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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nday Worship Message
주일예배메시지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9-09-22 (일) 12:38
분 류 창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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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창세기 제27강] 열두 지파를 위한 야곱의 축복

 2019년 창세기 제27강                                                          최동진

열두 지파를 위한 야곱의 축복

말씀 / 창세기 49:1-50:26
요절 / 창세기 49:28 “이들은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라 이와 같이 그들의 아버지가 그들에게 말하고 그들에게 축복하였으니 곧 그들 각 사람의 분량대로 축복하였더라.”

오늘 말씀에서는 열두 아들을 축복하는 야곱의 믿음이 잘 나와 있습니다. 또한 요셉에게 이미 용서받았지만 용서에 대한 확신이 없는 형들과 이런 형들을 끝까지 사랑하는 요셉을 통해 죄사함의 은혜를 받고도 하나님의 용서의 사랑을 확신하지 못하는 인간과 그런 인간을 끝까지 품고 사랑하는 예수님의 사랑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야곱의 축복을 통해 분량대로 축복하시는 하나님의 축복의 원리를 배울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변함없으신 사랑과 우리를 통해 이루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계획과 비전을 새롭게 영접하고 우리의 삶 속에 하나님이 원하시는 믿음의 열매가 맺혀지기를 기도합니다.

I. 야곱의 축복(49:1-28)
  1,2절을 보십시오. “야곱이 그 아들들을 불러 이르되 너희는 모이라 너희가 후일에 당할 일을 내가 너희에게 이르리라. 너희는 모여 들으라 야곱의 아들들아 너희 아버지 이스라엘에게 들을지어다.” 야곱은 임종을 앞두고 열두 아들들을 불러 모아 후일에 당할 일에 대해 유언적인 예언을 말해주었습니다. 그중에는 축복의 내용도 있지만 저주처럼 들리는 내용도 담겨 있습니다. 이는 열두 아들들이 가지고 있는 작은 죄문제나 기질들이 먼 미래의 후손들에게까지 영향을 미치는 것을 말해줍니다. 3절을 보십시오. “르우벤아 너는 내 장자요 내 능력이요 내 기력의 시작이라 위풍이 월등하고 권능이 탁월하다마는” 첫째 아들 르우벤은 외모가 출중하고 능력이 뛰어나며 인간적으로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과거 동생들이 요셉을 죽이려 할 때 유일하게 죽이지 말자고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사리 분별 능력도 있었고 장자의 역할을 하기에도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그는 장자로서 누구보다도 많은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세상에서는 이런 사람이 각광을 받습니다. 그렇지만 그는 하나님의 축복을 받기에 합당하지 못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4절을 보십시오. “물의 끓음 같았은즉 너는 탁월하지 못하리니 네가 아버지의 침상에 올라 더럽혔음이로다. 그가 내 침상에 올랐었도다.” 그가 끓는 물과 같은 정욕적인 충동을 절제하지 못하고 그의 서모와 통간함으로 인간으로서 도저히 저지를 수 없는 죄를 범했습니다.(창35:22) 공동번역 성경에는 “터져 나오는 물줄기 같아, 걷잡을 수 없는 홍수 같아, 끝내 맏아들 구실을 하지 못하리라. 제 아비의 침상에 기어들어 그 소실마저 범한 녀석!”이라고 씌어 있습니다. 저수지의 둑이 터지면 걷잡을 수 없이 노도하는 물줄기로 주변을 초토화시켜 엉망으로 만들 듯이 아무리 탁월한 사람도 정욕문제를 다스리지 못할 때 그의 인생은 만신창이가 되어 도저히 하나님께서 쓰실 수 없는 비참한 인생이 됩니다. 결국 르우벤의 장자의 축복은 다른 사람에게로 넘어갔고 그의 월등함과 탁월함도 아무런 쓸모가 없게 되었습니다.
  5절-7절은 시므온과 레위에 관한 예언입니다. 5절을 보십시오. “시므온과 레위는 형제요 그들의 칼은 폭력의 도구로다” 그들은 같은 어머니에게서 태어난 형제이기도 하지만 그들은 단짝이었습니다. 이 두 사람은 어떤 일을 하든지 항상 붙어 다녔습니다. 그런데 야곱은 ‘그들의 칼은 폭력의 도구’라고 말합니다. 이는 그들의 잔인한 기질을 가리킵니다. 그들은 야곱의 딸 디나가 강간을 당했을 때 이에 대한 복수로 세겜성의 사람들을 다 죽였습니다. 여동생이 수치스런 강간을 당했는데 오빠로서 화를 내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들의 반응은 당연한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대응은 너무 심했습니다. 서로 통혼하자며 상대에게 할례를 받게 해놓고 그들이 아파 거동도 제대로 못할 때 혈기와 감정대로 그곳 사람들을 다 죽여 버렸습니다. 그들은 죄 없는 소들의 발목의 힘줄까지 다 끊어놓을 정도로 잔인하고 무지비했습니다(6). 야곱은 이런 그들을 도저히 축복할 수 없었습니다. 7절을 보십시오. “그 노여움이 혹독하니 저주를 받을 것이요 분기가 맹렬하니 저주를 받을 것이라. 내가 그들을 야곱 중에서 나누며 이스라엘 중에서 흩으리로다.” 시므온 지파는 출애굽 이후 광야 생활 중 점점 줄어들어 민수기1장에서 1차 인구조사 때에 59,300명이었던 숫자가 민수기26장에서 2차 인구조사 때는 22,200명이 되었으며 모세의 마지막 축복에서도 제외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가나안 땅을 나눌 때에도 독자적인 기업을 분배받지 못하고 유다지파로부터 생계를 이어갈 수 있을 정도로 몇 개의 성읍만을 할당받았습니다.(수19:1) 그러나 레위 지파는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금송아지를 만들고 우상 숭배의 죄에 빠졌을 때 모세의 편에 서서 하나님의 분노를 가지고 우상숭배한 사람들을 죽여 심판했습니다. 이로서 하나님의 인정을 받아 이스라엘 족속 가운데 구별되어 거룩한 제사장 직분을 수행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레위지파는 야곱의 예언대로 자기들의 땅을 분배받지 못하고 제사장 직무를 감당하기 위해 이스라엘 여러 성읍에 흩어져 살아야 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내 안에 끓어오르는 정욕과 혈기를 다스리지 못할 때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없고 오히려 하나님의 역사에 누를 끼칠 수밖에 없음을 배울 수 있습니다. 날마다 말씀 앞에서 자기를 돌아보고 회개함으로 정욕과 혈기를 다스리고 내면이 거룩한 성품으로 변화되어 하나님의 역사에 귀하게 쓰임 받는 삶을 살기를 기도합니다.
  8-12절에는 유다가 받은 축복에 대해 기록되어 있습니다. 8-10절을 보십시오. “유다야 너는 네 형제의 찬송이 될지라 네 손이 네 원수의 목을 잡을 것이요 네 아버지의 아들들이 네 앞에 절하리로다. 유다는 사자 새끼로다 내 아들아 너는 움킨 것을 찢고 올라갔도다 그가 엎드리고 웅크림이 수사자 같고 암사자 같으니 누가 그를 범할 수 있으랴. 규가 유다를 떠나지 아니하며 통치자의 지팡이가 그 발 사이에서 떠나지 아니하기를 실로가 오시기까지 이르리니 그에게 모든 백성이 복종하리로다.” 유다는 그의 이름처럼 찬송을 받기에 합당한 자가 됩니다. 또한 유다의 손이 원수의 목을 잡는다는 것은 대적들을 물리치고 전쟁에서 승리할 것이고 형제들은 그에게 절하게 될 것입니다. 야곱은 유다를 사자로 비유하였습니다. 사자는 백수의 왕자로서 어떤 동물도 대적할 수 없는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는 장차 정복사업에서 수행할 유다지파의 용맹한 활약과 나아가 장차 유다의 자손 중에서 메시야가 나타나서 사탄의 세력을 멸망시킬 것을 예언한 말씀입니다. 규는 왕권을 상징하는 지팡이로서 유다의 후손 중에 통치자 곧 왕위의 계승이 이어질 것입니다. 그리고 때가 되면 실로가 오실 것입니다. 실로는 메시야를 가리킵니다. 다시 말해서 유다지파에서 왕이 나오고 궁극적으로는 인류를 구원할 메시야가 나와서 모든 백성을 다스려줄 것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유다지파는 이런 영적 축복뿐만 아니라 물질적으로도 큰 축복을 누리게 됩니다. 11,12절의 포도나무와 우유는 풍부한 물질적 축복을 상징합니다. 그들은 옷이 젖을 정도로 이 축복에 푹 빠지게 될 것입니다. 유다가 이렇게 큰 축복을 받게 된 이유가 무엇입니까? 유다도 만만치 않은 죄악된 과거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는 동생 요셉을 이스마엘 상인들에게 팔아넘기는 데에 주도적인 역할을 했고, 불신적인 삶을 이어갔습니다. 가나안 여인과 결혼을 하고 세 아들을 낳았는데 두 아들이 악을 행하여 죽었습니다. 그런데 아들들의 죽음을 며느리 다말의 문제로 여기고 막내 아들을 주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가 후에 회개하고 거듭난 새 인생을 살게 되었습니다. 구체적으로 그는 식량을 구하러 애굽에 내려 왔다가 막내 베냐민이 볼모로 잡혀 종이 되게 되었을 때 자기가 대신 종이 되겠으니 막내 베냐민을 제발 돌려보내 아버지를 슬프게 하지 말아달라고 하소연하였습니다. 이는 그의 내면 깊은 곳으로부터의 진실된 회개와 변화된 증거를 보여주었습니다. 야곱은 이런 그를 하나님이 구속역사에 귀하게 사용해 주시도록 축복하였습니다.
  계속해서 야곱은 각 아들들을 그 특성과 믿음에 따라 축복하였습니다. 13-21절을 보십시오. 스불론의 후손은 해변에 거주하게 될 것인데 이 예언은 450년 후 제비뽑기에 의해 그대로 성취되었습니다. 잇사갈 지파 사람들은 건장한 나귀처럼 강하고 근면하며 힘이 센 지파였지만 다른 일에 별로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고 힘든 노동과 농사일에 전념하게 될 것입니다. 또 짐을 메고 압제 아래에서 섬긴다는 것은 이민족의 치하에서 고생하며 육체적인 고역과 세금에 시달리게 될 것을 말합니다. 단은 이스라엘 역사에서 재판하는 직분을 맡게 될 것입니다. 이 예언은 단의 후손 가운데 삼손이 20년간 사사로 지내면서 백성들을 재판하고 통치하는 것으로 성취되었습니다. 그러나 단은 뱀과 같이 교활하고 재빠른 기질이 있는데 이들 모두 가나안 정복전쟁에서 가나안 종족들을 쫓아내는 역사에 귀하게 쓰임 받게 됩니다. 갓은 군대의 추격을 받으나 도리어 그 뒤를 추격하는 용감한 기질을 나타냅니다. 실제로 갓지파는 요단강 동편에 살면서 동방으로부터의 여러 침입을 격퇴시켰습니다. 아셀 지파는 가나안 정복전쟁에서 비옥한 땅을 차지하게 되며, 부유하여 기름지고 맛좋은 음식이 풍부할 것이고 솔로몬 시대에는 왕의 양식을 공급함으로 예언의 말씀이 이루어지게 됩니다. 납달리는 놓인 암사슴처럼 그 움직임이 날렵하고 민첩하였습니다. 또 노래를 잘하여 사람의 마음을 움직여 그 명성을 날리게 됩니다. 마지막으로 베냐민에 대해 축복하였습니다. 27절을 보십시오. “베나민은 물어뜯는 이리라 아침에는 빼앗은 것을 먹고 저녁에는 움킨 것을 나누리이다.” 물어뜯는 이리란 호전적인 성격을 나타냅니다. 하지만 움킨 것을 나눈다는 것은 이스라엘 역사에 기여하게 될 것이라는 예언입니다. 실제로 사사 에훗, 초대왕 사울과 그의 아들 요나단, 에스더와 모르드게, 그리고 사도 바울 등이 베냐민 지파 출신으로서 이스라엘 역사에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하였습니다. 야곱은 개인적인 감정에 치우치지 않고 하나님의 계시대로 객관적인 입장에서 각기 분량대로 축복하였습니다. 야곱은 각 지파별로 구체적으로 축복하는 목적은 당시 선진국인 애굽 사회에서 비록 소수민족으로 살지만 역사의 주관자 되셔서 계획대로 역사를 이루어나가시는 하나님을 바라보고 현실의 어려움을 이겨나가도록 믿음을 심기 위함입니다. 요셉은 어떤 축복을 받았습니까? 22-26절에 보면 야곱은 요셉을 아름다운 수사를 총동원하여 풍성하게 축복하였습니다. 22절을 보십시오. “요셉은 무성한 가지 곧 샘 곁의 무성한 가지라 그 가지가 담을 넘었도다.” 샘 곁의 가지가 얼마나 잘 자라겠습니까? 이처럼 요셉은 그 가지가 번성하여 담을 넘는 것 같이 축복을 차고 넘치도록 누립니다. 그렇다고 전혀 부족함이 없는 삶을 사는 것은 아닙니다. 활쏘는 자가 그를 학대하며 적개심을 가지고 그를 쏘았으나 요셉의 활은 도리어 굳세며 그의 팔은 힘이 있습니다. 요셉은 형들에게 미움을 받아 애굽에 팔려갔고 보디발 여사의 모함으로 죄수의 자리까지 낮아져 13년간을 노예와 죄수로 살면서 말 못 할 고생을 하였습니다. 그의 인생은 시냇가에 심은 나무보다는 오히려 메마른 광야의 가시나무 같았습니다. 그는 야곱보다도 훨씬 더 험악한 세월을 보냈습니다. 그러나 그의 내면은 마르지 않았습니다. 이는 그가 야곱의 전능자요 이스라엘의 반석인 목자의 손을 힘입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요셉의 목자가 되셔서 세상의 핍박과 유혹의 화살 속에서 보호하시고 승리하게 하신 것입니다. 요셉이 고난 속에서도 언제나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과 동행하며 하나님을 증거하는 삶을 살았을 때 하나님께서 위로 하늘의 복과 아래로 샘의 복을 내려주심으로 요셉뿐만 아니라 요셉의 후손들도 무성한 나뭇가지와 같이 심히 번성하게 될 것입니다. 야곱은 자신이 선조들보다 가장 많은 축복을 받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이제 야곱은 자신이 받은 모든 축복으로 야곱을 축복하고 있습니다. 26절을 보십시오. “네 아버지의 축복이 내 선조의 축복보다 나아서 영원한 산이 한 없음 같이 이 축복이 요셉의 머리로 돌아오며 그 형제 중 뛰어난 자의 정수리로 돌아오리로다.” 야곱은 요셉에게 장자의 축복을 해주었습니다. 요셉은 사실상 장자의 역할을 했습니다. 그는 뛰어난 지혜로 기근 때에 온 마음을 다해 자기 형제들을 돌보고 보호해 주었습니다. 요셉은 넓은 마음으로 형제들을 품고 용서하고 먹이고 기르며 잘 살게 해주었습니다. 야곱은 요셉의 믿음과 공로를 깊이 인정하여 넘치는 기쁨 가운데 그를 풍성하게 축복해주었습니다.
  28절을 보십시오. “이들은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라 이와 같이 그들의 아버지가 그들에게 말하고 그들에게 축복하였으니 곧 그들 각 사람의 분량대로 축복하였더라.” 야곱이 아들들을 축복하는 내용을 보면 공평하지 못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합니다. 야곱의 축복은 아들들이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의 열매에 기초한 합당한 보상의 의미가 있습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고 결과는 정의로운 사회를 갈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실상은 기회는 불평등하고 과정도 공정하지 못하여 온갖 반칙이 난무하고 이에 따른 결과도 정의롭지 못한 현실로 인해 깊이 절망하고 분노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똑같은 결과물을 얻고 똑같은 대접을 받는 것이 꼭 공정한 것은 아닙니다. 각자의 능력과 노력에 정당한 평가를 받고 이에 걸맞는 결과물이 보장될 때 정의가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누구에게나 복을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나 축복을 받을만한 내면의 그릇이 형성되지 않으면 축복하고 싶어도 축복할 수가 없습니다. 감당 못 할 과도한 축복은 오히려 화를 자초하게 됩니다. 분량대로 축복하였다는 것은 아버지로서 자식들에 대한 기대와 욕심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관점과 기준에 따라 인격적으로 각자에게 맞춤형으로 축복한 것입니다. 여기서 ‘분량’이란 사람들의 평가 기준에 따른 외모나 능력 등 인간적인 분량이 아니라 믿음의 분량을 가리킵니다. 하나님을 공경하고 말씀대로 살았는가 하는 믿음의 자세와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었는가에 따라 그 사람을 평가하시고 축복하신다는 의미입니다. 또 분량대로 복을 주셨다는 것은 누구나 복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복은 개인적이고 인격적이며 각자에게 합당한 복을 주십니다. 특별히 야곱은 이 축복을 통해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의 역사의 시작을 알리면서 장차 구속역사에 있어서 그들이 감당할 역할과 사명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야곱의 축복을 통해 분량대로 축복하시는 하나님의 축복의 의미와 원칙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묵상하면서 제가 하나님으로부터 얼마나 많은 축복을 받은 자인가 다시 한 번 발견하고 감사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과거 야곱과 같이 세상 축복을 추구하며 자기만을 위해 살던 저를 학창시절 일방적으로 택하시고 동행하시며 인도하여주셨습니다. 야곱처럼 험악한 세월을 보내지는 않았지만 비교적 순탄한 삶 가운데 여러 모양으로 훈련하심으로 자기중심적이고 인본적인 자를 변화시키시고 하나님 중심의 삶을 살도록 하셨습니다. 아무 자격 없는 자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맡기시고 캠퍼스 양들을 말씀으로 먹이는 삶을 살게 하셨습니다. 자의식이 많고 입이 뻣뻣하여 다른 사람 앞에서 말도 잘 못하던 자를 메신저로 세우시고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게 하셨습니다. 현실의 삶에 있어서도 모든 필요를 채워주시고 부족함이 없게 하심으로 하나님의 역사를 마음껏 섬길 수 있게 하셨습니다. 이 모든 것이 나의 의지나 능력과는 상관없이 순전히 하나님의 일방적인 은혜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하나님이 제게 주신 모든 은혜를 생각하면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돌보시나이까?”(시8:4) 고백이 저절로 나옵니다. 그런데 현재 저의 삶을 돌아보면 나의 삶을 축복하신 하나님을 바라보기보다 현실의 축복을 즐기며 인간적인 기쁨을 추구하고 있는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와 축복의 의미를 잊어버리고 축복 자체에 취해 자기중심적인 삶에 빠져 지낼 때 하나님이 주신 모든 은혜를 잃어 버릴 수밖에 없습니다. 제가 분량대로 축복하시는 하나님 앞에서 자기를 돌아보기에 힘쓰고 회개의 합당한 열매를 맺음으로 하나님의 축복을 감당하는 삶을 살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의 주권에 순종함으로 우리를 통해 이루고자 하시는 역사에 하나님의 뜻대로 쓰임 받으며 후손들에게도 축복의 유산을 물려주기를 기도합니다.

II. 야곱의 장례식(49:29-50:14)
  야곱은 아들들에게 축복과 유언을 마치고 마지막으로 막벨라 굴에 장사지낼 것을 유언합니다. 아들이 총리로 있는 애굽의 최고 명당자리에 묫자리를 쓸 수도 있었지만 야곱의 마지막 소망은 가나안 땅의 작은 막벨라 굴에 묻히는 것이었습니다. 야곱의 후손들은 선진국 애굽에서 살면서 빨리 적응하여 애굽사회의 주류로 편입되어 요셉처럼 성공하는 것이 삶의 목표가 되기 쉬웠습니다. 그러나 야곱은 유언을 통해 하나님이 약속하신 땅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메시지를 던지고 있습니다. 야곱의 유언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 땅에서 동화되지 않고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정체성을 지킬 수 있는 근거가 되었습니다. 현실의 유익에 따라 움직이지 않고 하나님의 약속에 기초하여 방향을 제시하는 야곱에게서 성숙한 영적 지도자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50장1절을 보십시오. 야곱이 죽자 요셉이 아버지의 얼굴에 구푸려 울며 입을 맞추었습니다. 어릴 때 특별한 관심과 사랑 속에서 자기를 키워준 아버지, 애굽에 노예로 팔려 와서도 꿈에도 잊지 못하던 아버지, 그리고 20년이 지난 후 다시 만날 수 있었던 아버지가 이제 세상을 떠난 것입니다. 요셉은 아버지 야곱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존경했습니다. 그는 아버지로부터 하나님을 배웠고 믿음을 배웠습니다. 그의 두 아들 에브라임과 므낫세도 다 그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야곱의 장례식은 애굽의 국장 수준으로 치러졌습니다. 요셉은 40일동안 아버지의 몸을 향으로 처리하게 하였고 애굽 사람들은 칠십 일동안 그를 위하여 곡했습니다. 그리고 아버지의 유언대로 장사하기 위해 가나안 땅으로 올라갔습니다. 이때 요셉의 온 집과 그의 형제들, 그의 아버지의 집 뿐만 아니라 바로의 모든 신하와 바로의 궁과 애굽 땅의 모든 원로들과 병거와 기병까지 따라 올라감으로 국가적 차원에서 최대한의 예우를 다했습니다. 야곱은 일생 험악한 세월을 보냈지만 하나님께서 주신 소망을 붙들고 하나님 앞에서 나그네의 인생을 살았을 때 살아  생전에 누려보지 못한 큰 영광을 죽음 이후에 누렸습니다. 야곱의 아들들은 아버지의 시신을 막벨라 굴의 매장지에 묻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애굽으로 돌아왔습니다. 평생 나그네 인생철학을 가지고 산 야곱은 이제 본향으로 돌아가 하나님의 품에 영원한 안식을 하게 되었습니다.

III. 요셉의 용서와 비전(15-26)
(1) 형들을 용서한 요셉(15-21)
  15절을 보십시오. 야곱이 죽자 요셉의 형제들은 요셉이 혹시 자기들을 미워하여 과거 요셉에게 행했던 모든 악에 대해 보복하지 않을까 걱정하였습니다. 지금까지는 그래도 아버지 야곱이 있어서 복수하지 않고 참고 있던 것은 아닌가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들은 요셉 덕분에 아무런 어려움 없이 잘 먹고 잘 살고 있었지만 여전히 두려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요셉은 이미 모든 것을 용서했지만 그들은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자기들이 지은 죄가 도저히 용서받을 수 없는 큰 죄임을 알았기 때문에 여전히 요셉의 진실된 용서를 믿지 못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요셉에게 말을 전했습니다. 16,17a절을 보십시오. “요셉에게 말을 전하여 이르되 당신의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명령하여 이르시기를  너희는 이같이 요셉에게 이르라 네 형들이 네게 악을 행하였을지라도 이제 바라건대 그들의 허물과 죄를 용서하라 하셨나니 당신 아버지의 하나님의 종들인 우리 죄를 이제 용서하소서 하매.” 그들은 아버지의 유언을 근거로 용서를 구했습니다. 아버지는 떠났지만 아버지의 유언은 남아있으니 아버지를 생각해서라도 용서해달라는 것입니다. 요셉을 다시 만나서 함께 지낸 세월이 17년이나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죄의식에 붙들려 두려워하고 있는 형들을 볼 때 요셉은 너무나 불쌍하고 안타까워서 울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형들이 또 친히 와서 요셉 앞에 엎드려 말했습니다. “우리는 당신의 종들이니이다(18).” 이는 그들이 공식적으로 자기들의 죄를 자백하고 용서를 비는 것입니다. 이에 요셉이 뭐라고 말합니까? 19절을 보십시오.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두려워하지 마소서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리이까?” 그는 모든 용서가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임을 상기시키고 그들을 안심시켰습니다. 그리고 형들이 자신을 팔아버린 것도 만민의 생명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계획안에 있음을 증거하였습니다(20). 요셉은 자신의 인생가운데 일어난 모든 일들을 하나님의 섭리와 선하신 주권 편에서 바라보고 하나님께서 자기를 많은 백성을 구원하는 역사에 사용하셨음을 증거하였습니다. 요셉은 모든 선악의 판단은 하나님께 맡기고 자기는 하나님의 뜻대로 쓰임 받는 것을 귀하게 여겼습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말합니다. 21절을 보십시오. “당신들은 두려워하지 마소서 내가 당신들과 당신들의 자녀를 기르리이다 하고 그들을 간곡한 말로 위로하였더라.” 그는 이제 용서 정도가 아니라 그들의 자녀들까지 먹여주고 입혀주고 교육시켜주고 결혼도 시켜주고 책임지고 양육하겠다고 함으로 용서를 확신시켜 주었습니다. 요셉을 통해 나타난 용서의 사랑은 후에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보여주신 하나님의 용서의 사랑의 그림자라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죄로 인해 죽을 수 밖에 없는 저희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독생자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시고 십자가에서 우리의 모든 죄를 대신 지고 돌아가심으로 죄인들을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확증하셨습니다. 그러나 늘 같은 죄로 넘어지기를 반복하는 자신을 돌아볼 때 절망하고 죄의식과 두려움에 시달리게 됩니다. 하나님의 용서의 사랑을 심령깊이 영접할 때 마음에 진정한 평강을 누릴 수 있습니다. 저희도 이미 예수님의 용서의 사랑을 덧입은 자들로서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하나님의 선하신 인도하심을 따라가기를 기도합니다. 캠퍼스 양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증거하고 말씀으로 양육함으로 생명을 살리는 하나님의 구속역사에 쓰임 받는 삶을 살기를 기도합니다.
  요셉은 그의 아버지의 가족과 함께 애굽에 거주하여 백십 세를 살았습니다. 그가 30세에 애굽의 총리가 되었으니 이제 80년의 긴 세월이 지났습니다. 요셉은 오랜 기간 애굽의 최고 통치자의 위치에서 부와 권력을 누리며 그곳 문화에 동화되기 쉬웠습니다. 그러나 그는 총리 직분을 성실하게 감당하면서도 애굽의 우상 숭배 문화와 구별되어 하나님 앞에서 믿음을 잘 지켰을 뿐만 아니라 자기 민족의 보호막이 되어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정체성을 잃지 않도록 잘 양육하였습니다. 그리고 이제 요셉은 죽을 때가 되자 출애굽 할 날이 올 것을 믿고 또 그 형제들에게도 이에 대한 믿음을 심었습니다. 그리고 자손들에게 맹세시켰습니다. 25절을 보십시오. “요셉이 또 이스라엘 자손에게 맹세시켜 이르기를 하나님이 반드시 당신들을 돌보시리니 당신들은 여기서 내 해골을 메고 올라가겠다 하라 하였더라.” 요셉의 유언 속에는 위대한 역사의식이 있고 출애굽에 대한 비전이 담겨 있습니다. 우리도 일생 하나님께서 내게 두신 뜻, 우리 모임에 두신 뜻, 캠퍼스와 우리 민족에게 두신 위대하신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고 하나님이 주신 비전을 붙들고 살기를 기도합니다. 요셉은 백십 세에 죽어 애굽에서 입관하였습니다. 이로써 창세기 말씀이 대단원의 막을 내렸습니다.

결론적으로, 믿음이 없고 혼란한 이 시대에 창세기 말씀으로 새롭게 은혜를 덧입혀 주시고 하나님의 뜻과 비전을 바라보게 하시고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으로서 세상과 구별된 삶을 살게 하신 은혜에 감사와 찬송을 돌려드립니다. 불신의 밤이 깊어져 가고 있는 이 시대에 창세기 말씀 통해 배운 믿음과 하나님의 축복을 마음속 깊이 새기고 하나님과 동행함으로 불신의 세력을 물리치고 믿음으로 승리하는 삶 살기를 기도합니다. 캠퍼스 영혼들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양육함으로 나를 통해 하나님의 축복의 물줄기가 이어지게 하시고 하나님께서 이루시는 구원 역사에 귀하게 쓰임 받는 삶을 살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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