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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nday Worship Message
주일예배메시지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9-09-08 (일) 12:47
분 류 창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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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창세기 제25강] 구원 역사에 요셉을 쓰신 하나님

  2019년 창세기 제25강                                             김반석

구원 역사에 요셉을 쓰신 하나님

말씀 / 창세기 42:1-45:28
요절 / 창세기 45:7,8 “하나님이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니, 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이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이 나를 바로에게 아버지로 삼으시고 그 온 집의 주로 삼으시며 애굽 온 땅의 통치자로 삼으셨나이다.”

화가, 신학자, 카우보이가 그랜드캐니언에 갔습니다. 이들은 장엄한 광경을 보고 감탄하며 한 마디씩 했습니다. 먼저 화가가 말했습니다. “정말 장관이네요. 이곳의 광경들은 캔버스에 담을 수 없을 정도로 광대하군요.” 그러자 신학자가 말했습니다. “이것은 전능하신 하나님의 놀라운 작품입니다. 인간은 그것을 보고 그저 감탄할 뿐이죠.” 마지막으로 카우보이는 깊은 한숨을 쉬며 말했습니다. “에휴! 풍경은 정말 아름답네요. 그런데 만일 여기서 소를 잃어버렸다가는.....끔직하군요!”
같은 장소에서 똑같은 풍경을 보았는데도 각자의 관점에 따라 이렇게 생각이 다릅니다. 우리의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인간적인 관점에서 보느냐, 하나님의 섭리 편에서 보느냐에 따라 인생의 열매가 결정됩니다. 오늘 본문의 요셉은 자신의 인생을 하나님의 섭리 편에서 보았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요셉과 함께 하셔서 고난과 역경을 극복하게 하시고, 생명 구원역사에 귀하게 사용해 주셨습니다. 이 시간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절대주권과 섭리를 영접하므로 생명 구원역사에 귀하게 쓰임 받는 인생 살기를 기도합니다.

 1. 형들을 훈련시키는 요셉(42:1-44:34)
42장 1절을 보십시오. 요셉의 말대로 애굽에서 시작된 7년의 대흉년으로 온 땅에 기근이 가득했습니다. 야곱의 가족들이 거하는 가나안 땅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기근이 점점 심해지면서 사람들 사이에 애굽에 곡식이 있다는 소문도 함께 퍼져나갔습니다. 야곱은 베냐민을 제외한 10명의 아들들을 애굽으로 보내 곡식을 사오도록 했습니다. 드디어 요셉의 형들은 애굽에 도착하여 총리 요셉 앞에 와서 넙죽 엎드려 절을 했습니다. 요셉은 그들을 보는 순간 자기 형들인 것을 알았습니다. 이때 요셉은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요? 보통 사람 같으면 형들의 얼굴을 보자마자 그 동안 잊고 있었던 아픈 기억들이 떠올랐을 것입니다. 살려달라고 매달렸지만 매정하게 자기를 팔고 유유히 양 떼들과 사라지던 형들의 뒷모습을 떠올리며 복수심과 분노로 온 몸을 부르르 떨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요셉은 그 형들을 보면서 무슨 생각을 했습니까? 9a절을 보십시오. “요셉이 그들에게 대하여 꾼 꿈을 생각하고” 요셉은 자신에게 절하는 형들의 모습을 보면서, 어린 시절, 하나님이 주셨던 꿈을 생각했습니다. 요셉이 이 순간 그 꿈을 생각한 것으로 보아 그 꿈을 늘 마음속에 간직하고 살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이 순간, 그가 그토록 기다리던 그 꿈이 마침내 현실로 이루어지고 있었습니다. 그 꿈속의 볏단처럼 형들은 요셉 앞에 넙죽 절을 하고 있었습니다. 절하고 있는 형들을 보고 있는 요셉의 마음에는 어린 시절 자신에게 꿈을 주시고 그 꿈을 신실하게 이루어주신 하나님께 대한 무한한 감사와 감격이 충만했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꿈의 환상에 사로잡혀 있지 않았습니다. 절하는 형들을 갑자기 정탐꾼 즉 스파이로 몰아붙였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이들은 장차 이스라엘의 12지파가 되어 제사장 나라 거룩한 백성의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들은 시기심, 살인, 정욕, 인신매매, 거짓말 등의 죄로 혈기가 충만합니다. 이런 상태로는 하나님 역사에 쓰임 받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요셉은 형들의 죄 문제를 돕기 위해 훈련하기로 작정한 것입니다. 이것이 형들에 대한 영적인 사랑, 훈련하는 사랑임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형들은 스파이가 아니라고 강력하게 부인했지만 요셉은 형들 중 한 사람만 여기에 남고. 나머지는 가서 막내 베냐민을 데려오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그들의 말을 믿고 모두 살려주겠다고 했습니다. 형들은 억울한 누명을 쓰고 형제 중 한 명을 애굽에 볼모로 두고 가야 하는 상황 속에서 과거 자신들이 요셉에게 지은 죄를 떠올리며 하나님께서 자신들의 죄에 대하여 벌하고 계신다고 여겼습니다. 42장 21,22절 말씀을 보십시오. “그들이 서로 말하되 우리가 아우의 일로 말미암아 범죄하였도다. 그가 우리에게 애걸할 때에 그 마음의 괴로움을 보고도 듣지 아니하였으므로 이 괴로움이 우리에게 임하도다. 르우벤이 그들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너희에게 그 아이에 대하여 죄를 짓지 말라고 하지 아니하였더냐? 그래도 너희가 듣지 아니하였느니라. 그러므로 그의 핏값을 치르게 되었도다 하니” 형들의 말속에는 그들의 죄의식과 고통이 그대로 잘 드러나 있습니다. 인간의 마음속에 잠재되어 있는 죄의식은 아무리 세월이 많이 지난다고 해도 없어지지 않습니다. 그 죄를 하나님 앞에서 진실되게 회개하기까지 죄의식은 지워지지 않는 것입니다. 회개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언젠가는 반드시 드러내십니다. 요셉은 죄의식으로 괴로워하는 형들을 보고 마음이 아파 그들을 떠나가서 울고 돌아와 형들을 다시 훈련했습니다. 시므온을 볼모로 잡고 형들의 자루에는 곡식과 돈을 넣도록 하여 돌려보냈습니다. 형들은 시므온이 애굽에 볼모로 잡혀 있었지만 곡식 속에서 돈이 나온 사건을 기억하며 다시는 애굽에 내려가고 싶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왜 또 애굽에 내려갈 수밖에 없었습니까? 43장 1,2절을 보십시오. 기근이 심하여 애굽에서 가져온 곡식이 다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배가 고프니 더 이상 버틸 수가 없었습니다. 이번에 내려가기 위해서는 베냐민을 데려가야 했습니다. 야곱이 주저하자 유다가 이런 아버지의 마음을 헤아리고, 자기 목숨을 걸고 베냐민을 데리고 반드시 돌아오겠노라 맹세하였습니다.(43:9) 야곱은 그 본성이 빼앗는 자요 한번 잡으면 놓지 않는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그의 움켜진 손에서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도록 연단하고 계셨습니다. 결국 야곱은 아버지의 마음을 알고, 자신의 목숨을 담보로 한 유다의 설득에 마지막으로 붙들고 있던 베냐민을 떠나보냅니다. 43장 14절을 보십시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그 사람 앞에서 너희에게 은혜를 베푸사 그 사람으로 너희 다른 형제와 베냐민을 돌려보내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내가 자식을 잃게 되면 잃으리로다.” 자기가 집착하는 것을 내려놓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고 내려놓으면 하나님이 책임져 주십니다. 내려놓는 것은 잃는 것이 아니라 얻는 것입니다. 내려놓아야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내려놓는 것은 절망과 낙심으로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신뢰하고 맡기는 믿음의 표현입니다.
형들은 베냐민을 데리고 다시 애굽으로 곡식을 구하러 가서 요셉 앞에 섰습니다. 요셉은 형들에게 아버지의 안부를 묻고 친동생 베냐민을 보며, ‘이 사람이 너희가 나에게 말한 너희 막내 동생이냐?’ 하고 물었습니다.(29) 베냐민의 얼굴을 찬찬히 보고 있노라니 요셉은 그 마음이 타는 듯하여 나오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어 얼른 자리를 피하였습니다. 당장에라도 동생을 얼싸 안고 형제의 정을 나누고 싶었지만 요셉은 형들이 온전한 회개를 통하여 합당한 열매를 맺기까지 돕고자 하였습니다. 요셉은 얼굴을 씻고 나와서 정을 억제하고 음식을 차리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연장자 순으로 자리배치를 하여 앉게 한 후, 베냐민에게는 다른 사람보다 다섯 배나 더 주었습니다. 이는 형들에게 아직도 시기심이 남아 있는지 알아보고자 시험한 것입니다. 하지만 형들은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요셉과 함께 먹고 마시며 즐거워했습니다. 그들이 시기심의 죄를 회개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요셉은 또 사건을 만들었습니다. 자기 집 관리인에게 형들을 아버지한테 보낼 때 베냐민의 자루에 요셉의 은잔을 넣도록 지시하였습니다. 형들은 이 사실을 모르고 돌아가던 중 뒤따라온 관리인에게 은잔을 훔쳐갔다며 추궁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형들은 정색을 하며 그런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을 죽이고, 나머지는 종을 삼아도 좋다고 큰 소리를 쳤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 일입니까? 나이 순서대로 장남부터 샅샅이 뒤졌는데 그 은잔이 베냐민의 자루에서 “요기 있지롱!”하면서 반짝반짝 빛을 내고 있었습니다.(44:12) 이 사건은 베냐민에게 절도죄의 누명을 씌워 애굽에 억류시키고, 베냐민에 대한 형들의 태도와 형제애를 재차 확인하기 위한 요셉의 의도적이고 계획된 행동이었습니다. 형들이 만약 베냐민에 대한 시기심과 미움을 회개하지 않았다면 베냐민을 도둑으로 몰아세우며 비난했을 것입니다. 자신들은 죄가 없다고 항변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달랐습니다. 잔을 감춘 베냐민만 종을 삼겠다는 요셉에게 유다가 간청하였습니다. 그는 먼저 베냐민을 데려가지 않으면 아버지가 얼마나 고통스러워하실 지에 대하여 자세히 설명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을 대신 종으로 삼고 베냐민은 형제들과 함께 풀어달라고 간청했습니다.(30-33) 유다는 과거 약속을 하고도 지키지 않던 무책임한 자였고, 요셉을 노예로 팔 때에 주도적인 역할을 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아버지의 마음을 알고, 아버지를 사랑했습니다. 베냐민을 구원하기 위해 자기 목숨까지 희생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는 형제간의 뜨거운 우애와 부모에 대한 자식으로서의 깊은 효도, 희생정신, 책임감 있는 자로 변화되었습니다. 이는 유다가 얼마나 자신의 죄를 깊이 회개 했는가 그 증거를 보여줍니다. 이처럼 참된 회개란 말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참된 회개에는 유다와 같이 구체적인 결단과 이에 따르는 행동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유다의 진실된 회개를 기뻐하시고, 그의 혈통에서 메시야(그리스도)가 나게 하시므로 복 있는 자가 되게 하셨습니다.
이상에서 형들을 훈련시키는 요셉을 통해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지 배울 수 있습니다. 요셉이 지금까지 일부러 여러 사건을 만들에 형들을 곤경에 빠지게 한 것은 원수를 갚으려고 한 것이 아닙니다. 형들을 여러 모양으로 훈련시켜서 그들이 죄를 깨닫고, 하나님께서 쓰실 만한 영적인 사람으로 변화되기를 원한 것입니다. 이것이 진정한 사랑입니다. 맛있는 것이나 원하는 선물을 사주고, 인간적으로 잘 해주면 상대방에게 인기를 얻을 수 있는지 모르지만, 죄 문제를 해결하도록 도와주지 않으면 오히려 상대방을 병들게 하고 못쓰게 만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귀하게 쓰시기를 원하십니다. 하지만 사람마다 하나님께서 쓰실 수 없는 죄악된 요소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너무 게으르고, 어떤 사람은 너무 인간적이고 세상적입니다. 어떤 사람은 너무 이기적이고, 어떤 사람은 정욕에 쉽게 무릎을 꿇습니다. 이런 요소들은 신앙생활을 오래 한다고 없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영적인 훈련을 통해 하나님 앞에서 죄악된 자신을 발견하고 진실되게 회개해야 합니다. 이렇게 회개하여 하나님이 쓰실 만한 영적인 사람으로 변화되도록 돕는 것이 참된 사랑입니다.
이런 영적인 사랑을 하려면 상대방에 대한 깊은 관심과 상한 목자의 심정이 있어야 합니다. 훈련에는 시키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에게 아픔이 따릅니다. 받는 사람에게는 자기가 깨어지는 아픔이 있고, 시키는 사람은 그보다 더 큰 아픔이 있습니다. 요셉은 지금까지 형들을 훈련하는 동안 4번이나 대면하면서도 철저하게 자신의 정체를 숨겼습니다. 형들이 죄의식으로 괴로워 할 때, 베냐민을 데리고 온다는 약속을 지켰을 때, 베냐민을 시기하지 않는 모습을 봤을 때 자신을 밝히고 훈련을 끝내도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인간적인 정을 억제하며 너무 심하다고 생각될 정도로 형들을 몰아붙였습니다. 형들이 자신들의 죄를 깊이 깨닫고 철저하게 회개하도록 훈련했습니다. 단순히 훈련만 한 것이 아니라 그들이 변화되기까지 인내와 사랑으로 그들의 아픔에 동참하며 섬겼습니다. 요셉은 자신이 하나님의 혹독한 훈련을 통해 영적인 사람으로 빚어졌기 때문에 어떻게 훈련시키고 영적으로 도와야 하는지 잘 알았습니다. 이런 영적인 사랑을 통해 형들은 회개하고, 하나님과의 관계성을 회복하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형제를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죄 문제를 알면서도 그냥 내버려둘 수 없는 것입니다. 어떤 오해와 아픔이 있더라도 죄악된 요소와 싸워서 하나님께서 쓰실 수 있는 사람이 되도록 훈련시켜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목자님이 나의 죄를 책망하고 훈련시키면 섭섭한 감정을 품기 쉽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사랑이란 훈련시키는 사랑이요, 죄를 회개시키는 사랑입니다. 우리가 이런 사랑을 사모하므로 영적인 훈련을 잘 받고, 훈련을 잘 시켜서 하나님이 쓰실 만한 영적인 종들로 성장하기를 기도합니다.

Ⅱ. 하나님의 주권과 섭리를 믿은 요셉(45:1-28)
1절을 보십시오. 요셉은 형들의 진실한 회개에 감동을 받았습니다. 아버지 야곱과 베냐민에 대한 순수한 사랑도 확인했습니다. 요셉은 이제 더 이상 마음속에 일어나는 벅찬 감정을 억제할 수 없어 모두 물러가게 하고, 큰 소리로 울었습니다. 요셉의 이 울음은 지난 22년 동안 마음 가운데 억누르고 억누른 모든 감정의 폭발이었습니다. 요셉은 형들에게 ‘나는 요셉입니다! 아버지께서 아직 살아계십니까?’ 라고 말했습니다. 그 말을 들은 형들은 너무 놀라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그런 형들에게 요셉이 다시 말했습니다. “나는 형님들이 애굽에 판 동생 요셉입니다.” 이 말을 들은 형들은 이제 죽었구나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요셉은 무엇이라고 합니까? 다 함께 5-8절을 읽어보겠습니다. “당신들이 나를 이곳에 팔았다고 해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 이 땅에 이 년 동안 흉년이 들었으나 아직 오 년은 밭갈이도 못하고 추수도 못할지라. 하나님이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니. 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이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이 나를 바로에게 아버지로 삼으시고 그 온 집의 주로 삼으시며 애굽 온 땅의 통치자로 삼으셨나이다.” 이 얼마나 놀라운 말씀입니까? 여기에는 요셉이 자신의 인생을 하나님 앞에서 어떻게 보고 있는지, 그의 믿음의 가치관이 어떠한지 잘 나타나 있습니다. 만일 요셉이 자신의 인생이 형들 때문에 꼬인 것이라고 생각했다면 어떤 삶을 살았을까요? 형들에 대한 복수심을 키우며 제2의 금자씨, 올드보이가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복수의 칼을 갈며 자신의 인생을 망가지게 한 그 사람들을 한 사람, 한 사람 복수하며 복수의 화신이 될 수 있었습니다. 사실 노예가 되게 한 자들은 형들입니다. 죄수가 되게 한 사람은 보디발 여사입니다. 그리고 총리가 된 것은 자신의 현명한 꿈 해몽 때문이라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요셉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인생 전 과정을 하나님의 절대주권과 섭리 편에서 해석했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도 자신의 인생에 대해 해석을 잘 해야 합니다. 내 인생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그 인생은 완전히 달라집니다. 자기 기대에 맞지 않는다고 모든 것을 부정적이고 운명적으로 해석하면 그 사람의 인생은 정말 그렇게 될 것입니다. 무지한 해석은 인생에 고통을 가져옵니다. 무당은 우리 인생을 제멋대로 함부로 해석하고 이래라 저래라 합니다. 그래서 우리 속담에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는 말이 나왔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우리는 우리 인생 텍스트의 저자가 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따라 하나님의 은혜와 섭리로 우리 인생을 해석해야 합니다.
요셉은 자기에게 일어난 사건을 감정에 기초해 해석하지도 않았고, 자기가 애굽의 총리가 된 것도 어쩌다 일어난 행운으로 해석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무조건 좋게만 해석한 것도 아닙니다. 요셉은 모든 것을 전능하신 하나님과 그 은혜 편에서, 하나님의 구원 역사 편에서 해석했습니다. 어떻게 이렇게 할 수 있었을까요? 요셉이 마음씨가 착한 사람이었기 때문입니까? 아니면 그 모든 아픔을 보상 받을 만큼 성공을 했기 때문입니까? 아닙니다. 하나님의 섭리 편에서 자기 인생을 해석했을 때, 자신을 판 형들도, 자기에게 누명을 씌운 보디발 여사도 더 이상 원수들이 아니었습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나에게 아픔을 주고 상처를 준 그들은 우리를 하나님의 사람으로 빚어지게 하는 데 혁혁한 공을 세운 고마운 사람들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과 사건들을 통하여 우리들의 쓸 수 없는 부분을 조각해 나가시는 조각가가 되시기 때문입니다. 요셉의 현실은 꿈과 정반대의 길로 가는 것 같고, 실패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하나님의 섭리를 믿는 요셉에게 하나님이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뤄주셨습니다.(롬8:28) 형들은 요셉을 시기하여 노예로 팔았지만 하나님은 요셉을 연단하셔서 애굽의 총리가 되게 하셨습니다. 이를 통해 기근으로 굶어 죽을 수밖에 없는 야곱의 가족들이 애굽으로 이주하여 구속역사가 끊어지지 않고 이어지게 하신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은 애굽에서 70명으로 시작된 야곱 가족을 200만 명 이상으로 생육하고 번성하여 큰 민족을 이루시고, 4대 만에 다시 가나안 땅으로 돌아가게 하신다는 약속의 말씀을 성취하셨습니다.(창15:13-16,출1:7) 요셉이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서 자기 인생을 돌아보니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형들보다 자신을 애굽에 먼저 보내신 것임을 믿게 되었습니다. 이때 자신에게 일어나고 있는 모든 일들이 지도자가 되게 하시는 하나님의 섭리임을 영접하고, 감사하게 되었습니다. 자신에게 깊은 상처를 준 형제들도 하나님의 섭리 편에서 바라보니 불쌍히 여기게 되고, 하나님의 사랑으로 용서할 수 있었습니다. 더 나아가 형제들을 위로하고, 그들에게도 하나님의 절대주권과 섭리를 믿는 믿음을 심을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우리가 자신의 인생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그 인생은 완전히 달라집니다. 인간적인 관점으로 볼 때 그 인생은 운명적이고 슬프고 우울한 인생이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섭리 편에서 보면 하나님께서 선한 일을 위하여 나를 지으시고, 인도하고 계심을 깨닫게 됩니다. 우리가 생각할 수 없는 선하고 높고 깊은 하나님의 섭리가 우리 인생을 한 걸음, 한 걸음 인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내가 지금 이 자리에 있는 것은 어쩌다 목자님에게 피싱 당해서 온 것이 아닙니다. 2세라서 부모님 때문에 도망가지 못하고 어쩔 수 없이 여기 남아 있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이 나를 이곳으로 인도하셔서 구원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구원역사에 쓰시고자 나를 목자로 세워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어떤 역경과 고난 가운데서도 확신해야 할 것은 나의 인생은 하나님의 절대주권과 섭리 속에서 계획되고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비록 나의 계획과 달리 조금 더딘 것 같고, 어떤 때는 멀리 돌아가는 것처럼 보여도 하나님은 현재 나와 함께 하시며 나의 인생을 인도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설령 지금은 하나님의 뜻을 다 알 수 없을지라도 하나님의 섭리를 영접하고, 하나님의 선한 뜻이 무엇인지 깨닫게 해주시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나를 통해 선한 일을 행하실 것을 믿을 때 하나님이 함께 하셔서 요셉과 같이 형통한 인생을 살게 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섭리를 믿는 자는 고난을 통해 오히려 믿음이 성장하고 내면이 더욱 강해집니다. 그 인생은 점점 밝아지고 긍정적으로 바뀌게 됩니다. 기쁨과 감사와 은혜가 충만한 힘찬 인생을 살고 결국 요셉 같이 happy ending이 됩니다. 우리가 나에게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운명적으로 생각하지 않고, 하나님의 절대주권과 섭리 편에서 해석하므로 하나님 역사에 쓰임 받는 인생 살기를 기도합니다.

9~28절은 요셉과 바로가 야곱과 그 가족들을 초청하는 내용입니다. 요셉은 형제들에게 아버지에게 가서 요셉이 애굽의 총리로서 누리고 있는 모든 영화를 말씀드리고, 빨리 모시고 오라고 했습니다. 요셉의 형들이 왔다는 소문을 들은 바로는 기뻐하였고 요셉의 가족을 위해 애굽의 좋은 땅을 주고, 거기서 나는 것을 누리면서 살게 해 줄 터이니 모시고 오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가족들이 탈 수 있는 전용마차까지 제공해 주었습니다.(19) 요셉은 바로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아버지에게 드릴 귀한 예물과 양식 등을 수레에 가득 실어 보냈습니다. 형제들이 아버지에게 요셉이 지금까지 살아 있어 애굽의 총리가 되었다고 하자 야곱은 정신이 나간 듯 어리벙벙하여 그 말을 믿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요셉이 한 말을 아들들에게서 모두 전해 듣고, 또한 요셉이 보낸 전용마차를 보고 나서야 믿게 되었습니다. 죽은 줄 알았던 요셉이 살아 있다니! 이제는 죽어도 한이 없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죽기 전에 빨리 가서 요셉을 보겠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험악한 세월을 보낸 야곱의 인생 가운데도 합력하여 선을 이뤄주셨습니다.

결론입니다. 하나님은 세상 역사뿐만 아니라 개인의 인생을 주관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나와 함께 하셔서 나의 전 인생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십니다. 하나님의 섭리 편에서 생각할 때 현재 나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들에는 다 의미가 있습니다. 어쩌다 보니 여기까지 오고, 이렇게 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보내신 것이고, 하나님의 인도하심 가운데 이뤄진 것입니다. 우리가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영접하므로 생명 구원 역사에 쓰임 받는 복된 인생 살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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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3 창세기 [2019년 창세기 제13강] 아브라함을 친구 삼으신 하나님 관리자 2019-06-09 1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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