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HOME | 세계선교 | 각부모임 | 경성소모임 | 성경연구 | 사진자료실 | 영상자료실 | 경성쉼터 | JBF/EBF/CBF | 기타 |

회원등록 비번분실

  Bible Study  
주일예배메시지
성경공부문제지
수양회강의
특강
구약강의자료실
신약강의자료실
강의안책자



 Sunday Worship Message
주일예배메시지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0-02-09 (일) 12:34
분 류 로마서
첨부#1 2019년_로마서_제15강-1.hwp (29KB) (Down:23)
ㆍ추천: 0  ㆍ조회: 201      
IP: 175.xxx.122
[2020년 로마서 제15강] 너희 몸을 산 제물로 드리라

2020년 로마서 제15강  
말씀 / 로마서 12:1-21
요절 / 로마서 12:1

너희 몸을 산 제물로 드리라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로마서는 1-11장은 구원의 교리를, 12-16장에서는 신자의 윤리를 말씀합니다. 오늘날 한국 교회를 향해 교리는 있는데 윤리가 없다는 비난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그러한 비난의 옳고 그름을 떠나서 ‘윤리 없는 교리는 맛 잃은 소금과 같다’는 진리는 사실입니다. 12장 말씀은 신자의 윤리생활의 기초입니다. 말씀을 통해 믿는 자의 윤리를 마음에 새길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1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그러므로, 이는 1-11장 전체를 받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았으므로, 그러므로 이제는 이전과 다르게 살아야 합니다. 구원과 경건은 따로 따로가 아니라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말씀합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권하고 있습니다. 차라리 ‘하나님의 심판을 두고 명령하노니’, ‘영원한 생명을 걸고 명령하노니’, 이렇게 말씀하면 좀 더 강력하게 다가올 것입니다. 그런데 명령 아닌 권면이기에, ‘구원은 필수 경건은 선택’처럼 들릴 수 있습니다. 바울이 명령이 아닌 권면으로 하는 이유는 의무감이나 두려움으로 하는 경건생활은 형식적이 되고 위선으로 빠져버리기 때문입니다. ‘구원은 은혜, 경건은 감사’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비하심에 감사하여 자원하여 헌신할 때 믿음을 체험하고 경건생활의 생명력을 누릴 수 있습니다.
바울은 ‘우리 몸을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고 말씀합니다. 구약시대 성전의 예배에서는 짐승을 제물로 잡아 드렸는데, 이제는 우리 몸을 잡으라고 말씀하십니다. 제물을 잡아 드리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일입니까! 제물의 목에 칼을 그어 모든 피를 쏟아냅니다. 다음에는 가죽을 벗기고 더러운 내장을 다 긁어내고 조각조각 토막을 내어 불에 태워 드립니다. 바울의 비유는 경건생활의 핵심이 희생과 죽음에 있음을 의미합니다. 죄악된 자아를 죽이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희생하는 것입니다. 구약의 제물과 대입해본다면, 자기의의 피를 쏟아내고 형식과 위선의 두터운 마음 가죽을 찢는 것입니다. 마음깊이 숨겨진 정욕과 욕심의 더러운 것들을 긁어내고 자신을 온전히 불태워서 그리스도의 향기를 풍기는 사람으로 드리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죄로 죽은 우리를 위하여 속죄제물이 되심으로써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또한 자기 나름대로 살아갈 것이 아니라 거룩한 산 제물로 드려야 합니다. 다니엘처럼 뜻을 정하고 주어진 달란트로 부지런히 장사하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야 합니다.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서 깨끗한 그릇으로 드리기에 힘써야 합니다. 사람을 취하는 생명구원역사에 자신을 드려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가 드려야 할 영적 예배입니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유행하는 가운데 우리가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무서운 바이러스가 유행하자, ‘예배냐 안전이냐!’ 실제적인 고민에 부딪히게 됩니다. 그와 같이 평소 생활에서 ‘하나님이냐, 실리냐’ 고민의 기로에 설 때가 있습니다. 학교와 직장에서 진실하게 살고자 몸부림을 치다가 무거운 마음을 떠안을 때도 있습니다. 한 영혼을 살리기 위해 수고하고 상처를 견디고 희생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하나님의 위로와 격려의 음성을 듣는 영적 예배가 되게 하십니다. 풍성한 찬양과 경배 프로그램만으로, 권세있게 선포되는 말씀만으로 영적 예배로 준비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자신을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기 위해 매일의 삶을 준비하는 거기에서부터 영적 예배가 준비됩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매순간 만나주시고 그들의 영혼을 위로하고 생명과 영광의 빛을 비추기 때문입니다. 우리 삶과 예배가 매순간 영적 예배로 드려지기를 기도합니다.

2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본받는다’는 말은 ‘같은 모양이 된다’는 뜻입니다. ‘이 세대를 본받지 말라’, 이는 이 세대의 유행을 따라가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세상은 유행을 따라가라, 심지어 유행을 앞서가라고 부추깁니다. 패션이나 삶의 스타일에서 우리의 겉모습이 세상의 유행을 따라가는 것은 나쁘지 않습니다. 유행을 따라 염색하고 화장합니다. 유행을 따라 스마트폰을 사고 패션을 꾸밉니다. 하지만 우리의 믿음, 우리의 내면세계, 가치관은 그리해서는 안됩니다. 세상의 흐름을 좇아가다가 자기의 고유 가치를 잃어버리면 그것이 곧 망하는 지름길입니다. 햄버거를 좀 아는 사람들은 미국 서부 L.A에 가면 인앤아웃버거를 먹고 싶어한다고 합니다. 동부에서는 쉑쉑버거가 유명한데, 이 버거는 해외매장을 개척할 때마다 새 메뉴를 하나씩 추가하며 현지화 전략을 벌입니다. 반면 인앤아웃버거는 절대 체인점을 두지 않고 LA 근처 몇 개의 매장만 가지고 있으며, 메뉴도 오래전 그대로 만듭니다. 거리가 멀어지면 부모님 때부터 내려온 신선하고도 정확한 그 맛을 그대로 재현하기 어렵기 때문에, 그 맛을 지키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어느 경영전략이 옳고 틀렸다’라는 것을 말하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경영전략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자기 본연의 가치를 지키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우리도 신자의 맛, 우리 모임의 정신을 잃어버리는 것을 경계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마가복음 8:38절에서 ‘음란하고 죄많은 세대’라고 말씀했습니다. 누가복음 9:41절에서는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라고 말씀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대는 육신주의, 물질만능주의로 가득합니다. 불신에 기초한 사상과 문화가 가득하며 개인주의나 실용주의의 물결이 도도히 흐르고 있습니다. 세상의 흐름에 떠내려가지 않으려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배우고 따라가는 한가지 방향을 굳게 붙들고 자기 부인, 자기 십자가의 길을 가기에 힘써야 합니다. 우리에게 주신 성서한국과 세계선교의 사명을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세상을 본받지 말아야 할 뿐만 아니라 마음을 새롭게 하고 변화받기에 힘써야 합니다. 본래 우리 마음은 지극히 자기중심적이며 육신적입니다. 좀 더 성공하지 못해 안타까와하고 좀 더 잘나가지 못해 상처받고 좀 더 자기 광을 내지 못해 분노합니다. 그러한 본성은 구원 이후에도 여전히 내 안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늘 마음을 새롭게 하여 변화하고자 힘쓰지 않으면 이제는 장소를 옮겨 교회안에서 자기 영광을 구하고 자기를 높이려고 합니다. 변화되지 않는 본성으로는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는 뜻을 분별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마음을 새롭게 하려고 항상 역사하십니다. 축복을 주시고 사건과 문제를 만나게 하시고 말씀의 감동을 주십니다. 새 마음과 변화는 불같은 성령의 한 방으로 해결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이나 환경을 바꾸는 것이 본질적인 해결책이 아닙니다. 한편의 진실한 소감이나 일용할 양식을 통해 말씀 앞에 진실하게 서야 합니다. 부지런히 회개하고 내 마음을 새롭게 하고 말씀에 순종하는 생활을 통해 실제적인 믿음을 체험해야 합니다. 그리할 때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는 뜻을 분별하는 사람들로 변화됩니다.

3절부터는 경건생활의 각론이라 할 수 있습니다. 3-13절은 신앙공동체 안에서의 경건생활입니다.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각 사람에게 나눠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해야 합니다.(3) ‘믿음의 분량’이란 ‘각자에게 허용된 믿음’을 말씀합니다. 각각의 위치와 직분에 맞는 믿음이 있습니다. 말씀을 전하는 직분을 맡은 사람에게 필요한 믿음이 있고 섬기는 직분을 맡은 사람에게 필요한 믿음이 있습니다. 내가 제일 중요하며 내가 모든 것을 하는 것처럼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입니다. 아담과 하와도 하나님과 같이 되려는 교만으로 자기 분수를 알지 못하고 넘어져서 축복을 빼앗겼습니다. 지금 내가 서 있는 자리에서 회개와 감사의 믿음을 지켜야 합니다.
하나님은 각각의 직분과 부르심에 맞는 믿음을 주십니다. 그것이 지체의식입니다. 우리가 한 몸에 많은 지체를 가졌는데, 모든 지체가 같은 기능을 가진 것이 아닙니다.(4) 각각의 기능이 다르다고 하여 중요도가 다른 것이 아닙니다. 만약 손이 발더러 이르기를 ‘야, 발! 나는 하는 일도 많지만, 너는 겨우 이동수단에 불과해! 나는 너같이 발냄새 같은 것도 없어!’ 이리 말할 수 없습니다. 발이 얼마나 부지런히 움직였으면 발냄새가 나겠습니까! 만일 발을 다쳐 기브스를 하면 아무리 황금의 손을 가졌다 한들 꼼짝하지 못합니다. 혹시 ‘눈썹 정도는 없어져도 괜찮지 않을까!’,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눈썹이 없어지면 미관상 문제만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이물질이 쉽게 눈으로 흘러 들어가서 급격히 시력이 나빠지게 됩니다.
그런데도 지체의식을 갖기보다 자기중심으로 생각하기를 좋아합니다. ‘저 팀 필요 없어, 저 요회 필요 없어, 저 사람 필요 없어’, ‘내 팀, 내 요회, 내 사람’ 중심으로 지체의 범위를 줄여나가려고 합니다.  당장 껄끄럽지 않고 불편하지 않는 거기에 포커스를 맞추려고 합니다. 저마다 다른 역할과 기질을 가진 사람들이 모일수록 갈등을 소화하려는 치열한 투쟁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발이 없다고 당장 죽는 것이 아니며 눈썹이 없어도 당장 심각한 문제를 가져오지 않는 것처럼, 자기중심으로 행동하는 것을 심각하게 여기지 않습니다. 결과적으로 지체들과 함께 하면서 성장하며 체험하는 은혜가 점점 줄어듭니다. 영적으로 성장하지 못하는 신앙생활이 되고 맙니다. 성장은 갈등과 긴장을 소화하면서 이루어집니다. 믿음의 가정이라도 그러합니다. 부모와 자녀가 서로 갈등하고 그것을 소화하면서 부모는 부모대로, 자녀는 자녀대로 성장하는 것입니다. 반면 ‘자식이 원수다, 너 마음대로 해!’ 자녀를 마음에서 잘라버리면, 부모는 성장하지 못합니다. ‘하나님이 나의 성장을 위해 보내신 훈련관이시구나!’ 영접하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자녀 또한 그러합니다. 믿음의 부모를 목자로 인정하고 순종하는 마음으로 귀를 열고 나아올 때 날이 갈수록 달라집니다.  
그와 같이 우리도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을 이루는 지체입니다.(5) 각각의 지체에 각각의 기능이 있듯이, 교회안에서도 각각의 직분이 있습니다.(6) 어떤 이는 예언의 은사가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직분을 말합니다. 어떤 이는 섬기는 은사가 있고 어떤 이는 성경선생의 은사가 있습니다.(7) 구제하는 은사, 리더쉽의 은사, 긍휼을 베푸는 은사가 있습니다.(8) 우리들도 저마다 은사가 다릅니다. 친절한 목자도 있고 쓴소리 목자도 있습니다. 어느 것이 중하고 어느 것이 덜 중하지 않는 부분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런 믿음으로 서로가 서로를 소중히 여겨야 합니다. 학사는 학생을, 학생은 학사를, 목자는 양을, 양은 목자를 소중히 여길 때 은혜가 풍성한 모임으로 성장합니다.

9절을 보십시오. 사랑은 모든 지체에 흐르며 생명력을 공급하는 피와 같습니다. 피가 부족해도 지체는 병들지만, 피가 오염되어도 지체는 병듭니다. 사랑에 거짓이 들어오면 그리스도의 몸인 공동체가 병들고 아프게 됩니다. 그러므로 오염된 사랑이 되지 않도록 악을 미워하고 선에 속하기에 힘써야 합니다.(9)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정욕을 즐기면 안됩니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속이고 자기유익을 위해 이용한다면 다툼과 분열을 가져오고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망치는 것입니다. 참된 사랑은 거룩한 싸움입니다. 죄를 짓고 있으면 가르치고 깨우치고 책망해서라도 돌이켜야 합니다. 반대로 회개하고 돌이키면 받아주고 함께 하며 상처를 치유하기에 힘써야 합니다. 형제를 사랑하여 우애하고 존경하되 서로 먼저하기에 힘써야 합니다.(10) 10절에서 ‘서로 먼저’가 중요합니다. 서로 먼저 하려고 하지 않으면 마귀의 역사로 말미암아 사랑할 기회를 빼앗겨 버립니다. 그러므로 부지런해야 합니다.(11)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겨야 합니다. 사랑은 마치 불꽃과 같아서 열심을 낼수록 더 많은 기쁨과 감동을 가져오고 더 많은 사랑을 불러오게 합니다. 반면 안일과 나태에 사로잡혀 사랑하기를 게을리하면 있던 사랑마저 꺼져 버리고 가까이에 있는 사람조차 사랑할 수 없게 됩니다. 사랑은 움직이는 것입니다. 입으로만 사랑하지 말고 손과 발을 움직여 부지런히 기도하고 부지런히 섬겨야 합니다. 소망중에 즐거워하며 환난 중에 참으며 항상 기도에 힘써야 합니다.(12)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더 나은 날들을 준비하고 계십니다. 나를 통해 반드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실 것이며, 장차에는 하나님 나라의 영광을 누리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나만 홀로 힘들게 산다는 생각에 짓눌리지 말고 긍정의 생각을 하고 즐거움을 잃지 않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나의 위로와 격려가 필요한 사람들을 찾아 돕기에 힘써야 합니다.(13) 불평과 원망 대신 서로 위로하고 격려하기에 힘쓴다면, 하나님은 그들을 기뻐하사 하늘의 위로와 축복을 부어주시고 하늘에 속한 사람으로 이끌어 가십니다.

14절부터는 세상에서의 믿음생활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14절을 읽겠습니다.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축복하라 축복하고 저주하지 말라” 믿는 자들은 세상에 섞일 수 없음으로 인해 불이익을 받습니다. 술 취함과 방탕한 회식문화에 어울리지 못해 고통을 겪기도 하고, 신앙 양심 때문에 세상의 전통을 거절하여 따돌림을 당할 수 있습니다. 순수하게 살고자 노력했는데 박해로 돌아오면 되갚아주고 싶은 분노가 생깁니다. 분노는 영혼의 안식과 평강을 파괴하고 관계성을 무너뜨립니다. 바울은 박해하는 자를 축복하고 저주하지 말라고 말씀합니다. 축복은 축복을 불러오고 저주는 저주를 불러옵니다. 15절을 보십시오.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어야 합니다. ‘세상 즐거움은 다 쓸데없는 거야’ 말할 것이 아니라 함께 즐거워해야 합니다. ‘와! 손흥민이 또 골을 넣었어? 굿!’ 상처받고 우는 자들에 대해 썩어질 세상일로 눈물 짜지 말라고 말할 것이 아닙니다. 같이 공감해주고 함께 눈물까지 흘려줄 수 있다면 제일 좋습니다. 믿는 사람들은 세상 사람들과 달리 영원의 세계를 알고 있습니다. 그럴지라도 마음을 낮추어 사람들의 기쁨과 슬픔에 같이 하기에 힘써야 합니다.(16) 나는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은 자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17절을 보십시오. 아무에게도 악으로 악을 갚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해야 합니다.(17) 우리가 아무리 노력할지라도 관계성을 회복할 수 없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정말 좋은 마음으로 섬겨는데도 원수처럼 미워하고 힘들게 하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럴지라도 할 수 있거든 모든 사람들과 화목하기에 힘써야 합니다.(18) 똑같이 화를 내고 똑같이 미워하고 똑같이 되갚아줄 것이 아닙니다. 내 손으로 친히 원수를 갚으려 하지 말고 하나님의 손길에 맡겨야 합니다.(19) 나의 주먹으로 치는 것보다 하나님의 치시는 주먹이 훨씬 무섭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자녀들을 괴롭히는 자들을 가만 두지 않으시고 때가 되면 반드시 갚아주십니다.(19) 그러므로 원수 때문에 내가 가야 할 길에서 떠나지 말아야 합니다. 원수는 원수의 길을 가고 나는 하나님의 자녀의 길을 가야 합니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게 해야 합니다.(20) 그리함으로써 숯불을 그 머리에 쌓기에 힘써야 합니다. 힘이 없기 때문이 아니요 문제가 커질 것 같기 때문도 아닙니다. 그것이 원수에게 지지 않는 것이며 진정한 승자이기 때문입니다.

21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 악은 악으로 이길 수 없습니다. 이것은 역사가 주는 교훈입니다. 악을 악으로 맞서면 더 큰 악을 불러옵니다. 중동에서 벌이는 테러와의 전쟁이 끝나지 않고 끝이 없이 계속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어둠은 빛으로 사라지는 것처럼, 미움이 녹고 하나가 되려면 사랑 없이 불가능합니다. 교만은 겸손으로만 이길 수 있고 이기심은 희생으로 이길 수 있습니다. 우리 주 예수님이 보여주신 진리입니다. 예수님은 광풍을 잠잠하게 하고 죽은 자를 살리는 능력을 가지셨지만 하나님의 뜻을 따라 십자가의 길을 가셨습니다. 조롱하며 비웃고 십자가를 향해 저주하는 자들과 맞서 싸우거나 같이 저주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십자가에서 기도하셨습니다. “아버지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눅23:34) 그리고 죽기까지 당신의 길을 가셨습니다. 그 순간에는 무기력한 패배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예수님을 죽은 자 가운데에서 살리심으로 완전한 승리를 주셨습니다. 예수님이 끝까지 선을 행하심으로 우리를 모든 악에서 구원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당신의 백성들에게 선으로 악을 이기라고 말씀하십니다. 세상에는 수많은 전쟁이 있습니다. 입시전쟁, 취업전쟁, 생존전쟁이 있고 바이러스와 전쟁도 있습니다. 우리는 각각의 싸움에서 승리하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벌이고 있습니다. 그와 같이 선으로 악을 이기는 이 싸움에서 승리하기 위해 전심전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지난 한주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이라는 주제를 붙들고 청년수양회를 가졌습니다.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누군가의 말처럼, 심포지움과 소감을 들어보니, 고민과 아픔이 없는 청년들이 없었습니다.  ‘지금 내가 서 있는 자리에서 어둠속으로 침몰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기위해 필요한 믿음이 무엇일까’ 말씀앞에 함께 고민하며 부딪혔던 시간이었다고 생각됩니다. 말씀강사나 소감발표하는 사람들, 모두가 믿음의 선한 싸움을 결단하는 놀라운 역사가 있었습니다. 선으로 악을 이기라는 차원 높은 절대 명제는 청년시절로 끝나지 않습니다. 이 싸움이 한번으로 끝나면 좋겠는데,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갈 때까지 단계별로 계속됩니다. 경륜 있는 목자가 된다고 해서 끝나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목자로 사는 것은 단지 양들을 구원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일 것입니다.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으로 온전히 서기까지 해산의 수고를 감당하는 생활입니다. 목자의 사랑을 오해하고 대적하는 영혼, 은혜를 받고도 끊임없이 유혹에 흔들리는 영혼, 부르심을 좇기보다 이기심과 정욕으로 빗나가는 영혼과의 씨름은 목자의 한계를 테스트합니다. 그것이 힘들어서 양들을 위해 수고했던 마음이 얼어붙고 정죄와 판단으로 냉랭해질 때도 있습니다. 사람의 죄문제와 씨름하는 것은 양들의 영혼보다도 목자 영혼의 가벼움, 천박한 밑바닥을 드러냅니다. 더 이상 낮아지고 싶지 않고 더 이상 피곤해지고 싶지 않고 더 이상 아쉬운 소리를 하고 싶지 않은 자기중심의 악을 드러냅니다. 내 안에 있는 혈기나 이기심, 욕심이 드러날 때, 나의 의지와 성실이 바닥이 날 때, 무엇으로 악의 세력을 이길 수 있습니까! 다시금 우리 주님의 십자가로 돌아가게 됩니다. 선으로 악을 이기는 사람이 되라고 십자가 사랑을 부어주신 예수님에게로 돌아가야 합니다. 우리 주님은 성령으로 그들의 영혼을 강건하게 하시고 독수리가 날개 치듯 새 힘을 주십니다. 처음 구원받은 그때보다 훨씬 깊고도 풍성한 주님의 은혜를 맛보게 하십니다. 그로인해 다시 한번 선으로 악을 이기는 싸움의 자리에 서게 하며 생명의 열매를 맺는 사람으로 이끌어 가십니다. 우리가 목자로 살게 될 때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축복입니다. 여러 축복이 있지만, 제일 큰 축복은 예수님을 더 깊이, 더 풍성히 얻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알아갈수록 어떤 형편가운데에서도 의의 길, 믿음의 길을 가게 됩니다. 죄의 종으로 살 수밖에 없는 저희들을 구원하시고 악을 이기는 자들로 부르신 예수님을 찬양합니다. 눈 앞의 결과에 울고 웃으며 살던 저희를 부르사 차원높고 빛나는 세계로 이끄시는 하나님의 소망을 찬양합니다. 우리 모두가 빛나는 하나님의 자녀로 살기를 기도합니다.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마음을 새롭게 하여 변화를 받아 우리 삶 전체를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기를 기도합니다. 기도합시다.
  0
3500
번호     글 제 목  작성자 작성일 조회
644 마태복음 [2020년 마태복음 제13강]바람과 바다를 잔잔케 하신 예수님 관리자 2020-05-31 13
643 마태복음 [2020년 마태복음 제12강 ]우리의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관리자 2020-05-24 76
642 마태복음 [2020년 마태복음 제11강]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관리자 2020-05-17 85
641 마태복음 [2020년 마태복음 제10강]대접 받고자 하는 대로 대접하라 관리자 2020-05-10 120
640 마태복음 [2020년 마태복음 제9강]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관리자 2020-05-03 111
639 마태복음 [2020년 마태복음 제8강]은밀한 중에 보시는 하늘 아버지 관리자 2020-04-26 108
638 마태복음 [2020년 부활절 특강]그가 살아나셨느니라 관리자 2020-04-19 115
637 마태복음 [2020년 마태복음 제7강]너희도 온전하라 휴화산 2020-04-12 139
636 마태복음 [2020년 마태복음 제6강]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휴화산 2020-04-05 152
635 마태복음 [2020년 마태복음 제5강] 큰 빛으로 오신 예수님 관리자 2020-03-29 180
634 마태복음 [2020년 마태복음 제4강]다만 그를 섬기라 관리자 2020-03-22 166
633 마태복음 [2020년 마태복음 제3강]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관리자 2020-03-15 170
632 로마서 [2020년 로마서 제19강] 복음의 동역자들 관리자 2020-03-08 195
631 로마서 [2020년 로마서 제18강] 하나님의 복음의 제사장 관리자 2020-03-01 195
630 로마서 [2020년 로마서 제17강] 서로 받으라 관리자 2020-02-23 219
629 로마서 [2020년 로마서 제16강] 빛의 갑옷을 입자 관리자 2020-02-16 194
628 로마서 [2020년 로마서 제15강] 너희 몸을 산 제물로 드리라 관리자 2020-02-09 201
627 로마서 [2020년 로마서 제14강] 하나님의 구원 계획 관리자 2020-02-02 216
626 로마서 [2020년 로마서 제13강] 말씀을 통한 구원의 역사 관리자 2020-01-26 246
625 로마서 [2020년 로마서 제12강] 하나님의 주권과 긍휼 [1] 관리자 2020-01-19 298
12345678910,,,33
서울 동대문구 이문2동 264-231
Tel:070-7119-3521,02-968-4586
Fax:02-965-8594
서제임스목자님메일:Suhjt@hitel.net
[UBF한국본부] [유럽UBF] [UBF국제본부] [UBF TV] [시카고UBF] [Mother Barry's Homepage]
[뉴욕UBF] [워싱턴UBF] [노스웨스턴UBF] [콜롬비아UBF] [코스타리카UBF] [프랑크푸르트UBF]
[키에프UBF] [상파울루UB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