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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nday Worship Message
주일예배메시지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0-01-12 (일) 12:52
분 류 디모데후서
첨부#1 2020년_신년3강-1.hwp (29KB) (Down: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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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신년 제3강]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2020년 신년 제 3강
말씀 : 디모데후서 3:1-17절
요절 : 디모데후서 3:14절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그러나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너는 네가 누구에게서 배운 것을 알며’

디모데후서는 순교를 앞둔 사도 바울의 마지막 편지입니다. 네로황제의 대대적인 박해로 인해 바울도 감옥에 붙잡혀가고 베드로도 순교합니다. 목자들이 환난을 당하자, ‘신앙생활이 이렇게 힘들 줄 몰랐다’하며 떠나가는 자들도 많이 생겼습니다. 그런 분위기로 인해 에베소 교회의 책임 목자였던 디모데는 많이 위축되고 많이 짓눌리기 쉬웠습니다. 이에 바울은 디모데전후서 편지를 통해 디모데를 격려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바울은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고 말씀합니다. 특별한 일을 하기보다 지금까지 배우고 확신했던 일을 지속적으로 꾸준히 하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디모데가 배우고 확신한 일은 무엇입니까! 그리고 우리가 배우고 확신한 일은 무엇입니까! 특별한 것을 찾기보다 지금까지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는 2020년 되기를 기도합니다.

1절을 보십시오. 말세는 세상 끝, 예수님의 처음 오신 그때부터 다시 오시는 그 날까지를 말합니다.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게 됩니다. 보통 생각으로는, 구원자 예수님이 오셨으니 점점 좋은 일만 생겨야 할 것 같습니다. 우리 또한 예수님을 영접한 후에는 범사에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 은혜로운 인생을 살 것으로 기대합니다.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는 기술문명으로 환경문제, 자원문제, 질병문제를 해결하고 아무런 문제없는 그런 날이 오기를 소망합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이전보다 훨씬 위험하고 고통스런 시대, terrible times가 오게 될 것을 예고했습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이것을 알라’고 말씀하심으로 고난을 감당할 마음준비를 시켰습니다. 그것은 백두산 폭발이나 원전사고, 소행성 충돌이나 기상이변 같은 재난과 사고를 통한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의 내면이 점점 황폐해져서 복음진리를 가르치기가 정말 어려운 그런 시대를 맞이하는 것입니다,
고통하는 때, terrible time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바울은 2-4절에 걸쳐서 말씀합니다. “2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랑하며 교만하며 비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하지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3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모함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하지 아니하며 4 배신하며 조급하며 자만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2절부터 4절 말씀은 ‘자기를 사랑하며’로 시작하여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로 끝나고 있습니다. 자기 사랑과 하나님 사랑이 대조되어 있습니다. 율법의 핵심은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입니다.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이 참된 경건이며 자기 안에 하나님 형상을 회복하는 비결입니다. 반면 자기 사랑을 맨 첫 자리에 올려놓으면 하나님 형상을 잃어버리고 고통을 주고받는 사람이 되어버립니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자기 사랑이 첫 자리를 차지하면 정말 끔찍한 시대가 도래하게 됩니다. 자기 사랑은 나의 유익을 최고의 가치로 삼고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달려가는 것입니다. 자기 사랑의 구체적인 표현은 돈 사랑으로 시작하여 쾌락 사랑으로 끝이 납니다.
자기를 사랑하기에 돈을 사랑합니다. 요즘 어른이나 아이나 최고의 선물 설문조사 1순위가 돈입니다. 돈을 벌기 위해 애쓰지 않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어디까지가 돈을 사랑하는 것이며 어디서부터가 돈을 안사랑하는 것입니까! 돈 사랑의 기준이 무엇입니까! 예수님은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고 말씀하시면서 ‘네 보물 있는 곳에 네 마음도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돈을 사랑하는 것은 ‘얼마나 버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무엇을 위해 쓰느냐’에 있습니다.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을 위해 돈을 쓰지 않는 것이 돈 사랑입니다. 오늘날 청년들이 기독교 신앙에 진입하는 데 가장 큰 걸림돌로 두가지를 말합니다. ‘십일조와 성적 쾌락’, 본문 말씀에서도 돈 사랑으로 시작하여 쾌락 사랑으로 끝납니다. 딤전 6:10절은 말씀합니다.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
자기 사랑은 돈 사랑을 시작으로 하여 자기를 높이고 자기를 주장하는 방향으로 움직입니다. 두 번째가 ‘자랑’, ‘알라조네스’입니다. 이는 본래 시골 약장수가 과장 광고하며 떠벌리는 것을 표현한 단어입니다. 그와 같이 조그만 것을 뻥튀기하여 자기를 과시하는 것입니다. 교만을 떨고 남을 무시하고 자기 마음에 들지 않으면 비방합니다. 부모에게 대들고 거역하며 감사하지 않습니다. 부모를 거역하는 사람은 기본이 되어있지 않는 사람입니다. 가장 중요하고도 기본적인 은혜, 생명을 받고 입을 옷과 먹을 양식을 받고 때마다 사랑과 섬김을 받은 은혜를 모르는 자이기 때문입니다. 유대인들은 이런 자들을 가장 멸시한다고 합니다. 감사하지 않습니다. 마땅히 감사해야 할 것, 구원의 은혜에 대해, 동역자에 대해, 일용할 양식에 대해, 내게 주어진 것들에 대해 감사하지 않는 것을 당연히 여깁니다. 거룩하지 않으며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않고 쓴뿌리를 키우며 딱딱하게 사는 것에 익숙합니다.(3) 인사를 해도 받지 않고 모함하는 것을 좋아하고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배신하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으며 조급하여 쉽게 내지르며 자기 잘난 맛에 사는 것을 양식으로 삼습니다.(4)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합니다. 청년에게 가장 큰 쾌락은 육체의 정욕입니다. 끝없이 정욕의 쾌락을 즐기며 사는 것을 능력이요 자랑으로 여깁니다. 반면 하나님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며 경건하게 살고자 몸부림치는 자들을 어리석다고 비웃습니다.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이 달려가는 코스입니다.

그렇게 살아가는 자들은 아무리 놀라운 성공을 이루어내고 어떤 신비한 모양을 갖출지라도 경건의 능력을 갖추지 못한 자들입니다. 5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자니 이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 ‘돌아서라’, 이는 avoid로서 ‘피하라’, ‘관계를 맺지 말라’는 뜻입니다. 돈을 사랑하고 쾌락을 사랑하는 자들을 환영하거나 그들을 공동체의 리더로 세우지 말아야 합니다. 아무리 돈이 많아도, 아무리 똑똑하고 아무리 빛나는 자리에 있을지라도, 아무리 사람이 없을지라도 인정하거나 세우지 말아야 합니다. 마치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나안 사람들과 관계를 맺지 말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말입니다. 저들은 경건한 신자들을 오염시키고 영적 공동체를 무너뜨립니다. 영적 리더는 겉으로 보여지는 경건의 모양으로 속지 말고 실제 삶에서 경건의 능력을 가진 자들을 존귀하게 여기며 그들을 높여야 합니다.

당시 에베소 교회에 그런 위험성이 있었습니다. 6절을 보십시오. 6절에 나오는 어리석은 여자가 누구인지는 확실하지 않습니다. 당시에는 여인들이 공부할 수 있는 교육기관이 없었습니다. 이에 있는 집 소위 상류층 귀부인들은 소문난 일타강사들을 집으로 초대하여 철학이나 수사학 개인 레슨을 받았습니다. 그러다가 강사들의 세련된 화술과 똑똑함에 마음까지 빼앗겨 정욕의 죄를 짓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와 같이 에베소 교회의 유력한 어떤 여인이 정통 복음진리에서 벗어난 어떤 자들을 집으로 초대하여 영적 세계를 알고자 했습니다. 진리의 지식은 진실하게 회개하고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을 영접함으로 얻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요8:31,32) 그런데 이 여자는 중한 죄를 회개하지도 않고 여러 가지 욕심을 내려놓지도 않았습니다. 대신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배움으로써 진리에 이르고자 했습니다.(7) 결국 항상 배울지라도 끝내 진리의 지식에 이르지 못합니다. 여자를 가르치는 자들 또한 얀네와 얌브레처럼 경건의 모양만 있을 뿐 경건의 능력이 없는 자들이기 때문입니다.(8) 얀네와 얌브레가 출애굽기에서 지팡이를 뱀으로 만들어서 모세를 대적했던 것처럼, 그들도 사람을 혹하는 잠깐의 능력으로 진리를 대적하는 자들에 불과합니다. 그들은 신비한 영의 능력을 가진 자들이 아니요 거짓과 탐욕으로 마음이 부패한 자요 믿음에 관하여는 버림받은 자들입니다. 오늘날 한국교회는 신천지나 신사도운동 같은 이단의 공격으로 인해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저들은 교회에 가만히 침투하여 새로운 지식이나 영의 체험을 가르쳐주겠다며 성도들을 꼬드깁니다. 경건의 능력을 가진 자들의 가르침은 배우면 배울수록 겸손해지고 주와 복음역사에 순종하며 동역하는 사람이 되게 합니다. 그런데 저들은 목자와 양 사이에 의심과 다툼을 일으키고 교만을 심어 공동체를 분열시킵니다. 저들의 교훈이 아무리 뭔가 있어 보일지라도 진리의 지식이 될 수 없는 이유입니다. 저들은 시간이 흐를수록 그 어리석음을 드러내고 결국에는 사라지고 말 것입니다.(9)

바울은 디모데에게 저들의 영향을 받지 말고 흔들림 없이 목자의 길을 가도록 권면합니다. 그것은 어떤 특별한 비법이 아니라 지금까지 목자 바울과 함께 하며 배웠던 것입니다. 10,11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나의 교훈과 행실과 의향과 믿음과 오래 참음과 사랑과 인내와 박해를 받음과 고난과 또한 안디옥과 이고니온과 루스드라에서 당한 일과 어떠한 박해를 받은 것을 네가 과연 보고 알았거니와 주께서 이 모든 것 가운데서 나를 건지셨느니라” ‘네가 과연 보고 알았거니와’는 말씀은 머리로 아는 이론적인 지식이 아닌 목자 바울을 따르면서 현장에서 보고 아는 체험적인 지식을 말합니다. 바울의 교훈은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으로 하지 아니하고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의 도를 가르쳤습니다.(고전2:1,2) 바울의 행실은 양들을 구원하고 믿음위에 굳게 세우기 위해 세상의 더러운 것과 만물의 찌꺼기같이 되어 섬기는 것이었습니다.(고전4:13) 바울의 의향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는 것이었으며, 이방인의 사도가 되어 땅 끝 서바나까지 복음을 전파하는 것이었습니다. 바울의 믿음은 현재의 고난과 비교할 수 없는 영광이 장차 나타날 것을 확신했습니다.(롬8:18) 바울은 오래참음으로 뼈아픈 시험과 박해를 견디고 양들을 섬겼습니다.(행20:19) 사랑으로 오래 참고 사랑으로 온유하며 사랑으로 시기하지 아니하고 사랑으로 교만하지 않고 무례히 행하지 아니했습니다.(고전13:4) 바울은 모든 것을 참고 모든 것을 바라며 견디었습니다.(고전13:5) ‘내가 날마다 죽노라’ 외칠 만큼 고난과 박해가운데 목자로 사는 것을 디모데가 보고 알았습니다. 안디옥과 이고니온에서 박해를 받고 돌에 맞았습니다.(행13장) 루스드라에서는 돌에 맞아 기절하여 성밖에 버려졌는데, 다시 깨어나자 성 안에 들어가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렇게 무시무시했던 루스드라에서 제자삼은 사람이 디모데입니다.(행16:1) 만약 바울이 고난과 박해를 두려워하여 복음을 전하지 않았다면, 목자의 수고를 감당하지 않았다면 과연 디모데가 제자로 살 수 있었을까요! 아니, 구원조차 받을 수 있었을까요! 바울의 아픔과 고난이 디모데에게는 생명과 새 역사의 통로였습니다. 우리들도 그러합니다. 한 사람이 구원받고 변화가 되기까지 해산의 고통처럼 수고하고 아픔을 겪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고난이나 박해 자체가 나쁜 것이 아닙니다.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사람, 생명을 살리고자 하는 사람이 고난을 맞이하고 박해를 받습니다.(12) 어둠이 빛을 싫어하듯이, 세상은 경건한 사람, 생명의 일군을 싫어합니다. 그러므로 고난과 박해는 믿음과 불신의 갈림길이 됩니다. 박해가 다가오자 많은 이들이 바울을 떠났습니다.(딤후4:16) 세상의 인정과 영광을 기대할 수 없음을 알고 실망하여 떠나는 이들도 있었고 더 큰 고난과 박해를 받을까와 두려워서 떠나는 자들도 있었습니다. 데마 같은 리더까지도 부르심을 버리고 세상으로 가버렸습니다.(딤후4:10) 바울의 마음이 얼마나 아팠는지 디모데에게 어서 와 달라 부탁할 정도였습니다. 13절을 보십시오. 목자는 끝까지 고난의 길을 가는데, 악한 사람들과 속이는 자들은 더욱 악하여 속이기도 하고 속기도 합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각자 자기의 길을 가는 것입니다. 믿음의 사람은 더욱 더 믿음의 길을 가고 경건한 사람은 더욱 더 경건한 사람이 되고 악한 자는 더욱 더 악의 길을 가고 속이는 자는 속이는 길을 갑니다.

디모데는 어떠한 길을 가야 합니까! 14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그러나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너는 네가 누구에게서 배운 것을 알며’ 바울은 ‘그러나 너는’이라고 말씀합니다.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하든지 간에 ‘디모데 네가 중요하다’는 말씀입니다. 부르심을 버리고 돈 사랑, 쾌락 사랑으로 달려가는 사람들을 보면 한편으로는 안타깝지만 한편으로는 영향을 받습니다. ‘괜히 남아있는 나만 미련한 바보처럼 고생하며 사는 것은 아닐까? 나도 늦기 전에 내 앞가림이나 하며 살아야 하지 않을까?’ 흔들릴 수 있습니다. 조급함이나 염려에 휘말려 들어 악수를 둘 수 있습니다. 그러나 디모데는 목자 바울에게 배우고 확신한 대로 교훈과 행실과 의향과 믿음과 오래 참음과 사랑과 인내와 박해를 받음과 고난을 견디는 생활에 거해야 합니다. 거한다는 것은 계속하여 머무르는 것입니다. 어느 한순간, 청년의 때만 잠깐 체험삼아 해보는 것이 아닙니다. 청년의 때를 지나 장년이 되어서도, 세상 끝날까지 계속하여 그렇게 사는 것입니다. 당장에 어떤 열매가 있느냐, 사람들의 인정을 받느냐, 받지 못하느냐, 결과를 놓고 저울질하지 아니하고 변함없이 지속적으로 행하는 것입니다. 복음의 일군의 길에는 특별한 왕도가 없습니다. 자기부인, 자기 십자가의 길을 가면서 예수님 믿고 의지하고 배우고자 끊임없이 노력하는 것입니다.
디모데가 배우고 확신했던 바울의 목자생활은 성경에서부터 나온 것입니다. 그러므로 목자 바울이 순교하여 세상을 떠날지라도 디모데는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다만 성경으로 돌아가기에 힘쓰면 됩니다. 디모데는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습니다.(15) 성경에 익숙한 사람입니다. 디모데가 익숙한 성경안에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게 하는 지혜를 담고 있습니다. 구원에 이르려면 하나님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능력이 어떠하며,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하나님의 경륜을 알아야 합니다. 또한 인간을 알아야 합니다. 인간의 어떤 모습에 대해 알려주는 수많은 책들이 있지만, 성경만큼 하나님 편에서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는 그런 책은 없습니다. 성경은 나를 비추고 하나님을 바라보게 합니다. 그러므로 디모데가 어려서부터 알고 있던 성경으로 다시 돌아가야 합니다. 성경을 제대로 읽으면 마음이 굉장히 부담스럽고 불편해질 수 있습니다. 사람의 어떤 책망이나 교훈보다 두렵고 부담스럽고 가슴 아픈 책망과 교훈을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성경 말씀은 누구의 격려나 교육보다 더 큰 위로와 통찰력과 에너지를 줄 수 있습니다. 우리의 본질을 꿰뚫어보시고 악한 마귀의 공격을 막아내는 하나님의 지혜를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16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성경은 참으로 놀라운 책입니다. 신구약 66권 성경은 1,600여년에 걸쳐 왕, 정치가, 제사장, 역사가, 목자, 어부, 의사, 교사, 음악가, 공무원 등등 다양한 계층에 속한 40여명의 저자들에 의해 쓰여졌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은 일관된 흐름이 있으며 각각의 주제가 모순됨이 없습니다. 성경이 담고 있는 하나님의 섭리와 구원의 방법은 인간의 머리로 도저히 생각해 낼 수 없는 것들입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되었기 때문입니다. 성경에 담긴 하나님의 감동은 세상의 어떤 감동보다 강합니다. 과학적 확신을 가졌던 갈릴레오 갈릴레이는 가톨릭 종교재판에서 자신의 과학적 신념을 3번이나 철회했습니다. 지구가 돈다는 충격적인 지식이 주는 감동보다 형벌에 대한 두려움이 너무 컸기 때문입니다. 지구가 돈다는 명제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내놓는 것은 머리가 돌지 않고는 있을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성경을 통해 하나님의 감동을 받는 사람들은 자신의 인생을 기꺼이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유대인으로 살던 사람이 이방인의 사도로 살기도하고 죽음마저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4:7절에서 바울은 순교를 앞두고 고백했습니다. “나는 선한 싸움을 마치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줄 것이라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 성경은 세상을 이길 수 있도록 용기를 불어넣고 죄와 죽음의 세력을 몰아내는 죄사함과 생명의 감동을 줍니다.
또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합니다.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이 인간의 마음입니다.(렘 17:9) 사람의 마음은 하나같이 치우쳐 있습니다. 자기 유익과 감정에 치우쳐 자기 보고 싶은 대로 보고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해석합니다. 사람 사이에 갈등과 분열이 발생할 때, 인간의 어떤 설득으로도 치유하기 어려운 이유입니다. 디모데는 에베소 교회의 목자로서 양들을 교훈하고 책망하고 바르게 하고 의로 교육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를 뼈져리게 느꼈을 것입니다. 이해보다 오해하기를 잘하고 회개하기보다 상처를 받고 순종하기보다 고집을 피우며 원통하고 분한 마음을 풀려고 하지 않는 인간 본성을 보았습니다. 세상은 악하여지고 사람의 마음은 심히 거짓되고 부패하였으니, 디모데가 어떻게 목자의 직분을 감당할 수 있습니까! 성경 말씀을 사랑하고 성경 말씀을 부지런히 가르쳐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좌나 우로 치우치기 쉬운 우리 영혼을 온전하게 붙잡아줍니다. 세상에 끌려가던 우리 눈을 들어 예수님을 바라보게 합니다. 사탄 마귀의 노림수를 분별하며 어둠의 유혹에 넘어지지 않도록 빛으로 역사하십니다.
17절을 보십시오. 디모데가 성경을 사랑하고 성경을 가르칠 때,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됩니다. 디모데도 그러하고 디모데의 양들도 그러합니다. 말씀을 사랑할수록 영적 분별력을 덧입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가게 됩니다. 사람들이 방황하고 고통하는 것은 말씀이 없기 때문입니다. 아모스선지자는 말씀했습니다. “...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요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암8:11) 말씀을 사랑하면 고갈되지 않고 유혹에  넘어지지 않으며 자기 문제에서 나와 한 사람을 힘있게 도울 수 있습니다.

오래전 고 이사무엘 선교사는 ‘성경으로 돌아가라’는 방향을 유언적으로 남겼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서 벗어나지 아니하고 캠퍼스 개척과 세계선교를 감당할 수 있는 유일한 비결이 성경을 붙드는 것임을 체험적으로 아셨기 때문입니다. 새해를 출발하면서 날마다 일용할 양식을 먹고자 방향을 붙잡는 청년들을 보았습니다. 매주 한 편의 소감을 쓰고자 결단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주말마다 캠퍼스에 올라가서 말씀을 전파하겠다며 기도하는 청년들도 있었습니다. 세상의 소리에 떠밀리지 아니하고 성경 말씀을 붙들고 말씀대로 순종하는 것이 악한 시대를 승리하는 비결입니다. 세상은 놀라운 속도로, 미친 듯이 경쟁하고 변화하며 달려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기에 힘써야 겠습니다. 목자를 통해 배운 복음진리를 붙들고 그 안에 거하고 순종하기에 힘써야 합니다. 말씀을 사랑하고 말씀을 전파하기에 힘써야 합니다. 그것이 나를 지키고 세상을 이기는 비결입니다. 우리 각 사람에게 이 믿음을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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