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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nday Worship Message
주일예배메시지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0-10-18 (일) 09:12
분 류 마태복음
첨부#1 2020년_마태복음_제32강-1.hwp (31KB) (Down: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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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마태복음 제32강]열매 맺는 백성이 받으리라
2020년 마태복음 제32강                                           김반석
열매 맺는 백성이 받으리라
말씀 / 마태복음 21:23-46
요절 / 마태복음 21:43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의 나라를 너희는 빼앗기고 그 나라의 열매 맺는 백성이 받으리라”

지난주 말씀에서 예수님은 성전에 들어가서 장사하는 사람들과 돈 바꾸는 사람들을 쫓아내셨습니다. 이것은 기능을 상실한 성전을 폐하시고, 예수님이 친히 성전이 되실 것을 예표하는 사건입니다. 오늘 말씀은 예수님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 종교 지도자들과의 논쟁에 관한 내용입니다. 예수님은 두 가지 비유를 통해 유대인들이 버림 받게 된 이유와 어떤 사람들이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는가를 가르쳐 주십니다. 이 시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열매가 무엇인가를 배우고, 풍성한 열매를 맺어 하나님 나라의 복된 백성으로 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23절을 보십시오. 예수님이 성전에 들어가서 말씀을 가르치시자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들이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느냐 또 누가 이 권위를 주었냐고 따져 물었습니다. 당시 백성들을 가르칠 수 있는 권한은 산헤드린이나 탁월한 랍비들로부터 정통성이 입증된 사람에게만 부여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권한을 부여받은 일이 없는 예수님이 성전을 정결하게 하고, 말씀을 가르치시자 자신들의 권위가 위협을 받는다고 생각했습니다. 예수님이 이들의 질문에 제대로 답변을 못하시면 백성들은 실망을 할 것이고, 하나님의 권위로 일한다고 하시면 신성모독죄로 고소 당하실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들의 악한 의도를 간파하시고 요한이 누구에게서 권한을 받아 세례를 베풀었는지 질문하셨습니다. 그들이 요한의 세례를 인정한다면 그를 믿지 않은 것에 대해 정죄를 받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요한이 권위를 부여받지 않고 스스로 행한 것이라고 할 수도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세례 요한을 하나님이 보내신 선지자로 믿었던 사람들이 많았으므로 백성들로부터 받을 비난이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궁여지책으로 우리는 알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결국 그들의 답변을 통해 백성들은 요한의 세례가 하늘로부터 온 것임을 확신하게 되었고, 세례 요한이 증거한 예수님의 권위도 하나님이 주신 것이라는 것을 스스로 인정하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은 두 가지 비유를 통해 이들의 근본적인 문제가 무엇인가를 가르쳐 주십니다.

Ⅰ. 두 아들의 비유(28~32)
어떤 사람에게 두 아들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맏아들을 불러, “얘야, 오늘 포도원에 가서 일을 하여라.” 고 했습니다. 그는 즉시 “네! 가겠습니다!” 하며 아버지가 어떤 말을 하든 항상 시원스럽게 대답은 잘 하였습니다. “아들아, 오늘 소감 써서 제출해라.” 하면 “넵! 제출하겠습니다.” 하지만 스마트폰만 들여다보다가 소감을 안 썼습니다. “아들아, 오늘은 예배하러 가야지.” 하면 “넵! 알겠습니다.” 하지만 너무 피곤하다며 잠만 자다가 가지 않았습니다. 그는 겉으로는 착하고 순종적인 사람으로 보였지만 불순종했습니다. 반면 둘째 아들은 아버지의 말에 어떻게 반응했습니까? “싫어요. 지금 바쁘단 말이에요!” 그는 자기주장이 분명하고 반발심이 강했습니다. 하지만 그 후에 뉘우치고 포도원에 가서 일을 했습니다.
예수님은 종교 지도자들에게 둘 중에 누가 아버지의 뜻대로 했는지 물으셨습니다. 그들은 둘째 아들이라고 대답했습니다. 예수님은 이 비유를 통해 종교 지도자들의 문제가 무엇인지 가르쳐 주셨습니다. 다 함께 31b, 32절을 읽어보겠습니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리들과 창녀들이 너희보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리라. 요한이 의의 도로 너희에게 왔거늘 너희는 그를 믿지 아니하였으되 세리와 창녀는 믿었으며 너희는 이것을 보고도 끝내 뉘우쳐 믿지 아니하였도다.” 비유에서 맏아들은 종교 지도자들을, 둘째 아들은 세리와 창녀와 같은 죄인들을 가리킵니다. 종교 지도자들은 율법을 지키고자 애를 썼습니다. 어려서부터 모세오경을 암송하고, 안식일을 철저히 지켰습니다. 하루에 세 번 기도하고, 일주일에 두 번씩 금식을 했으며, 소득의 십일조를 정확히 계산해서 드렸습니다. 음식을 먹을 때마다 손을 깨끗이 씻었습니다. 이런 종교 생활에 스스로 만족하며, 누구보다도 의롭다고 생각했습니다. 당연히 하나님 나라에도 먼저 들어갈 수 있을 것으로 여겼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보실 때 이들의 종교 생활은 헛된 경배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뜻과는 무관하게 자기들 나름대로 하는 신앙생활이었기 때문입니다. 잎사귀만 무성하고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와 같았습니다. 경건의 모양은 갖추고 있었지만 하나님이 원하시는 열매를 맺지 못했습니다. 세례 요한도 이들의 위선적인 생활을 책망했습니다.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임박한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어라.” 하지만 그들은 회개의 메시지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요한이 증거한 예수님도 믿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불신과 불순종을 반복하면서도 의롭고 경건한 척 했습니다. 반면 세리는 물질에 대한 탐심으로 과중한 세금을 부과하여 착복하고, 궁핍한 백성들을 더 어렵게 만들었습니다. 창녀들은 몸을 팔아 먹고 살았습니다. 이들은 공인된 죄인들로서 하나님께 나올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세례 요한의 회개의 메시지를 듣고 자신들의 죄를 애통히 회개했습니다. 세례 요한이 전한 예수님을 주요 그리스도로 영접했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자들이 종교 지도자들보다 먼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다고 하셨습니다.
이 비유를 통해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율법적이고 형식적인 종교 생활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영접하고 순종하는 것임을 배울 수 있습니다. 삼상15:22절은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낫다고 말씀합니다. 말씀을 듣고 말로만 알겠다고 대답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것이 아닙니다. 종교 지도자들의 문제는 겉으로만 하는 척하는 외식입니다. 예수님은 주여 주여 부른다고 해서 다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만 들어갈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7:21) 외적인 종교 활동보다 중요한 것은 진실되게 회개하고, 실제 생활에서 그에 합당한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우리는 말씀을 듣고 맏아들과 같이 ‘예’라고 대답을 잘합니다. 매주 소감을 신실하게 쓰면서 말씀에 기초하여 ‘어떻게 하기를 기도합니다.’라고 적용을 잘합니다. 그런데 소감이 뉘우치는 것으로 끝나면 소용이 없습니다. 믿음은 행함으로 나타납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입니다. 아무런 변화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열매도 없고 성장도 없습니다. 둘째 아들처럼 ‘뉘우치고 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과거에 어떤 삶을 살았는가는 하나님 앞에서 전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비록 세리나 창녀와 같은 삶을 살았을지라도 진실되게 회개하고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영접하면 죄사함과 영생을 선물로 받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게 됩니다. 마태는 물질에 대한 탐욕으로 매국노가 되어 이기적인 삶을 살던 죄인이었습니다. 그런데 “나를 따르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즉시 일어나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회개와 함께 삶에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물질을 인생 목적으로 삼던 데서 예수님을 따르며 배우는 제자의 삶으로 바뀌었습니다. 심판 받고 영벌에 처할 인생이 구원 받고,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복된 인생이 되었습니다.
우리도 둘째 아들과 같이 뉘우치고 순종하는 자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주일 메시지를 듣고, ‘예수님의 섬김을 배워 타인을 섬기는 삶을 살겠습니다.’라고 소감을 썼으면 실제로 그 주간만이라도 구체적으로 누군가를 섬기는 투쟁을 해야 합니다. 아무리 소감을 길게 쓰고 그럴듯한 말을 해도 실천하지 않는다면 맏아들과 다를 바 없습니다. 가룟 유다는 예수님이 산헤드린 공회에서 사형 선고를 받고 빌라도에게 넘겨진 것을 보고, 은 삼십에 예수님을 판 것을 뉘우쳤습니다. 양심의 가책을 받고 괴로워했지만 회개하지 않고 스스로 목매어 죽었습니다.(마27:3) 뉘우치기만 하고, 잘못된 행동을 돌이키지 않는 것은 형식적인 제사로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참된 회개는 말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뉘우치고 가는 행위’가 수반되어야 합니다. 이때 하나님이 원하시는 열매를 맺을 수 있고, 이런 자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게 됩니다. 우리가 말씀 앞에 진실되게 회개하고 순종하므로 새 부대가 되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복된 인생 살기를 기도합니다.

Ⅱ. 포도원 농부의 비유(33~46)
다 함께 33절 말씀을 읽어보겠습니다. “다른 한 비유를 들으라 한 집 주인이 포도원을 만들어 산울타리로 두르고 거기에 즙 짜는 틀을 만들고 망대를 짓고 농부들에게 세로 주고 타국에 갔더니” 당시 이스라엘에는 소작인들이 많았는데, 주인의 땅을 경작하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과 물질과 노동력을 투자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이 주인은 농부들이 열심히 일하기만 하면 극상품 포도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모든 환경을 완벽하게 준비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사랑하고 신뢰하여 세를 주고 타국에 갔습니다. 당시 주인과 소작인이 나누는 비율은 보통 5:5였지만, 주인은 1:9로 하여 소출의 십분의 일만 바치도록 했습니다. 이는 농부들에게 임한 일방적인 은혜요 특권이었습니다. 농부들은 감사한 마음으로 열심히 포도원을 가꾸어 드디어 첫 열매를 수확할 때가 가까웠습니다. 주인은 약속한 대로 열매를 받으려고 자기 종들을 보냈습니다. 농부들은 이 종들을 주인의 대사로 영접하고 융숭하게 대접해야 마땅합니다. 포도 열매 중 가장 좋은 것을 주인에게 보냈어야 합니다. 그러나 농부들은 종들을 잡아 한 명은 심히 때리고, 한 명은 죽이고, 한 명은 돌로 쳤습니다. 농부들은 일방적으로 계약을 파기하고, 주인을 능욕했습니다. 주인은 당장 쫓아가서 그들을 진멸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농부들에 대한 소망을 버리지 않고, 인내하며 다른 종들을 처음보다 많이 보냈습니다. 그러나 농부들은 그들에게도 전과 같은 만행을 저질렀습니다.  
여기서 한 집 주인은 하나님을, 농부들은 이스라엘 백성들과 종교 지도자들을, 종들은 선지자들을 가리킵니다. 하나님은 애굽에서 노예 생활하던 이스라엘 백성을 돌아보시고 구원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제사장 나라 거룩한 백성의 소망 가운데 택하시고 연단하셔서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셨습니다. 외적인 환경 뿐만 아니라 그들이 영적인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거룩한 계명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헛된 우상을 숭배하는 이방인들과 달리 유일하신 참 하나님을 경배하고 죄 사함 받을 수 있는 예배 제도를 주셨습니다. 그들이 이 모든 은혜에 감사하며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만 하면 하나님의 복을 받고 풍성한 열매를 맺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보다 이방 문화에 동화되어 세상 가치관을 좇아 본성대로 살았습니다. 우상을 숭배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버렸습니다. 이권 개입으로 성전은 부패할 대로 부패하여 성전의 기능을 상실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이스라엘 백성들을 안타깝게 생각하셨습니다. 어찌하든지 그들을 돌이켜서 바른 관계성을 맺고자 계속해서 선지자들을 보내셨습니다. 회개의 메시지를 전하게 하고, 하나님께 돌아오기를 바라셨습니다. 하지만 귀를 틀어막고, 끝까지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마음을 완악하게 하고, 선지자들을 때리고(렘20:1,2), 죽이고(히11:37), 돌로 쳤습니다.(대하24:20,21)
그들이 왜 이런 악한 짓을 했을까요? 첫째, 하나님의 은혜를 잊고 감사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처음에 포도원을 맡게 되었을 때는 주인의 은혜에 감격하여 감사의 눈물을 흘렸을 것입니다. 주인이 없어도 충성스럽게 포도원을 가꾸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포도원에서 일하게 된 것이 자기들에게 어떤 자격이 있어서 선택된 것처럼 생각했습니다. 점차 은혜가 식어졌습니다. 은혜가 식어질 때 감사하기보다 불평불만을 하는 마음이 들기 쉽습니다. 세를 바치는 것은 기본적으로 자기는 어디까지나 품꾼이요 주인은 따로 있음을 인정하는 최소한의 계약조건이요 은혜에 대한 감사의 표현이기도 합니다. 세를 바칠 때 하나님과의 영적 질서가 세워지고 올바른 관계성을 맺을 수 있습니다. 계속해서 포도원에서 일하는 은혜와 특권을 누리게 됩니다. 그러나 은혜를 잊어버리고 감사하지 않으면 10개 중 1개를 바치는 것도 아깝게 여겨집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성이 파괴되어 더 이상 은혜를 받을 수 없게 됩니다. 하나님이 베풀어 주신 은혜를 기억하고, 구원의 은혜를 붙들고 사는 것이 중요합니다. 또 적극적으로 은혜를 감당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나에게 있는 모든 것은 하나님이 주신 것이므로 하나님이 원하실 때 언제든지 감사함으로 드려야 합니다. 둘째, 자기 의와 교만에 빠졌기 때문입니다. 농부들은 포도원의 주인이 아니라 청지기에 불과합니다. 주인의 포도원을 잘 관리하고 가꾸어 정한 세를 바쳐야 합니다. 그런데 열심히 일해 열매를 맺다보니 자기 의가 생겼습니다. 청지기 정신을 잃어버리고 포도원이 마치 자기 것인 양 착각하고 교만하게 되었습니다. 주인 의식을 갖고 충성스럽게 섬기는 것은 좋은데, 주인 행세를 하며 진짜 주인을 경홀히 여겼습니다. 교만한 자는 타락하게 되고 하나님께 버림을 받게 됩니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입니다.(잠16:18) 교만을 이기기 위해 늘 마음을 겸손하게 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자기 의를 내려놓고 겸손히 하나님을 의지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셋째, 탐욕에 빠졌기 때문입니다. 37절, 38절을 보십시오. 주인은 마지막으로 자기 아들을 보내며 아들은 존대해 줄 것을 기대했습니다. 주인이 지금까지 농부들의 악행을 길이 참은 것은 그들을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아들을 영접하기만 하면 모든 죄악을 용서하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농부들은 그 아들을 보고, 이는 상속자니 죽이고 그의 유산을 차지하자고 했습니다. 그들은 욕심이 생겨 세를 바치는 것조차 아까웠습니다. 욕심이 지나쳐 있는 것으로 자족할 줄 몰랐습니다. 주인의 아들만 사라져 준다면 포도원이 자기들의 소유가 될 것으로 착각했습니다. 결국 탐욕의 노예가 되어 주인의 아들을 잡아 포도원 밖에 내쫓아 죽였습니다. 회개할 기회가 주어졌지만 탐욕에 빠저 더 완악해졌습니다. 여호수아 6장에서 이스라엘 자손이 광야 생활을 마치고 가나안 땅에 들어갈 때 여리고 성이 굳게 닫혔습니다. 하나님은 엿새 동안 매일 성을 한 번씩 돌다가 일곱째 날에는 일곱 번을 돌고 큰 소리로 외치면 성벽이 무너져 내릴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전리품은 희생제물로 온전히 하나님께 바치고, 그 바친 물건에 손을 대어 재앙을 당하지 않도록 엄히 경고하셨습니다.(수6:18) 말씀대로 순종하여 성이 무너졌는데, 아간이 시날 산의 아름다운 외투 한 벌과 은 이백 세겔과 오십 세겔의 금덩이 하나를 탐내어 자기 장막의 땅 속에 감추었습니다. 이로 인해 하나님의 진노가 이스라엘에 자손에게 임하여 아이 성 전투에서 패했습니다. 여호수아가 슬퍼하면서 탄식하며 하나님께 부르짖자 하나님께 온전히 바친 물건을 가져가고 도둑질하며 속인 것 때문임을 가르쳐 주시고, 제비로 뽑힌 자를 찾아 그와 그의 모든 소유를 불사르도록 하셨습니다.(수7:15) 결국 아간이 뽑혔고 그는 훔친 물건과 가족과 모든 소유와 함께 아골 골짜기로 끌려가서 돌에 맞고 불사름을 당해 진멸 당했습니다.(수7:25) 탐심은 우상숭배로서 모든 죄의 근원이 됩니다.(골3:5) 탐심이 생기면 죄를 낳고 죄가 자라면 죽음을 낳습니다.(약1:15) 탐욕을 부리는 자는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습니다.(고전6:10)
탐욕을 부린 농부들은 결국 어떻게 되며 포도원은 누구에게 주어집니까? 다 함께 40,41절을 읽어보겠습니다. “그러면 포도원 주인이 올 때에 그 농부들을 어떻게 하겠느냐. 그들이 말하되 그 악한 자들을 진멸하고 포도원은 제 때에 열매를 바칠 만한 다른 농부들에게 세로 줄지니이다.” 주인은 배은망덕한 농부들을 인내하며 자기의 아들까지 보냈지만 끝까지 회개하지 않고 심지어 그 아들을 죽이기까지 했습니다. 주인은 무골호인이 아닙니다. 이들을 진멸하고 포도원을 빼앗아 제 때에 열매를 받을 만한 다른 농부들에게 줄 수밖에 없습니다. 여기서 주인의 아들은 독생자 예수님을 가리킵니다. 하나님은 불순종하고 반발하고 대적하는 죄인들을 사랑하사 독생자를 보내주셨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았습니다. 골고다로 끌고 가서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습니다. 하나님은 인내와 긍휼이 풍성하시고, 온유하고 사랑이 많은 분이십니다. 하지만 공의의 하나님이시기도 합니다. 은혜를 악으로 갚는 자들은 반드시 심판하십니다. 결국 이스라엘은 A.D.70년 로마군에 의해 멸망 당하고, 포도원은 “제 때에 열매를 바칠 만한 다른 농부들” 즉 세리나 창녀와 같은 공인된 죄인들, 이방인들에게 넘어갔습니다. 이들은 주님의 은혜에 감사하고 겸손히 은혜를 감당할 줄 아는 자들입니다. 자격 없는 자들에게 임한 은혜를 알고, 기쁨으로 열매를 바치고, 무익한 종의 자세로 충성하는 자들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자들에게 포도원을 맡기십니다.
42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성경에 건축자들이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 이것은 주로 말미암아 된 것이요 우리 눈에 기이하도다 함을 읽어 본 일이 없느냐.” 예수님은 자신을 건축자들이 버린 돌에 비유하셨습니다. 종교 지도자들은 정치적인 메시아를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영적인 메시아로 오신 예수님이 자신들의 필요를 채워주지 못하자 쓸모없다고 십자가에 못 박아 버렸습니다. 그들로 인해 하나님의 구속역사는 실패한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 예수님을 모퉁이의 머릿돌 즉 구원역사의 초석이 되게 하셨습니다. 이 예수님을 영접하는 자는 구원을 받습니다. 이들을 통해 새 이스라엘, 주님의 성전이 견고히 세워지게 됩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는 자는 심판을 받게 됩니다.
다 함께 43절을 말씀을 읽어보겠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의 나라를 너희는 빼앗기고 그 나라의 열매 맺는 백성이 받으리라” 이스라엘은 제사장 나라 거룩한 백성으로 택함받고 특권만 누리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그에 합당한 삶을 살지 않았습니다. 극상품 열매를 맺을 수 있는 환경 속에 살았지만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와 같았습니다. 회개할 수 있는 기회를 수없이 주었지만 끝까지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이로 인해 그들은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선택받은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특권과 영광을 빼앗기게 되었습니다. 그 특권과 영광은 열매 맺는 백성, 즉 예수님의 권위를 인정하고 회개하는 겸손한 자들, 이방인들이 받게 되었습니다. 종교 지도자들은 예수님의 비유가 자기들을 가리켜 말씀하심인 줄 알고 뚜껑이 열려 잡고자 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선지자로 알고 있는 무리들이 무서워서 할 수 없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신앙생활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열매를 맺는 것임을 배울 수 있습니다. 41절에서 포도원은 제 때에 열매를 바칠 만한 다른 농부들에게 세로 줄 것이라고 했습니다. 회개와 순종의 열매를 맺으면 계속해서 포도원에서 일할 수 있는 특권을 누릴 수 있습니다. 43절에서는 하나님 나라를 그 나라의 열매 맺는 백성이 받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열매를 맺을 때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예수님의 제자로 인정받게 됩니다.(요15:8) 주님이 주시는 기쁨으로 충만하게 됩니다.(요15:11) 이런 자에게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고, 장차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게 됩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떤 열매를 맺어야 할까요? 첫째, 성령의 열매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으려면 성령의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갈5:22,23절에서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라고 했습니다. 이런 열매는 시간이 지난다고 저절로 맺혀지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을 좇아 행하는 삶 즉 성령님의 인도함을 받는 생활을 꾸준히 감당할 때 맺혀지게 됩니다. 이를 위해 성경을 가까이 하기에 힘써야 합니다.(엡6:17)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행위를 통해 무엇을 이루고자 하는 업적 지향의 율법적인 신앙생활에서 벗어나 나의 인격과 존재가 변하도록 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예수님을 본받기 위해 인내와 사랑으로 겸손히 낮아져 섬기고자 투쟁해야 합니다. 내 힘과 의지로는 순종할 수 없으므로 성령님 안에서 항상 깨어서 열심히 기도해야 합니다.(엡6:18) 그러면 성령님께서 내 속에서 역사하셔서 마음과 생각을 다스려 주십니다. 날마다 육체의 본성대로 살고자 하는 마음을 절제하고, 죄를 이길 능력을 주셔서 변화된 삶을 살게 하십니다. 이렇게 성령의 인도함을 받는 생활을 꾸준히 감당할 때 10년, 20년, 30년이 지나면서 우리의 인격이 예수님의 형상을 닮은 자들로 변화됩니다. 내면에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성령의 9가지 열매가 주렁주렁 열리게 됩니다. 둘째, 전도의 열매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사 택하신 족속, 왕 같은 제사장, 거룩한 나라, 그의 백성으로 택하신 목적이 무엇입니까? 나 혼자 잘 먹고 잘 살라고 독생자 예수님을 십자가에 내어주신 것이 아닙니다. 우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놀라운 빛 가운데 들어가게 하신 하나님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입니다.(벧전2:9) 예수님은 자신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을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이르시되 우리가 다른 가까운 마을들로 가자 거기서도 전도하리니 내가 이를 위하여 왔노라 하시고.”(막1:38) 막16:15절에서는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날마다 성전에 있든지 집에 있든지 예수는 그리스도라는 것을 쉬지 않고 가르치며 전도했습니다.(행5:42) 이때 하나님 나라가 확장되는 놀라운 생명 구원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결론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복은 열매 맺는 백성들에게 주어집니다. 우리는 매주 말씀을 공부하고, 주일에는 그와 관련된 메시지를 듣고, 그 후에는 삶에 적용하기 위해 소감을 씁니다. 예습, 강의, 복습으로 구성된 삼위일체의 말씀 공부 시스템입니다. 일용할양식 책자로 매일 생명의 양식도 먹을 수 있습니다. 우리처럼 이렇게 신실하고 체계적으로 말씀 공부하는 곳은 본 적이 없습니다. 또한 새벽 기도와 철야 기도를 통해 하나님과의 깊은 영적 교제도 나눌 수 있습니다. 이렇게 좋은 환경에서 겸손한 마음, 감사한 마음으로 영적 투쟁을 감당하면 계속해서 캠퍼스 포도원에서 일을 할 수 있는 은혜와 특권을 누릴 수 있습니다. 누구나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열매를 맺을 수 있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게 됩니다. 반면 이 은혜와 특권에 감사하지 않고 헛된 자부심과 교만과 탐심에 빠지면 받은 축복과 특권이 다른 사람들에게 넘어가게 됩니다. 우리가 항상 감사하고 순종하며 두렵고 떨림으로 회개와 믿음과 순종의 열매를 맺어 구원을 이루어 나가기를 기도합니다. 성령님의 다스림 받는 생활에 힘쓰므로 인격이 변화되어 성령의 열매, 전도의 열매를 맺어 하나님 나라의 복을 받는 거룩한 백성으로 살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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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6 마태복음 [2020년 마태복음 제30강]섬기러 오신 예수님 관리자 2020-10-04 115
665 마태복음 [2020년 마태복음 제29강]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리라 관리자 2020-09-26 127
664 마태복음 [2020년 마태복음 제28강]영생을 얻으려면 관리자 2020-09-20 126
663 마태복음 [2020년 마태복음 제27강]용서하라 관리자 2020-09-12 147
662 마태복음 [2020년 마태복음 제26강]천국에서는 누가 큽니까 관리자 2020-09-06 154
661 마태복음 [2020년 마태복음 제25강]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관리자 2020-08-30 156
660 마태복음 [2020년 마태복음 제24강]주는 그리스도 관리자 2020-08-22 167
659 마태복음 [2020년 마태복음 제23강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 관리자 2020-08-16 170
658 요한복음 [2020년 여름수양회 주제5강]내 안에 거하라 관리자 2020-08-09 133
657 요한복음 [2020년 여름수양회 주제4강]길, 진리, 생명 관리자 2020-08-08 72
656 요한복음 [2020년 여름수양회 주제3강]다 이루었다 관리자 2020-08-08 75
655 요한복음 [2020년 여름수양회 주제2강]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관리자 2020-08-08 62
654 요한복음 [2020년 여름수양회 주제1강]빛 되신 예수님 관리자 2020-08-08 65
653 마태복음 [2020년 마태복음 제22강]오천 명을 먹이신 예수님 관리자 2020-08-02 146
652 마태복음 [2020년 마태복음 제21강]천국은 밭에 감추인 보화 관리자 2020-07-26 176
651 마태복음 [2020년 마태복음 제20강]네 종류의 밭의 비유 관리자 2020-07-19 161
650 마태복음 [2020년 마태복음 제19 강]강한 자를 결박하지 않고서야 관리자 2020-07-12 1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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