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HOME | 세계선교 | 각부모임 | 경성소모임 | 성경연구 | 사진자료실 | 영상자료실 | 경성쉼터 | JBF/EBF/CBF | 기타 |

회원등록 비번분실

  Bible Study  
주일예배메시지
성경공부문제지
수양회강의
특강
구약강의자료실
신약강의자료실
강의안책자



 Sunday Worship Message
주일예배메시지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0-01-05 (일) 12:26
분 류 이사야
첨부#1 2010년_신년2강-1.hwp (29KB) (Down:28)
ㆍ추천: 0  ㆍ조회: 252      
IP: 175.xxx.122
[2020년 신년 제2강]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라

2020년 신년 2강
말씀 : 이사야서 43:1-21
요절 : 이사야서 43:19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라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반드시 내가 광야에 길을 사막에 강을 내리니”
2020년 한 해에 대해 여러 가지 전망이 있습니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로버트 실러 박사는 글로벌 경제 위기를 맞이할 수 있음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미국이 이란이나 북한을 향해 무자비한 전쟁을 벌일 수 있다는 전망도 있습니다. 서울대 소비트렌드 분석센터에서는 매년 소비트렌드 10대 키워드를 발표합니다. 2020년 10대 키워드 중에 두 가지가 눈에 띕니다. 하나는 ‘멀티 페르소나’, 현대인들은 상황에 따라 다양한 가면을 쓰고 살아간다는 말입니다. 교회에서의 가면이 다르고 친구와 있을 때, SNS에서의 가면이 다르고, 학교와 집에서의 가면이 다릅니다. 단순하게 말하면, 순수한 목자님들은 양들을 돕기가 더욱 어려워질 것이라는 전망이 될 수 있습니다. 또 하나의 키워드는 ‘편리 프리미엄’, ‘편리함’과 ‘프리미엄’을 결합한 말입니다. 과거 소비자들은 ‘가성비’를 따졌는데, 이제는 ‘프리미엄’하면서도 편리한 것을 추구할 것이라는 전망입니다. 아마 신앙생활에서도 가성비보다 편리함을 앞세우는 성향이 좀 더 강해질 것입니다. 영적으로 치열한 가치관 싸움이 필요한 시대가 오고 있다는 전망처럼 들립니다.
오늘 본문은 2020년보다 훨씬 더 절박하고 어려운 상황가운데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향해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라!’ 말씀하시며 비전을 심으셨습니다. 하나님 말씀이 새해를 맞이하는 우리에게 희망과 비전의 말씀으로 와닿게 하시기를 기도합니다.

1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지금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지으신 이가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하나님은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두려워하지 말라’는 말씀이 이전에도, 여기에도, 앞으로도 반복하여 나옵니다.(41:10,13,14, 43:1,5, 44:2,8) 그만큼 이스라엘은 두려워할만한 상황을 만났습니다. 예루살렘이 함락되어 바벨론 포로로 끌려오는 과정에서 얼마나 끔찍한 일들을 겪었겠습니까! 살아남아 바벨론에 정착한 이들의 상황 또한 만만치 않았을 것입니다. 정말 두려운 것은 지나온 과거의 고통보다 앞으로 다가올 미래의 희망이 보이지 않을 때입니다. 강력한 바벨론 제국을 생각하면, ‘하나님의 약속대로 돌아갈 수 있을까? 귀환은 고사하고 생존이나 할 수 있을까?’ 끊임없이 두려워해야 할 것 같습니다. 두려움이 커지면 정체성을 잃고 끝없이 추락할 수 있습니다. 일제 강점기 일본의 힘이 워낙 강해보이자, 희망을 잃고 친일파로 변절하는 사람들이 많았던 것처럼 말입니다. 두려움이 커지면 부정적이 됩니다. 부정적이 되면 조급해져서 악수를 두거나 무기력해져서 자포자기 합니다. 자포자기는 원망을 만들고 원망은 완악함과 불신을 향해 치닫게 합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사실 누구나 두려워하고 싶지 않습니다. 독야청청 백두대간에 서 있는 소나무처럼 어떤 폭풍설한에도 꿋꿋이 버티고 싶은데..., 결국 두려워하고야 합니다. 삶의 여정에는 비전을 따라 살지 못하도록 가로막는 두려운 문제들이 끊임없이 있습니다. 입시, 취업, 건강문제가 두려움을 주기도 합니다. 새로운 환경에 잘 적응할 수 있을까? 낯선 환경이나 장래 염려가 두려움을 줄 수 있습니다. 목자로 사는 것, 선교현장에 서는 것이 소망보다 두려움으로 와 닿을 때도 있습니다. 두려움은 감정이나 의지 문제가 아니라 승리에 대한 확신문제입니다. 승리를 확신하는 사람은 고난이 와도 흔들리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때가 오기까지 견디며 기다립니다. 두려움의 문제를 만날 때, 우리는 어디에서 무엇으로 승리를 확신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너는 내 것이라’, ‘너는 내 것이었다, 내 것이 될 것이다’가 아닙니다. ‘구속하였다, 불렀다’ 완료시제입니다. 앞으로 상황에 따라 바뀔 수 있는 내용이 아니라 확정된 사실을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구속과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이 된 것은 과거에도 그러하였고 지금도 그러하며 앞으로도 절대 바뀌어지지 않습니다. ‘너는 내 것이라’ 하나님의 소중한 존재가 되었음을 믿는 거기에서 승리를 확신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애굽의 종이었던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특별한 소유 삼는 과정은 치열했습니다. 열가지 재앙을 내리며 피 말리는 싸움을 하셨고, 마지막에는 유월절 어린 양의 피로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구속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이 홍해를 건너 광야를 지나 시내산에 도착했을 때, 하나님은 그들을 부르신 목적을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출19:6) 하나님은 노예근성에 찌들어있던 이스라엘을 거룩한 백성, 제사장 나라로 빚고자 광야에서 훈련했습니다. 광야를 지나는 중에 물과 양식이 떨어지기도 하고 불뱀의 독에 쏘이기도 했습니다. 이스라엘은 어서 빨리 광야훈련을 끝내기를 바랐지만, 하나님은 40년을 훈련했습니다. 날마다 일용할 양식을 거두며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말씀으로 산다는 단순한 진리를 몸에 익히게 하였습니다. 40일도 아닌 40년의 광야기간은 보통의 인내로 버티기 어려울 정도로 오랜 시간입니다. 높은 비전을 가진 부모는 잠시 아픔이 있더라도 매를 들고 자녀를 훈육합니다. 매를 드는 부모의 마음은 매를 맞는 자녀보다 더 아픕니다. 주께서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가 받아들이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신다고 말씀하신 이유입니다.(히12:6) 시련과 연단의 과정이 혹독한 만큼, 하나님의 사랑과 기대치가 높은 것입니다. 하나님은 시련과 아픔의 과정을 통해 세상에 붙잡힌 영혼을 깨우십니다. 하늘에 속한 사람으로 한 차원 높이시며 더욱 순수하고 강하게 연단하십니다.

지금 바벨론 포로로 끌려온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마음도 그러합니다. 2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너와 함께 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너를 침몰하지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지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 하나님이 아예 ‘물 가운데로 지나지 않을 것이며 불 가운데로 지나지 않을 것이다’라고 약속해 주셨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물 가운데로 지나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일입니까! 혹시 영화에서 홍해 바다가 갈라져 길 양쪽에 세워진 물벽 사이를 건너는 장면을 보신 적이 있습니까! 영화로는 신기한 장면처럼 보이지만, 실제 물 가운데로 지났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얼마나 살 떨리고 오금이 저렸겠습니까! 그와 같이 이스라엘이 바벨론 포로생활을 마치고 예루살렘에 돌아오기까지 물과 강과 불과 불꽃같은 시련을 만납니다. 우리가 온전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세워지기까지 많은 고난의 과정을 지나가야 합니다. 여기에도 그런 시험을 당하고 있는 분이 있을지 모릅니다. 하나님은 고난을 없애기보다 고난가운데 함께 하십니다. 홍수가 덮치는 것 같은 고난가운데에서 숨 쉴 구멍을 내시고 불같이 뜨거운 시련가운데에서 소멸되지 않도록 지켜 주십니다. 그런 과정을 통해 세상에 속한 것을 씻어내시고 불순물을 소멸시켜 정금같이 나오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건지시기 위해 애굽을 속량물로, 구스와 스바를 희생제물로 삼으실 것이라 약속하십니다.(3) 이 말씀은 당시 바벨론 포로들에게는 너무나 비현실적인 말씀처럼 들렸을 것입니다. 어떻게 힘없는 이스라엘을 위해 거대한 애굽을 희생제물로 사용할 수 있습니까! 그런데 하나님은 말씀하신 그대로 이루셨습니다. 페르시아왕 고레스는 바벨론을 정복한 후 애굽과 애굽 남쪽의 구스와 스바까지 점령할 계획을 세웁니다. 북쪽 페르시아에서 남쪽 애굽을 정복하려면 중간에 있던 팔레스틴 지역의 지지가 필요했습니다. 이에 고레스는 칙령을 내려 바벨론에 사로잡혀 왔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고향으로 돌아가도 좋다는 귀환명령을 내립니다. 세상에나! 고레스가 고렇게 명령을 내릴 줄 누가 예상이나 했겠습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바람을 타고 고향으로 돌아오게 된 것이었습니다. 마치 가이사 아구스도가 천하로 호적명령을 내림으로써 그리스도의 베들레헴 탄생 예언이 이루어지는 것처럼 말입니다. 하나님이 택하신 자들 한 사람, 한 사람을 구원하고 부르시는 손길도 그러합니다. 한편으로는 쓰디쓴 고난과 시련을 통해 마음을 겸손하게 하시고 다른 한편으로는 전혀 예기하지 못했던 손길로 구속하시고 부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생각하지 못했던 곳에서 길을 내십니다. 죽었다고 생각했던 그 곳에서 새 역사를 시작하시고 끝났다 생각하는 거기에서 제일 빠른 길을 내십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심각한 문제를 만날지라도 두려움에 짓눌려 자포자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승리의 인생은 ‘두뇌싸움’에 있지 않고 ‘멘탈싸움’에 있습니다. 두려움을 견디며 일어서는 법을 배우는 사람은 언제 어디에 가든지 승리합니다. 우리가 두려움을 물리칠 때 하나님은 반드시 당신의 영광을 보여주십니다.

하나님은 택하신 자들을 보배롭고 존귀하게 여기며 사랑하십니다.(4) 택한 자들을 하늘백성으로 빚고자 어떠한 희생도 치루는 분이십니다. 사랑하는 아들을 십자가에 내어주시며 죽기까지 고난을 당하셨습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마음은 사랑입니다. 그러므로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5) 하나님은 택하신 자들을 동서남북 사방에서 모으십니다. 동쪽으로부터 사람을 보내고 서쪽에서도 사람을 보내어 주십니다. 하나님이 북쪽을 향하여 ‘내놓으라’ 말씀하심으로 형제들을 불러오시며, 남쪽을 향해 ‘가두어 두지 말라’ 말씀하심으로 자매들을 나오게 하십니다.(6) 하나님의 이름으로 불려지는 모든 자, 곧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들을 오게 하십니다.(7) 가장 힘들다 생각했던 바벨론 포로시대에도 하나님의 역사는 멈추지 아니하고 계속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는 이들을 ‘남은 자, 그루터기’라고 부릅니다. 하나님은 우리시대에도 남은 자들, 그루터기들을 사방에서 부르고 계십니다. 청운관에서 부르시고 기숙사에서 부르시고 경희대와 가대와 온 캠퍼스와 세상 모든 곳, 동서남북 사방으로부터 부르십니다, 예수님 오실 그날까지 줄기차게 생명구원역사를 이어가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눈이 있어도 깨닫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는 사람들을 이끌어내야 합니다.(8) 하나님을 바라보지 못하고 현실에 짓눌려 어둠과 절망가운데 있는 자들에게 말씀을 전해야 합니다. 스스로 긍정의 빛을 뿜어내며 섭리와 소망의 길을 향해 나올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수많은 열방이 모이고 민족들이 회집하여 머리를 맞대고 의논할지라도 인간의 지혜로는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알 수 없습니다.(9) 세상의 지혜로 하나님의 주권을 예측할 수 없습니다. 요동치는 세상에서 어디로 가야할지,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몰라 방황할 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깨우쳐서 믿어 순종하도록 도와야만 길을 찾고 진리를 알고 생명을 얻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하나님의 증인, 하나님의 종으로 택하시고 부르신 이유입니다.(10) 여호와 하나님, 창조주 하나님 한분 외에는 구원자가 없습니다.(11) 여호와만이 태초부터 영원까지 꿰뚫어보신 유일하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장래 일들을 미리 보여주셨고, 말씀하신 그대로 이루십니다.(12) 태초부터 계신 하나님이 작정하신 일을 아무도 막을 수 없습니다.(13) 하나님의 계획대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세워지고 하나님의 약속대로 포로생활을 마치고 돌아오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그들 가운데 그리스도가 오시고 말씀 그대로 땅 끝까지 복음이 전파됩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예수님이 심판장으로 재림하시고 새 하늘과 새 땅을 펼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고난이 클수록, 세상이 복잡할수록 하나님 말씀을 생명줄로 알고 굳게 붙들어야 합니다. 14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은 사람을 보내어 바벨론성을 무너뜨리겠다고 선언하십니다. 하나님이 보내신 사람은 바사왕 고레스였습니다. 당시 바벨론 성은 난공불락의 요새로 소문났습니다. 역사가 헤로도토스에 의하면 성벽은 이중벽으로 약 60미터 높이로 건축되었고, 성벽 두께는 밑부분이 56미터였으며, 성벽으로 둘러싸인 면적이 약 500평방 킬로미터였습니다. 더군다나 성벽 주변에는 커다란 여객선을 타고 다닐 정도로 강물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난공불락의 요새와도 같은 바벨론성은 세상 끝날까지 무너지지 않을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런데 메대와 페르시아 연합군대가 쳐들어오자, 두려움에 사로잡힌 바벨론 귀족들은 배를 타고 도망쳐 버립니다. 성에 남은 자들은 목숨이라도 건지고자 싸움 한번 해보지 않고 성문을 활짝 열고 연합군대를 맞이합니다. 역대 최강으로 소문났던 바벨론은 그리 허무하게 막을 내리고 맙니다. 말씀대로 이루시는 여호와 하나님은 세상의 주인이요 왕이십니다.(15) 하나님이 작정하시면 바다가운데에 길이 나고 큰 물 가운데 지름길이 생깁니다.(16) 가장 강력한 병거와 기병과 용사라 할지라도 한순간에 엎드러져 다시 일어나지 못합니다.(17) 애굽이 그러했고 바벨론도 그러할 것입니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세상의 문명도 그러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18절을 보십시오. “너희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날 일을 생각하지 말라” ‘이전 일, 옛날 일’이란 이전 방식, 옛날 스타일을 의미합니다.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향해 믿음을 갖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 중의 하나가 이전 출애굽 스타일에 붙잡혀 있기 때문입니다. 출애굽과 출바벨론은 모두 하나님의 이루신 역사라는 점에서는 동일하지만, 방식 혹은 스타일은 전혀 다릅니다. 출애굽 역사는 모세 같은 전설적인 리더를 세우고 그를 통해 10라운드 싸움을 하면서 이루어지는데, 출바벨론 역사는 하나님의 일방적인 손길로 이루어집니다. 출애굽기 열 재앙처럼 무시무시한 사건이나 홍해를 가르는 통쾌함도 없습니다. 평범하게 살고 있는데, 어느 날 어서 돌아가라는 바사왕 고레스의 격려를 받으며 등 떠밀려 나오게 됩니다. 이전 스타일만 기억하고 있다면, 이것이 하나님의 하시는 역사인지, 사람이 하는 역사인지 구분조차 못할 수 있습니다. 새 일을 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지 못하고 여전히 불신과 어둠가운데 남아있게 됩니다.

하나님은 외치십니다. 19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반드시 내가 광야에 길을 사막에 강을 내리니” 전도서에서 분명히 해 아래 새 것이 없다고 말씀했는데, 하나님이 말씀하신 새 일은 무엇입니까! 새로운 방식, 새로운 스타일을 말하는 것이겠습니까! 사람의 계산과 예측을 뛰어넘는 일을 말합니다. 사람들은 광야에 길이 나고 사막에 강이 흐르는 것을 감히 상상조차 하지 못합니다. 광야는 모든 산맥조차 비껴가야 하는 황무한 땅으로, 사막은 풀과 나무가 자랄 수 없는 죽음의 땅으로 영원히 남겨질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러한 계산과 예측을 뛰어넘어 광야를 뚫어 길을 내시고 사막에 강을 내어 생명이 살게 하십니다. 바벨론 포로였던 이스라엘이 예루살렘으로 귀환하여 성전을 재건하고 성벽을 중건하고 다시금 약속의 백성으로 살게 되는 역사가 그러했습니다. 하나님은 희망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도 처음 약속대로 이루셨습니다. 당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서 만민 구원역사를 이루시는 것도 그러했습니다. 사람들은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를 향하는 예수님을 향해 저주하고 멸시하고 조롱했습니다. ‘저가 남은 구원하였으되 자기는 구원할 수 없도다’, 사람들 보기에는 아무 희망이 없어보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죄와 죽음의 권세를 박살내고 만민 구원역사를 완성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계산과 예상을 뛰어넘어 새 일을 하시는 분이십니다. 예수님의 다시 오심도 그러할 것입니다.  “그 때에 인자가 구름을 타고 큰 권능과 영광으로 오는 것을 사람들이 보리라”(막13:26)는 말씀대로 세상의 이성과 상식을 뛰어넘어 예수님은 다시 오실 것이며, 새 하늘과 새 땅을 여실 것입니다.
우리가 섬기는 복음역사도 그러합니다. 하나님의 구원역사는 절대로 사람의 예측대로 흘러가지 않습니다. 우리가운데 처음부터 목자의 예측대로 복음을 받아들이고 주님을 위해 헌신하게 된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 광야처럼 거칠고 사막처럼 메마르며 죄 냄새 풀풀 풍기는 그런 자들이었는데, 하나님은 우리의 예상을 깨고 복음을 영접하고 부르심을 따라 살도록 역사하셨습니다. 심각한 인생문제를 만나게 하심으로 깨질 것 같지 않았던 교만의 성벽을 깨셨습니다. 깊은 절망에서 건지심으로 하나님의 은혜에 눈을 뜨게 하셨습니다. 만년 양으로 살 것 같던 사람을 말씀으로 뒤집으사 목자로 세우셨습니다.

하나님은 ‘보라’ 외치십니다. 자기 판단을 앞세워 부정적인 결론에 몰입하지 말고 하나님을 바라보고 희망을 가지라는 말씀입니다. 어떤 이들은 힘든 상황을 근거로 부정적인 결론에 빠져 냉소적인 마인드와 쓴뿌리의 세계에서 고개를 들려고 하지 않습니다. 부정적인 결론은 자신을 위해서나 주변 사람들을 위해서나 하나님을 위해서나 아무에게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부정적인 결론은 문제의 본질을 정확히 꿰뚫어 보았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기 때문입니다. 얼마든지 새 일을 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면 희망을 품게 됩니다. 믿음은 희망입니다. 희망의 눈으로 나를 보고 양들과  동역자를 보고 자녀들을 보고 복음역사를 보는 것입니다. 희망을 품은 자들이 하나님의 하시는 손길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저는 목자로서 새해를 맞이할 때마다 많은 압박감을 느낍니다. ‘모임이 성장하지 못하고 후퇴하지 않을까?, 성장하고 성숙해지는 길을 향해 나아갈 수 있을까?’ 여러 가지 염려로 심령이 짓눌리기도 합니다. 특히 경성 계승의 십자가는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크고 복잡하고 어려워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두려움이 들 정도였습니다. 하나님은 두려워하는 제게 말씀하셨습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하나님은 다만 하나님의 인도하시는 것만큼 가기만 하면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물 가운데에도 함께 하시고 불 가운데 지날 때에도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며 힘과 용기를 얻도록 도와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새 일을 행하실 것이니 믿고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그것은 지금까지 없었던 특별한 일이 아니라 처음 모임을 세우신 비전대로 다시 한 번 쓰임 받는 것입니다. 우리 모임은 대학생 성경읽기 선교회입니다. 청년들이 목자가 되어 성경 말씀으로 청년들을 먹이는 모임, 그를 통해 청년들이 바글거리고 넘쳐서 전 세계 선교현장에까지 파송하는 그런 모임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모임에 주신 궁극적인 사명이자 비전입니다. 지금 현재의 모습은 ‘대학생들이 선교하는 대학생 선교회’의 모습보다 ‘사모님들이 선교하는 사모님 선교회’의 모습이 더 강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새 일을 행하시면 다시 한 번 청년들이 말씀으로 감동 받아 너도 나도 경쟁하듯 양을 돕는 그런 모임이 될 수 있습니다. 친구가 친구를 초대하고 선배가 후배를 초대하는 청년복음역사가 불꽃처럼 타오르는 그런 모임이 될 수 있습니다. 말씀의 종으로 쓰임받고자 줄을 서서 기다리는 학생 목자들로 인해 학사목자님들에게 기회를 줄 수 없는 그런 모임으로 다시 한 번 세움 받을 수 있습니다. 새 일을 행하시는 하나님이 역사하시면 능히 가능합니다. 또한 새 일을 행하시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을 통해 가능합니다.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새 일을 기대하며 2020년을 힘차게 맞이하며 섬길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0
3500
번호     글 제 목  작성자 작성일 조회
644 마태복음 [2020년 마태복음 제13강]바람과 바다를 잔잔케 하신 예수님 관리자 2020-05-31 13
643 마태복음 [2020년 마태복음 제12강 ]우리의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관리자 2020-05-24 76
642 마태복음 [2020년 마태복음 제11강]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관리자 2020-05-17 84
641 마태복음 [2020년 마태복음 제10강]대접 받고자 하는 대로 대접하라 관리자 2020-05-10 119
640 마태복음 [2020년 마태복음 제9강]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관리자 2020-05-03 110
639 마태복음 [2020년 마태복음 제8강]은밀한 중에 보시는 하늘 아버지 관리자 2020-04-26 107
638 마태복음 [2020년 부활절 특강]그가 살아나셨느니라 관리자 2020-04-19 114
637 마태복음 [2020년 마태복음 제7강]너희도 온전하라 휴화산 2020-04-12 138
636 마태복음 [2020년 마태복음 제6강]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휴화산 2020-04-05 151
635 마태복음 [2020년 마태복음 제5강] 큰 빛으로 오신 예수님 관리자 2020-03-29 179
634 마태복음 [2020년 마태복음 제4강]다만 그를 섬기라 관리자 2020-03-22 166
633 마태복음 [2020년 마태복음 제3강]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관리자 2020-03-15 170
632 로마서 [2020년 로마서 제19강] 복음의 동역자들 관리자 2020-03-08 195
631 로마서 [2020년 로마서 제18강] 하나님의 복음의 제사장 관리자 2020-03-01 195
630 로마서 [2020년 로마서 제17강] 서로 받으라 관리자 2020-02-23 219
629 로마서 [2020년 로마서 제16강] 빛의 갑옷을 입자 관리자 2020-02-16 194
628 로마서 [2020년 로마서 제15강] 너희 몸을 산 제물로 드리라 관리자 2020-02-09 200
627 로마서 [2020년 로마서 제14강] 하나님의 구원 계획 관리자 2020-02-02 216
626 로마서 [2020년 로마서 제13강] 말씀을 통한 구원의 역사 관리자 2020-01-26 245
625 로마서 [2020년 로마서 제12강] 하나님의 주권과 긍휼 [1] 관리자 2020-01-19 297
12345678910,,,33
서울 동대문구 이문2동 264-231
Tel:070-7119-3521,02-968-4586
Fax:02-965-8594
서제임스목자님메일:Suhjt@hitel.net
[UBF한국본부] [유럽UBF] [UBF국제본부] [UBF TV] [시카고UBF] [Mother Barry's Homepage]
[뉴욕UBF] [워싱턴UBF] [노스웨스턴UBF] [콜롬비아UBF] [코스타리카UBF] [프랑크푸르트UBF]
[키에프UBF] [상파울루UB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