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HOME | 세계선교 | 각부모임 | 경성소모임 | 성경연구 | 사진자료실 | 영상자료실 | 경성쉼터 | JBF/EBF/CBF | 기타 |

회원등록 비번분실

  Bible Study  
주일예배메시지
성경공부문제지
수양회강의
특강
구약강의자료실
신약강의자료실
강의안책자



 Sunday Worship Message
주일예배메시지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0-10-11 (일) 09:09
분 류 마태복음
첨부#1 2020년_마태복음_제31강-1.hwp (27KB) (Down:22)
ㆍ추천: 0  ㆍ조회: 104      
IP: 61.xxx.145
[2020년 마태복음 제31강 ]나귀를 타고 입성하신 예수님
2020년 마태복음 제31강                                                                                          한아브라함      
                                                        나귀를 타고 입성하신 예수님  
말씀 마태복음 21:1-22
요절 마태복음 21:5 “시온 딸에게 이르기를 네 왕이 네게 임하나니 그는 겸손하여 나귀, 곧 멍에 메는 짐승의 새끼를 탔도다 하라 하였느니라”
 
오늘 말씀에는 예수님의 두 가지 대조적인 모습이 나옵니다. 전반부는 나귀 타고 오시는 예수님입니다. 겸손의 왕 평화의 왕 즉 우리를 살리시는 구세주의 모습이죠. 후반부는 성전을 청소하시고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를 저주 하시는 예수님입니다. 진리의 왕 즉 심판주의 모습이죠. 구원의 주 예수님은 지금도 우리 마음 가운데 나귀새끼를 타고 임하십니다. 또한 오늘날 심판 주로서 교회를 우리를 책망하십니다. 경고하십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한 단계 더 성숙한 믿음의 종들이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주님께 쓰임 받는 가장 귀하고 값진 인생을 사는 저희들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제1장, 주가 쓰시겠다(1-11)
1절을 보십시오. ‘그들이 예루살렘에 가까이 가서 감람산 벳바게 이르렀을 때에 예수께서 두 제자를 보내시며’ 예수님과 제자들은 예루살렘에서 약 2km 정도 떨어진 감람산 벳바게에 이르렀습니다. 감람산은 해발 800m의 산으로서 예루살렘 성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곳입니다. 그동안 예수님은 갈릴리 중심으로 사역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이제 예루살렘으로 들어오십니다. 십자가에서 죽으시기 위하여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시는 것입니다. 2절을 보십시오. 예수님은 두 제자를 보내십니다. 그리고 두 제자에게 이상한 명령을 하십니다. 맞은편 마을로 가면 매여 있는 나귀와 나귀 새끼가 함께 있을 텐데 풀어 내게로 끌고 오라는 것입니다. 주인이 ‘왜 남의 나귀와 나귀새끼를 가져가려고 합니까. 혹시 당신들은 도둑?’ 이라고 물으면 당황하지 말고 ‘주가 쓰시겠다.’라고 하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즉시 보내 준다는 것입니다. 주님이 왜 이렇게 하시는 것입니까? 제자들에게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가 하는 것을 가르쳐 주시기 위함입니다. 주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주님은 나귀가 그곳에 있다는 것도 나귀주인이 나귀를 기꺼이 보내 줄 것도 아셨습니다. 주님은 전지전능하신 하나님 이십니다. 주님은 사람을 만드신 분 나귀 주인이 자신의 나귀를 기쁨으로 내어놓도록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시는 분이십니다. 나귀의 진정한 주인은 예수님, 나귀의 주인의 주인도 예수님, 나의 주인도 예수님이십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죠. 나의 삶의 주인은 바로 나다. 내 인생은 나의 것이라고 착각하며 살고 있습니다. 내가 땀 흘려 열심히 일해서 돈을 벌었기 때문에 내 물질은 나의 것이라 생각하며 주와 복음을 위하여 드리는 것을 아까와 합니다. 자신의 스펙을 쌓기 위해서는 밤잠 자지 않고 투쟁 하지만 주가 쓰시겠다 하면 곤란한데요, 왜 접니까? 대답합니다. 지금은 너무 바빠서 안 되겠다고 다음에 한가할 때나 쓰임 받겠다고 합니다. 그러나 한가할 때는 결코 오지 않습니다. 주님께서 지금 나를 쓰시겠다 하십니다. 주님께 쓰임 받는 인생이 가장 값지고 보배로운 인생입니다. 마치 나귀 새끼가 예수님을 태우고 가느라 비록 힘겨워 했겠지만, 인류 구원 역사에 쓰임 받음으로, 짐승 중에 가장 귀한 짐승, 귀한 나귀가 되었던 것처럼 말입니다. 매여 있었던 나귀를 풀어서 귀하게 쓰신 것처럼 죄와 사망 권세에 매여 있는 우리를 풀어서 자유케 해서 생명 구원 역사 가운데 귀하게 쓰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드려지고 하나님께 쓰임 받지 않으면, 죄에게 드려지고 사단에게 쓰임 받게 됩니다. 세상에는 여러 가지 다양한 직업이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대통령이 불러서 또는 국민이 원하여서 쓰임 받는다면 영광일 것입니다. 그러나 이보다도 만왕의 왕 예수님께 쓰임 받는 것이 가장 큰 영광일 것입니다. 주님께 쓰임 받는 인생이 영광 중에 영광입니다. 기쁨과 보람이 있습니다. 참 만족과 행복이 있고 참된 열매를 맺습니다. 우리가 주님께 쓰임 받는 인생을 살 때 주님은 우리를 책임져 주십니다. 함께하십니다. 우리의 모든 필요를 공급해 주십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쓰임 받는 인생을 살고 있는 것 평생 감사해야 할 일인 것입니다. 다윗은 이새의 막내아들로 목동으로 존재감 없이 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초야에 묻혀있던 다윗을 부르셔서 골리앗을 물리치고 이스라엘을 구원하는 역사에 쓰셨습니다. 다윗 왕국의 조상으로 쓰셨습니다. 메시아 예수님의 그림자로 쓰셨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가 되었습니다. 주가 쓰시겠다 할 때 자신을 내어 드림으로 빛나는 인생을 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 쓰임 받는 은혜 너무나 감사해서 소감을 썼는데 그것이 시편이 되었습니다.
그러면 우리를 쓰시기를 원하시는 주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4,5절을 보십시오. 나귀새끼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는 것은 500년 전 스가랴서 9장 9절에서 스가랴 선지자를 통하여 하신 말씀을 이루시기 위함인 것입니다. 7,8절을 보십시오. 겉옷을 나귀 위에 얹어서 예수님이 그 위에 앉게 했습니다. 또 자신들의 겉옷을 길에 펴서 그 위를 밟고 가게 했습니다. 당신은 나의 왕이십니다. 라고 선언하는 것입니다. 종려나무를 흔드는 것은 당신은 영원한 승리자. 라는 뜻입니다. 9절을 보십시오. ‘앞에서 가고 뒤에서 따르는 무리가 소리 높여 이르되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하더라.’ 호산나는 지금 우리를 구원하소서라는 뜻입니다. 군중들은 진정한 왕이 오시는데 나귀새끼를 타고 오신다는 스가랴 선지자의 예언 그대로의 예수님의 모습을 바라보며 환호하며 흥분했습니다. 오병이어로 5000명을 먹이시던 바로 그 분이 아닌가? 무리들은 로마의 압제 하에서의 구원을 소망하며 예수님께로 모여 들었습니다. 제자들도 흥분했습니다. ‘그렇지 바로 이거야 예수님이 말로는 고난 죽으심을 이야기 하셨지만 그것은 긴장하라고 하신 말씀이고 이제 비로소 우리의 세상이 열리는 거야.’ 그러나 예수님은 정치적인 메시아가 아니고 영적인 왕으로 오신 것입니다. 무리들과 제자들이 오해한 것이죠. 예수님은 나귀새끼를 타고 오신 영적인 왕이 되십니다. 어떤 왕이 다스리느냐에 따라 백성들의 행, 불행이 결정됩니다. 사울 왕이 다스릴 때 백성들은 늘 불안했습니다. 주변 국가들의 침략에 시달렸습니다. 반면에 다윗 왕이 다스릴 때 백성들은 태평성대를 누리며 행복했습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상지도자는 공정하고 정의로우면서도 번영하는 나라를 약속합니다. 백성들에게 행복과 희망을 약속합니다. 그러나 세상에는 그런 능력이 있는 지도자는 없습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백성들에게 행복과 기쁨과 진정한 희망을 주시는 왕이십니다. 그러면 나귀 타고 오신 예수님은 어떤 왕이 되십니까. 첫째로,평화의 왕이십니다. 나귀는 평화를 상징합니다. 멍에 메는 짐승을 탔다고 했습니다. 멍에는 짐을 끌기 위해 목에 메는 것입니다. 권세를 부리기 위해서 오시는 왕이 아니고 섬기기 위해서 오시는 왕인 것입니다. 우리의 모든 죄 짐을 친히 멍에에 메고 대신 지고 가셨습니다.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 우리를 죄와 사망에서 자유케 하심으로 참된 평화를 주십니다. 먼저 하나님과의 화평을 주십니다. 하나님과 화평을 이룬 사람은 인간 상호간에 화평을 나누게 됩니다. 평화의 왕 예수님을 찬양합니다. 둘째로, 예수님은 겸손의 왕이 되십니다. 나귀 새끼는 겸손을 상징합니다. 예수님은 겸손과 사랑으로 죄인들을 섬기십니다. 예수님은 겸손의 본체이십니다. 가장 높으신 분이 가장 낮아져 섬기심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십니다. 감동을 주십니다. 우리도 이 예수님을 내 마음의 주인으로 모셔야 하겠습니다. 2000년 전 예수님을 열렬히 뜨겁게 환영하고 찬양했던 이스라엘처럼 오늘 우리도 이제 예수님을 우리 마음 가운데 왕으로 모시고 소리 높여 기쁨으로 찬양해야 하겠습니다.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이 주님께서 사랑과 평화와 겸손으로 다스려 주시도록 외쳐 불러야 하겠습니다. 이 주님의 나라가 갈등하고 있는 이 땅위에 임하도록, 이 주님의 나라가 온 세상에 임하도록 외쳐 불러야 하겠습니다. 이 예수님의 리더십을 본받아 우리도 겸손과 화평의 리더십을 가진 목자들이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제 2장, 성전을 청소하신 예수님(12-22)
12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성전에 들어 가사 성전 안에서 매매하는 모든 사람들을 내쫓으시며 돈 바꾸는 사람들의 상과 비둘기파는 사람들의 의자를 둘러엎으시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예수님이 제일 먼저 가신 곳이 어디입니까? 네 바로 성전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성전에 들어가셨을 때 그곳은 장사하는 사람들로 시끌벅적한 시장터와 흡사했습니다. 예수님은 성전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 분노하셨습니다. 매매하는 모든 사람들을 내어 쫓으시고 돈 바꾸는 사람들의 상과 비둘기파는 사람들의 의자를 둘러 엎으셨습니다. 13절을 보십시오. ‘그들에게 이르시되 기록된바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하였거늘 너희는 강도의 소굴을 만드는 도다 하시니라.’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을 받아야 하는데 너희는 강도의 소굴을 만드는 도다 하며 심히 책망하셨습니다. 성전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할 때 예수님은 무섭게 분노하시고 심판하심을 배웁니다. 성전이 기도하는 집이 되어야 할 것을 강조하십니다. 다른 복음서에는 만민의 기도하는 집이라고 했습니다. 즉 성전은 세계선교를 위한 기도, 영혼구원을 위한 기도 중보기도를 드리는 곳, 기도가 살아있는 곳이 되어야 합니다. 14절을 보십시오. 예수님은 성전에서 맹인과 저는 자들을 고쳐 주셨습니다. 성전은 또한 치료하는 곳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통하여 병든 자들이 치료함 받았습니다. 15,16 절을 보십시오. 어린아이들이 소리 질러 찬양했습니다. 성전은 찬양하는 곳입니다. 한마디로 성전은 기도하는 곳이고 말씀이 선포되어 치료받는 곳이고 하나님을 찬양하는 곳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전이 세상에 영향을 받아서 물질적이 되고 인본적이 될 때 주님은 무섭게 분노하십니다. 거꾸로 성전이 제 기능을 발휘할 때 주님은 우리의 가정과 교회와 나라를 지켜 주시고 축복하실 것입니다. 요즘 교회가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왜 이렇게 점점 상황이 악화되고 있는 것입니까? 하나님께서 교회를 향하여 경고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교회가 회개하길 바라시는 것입니다. 교회가 성전 고유기능을 회복하기를 원하십니다. 교회가 회개하지 않고 세속화되면 우리나라도 힘들어 질 것입니다. 교회가 살아나면 나라가 살 것입니다. 소돔과 고모라 성이 망한 결정적인 이유는 바로 의인 10명이 없었기 때문이 아니었습니까? 기도하는 의인이 열 명이라도 있었다면 소돔과 고모라는 심판을 피할 수 있었습니다. 교회가 회복됨으로 다시금 우리나라가 제사장나라 거룩한 백성으로 쓰임 받는 하나님의 축복이 임하길 기도합니다. 코로나 사태로 교회의 소모임이 금지되고 비 대면으로 예배 봐야 하는 기간이 길어지고 있습니다. 가정교회의 역할이 커지고 있습니다. 교회에서 모일 수는 없지만 양들을 가정으로 초청하여 섬길 수 있습니다. 온라인 말씀공부는 언제든지 가능합니다. 중국이 공산화 되면서 중국 교회에 대대적인 핍박이 있었습니다. 그때 서양에서 온 선교사들은 추방되었고 더 이상 교회로 모일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때 다들 중국 교회는 이제 망할 것으로 보았습니다. 그러나 어떻게 되었죠? 교회 중심으로 모일 수 없게 되자 가정 중심으로 모임으로 가정교회를 이루었고 오히려 폭발적으로 부흥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우리 가운데 기도하는 가정교회 생명이 살아나는 가정교회들이 많이 설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또한 고린도 전서 3장 16,17절에서 우리의 마음이 성령께서 거하는 성전이라 했습니다. 내 마음이 세상욕심으로 가득 차 있으면 말씀으로 청소해야 합니다. 정욕, 안일 등의 죄로 더럽혀져 있으면 성령의 불로 태워야 합니다. 하나님께 쓰임 받는 성전들이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18절을 보십시오. ‘이른 아침에 성으로 들어오실 때 시장 하신지라.’ 예수님께서 이른 아침에 성으로 들어오실 때 시장 하셨습니다. 마침 그때 길가에 있는 한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열매를 얻기 위해 그리로 가셨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잎만 무성 했지 열매가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저주 하셨습니다. ‘이제부터 영원토록 네가 열매를 맺지 못하리라.’ 그러자 무화과나무가 곧 말랐습니다. 예수님이 배가 고픈데 먹을 것이 없자 화가 나신 것입니까? 저혈당이 와서 예민해지신 것일까요? 아니죠. 무화과나무는 3월이면 먹을 수 있는 작은 열매가 열립니다. 4월이면 크고 무성한 잎이 나옵니다. 5월 6월이 되면 무화과가 익어 떨어지게 됩니다. 때는 유월절을 한 주 앞둔 4월이기 때문에 작은 열매라도 있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열매가 없었습니다. 마땅히 열매를 맺어야 할 나무가 열매를 맺지 못한 것을 심판하신 것입니다. 주님은 비록 하찮은 무화과나무라 할지라도 열매 맺지 못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으십니다. 하물며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사람이 주님의 피로 사신 교회가 열매 맺지 못할 때 주님은 얼마나 분노하시겠습니까? 잎만 무성하고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는 내용 없이 겉만 번지르르한 예루살렘 성전을 상징합니다. 형식적인 신앙생활을 하던 이스라엘 민족을 상징합니다. 열매 맺지 못하는 예루살렘 성전은 A.D. 70년에 로마 군대에 의해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졌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이후로 하나님의 저주를 받아 나라 잃은 민족이 되어 2천 년 동안 전 세계에 흩어지고 방황하였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백성인 우리도 한그루 무화과나무와 같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세상에 보내신 목적이 무엇입니까? 열매 맺는 삶을 살기 위함입니다. 요한복음 15장 8절은 말합니다. ‘너희가 열매를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는 내 제자가 되리라.’ 열매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열매를 말합니다. 이런 열매를 많이 맺으면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잎만 무성한 신앙생활을 하기 쉽습니다. 잎만 무성한 것은 영적으로 어떤 상태를 말하는 것일까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열매를 맺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보다 자기의 영광이 드러나길 바라는 자기중심적인 신앙생활을 하는 경우입니다. 사람들의 인정과 칭찬을 구하는 삶입니다. 이런 사람은 형식적인 신앙생활을 합니다. 형식적인 말씀공부, 형식적인 기도, 형식적인 예배를 드립니다. 삶의 변화가 없습니다. 성장이 없습니다. 이런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은 열매는 없고 잎만 무성한 무화과나무입니다. 내가 잎만 무성한 자기중심적인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지 하나님 중심의 열매 맺는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지 잘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자기 부인이 있는가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자기 부인이 중요합니다. 자기 부인을 얼마나 하고 있는지? 자기부인은 없고 내가 원하는 것만 하고 있지 않은지? 자기 부인을 하지 않는 사람은 자기중심적인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인 것이죠. 반면에 열매 맺는 무화과나무는 자기부인이 있습니다. 말씀공부와 예배를 통하여 삶이 변화됩니다. 감사가 더 많아지고 섬김이 더 풍성해지고 사랑이 더 깊어집니다. 어제보다 오늘이 더 나아지는 것입니다. 성장하는 것입니다. 자기중심에서 벗어나 하나님 중심의 사람으로 변화됩니다. 아브람에서 아브라함으로 사래에서 사라로 사울에서 바울로 변화 되는 것입니다. 이런 삶에 은혜가 충만합니다. 기쁨이 넘칩니다. 하나님께서 영광 받으십니다. 나는 잎만 무성한 무화과나무입니까? 아니면 열매 맺는 무화과나무입니까? 이 시간 말씀에 기초해서 나 자신을 돌아볼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20절을 보십시오. 제자들이 무화과나무가 마른 것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무화과나무가 어찌하여 곧 말랐습니까?’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의 권세에 놀랐습니다. 예수님은 이들에게 믿음의 기도를 가르쳐 주십니다. 21절 22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너희가 믿음이 있고 의심 하지 아니하면 이 무화과나무에게 된 이런 일만 할뿐 아니라 이 산더러 들려 바다에 던져 지라 하여도 될 것이요 너희가 기도할 때에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것은 다 받으리라 하시니라.’ 예수님은 제자들이 의심치 않는 믿음이 있으면 무화과나무가 마르는 정도가 아니라 산을 들어 바다에 던지는 일도 가능하다고 하십니다. 산의 특징은 요지부동 즉 움직이지 않는 것이 특징입니다. 산을 움직이게 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에 도전하여 가능케 한다는 것을 말합니다. 의심치 않는 믿음과 이 믿음으로 드리는 기도를 통해 불가능해 보이는 것이 가능케 된다는 것입니다. 내가 거룩한 성전으로 변화되고 열매 맺는 무화과나무가 되며 주님께 쓰임 받는 귀한 인생을 살 것을 단순히 믿고 간절히 기도할 때 능히 이루어 질것입니다. 아멘 1991년 봄에 주께서 부족한 저를 러시아 선교사로 쓰시겠다 하시며 부르셨습니다. 당시에 러시아는 그리스도의 계절이 임한 황금어장이었습니다. 그곳에서 러시아 제자들과 양들과 선교사님들을 섬기는 은혜를 덧입었습니다. 인생의 황금기라 할 수 있는 30대 중반 주님께 온전히 쓰임 받는 은혜에 감사가 넘쳤습니다. 동역자의 건강문제로 근심하던 죄인에게 주께서 이 사무엘 선교사님을 통하여 본국역사를 섬기는 방향을 주셨습니다. 최근에는 저의 건강문제로 움츠러져 있었습니다. 저의 상태와는 상관없이 주께서 이 부족한 자라도 말씀의 종으로 쓰시겠다고 하십니다. 제가 부족하지만 자신을 드리는 자가 되길 기도합니다. 먼저 세상욕심으로 더러워진 내면을 말씀으로 깨끗이 청소하길 기도합니다. 잎만 무성한 무화과나무가 아니라 열매 맺는 무화과나무가 되도록 자기중심 이기심을 회개하고 하나님중심의 사람으로 변화되길 기도 합니다.
 
결론적으로, 우리가 교회가 성전 본래의 기능을 회복해야 하겠습니다. 말씀과 기도로 생명을 살리는 가정교회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입만 무성한 무화과나무가 되지 않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열매 맺는 무화과나무의 인생을 살 수 있기를 기도 합니다. 그리하여 주가 쓰시겠다 할 때 자신을 드림으로 하나님께 쓰임 받는 귀하고 값진 인생 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이를 위하여 의심치 않는 믿음으로 도전하며 간절한 기도를 드립시다.
 
  0
3500
번호     글 제 목  작성자 작성일 조회
669 마태복음 [2020년 마태복음 제33강]임금의 아들의 혼인 잔치 관리자 2020-10-25 11
668 마태복음 [2020년 마태복음 제32강]열매 맺는 백성이 받으리라 관리자 2020-10-18 92
667 마태복음 [2020년 마태복음 제31강 ]나귀를 타고 입성하신 예수님 관리자 2020-10-11 104
666 마태복음 [2020년 마태복음 제30강]섬기러 오신 예수님 관리자 2020-10-04 115
665 마태복음 [2020년 마태복음 제29강]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리라 관리자 2020-09-26 127
664 마태복음 [2020년 마태복음 제28강]영생을 얻으려면 관리자 2020-09-20 126
663 마태복음 [2020년 마태복음 제27강]용서하라 관리자 2020-09-12 147
662 마태복음 [2020년 마태복음 제26강]천국에서는 누가 큽니까 관리자 2020-09-06 154
661 마태복음 [2020년 마태복음 제25강]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관리자 2020-08-30 156
660 마태복음 [2020년 마태복음 제24강]주는 그리스도 관리자 2020-08-22 167
659 마태복음 [2020년 마태복음 제23강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 관리자 2020-08-16 170
658 요한복음 [2020년 여름수양회 주제5강]내 안에 거하라 관리자 2020-08-09 133
657 요한복음 [2020년 여름수양회 주제4강]길, 진리, 생명 관리자 2020-08-08 72
656 요한복음 [2020년 여름수양회 주제3강]다 이루었다 관리자 2020-08-08 75
655 요한복음 [2020년 여름수양회 주제2강]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관리자 2020-08-08 62
654 요한복음 [2020년 여름수양회 주제1강]빛 되신 예수님 관리자 2020-08-08 65
653 마태복음 [2020년 마태복음 제22강]오천 명을 먹이신 예수님 관리자 2020-08-02 146
652 마태복음 [2020년 마태복음 제21강]천국은 밭에 감추인 보화 관리자 2020-07-26 176
651 마태복음 [2020년 마태복음 제20강]네 종류의 밭의 비유 관리자 2020-07-19 161
650 마태복음 [2020년 마태복음 제19 강]강한 자를 결박하지 않고서야 관리자 2020-07-12 173
12345678910,,,34
서울 동대문구 이문2동 264-231
Tel:070-7119-3521,02-968-4586
Fax:02-965-8594
서제임스목자님메일:Suhjt@hitel.net
[UBF한국본부] [유럽UBF] [UBF국제본부] [UBF TV] [시카고UBF] [Mother Barry's Homepage]
[뉴욕UBF] [워싱턴UBF] [노스웨스턴UBF] [콜롬비아UBF] [코스타리카UBF] [프랑크푸르트UBF]
[키에프UBF] [상파울루UB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