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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nday Worship Message
주일예배메시지

작성자 리스닝
작성일 2010-08-15 (일) 12:45
분 류 야고보서
첨부#1 2010야고보서2-1이사가랴.hwp (26KB) (Down: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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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야고보서제2강]참된 믿음
2010년 야고보서 2강                                                            이 사가랴

참된 믿음

말씀:야고보서 2:1-26
요절:야고보서 2:26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오늘 말씀에서는 신자로서 사람을 차별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가 나와 있습니다. 또한 행함이 따르는 믿음에 대해 가르쳐줍니다. 오늘날 신자라 하면서도 말은 잘 하지만 행함이 없어서 세상 사람들로부터 욕을 먹는 경우가 많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참된 믿음을 배워서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신앙생활을 하고 또 사람들로부터 존경받는 참된 신자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1. 사람을 차별하여 대하지 말라(1-13)
  1절을 보십시오. “ 내 형제들아 영광의 주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너희가 가졌으니 사람을 차별하여 대하지 말라” 먼저 야고보는 신자들을 ‘영광의 주 곧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가진 자’라고 합니다. 이는 신자의 정체성을 말합니다. 신자는 어떤 존재입니까? 바로 예수님에 대한 믿음을 가진 자들입니다. 이 믿음으로 구원받고 예수님 안에서 한 형제자매가 되었습니다. 그러기에 사람을 차별해서는 안됩니다. 초대교회에서는 신자들이 가난하였고 노예나 종 등 신분도 하층민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차별이 있을 것 같았는데 오히려 차별이 없었습니다. 초대교회의 신자들은 구원의 은혜가 분명하였고 한 주를 섬기는 한 가족이요 함께 부르심 받은 신앙공동체로서 분명한 정체성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서로 사랑하라는 주님의 명령에 복종하여 필요한 것이 있으면 같이 나누고 같이 썼습니다. 그리고 더 어려운 사람들을 구제하는데 열심을 다했습니다. 그러나 교회가 안정기에 접어들게 되자 서서히 차별이 생겨난듯합니다. 부자들은 자기 자랑하기에 바빠지고 가난한 자들은 가난에 대한 운명주의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세상모임에서는 취미나 직업 등이 같은 사람들끼리 모이기에 어느 정도 일치감이 있어 차별이 적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다양한 사람들이 모이는 교회이기에 세상모임보다 더 차별이 생겨날 가능성이 있었습니다.
  2절을 보십시오. 차별의 예가 나오고 있습니다. “만일 너희 회당에 금가락지를 끼고 아름다운 옷을 입은 사람이 들어오고 또 남루한 옷을 입은 가난한 사람이 들어올 때에” 여기서 ‘금가락지를 끼고 아름다운 옷을 입은 사람’은 부자이면서 사회적인 지위가 높은 사람을 뜻합니다. 만일 부자이고 고위층 사람이 교회에 들어올 때는 좋은 자리에 앉게 안내를 하고 남루한 옷 입은 가난한 사람에게는 서있게 하든지 아니면 발등상 아래에 앉게 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가난한 사람의 마음에 얼마나 큰 상처가 되겠습니까? 우리 모임만 해도 개척 초기에는 대개가 사색하는 니고데모족속, 또는 놀기 좋아하는 사마리아족속, 또는 무기력하게 드러누워 있는 중풍병자족속 등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들었습니다. 그런데도 교회 안에서는 전혀 차별 없이 화기애애하게 양들에게 전폭적인 관심과 사랑을 다하였습니다. 양들은 교회에만 들어오면 황태자요 황공주의 대우를 받으며 잘 성장하였습니다. 그런데 우리 모임이 연륜이 쌓이고 안정기에 접어들면서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이전에 양이었지만 이제는 목자가 되고 사회적으로는 인정받는 위치에 있게 되었습니다. 사회적 지위가 높아지면서 같은 직업군이나 같은 팀 간의 관심은 있지만 낯 설은 형제나 자매들에 대해서는 선뜻 나서서 인사하지 못하고 무관심하게 지나치곤 합니다. 저 자신부터가 다른 요회의 양들에게는 관심 쓰지 못하고 차별하였던 죄가 있음을 인정하고 회개합니다. 교회 안에 있는 형제, 자매는 누구라도 차별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사람을 차별하는 것은 악한 생각으로 판단하는 것입니다.
  왜 차별해서는 안됩니까? 5,6절을 보십시오.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들을지어다 하나님이 세상에서 가난한 자를 택하사 믿음에 부요하게 하시고 또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나라를 상속으로 받게 하지 아니하셨느냐 너희는 도리어 가난한 자를 업신여겼도다 부자는 너희를 억압하며 법정으로 끌고 가지 아니하느냐” 가난한 자들은 오히려 하나님께서 택하시고 믿음에 부요하게 하십니다. 가난하기에 오히려 마음은 겸손하고 낮아져 있기에 하나님께서 쓰시기에 합당한 내면성과 믿음을 가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실제로 선교지에서도 초기 가난하고 힘든 때는 하나님만을 단순히 의지하며 열심히 개척역사를 섬겼습니다. 그런데 안정적이 되자 세상을 사랑하고 믿음이 변질되곤 합니다. 부자들은 그 마음이 대개가 이기적이어서 다른 사람들을 억압하기 잘합니다. 사건이 생기면 법정으로 끌고 가기 잘합니다. 가난한 자들의 이름을 비방하길 잘합니다. 사람을 차별하는 것은 사람간의 문제로 끝나지 않습니다. 어떤 문제가 있습니까?
  8,9절을 보십시오. “너희가 만일 성경에 기록된 대로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 하신 최고의 법을 지키면 잘하는 것이거니와 만일 너희가 사람을 차별하여 대하면 죄를 짓는 것이니 율법이 너희를 범법자로 정죄하리라” 사람을 차별하는 것은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는 계명을 어기는 것입니다. 이는 심각한 죄입니다. 미국에 있는 어떤 교회는 인종 차별이 심해서 백인들이 흑인을 교회에 들여놓지 않았습니다. 흑인 한 사람이 주일날 예배드리려 그 교회에 들어갔는데, 역시 쫓겨났습니다. 그는 너무 마음이 상하여 교회 밖에서 슬피 울었습니다. 이 때 주님의 음성을 듣게 되었습니다. “너무 슬퍼하지 말아라 저들이 너를 쫓아낸 것이 아니라 나를 쫓아 낸 것이다” 사람을 차별하는 것은 주님의 말씀을 거역하는 것이요 주님을 슬프시게 하는 죄입니다. 우리가 열심히 신앙생활 한다고 십일조 내고, 예배에 나오고, 양을 친다 하여도 서로 사랑하라는 계명을 어긴다면 죄인일 수밖에 없습니다. 이를 방치하게 되면 사람에 대한 시기와 살인까지 이르게 될 수도 있습니다. 일찍이 복음이 전파된 고린도 교회도 파벌과 차별 등의 문제가 심각하였습니다. 영적으로 깨어있지 않으면 우리는 세상의 가치관에 빠져 사람을 차별하는 오류에 빠질 수 있습니다. 우리는 ‘저 사람은 현재 어려운 문제를 가지고 있으니 내가 먼저 도움을 주고 관심을 가져야겠구나’ 하는 성숙한 믿음의 자세로 차별하려는 마음을 극복해야 하겠습니다.
  12절을 보십시오.“너희는 자유의 율법대로 심판 받을 자처럼 말도 하고 행하기도 하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율법은 우리 영혼을 얽어매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율법의 유래는 출애굽사건 직후로 거슬러 갑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제는 노예가 아니라 거룩한 백성이요 제사장나라가 되게 하려 하나님께서 시내 산에서 율법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야고보는 율법을 자유의 율법 또는 자유를 주는 율법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 율법을 주신 목적을 모르고 율법으로 판단하고 정죄한다면 우리도 우리의 행한 대로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율법대로 심판받습니다. 그러니 말을 함부로 하지 말고 행하기도 함부로 해서는 안됩니다. 13절을 보십시오. “긍휼을 행하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긍휼 없는 심판이 있으리라 긍휼은 심판을 이기고 자랑하느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해 두신 마음은 근본적으로 긍휼입니다. 범죄로 가득한 이 땅은 벌써 심판받아 멸망 받아 마땅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심판보다는 먼저 긍휼을 베푸십니다. 긍휼이 아니면 우리는 하나님의 심판을 면할 수가 없었습니다. 긍휼은 인간에게 구원을 가져다줍니다. 우리는 긍휼히 여기는 마음을 가져야겠습니다. 우리가 긍휼을 행하지 않는다면 우리 자신도 긍휼 없는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가난한 사람을 긍휼히 여겨야 하겠습니다. 궁핍한 사람들을 불쌍히 여겨야 하겠습니다. 이것이 곧 주님을 공경하는 것입니다.(잠14;31)

2. 행함과 믿음(14-26)
  14절을 보십시오. “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 ” 저자 야고보는 행함이 없는 믿음은 유익이 없다고 강조합니다. 믿는 자를 통하여 주위 사람들에게는 좋은 영향력이 끼쳐져야 합니다. 그뿐 아니라 믿는 자신의 삶에도 유익해야 합니다. 믿음으로 사는 데도 유익하지 않고 자신의 삶에 해롭다고 여겨진다면 무슨 필요가 있겠습니까? 15,16절은 그 실례가 나오고 있습니다. “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덥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일용할 양식이 없는 형제, 자매들에게는 여러 가지 위로의 말만 하고 그치기보다는 그 몸에 쓸 것과 먹을 것을 주는 것이 더욱 유익합니다. 행하지 않고 말로만 하는 신앙생활은 그 자체가 죽은 것입니다. 생명이 살아나는 역사가 전혀 없기 때문입니다. 믿는다고 하면서 가만히 앉아서 뭔가 일어나기를 고대해서는 안됩니다. 행함이 있는 믿음이 산 믿음이요 역사하는 힘이 있습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이 헛것이라는 증거는 무엇입니까? 18절에서는 ‘행함이 없으면 그 믿음이 보여 질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또한 19절에서는 귀신들도 믿고 떤다고 하였습니다. 한번은 예수님께서 거라사의 귀신 떼를 만났습니다. 그런데 귀신 떼들은 먼저 예수님을 알아보고 벌벌 떨었습니다. 이 귀신들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도 알고 있었습니다. 이런 점에서 귀신들은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귀신들이 믿음은 있었지만 결코 믿음의 행동은 없었습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헛것입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귀신들의 믿음입니다.  
  이제 야고보는 믿음으로 행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아브라함과 라합의 믿음을 통해 이를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21절을 보십시오.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그 아들 이삭을 제단에 바칠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우리는 창세기 공부를 통해서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에 대해 배웠습니다. 아브라함은 75세에 신앙출발을 했지만 하나님이 주실 줄 알았던 아들이 신앙생활 10년이 지나도록 얻지 못하자 마음에 불신이 생겼습니다. 그때 하나님이 그를 찾아와 그를 밖으로 데리고 나가 밤하늘을 보여주시며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말씀하셨습니다. 이때 아브라함은 이를 믿었습니다. 아브라함은 바랄 수 없는 중에도 약속하신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이를 그의 의로 여기셨습니다. 그리고 그의 이 믿음은 그가 아들 이삭을 제단에 바칠 때 행함으로 의롭다 함을 받았습니다. 그가 어떻게 신앙생활 25년 만에 얻은 독자 이삭을 이렇게 바칠 수 있었을까요? 이는 그가 하나님을 믿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마음속에 당장에 이삭이 어떻게 되든 하나님이 그 무엇인가를 하실 것이라고 분명히 믿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자식보다는 자식을 주신 하나님을 가장 사랑하였습니다. 뭇별을 셀 수 있는가 보라 할 때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은 그것이 이제 이삭을 번제로 바치는데서 그 행함으로 짝을 이루고 그 의가 확증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의 이 행함을 보고 더 이상 그를 훈련하지 않으시고 복의 근원으로 최종 확정하셨습니다. 그리고 그의 후손으로부터 인류의 구원자 메시야를 보내 주셨습니다.
  22절을 보십시오. “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하게 되었느니라” 믿음과 행함은 함께 갑니다. 믿는 곳에 행함이 있고 행하는 곳에서 하나님이 역사하십니다. 또한 행하면서 그 믿음은 온전하게 됩니다. 23절을 보십시오. 성경이 말하는 바대로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니 이것을 의로 여기셨다는 말씀이 이로써 이루어졌습니다. 그리고 그는 ‘하나님의 벗’이라 영광스러운 칭호를 갖게 되었습니다. 24절을 보십시오. ‘이로 보건대 사람이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고 믿음으로만은 아니니라’ 이로써 우리는 믿음으로도 의롭다함을 받고 또한 행함으로도 의롭다 함을 받아야 함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참고로 이 말씀이 로마서의 “이신칭의; 즉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와 어떤 차이가 있는 것인가요? 24절은 성경의 교리를 뜻하지 않습니다. 실천사항입니다. 로마서의 이신칭의는 교리입니다. 즉 믿음으로 구원 받는 게 성경의 가르침입니다. 그런데 이 믿음이란 이론적인 믿음이 아니라 행함이 있는 믿음이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기생 라합의 경우는 어떻습니까? 25절을 보십시오. “또 이와 같이 기생 라합이 사자들을 접대하여 다른 길로 나가게 할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여리고 성의 기생 라합은 소문을 통해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야 말로 상천하지의 하나님, 하늘과 땅에 유일하신 하나님이심을 믿게 되었습니다. 이제까지 여리고 사람들이 믿어온 신들, 그것들은 모두 가짜 신이었습니다. 라합은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 것만이 자기와 자기 가족이 살 수 있는 유일할 길임을 믿었습니다. 그래서 라합은 이스라엘의 정탐꾼들이 왔을 때 그들을 영접하고 그들을 감추어주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안전하게 도망갈 수 있는 길을 가르쳐주었습니다. 이는 얼핏 보면 같은 성 여리고 사람들에 대한 배신행위같이 보입니다. 그러나 이는 그런 문제가 아닙니다. 참신을 믿고 구원받을 것인가 아니면 거짓 우상을 믿고 심판 받을 것인가? 참과 거짓 사이의 선택적 결단이었습니다. 라합은 여호와 하나님만이 상천하지의 하나님, 천지를 창조하신 참 신이심을 믿었기 때문에 이 모든 것을 할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마음에 믿음이 있는 사람들은 결국에 그 믿음을 따라 용감하게 행함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믿음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의롭다 함을 받고 구원을 얻으며 하나님께 쓰임 받습니다.  
  26절을 보십시오.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이것이 본문의 결론입니다. 우리 몸에서 영혼이 떠나면 우리 몸은 그야말로 시체입니다. 마찬가지로 믿는다 하면서 행함이 없다면 그 믿음 역시 시체 같이 아무 것도 아닙니다. 행함 없는 죽은 믿음, 영혼 없는 믿음이 무엇을 이룰 수 있겠습니까? 우리 모임은 단순히 믿음만으로 성장한 것은 아닙니다. 믿음과 함께 캠퍼스 지성인들을 일대일로 가르치는 행함이 늘 있어왔습니다. 지난 50년간 우여곡절 속에서도 우리 모임은 제자양성의 좋은 모델로 자리매김하였습니다. 이는 믿음과 행함이 함께 하였기 때문입니다. 만일 우리에게 ‘양을 치고 섬기는 행함’이 없었다면 그 믿음도 헛된 것이고 오늘날과 같이 성장할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어느 상황에서라도 지성인들에게 말씀을 전하려는 행함이 있을 때 믿음이 온전해지고 성장이 지속되었습니다. 믿음은 이론이나 사상이 아닙니다. 실제적인 행함이 있어야 합니다.
  저도 신앙생활 초기 기도하고 소감 쓰고 반복되는 신앙생활에 방향을 상실한 적이 있었습니다. 적당히 기도제목을 제시하고 마치 양을 섬기는 척, 목자인 척, 남들에게 보이며 시간을 보내왔습니다. 그런데 저의 문제를 알고 계신 목자님께서는 양들을 섬기고자 기도한다면 구체적으로는 무엇을 하고 있는지 질문하였습니다. 저는 양을 위해 아무것도 하는 게 없었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있어도 자기를 위해 쉬기만 하고 즐기고자 하여왔던 자신을 깨닫고 깊이 회개하였습니다. 양을 위해 시간과 물질을 드리고자 결단하고 캠퍼스로 오르며 행하는 믿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어떤 문제가 생기거나 환난이 생기면 저는 회개하는 자세로 캠퍼스로 오르고 양들을 만나고 돕는 행함을 이루어왔습니다. 항시 결단하고 캠퍼스를 오르면 그때마다 도움이 필요한 양들을 만나고 말씀을 전할 수 있었습니다. 제가 앞으로도 맡겨주신 지성인 복음역사에 행하는 목자로 쓰임 받게 되기 기도합니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오늘 말씀을 통해 믿음과 행함은 동전의 양면과 같이 항상 함께 하는 것임을 배우게 됩니다. 믿음과 행함은 배를 저어가는 두 개의 노와도 같습니다. 행함의 노는 두고 믿음의 노만을 열심히 저으면 배는 그냥 제자리에서 뱅뱅 돌뿐입니다. 믿음의 노와 행함의 노 두 개를 함께 저을 때 우리 인생의 배가 균형을 유지하고 앞으로 나가 마침내 천국에 도달할 수 있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가 내면이 연약하여 아직 믿는 만큼 행하는 데는 여러 면에서 부족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참된 믿음과 행함에 대해 깊은 문제의식을 가지고 기도해나갈 때 우리는 성장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부족하지만 이번 가을학기 믿음과 행함이 함께 함으로써 하나님이 의롭다고 인정하시는 믿음의 성장을 이룰 수 있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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