽음과 심판의 낭떠러지라는 것을 깨닫지 못합니다. 근래 세상에서 유명하고 힘 있는 사람들의 비참한 결말을 자주 마주하게 됩니다. 결국 저렇게 끝날 것을 왜 그렇게 열심히 살았는가 생각하면 그 사람을 좋아했던 좋아하지 않았던 간에 인간의 삶에 대한 본질적인 동정과 안타까움이 생깁니다. 그러나 신자의 삶은 다릅니다. 신자는 하늘나라의 영광을 향해 오르막길을 오르는 사람들입니다. 때로는 그 언덕은 세상 사람들보다 더 가파르고 험난하여 매우 힘들기도 하고 세상 사람들은 이 오르막길에 끝에는 아무 것도 없다고 비웃고 손가락질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오르는 이 언덕의 끝은 마침내 하늘나라로 연결되어 있으며 마침내 예수님의 영광을 함께 누리게 된다는 것을..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아버지의 영광은 곧 우리의 영광이 되고 궁극적인 삶의 목표가 됩니다. 우리는 이제 예수님의 영광을 말씀을 통해 볼 수 있습니다. 다음 주에 이어질 여름수양회 강의를 통해 이 영광을 더욱 생생하게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영광은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한 영광입니다. 영원한 창조주이신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땅에 온 성육신 사건은 예수님이 누구신가를 잘 말해줍니다. 예수님은 육신이 되어 죄인들 가운데 거하셨습니다. 우리와 교제하시며, 생명과 구원을 주시고, 축복과 승리를 주는 임마누엘 하나님이 되셨습니다. 우리와 몸을 맞대고 함께 호흡하고 눈에 보이고 손에 만져지는 분으로 가까이 오셨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놀라운 희생과 낮아짐의 결과입니다. 종의 형체를 입고 섬기며 십자가에 죽기까지 자기를 내어주신 사랑이요 은혜입니다. 또한 우리는 진리이신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을 알게 되고, 만물의 이치가 무엇인지, 세상의 시작과 끝이 어떠한지, 삶의 의미와 목적이 무엇인지 알게 됩니다. 그리고 아무리 큰 죄인이라도 십자가 은혜로 죄 사함 받고 하나님 자녀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영원한 말씀이신 창조주께서 육신을 입고 낮아져 우리의 생명이요 빛이요 목자가 되어 주신 은혜와 사랑을 인해 감사와 찬송을 드립니다.

저는 1980년 2남 중 차남으로 태어났습니다. 어린 시절 가난과 가정불화 그리고 학교폭력에 시달리며 어두움에 가운데 거할 때가 많이 있었습니다. 다행히도 어머니의 사랑과 헌신으로 비뚤어지지 않고 학업에 전념할 수 있었습니다. 저의 유년시절 삶의 목표는 공부를 열심히 하여 좋은 대학에 들어가 부와 명예도 얻고 화목한 가정을 이루는 것이었습니다. 1998년 다행히 경희대의대에 입학할 수 있었습니다. 대학에 들어와 처음에는 모든 것이 신기했고 캠퍼스의 낭만을 누리며 만족이 있는 듯 했습니다. 그러나 곧 인생의 허무와 무의미함에 시달렸고 삶의 의미를 깨닫지 못하여 우울증에 시달리기도 했습니다. 대학교 2학년 습관적으로 매주 교회에 나가고 있지만 구원에 확신이 없고 성경에 대해서도 잘 모르는 것에 문제의식을 가지게 되었고 때마침 의약분업 데모로 한가해진 틈을 타 일대일 말씀공부를 하게 되었습니다. 성경은 저에게 차츰 은혜와 진리를 깨닫게 해 주었고 3학년 때 참석한 여름 수양회에서 큰 은혜를 받고 예수님을 따르는 삶을 살고자 결단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따르는 삶과 세상의 삶은 때마다 저를 갈등하게 하였습니다. 제가 과거 원하는 삶은 세상의 성공이었고 신앙은 적당히 하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성경 공부를 하면 할수록 적당히 신앙생활을 한다는 것이 성경의 진리와는 정면으로 대치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저의 본성과는 반대되는 희생과 헌신과 고난의 길, 즉 십자가의 예수님을 따르는 삶을 진리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성경대로 살아야 될 것인가 말 것인가를 두고 심각한 내적 고민이 찾아왔습니다. 이때 마태복음 6:33절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말씀을 붙들고 한번 말씀대로 살아보기로 결단하게 되었습니다. 말씀대로 사는 삶은 쉽지 않았습니다. 세상의 물질주의 육신주의 세력 앞에 넘어질 뻔 한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때마다 저를 보호하시고 때로는 훈련하시며 저를 인도하여 주셨습니다. 인턴수련을 하며 세상세력에 빠져 있을 때는 도리어 레지던트 시험에 떨어지게 하심으로 저의 교만을 깨셨고, 병리과 수련과정에서는 건강문제로 하나님을 의지하게 하셨습니다. 건강문제로 나의 힘으로는 전공의 생활을 할 수 없을 것 같았을 때 주님은 도리어 유한학술상 등으로 영광을 돌리게 하셨고 전공의 생활을 잘 마무리 하게 하셨습니다. 이후 삼성서울병원 전임의를 거쳐 가장 젊은 나이에 순천향의대 교수로 발령받게 하심으로 약할 때 강함되게 하신다는 말씀을 실제적으로 체험하게 하셨습니다.
 순천향병원에서 일한지 수년이 지나고 모든 것이 점차 안정되어 갔습니다. 가족들도 건강하고 자녀도 잘 자라고 경제적으로도 안정되어 갔습니다. 우연치 않게 좋은 조건으로 내 집 장만도 하게 되었습니다. 여기저기 국내학회에서 초청강의를 부탁받고 해외학회에도 초청 받으며 세상에서 인정받는 보람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와 동시에 제 안에 세상세력이 더욱 커지고 신앙은 점점 형식적이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거기다가 많은 병원 일과 3시간이 넘는 통근시간 가운데 하나님의 역사를 섬기다 보면 비교의식과 손해의식으로 마음이 시끄럽고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는 희미해져 갔습니다. 이렇게 마음이 점점 세상을 향해가고 있을 때 재작년 주님은 과장과의 심각한 갈등을 통하여 저의 교만을 깨시고 다시 하나님만을 의지하게 도우셨습니다. 과장은 저의 승진문제를 이용하여 저를 괴롭혔고 저는 직장을 잃을 수 있는 위기에 직면하게 되었습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지루한 갈등의 시간이 반년 넘게 계속되었고 어두움의 세력이 짓누를 때가 많이 있었습니다. 이 기간 극심한 스트레스 가운데 저를 견디게 했던 것은 오직 말씀의 힘이었습니다. 주님은 때마다 말씀을 통해 내면 가운데 빛을 비추시고 믿음을 잃지 않고 견딜 수 있도록 도우셨습니다. 그리고 때가 되자 주님은 결국 저의 기도를 들으시고 문제가 해결되고 승리하도록 도와주셨습니다. 이 사건을 통해 저는 그동안 제가 의지했던 직장과 명예, 물질 같은 세상의 것이 일순간에 물거품처럼 사라질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오직 제가 의지해야 할 것은 창조주되시며 로고스되시고 성육신하여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 이심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저는 최근에도 코로나라는 범인류적인 재앙과 함께 허리 디스크라는 개인적인 고난을 겪고 있습니다. 이처럼 우리의 삶 가운데에는 항상 크고 작은 고난과 문제들이 때마다 찾아옵니다. 이번 여름수양회를 준비하면서도 제 내면에 의심과 어두움의 세력이 들어왔습니다. 수양회도 못 가는데 과연 주의 역사가 일어날 수 있을 것인가? 코로나가 극성인 가운데 모임이 잘 이루어 질 수 있을까?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요한복음1장 말씀을 묵상하며 먼저 제 내면에 빛이 임하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내면 가운데 말씀의 빛이 비추인다면 어떠한 상황에서도 어두움이 물러가고 큰 말씀역사가 일어날 수 있음을 믿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오늘말씀이 어두움에 빠져 있는 이 시대 가운데 정말 필요한 말씀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여러 어려움 앞에 낙담하고 위축될 때야 말로 말씀으로 새 힘을 얻고 참 빛 되신 예수님으로 어두움을 물리쳐야 할 때입니다. 이 역사는 예수님이 누구신가를 바로 아는 데서 나옵니다. 예수님을 바로 알고 바로 믿는다면 생명과 빛을 얻게 됩니다. 예수님은 삼위일체 하나님이시요, 창조주이십니다. 성육신 하신 말씀으로 생명의 근원이요 빛의 근원입니다. 우리가 이 예수님을 바로 믿어 생명을 누리고, 이 생명의 빛으로 어둠을 밝히는 주의 자녀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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