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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nday Worship Message
주일예배메시지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0-03-29 (일) 12:31
분 류 마태복음
첨부#1 2020년_마태복음_제5강-1.hwp (28KB) (Down: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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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마태복음 제5강] 큰 빛으로 오신 예수님

2020년 마태복음 제 5 강
말씀 / 마태복음 4:12-25
요절 / 마태복음 4:15,16

큰 빛으로 오신 예수님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과 요단강 저편 해변 길과 이방의 갈릴리여 흑암에 앉은 백성이 큰 빛을 보았고 사망의 땅과 그늘에 앉은 자들에게 빛이 비치었도다 하였느니라”

번영의 상징 뉴욕이 유령도시가 되어 버렸습니다. 유명 스포츠 스타나 정치인들도 코로나에 걸리고 G20 정상은 화상으로 대책회의를 하고 있습니다. 세계대전 이후 이토록 전세계적인 충격을 준 사건이 있을까? 기억나지 않습니다. ‘세상이 안전할까? 안전한 곳이 있기는 할까?’ 본질적인 질문이 떠오릅니다. 치료제가 개발될지라도 상당한 삶의 변화가 오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아직 겪어보지 않은 새로운 변화를 맞이하는 것은 누구나에게 쉽지 않습니다. 오늘 말씀은 큰 빛으로 오신 예수님입니다. 큰 빛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새로운 변화를 감당할 지혜와 용기를 덧입기를 기도합니다. 예수님 모습이 우리에게 빛으로 와 닿게 하시기를 기도합니다.  

12절을 보십시오. 세례 요한이 잡혀갔습니다. 헤롯왕을 찾아가서 ‘동생 빌립의 아내와 결혼한 것을 회개하시오’ 책망했기 때문입니다. 헤롯은 회개하기는 커녕 국가원수모독죄를 적용하여 그를 감옥에 집어 넣어버렸습니다. 어둠이 빛보다 강하고, 악한 세상이 의인들을 잡아먹는 그런 사건이었습니다. 당연히 예수님은 세례 요한 구명운동을 벌이셔야 할 것 같습니다. 요한이 누구입니까!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가 되어 예수님을 영접할 마음준비를 시킨 사람입니다. 최고 인기를 누리는 때에도 오직 예수님만을 증거했던 사람입니다. “나는 그의 신발끈 풀기도 감당하지 못할 자입니다” 예수님은 세례 요한을 구출하기위해 촛불집회를 주도하고 백만인 서명운동을 벌이셔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러나 요한이 잡혀가자, 예수님은 갈릴리로 물러가십니다.(13) ‘괜히 요한을 도왔다가 나까지 잡혀가는 것 아닐까?’ 그렇게 비겁한 행동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물론 이는 정황상 맞지 않습니다. 헤롯은 갈릴리 왕이었고 갈릴리라고 해서 안전한 곳은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은 힘든 사건 너머에 새로운 변화가 다가오고 있음을 보신 것입니다. 인간적으로는 의인이 억울하게 고통당하는 비극이지만, 하나님편에서 본다면 요한의 시대가 끝나고 예수님 중심의 시대가 시작된 것입니다. 요한에서 예수님으로, 요단강에서 갈릴리로, 세례 운동에서 제자들을 세우는 역사로 전환해야 할 때임을 아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문제 이면에 감추어진 하나님 역사의 큰 그림을 보셨습니다. 그러므로 세례 요한을 위한 싸움보다 온 인류를 구원하기 위한 거대한 싸움을 위해 물러나신 것입니다.

큰일을 하려면 큰물에서 놀아야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말은 제주도로 보내고 사람은 서울로 보내라’는 속담처럼, 예수님도 큰 일을 하려면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셔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저기 북쪽 스불론과 납달리의 가버나움으로 가셨습니다.(13) 예루살렘 사람들은 너무 완악하고 시골동네 갈릴리의 인심이 좋았기 때문이겠습니까? 이는 선지자 이사야의 말씀, 이사야서 9:1,2절을 이루고자 하심이었습니다.(14)
15,16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과 요단강 저편 해변 길과 이방의 갈릴리여 흑암에 앉은 백성이 큰 빛을 보았고 사망의 땅과 그늘에 앉은 자들에게 빛이 비치었도다 하였느니라” 오늘 우리에게는 별다른 감동이 없지요? 하지만 예수님 당시 유대인들에게는 충격으로 다가왔을 것입니다. 당시 갈릴리 사람들은 묻고 또 묻고 싶은 심정으로 말씀을 읽었을 것입니다. ‘하나님, 정말 이사야를 통해 약속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는 것인가요? 정말 이방의 갈릴리가 영화롭게 될 수 있나요?’ 아마 이런 심정으로 읽었을 것입니다! 스불론땅과 납달리 땅과 요단강 저편 해변길은 모두 이방의 갈릴리로 불리는 곳이었습니다. ‘이방의’라는 수식어가 붙었다는 것은 그만큼 멸시와 천대를 받았음을 의미합니다. 갈릴리는 이스라엘 북쪽 변방이어서 전쟁이 일어날 때마다 가장 먼저 피해를 입었습니다. BC 722년 앗수르는 북이스라엘을 정복하고 갈릴리 사람들을 포로로 잡아 가고, 다른 민족들을 그 땅에 이주시키는 혼혈정책을 시행했습니다. 그로 인해 갈릴리는 더럽혀진 땅. 하나님에게 버림받아 저주받은 ‘이방의 갈릴리’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선지자 이사야는 그리스도가 오신다면 이방의 갈릴리를 영화롭게 하실 것이라 예언했습니다. 이는 이스라엘 회복은 경한 일이요 온 세상 만민을  구원하는 역사를 그리스도가 이루어주실 것이라는 메시지였습니다. 이방의 갈릴리가 영화롭게 된다면, 누구든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광스런 인생을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오랜 시간이 흘러 마카비 왕조가 들어서자, 갈릴리는 유대인들의 통치영역에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다시 유대인들이 이주하여 살기 시작했으며, 예수님 당시에는 상당수의 유대인 인구가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여전히 이방의 갈릴리라는 오명은 벗겨지지 않았습니다. 여전히 갈릴리를 향한 차별과 무시는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전쟁이 일어나면 제일 먼저 죽음이 찾아오는 곳이기에, 항상 염려와 두려움이 아침 안개처럼 끼여 있었습니다. 사람들의 마음은 거칠고 메말랐으며, 울분에 가득 찬 열심당원들이 많았습니다. 갈릴리에는 희망이 없어 보였습니다. 희망은 로마 사람들이나 예루살렘 사람들에게만 해당하는 단어처럼 보였습니다. 돈이 많은 것도 아니고 사람들을 불러오는 아름다운 성전을 가진 것도 아니었습니다. 온갖 비극과 상처를 가진 갈릴리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나올 수 있단 말인가! 오래전 그랬던 것처럼, 하나님은 여전히 그들을 버리셨고 여전히 그들을 위해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빅터 프랭클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에서 경험했던 일을 바탕으로 “죽음의 수용소”라는 책을 썼습니다. 그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죽은 이유가 절망이라고 했습니다. 절망이 지배하는 땅, 그곳이 흑암과 사망의 그늘진 땅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흑암과 사망의 그늘진 땅으로 가셨습니다. 갈릴리의 오랜 상처와 깊은 절망이 예수님에게는 아무런 걸림돌이 되지 않았습니다. 모든 이들이 어둡다고 생각하는 그때, 예수님은 헤롯의 부당한 권력 위에 있는 하나님의 뜻과 섭리를 보셨습니다. 하나님 말씀에 담겨있는 비전을 붙드셨습니다. 세상이 자기 영광과 쾌락을 위한 싸움을 할 때, 예수님은 만민구원역사를 위한 싸움을 시작했습니다. 선지자 이사야가 예언한 대로 예수님은 세상 어둠이 막을 수 없는 큰 빛이십니다. 예수님은 흑암의 땅 갈릴리를 영광스럽게 바꾸어 주십니다. 무시받고 저주받은 동네가 아니라 영광스런 복음역사의 무대가 되게 하십니다. 사망의 그늘진 땅에서 열두 사도를 키움으로써 생명의 땅으로 바꾸어 주십니다. 오늘 우리는 이사야 예언대로 예수님이 그대로 이루셨음을 봅니다. 갈릴리만큼 유명한 동네가 어디에 있습니까! 모든 성도들이 언젠가 반드시 가보고 싶은 로망이 되었습니다. 열두 사도를 배출한 거룩한 땅이 되었습니다. 찰스 스펄젼은 세상에는 두 개의 태양이 있다고 했습니다. 하나는 하늘에 떠 있고 다른 하나는 인간 마음속에 떠서 영혼을 비춘다고 했습니다. 태양이 뜨면 어둠이 물러가고 차가웠던 땅에서 새싹이 올라옵니다. 그와 같이 예수님이 우리 영혼을 비추면, 어둠이 물러가고 생명이 살아납니다. 큰 빛이신 예수님은 실패와 상처까지도 바꾸어 하나님의 섭리가 되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어둠이 깊을수록 예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기에 힘써야 합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큰 빛으로 찾아오십니다.

올바른 관계는 회개로부터 시작합니다. 17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이 때부터 예수께서 비로소 전파하여 이르시되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하시더라” 3장2절에서 세례 요한이 이미 증거했던 메시지입니다. 예수님은 세례 요한의 메시지 그대로 베끼셨습니다. 그만큼 이 메시지가 중요합니다. 사람들은 ‘요한이 잡혀감으로 흑암과 사망의 기운이 가득하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예수님은 ‘천국이 가까이 왔다’고 말씀하십니다. 지금 그들가운데 예수님이 오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이웃이고 친구로 계십니다. 길거리에서 예수님을 만날 수 있고 죄사함과 천국 복음을 누릴 수 있습니다. 가끔은 예수님이 행하는 놀라운 기적을 보기도 합니다. 예수님을 알고자 하면 얼마든지 알 수 있고 예수님의 말씀을 원없이 들을 수 있는 그런 때가 도래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천국이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세례 요한은 강한 자부심을 가진 유대인들에게 회개하라고 했는데, 예수님은 상처받고 절망가운데 있는 갈릴리 사람들에게 회개하라로 말씀하십니다. 고통받고 상처 많은 그들에게 ‘안타깝다, 유감이다’, 이런 연민과 위로의 말씀을 먼저 하셔야 할 것 같은데, 그리하지 않으셨습니다. 누구든지 회개가 없으면 예수님을 받아들일 수 없고 결국 천국은 그림의 떡에 불과한 것이 되고 말기 때문입니다. 힘들고 어려운 일을 겪다 보면 자연스럽고 당연하게 예수님을 영접할 것 같은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가난한 영혼이 되기보다 더욱 마음이 꼬이고 현실에 오그라들고 본성대로 움직일 수 있습니다. 회개하지 않으면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일을 만나도 예수님을 믿지 못하고 변명과 원망에 빠져 헤어나오지 못합니다.

어려울수록 회개해야 합니다. 실패의 고통을 타고 들어오는 원망, 불신, 무기력, 허무의 죄악을 단호히 물리쳐야 합니다. 강건하지 못하고 신실하지 못하고 하나님보다 세상을 두려워하는 불신을 회개해야 합니다. 눈앞의 결과에 따라 하늘과 땅 속을 오가며 요동치는 천박한 본성을 회개해야 합니다. 대신 하나님의 주권편에 서서 말씀을 의지하는 법을 배워가야 합니다. 예수님의 은혜와 긍휼을 간구해야 합니다. 그러면 스불론과 납달리 땅에 살지라도 천국을 누릴 수 있습니다. 어떠한 고난이 와도 하나님의 은혜로 더욱 강한 사람으로 거듭나게 됩니다. 예수님은 태양처럼 강력한 빛이십니다.  회개하는 자들에게는 어둠이 물러가고 생명의 빛이 임하게 됩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는 말씀은 단지 갈릴리 사람들에게만 해당되는 말씀이 아니라 오늘 우리에게도 해당되는 말씀입니다. 과학기술은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지만, 인간의 영혼은 여전히 흑암가운데 있습니다. 지난주 n번방 사건은 우리 사회의 어두운 모습을 무섭도록 보여주었습니다. 피해자들 대부분 돈을 위해 어긋난 길에 들어섰다가 그물에 걸린 물고기처럼 협박과 회유에서 헤어나오지 못했습니다. n번방 가입자 수십 만 명이 경찰조사로 신분이 드러날까봐 두려워 떨고 있다고 합니다. 사람의 은밀한 것이 드러나서 돌이킬 수 없는 수치와 절망을 당하게 될 죄인들의 운명을 상징적으로 보여주었습니다. 코로나 19는 인간이 사망의 그늘아래 있는 존재임을 전 지구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태산이 높다하되 하늘아래 뫼이로다’라는 시가 있습니다. 인간의 문명이 아무리 높아진다 한들 사망 아래 있습니다. 누구도 사망의 그늘을 피해갈 수 없습니다. 코로나 19를 피해가면 그것으로 끝이겠습니까! 코로나 19같은 무서운 재난과 질병은 끝이 없이 다가옵니다. 다만 그 날을 알지 못한 채 살다가 어느 순간 불현 듯 죽음을 맞이하는 것입니다. 여호와의 사자가 애굽의 장자들을 치러 내려올 때, 그토록 강했던 바로의 권력도 막을 수 없었습니다. 오직 어린 양의 피만이 죽음의 심판을 피하는 생명싸개가 되어 주었습니다. 그와 같이 하나님의 어린 양 예수님만이 하나님의 심판을 피하는 생명의 안식처가 되십니다. 예수님은 죄에 붙잡혀 심판으로 달려가는 자들에게 죄사함을 주시고 영원한 생명을 주십니다. 이 땅에 얽매인 자들을 풀어내어 하늘 백성의 삶을 살게 하는 큰 빛이 되십니다.

갈수록 사람과 사람 사이의 소통이 점점 어려워지고 사회적 거리두기는 더 깊은 고독과 불신으로 번져갈 것입니다. 힘들기는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는 것도 힘들고 복음전도도 힘듭니다. 다만 예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기에 희망을 붙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택하신 자들안에 그리고 그들을 통해 끊임없이 천국을 확장시켜 가십니다. 요즘처럼 조용하고 한가한 시간은 개인신앙을 견고히 하는 사귐의 시간이 되게 하십니다. 이 때도 지나갈 터인데, 그 때가 되면 사명인 예수님을 온 몸으로 배우는 치열한 시간이 되게 하실 것입니다. 세상이 어두울수록 예수님을 바라보며 희망을 이야기하는 자들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일용할 양식과 기도생활을 통해 개인신앙을 견고히 해야 겠습니다.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어둠에 무너지지 아니하고  생명 길을 가는 사람들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예수님을 빛으로 받아들인 사람들은 어떻게 달라집니까! 18-22절에서 좋은 예가 나옵니다. 예수님은 갈릴리 해변을 다니시다가 두 형제 베드로와 안드레가 바다에 그물 던지는 것을 보셨습니다.(18) 그들은 취미 삼아 잠시 낚시하러 온 사람들이 아니라 물고기로 먹고 사는 어부였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19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말씀하시되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 ‘낚는다’는 말은 요즘에는 안좋은 의미로 쓰여지고 있습니다. ‘보이스 피싱’, 사기치는 범죄용어입니다. 본래 ‘낚는다’는 것은 어느 자리로 끌고 이동시킬 때 쓰여지는 용어였습니다. 아모스 4:2절에서는 교만한 자들을 심판의 자리로 ‘끌고 가는’ 말씀으로 쓰여졌습니다.(렘 16:16) 그런데 예수님은 구원을 빗대어 사용하셨습니다. 이는 인간 스스로 구원의 자리로 이동할 수 없는 존재임을 보여줍니다. 스스로 회개하고 스스로 결단하고 스스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 수 있는 인간이 없습니다. 죄를 깨닫는 자리, 회개의 자리,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고 하나님을 중심에 모시는 자리로 이동하도록 끊임없이 도와주는 그런 존재가 필요합니다. 가만히 놔두면 잘할 것 같지만, 가만히 놔두면 점점 무너집니다. 좋은 것은 가르치고 가르쳐도 까먹지만, 못된 것은 가르쳐주지 않아도 스스로 알아서 배우는 죄악된 본성을 갖고 있습니다. 끊임없이 함께 하며 씨름하여 ‘끌고 가는’ 존재가 필요합니다.
평생 물고기만 생각하며 살아왔던 어부들이 어떻게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될 수 있습니까!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려면 핵심을 집어내는 탁월한 말솜씨가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인간 내면을 꿰뚫어 볼 정도로 눈치코치가 빨라야 할 것 같습니다. 저는 한때 UBF 넘버원 목자가 되려면 소감을 잘 써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한번은 새벽 4시까지 소감을 써 갔는데, 40분만에 제 소감보다 훨씬 재미있고 감동적인 소감을 뚝딱 써내는 어떤 형제를 보며 절망한 적이 있었습니다. ‘하나님, 저같은 자도 목자로 부르신 것입니까?’ 부르짖던 기억이 납니다. 그렇다면 평생 물고기만을 생각하며 살아왔던 그들이  사람낚는 어부가 될 수 있는 비결이 무엇입니까? 예수님은 베드로와 안드레에게 말씀했습니다.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를 사람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예수님의 강력한 의지가 들어가 있습니다. ‘follow me! I will make you'. 그러므로 사람 낚는 어부가 되기 원한다면 예수님을 따라가야 합니다. 예수님이 이렇게 가시면 이렇게 가고 저렇게 가시면 저렇게 따라가면 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의 길을 가면 예수님을 따라 자기 부인 자기 십자가의 길을 가면 됩니다. 예수님을 따라가면 누구나 사람낚는 어부가 될 수 있습니다. 말이 어눌한 사람도 사람 낚는 어부가 되고 사람 마음에 둔한 자들도 사람낚는 어부가 됩니다. 어떤 경우에는 말이 어눌하고 눈치코치 없기에 유능한 목자로 쓰임받기도 합니다. 교수는 사람낚는 교수가 되고, 의사는 사람낚는 의사가 됩니다. 예수님을 따라가면 사람 낚는 교사가 되고 사람 낚는 학생이 됩니다.

그러므로 내가 과연 사람 낚는 어부가 될 수 있을까? 라는 고민보다 내가 과연 예수님을 따르고 있는가를 고민해야 합니다. 몸은 예수님을 따르고 있지만, 내면은 자기만족과 욕심을 좇아 살고는 있지 않은가? 세상과 예수님 사이에서 적당히 양다리 걸치며 살고 있지는 않은가? 부지런히 살펴보아야 합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에게 십자가의 길을 가지 말라고 건의했다가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책망을 들었습니다. 몸은 예수님과 함께 했지만 마음은 예수님의 소원과 정반대였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것보다 예수님 플러스 알파가 앞서고 있지는 않은지 깨어있어야 합니다.

20절을 보십시오. 베드로와 안드레는 곧 그물을 버려두고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곧’이라는 단어를 보면 계산하지 않았습니다. ‘아이고, 아까운 보트, 그리고 지금까지 잡은 고기’, 미련 두지 않았습니다. 21절을 보십시오. 이제 예수님은 다른 두 형제 야고보와 요한도 부르십니다.(21) 같은 어부였지만, 베드로와 요한에 비해 훨씬 잘 나가는 어부 집안이었습니다. 그런데 22절을 보면 그들도 ‘곧’, 미련없이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그들은 배 뿐만 아니라 아버지까지 버려두고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그들도 예수님의 부르심앞에 갈등하거나 머뭇거리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면 어떤 유익이 주어지는지, 장래 문제는 얼마나 보장을 받을 수 있는지 계산하지 않았습니다. 진정한 회개가 무엇인지를 제대로 보여줍니다. 진정한 회개는 자기 생각과 욕심을 내려놓고 순수한 소원으로 예수님을 따라가는 것입니다. 평범했던 어부들이 수년 후에 열두 사도, 교회의 기둥이 될 수 있었던 이유입니다.
구원의 은혜에 대해서는 감사하면서도 제자의 부르심에 대해서는 이것저것 따지는 신자들을 많이 봅니다. 조건없는 하나님의 구원에 대해서는 아멘!으로 응답하면서도 제자의 부르심에는 수많은 조건을 거는 모습입니다. 그것이 손해보지 않는 지혜인 것 같지만, 실은 예수님을 배우지 못하고 예수님으로부터 오는 풍성함을 막아버리는 미련한 행동입니다. 어느 자리, 어떠한 모습이든지 예수님을 따라가는 거기에 집중하는 것이 천국 백성의 축복을 누리는 비결입니다.  

23절을 보십시오. 예수님이 힘써 행하신 3가지 사역이 나옵니다. 첫째는 온 갈릴리를 두루 다니며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셨습니다. 둘째는 천국 복음을 전파하셨습니다. 셋째로 백성중의 모든 병과 약한 것을 고치셨습니다. 사람낚는 어부가 해야 할 핵심 사역입니다. 가르치고 전파하고 회복시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사람 낚는 어부의 본을 보이셨습니다. 예수님의 소문은 사방으로 퍼져나갔고, 갈릴리와 데가볼리와 예루살렘과 유대와 요단강 사방에서 수많은 무리가 따랐습니다.(24,25) 힘든 시대일수록 정말 필요한 사람은 사람 낚는 어부들입니다. 가르치고 전파하고 고쳐서 하나님의 사람답게 세우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통해 천국을 드러내시고 당신의 영광을 비추십니다. 큰 빛으로 오신 예수님을 따르고 배우는 사람들로 살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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