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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nday Worship Message
주일예배메시지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0-08-08 (토) 16:25
분 류 요한복음
첨부#1 2020년_여름수양회_주제_3강.hwp (31KB) (Down: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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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여름수양회 주제3강]다 이루었다
2020년 여름수양회 주제 3강                             최바울

다 이루었다

말씀 / 요한복음 19:1-30
요절 / 요한복음 19:30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에 이르시되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니 영혼이 떠나가시니라"

얼마 전 이사 때문에 집을 보러 다니다가 로얄층에, 남향에다가 가격까지 시세보다 싼 집이 있길래 싼 이유를 물어보았습니다. 살고 있는 사람의 전세계약기간이 아직 몇 달 남아서이고 거기다가 거실 유리창으로 인근의 교회 지붕 위 십자가가 너무 가깝고 크게 보여서 사람들이 싫어하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덕분에 시세보다 싸게 구입해서 감사했지만 사람들에게 십자가가 조망이나 해치고, 집값이나 떨어뜨리는 혐오시설물 취급당하는 것 같아 씁쓸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예수님 당시 이 ‘십자가’는 단두대처럼 흉악한 범죄자를 고통스럽게 처형하는 사형 도구에 불과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십자가를 바라볼 때 본능적으로 섬뜩하고 서늘한 죽음의 기운을 느끼는 것이 어쩌면 당연해 보이기도 합니다. 죽음과 수치와 실패의 상징이었던 혐오스러운 십자가가 어떻게 오늘날 누군가에게 구원과 영광과 승리의 상징이 되었을까요? 하나님께서 인간을 얼마나 사랑하셨는가 보여주는 사랑의 증표가 되었을까요? 오늘 말씀을 통해 십자가가 우리에게 주는 의미가 무엇인지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바라보며 십자가에서 다 이루신 우리를 향한 사랑과 죄사함의 은혜와 구원의 기쁨을 누리는 시간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18장에서 예수님은 유대 종교 지도자들에게 불법으로 체포당하시고 불법으로 공회에서 심문을 받으셨습니다. 그리고 신성 모독죄로 사형을 선고받으셨습니다. 당시 로마는 식민지백성들에게 많은 자치권을 주었지만 생명을 취할 수 있는 사형집행권만은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로마 총독인 빌라도의 힘을 빌려서 예수님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빌라도는 유대인들의 고소내용을 듣고 예수님을 심문했습니다. 그런데 그는 예수님에게서 아무런 죄도 찾지 못했습니다.(18:38) 따라서 예수님을 무죄로 판결하고 석방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19:1절을 보십시오. 오히려 예수님을 데려다가 채찍질하게 했습니다. 아직 판결도 나지 않은 상태에서 채찍으로 때린 후 예수님의 몸을 피투성이로 만들었습니다. 군병들은 유대인의 왕으로 고소당한 예수님을 조롱하기 위해 왕이 입는 자색 옷을 입혔습니다. 머리에는 인간의 범죄 때문에 생겨난 가시나무로 관을 엮어 예수님의 머리에 씌웠습니다.(2) 빌라도는 왜 예수님이 죄가 없다는 사실을 알고도 일부러 채찍질하고 조롱하게 했을까요? 4절을 보십시오. "이 사람을 데리고 너희에게 나오나니 이는 내가 그에게서 아무 죄도 찾지 못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함이니라" 빌라도는 예수님을 고소한 무리들에게 비참한 예수님의 모습을 보여 주면서 동정심을 유발하려고 했습니다. 이로 인해 예수님에 대한 동정 여론이 조성되면 그 때 자연스럽게 석방시킬 계획이었습니다. 사실 로마 총독 빌라도에게 예수님은 한낱 식민지 백성 중에서도 백 없고 힘없는 한 사람의 청년일 뿐입니다. 무리들을 만족시키기 위해 이런 청년 하나 사형시키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냥 탁! 치니 억! 하고 죽었다고 하면 그만이었습니다. 그런데 빌라도는 왜 이렇게까지 무리수를 두면서 예수님을 놓아주려고 했을까요? 7절을 보십시오. “그가 자기를 하나님의 아들이라 함이니라” 가뜩이나 예수님에게서 범상치 않은 무언가를 느끼고 있던 빌라도는 무리들의 이 말을 듣고 더욱 두려워졌습니다. 그리고 다시 관정에 들어가 예수님께 질문했습니다. "너는 어디서로부터냐?" 아무 것도 대답하지 않으시는 예수님에게 빌라도는 내게 당신을 십자가에 못 박을 수도 있고 놓아줄 수도 있는 권세가 있으니 순순히 대답하라고 위협했습니다. 이에 대한 예수님의 대답이 무엇입니까? 11절을 보십시오. "위에서 주지 않으셨더라면 나를 해할 권한이 없었으리라" 예수님은 모함으로 억울하게 빌라도 앞에서 재판을 받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이 대답을 통해 우리는 지금 벌어지고 있는 비상식적이고 불법적인 모든 일들이 하나님의 뜻과 계획대로 이루어진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이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어린 양과 같이 구차히 변명하지 않으시고 잠잠히 십자가의 길을 가셨습니다.
 유대인들은 예수님이 흉악범이므로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요구했습니다. 그럼에도 빌라도가 석방하려고 하자 유대인들은 빌라도의 치명적인 약점을 물고 늘어졌습니다. 12절을 보십시오. "스스로 왕이라 하는 자는 가이사를 반역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로마의 반역자인데 그냥 놓아주면 가이사의 충신이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빌라도는 그들의 억지 주장에 짜증을 내며, 그들의 민족 감정에도 호소해 보았습니다. "내가 너희 왕을 십자가에 못 박으랴?" 그러나 빌라도가 언급한 "너희 왕" 이라는 이 말에 유대인들의 적개심이 더욱 불타올랐습니다. 마침내 "가이사 외에는 우리에게 왕이 없다"하고 빌라도에게 치명타를 날렸습니다. "가이사 외에는 우리에게 왕이 없나이다" 이 말은 로마 시민이라면 얼마든지 할 수 있는 말이었지만 하나님만이 그들의 유일한 왕이라고 여기며 오랜 이민족의 침략에도 한번도 다른 나라를 섬긴 적이 없다고 정신승리해온 유대인들의 입에서 나올 수 있는 말은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신성모독을 했다고 고발했지만, 왕 되신 하나님을 부인하는 그들이야말로 신성모독의 죄를 범하고 있었습니다. 빌라도 역시 무리들의 이 말에는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도록 내어주고 말았습니다. 17절을 보십시오. 예수님은 이제 군병들에 이끌리어 십자가를 지고 "해골(골고다)"라고 하는 곳에 나아가셨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십자가에 못 박히셨습니다. 다음은 위키 백과사전에 설명된 십자가형에 대해 간추린 내용입니다. “십자가형은 로마 제국 시대까지 존재했던 악명 높은 법정 최고형으로 사형의 역사를 모조리 뒤져도 이에 견줄만한 형벌은 천천히 온몸을 회를 뜨며 죽이는 능지형 정도밖에 없을 정도로 잔인한 형벌이다. 십자가형을 언도받은 사형수에게는 우선 채찍질을 가한다. 날카로운 뼛조각, 쇳조각, 가시 등이 박혀 있는 서른 아홉 가닥의 가죽으로 만든 채찍을 하루 동안 물에 불린 후 어깨부터 시작하여 등, 팔, 가슴, 복부, 엉덩이, 허벅지, 종아리, 정강이까지 전신을 무자비하게 폭행한다. 네로 황제가 폐위된 후 이 채찍 형을 당할 거라는 말을 듣고 자살할 정도로 채찍질은 그 자체로 무서운 형벌이었다. 채찍질을 가한 후 온 몸이 너덜너덜해진 사형수에게 직접 십자가를 짊어지게 하고 처형장까지 이동시킨다. 십자가를 들고 사형장으로 오면 십자가에 매달 준비를 한다. 우선 사형수의 속옷까지 모두 벗겨 나체로 만든다. 이후 사형수를 십자가에 눕히고 손목과 발뒤꿈치에 각각 7인치에서 5인치 정도의 대못을 박는다. 손 자체가 인체에서 촉감이 가장 발달한 곳이라 대못을 박으면 상당한 고통이 따르고, 못이 박힌 채로 십자가가 세워지면 몸무게로 인해 못 박힌 상처가 점차 찢어지면서 더욱 고통을 겪게 된다. 발을 올리는 받침대는 비스듬하거나 아예 없기도 했다. 얼핏 보면 채찍이나 못 박히는 것에 비해 십자가에 매달리는 것 자체는 별로 고통스러워 보이지 않지만 최악의 고통은 이제부터 시작된다. 우선 못 박힌 상처에 몸무게만큼의 압력이 가해져 고통이 극대화된다. 못 박힌 팔이 죄수의 몸무게 때문에 늘어나다 결국 양쪽 어깨가 탈골된다. 탈골 후에도 여전히 고정되어 있는 팔과 탈골되어 밑으로 처진 몸통 때문에 폐와 횡격막은 강제로 숨을 '들이쉬는 상태'가 된다. 사형수는 본능적으로 숨을 내뱉기 위해 몸을 들어 올리려고 하는데 이 때 못에 고정된 발목에 힘을 줘야 해서 다시 고통을 겪게 된다. 간신히 밀려오는 고통을 참고 몸을 들어 올려서 숨을 내쉰 후에 아프기도 하고 지치기도 해서 다리와 발목에 힘을 빼면 몸이 밑으로 쳐지면서 또다시 숨을 못 쉬게 되어 처음의 숨을 쉬는 과정을 반복해야 한다. 그런 행동을 반복하는 동안 채찍에 맞은 곳과 못 박힌 곳의 출혈로 저혈량성 쇼크에 빠지게 된다. 이 상태가 되면 심장이 더 이상 피를 퍼 올리지 않게 되고, 혈압이 떨어져서 정신이 몽롱해지거나 기절한다. 그리고 콩팥은 남아 있는 피의 양을 유지하기 위해 소변 만드는 일을 중단하고, 몸은 흘린 피를 보충하기 위해 액체를 요구하게 되기 때문에 죄수는 매우 목이 마르게 된다. 못 박힌 상태에서 대략 1,000번 정도 기절했다 깨었다를 반복하며 호흡수가 줄어들면서 질식사하거나 혹은 호흡 산독증에 빠져 심장이 불규칙하게 뛰다가 터지며 사망한다. 로마인들은 십자가에 못 박힌 고통을 설명할 마땅한 단어가 없어서 '미칠 듯한 고통'이라는 뜻의 'excruciating'이라는 새로운 단어를 만들어야 했다.”
 17,18절을 다시 보십시오. ”그들이 예수를 맡으매 예수께서 자기의 십자가를 지시고 해골이라 하는 곳에 나가시니 그들이 거기서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을새“ 왜 하나님께서는 죄가 없는 자기 아들을 인류가 고안해낸 가장 잔인한 방법인 십자가에서 죽게 하신 것입니까?
첫째, 인간들의 죄악을 드러내기 위해서였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죄인으로 고발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해 거꾸로 인간들의 죄가 무엇인지 고발하십니다. 예수님의 십자가가 고발하는 인간들의 죄는 무엇입니까?
첫째로, 왕으로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을 배척하고 죽인 죄입니다. 유대인들이 만일 예수님을 순수한 마음으로 알려고 했다면, 예수님이 그들에게 베푸신 이적을 보고 또 때마다 가르쳐 주신 신령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가 바로 그들이 기다리던 메시아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깨달았을 것입니다. 깨달았으면 마땅히 예수님을 왕으로 영접하고 믿고 순종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자기들 손에 원하는 것을 쥐어주는 정치적인 메시아를 기대했습니다.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배불리 먹은 후에는 왕으로 인정했지만 회개의 세례를 전파하고 천국복음을 전하시고 끝까지 사람들의 요구보다 하나님의 뜻대로 십자가의 길을 가고자 하시는 예수님에게는 등을 돌렸습니다. "없이 하소서 없이 하소서 그를 십자가에 못박게 하소서… 가이사 외에는 우리에게 왕이 없나이다.(15)" 예수님의 십자가는 자신들의 진정한 왕이신 예수님을 거부하고 가이사를 왕으로 삼아 하나님을 대적하는 인간들의 죄를 고발합니다. 또 역설적으로 예수님께서 우리 모든 인생들의 진정한 왕이 되심을 드러냅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십자가를 바라보며 하나님 대신 가이사를 왕으로 모시고 살았던 것을 회개하고 예수님을 나의 왕으로 영접하고 예수님을 따르는 삶을 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둘째로, 예수님의 십자가는 자기 유익을 위해 진리를 외면하는 사람들의 죄를 고발합니다. 빌라도가 보인 행동은 죄인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좀 애매한 면이 있습니다. 언뜻 보면 빌라도는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에 적극적으로 가담한 것처럼 보이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는 유대인의 모함에 속지 않고 예수님의 무죄를 정확히 판단했습니다. 게다가 유대인들의 압력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을 석방하려고 나름 노력했습니다. 그렇다면 빌라도의 문제가 무엇입니까? 빌라도의 인생이 꼬이기 시작한 출발점은 어디였을까요? 빌라도가 밖으로 나가서(8:29) 이에 빌라도가 다시 관정에 들어가(8:33) 다시 유대인들에게 나가서(8:38) 이를 볼 때 빌라도 인생의 비극은 왔다 갔다 한데서부터 시작합니다. 관정 밖에는 유월절을 앞두고 이방인의 집에 들어가지 않는 풍습을 좇아 무리들이 진을 치고 있었고 관정 안에는 심문 당하시는 예수님이 계셨습니다. 빌라도는 양쪽을 왔다 갔다 했습니다. 그는 무리들의 요구도 들어주고 예수님도 풀어주고 싶었을 것입니다. 이런 빌라도의 모습은 어느 한 편에 서지 않고 양쪽 모두를 만족시키기 위해서 양다리 걸치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죄를 고발합니다. 양다리 신앙은 처음에야 양쪽 모두의 지지를 받는 것처럼 보이지만 언젠가는 자기유익을 좇아 진리를 외면하는 순간이 오고 그로인해 양쪽 모두에게서 버림을 받게 됩니다. 물론 빌라도는 자신이 예수님을 죽인 것이 아니라, 유대인들이 죽였다고 항변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사형 판결문에 최종 서명한 사람이 바로 빌라도라는 역사적 사실은 결코 변하지 않습니다.
둘째, 하나님께서 하나뿐인 아들을 십자가에 내어주신 것은 인간들의 죄악을 용서해주시기 위해서였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바라볼 때 우리는 우리가 저지른 죄가 얼마나 무서운 결과를 가져 오는가 깨닫게 됩니다. 사람들은 죄를 커피 한잔 마시는 것처럼 가볍게 생각하고 죄 짓기를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죄는 결코 가벼운 것이 아니며 무서운 결과를 초래한다는 것을 십자가가 우리에게 가르쳐 줍니다. 죄는 즐길만한 것이 아닙니다. 죄를 지으면 우리의 양심은 가시에 찔리고 채찍에 맞는 듯한 고통을 겪게 됩니다. 시간이 지나 고통에는 둔해질 수 있어도 그 흔적은 지워지지 않습니다. 남몰래 지은 죄가 드러나기라도 하면 발가벗겨진 것처럼 수치심을 느끼게 됩니다. 사람들로부터 조롱과 멸시를 당하기도 합니다. 최후에는 심판을 받고 하나님께 버림받아 지옥 불에 떨어지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못 박혀야 할 그 십자가에 죄 없으신 예수님을 대신 못 박게 하셨습니다. 우리가 맞아야 할 채찍을 예수님이 맞게 하시고 우리가 당해야 할 조롱과 수치를 예수님이 대신 당하게 하셨습니다. 일찍이 이사야 선지자는 예수님의 고난과 죽음의 이유에 대해 다음과 같이 예언했습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사53:5)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신 이유는 바로 우리의 허물과 죄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거부하는 죄인들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하나뿐인 아들의 생명을 내어 주셨습니다. 저에게는 세 자녀가 있습니다. 다 사랑스럽지만 막내가 제일 이쁩니다. 막내 다니엘이 막 걷기 시작했을 때 아이 손을 잡고 걸어가다가 제가 잠간 딴 생각을 하는 바람에 아이가 인도 옆으로 미끄러져 무릎이 까진 적이 있습니다. 그날 밤 저는 자책과 미안함과 슬픔으로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자식 무릎의 작은 상처에도 부모의 마음은 찢어지는데 귀한 아들을 흉악한 죄인들을 위해 십자가에 내어 준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죄로 죽을 우리들을 사랑하셔서, 우리들을 살리기 위해 가장 귀한 독생자 예수님을 십자가에 내어 주셨습니다. 요한일서 4:10절은 말씀합니다.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 저를 비롯해서 여러분들도 창문너머로 십자가가 보일 때마다 죄가 얼마나 무섭고 끔찍한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크고 놀라운가 묵상하고 감사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28절을 보십시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물과 피를 다 쏟으셨습니다. 심한 탈수와 밀려오는 통증으로 너무나 고통스러우셨습니다. 그러나 그 가운데서도 예수님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모든 일들이 이미 이루어진 줄 아시고 내가 목마르다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신포도주를 드신 후 "다 이루었다" 하시고 영혼이 떠나가셨습니다. "다 이루었다" 그런데 말씀과 달리 예수님은 다 이루지 못한 것처럼 보입니다. 예수님은 젊은 나이에 뜻을 펼쳐 보지도 못하고 억울하게 요절하셨습니다. 3년 동안 온 마음을 다해 사랑하고 섬겨주었던 제자들은 다 도망갔습니다. 개중에는 예수님을 돈 몇 푼에 팔아 넘긴 가룟 유다도 있었습니다. 무리들은 예수님께 많은 은혜를 받았으면서도 예수님을 십자가에 넘겨주며 은혜를 배반했습니다. 예수님의 인생은 십자가 때문에 실패하고 십자기 때문에 미완성인 채 끝나버렸다고 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십자가에 죽으시면서 "다 이루었다"고 선포하셨습니다. 과연 예수님은 무엇을 다 이루셨다는 것입니까? ‘다 이루었다’는 말은 예수님께서 인류의 구원에 필요한 모든 것을 다 완성하셨다는 것입니다. 이는 구원을 위해 우리에게 요구되는 것이 전혀 없다는 말입니다.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강호동이 꼬마 아이에게 "어른이 되면 어떤 사람이 될 거에요?" 물었습니다. 아이가 가만히 있자 옆에 있던 이경규가 "빨리 훌륭한 사람이 되겠다고 해" 다그치며 말했습니다. 그러자 이효리가 "뭘 훌륭한 사람이 되, 그냥 아무나 되!" 말했습니다. ‘아무나 되라’는 그녀의 말에 많은 사람들이 위안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세상은 우리에게 끊임없이 무언가를 이루라고 요구합니다. 노력해서 좋은 성적을 내라고 하고, 좋은 스펙을 쌓으라고 하고 훌륭한 인격을 갖추라고 합니다. "너희들이 다 이루어라" “더 많이 이루어라”라고 합니다. 불교에서는 욕망을 다 버려서 해탈에 이르고 스스로의 힘으로 열반에 들어가라고 말합니다. 유교에서는 열심히 인격 수양을 해서 군자가 되라고 말합니다. 모두 다 하나같이 네가, 인간이 이루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오직 예수님만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다 이루었다” “내가 다 이루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스스로 구원을 이루라고 말씀하시거나 ‘내가 대부분 이룰 테니 너도 무언가 좀 해야 되지 않겠니?’하지 않으셨습니다.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고 선포하신 예수님을 하나님이 보내신 구원자로 깊이 영접하고 이 사실을 믿기만을 원하십니다.
 한 네티즌이 어렸을 때 길가는 사람들을 보면 그냥 지나가는 아저씨, 아줌마들로 보였는데 조금 인생을 살아보니 한 사람 한 사람이 태산과 같은 짐을 지고 살아가는 특별한 사람들로 보였다고 했습니다. 사람마다 겉보기와는 다르게 다른 사람이 알 수도, 이해할 수도 없는 인생의 짐으로 인한 고통과 슬픔이 있습니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여 혼자 붙들고 신음하는 죄 문제가 있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이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습니까? 바로 나의 죄를 위해 대신 죽으시고 구원역사를 다 이루신 예수님의 십자가를 바라보면 됩니다. 요한복음 3:16절은 말씀합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단순히 믿기만 하면 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됩니다. 믿기만 하면 우리에게 놀라운 죄사함의 은혜가 임하고 구원의 기쁨이 영혼 깊숙한 곳에서부터 샘솟게 됩니다. 믿기만 하면 진리를 알게 되고 그 진리가 우리를 죄로부터 자유하게 합니다. 우리 대신 십자가에 달려 죄사함과 구원을 온전히 다 이루신 예수님의 은혜와 사랑에 감사와 찬양을 드립니다.

십자가에서 다 이루신 구원과 사랑은 저에게도 임했습니다. 저는 1972년 2남중 장남으로 태어났습니다. 어렸을 때 저희 집은 계란 한 개, 한 판이 아니라 한 개를 외상으로 사서 먹어야 할 때가 있을 만큼 가난했습니다. 비록 가난하고 고달프게 사셨지만 학교에서 받아온 저의 성적표를 보시고 기뻐하시는 부모님 때문에 한 눈 팔지 않고 열심히 공부해서 재수를 거쳐 1993년 경희대 치과대학에 입학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학교 집 학원이 세상의 전부였던 저에게 대학은 딴 세상이었습니다. 뭐에 한번 꽂히면 끝을 보고마는 성격인데 하필 노는 거에 꽂히고 말았습니다. 당구장 만화방 노래방을 전전하고 날마다 벌어지는 이 모임 저 모임 술판에 출석도장을 찍었습니다. 숙취 때문에 못 일어나고 집에서 자거나 억지로 일어나 학교에 와서도 강의실에 들어가지 않고 의약관 앞 벤치에 누워 자는 날이 많았습니다. 그러다가 결국 예과 2학년 2학기 출석을 거의 하지 않은 두 과목에서 F를 맞고 유급 위기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UBF 목자님들의 도움으로 간신히 한 과목에서 구제를 받고 계절 학기를 듣는 중에 1993년 밀알동산 여름수양회에 끌려오게 되었습니다. 수양회 전날까지 술을 마시는 바람에 막상 수양회 첫날에는 술이 덜 깬 상태로 비몽사몽 지내다가 라이프 강사들의 인생 소감을 듣고 잠이 확 깨게 되었습니다. 부끄러운 죄문제들, 숨기고 싶은 인생문제들, 어두운 내면문제 등을 쏟아내며 뭐가 그리 좋은지 환하게 웃는 모습이 보기 좋았고 나도 저 사람들처럼 나를 얽매고 있는 무언가로부터 자유롭고 싶다는 소원이 생겼습니다. 소감을 써라 못 쓴다 쓴 소감을 앞에 나가서 발표해라 못한다 밤새 일대일 목자님과 씨름하다가 빨리 쓰고 자야겠다는 생각에 대충 소감이라는 것을 쓰고 사람들 앞에서 발표했는데 신기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성령께서는 저의 무기력하고 무절제한 생활이 대학의 낭만이 아니라 하나님을 떠난 인간의 죄악된 모습의 일부임을 깨닫게 하시고 그 때부터 진지하게 말씀을 듣게 하셨습니다. 마태복음 9:2 소자야 안심하라 네 죄사함을 받았느니라 말씀 앞에서 저의 부끄러운 정욕의 죄, 무기력 무절제하게 살며 인생을 허비한 죄를 고백하게 하시고 십자가에 높이 달리신 예수님께 모든 죄짐을 내려놓게 하셨습니다. 수양회 가기 전 무기력하고 무절제한 삶 때문에 꼬일 대로 꼬여버린 인간관계와 망가질 대로 망가져버린 학교생활 등으로 태산처럼 무거웠던 마음이 돌아오는 길에는 솜털처럼 가벼워졌습니다. 그날 이후 저는 예수님께 꽂혀서 오늘까지 30년 가까이 캠퍼스 지성인들을 섬기는 목자요 성경선생으로 살게 되었습니다. 돌아보면 평신도 치과의사로서 때론 빌라도처럼 세상과 예수님 사이에서 이쪽 저쪽 양다리 걸치며 살다가 나와 내 가정의 안위를 위해 하나님의 뜻을 외면할 때도 있었습니다. 무리들처럼 하는 일이 잘 풀려서 등 따시고 배부를 때는 ‘역시 예수님이 최고야’ 하다가도 나의 필요와 기도를 외면하시는 것처럼 보일 때에는 “가이사 외에는 우리에게 왕이 없나이다” 반발하며 예수님을 십자가로 내몰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세월이 흘러도 변화되지 않은 자신과 손과 발이 묶여버린 코로나 시대의 시작으로 인해 캠퍼스 지성인들을 향한 구원역사는 더 이상 이루어지지 않고 미완성인 채로 끝날 거 같아 보였습니다. 하지만 구원역사는 이미 2000년 전 십자가 상에서 예수님께서 물과 피를 쏟으시며 다 이루셨습니다. 인간이 아무리 죄악되고 부족해도, 사단이 아무리 집요하게 방해해도, 시대가 아무리 어렵고 혼란스려워도 창세기 3:15절부터 시작된 하나님의 구원역사는 예수님의 십자가로인해 완성되었고 우리는 그것을 믿으면 된다고 하십니다. 제가 다 이루었다 하시는 예수님과 그 예수님을 통해 이미 다 이루신 하나님의 구원역사를 믿고 먼저 저에게 임한 죄사함과 구원의 기쁨을 누리는 자가 되겠습니다. 이 복되고 기쁜 소식을 캠퍼스 지성인들에게 전하는 십자가의 증인으로 사는 자가 되겠습니다.

  결론적으로, 예수님은 “다 이루었다” 하시고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하나님의 구원역사를 완성하셨고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확증하셨습니다. 우리가 십자가에서 보여주신 예수님의 사랑을 깊이 영접하고 구원과 죄사함의 은혜가 충만한 복된 인생을 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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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8 골로새서 [2021년 신년 제1강]만물의 으뜸이 되신 그리스도 관리자 2020-12-27 972
677 누가복음 [2020년 성탄 제2강]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 관리자 2020-12-20 941
676 누가복음 [2020년 성탄 제1강]영원한 왕, 무궁한 나라 관리자 2020-12-13 876
675 마태복음 [2020년 마태복음 제38강]양과 염소의 비유 관리자 2020-12-06 1407
674 마태복음 [2020년 마태복음 제37강]착하고 충성된 종 관리자 2020-11-29 1089
673 마태복음 [2020년 마태복음 제36강]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 관리자 2020-11-21 1230
672 하박국 [2020년 추수감사절 특강]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관리자 2020-11-15 1262
671 마태복음 [2020년 마태복음 제35강]화 있을진저 관리자 2020-11-08 1011
670 마태복음 [2020년 마태복음 제34강]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관리자 2020-10-31 989
669 마태복음 [2020년 마태복음 제33강]임금의 아들의 혼인 잔치 관리자 2020-10-25 1101
668 마태복음 [2020년 마태복음 제32강]열매 맺는 백성이 받으리라 관리자 2020-10-18 897
667 마태복음 [2020년 마태복음 제31강 ]나귀를 타고 입성하신 예수님 관리자 2020-10-11 1005
666 마태복음 [2020년 마태복음 제30강]섬기러 오신 예수님 관리자 2020-10-04 1128
665 마태복음 [2020년 마태복음 제29강]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리라 관리자 2020-09-26 1061
664 마태복음 [2020년 마태복음 제28강]영생을 얻으려면 관리자 2020-09-20 926
663 마태복음 [2020년 마태복음 제27강]용서하라 관리자 2020-09-12 1035
662 마태복음 [2020년 마태복음 제26강]천국에서는 누가 큽니까 관리자 2020-09-06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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