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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nday Worship Message
주일예배메시지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0-05-03 (일) 12:52
분 류 마태복음
첨부#1 2020년_마태복음_제9강_-1.hwp (28KB) (Down: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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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마태복음 제9강]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2020년 마태복음 제 9강  
말씀 / 마태복음 6:19-34
요절 / 마태복음 6:33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6장 전반부에서는 은밀한 제자생활을, 그리고 오늘 말씀에서는 물질생활을 말씀하십니다. 하늘 백성의 두 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는 은밀함을 잃지 않아야 하고 돈을 제대로 쓸 수 있어야 합니다. 19-24절에서는 재물이 있을 때, 25-34절에서는 재물이 없을 때 우리에게 필요한 믿음을 말씀하십니다.

첫째. 하늘에 쌓아두라(19-24절)
19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고 도적질하느니라” 예수님은 돈이라 말씀하지 않고 보물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아마 돈이 우리 삶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생각하여 그리 말씀하신 것 같습니다. 보물처럼 즐거움을 주고 보물처럼 든든함을 주고 보물처럼 사람 마음을 끌어당깁니다. 세익스피어는 “돈은 검은 것을 희게 하고 추한 것을 아름답게 하고 늙은 것을 젊게 하고 문둥병조차 사랑스럽게 하며 과부에게 젊은 청혼자들이 몰려오게 한다”라고 말했습니다. 머니머니해도 세상 최고의 보물은 돈입니다. 우리사회가 사회적 거리두기를 완화하는 것, 코로나로부터 완전히 해방되었기 때문이 아닙니다. 경제가 죽을 것 같으니까, 돈이 돌아야 하니까 조금 위험하더라도 거리두기를 완화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보물을 땅에 쌓아두지 말라고 하십니다. 부자가 되는 것을 인생목적으로 삼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이는 좀과 동록이 해하고 도적이 구멍을 뚫고 도적질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 당시에는 신한은행이 없었기 때문에 개인금고에 보물을 보관했습니다. 비단이나 금화 은화를 은밀한 비밀장소에 숨겨두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자, 좀이 비단 옷을 갉아먹고 동록이 보물 상자를 망가뜨려버리고 도적이 구멍을 뚫고 훔쳐갔습니다. 갑작스런 홍수나 화재로 인해 한순간에 모든 것을 잃어버리기도 했습니다. 이 땅에 부를 쌓는 생활이 근본적으로 안전하지 않음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는 오늘날에도 마찬가지입니다. SECOM이 지키고 있는 은행에 넣어두면 안전할 것 같은데, 금리가 계속하여 떨어지고 물가는 계속 올라가니 돈의 가치가 점점 떨어지고 있습니다. 안전한 재테크 수단으로 생각했던 것들이 폭락하고 흔들리고 무너질 수 있음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습니다. 이 땅에 부를 쌓는 것을 인생목적으로 삼는다면, 그는 언젠가 모든 것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도적같이 찾아오는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땅이 아닌 하늘에 쌓아두라고 말씀하십니다. 20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둑질도 못하느니라” 사람들의 주된 관심은 ‘어떻게 하면 돈을 불릴 수 있을까?’입니다. ‘부동산에 투자할 것인가? 주식인가? 금이나 펀드를 사놓을까? 조금 더 높은 이자를 주는 곳은 어디인가?’ 재테크에 안테나를 바싹 세우고 살아갑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라’고 하십니다. 이는 하나님과 이웃을 위해 사용하는 것입니다. 온전한 십일조를 드리는 것이며, 동역자들과 양들을 돕기에 힘쓰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가치있게 돈을 사용할 것인가’ 여기에 관심을 두고 움직이는 것입니다. 그것이 진정으로 안전하게 살아가는 인생이라는 말씀입니다. 우리나라 최고의 부자중의 한 사람이었던 대기업 회장이 불치병에 걸려 인생의 마지막을 앞두게 되었습니다. 여의도에 있는 유명한 목사님을 초청하여 간절히 부탁했습니다. “당신이 믿는 하나님께 기도하여 건강을 회복하게 해준다면 내 재산의 절반을 드리겠습니다.” 목사님은 조용히 회장의 손을 붙잡고 말했습니다. “돈으로 생명을 살 수 없습니다. 복음을 영접하고 구제 사업에 힘쓰기를 바랍니다.” 만약 그가 하나님과 이웃을 위해 많은 부를 사용하며 살았더라면, 그는 죽음 앞에서 그리 힘들고 두려운 절망에 빠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우리가 돈을 버는 이유는 더 많은 부를 쌓기 위해서가 아니라 더 많은 선한 일을 하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과 이웃을 위해 가치있게 사용한 것만이 하늘에 쌓는 것, 영원토록 사라지지 않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사용하라’고 말씀하지 않으시고 ‘쌓아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쌓는 것은 좋은 것이며 지출하는 것은 손해라는 우리 밑바닥 정서를 생각하여 말씀하신 것입니다. 주와 복음역사를 위해 물질을 사용하는 것은 타인을 위하기에 앞서 우리 자신을 위하는 것입니다. 딤전 6:17-19절은 말씀합니다.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며 선을 행하고 선한 사업을 많이 하고 나누어주기를 좋아하며 너그러운 자게 되게 하라 이것이 장래에 자기를 위하여 좋은 터를 쌓아 참된 생명을 취하는 것이니라”
우리의 보물이 있는 그 곳에 우리의 마음도 있습니다.(21) 바늘 가는 곳에 실 가듯이 보물 있는 곳에 그 마음이 따라갑니다. 신학지식이 하늘을 찌르는 성경박사라 할지라도 주와 복음역사를 위해 보물을 드릴 수 없다면, 그 영혼은 하나님과 연결될 수 없습니다. 반면 성경 지식이 미약할지라도 하나님과 이웃을 위해 보물을 사용하는 사람은 하늘에 속한 영혼을 갖게 됩니다.

22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눈은 몸의 등불이니 그러므로 네 눈이 성하면 온 몸이 밝을 것이요 눈이 나쁘면 온 몸이 어두울 것이니” 눈은 관점을, 몸은 생활을 상징합니다. 눈이 성하다는 것은 올바른 물질관을 갖는 것이며, 몸이 밝다는 것은 건강한 생활을 의미합니다. 많은 돈이 풍성한 삶을  보장해주는 것이 아닙니다. 내일을 걱정해야 하는 가난을 만날지라도 반드시 인색한 인생을 사는 것도 아닙니다. 올바른 물질관을 가진 사람은 돈이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건강한 삶을 살게 됩니다. 그러므로 청년의 때에 올바른 물질관을 쌓아가야 합니다. 청년의 때, 성적인 유혹과 함께 돈을 사랑하는 마음을 극복해야 하나님의 사람답게 살 수 있습니다. 나이를 먹을수록, 가정을 이루고 자녀를 키우고 노후가 다가올수록 경제적인 압박은 점점 거세어집니다. 청년의 때부터 십일조를 드리고 사람을 돕기 위해 돈을 쓰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말씀과 기도생활을 통해 돈 중심으로 살고 싶은 유혹을 물리쳐야 합니다. 그런 훈련을 통해 축복의 때에도 변질되지 않고 부르심을 따라 갈 수 있는 용기와 믿음을 준비해야 합니다.

24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예수님은 돈이냐, 하나님이냐, 둘 중의 하나를 주인으로 섬겨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돈도 사랑하고 하나님도 사랑할 수 있다고 말하고 싶은데, 주님은 안된다고 하십니다. 그만큼 돈의 유혹은 강력합니다. 돈에 울고 돈에 웃게 합니다. 돈은 사람 마음을 인색하게 만들고 사나와지게 하고 전쟁까지 벌이게 합니다. 어제까지의 파트너를 배신하고 소송을 걸거나 가족들과 으르릉대며 싸우게 만들기도 합니다. 심지어 어머니와 자식을 죽이게 합니다. 돈 걱정으로 말씀의 은혜와 제자의 부르심을 외면하고 떠나버리도록 합니다. 저는 교회 건물 건축현장을 감독하면서 공사대금으로 심각하게 다투는 모습을 여러 번 보았습니다. 어제까지 ‘형님 동생’하던 사이가 원수처럼 헐뜯는 사이로 바뀌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들었던 어떤 사람의 말이 생각납니다. “목자님, 사람이 속이는 것이 아니라 돈이 속이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주인으로 섬기려면 돈을 다스릴 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 모든 것의 주인이시며, 우리는 그의 청지기입니다. 청지기는 주인의 것을 함부로 낭비하지 않으며 기꺼이 주인 뜻대로 사용하기를 즐겨합니다. 우리는 축복을 받을수록 더욱 더 축복을 주신 하나님을 기억하고 더 열심을 내어 주와 복음역사를 위해 드리기에 힘써야 합니다. 그리할 때 돈을 주인으로 섬기는 세상에 끌려가지 아니하고 하늘 백성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이 믿음을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둘째, 염려하지 말라(25-34)  
25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로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 사람들은 무엇을 먹고 마시고 입을 수 있는가를 놓고 염려합니다. ‘일촌분식에서 김밥으로 한 끼를 때우느냐? 아니면 치보에서 스테이크를 먹느냐’에 따라 몸의 활력도 다르고 하루의 기분도 다릅니다. 자판기 커피를 마시는 것과 스타벅스 라떼를 마시는 것, 맛도 차이가 나지만 마음도 차이가 납니다. 명품 가방과 브랜드를 걸치면 핏도 다르고 어깨에 들어가는 힘이 달라집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나는 그런 것들을 먹을 수 있을까? 마실 수 있을까? 입을 수 있을까?’로 염려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목숨이 음식보다 중요하고 몸이 의복보다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무슨 의미입니까! 좋은 옷은 좋은 옷일 뿐이라는 말씀입니다. 좋은 옷이 좋은 사람을 만들어주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스타벅스의 향기가 그리스도의 향기를 풍기는 영혼으로 만들어주지 않습니다. 좋은 것을 먹고 비싼 옷을 입기 위해 모든 촉각을 곤두세우고 그것을 염려하는 사람이 되어버리면, ‘하나님 보시기에 나는 어떠한 사람인가?’ 라는 문제의식에 대해 둔감해집니다. 좋은 것 먹는 것에 몰두하다가 탐욕의 죄에 빠진 것을 모르기도 하고, 좋은 옷으로 눈이 가려져 분별력을 잃고 살아가기도 합니다. 결과적으로 좋은 것을 먹지만 영혼은 시들어가고, 좋은 옷을 걸치게 되었지만 건강한 삶은 망가지는 모습이 되어버립니다. 우리는 무엇을 먹을까 마실까 입을까로 염려하기보다 ‘하나님앞에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집중해야 합니다. 주머니에 돈이 없음으로 염려할 것이 아니라 내 마음에 믿음이 없음으로 인해 고민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염려에 빠진 제자들을 향해 공중의 새를 보라고 말씀하십니다.(26) 공중의 새는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않는데도 오늘 하루를 힘차게 살아갑니다. 공중의 새가 오늘 하루를 살아가기에 필요한 것들을 하나님이 예비해 놓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창고에 쌓아두지 않으면 망하는 것처럼 생각하기 쉬운데, 하나님은 오늘 하루를 힘차게 살 수 있도록 필요한 것들을 준비해 놓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지금 쌓아두지 않았다고 하여 염려에 빠질 것이 아닙니다. 지금 실력을 쌓아두지 않았다고 하여 미리부터 ‘난 망했다. 시험을 못 볼 것이고 성적이 안 나올 것이며 좋은 직장에 취업을 하지 못할 것이다.’ 자포자기할 것이 아닙니다. 오늘 하루 열심히 날개짓을 하면, 그런 오늘이 쌓여 길이 열립니다. 지금 돈을 쌓아놓지 않았다고 하여 장래에 대한 희망을 끄고 어둠으로 기어들어갈 것이 아닙니다. 오늘 하루 수고로이 일하면 길이 열립니다. 우리 믿는 자들은 공중의 새보다 훨씬 소중한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오늘 주어진 지금에 최선을 다하여 살아갈 때, 하나님이 예비하신 좋은 것들을 누리고 맛보게 됩니다.
우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자라도 더할 수 있습니까!(27) 염려는 아무리 먹어도 키를 크게 하지 못합니다. 오히려 염려할수록 소심하게 되고 각종 신경증에 시달리게 됩니다. 탁월한 능력을 가진 사람이 염려에 사로잡히자,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못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위대한 인물들은 여러 번 인생의 밑바닥까지 내려갔다가 거기에서 다시 올라오는 사람들입니다. 아니, 그러한 과정을 거쳐 평범했던 사람들이 위대한 사람들로 빚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믿는 자들을 위해 항상 좋은 길을 예비하고 계십니다. 길이 없어 보이는 그 곳에서 길을 내십니다. 포기해야 마땅할 것 같은 절망의 현장가운데 빛을 비추어 주십니다. 다만 염려에 빠져 미리부터 결론을 내고 포기해버리기 때문에 체험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주어진 오늘 하루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은 반드시 먹이시고 입히시는 하나님을 체험합니다. 우리에게 이 믿음으로 살게 하시기를 기도합니다.

28절을 보십시오. “또 너희가 어찌 의복을 위하여 염려하느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 들의 백합화가 어떠합니까? 제가 실감이 나지 않아서 백합화 몇 송이를 신관 건물 입구 화분에 심어놓고 한 주 동안 관찰했습니다. 볼 때마다 예쁜 것이었습니다. 어떤 사람이 백합화에 빠진 제게 말했습니다. ‘목자님, 나이를 먹으면 꽃을 좋아한대요’ 생명의 신비를 보았기 때문이 아니라 호르몬 변화 때문이라는 해석이었습니다. 나는 백합화를 봐도 별다른 감동이 없는데, 무얼 그리 보고 또 보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더욱 놀라운 말씀을 하셨습니다.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29) 30대 청년이었던 예수님에게도 호르몬 변화가 왔던 것일까요? 솔로몬은 역대 최고의 부자이면서 권력자였기에 명품중의 명품, 유일한 명품을 입었을 것입니다. 뤼이뷔통, 구찌같은 것은 싸구려 취급을 당할 정도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솔로몬의 영광으로 입은 것이 백합화 하나만도 못하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의 눈입니다. 사람들은 솔로몬의 영광을 부러워하고 그것을 누리지 못해 탄식하며 좌절했습니다. 제자들도 그러했습니다. 으리으리한 예루살렘 성전 건물을 보며 외쳤습니다. ‘선생님, 이 돌들이 어떠하며 이 건물이 어떠합니까? 우리도 이런 곳에서 메시지 한번 전해보면 원이 없겠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화려한 성전을 보신 것이 아니라 부패한 성전을 보셨습니다.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려지리라’ 솔로몬의 영광으로 입은 것이 그와 같습니다. 백성들의 눈물과 아픔을 짜내어 만든 사람의 영광이었습니다. 죽은 영광이며 잠시의 영광, 우상 숭배에 빠져버린 슬픈 죄인의 영광이었습니다. 반면 백합화는 잠시 들에 있다가 사라질지언정, 하나님의 창조의 능력과 생명의 신비를 그대로 담고 있습니다.(30) 아무도 알아주지 않을지언정 그 자체로 wonderful! beautiful!입니다.  이것이 영광을 보시는 예수님의 눈입니다. 이는 십자가에까지 이어집니다.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입성했을 때, 수많은 사람들이 호산나 호산나 이스라엘의 왕이 되어달라고 외쳤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스라엘 왕의 자리가 아닌 십자가의 죽음의 자리로 가셨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자기 죽음으로써 창조질서를 회복하는 것이 권력의 자리에 앉는 것보다 훨씬 빛나고 영광스러움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주목을 받지 않을지라도 오늘 묵묵히 하나님앞에 자기의 길을 가는 인생, 세상 어떤 것보다 빛나고 아름다운 인생입니다. 예수님의 평가입니다.

우리는 세상에서 무엇을 먹을 수 있을까 무엇을 마실 수 있을까 무엇을 입을 수 있을까로 염려하지 말아야 합니다.(31) 32절을 보십시오. 이런 것들은 하나님 모르는 이방인들의 인생목적입니다. 우리 하늘 아버지는 이런 것들이 우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알고 계십니다. 하늘 백성인 우리는 무엇을 위해 달려가야 합니까! 33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예수님은 ‘너희는 먼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제자들도 먹어야 하고 마셔야 하고 입어야 합니다. 제자가운데 부자도 나와야 합니다. 제자들과 이방인의 차이는 ‘먼저 구하는 것’이 다릅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도 이런 말을 할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의, 구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다. 다만 이 모든 것을 하고 나서, 돈 많이 벌고, 집 사고 나서, 아이들 키우고 나서 구하라는 것이다.” 경제문제 다 해결한 후에 그때 가서 하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먼저로 삼지 않으면, 제자생활은 돈 이야기로 가득한 세상에 떠밀려 표류하게 됩니다. 태능선수촌에 입소한 국가대표 선수들은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뛴다고 합니다. 동네 한바퀴 도는 가벼운 조깅이 아니라 한 시간 넘도록 흠뻑 뜁니다. 체력보강에도 도움이 되지만, ‘나는 운동하는 사람이다.’는 멘탈을 갖고 하루를 출발하게 되고 힘겨운 훈련을 감당하게 합니다. 그와 같이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붙들고 출발해야만 하늘 백성으로 살 수 있습니다. 하루, 한 주를 출발할 때,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고자 결심하고 출발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그의 나라와 의’는 무엇입니까! 첫째, 먹든지 마시든지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는 것입니다. 학생은 진급하고 취업하는 것으로만 자족하지 않고 제대로 실력을 갖추고자 노력하고 학사는 생존 자체에만 목적을 두기보다 조직과 회사에 유익을 주고자 노력하는 것입니다. 의사는 수입만을 생각하지 말고 사람을 고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각자 서 있는 자리에서 선한 영향력을 끼치고 유익을 남기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기도와 간구로 먼저 하나님께 아뢰는 것입니다. 축복을 받았다면 축복을 주신 하나님께 먼저 감사하고, 고난이나 시련이 오면 먼저 거기에 담긴 하나님의 뜻을 찾고 붙드는 것입니다.
둘째로, 생명을 구원하여 제자 삼는 것을 최고의 가치를 두는 것입니다. 우리는 수많은 관계속에서 살아갑니다. 우리가 만나는 사람들중에는 하나님이 나에게 복음을 전도하도록 보내신 사람이 있습니다. 먼저 생명을 구원해야 한다는 분명한 목적의식을 놓쳐버리면 복음을 전할 기회를 놓쳐버리게 됩니다. 생명을 구하고 제자삼는 사명을 앞세우는 사람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며 하나님의 의가 드러납니다. 시대가 치열하고 메마를수록 사람들의 영혼은 더욱 곤고하여 목자를 필요로 합니다. 우리가 복음전파에 우선권을 둠으로써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고 하나님의 의를 드러내는 자들로 살기를 기도합니다.

34절을 보십시오. 같이 읽겠습니다.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로 족하니라” 우리가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한다고 하여 모든 문제에서 열외되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 끝날 때까지 문제없는 날들은 없습니다. 그럴지라도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다가 오늘을 놓치는 우를 범하지 말아야 합니다. 토마스 아 켐피스는 말했습니다.“오늘이 내 인생의 마지막인 것처럼 생각하고 하나님앞에서 최선을 다하여 살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하도록 맡기고, 나는 오늘의 십자가를 지는 생활에 집중해야 합니다. 오늘을 수고를 감당하며 애쓰는 사람은 먹이시고 입히시는 하나님을 체험합니다. 염려와 불안이 가득한 시대 오늘에 충성함으로써 살아있는 믿음을 배우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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