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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nday Worship Message
주일예배메시지

작성자 리스닝
작성일 2010-08-29 (일) 12:29
분 류 야고보서
첨부#1 2010야고보서4-1.hwp (27KB) (Down:101)
ㆍ추천: 0  ㆍ조회: 2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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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야고보서제4강]하나님을 가까이 하라
2010년 가을학기 준비 공부 야고보서 제 4 강                                                    이재풍

하나님을 가까이 하라

말씀: 야고보서 4:1-17
요절: 야고보서 4:8 “하나님을 가까이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하시리라 죄인들아 손을 깨끗이 하라.    두 마음을 품은 자들아 마음을 성결하게 하라”                                              

 끝 더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조금만 지나면 날이 선선해 질 것입니다. 이제 가을학기를 섬겨야 할 이 때에 우리가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하는지 실제적인 신앙생활을 점검하는 시간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지난 3강이 개인을 위한 교훈이라면 오늘 말씀은 교회공동체에게 주는 교훈입니다. 오늘 이 시간 우리 교회공동체를 돌아보며 또한 자신을 돌아보며 가을학기를 준비하는 시간이 되길 기도합니다. 또한 말씀을 통해 싸움과 다툼의 원인이 무엇이며 인생의 계획을 어떤 자세로 세워야 하는 지 배우는 시간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제 1 장 하나님을 가까이 하라(1-10)

 본문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뉩니다. 전반부(1-6)는 성도간의 다툼의 원인이 무엇인지 후반부(7-10)는 이를 극복하는 비결이 무엇인지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1a절을 보십시오. “너희 중에 싸움이 어디로부터 다툼이 어디로부터 나느냐” 여기서 ‘너희 중’은 본 서신의 모든 수신자들, 곧 본서를 받아볼 교회를 가리킵니다. 야고보는 신자들을 책망하고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이야 싸울 수가 있고 감정대로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신자요 지체인 너희들도 그러느냐며 책망하고 있습니다. 세상은 싸워서 문제를 해결합니다. 이것이 세상 지혜입니다. 그러나 신자는 싸울 일이 있어도 이해하고 영접해야 합니다. 싸움과 다툼이 생기면 보통 문제의 원인을 외적인 것이나 상대방에서 다른데서 찾습니다. 그러나 저자는 이러한 분쟁의 참 원인을 말하고 있습니다. 분쟁의 근본적인 원인이 무엇이라고 합니까? 1b을 읽어 보시겠습니다. “너희 지체 중에서 싸우는 정욕으로부터 나는 것이 아니냐” 저자는 ‘싸움과 다툼’의 원인이 인간의 지체 안에서 갈등을 일으키는 육체의 ‘정욕’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 원인이 내 속에 있다는 것입니다. 정욕은 ‘desires'로 우리의 본성을 말합니다. 인간은 근본적으로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이어서 본성대로 두면 싸울 수밖에 없습니다. 본성으로는 상대방을 이해하고 배려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께 나아가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면 왜 싸울 수밖에 없는 것입니까? 2a절을 보십시오. “너희는 욕심을 내어도 얻지 못하여 살인하며 시기하여도 능히 취하지 못하므로 다투고 싸우는도다” 사람들은 욕심을 내도 얻을 수가 없습니다. 결국 욕구불만이 생기게 됩니다. 그래서 살인하고 시기하기도 합니다. 살인과 시기와 같은 죄악으로는 결코 자신들의 욕망을 채울 수 없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결국 우리의 노력으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음을 말해 줍니다. 왜 우리가 얻을 수 없는 것입니까? 2b을 보십시오.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하기 때문이요” 저자는 그들이 원하는 바를 얻지 못하는 이유는 하나님께 구하지 아니하고 인간적인 방법으로 얻으려 하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인간적인 방법은 한계가 있습니다. 따라서 성도들은 전능하신 하나님께 모든 것을 의뢰하며 구하는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그럴 때 비로소 자신들이 원하는 바를 얻을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기도를 해도 받을 수 없을 때가 있습니다. 3절을 보십시오.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하기 때문이라”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하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정욕으로 쓴다는 것은 자기를 위해서 개인의 욕망과 욕심을 위해 기도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는 주시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을 따라 진실 되고 참되게 구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들어 주십니다.

 교회 공동체라고 해서 싸움과 다툼이 없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싸우지 않고 화평하려면 신자 한 사람 한 사람이 하나님 중심적인 사람이 되어야 하고 하나님의 뜻을 앞세우며 하나님께 영광돌리고자 애를 써야 합니다. 자신의 유익보다 하나님께 유익이 되도록 애써야 합니다. 또한 이것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면 싸울 일이 없게 됩니다.  싸움과 다툼이 생길 때 외부에서 상대방에게서 원인을 찾고자 한다면 문제가 해결되지 않습니다. 우리가 다른 데서 문제를 찾지 않고 야곱과 같이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홀로 서서 하나님과 씨름해야 하겠습니다.

4절을 보십시오. “간음하는 여인들아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과 원수 됨을 알지 못하느냐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 되는 것이니라”  성경에서 간음의 의미는 하나님과 세상을 동시에 사랑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 말은 구약 시대에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간의 언약관계를 결혼으로 상징화하면서 유래되었습니다(사54:4). 즉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신부로서 그와 맺은 언약을 잘 지켜야 했는데 그들이 신앙의 정조를 버리고(호5:7)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아니했을 때 성경 기자들은 이를 간음 혹은 행음 등으로 표현 하였습니다(렘3:7-10;호9:1). 바로 이와 같은 의미에서 저자는 하나님의 뜻을 배반하고 세상의 정욕을 좇아 사는 이 서신의 수신자들을 ‘간음하는 여인’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정한 마음으로 하나님만을 사랑하고 하나님만을 섬겨야 했습니다. 그러나 다른 것을 같이 사랑하거나 다른 것을 사랑하면 간음하는 것입니다.
 또한 야고보는 영적인 간음 행위가 ‘세상과 벗’하는 삶이요, 결과적으로 하나님과 원수되는 것임을 밝히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세상을 사랑하면서도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다고 말하지만 그럴 수 없는 것입니다. 사실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는 일은 불가능합니다(마6:24). 따라서 세상과 벗하는 자는 하나님과 벗이 될 수 없습니다. 나아가 하나님과 세상 권세 잡은 사단과는 원수 관계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세상을 사랑하는 자는 하나님과 원수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세상을 사랑하게 되면 성령께서 어떻게 하십니까? 5절을 보십시오. “너희는 하나님이 우리 속에 거하게 하신 성령이 시기하기까지 사모한다 하신 말씀을 헛된 줄로 생각하느냐” 이 말씀은 성도들이 부정하여 하나님을 떠나 세상과 벗하였지만 남편된 하나님은 아내된 성도들을 사모하되 성령이 시기하기까지 사모한다는 것입니다(출20:5). 우리가 세상을 사랑하면 성령께서 시기하십니다. 사랑할 때 시기하고 질투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한 분만 사랑해야 하는데 세상을 사랑하면 성령께서 역사하실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과 세상을 동시에 사랑하면 안되겠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어떤 자에게 은혜를 주십니까? 6a을 보십시오. “그러나 더욱 큰 은혜를 주시나니”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세상 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그 이상의 은혜 , 영적인 은혜를 주신다는 것을 말합니다. 6b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일렀으되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하였느니라” 여기서 '교만한 자‘는 간음한 여인들, 세상과 벗하는 사람들을 의미합니다. 세상과 벗하는 사람은 하나님보다도 자신을 세상을 더 사랑합니다. 이들의 내면에는 하나님 없이도 할 수 있다는 마음, 하나님 없이 하겠다는 마음이 내재되어 있습니다. 결국 교만한 자입니다. 하나님을 사랑과 섬김과 복종의 대상으로 보았다면 이렇게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교만은 이와 같이 하나님께 대한 자세가 비뚤어진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교만한 자를 물리치십니다. 정말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의지하고 도우심을 구하는 사람은 세상을 돌아보지 않습니다. ‘겸손한 자’는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의 도우심이 없이는 세상을 살아갈 수 없음을 깨닫고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을 찾는 자를 말합니다. 이런 자에게는 반드시 은혜를 주십니다.
 
또한 우리가 어떠한 삶을 살아야 합니까?
7절을 보십시오. “그런즉 너희는 하나님께 복종할지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 ‘복종’은 하나님의 권위를 인정하는 것이요,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대하는 자가 가져야할 자세를 말합니다. 또한 하나님의 섭리에 자신을 온전히 맡기는 것입니다. ‘마귀를 대적하라’는 말은 당시 본서의 수신자들이 정욕에 따라 사는 삶을 살았던 사실을 염두에 둔 말씀입니다. 당시 본서 수신자들의 싸움과 다툼은 마귀의 영향을 받은 행동이었습니다. 즉 그들의 육신적인 욕망의 밑바탕에는 마귀의 충동이 자리 잡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야고보는 수신자들에게 하나님께 복종할 것을 명령하고 마귀를 대적하라고 명령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복종하며 마귀를 대적할 때 마귀는 힘을 쓰지 못하고 피하게 됩니다.
8a을 다같이 읽어 보시겠습니다. “하나님을 가까이 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하시리라” 이 말씀은 7절의 마귀를 대적하라는 말씀과 대조를 이룹니다. 마귀를 대적하는 행동은 필연적으로 하나님을 가까이 하도록 이끕니다. 여기서 ‘가까이 하라’는 말이 무슨 뜻입니까? 세상과 벗하는 삶을 포기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라는 말입니다. 그리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가까이 하시겠다고 하십니다.
 하나님을 가까이 한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이는 하나님을 사모하고 하나님과 교제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면 실제 삶 가운데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는 것일까요?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는 것을 들 수 있고 기도하는 것을 들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의지적으로 하나님께 가까이 가고자 투쟁하는 것입니다. 야고보는 ‘하나님을 가까이 하라’고 명령하고 있습니다. 가만히 있으면 자꾸 멀어지게 됩니다. 그리고 사단이 내 속에 역사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지금 하나님께 가까이 가고자 해야 합니다. 나중으로 미루다보면 하나님과 점점 멀어지게 됩니다. ‘가까운 이웃이 먼 사촌보다 낫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웃도 가까이 있으면 정이 생기게 됩니다. 그렇듯 우리도 자꾸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말씀 묵상이 중요합니다. 말씀 안에 하나님께서 계시기 때문입니다. 시편기자는 주야로 말씀을 묵상한다고 하였습니다. 또한 주일날 센타에서 식사 후에 소감을 깊이 있게 쓰는 것도 중요합니다. 또한 새벽을 깨워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할 수 있습니다. 또한 아침 일용할 양식을 먹으며 하나님께 다가갈 수 있습니다. 또한 센타에 주일날만 와서 예배만 드리는 것이 아니라 평일에도 센타에 오기를 즐겨할 수도 있습니다. 센타는 하나님 역사가 있는 곳이고 하나님의 양들이 있는 곳이고 동역자들이 있는 곳입니다. 센타에서 하나님 역사를 살피고 성도들과 교제하며 기도제목을 알 수도 있고 기도실에서 기도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가까이 하고자 할 때 영적인 비밀을 깨닫게 되고 더 큰 은혜를 얻을 수가 있습니다. 저절로 하나님께서 오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편애하는 분이 아니십니다. 하나님은 가까이 하고자 애쓰는 사람에게 가까이 다가가십니다. 그리고 그 사람을 통해서 역사하십니다. 호세아서 6장3절은 말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타나심은 새벽 빛 같이 어김없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 하니라” 우리가 여호와를 알고자 할 때 하나님께서는 이런 우리를 외면치 않으시고 우리에게 새벽 빛 같이, 비와 같이 임하여 주시고 다가와 주실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가기 위해서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8b을 보십시오. “죄인들아 손을 깨끗이 하라 두 마음을 품은 자들아 마음을 성결하게 하라” 이 말씀은 하나님을 가까이 할 때의 조건입니다. 여기서 ‘죄인들’과 ‘두 마음을 품은 자들’은 두 다른 종류의 사람들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같은 사람들을 행동과 마음의 양면적 측면에서 표현한 것입니다. 즉 당시 수신자들이 정욕대로 행했다는 면에서 죄인들이요, 하나님과 세상의 중간에 서 있으므로 두 마음을 품은 자들인 것입니다. 이러한 자들이 하나님께 가까이 가기 위해서는 손을 깨끗이 하고 마음을 성결케 해야 합니다. 여기서 손을 깨끗이 한다는 것은 의식적인 면에서 더러움을 깨끗이 씻어내는 것을 의미하는데, 이는 현재의 죄악된 삶에서 돌이켜 구체적으로 하나님을 믿는 자로서의 삶을 보여 주는 것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마음을 성결케 한다는 것은 내적인 면에서 하나님과 세상을 오가며 방황하는 ‘간음’하는 생활을 버리고 온전히 하나님만 바라보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렇게 볼 때 ‘깨끗함’과 ‘성결’은 결코 개별적인 사항이 아니라 하나의 행동임을 알 수 있는데 이를 한 마디로 표현하면 ‘회개’인 것입니다.

 9a을 보십시오. “슬퍼하며 애통하며 울지어다” 이는 죄에 대해 철처하게 애통해 하는 회개를 촉구하는 표현입니다. 이는 자기 죄의 비참함을 깨닫고 그 죄에 대해 철저히 진실되게 회개하라는 말입니다. 9b을 보십시오. “너희 웃음을 애통으로 너희 즐거움을 근심으로 바꿀지어다” 여기서 ‘웃음’과 ‘즐거움’은 ‘죄인들’과 ‘두 마음을 품은 자들’이 세상적인 만족에서 얻은 기쁨을 말합니다. 이것을 애통하며 회개하라는 말입니다. 이런 기쁨은 나중에 자신들의 죄악으로 인해 ‘애통’과 ‘근심’으로 바뀌게 될 것입니다. 따라서 성도들은 자신의 죄악된 모습을 발견하고 애통해 해야 합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잠시 즐거움을 누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살다가 영육간에 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회개하고 정한 마음으로 하나님 한 분만을 사랑해야 하겠습니다.
 10절을 다같이 읽어 보시겠습니다. “주 앞에서 낮추라 그리하면 주께서 너희를 높이시리라” 야고보는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6절부터 주어진 일련의 권면을 매듭짓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스스로 높이는 자를 낮추시고 자기를 겸손히 하나님 앞에 낮추는 자를 높이십니다.

말씀을 통해 우리가 진정으로 바라야 할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게 됩니다. 말씀에서 두가지가 나옵니다. 첫째는 바라는 것이 정욕으로부터 나는 것이 있습니다. 즉 세상으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의 노력으로 얻을 수도 없거니와 오히려 욕구불만이 생기게 됩니다. 둘째로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입니다. 이것은 신령한 것이요 영적인 것입니다. 말씀에서 이것을 무엇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까? 6절을 보면 ‘더욱 큰 은혜’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정말로 이것이 더 좋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것을 깨닫기를 기도합니다. 우리가 세상 것에 마음을 빼앗기지 말고 벗하지 말고 하나님과 벗하기를 기도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더욱 큰 은혜’를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동역자들을 지체로 여기고 배려하고 사랑하고 감사해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마음이 하나 되어 즐겁게 가을학기 역사를 섬겨 나가기를 기도합니다. 독서의 계절에 말씀과 가까이 하길 기도합니다. 무엇보다 이사야서 말씀을 깊이 묵상하는 가운데 하나님과 가까이 하고 큰 은혜를 덧입으시길 기도합니다.

제 2 장. 서로 비방하지 말라(11,12)

 11a을 보십시오. “형제들아 서로 비방하지 말라” 저자는 말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비방하는 죄에 대해 가르치고 있습니다. 여기서 ‘비방하다’는 말은 남을 비웃고 헐뜯어서 말하는 것입니다. 당시 본서의 수신자들의 교회에서는 다툼과 싸움 중에 틀림없이 같은 신앙인을 비방하는 모습이 있었을 것입니다. 이에 야고보는 성도들 간에 비방하지 말 것을 엄히 명하고 있습니다. 11b을 보십시오. “형제를 비방하는 자나 형제를 판단하는 자는 곧 율법을 비방하고 율법을 판단하는 것이라” 계속해서 야고보는 형제를 비방하는 행위가 어떠한 죄악인지를 설명합니다. 즉 그것은 율법을 비방하고 판단하는 행위라는 것입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형제를 사랑하라’(레19:16-18)는 율법을 범함으로 결국 율법을 대적하는 것이 되며, 또한 자신을 율법 위에 두는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율법을 비방하고 판단하는 것은 궁극적으로 그것을 주신 하나님을 비방하는 행위임을 알아야 합니다. 11c를 보십시오. “네가 만일 율법을 판단하면 율법의 준행자가 아니요 재판관이로다” 율법을 기준으로 해서 하나님과 인간의 역할이 분명히 정해져 있습니다. 하나님은 율법을 만드신 분이며 인간은 이 율법을 지키는 자일 뿐 입니다. 그런데 만약 인간이 이 율법을 판단하는 역할을 담당한다면 그 행위는 자기 자신을 율법을 만드신 하나님보다 더 높은 위치에 올려놓는 교만의 극치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구원과 심판은 하나님의 고유 권한입니다. 상대방의 허물이 있다고 사람이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가장 선하게 해결하실 것을 믿고 맡겨야 하겠습니다.

제 3 장.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13-17)

 어떤 사람이 말하고 있습니다. “오늘이나 내일이나 우리가 어떤 도시에 가서 거기서 일 년을 머물며 장사하여 이익을 보리라(13)” 이 사람은 내일 일에 대해 자신이 있습니다. 자기의 판단 능력이나 사업 수완에 대해 자신감이 있는 것 같습니다. 자기 계획에 대해 성공할 것 같습니다. 이 사람은 투기해서 부자가 되려는 것도 아닌 정직한 사람입니다. 세상에는 이런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이런 자들에게 저자는 말하고 있습니다. 14절을 보십시오.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냐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그러나 사람이 내일 일을 알 수가 없으며, 또 사람의 생명은 잠간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와 같아서 언제 없어질지 알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인간의 한계를 인정해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떤 자세로 삶을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까? 15절을 다같이 읽어 보시겠습니다. “너희가 도리어 말하기를 주의 뜻이면 우리가 살기도 하고 이것이나 저것을 하리라 할 것이거늘”  하나님은 우리의 생명의 주인이시요, 모든 일의 계획자나 실행자도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항상 먼저 생각해야 할 것은 이것이 주님의 뜻인가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께 영광이 되고 주님의 뜻이라면 우리가 살기도 하고 무엇이든 하겠다는 자세로 살라는 것입니다.

16절을 보십시오. “이제도 너희가 허탄한 자랑을 하니 그러한 자랑은 다 악한 것이라” 하나님을 제쳐두고 허탄한 것을 자랑하는 것은 악한 것입니다. 사람이 아무리 자기를 자랑한다해도 하나님은 자기 뜻대로 행하십니다.

17절을 다같이 읽어 보시겠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선을 행할 줄 알고도 행하지 아니하면 죄니라” 주님의 뜻대로 행하는 것이 선입니다. 우리가 선을 행할 줄 안다면 미루지 말고 지금 행하라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죄를 짓는 것입니다. 이런 자세로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드리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인 것입니다.

 말씀을 준비하며 제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저도 세상 것에 마음이 많이 가있는 것을 깨닫고 회개케 되었습니다. 제가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지만 늘 병원 일에 많이 매여 있었습니다. 사실 원장이라는 것이 진료만 하는 것이 아니라 경영자로서 모든 일에 능해야 합니다. 그러다 보니 신경 쓰이는 것이 많고 할 일 이 많이 있습니다. 제가 원하는 일이라면 수면시간을 줄이기도 하지만 하나님을 위해서 시간을 드리기를 힘들어 하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역사에 마음을 드리지 못하였습니다. 말씀을 보며 제가 어느덧 마음이 많이 세상에 가 있었음을 깨닫고 회개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하나님과 가까이 하는 투쟁을 하고자 방향을 잡게 되었습니다. 제가 병원 일을 단순화해서 병원 일을 일찍 끝내며 하나님께 마음을 드리기에 힘써야 하겠습니다. 센타에 자주 나와서 하나님 역사를 살피고 기도하며 말씀을 사랑하길 기도합니다. 또한 말씀을 통해 어떤 사람이 복된 사람인가 배우게 됩니다. 겸손하고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자에게 하나님께서는 세상 욕심에서 얻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더욱 큰 은혜를 주신다고 하십니다. 제가 너무 세상에 물질에 마음을 빼앗기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가까이 하기에 힘써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주의 일에 관심을 갖고 하나님의 뜻을 이뤄드리기에 힘쓰는 성숙한 신자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그래서 동역자들과 합심동역을 이루는 가운데 가을학기를 잘 섬길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결론적으로 저희 각자가 세상과 가까이 하지 않고 하나님과 가까이 하는 삶을 살아가길 기도합니다. 또한 동역자들을 사랑하기를 기도합니다. 이를 통해 화평한 우리 교회 공동체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그래서 가을학기 하나님역사에 귀하게 쓰임받기를 기도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살아 있는 동안 힘써 선을 행하는 삶을 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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